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12:5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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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fix]나치 독일의 정치인, 친위대 집단지도자 및 질서경찰 중장이다.
2. 초기 행적
뒤셀도르프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슈포렌베르크는 기계공으로서 직업교육을 받다가 1919년에 의용군에 참가해 1년 반동안 활동한 후 1922년에 나치당에 입당했다. 프랑스 점령하에 있던 루르 지방에서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1924년 3월부터 1925년 8월까지 옥살이를 했던 슈포렌베르크는 석방 후 돌격대에 입대해 돌격대 제39연대에 배속했다. 12월 15일에 재건된 나치당에당복당한 슈포렌베르크는 1929년 8월 1일에 뒤셀도르프의 히틀러 유겐트의 지도자가 되었다.
3. 친위대 입대
1930년 10월 1일에 친위대에 입대한 그는 12월 15일부터 친위대 제 54소대 지휘관, 1931년 11월 21일에 뒤셀도르프 친위대 제 20연대 지휘하의 제 1대대 지휘관이 되었다. 1932년 7월 4일부터 뒤셀도르프 친위대 제 20연대 지휘관으로 임명된 슈포렌베르크는 1933년 9월 20일에 제 20 친위대지구 지도자가 되어 11월엔 친위대 수비대 사령관도 겸임했다. 1933년 3월 5일의 독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 22구(뒤셀도르프)에서 출마한 그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35년에 소위로서 제 26 보병연대에서 훈련을 받은 슈포렌베르크는 1937년에 친위대 보안본부 및 보안경찰본부에 소속하여 쾨니히스베르크의 보안경찰 및 친위대 감찰관으로 일했다.
1939년 9월 26일엔 친위대 상급지구 라인강, 10월 1일엔 라인강 친위대 및 경찰상급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940년 6월 18일에 친위대 상급지구 북동부 지도자, 6월 21일에 북동지구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로 임명된 슈포렌베르크는 1941년 5월부터 6월까지 질서경찰 및 보안경찰로 연수 후 7월 21일에 백러시아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로 부임했다. 1941년 8월에 에리히 코흐의 부관이 되었다가 1943년 8월 16일에 루블린 지구의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로 폴란드인과 유대인 학살에 관여했다.
5. 전후 재판과 최후
1944년 11월에 친위대 상급지구 오스트의 참모가 되었다가 11월 21일에 남부 노르웨이 지구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로서 종전을 맞이한 슈포렌베르크는 노르웨이에서 연합군에 체포되어 폴란드로 이송된 다음 1950년에 열린 폴란드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952년 12월 6일에 바르샤바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