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18 18: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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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fix]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 여단지도자
2. 초기 행적
뮌헨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후버는 1922년부터 뮌헨에서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나치당 활동가들의 감시를 담당했었는데,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인 1934년에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초청으로 요제프 마이징거, 하인리히 뮐러와 함께 베를린의 게슈타포 본부로 이동했다.
1937년에 나치당에 입당한 후버는 1938년 3월에 베르너 폰 프리치 장군의 동성애 의혹수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1938년에 오스트리아 합병 후 빈의 게슈타포 장관, 보안경찰 및 감독관으로 취임해 아돌프 아이히만의 빈 유대인 이송 중앙사무소에서 강제수용소로 유대인을 대량이송하는 책임자로도 일했다.
1940년에 빈의 정치고문으로 취임한 후버는 슬로바키아, 헝가리,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스위스 국경경비 책임자로도 일했는데 1943년부터 도나우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로 취임 후 1944년엔 국가보안본부 장관인 에른스트 칼텐브루너의 고문으로 일했다.
5. 전후 재판과 최후
독일의 패전 후 체포된 후버는 1949년에 징역 1년과 500만 마르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그러나 이후 이 판결은 취소되어 다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복역 후 1955년부터 뮌헨에서 회계사로 일하다가 1975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