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Herbert Otto Wilhelm Hermann Gille 헤르베르트 오토 빌헬름 헤르만 길레 |
출생 | 1897년 3월 8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간델스하임 |
사망 | 1966년 12월 26일, 서독 하노버 |
복무 | 독일 제국군(1914~1918) 슈츠슈타펠 (1931년 ~ 1945년) |
최종계급 | 독일 제국군 소위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장 (상급집단지도자)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 금강석 백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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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헤르베르트 오토 길레 (Herbert Otto Gille) |
2. 초기 행적
독일 제국령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간델스하임에서 공장경영인의 아들로 태어난 길레는 1909년에 벤스부르크의 프로이센 왕국군 사관학교에 입학해 공부한 후 1914년에 베를린의 프로이센 왕국 고급유년사관학교로 이적했다.3.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14년 8월에 바덴 대공국군의 야전포병연대 사관후보생으로 참전한 그는 1915년 1월에 소위로 승진해 1,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1919년 3월에 제대한 길레는 1929년까지 각지의 농장에서 토지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철모단에 가입했다.4. 나치당 입당과 슈츠슈타펠 입대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자동차 회사의 회사원으로 일한 길레는 1931년 5월 1일에 나치당에 입당해 12월에 친위대에 입대했다. 1933년 4월 20일에 친위대 소위로 임관 후 1934년 5월 29일에 무장친위대의 전신인 친위대 특무부대에 소속된 길레는 처음에는 제1연대 <도이칠란드>에 소속되었지만 1936년 10월에 대위계급으로 제2연대 <게르마니아>로 이적했다. 1935년 1월 3일에 조피 샤를로타 멘네케와 결혼한 길레는 딸 하나를 슬하에 두었다.5. 제2차 세계 대전
친위대 소령계급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맞이한 길레는 폴란드 침공과 서부전선에서 <게르마니아> 제1 포병대대의 대대장으로 참전했다. 1940년에 펠릭스 슈타이너의 눈에 발탁된 그는 제5 SS 기갑사단 <비킹>의 포병연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동부전선에서 분전하여 1942년 10월에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고 11월에 친위대 소장으로 승진했다. 1943년 5월부터 1944년 8월에 비킹의 사단장이 된 길레는 소련군을 상대로 분전하여 이름을 떨쳤는데 1944년 1월부터 2월에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에서 비킹을 포함한 6개의 사단들이 소련군에게 포위되자 비킹 사단이 결사의 탈출작전을 벌여 길을 여는데 성공하기도 했었다.[1]1944년 8월부터 제3 SS 기갑사단 <토텐코프>도 산하에 두어 제4 SS 기갑군단 사령관이 된 길레는 바르샤바 공방전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공방전에서 구출작전을 지휘했다.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길레 |
1944년 11월 9일 최종적으로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무장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구출작전은 실패하고 이후에 있을 봄의 새싹 작전으로 제4SS기갑군단은 거의 괴멸되고 말았는데 그 후 독일의 패전이 다가오자 길레는 소련군에서 벗어나 연합군의 포로가 되기로 결심하여 남은 군단병력들에게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게했다. 5월에 길레와 그의 군단병력은 오스트리아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