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13: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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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트 슈트라우흐 (Eduard Strauch) |
나치 독일의 친위대 중령이자, 아인자츠그루펜의 지휘관으로 많은 학살을 저지른 전범이다.
2. 초기 행적
에센에서 태어난 슈트라우흐는 뮌헨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다가 재학중에 전과하여 법학학위를 따 졸업했다. 1931년 8월에 나치당에 입당하고, 12월에 친위대에 들어간 그는 1934년부터 첩보부에서 근무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슈트라우흐도 다른 장교와 같이 아인자츠그루펜의 지휘관이 되어 제2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슈트라우흐의 부대는 1만 600명의 유대인을 룸블라 숲에서 살해하고 1941년 11월 30일엔 다시 또다른 대학살에도 관여했다. 12월에 벨로루시의 보안경찰 및 첩보지휘관으로 취임한 슈트라우흐는 백러시아에서 5만 5천명의 유대인을 10주간에 걸쳐 살해했다. 그러나 슈트라우흐는 러시아 점령지의 친위대 및 경찰고급지도자였던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친위대 대장과 사이가 나빴는데,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 대장은 슈트라우흐를 현재껏 만난 인물들 중 가장 최악의 인간이라고 평가했다. 1944년 5월 31일부터 벨기에의 보안경찰 및 첩보지휘관으로 부임한 슈트라흐는 1944년 10월부터 무장친위대에 편입되었다.
4. 전후 재판과 최후
독일의 패전 후 미군에게 붙잡힌 슈트라우흐는 아인자츠그루펜의 학살혐의로 재판에 세워졌다. 슈트라우흐는 정신병을 들먹이며 자신의 죄를 회피하려 했지만 법정은 그에게 사형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벨기에 정부가 슈트라우흐를 자국의 전범으로 세우고 싶다고 요망하여 미국은 그의 신병을 벨기에로 인도했다. 벨기에 법정에서도 슈트라우흐는 사형판결을 받았는데 사형이 집행되기 전인 1955년 슈트라우흐는 감방에서 병을 얻어 옥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