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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어. 영어 Erzincan아르메니아어 Երզնկա (예르즌카)
쿠르드어 Erzîngan
튀르키예 동부의 도시. 엘라즈에서 북쪽으로 90km, 트라브존에서 남쪽으로 95km, 에르주룸에서 서쪽으로 100km, 시바스에서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협곡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2만명으로, 에르진잔 도의 주도이다. 지명은 옛 아르메니아 신화의 성지 에레즈에서 유래되었다. 유프라테스 강 북안의 기존 도시는 1939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사라졌고, 그 북쪽에 현대의 도시가 세워졌다.
2천년의 역사를 지닌 구도심이 그야말로 사라졌기에 현재 시가지는 깔끔한 계획 도시이다. 서북쪽 7km 지점에 에르진잔 비날리 을드름 대학교, 서쪽 5km 지점에 공단이 있다. 그외에 동남쪽 외곽에 에르진잔 공항이 자리한다. 시내에는 볼거리가 없고, 동쪽 에르주룸 방면에 살투크 왕조의 건물군이 남아있는 마마 하툰이 몇 안되는 인근 관광지이다. 해발 1180m에 입지하여 겨울에는 영하 30도에 육박할 정도로 춥다.
2. 역사
고대에는 아킬리세네라 불렸고, 기독교 이전 아르메니아 왕국의 성지인 에레즈가 있었다. 384년 로마 제국과 사산 제국은 아르메니아를 분할한다는 아킬리세네 조약을 맺었다. 중세에는 에케기아츠, 유스티니아노폴리스, 켈트제네 등으로 불렸다. 9세기 말엽 대주교구가 설치되었으나 만지케르트 전투 후 룸 셀주크령이 되었고, 1243년 몽골 제국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후 재건되었으나 루브룩에 의하면 1254년 대지진으로 1만 이상이 사망했다 한다. 1500년 여름, 에르진잔에서는 7천의 키질바시 부대가 이스마일 1세의 부름에 답하여 사파비 왕조 건국의 주체가 되었다. 이후로도 쉬아 튀르크 부족들이 아르메니아 인들과 공존했으나 전자는 찰디란 전투 직전 오스만 제국군에 의해 학살되었다.이후 오스만 령이던 에르진잔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겪으며 튀르크계 주민이 다수가 되었고, 1차 대전 발발 후 튀르키예 제3군의 사령부가 되었다. 하지만 1916년 7월 러시아 제국군이 튀르키예군을 격파하고 도시를 점령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볼셰비키에 속한 러시아 병사들은 에르진잔과 툰젤리에서 이른바 '에르진잔 소비에트' 결성을 시도했으나 본국의 혼란으로 군대가 철수하며 무산되었고, 마침내 1918년 2월 오스만 군이 일대를 수복한 후 반격으로 전환한다.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 후 안정을 누리던 에르진잔은 1939년 12월 27일 규모 7.8의 에르진잔 대지진으로 32962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고, 기존 시가지는 완전 파괴되어 2km 북쪽에 현재의 도심으로 이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