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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 전경
공화국 광장(Cumhuriyet Meydanı)와 카이세리 중심가의 모습
1. 개요
튀르키예어: Kayseri그리스어: Καισάρεια (케사리아)
라틴어: Caesarea (카이사레아)
튀르키예에서 11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로, 카파도키아지방의 동부, 중부 아나톨리아 지방에 속해 있다. 서쪽으로는 흔히 '카파도키아'라고 알려진 네브셰히르도, 남서쪽으로는 니으데도, 남쪽으로는 아다나도, 남동쪽으로는 카흐라만마라쉬도, 동쪽으로는 시바스도, 북쪽으로는 요즈가트도와 접했다. 여행객들은 주로 네브셰히르도를 여행하기 때문에 의외로 관광객 보기 힘든 곳이지만 이곳 또한 한때 다니슈멘드 왕조의 수도였던 곳으로 역사적인 장소와 유적, 문화가 풍부한 곳이다. 튀르키예 쉬페르리그의 카이세리스포르가 이곳을 연고지로 삼고 있다.
면적은 1만 7170 ㎢으로 강원도 면적과 비슷한데 총 16개 시군이 속한다. 평균 해발고도가 1054 m로 상당한 고지대이다. 히타이트 시대부터 신성시한 에르지예스산(Erciyes dağı)이 카이세리도에 있는데 카이세리의 상징이다. 에르지예스산의 높이는 3916 m로 네브셰히르도에 위치한 하산산(Hasan dağı)과 함께 한때 화산으로 분화하여 오늘날 카파도키아 지형을 만들었다. 상당히 높은 산이지만 정작 보면 카이세리의 해발 고도가 높은 탓에 생각보다 높게 보이진 않는다. 인구는 2014년 통계 기준으로 132만 2376명이다.
2016년 12월 17일 튀르키예시간 기준 오전 8시 45분경, 에르지예스 대학교 정문 500 m 근처 아타튀르크 대로를 달리던 시내버스에 폭탄 테러가 가해져 버스에 탑승하고 있던 사복 차림의 휴가병 및 에르지예스 대학 학생, 시민을 포함해 총 14명이 사망하고 56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국은 바로 한 주 전에 벌어진 이스탄불 테러와 연계한 사건이라 보고 PKK가 벌인 소행으로 추측했다. 범인들은 시내버스도 공격했다.더보기(튀르키예어)
2024년 7월 1일 카이세리 시를 중심으로 시리아 난민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폭동이 발발해 튀르키예 내무부 장관이 이를 인정했다.#
튀르키예의 참모총장 훌루시 아카르(Hulusi akar)가 이곳 카이세리 출신이다.
2. 카이세리의 시군
도 중심지(Merkez)는 멜릭가지(Melikgazi), 코자시난(Kocasinan) 2개 군의 일부가 카이세리시를 구성하며 그 외에 악크슐라(Akkışla), 뷘얀(Bünyan), 데웰리(Develi), 하즐라르(Hacılar), 인제수(İncesu), 프나르바쉬(Pınarbaşı), 사르오을란(Sarıoğlan), 사르즈(Sarız), 토마르자(Tomarza), 야히얄르(Yahyalı), 탈라스(Talas), 외즈바탄(Özvatan), 펠라히예(Felahiye), 예실히사르(Yeşilhisar)군이 있다.후에 더 서술하겠지만 이 중에서도 뷘얀군과 야히얄르군에서는 질 좋은 카페트가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3. 역사
디야르바크르 성채와 비견될 만큼 굳건히 남아있는 카이세리 성채
3.1. 고대
기원전 7000여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는데, 기원전 2000년 무렵 히타이트인들이 들어와 카니쉬(Kaniş)라는 이름의 도시를 세웠다. 현재는 카이세리시에서 22km 떨어진 퀼테페(Kültepe) 마을에 유적이 남았는데, 한때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카니쉬는 히타이트와 아시리아 간의 중개 무역으로 번영하였고, 아시리아 상인들이 왕래하였다. 아케메네스 제국 페르시아 시기에는 카트파투카 사트라피의 주도였고, 헬레니즘기에는 마지막 사트라프 아리아라테스 1세의 조카 아리아라테스 2세가 자립하여 세워진 카파도키아 왕국의 수도로서 번영하였다. 페르시아계 왕실이 지배했지만 점차 헬라화가 진행된 결과 지명 역시 마자카 (Μάζακα)에서 아리아라테스 4세의 별명을 따 에우세비아 (Εὐσέβεια)로 명명되었다.그리고 기원전 1세기 로마에 복속한 마지막 군주 아르켈라오스가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 카이사레아 (Καισάρεια)로 개칭하였고, 이후로도 그렇게 불렸다. 서기 17년 공식적으로 로마 제국에 편입된 후 카파도키아 속주의 수도가 되었고, 3세기경에는 인구 4만의 대도시로 성장해 있었다. 260년 샤푸르 1세의 사산 제국군에게 파괴되었으나 복구되었고, 4세기 초에는 성녀 도로테아 (도로시) 등의 순교자를 배출하며 기독교화되었다. 4세기 후반에는 공동체적인 수도승의 삶을 규정하여 카파도키아의 3대 성부 중 하나로 추앙받는 성 바실리오스가 카이사레아 대주교를 지냈다. 카이사레아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관할 대주교구 중 콘스탄티노폴리스 다음가는 대주교구로서 아나톨리아반도의 기독교 중심지였다. 카이사레아 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다음으로) 으뜸이란 의미인 프로토트로노스 칭호를 받았고,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 전까지 무려 1600여 년간 이어졌다.[1]
3.2. 중세
룸 셀주크 시절인 1235년에 세워진 후나트 하툰 모스크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카이사레아의 성벽을 보강하며 요새화하였고, 7세기 들어 티야나와 함께 이슬람 제국에 대한 동로마 측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다. 한편 아랍인들은 도시를 카이사리야(قيصرية)라 불렀고, 647년 당시 시리아 총독이던 무아위야 1세의 아나톨리아 습격 당시 함락되었지만 곧 철수하였다. 9세기 카이사레아는 테마제의 일환으로 설립된 카르시아논 테마의 치소가 되었고, 10세기 이후 동로마 제국의 중흥과 함께 안정을 구가하였다. 하지만 만지케르트 전투 직전인 1067년 여름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에게 점령되어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성 바실리오스 성지를 비롯한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한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도시는 1134년 다니슈멘드조에 의해 재건되어 그 수도가 되었고, 현 지명인 카이세리(قیصری)라 명명되었다. 1178년 룸 셀주크령이 된 후 1243년 몽골 제국이 점령했다가 곧 속국화된 룸 셀주크에 반환되었다.
1258년 룸 셀주크가 카이카우스 2세와 클르츠 아르슬란 4세 간에 분할되었을 때에 카이세리는 후자의 거점이 되었지만, 1262년 통합된 후 다시 콘야에게 수도 지위를 넘겨줬다. 1277년 엘비스탄 전투에서 몽골-룸 연합군을 격파한 맘루크 왕조의 바이바르스는 4월 17일 카이세리에 입성, 6일 후 룸 술탄을 칭하였고 다시 4일 후 철수하였다. 얼마 후 카이세리에 입성한 일 칸국의 아바카 칸은 맘루크 군을 지지한 주민들에 대한 보복으로 대학살을 벌였고, 이로써 도시는 크게 쇠퇴하여 콘야나 시바스에 밀리게 되었다. 14-15세기 에레트나 왕조와 카라만 왕조를 거쳐 오스만 제국령이 된 후에는 룸 에얄레트 산하 카이세리 산작이 설치되었다. 오스만 지배 하의 안정을 누리며 카이세리의 인구는 점차 회복되어 1825년에는 10만에 이르렀다.
3.3. 근대 ~ 현대
19세기에 세워진 메리옘 아나 킬리세 (동정녀 마리아 성당)
19세기 말엽 카이세리에는 그랜드 바자르가 세워졌고, 카펫 수공업이 활성화되었다. 20세기 들어 구도심은 수난을 겪었다. 먼저 튀르키예 독립 전쟁 당시 그리스군이 내륙까지 진출하자 옛 로마 유적이 튀르키예군의 병영이 되어 파괴되었고, 1970년대에는 도시 확장으로 여러 건물들이 헐렸다. 그럼에도 카이세리시에는 로마 제국과 다니슈멘드-셀주크-오스만 시절의 유적들도 남아있으며 특히 오늘날에도 모스크로 기능하는 울루 자미(Ulu Camii)에서는 로마 유적에서 떼어온 기둥들을 볼 수 있다. 현재 카이세리는 앙카라, 콘야와 함께 튀르키예 중부의 3대 도시 중 하나이며 카파도키아 지역의 중심지이다.
4. 기후
해발 고도가 높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아침에는 매우 서늘하다. 8월 초에 아침 기온이 10도도 안 되는 날도 있을 정도. 다만 낮에는 햇볕이 세고 뜨겁기 때문에 선글라스가 필요하다.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여름철에는 고온 건조 하며, 겨울에는 앙카라, 콘야, 반만큼이나 춥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 지방은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가끔 폭설로 교통이 두절되기도 한다.5. 출신 인물
6. 구경거리
카이세리 관광 지도
구도심 전경
카이세리 구시가지에 위치한 셀주크, 다니슈멘드 왕조 시절의 모스크와 옛 성벽, 그리고 시장이 볼 만하다. 특히 카이세리 사람들은 특유의 비즈니스로 유명한데, 상인은 어떤 식으로든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하고,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은 상인이 얼마를 말하든 무조건 반값으로 후려치기로 악명이 높다. 아예 튀르키예어로 '카이세리 사람 짓을 한다.'(Kayserililik yapmak) 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 우스갯소리로 상인과 손님 둘다 카이세리 사람이라면, 상인이 물건값을 100리라를 부르든 50리라를 부르든 손님은 무조건 50리라, 25리라로 깎고, 그렇게 깎인 가격에서도 또 반으로 깎으려고 시도한다고들 한다. 이 카이세리 사람들 돈 좋아하는 기질은 이 동네 문화에서도 나타나는데, 통상적으로 튀르키예에서는 집을 세들 때 한 달 치 월세 + 보증금(한 달 치 월세) + 부동산 수수료(액수는 제각각이지만 최대 한 달 치 월세를 넘지 않음) 해서 세 달 치 월세를 일시불로 내고 계약하는 관행이 있는데, 카이세리에서만큼은 제주도처럼 1년 치 월세를 일시불로 내야한다. 가뜩이나 튀르키예인들 생활 형편으로 한 달 치 월세 겨우 내는 집이 부지기수인데 이 연세 때문에 카이세리에 일 혹은 공부하러 왔다가 빚더미에 앉는 청년들이 많다.[2] 카이세리 옛 성채 주변에는 카팔르차르쉬(Kapallı Çarşı)라는 큰 상설 시장이 있으며, 주변에는 옛날 캐러밴들이 머물면서 장사도 펼치던 숙소(Han)들이 남아서 오늘날에도 상업이 활발하다.
카팔르 차르쉬, 이스탄불에도 같은 이름의 시장이 있다.
웨지르 한(Vezir Han), 현재는 카페트 수리 및 판매를 하는 곳이다. 참고로 정말 싸다. 만약에 오래된 카페트를 구입하고자 한다면 꼭 가보자. 관광지에서 파는 카페트의 반값, 심지어 1/4 가격에 살 수도 있다. 수리도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해주기 때문에 수리비도 들지 않는다.
카이세리의 상징인 에르지예스산. 현재는 활동하지 않는 휴화산이다. 카이세리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데 만년설로 덮인 꼭대기까지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겨울철에 스키장으로도 각광받는 장소이다. 카이세리에 같은 이름을 가진 대학교가 있는데, 앙카라 대학교 그리고 이스탄불에 대학교와 함께 한국어학과가 있는 튀르키예 내 유일한 세 곳 중 한 대학교이다.
다니슈멘드 왕조 시절에 건설된 후낫 하툰 모스크 단지(Hunat Hatun Küliyesi)의 모습.
아타튀르크가 1919년 카이세리를 방문했던 시절 머물렀던 집인 아타튀르크의 집(Atatürk Evi)의 모습. 현재는 아타튀르크가 머물렀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해 박물관으로 활용한다.
7. 음식과 특산품
파스트르마(Pastırma), 쇠고기를 향신료에 절인 다음 오랫동안 서늘한 곳에서 건조시켜 만드는 일종의 햄으로 카이세리의 특산품이다.
고지대에 위치해 있고 겨울이 긴 만큼 요리가 대체로 기름진 편이다. 카이세리는 튀르키예식 만두인 만트(Mantı)로 유명한데, 특히 카이세리 만트(Kayseri Mantısı)는 나무로 된 전통 숟가락에 최소한 40개 이상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은 것을 고급으로 친다. 또한 카이세리식 만트 요리는 맵게 양념한 고기 국물에 삶아서 수프처럼 먹는 특징이 있다.
특산품으로는 앞서 언급한 카페트가 있다. 카이세리는 넓은 목초지가 있어 양과 소를 기르기에 이상적이며, 특히 질 좋은 양털이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앞서 언급한 뷘얀(Bünyan)군과 야히얄르(Yahyalı)군이 카페트 생산지로 유명한데 뷘얀에서는 털이 달린 카페트(우리가 '카펫'으로 아는)를 생산하며, 야히얄르에서는 킬림(Kilim)이라는 평직으로 짠 여름용 카페트를 주로 생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