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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2:13:00

여주 이씨

여강 이씨에서 넘어옴
조선 6대 국반 {{{#!wiki style="margin: -1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60><tablebordercolor=#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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驪州 李氏
여주 이씨
}}}
<colbgcolor=#000><colcolor=#ece5b6> 관향 경기도 여주시
시조 교위공파: 이인덕(李仁德)[1]
문순공파: 이은백(李殷伯)[2]
경주파: 이세정(李世貞)
집성촌 경기도 수원시
경상북도 경주시, 포항시, 예천군, 고령군
경상남도 밀양시, 함안군
평안남도 중화군
인구 96,481명(2015년)


1. 개요2. 본관3. 분적4. 분파
4.1. 교위공파(校尉公派)
4.1.1. 서예공파(書藝公派)4.1.2. 상서공파(尙書公派)4.1.3. 정당공파
4.2. 문순공파(文順公派)4.3. 경주파(慶州派)
4.3.1. 역사
5. 실존 인물6. 항렬
6.1. 교위공파6.2. 문순공파6.3. 경주파
7. 기타

1. 개요

경기도 여주시를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고려시대 호족으로 출발한 가문이다. 시조를 포함한 선대의 기록을 잃어, 이은백(李殷伯), 이인덕(李仁德), 이세정(李世貞)을 시조로 하는 3파로 나뉘었다[3]. 조선시대 이언적을 배출함으로써 나라를 대표하는 양반가문인 국반(國班)으로 명성을 떨쳤다.

2. 본관

경기도 여주(驪州)를 근거지로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은 여주를 본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3파의 본관을 각각 다르게 쓰기도 했는데, 먼저 교위공파는 고려 때는 황려(黃驪)로, 조선 때는 여흥(驪興) 또는 여주로 사용하였으며 간혹 본관을 영의(永義)로 사용하는 지파도 있었다. 문순공파는 본관을 여주로 쓰는데 이규보의 후손 가운데 하음(河陰: 지금의 강화)을 본관으로 사용한 지파가 있었다. 경주파는 예전부터 여주로 사용하고 족보도 여주로 쓰는데 여강(驪江)이라고 쓰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는 여주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3. 분적

여주이씨에서 분적한 성씨로는 강화 이씨와 고령 이씨가 있는데 모두 문순공파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강화 이씨는 문순공파 이규보의 맏아들인 판도판서 이함이 분적조이며, 고령 이씨는 이규보의 둘째 아들인 사간을 지낸 이징이 분적조이다.

4. 분파

3개의 상대종파(上大宗派)와 8개의 대종파(大宗派)[4], 16개의 중종파(中宗派)가 있다. 소종파의 경우 자신의 파명 대신 중종파의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약간의 이견이 있어 집안마다 다르게 센다.

4.1. 교위공파(校尉公派)

4.1.1. 서예공파(書藝公派)

5세 이수산(秀山)을 파조로 한다. 현재 북한 지역에 거주한다.

4.1.2. 상서공파(尙書公派)

5세 이수해(秀海)를 파조로 한다. 증손자(8세) 대에서 삼형제에 의해 셋으로 나뉘는데, 첫째 이진(珎)의 증손자 이계손은 감찰공파의 파조이고, 둘째 이지(止)는 진주파를 이루었으나 단절되었으며, 셋째 이고(皐)는 학사공파의 파조이다.

4.1.3. 정당공파

5세 정당문학 이수룡(秀龍)을 파조로 한다. 6세는 이벽(璧)으로 숭정대부 홍문관대제학이었고, 7세 이윤침(允琛)은 검교중문사인이었으며, 8세 이천백(天白)은 충주목사였다.

4.2. 문순공파(文順公派)

4.3. 경주파(慶州派)

흔히 이언적 가계인 양동마을 중심의 양동파와 비 이언적 가계로 나뉜다. 16지파로 분류된다.

4.3.1. 역사

경주파는 타 여주 이씨와 달리 고려 멸망 후 그 후손들이 경상도 일대로 피신하여 터를 잡았다. 이세정의 5세손인 이윤방(李允芳)은 두 아들 이지언과 이춘언을 두었다.

이지언의 첫째 아들 이성호(李成浩)는 현감을 했는데 이성호의 딸은 경상도 청송으로 이주했던 안동 권씨 급사공파 후손 권명리(權明利)의 아들과 혼인했다. 한편, 권명리의 딸은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훗날 계성군(鷄城君)에 봉해진 청송 출신 월성손씨(月城孫氏) 손사성(孫士晟)과 혼인하여 차남 손소를 비롯하여 자식을 몇 명 낳았다.

둘째 아들 이광호(李光浩)는 안강현감을 하면서 이미 양동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이광호의 둘째 아들로 용양위부호군 좌령사직을 했던 이상도(李尙道)의 딸에게 지금은 절손된 포항 출신 풍덕 류씨인 류복하(柳復河)가 장가를 들어 양동마을에 사위로서 이사왔다. 류복하는 외동딸을 손사성의 차남 손소(孫昭, 1433~1484)에게 출가시켜 사위로 삼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재산을 사위에게 물려주었다. 손소는 처가의 상속자로서 양동마을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5남 3녀를 두었다.

한편, 이광호와 이성호 형제는 이권(李權)이라는 사촌이 있었는데, 이권의 아들 이숭례(李崇禮)가 포항 연일읍에 눌러 앉았다.[8] 이숭례의 아들 이수회(李壽會, 1431~1518)는 훈련원 참군을 지냈는데, 이제현의 후손인 생원 이점(李點)의 딸 경주 이씨(1433~1487)와 혼인하면서 경주 내동면으로 이주하였다. 이수회의 두 아들 중 장남인 이번(李蕃, 1463~1500)은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에서 수학했는데, 그 전에 바로 경주 손씨 손소의 고명딸과 혼인하여 사위가 되면서 양동마을에 재입향하여 세거(世居)하기 시작하였다. 이번은 2남 1녀를 두었는데 그중 첫째 아들이 바로 이언적이다.

흥미롭게도 가계도상 이들은 서로 먼 친척이었다. 이윤방의 장남의 차남의 장남의 딸의 딸과, 이윤방의 차남의 삼남의 독자의 차남의 장남이 결혼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이러한 관계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번 부부는 서로 11촌 관계였다. 대략 다음과 같다.
이윤방ㅡ이지언ㅡ이광호ㅡ이상도ㅡ딸(류복하)ㅡ딸(손소)ㅡ딸
이윤방ㅡ이춘언ㅡ이권(李權)ㅡ이숭례(李崇禮)ㅡ이수회(李壽會)ㅡ이번

경주파 11세 이언적조선시대 최초의 철학적 사유인 태극논쟁을 벌인 성리학의 태두로, 이선기후설(理先氣後設)과 이기불상잡설(理氣不相雜說)을 강조하는 사상을 확립했으며, 이는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근간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의정부 종1품 좌찬성, 이조판서, 예조판서, 대사헌, 대사성, 한성부 판윤, 경상도 관찰사 등 고위직을 역임하며 사후 영의정으로 증직된 정치가이기도 했다. 학문적 업적으로 그는 동방5현이자 동국18현으로서 문묘에, 정치적 업적으로 명종의 배향공신이 되어 종묘에도 모셔졌다. 문묘와 종묘에 모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이언적 외에 이황, 이이, 송시열, 박세채 넷뿐이다.

바로 이 이언적이 배출됨으로써 그 후손들은 그를 중시조로 삼고, 자신의 능력 외에도 그의 이름 덕분에 명문대가(名門大家)로서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동시에 그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남을 기반으로 둔 남인계열인 까닭에, 인조반정 이후 서인 노론계열에 정권을 내줌으로써 당상관에 오른 이가 매우 드물게 되는 아픔을 겪었다. 채제공의 뒤를 이어 남인의 수장이 된 이가환이 신유박해로 사망하면서 치명타를 입었다.

5. 실존 인물

시대 순으로 기재.

5.1. 고려

5.2. 조선

5.3. 현대

6. 항렬

6.1. 교위공파

천간법과 오행상생법을 돌아가며 사용하고 있다.

파일:항렬표.jpg

6.2. 문순공파

27세까지는 오행상생법을 쓰다가 28세부터 천간법을 사용한다.
23 24 25 26 27
항렬자 기(基)○ ○현(鉉) 영(永)○ ○식(植)
○환(桓)
희(熙)○
연(然)○
28 29 30 31 32
항렬자 ○만(萬)
○갑(甲)
구(九)○
봉(鳳)○
○병(柄)
○우(雨)
영(寧)○
연(衍)○
성(成)○
무(茂)○
33 34 35 36 37
항렬자 기(起)○
용(龍)○
○용(庸)
○강(康)
장(章)○
재(宰)○
○성(聖)
○정(廷)
규(揆)○
발(發)○

6.3. 경주파

지파별로 항렬자가 다른데, 22세부터는 통일된 항렬자를 사용하고 26세부터 정식으로 오행을 돌아가며 쓴다.참조

7. 기타



[1] 생몰 연대는 미상이나 증손자의 호적으로부터 추정컨대 대략 예종 시기로 여겨진다.[2] 이규보의 증조부. 이은백 → 이화 → 이윤수 → 이규보 순으로 이어진다.[3] 이렇게 동성동본이면서 선대 기록이 부족해 족보를 따로 쓰는 가문들이 풍양 조씨, 연일정씨, 영천 이씨, 전주 최씨 등 꽤 있다.[4] 대종파는 강조표시를 한다.[5] 이상홍은 이상의, 이상관, 이상신의 형이다.[6] 이학은 아래의 사직공파 파조인 이란과 천안공파의 파조인 이응의 형이다. 형제의 이름에 모두 새 조(鳥)가 들어간다.[7] 실제로 청양군 비봉면, 그중[8] 이숭례의 묘는 포항시 남구 연일읍 우복리에 있다고 한다.[9] 경주파도 이와 같은지는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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