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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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한자 표기가 다르더라도 한글 표기가 같으면 합산됨 | }}}}}}}}} |
{{{#!wiki style="margin: -1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ece5b6> | 永川 李氏 영천 이씨 | }}} | |
관향 | <colbgcolor=#fff,#191919>경상북도 영천시 | |||
시조 | 이문한(李文漢) | |||
중시조 | 이극인(李克仁) | |||
집성촌 | 경상북도 영천시 경상북도 경산시 경상북도 포항시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경상북도 의성군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 |||
인구 | 116,970명(2000년) | 국내 84위 |
1. 개요
영천이씨(永川李氏)는 경상북도 영천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2015년도 인구주택총조사 당시 약 12만 명으로 전체 이씨 중 본관 인구로 10위였다.종중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님에도 역사적으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고, 그만큼 사료와 유적을 많이 남긴 성씨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등이 다수의 관련 역사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아울러 경북 의성군의 "대감마을"로 불리는 산운마을이 영천이씨의 유적이자 집성촌으로 남아있는 등 곳곳에 유적도 산재해 있다.
2. 시조
시조는 고려의 평장사 이문한(李文漢)이며, 그의 후손 중 고려무신정권 시 대장군 이극인(李克仁)이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別抄軍)이 운문(雲門)의 반란군 및 부인사(符仁寺)·동화사(桐華寺)의 승도들과 함께 영주(永州)[1]를 침탈하였을 때 관직에 있지 않으면서 이를 물리쳤는데, 이 공로로 관직에 나아갔다. 그 뒤 장군에 올랐으며, 1217년(고종 4)에는 전군 병마사(前軍兵馬使) 김취려(金就礪)의 지휘 하에 정주(定州)에 주둔하여 거란 유종(契丹遺種)의 침입을 방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대장군에 책봉되어 무인정권 시대에 최고 권력에 올랐다. 그러나 1224년에 대장군으로서 상장군 최유공(崔愈恭), 장군 김계봉(金季鳳) 등과 더불어 당시의 집권자인 최우(崔瑀)에 항거하다 생을 마감했다.3. 조선시대
조선 시대 때 문과 급제자 39명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신·학자를 배출했다.역사상 대표적 인물로는 태종시대에 예조판서ㆍ호조판서를 역임한 이응(李膺)#, 세종시대 대마도 정벌에 나섰던 경상도도절제사 이순몽(李順蒙)#, 세조대에 대사헌ㆍ예조판서ㆍ우찬성을 역임한 이승손(李承孫) 등이 있다. 아울러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직제학과 대사간을 역임한 이종검(李宗儉),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집현전 박사를 지냈으며,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이보흠(李甫欽),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하고 부제학·호조 참판ㆍ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했던 이현보(李賢輔) 등도 조선시대를 풍미한 인물로 남아있다.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조선 명종 때 군위군 내량에서 의성군 금성면 산운 마을로 입향하였다. 영천 이씨 문중은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는데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지낸 이민성(李民宬)#, 형조 참판을 역임한 이민환(李民寏)#, 형조 판서를 역임한 이희발(李羲發)#, 독립운동가인 이태직(李泰稙) 등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입향 이후의 인물을 향지(鄕誌)인 『영양지(永陽誌)』를 중심으로 하여 살펴보면, 시조인 이문한(李文漢)을 비롯하여 익양군(益陽君) 이극인(李克仁), 상장군(上將軍) 이수춘(李守椿), 영양군(永陽君) 이대영(李大榮), 전공판서(典工判書) 이득분(李得芬), 선공서승(繕工署丞) 이약(李約), 영양군(永陽君) 이호(李瑚), 보승장군(保勝將軍) 이문경(李文卿), 문하시랑(門下侍郞) 이송계(李松桂),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송현(李松賢), 중랑장(中郞將) 이윤무(李允茂), 추봉(追封)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 소감(少監) 이백고(李伯古),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석지(李釋之), 밀직부사(密直副使) 이자용(李子庸), 판서(判書) 이후룡(李厚龍), 병조참의(兵曹參議) 이선(李宣), 경상도도찰사(慶尙道都察使) 이은(李殷), 공조판서(工曹判書) 이응(李膺),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이순몽(李順蒙), 문과(文科)로 전랑(銓郞)을 지낸 이안유(李安柔), 문과(文科)로 현감(縣監)을 지낸 이종양(李宗讓), 문과(文科)로 우찬성(右贊成)에 이른 이종손(李終孫), 충장(忠莊)의 시호를 받은 이보흠(李甫欽), 문과(文科)로 대사간(大司諫)에 이른 이종검(李宗儉), 문과(文科)로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인 이추(李樞), 부장(部將) 이부(李桴),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수천(李壽千), 문과(文科)로 참의(參議)인 이사옥(李思沃),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이은해(李銀海), 임란의 공훈으로 증(贈)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인 이영근(李榮根), 달성판관(達城判官) 이안방(李安邦), 상호군(上護軍) 이진손(李振孫),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 이응삼(李應參), 무과(武科)로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이온(李馧), 도사(都事) 이상옥(李相玉), 증(贈) 공조참의(工曹參議) 이희절(李希節),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시삼(李時參), 증(贈) 공조참의(工曹參議) 이용운(李龍雲), 증(贈) 공조참의(工曹參議) 이덕구(李德龜), 수직(壽職)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명신(李命新),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성화(李聖化),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이봉담(李鳳潭),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이효징(李孝徵),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이덕륭(李德隆),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이달양(李達陽),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우천(李羽天), 참봉(參奉) 이영엽(李榮葉),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인주(李寅柱), 참봉(參奉) 이근채(李根埰), 찰방(察訪) 이현생(李現生),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이석채(李錫埰), 종사랑(從仕郞) 이시협(李時莢), 참봉(參奉) 이성수(李聖洙), 호군(護軍) 이덕망(李德望), 참봉(參奉) 이한연(李漢淵), 감찰(監察) 이태호(李泰浩), 부사과(副司果) 이봉조(李鳳朝), 주사(主事) 이태규(李泰圭), 참봉(參奉) 이인호(李寅浩),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우정(李佑禎),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인혼(李寅渾), 참봉(參奉) 이성록(李成祿), 참봉(參奉) 이희계(李羲啓)가 있으며, 울산군파(鬱山君派)는 따로 표기 되어 있으니, 울산군(鬱山君) 이중영(李仲榮), 문과(文科)로 우부승지(右副承旨)인 이승길(李承吉), 한림(翰林) 이수명(李受明), 영동정(令同正) 이손(李遜), 문과(文科)로 습독(習讀)인 이웅(李雄), 문과(文科)로 이조정랑(吏曹正郞)인 이호(李豪), 장사랑(將仕郞) 이염(李濂), 무과(武科)에 급제한 이경천(李敬天), 판관(判官) 이효남(李孝男), 부호군(副護軍) 이종신(李宗信), 직장(直長) 이운(李雲) 등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아울러 영천이씨는 외손으로 조선조의 다섯 왕후를 배출하였는데 선조의 원비 의인왕후(懿仁王后),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 영조의 비 정성왕후(貞聖王后)이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시대 내내 영천이씨 가문이 왕가의 외척(外戚), 혹은 사돈가로서 그 명망을 인정 받고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왕실의 혼사는 가례도감(嘉禮都監)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간택제도 중에 가문에 대한 조정 차원의 검증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판도의 외손은 홍심(洪深)으로 홍심의 아들은 긍흥(矜興)이며 긍흥의 아들은 사부와 사위였다. 사부의 딸은 박소에게 시집갔는데 박소의 아들 심성부원군 응순은 의인왕후(선조의 원비)를 낳았다. 사위의 딸은 강섭에게 시집갔는데 강섭의 외손 연흥부원군 김제남은 인목왕후(선조의 계비)를 딸로 두었다. 긍흥의 손녀는 김반에게 시집갔는데 반의 현손은 신풍부원군 장유에게 시집가서 인선왕후(효종의 비)를 탄생했으며 인선왕후는 현종의 대비가 된다. 소윤의 외현손는 이우인데 우의 증손녀는 정경세에게 시집갔으며 경세의 외손녀는 여흥부원군 민유중에게 시집가서 인현왕후(숙종의 계비)를 낳는다. 석지의 외5대손은 김정국인데 정국의 5대손녀는 이사창에게 시집갔으며 사창의 딸은 달성부원군 서종제에게 시집가서 정성왕후(영조의 비)로 대가 이어졌다.
4. 현황 및 유적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전국에 약 12만 명의 인구로 조사되었다. 인구로 전체 성씨 333개 중 84위로 흔한 성씨가 아님[2]에도 현대사에 유력 인사를 다수 배출했다.현대사 인물로는 민주당 총재를 역임하고 한나라당의 합당ㆍ창당의 주역이었던 7선 국회의원 이기택을 필두로 경제기획원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에 올랐던 이경식, 태광그룹 2대 회장을 역임한 이기화 등 정관계, 재계에서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이 있었다. 국회부의장에 올랐던 4선 국회의원 이병석과 코레일 사장을 한 3선 국회의원 이철,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이에리사, 제15대 국가보훈처장과 제31대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이병태 역시 영천 이씨이다.
문화계에도 설운도와 서강준 등 다수가 활동하고 있다.
유적으로 의성군 금성면 산운 마을은 영천 이씨 집성촌으로 40여 채의 전통 고가옥이 유존되어 있는데 그 중 학록 정사(鶴麓 精舍)[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242호]는 이광준의 장서를 보관했던 곳이며, 수락당(壽樂堂)은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를 지낸 이정기(李廷機)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건물로 가치가 높다. 그 외에도 의성 운곡당(義城 雲谷堂)[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4호], 의성 점우당(義城 漸于堂)[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375호], 의성 소우당(義城 素于堂)[중요 민속 문화재 제237호] 등이 존재한다.
경상북도 영천시 오미동에 시조인 이문한, 이극인, 이대영을 제향하는 석현재사(石峴齋舍)와 시조공 단소(壇所) 및 이지형·이석봉의 묘재인 자계정(紫溪亭)이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에는 이석지(李釋之), 이안유(李安柔), 이영근(李永根)을 제향하는 구인사(求仁祠)와 이영근(李榮根)의 쌍전당(雙全堂) 그리고 열녀 학생 이수징(李洙徵)의 처 박씨지려가 있다. 영천시 임고면에는 양항리에 이수춘의 고려평장사영천이공유허비(高麗平章事永川李公遺墟碑)와 이감(李敢)의 문한당(文閒堂), 효자각, 이부(李桴)와 그의 아들인 이안국(李安國)·이안방(李安邦), 이안우(李安雨) 등 4부자의 묘재인 도일재(道日齋)가 있으며, 덕연리에는 이보흠의 대전정사(大田精舍)가 있고, 매호리에 이중영의 모원당(慕遠堂) 운천서사(雲川書社) 유허비, 이감의 심곡재(心谷齋)가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에는 성곡리에 이시삼(李時參)의 용천재(龍川齋)가 있고, 이찬의 묘재인 자천재(紫泉齋)가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당리에 이혐의 혐산정(馦山亭)이 남아 있다.
5. 파
영천 이씨는 10개 파로 나누어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분파를 살펴보면 서승공파(署丞公派)는 영천 이씨 장파(長派)로 파조(派祖)는 고려 때 선관서승(膳官署丞) 이약(李約), 판서공파(判書公派)의 파조(派祖)는 공조판서(工曹判書) 이백(李伯),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의 파조(派祖)는 고려 때 상장군 이수춘(李守椿), 남곡공파(南谷公派)의 파조(派祖)는 용인(龍仁)의 남곡(南谷)으로 물러난 충정공(忠貞公) 이석지(李釋之), 영동정공파(領同正公派)의 파조(派祖)는 고려 때 영동정(領同正) 이박이다. 소윤공파(少尹公派)의 파조(派祖)는 고려 때 군기시소윤(軍器寺小尹) 이헌(李軒), 울산군파(鬱山君派)의 파조(派祖)는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이 봉승랑(奉承郞) 겸 권농방어사(勸農防禦使)에 이르고 자금어대(紫金魚帶)를 하사받고 고려로 돌아와 지울주사(知蔚州事)가 되어 울산군(鬱山君)에 봉군된 이중영(李仲榮), 감사공파(監司公派)의 파조(派祖)는 고려 때 경상감사 이은(李殷), 소감공파(少監公派)의 파조(派祖)는 고려 때 소감(少監) 이백고(李伯古), 생원공파(生員公派)의 파조(派祖)는 생원(生員) 이안방(李安邦)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현대에는 일반적으로 크게 4개의 파로 보는데 장파(長派)인 서승공파(포은 정몽주의 외조부), 이극인을 중시조로 하는 대장군파, 이수춘을 중시조로 하는 상장군파, 이세화를 중시조로 하는 상서공파로 분류한다.
서승공파(署丞公派)는 경상북도 경주와 대구광역시 일대에 집성촌이 있으며, 판서공파(判書公派)는 함경남도 신흥군 영고면과 강원도 평창에 집성촌이 있다.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돌목,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과 장기면 일대에 집성촌이 있으며, 남곡공파(南谷公派)의 자손은 10파 문중에서 가장 많으며 전국의 40여 곳에 집성촌이 있다. 영동정공파(領同正公派)는 경상북도 의성과 대구광역시 군위 지역 일대에 집성촌이 있으며, 소윤공파(少尹公派)는 경북 안동과 영남 일대에 집성촌이 있다. 울산군파(鬱山君派)는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 우내,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가질,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면과 강원도 삼척에 집성촌이 있으며, 감사공파(監司公派)는 경상북도 경주와 울산광역시에 많이 살고 있으나 수효는 적은 편이다. 소감공파(少監公派)는 경상북도 영천을 비롯하여 영남 일대에 집성촌이 있으며, 생원공파(生員公派)는 경산 하양에 집성촌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5.1. 서승공파
장파인 서승공파 가첩에 시조 문한 공의 6대손으로 추봉 금오위대장군 '영'의 후손으로 장파인 광순, 광청, 봉, 극인, 수춘, 세화 6 아들이 있고, 그 중 광순의 자인 경태, 엄태 두 아들 중 엄태의 자로 박(磚)과 그 아들인 정고(貞固)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희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이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신빙성 있는 자료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정시대에 장파인 서승공파의 후손 중 희수(憙洙)공이 영동정공파의 집성촌인 경북 의성군 산원마을을 찾아 서로의 만남을 기뻐하는 문장을 남긴,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서명을 한 문서가 서승공파에 전해져 내려온다.조선에서 문과 급제자 39명과 많은 명신·학자를 배출했으며, 역사상 대표적 인물로는 현보(賢輔)·종검(宗儉)·보흠(甫欽) 등이 있다.
현보는 연산군 때 문과에 급제, 부제학·호조참판·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지중추부사에 올라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종검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 한림·직제학·대사간을 역임하고 역시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보흠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 집현전박사를 지내고 단종손위 후에는 순흥부사(順興府使)로 있으면서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장류(杖流), 순절하였다.
이밖에 응(膺)·순몽(順蒙)·승손(承孫) 등이 유명하다.
5.2. 영동정공파
현재 영동정공파로 불리는 파는 한때 (박(磚, 벽돌전, '박'으로 읽는다)을 시조로 하는 또다른 영천이씨라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휘 박의 상계에 대한 정보미상으로 인한 것으로, 2004년 영동정공파 총회에서 족보표기는 그대로 휘 박을 1세로 하되 중앙종회의 명칭은 쓰지 않는 것으로 의결하였다. 또한 2005년에도 한국성씨 총연합회 산하 종중분쟁 조정위원회에서 추가로 쌍방이 시조별립 여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를 한 결과도, '시조는 한 분이며 영동정공파는 영천이씨의 한 분파로 수록하기로 한다'고 '쌍방이 완전히 합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한국성씨총감에는 한 파로 수록하였다.다만 현재도 별도의 "중앙종회" 호칭의 홈페이지를 공개하고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6. 현대사 인물
- 이용득 독립운동가
- 이영환 독립운동가
- 이활 고려대학교 학교법인 전 이사장
- 이호 전 내무부 장관ㆍ법무부 장관
- 이기택 민주당 전 총재ㆍ7선 국회의원
- 이경식 경제기획원 전 부총리
- 이기화 태광그룹 2대 회장
- 이병석 전 국회 부의장ㆍ4선 국회의원
- 이철 민주당 전 사무총장ㆍ3선 국회의원
- 이환주 전 남원 시장
- 이에리사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 이덕모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 이성구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 이규정 전 민주당 재선 국회의원
- 이돈만 전 민주당 국회의원
- 이순진 전 합동참모의장
- 이병태 전 국방부 장관
- 설운도 가수ㆍ본명 이영춘(李英春)
- 서강준 배우ㆍ본명 이승환 (李承桓)
7. 여담
- 2014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영천 이씨 농암 이현보의 가족 이야기’전을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개최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영천이씨 농암종택의 기탁자료를 중심으로 조상의 유업을 이어가고자 사회적 실천인 적선(積善)과 가정의 효도인 애일(愛日)을 실천한 농암(聾巖) 이현보(1467~1555)의 다양한 사료를 전시했다.
- 영천 이씨의 오랜 사료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세보(世譜)와 지상록(誌狀錄), 세계(世系) 등을 소장하고 있다.
- 전남 남원을 관향으로 이능간(李凌幹)을 시조로 한 "영천 이씨(寧川 李氏)"과 혼동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주의를 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