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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12 21:16:23

영국-잔지바르 전쟁


Anglo-Zanzibar War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
1896년 8월 27일 9시 2분~ 9시 40분[1]

1. 개요2. 배경3. 진행4. 전쟁 이후5. 여담

1. 개요

#소개 영상(영어)

1896년 영국(대영제국)과 잔지바르(현 탄자니아의 지역) 사이에서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 교전 시간이 총 38분 밖에 안 된다. 이렇게 짧으면서도 단순히 분쟁이나 전투가 아닌 '전쟁'으로 칭해지는 이유는 분명 이 짧은 시간동안 제대로 선전포고가 이루어졌고, 군대가 투입되고, 교전을 통해 사상자가 나왔으며, 항복으로 마무리까지 이뤄졌기 때문.

2. 배경

잔지바르는 아프리카의 요충지로 1503년부터 포르투갈 영토였다가 이후 오만 술탄령이 되고, 1886년부터 영국과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시작했다. 잔지바르는 짭짤한 노예무역 중개지였고 이곳의 부호들이나 왕가는 노예무역으로 이익을 얻고 있었다. 잔지바르는 페르시아 단어로 이것을 직역하면 흑인 해안이란 말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독일이 노예무역 폐지에 더 강경했고 따라서 잔지바르는 반독 친영 정책을 취했다. 1890년 영국은 독일과의 협정을 통해 잔지바르의 권리를 인정받고, 잔지바르는 영국의 보호령이 된다. 그러나 1893년 왕위를 이어받은 하미드 빈 투와이니(Hamid bin Thwayni) 술탄은 노예무역을 규제하는 영국군에 아주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3. 진행

1896년 8월 25일, 하미드 술탄은 급사하고 칼리드 빈 바르가시가 왕위를 이어받는다. 그러나 영국은 노예무역에 반대하고 영국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던 하무드 빈 무함마드를 술탄으로 삼는 쿠데타를 계획하게 되었는데,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챈 칼리드 술탄은 즉시 전군을 소집하게 된다. 그렇게 전국에서 긁어모은 잔지바르군은 육군 2,800여명[2]전함[3] 'HHS 글래스고' 1척이었지만 어쨌건 술탄은 나름 정예병(?)들을 믿고 자신만만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할리드에게 즉시 병력을 물리고 그냥 집에서 처박혀 살라고 강요했으나 할리드는 이를 거부했다. 25일 오후 3시 할리드는 술탄을 선언했다. 26일 영국 해군 소장 해리 로우손은 할리드에게 27일 아침 9시까지 군대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궁궐에서 떠날 것을 종용하는 최후통첩을 때렸다.

할리드로부터 아무 대답이 없자 영국군은 잔지바르의 왕궁에 포격명령을 내리는데 이때 시간이 오전 9시 정각. 그리고 마침 잔지바르 앞바다에는 영국 군함 5척(순양함 3척, 포함 2척)이 대기하고 있었기에[4] 포격명령을 들은 영국군은 잔지바르를 향해 포격을 개시한다. 이때 시각이 오전 9시 2분.

유일한 전함 HMS 글래스고는 선전포고 개시 직후 바로 영국군의 공격으로 침몰했고 술탄의 궁도 영국군의 포격에 박살났으며 잔지바르 육군 500여명 가량이 전사했다. 이 과정에서 영국군 피해는 부상자 1명[5] 술탄은 황급히 독일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38분에 걸친 포격 끝에 잔지바르는 항복한다. 이때 시각이 9시 40분.
...전쟁 끝!

4. 전쟁 이후

이후 영국은 독일에 술탄을 순순히 내놓으라고 했으나 독일은 이를 거부했고, 술탄은 2달 뒤 독일령 동아프리카의 다르에스살람[6]으로 도망갔으며 1916년까지 살다가, 제1차 세계대전 도중 영국군이 독일 식민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체포된다. 말년에는 몸바사에서 살다가 11년 후인 1927년에 죽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영국 측에선 술탄에게 전쟁 배상금을 물어 내라고 요구했는데, 이게 딱 38분간 쏜 포탄 값. 왜냐하면 이 전쟁 동안 영국군이 쓴 전비는 그게 전부라서.(…) 이후 잔지바르는 67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 전쟁에서 보여준 임팩트가 강렬해서인지 이후로 영국에 대항하는 반란은 없었다고 한다.

5. 여담


[1] 전쟁 지속시간은 38분, 40분, 45분 등으로 다양하다. 전쟁 시작을 포격 명령이 내려진 9시 정각으로 보면 40분이고, 실제로 포격이 시작되어 전투가 개시된 9시 2분으로 보면 38분이 된다. 영국 함대에게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진 시각이 9시 45분이기 때문에 이를 전쟁의 종료로 보면 45분이 된다. 보통은 38분으로 많이 간주된다.[2] 대다수가 총만 든 민병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훈련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정규군은 겨우 700명뿐이었다.[3] 이라고 해봤자 애초에 전함도 아니었다. 과거에 영국 프리깃함이었던 걸 사들여 왕실요트로 쓰이던 걸 급히 군함이랍시고 대포 2개만 달고 개조한 게 끝….[4] 애초에 싸우려고 온 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함대 친선 크리켓 경기를 위해 집합해 있었다고 한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기까지는 약 4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기에 전투준비는 완료한 상태였지만. 그렇게 그들은 공을 치러 왔다가 정신승리를 치게 된다.[5] 스러시 호에 승선한 부사관 한 명이 중상을 입었으나, 사망하지는 않았다.[6] 역시 탄자니아의 도시로 실질적 수도이나, 이쪽은 탕가니카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