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수 박향림이 1938년 콜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취입한 노래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만요(漫謠)[1] 작사가는 박영호, 작곡은 김송규[2].가사는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성부나 평양시과 같은 대도시 중류층의 생활상[3]을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이 곡을 각색하거나 그대로 부를 경우, 원곡을 부른 박향림의 독특한 창법과 레코드 특유의 음을 재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 곡을 불러본 경험이 있는 가수의 말에 의하면, 음의 오르내림과 콧소리를 모두 살리기가 쉽지 않다고. 콧소리에 치중하면 음이 평탄해지고 음의 기교를 살리면 콧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브라스 밴드의 사운드가 생각보다 수준급이다.
박향림은 후에 백년설, 남인수와 함께 대표적인 전시 친일가요인 《혈서지원》을 부른 적이 있었다. 다만 이것이 자발적인 것인지 강압에 의한 것인지 여러 시각으로 갈라지고 있다. 박향림은 광복 이듬해인 25세 나이에 요절했다.[4]
70년 보호 저작권법 개정 이전에 작곡가 사후 50년이 지났기에 현재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작품으로 등록되어 있다.
태진노래방과 금영노래방에 등록되어있다. 금영은 68131번, 태진은 13168번.
2. 가사
오빠는 풍각쟁이[5]야, 머.(뭐)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이.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시려[6] 난 시려 내 편지 남몰래 보는 것 난 시려. 명치좌[7] 구경 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 때면 엄벙뗑[8]허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9]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머, 오빠는 모주꾼이야[10], 머. 난 몰라 난 몰라이 밤늦게 술 취해 오는 건 난 몰라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주쟁이[11] 오빠는 대포쟁이야.[12] |
2.1. 해석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빠는 떡볶이나 불고기처럼 맛있는 거는 다 뺏어먹고 자신에겐 콩나물과 오이지만 줬으며, 여동생한테 온 편지 몰래 훔쳐 읽고, 공연 구경하러 혼자 가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는 오빠를 딴따라(풍각쟁이) 같은 심술쟁이에 트집쟁이라고 놀리고 욕하는 내용의 노래다.가사에서 언급되는 불고기는 일제강점기에 먹었던 국물이 있는 서울식 불고기이며, 떡볶이는 간장으로 양념한 떡볶이(현대에서는 궁중 떡볶이라고 부르는 요리)이다.
이 노래가 1930년대에 나온 노래임을 생각해 볼 때, 당시로선 가사가 정말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고[13], 가사 중에는 오빠가 월급이 안 오른다며 성질을 낸다는 등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걸 볼 수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오빠들의 욕심쟁이 같은 행동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1930년대는 '모단걸', '모단보이'같은 단어가 이 시기의 유행어이기도 했다. 현재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부(서울) 사람들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 코코 샤넬풍의 모자나 액세서리가 유행하여, 그렇게 입고 다니던 여자나 정장 차림의 모던한 남자들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명치좌 구경 갈 땐 혼자만 간다."고 서운해 하는 이유는 당시에는 여성(특히 젊거나 어린 여성)이 혼자 놀러 다니거나 돌아다니기란 현대보다 훨씬 힘들었고, 특히 공연장, 극장 등의 오락시설에 출입하다가 들키면 불량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일부 엄격한 여학교에서는 학생의 극장 출입이 적발되면 아예 정학이나 퇴학 처분을 내리기도 했고, 어린 소녀가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본 동네 어른들이 "그 여자애가 바람났다"라고 소문을 퍼트리는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 이런 풍조는 심지어 1970년대 초반까지도 (특히 농어촌에서) 유지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그나마 혼나거나 손가락질을 안 당하고 하고 싶은 구경을 하는 방법은 보호자를 동반하는 것인데, 동네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만큼 보수적일 것이 뻔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봤자 혼쭐만 날 게 뻔하니 그나마 비슷한 세대인 오빠밖에 같이 가줄 사람이 없는 것. 즉, 괜히 혼자 공연장 갔다고 트집 잡는 게 아니라 여동생도 명치좌 한 번 가보고 싶어 데려가 달라고 졸랐는데 무시하고 혼자만 갔다는 이야기다. 여러모로 당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모습(특히 도시권)들을 엿볼 수 있는 노래이다.
그러나 위 서술은 당시의 치안상태 등을 간과하는 등 지나치게 편향된 면이 있다. 문화권, 집단, 국가를 막론하고, 현대 이전에 거주지와 아는 이웃들이 있는 곳을 떠나 멀리 가는 건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심지어 장거리/장기간이라면 건장한 남자라도 최소 둘 이상 같이 가는 게 권장되었다. 여자는 마을 밖으로 혼자 나가면 위험했고 남자라 해도 어리거나 왜소하거나 약하면 별 다를 게 없었으며, 말 그대로 보름달이라도 뜨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칠흑같이 어두워지던 그 시대의 밤에는 더욱 심했다. 야간통행금지가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가로등 이전에 방범등, 보안등이라는 말이 있었고, 범죄 예방을 위한 보안등 설치가 동네나 지역의 숙원사업이었던 시절도 있었으며, 이 보안등을 크고 켜는 게 직업이던 때도 있었다.[14][15]
치안이 좋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도, 2000년대 초반까지도 앵벌이나 인신매매가 심각했는데, 극장을 비롯해 주변에 각종 공연장, 술집, 요정 등이 모인 게 보통이던, 일제강점기 당시 유흥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현대에도 이런 지역은 상대적으로 치안이 불안한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시대에 보호자 없이, 여학생이나 어린, 혹은 젊은 여자가 혼자 그런 곳을 드나든다는 것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붕괴시킬 수 있다.[16] 게다가 당시 극장으로 대표되던 연예사업은 원래 유흥업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런 사업은 지금도 범죄집단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인데 당시라면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런 집단들에게 빌붙거나 잘 보이려는 양아치, 껄렁패들이 그때는 그 주변에 거의 늘 ~
3. 기타
1990년대 중반 방송된 SBS 전 예능 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에서 흘러간 옛 가요를 소개하는 코너였던 '불멸의 우리 가요' 첫 회에서 소개되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독특한 보이스에 노래 가사와 잘 맞는 코믹한 뮤직비디오가 화제를 일으켰고, 덕분에 재조명받은 이 곡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 역할을 재연한 건 유채영.1999년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국희》에서는 어린 신영이 레코드 사장 앞에서 부르는 노래로 삽입되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맛깔나게 불러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2004년에는 웅진식품에서 만든 어린이 음료인 초롱이 광고에서 가사가 개사되어 등장하기도 했다. # 2000년대 중반쯤 이 곡을 들어본 듯하다 싶으면 해당 CM송일 가능성이 높다.
시트콤 멋진 친구들에서 여동생 역을 맡은 강래연이 이 노래를 불러 오빠의 속을 긁었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 삽입되기도 했다. 영화 앞부분에서 과거로 시점이 넘어가며 나오는데 당시 어린 세대, 젊은 세대 중에서는 이를 통해 이 노래를 처음 접한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BGA
리듬 게임 펌프 잇 업 NX에 수록된 적 있다. NX2까지 수록되고 NXA부터 삭제.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원곡을 그대로 쓰긴 곤란해서 yahpp에 의해 리믹스 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선곡 화면과 아이캐치에는 가수가 박향림 vs Yahpp으로 나와 있다.
이로써 역대 펌프 시리즈에서 가장 오래 된 가요 수록곡이 되었다.(...)[18][19]
2009년 1 대 100 5단계에서 거꾸로 문제로 나왔을 때 해당 노래의 빈칸인 떡볶이를 맞히는 문제에서[20] 1인을 포함한 25명 가운데서 송준근을 포함하여 최후의 3인이 결정되었다. 아마 1930년대 노래 가사에 떡볶이는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데다 떡볶이라는 음식은 아무래도 애들이나 많이 먹는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해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떡볶이는 절대로 애들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남녀노소 다 즐길 수 있는 흔한 음식인데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엄연히 존재해서 자주 즐겼던 요리이며 당장 그 이전에도 조선 시대에 궁중떡볶이가 있었다.
전주와 간주 부분에서 나오는 멜로디는 러시아의 작곡가 이폴리토프-이바노프의 "코카서스 풍경" 모음곡 중 4악장 "사다르의 퍼레이드"의 멜로디이다. 꽤나 자주 연주되던 곡이다 보니 발췌해서 붙인 듯하다.
2011년부터 제작된 시사풍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오프닝 곡으로도 쓰였었다. 이쪽은 클럽 리믹스 버전.
가수 써니힐의 곡으로 유명한 《나쁜 남자》에서 이 가사를 패러디한 부분이 나온다. 이명박을 풍자했다는 의혹을 받는 곡이기도 하다.
드라마 《각시탈》의 주인공 이강토가 엔젤클럽에서 즐겨 부르는 곡이기도 하다.[21]
2013년 《런닝맨》 환생 특집에서는 《강남스타일》에 대응했다.
2014년에는 미스터피자 홍두깨번 광고에도 나왔다.
2018년 1월에는 전자랜드 광고에도 나왔다.
2021년 11월에는 쿠바의 콩쿠르에서 합창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2023년 체리보이가 랩버전으로 리메이크를 했다. 사실 리메이크 라기보단 오빠는 풍각쟁이를 바탕으로 한 창작곡에 가깝다.
2024년 《크라임씬 리턴즈》 7화에 잠깐 나왔다.[22]
이 짤을 통해서 해당 노래를 접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
[1] 해학과 풍자를 담은 우스운 노래. 193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함.[2] 김해송 의 필명.[3] 특히 곡의 후반부에 나오는 회사원에 대한 내용이 이를 가장 잘 반영한다.[4] 출산한 직후에 강원도 홍천군에서 열린 공연에 참가했다가, 산후병이 발병했다고 한다. 그 후에 1946년 7월에 동양극장에서 박영호가 추도사를 읽은 박향림 추도 공연이 열렸다.[5] 시장이나 집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돈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 한마디로 딴따라.[6] "싫어"의 경기 방언.[7] 지금의 명동 예술극장이다. 일본에도 한자가 같은 극장인 메이지좌(明治座)가 있었는데 도쿄 대공습으로 불탔다.[8] 가사에 엄벙"땡"으로 잘못 적힌 경우가 많다. 엄벙"땡"은 사전에도 없으니 단어 뜻에 대한 막측이 난무하여 방송 등에도 잘못된 뜻으로 소개되곤 한다. 엄벙뗑의 뜻은 "얼렁뚱땅 넘기다"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엔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엄벙뗑: 어떤 상황을 얼김에 슬쩍 넘기는 모양. 또는 남을 엉너리로 슬쩍 속여 넘기게 되는 모양. *유의어: 얼렁뚱땅.) (엉너리: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어벌쩡하게 서두르는 짓.)[9] 걸핏하면 안달하는 사람. 혹은 소견이 좁고 인색한 사람.[10] 주정뱅이의 다른 말.[11] ~쟁이가 들어가면 고주망태처럼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사람을 말한다. 한 마디로 주정뱅이를 넘어서는 주폭[12]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를 빗댄 사람. 대포차의 대포와 의미가 같다. 하지만 앞의 가사 문맥상 술을 뜻하는 대포일 가능성도 높다.[13] 가부장제에서 장남의 위치는 아버지 다음, 즉 어머니보다 위였다. 그 당시 정서로 따지자면 부모를 욕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정도.[14]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통성명을 할 때면, 고향, 집안, 부모님이 누구인지 등을 교환했는데, 이는 범죄 예방책으로서의 역할도 있었던 옛 시대의 흔적일 수도 있다. 《트로이(영화)》를 보면,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라거나, 어느 가문 출신이라거나 등을 밝히는 것이 관례처럼 나온다. 유럽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고대 그리스만 해도, 길 가다 만나 친해진 사람이 한적한 곳으로 접어드는 순간 갑자기 강도살인범으로 변해도 이상할 게 없었고, 무역선이랍시고 항해하던 배가 섬마을이나 해안마을을 발견하면 해적선으로 변해 약탈을 하는 것을, 당시 사람들은 그리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였다.[15] 19세기 유럽에서 외출 시 정장의 일부로서 지팡이가 신사의 필수품이었던 이유에도 위 서술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16] 현대에도 범죄 피해자 가족들이 극심한 후유증을 겪는 건 흔하다.[17] 현대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도, 여자의 경우, 미성년이면 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갓 성인이 되었거나 하면 더욱 그런데, 클럽이나 술집 등에 가는 경우 건강한 성인 남자가 같이 가거나, 최소한 성인 여자나 친구들이라도 동반해서 가는 것이 권장되곤 한다. 최소한 어리거나 젊은 여자가 그런 곳에 혼자 간다거나 가고 싶다는 것을 ~일부 주변 친구가 아닌,~ 자신의 부모, 가족들에게 당연하게, 혹은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회는 현대에도 별로 없을 것이다.[18] 자체 리믹스 음원,리메이크 곡 포함 기준. 원곡 기준으로는 퍼펙트 콜렉션 때 수록되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환상속의 그대》가 가장 오래되었다.(서태지와 아이들 1집,1992년)[19] 다만 원곡을 제대로 파고들자면 《서울구경》이 가장 오래 된 가요라 볼 수 있는데 이 곡의 원곡이 바로 1895년경에 가장 많이 팔린 레코드 기록을 가진 《The Laughing Song》이고, 한국어로 번안된 최초의 곡도 1936년에 발표되었다.[20] 다른 보기는 백김치, 호박전[21] 남자가 부르기에는 가사가 좀 꽁기꽁기하다. 아마 각시탈과 일본 제국 경찰이라는 이중생활을 하는 자신을 셀프 디스하는 의도로 부르는 듯.[22] 극중 사이비 종교인 '선선교'의 교리를 설명할 때 이 노래가 나오며 다같이 춤을 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