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워 솔저스 (2002) We Were Soldiers | |
장르 | 전쟁, 역사 |
감독 | 랜달 윌러스 |
각본 | 랜달 윌러스 |
제작 | 스티븐 맥케비티 브루스 대비 랜달 윌러스 |
출연 | 멜 깁슨 매들린 스토 그렉 키니어 샘 엘리엇 크리스 클라인 케리 러셀 배리 페퍼 |
촬영 | 딘 세믈러 |
음악 | 닉 글레니 스미스 |
편집 | 윌리엄 호이 |
배급사 | 파라마운트 픽처스 CJ엔터테인먼트 |
개봉일 | 2002년 1월 1일 2002년 5월 3일 |
상영 시간 | 138분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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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랜들 월리스 연출, 멜 깁슨 주연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2002년 할리우드 전쟁 영화이다.베트남 전쟁 초기의 격전 중 하나인 이아드랑 전투를 소재로 하였으며 할 무어가 퇴역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군 기자 조셉 겔러웨이와 함께 쓴 논픽션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원제 We Were Soldiers Once... And Young)를 바탕으로 한다. 흥행과 별개로 작품성으로 당대 전쟁영화 중 수작으로 평가된다.
랜들 월리스는 브레이브 하트의 각본으로 멜 깁슨과 인연을 맺었으며, 이후 멜 깁슨 연출의 2016년 전쟁 영화 핵소 고지의 각본을 맡았다.
2. 예고편
3. 시놉시스
생사를 넘나드는 72시간의 전투! | 죽어서라도 우리는 함께 돌아갈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베트남의 지형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헬기 공습 시험전을 펼친다. 그리고 이 시험 전투의 책임을 하버드 석사 출신의[1] 전략가 할 무어 중령(멜 깁슨 분)에게 맡긴다. 그러나 임무 수행지인 아이드랑 계곡에 대한 사전 검토에 들어간 그는 이곳이 10여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리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자기 생애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를 출전에 대비해 아내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무어 중령.
1965년 11월14일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제7기갑부대 1 대대장을 맡은 무어 중령은 395명의 전투 경험 전무의 어린 부하들을 이끌고 아이드랑 계곡의 X-RAY 지역에 헬기 고공침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지역을 점령한 월맹군이 모두 정예요원으로 아군보다 5배나 많다는 사실은 선발대가 모두 희생당한 뒤 알게 된다.
1965년 11월 15일 월요일 오전 2시 30분.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이 가능한 험준한 협곡,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부상자들마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하나 둘 그 목숨을 잃어간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깊은 밤, 적진에 버려진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곳에서 모두 동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한편, 전쟁 리포터로 전지에 들어온 조 갤러웨이(배리 페퍼 분)의 카메라에는 젊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들이 담겨지고, 그는 더 이상 카메라가 아닌 총을 들고,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 전장을 뛰어다니게 된다.
1965년 11월 16일 오후 4시 05분.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월맹군은 공포에 빠진 미군들을 포위해 들어가자 본부에선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본대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부하들을 남겨두고 홀로 전장을 등질 수 없는 무어 중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우를 외친다. 곧바로 공군의 어마어마한 지상 폭격이 감행되고, 월맹군의 추격로는 봉쇄되지만, 무어 중령의 소대도 폭격의 화염에 희생된다.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처참한 상황.그러나 전세는 조금씩 미군편에 유리해지기 시작하고.
1965년 11월 17일 오전 1시 00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 작전을 간파하고, 이를 교란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고,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어 중령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들이 살았건, 죽었건 내 뒤에는 아무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네이버 영화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베트남의 지형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헬기 공습 시험전을 펼친다. 그리고 이 시험 전투의 책임을 하버드 석사 출신의[1] 전략가 할 무어 중령(멜 깁슨 분)에게 맡긴다. 그러나 임무 수행지인 아이드랑 계곡에 대한 사전 검토에 들어간 그는 이곳이 10여년 전, 프랑스 군인들이 몰살당했던 지역으로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리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 자기 생애 마지막 전투가 될 지도 모를 출전에 대비해 아내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베트남으로 떠나는 무어 중령.
1965년 11월14일 일요일 오전 10시 48분. 제7기갑부대 1 대대장을 맡은 무어 중령은 395명의 전투 경험 전무의 어린 부하들을 이끌고 아이드랑 계곡의 X-RAY 지역에 헬기 고공침투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지역을 점령한 월맹군이 모두 정예요원으로 아군보다 5배나 많다는 사실은 선발대가 모두 희생당한 뒤 알게 된다.
1965년 11월 15일 월요일 오전 2시 30분. 오직 헬기를 통해서만 외부와 접촉이 가능한 험준한 협곡, 고통 속에 신음하는 부상자들마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하나 둘 그 목숨을 잃어간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깊은 밤, 적진에 버려진 군인들에게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이곳에서 모두 동지들에 대한 걱정으로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을 이룰 수 없다. 한편, 전쟁 리포터로 전지에 들어온 조 갤러웨이(배리 페퍼 분)의 카메라에는 젊은 영혼들이 고통 속에 신음하는 모습들이 담겨지고, 그는 더 이상 카메라가 아닌 총을 들고, 민간인이 아닌 군인으로 전장을 뛰어다니게 된다.
1965년 11월 16일 오후 4시 05분.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월맹군은 공포에 빠진 미군들을 포위해 들어가자 본부에선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본대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부하들을 남겨두고 홀로 전장을 등질 수 없는 무어 중령은 최후의 수단으로 브로큰 애로우를 외친다. 곧바로 공군의 어마어마한 지상 폭격이 감행되고, 월맹군의 추격로는 봉쇄되지만, 무어 중령의 소대도 폭격의 화염에 희생된다. 아군이 아군을 죽이는 처참한 상황.그러나 전세는 조금씩 미군편에 유리해지기 시작하고.
1965년 11월 17일 오전 1시 00분. 무어 중령은 월맹군 작전을 간파하고, 이를 교란 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고, 마지막 작전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처참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어 중령은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들이 살았건, 죽었건 내 뒤에는 아무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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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장인물
- 할 무어 중령(LTC Harold "Hal" Gregory Moore Jr.) 역 - 멜 깁슨
미 육군 사관학교 출신 보병 장교로 공수부대를 거쳐 극중에서는 주월 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장이다. 미 육군사관생도 전시 단기 3년 교육과정을 마치고,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에 졸업 임관하여 전쟁에 참전하지는 못했지만 제11공수사단, 제82공수사단에서 소대장을 지내고, 6.25 전쟁 당시에는 미 육군 제7보병사단 17연대 소총중대장, 중박격포중대장, 대대작전장교, 연대작전장교, 사단작전장교로 참전한 참전용사이자 베테랑 중의 베테랑. 이후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보병전술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후일 걸프 전쟁 당시 중부사령관이 된 노먼 슈워츠코프를 가르쳤다. 영화는 무어가 미 본토 주둔 미 육군 제2보병사단 23연대 2대대장 시절부터 시작된다. 당시 미 육군은 인접부대인 제11공수사단이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중강습 부대로 전환하였는데, 병력 부족으로 2사단과 부대를 통합하고, 이 부대가 후일 공중 기병대의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기대하여 당시 한국에 주둔하던 제1기병사단과 부대 마크를 바꿔달도록 했다. 그래서 주인공의 부대원들이 처음에는 2보병사단 마크를 달다 이내 1기병사단 마크를 달았다.
미 육군은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개시하기에 앞서, 베트남의 지형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헬기 공습 시험전을 펼친다.
그리고 이 시험 전투의 책임을 조지 워싱턴 대학교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출신의 전략가 할 무어에게 맡긴다. 베트남에 파병된 후 첫 실전은 이아드랑 계곡 근처에 포진한 북베트남 정규군(이하 월맹군)을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1대대 병력 356명과 함께 이아드랑 계곡으로 공중투입된 무어는 포로 심문을 통해 최소 3,000명 이상의 월맹군 소굴로 들어왔음을 알게 된다.
할 무어는 적장의 마음을 파악한 듯한 적절한 지휘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 및 공중 지원에 힘입어 후속 병력 포함 총 1천여 명의 병력으로 최대 1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북베트남군의 역포위 전술에 가까스로 맞대응한다. 수차례의 전선 붕괴 위험 속에 사단본부에서는 대대장이 포로로 잡힐 우려가 있으니 안전한 후방으로 이동하여 무전으로 지휘하라는 명령에 "부하를 버릴 수 없고, 전투 중에 쓸데없는 명령 좀 내리지 말라!"고 응답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새벽에 복귀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자 어떤 꼴통 새끼가 빌어먹을 전장 한복판에서 그딴 명령을 계속 내리냐며 통신병에게 따져 물을 정도였다.[원문] 명 지휘관답게 적 지휘관의 최후 공세 작전을 예측하여 자신이 직접 병력을 이끌어 역공을 하였고, 무장 헬기의 화력 지원을 바탕으로 북베트남군 본진을 향하는 길목에 있는 적 전초기지를 점령하여, 적 지휘관에게 거점을 포기하고 후퇴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출정식에 말했듯이 본인이 먼저 내리고 가장 늦게 후퇴하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
- 줄리 무어(Julia Compton Moore) 역 - 매들린 스토
무어 중령의 부인. 전쟁영화 주인공의 부인으로 비중이 적지 않은 편이다. 작중 전쟁 초기라서 군 당국이 아닌 택시 기사가 무어 대대의 전사자들의 통지서를 전달하다가 주소를 물으러 집앞에 정차하자 남편의 전사소식인줄 알고 분노했던 그녀는 결국 남편 부하군인들의 통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남편의 사망을 택시 기사를 통해 무감정하게 전달하는 것은 비정하다 느끼며[3] 본인이 지휘관의 부인으로서 직접 전달한다. 이후 다른 장교, 장병들의 부인과 같이 편지를 전달하는 모임을 만들며 남편이 전사한 부인들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고 고군분투한다. 지휘관의 부인으로서 전사자 가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모습으로 등장해 전쟁의 상실이 미국 본토까지 이어지는 부분을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 무어 중령과 재회하는 것으로 나온다. 90년대 헐리웃의 대표 여배우 중 하나였던 매들린 스토의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다.
- 브루스 스네이크 크랜달 소령(MAJ Bruce "Snake" Perry Crandall) 역 - 그렉 키니어
미 육군 제1기병사단 229강습헬기대대 A중대장으로 UH-1 헬기 조종사이다. OCS 출신 공병장교로 임관 후 항공병과로 전과했다. 여섯대의 헬기로 구성된 육군 항공 비행중대를 항상 솔선수범하여 이끄는 책임감 있는 지휘관이다. 그가 지휘한 중대는 빗발치는 대공 사격에 굴하지 않고 탄약 보급과 부상자 후송, 보충 병력 수송을 위해 누구보다 가장 많은 임무를 수행했고, 야간이 되어 비행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날아오겠다고 한다. 극중 의무 후송 헬기가 착륙 지점의 대공사격이 심하여 상공 진입을 못하자 자신의 중대를 따라오라며 의무 후송 비행중대를 착륙 지점으로 유도하지만 적의 사격이 너무 빗발치는 바람에 아군 헬기가 한 대 추락하고, 의무 후송 헬기가 철수하자 자신의 헬기로 부상병들을 다 태울 때까지 착륙 지점에서 대기하는 등 자살 행위에 가까운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첫째 날 비행작전 종료 후 의무 후송 헬기 중대장이 왜 자신의 부하들을 위험한 착륙 지점에 끌고 갔냐며 거칠게 항의하자 권총을 꺼내며 "나한테 따지고 자시고 할 용기는 있으면서 가서 베트콩들 하고 한판 붙어볼 용기는 없냐?!"며 얼굴에 권총을 겨누고 다시 보이면 죽여버리겠다며 분노를 드러내자 동료들이 제지한다. 그는 이 전투에서 적의 포화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모두 22회 출격하여 총 70명의 부상자를 후송한 공적으로 명예훈장을 수훈했다.
- 바실 프럼리 원사(SGM Basil Leonard Plumley) 역 - 샘 엘리엇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에 참전한 참전용사로 무어 대대의 주임원사이다. 이등병 시절 미 육군 제82공수사단 320글라이더 포병대대원으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공수투입되었고, 마켓 가든 작전에도 공수투입되었다. 이후 미 육군 제2보병사단 23연대 2대대로 전입하여 6.25 전쟁에 참전, 불모고지 전투를 치렀다. 6.25 전쟁 이후로는 계속 23연대 2대대에 근무했다. 월남 파병 직전에는 2보병사단 23보병연대 2대대의 부대 명칭이 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로 바뀐 후에도 계속 주임원사로 근무한다. 외모만 보면 주임원사보다는 4성 장군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훤칠한 키와 길쭉한 팔다리에 근엄한 표정과 무뚝뚝한 말투를 지녔는데, 영화 초반에 주둔지에서 그와 마주친 새비지가 "오늘 날이 좋습니다. 주임원사님."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넬 때마다 비꼬는 말로 답한다.[4] 대대장이 훈련 중 자기 소대원의 건강 이상을 감지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잭 조지건을 칭찬하자, 동의하면서 부대원의 상태는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닥달하는 헨리 헨릭을 보고는 "저 덩치 큰 놈은 훈장에 눈이 먼 거 같군요."라며 일침을 가한다. M1 개런드나 카빈같은 구시대 소총에 너무 손이 익은 탓인지 공중강습 부대에 우선 지급된 M16 소총을 보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총 아녜요? 마치 장난감 공기총 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걸 들고 싸울 바에 권총들고 싸우겠습니다."[5]라고 말하며 M1911 권총을 사용한다. 그리고는 월맹군이 몰려오자 권총으로 한명 한명 사살하는 모습을 보인다. 파병 훈련 중 수우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자 미친 말이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타슝카 위트코에 관한 얘기를 하며 수우의 아이들은 모든 부족 여성들을 어머니, 모든 선대 전사들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는 무어 중령의 말에 대대원들과 소대장들이 보는 앞에서 '소대장님들 중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개자식이 있다면 뒈질 줄 아십시오.'라는 대사로 위관급 장교 이하 대대원들의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삭제 영상에서는 의회 명예훈장을 2개나 받은 역전의 용사인 하사조차도 프럼리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낀다는 장면이 있다. 그 하사 에피소드에서 ROTC 출신으로 갓 임관한 소대장이 훈장을 착용하지 않은 그 하사를 갈구며 훈장 착용을 하고 오라는 말에 나체로 명예훈장 2개와 군번줄만 착용하고 와서 소위에게 경례 받는 장면이 나온다.
- 잭 조지건 소위(2LT John Lance "Jack" Geoghegun) 역 - 크리스 클라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C중대 2소대장으로 무어가 리더십을 인정한 유망한 초임 장교. 생도 생활을 하는 펜실베니아 군사대학 ROTC 출신답게 자신보다 소대원들을 걱정하는 진정한 장교의 면모를 보인다. 훈련 중 흑인 병사 갓볼트가 혼자 뒤쳐진 것을 깨닫자 소대의 행군을 전부 정지시키고 자신이 직접 갓볼트의 발을 확인한다. 물집으로 인한 상처임을 확인하자 양말을 갈아신으라 하고 약을 뿌려준 뒤 소대원들에게 서로의 발 상태를 자신처럼 해주라는 당부로 참된 장교의 모습을 보인다. 그의 손목에는 출정식 몇 주 전에 태어난 딸 카밀의 이름에 새겨진 비즈 팔찌가 있다. 그의 소대는 공중강습 제2파로 총알이 빗발치는 이아드랑 전투 속에 착륙하여 무어의 명령으로 착륙 지점 방어를 위해 착륙 지점 북쪽 능선을 방어한다. 뛰어난 리더십과 지휘능력으로 11월 16일 오후까지 어떻게든 버텨내지만 수적으로 우세한 월맹군의 공세에 결국 후퇴한다. 그러나 후미에 있던 소대원 갓볼트가 적탄에 쓰러지자 되돌아가 그를 업고 오다 월맹군의 집중사격으로 전사한다. 사후 은성무공훈장을 수훈했다.
- 바바라 조지건 역 - 케리 러셀
- 조 갤러웨이(Joseph "Joe" Lee Galloway) 역 - 배리 페퍼
텍사스 출신 미국 UPI 통신사의 종군 기자로 강습 작전의 마지막 제대를 태우고 이륙하는 스네이크 소령에게 탑승을 요청하자, "미친놈이면 타라!"는 말을 듣고 흔쾌히 탑승한다. 이후 무어를 만나 현재 위기상황과 극복 가능 여부를 인터뷰를 한다. 무어에게 자신이 이 전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전쟁 모습을 보여주어 그들을 이해시키고 싶다는 말을 한다. 다음 날 오전부터 시작된 월맹군의 거센 공세에 대대 본부마저 함락 위기에 놓이자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대대 주임원사는 이곳은 위험하니 사진은 다른데서 찍으라며 그를 그나마 안전한 장소로 데려다 주면서 호신용으로 M16A1 소총을 준다.[6] 자신은 기자인데 왜 무기를 주냐고 묻자,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군인이라는 답변을 듣는다.[7]다른 병사들로부터 짐짝 취급을 받는 와중에 지미 나카야마 일병이 카메라에 V자를 지어주고 촬영에 호응하며 서로 친해진다.
이후 사방에 둘러싸인 월맹군의 공격에 사진 찍을 틈도 없이 살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점점 더 전투가 격렬해지고 브로큰 애로우 발령으로 인해 시작된 폭격의 와중에 아군의 오폭으로 무자비한 네이팜탄의 화염에 휘말려 몸의 절반 이상이 불에 타 고통을 호소하는 지미 나카야마 일병을 보고 크게 놀란다. 의무병으로부터 나카야마 일병의 다리를 들어 달라는 말을 듣고 다리를 드는 순간 까맣게 탄 피부가 벗겨지며 뼈가 보이는 모습에 놀라고,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처절한 유언을 듣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이후 폭격의 적의 공격이 잠잠해지자 다시 전장의 참혹한 장면을 사진기에 담기 시작한다. 전투가 끝나자 치누크를 타고 몰려오는 종군 기자들이 그에게 전투가 어땠는지 물어보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그는 할 말을 잃고 그냥 물러간다. 너덜너덜한 행색의 갤러웨이는 이후 무어에게 눈시울을 붉히며 너무 참혹한 현실을 겪고 나니 어떻게 기사를 써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무어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내 부하들이 어떻게 싸웠고 어떻게 죽어갔는지 사실대로 써달라고 말하자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간다.
민간인 기자 신분으로 이 전투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아 후일 동성무공훈장을 수훈한다. 이후 할 무어와 함께 영화의 원작이 되는 자서전 We Were Soldiers Once ... and Young을 집필하였고, 지미의 일가족은 안타깝게 찾지 못했지만 지미의 사연을 자서전에 적어주었기에 훗날 지미의 딸로부터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는다.
- 응우옌 흐우 안 중좌(Nguyễn Hữu An) 역 - 돈 중
이아드랑 전투 당시 B3 전선군 사령관 겸 정치위원으로, 계급은 육군 중좌. 베트남 입장에서 보면 독립군 출신으로 독립전쟁인 인도차이나 전쟁의 시작부터 디엔비엔푸 전투와 전쟁의 끝인 사이공 함락까지 모두 참전하고, 전후 상장까지 승진한 명장이다. 극중 첫 씬에서 응우엔 흐우 안이 독립군을 소탕하려는 프랑스군 부대를 공격해 궤멸시켰으며, 죽어가는 프랑스 병사 앞에서 포로를 잡아가냐고 질문을 던지는 독립군 병사에게 이들을 전부 죽여야 더 이상 오지 못할 것이라고 명령하며 등장한다. 이 장면은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당시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던 프랑스군이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북베트남군 지휘관의 과거 활약상 씬에서 보듯 당시 전투에서 미 육군은 월등한 화력 지원과 제공권 덕분에 버틴 것이지, 만약 이 두 가지 지원이 없었다면 전멸했을 정도로 영화 내에서 북베트남군 지휘관으로서 뛰어난 전술과 부하를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무어가 현장 대대장이 아니었다면 미군은 응우옌 흐우 안의 전략에 놀아나 패배했을 정도로 북베트남군 지휘관으로서 전장 상황 파악 능력과 전략 거점을 알아보는 능력이 뛰어나다. 미군이 계곡에 기관총을 비롯한 전선을 형성했다는 보고에 개울 바닥을 이용해 측면을 공격하고, 후방에 있는 가장 큰 위협인 미 육군 포병의 후방을 쳐서 무력화시키라는 작전과 압도적인 공세로 미군을 수세에 몰아넣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17일 새벽을 틈타 미군의 숨통을 끓기 위해 은밀하게 접근하여 기습할 작전을 세웠으나 무어에게 작전을 간파당해[8] 무어의 최후의 반격과 무어의 반격을 도와주는 무장 헬기의 화력 지원 그리고 미군의 연대 거점과 베트콩 본거지 중간 기지가 점령당했다는 보고에 발 빠르게 현 거점을 포기하고 본부를 철수한다. 그러나 이내 미군이 이아드랑 계곡의 베트콩을 격멸해 후퇴하자 다시 돌아와서 점령한다. 이후 나무에 꽂힌 작은 성조기를 뽑아 들며 "미국은 이 전투에 이겼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오판이며 전쟁이 지속되면 얼마나 더 죽느냐의 문제만 남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슨 생각인지 그 성조기를 도로 꽂는데,이 장면 때문에 후술한 대로 담당 배우 돈 두옹이 낭패를 봤다.[9]
- 어니 새비지 병장(SGT Ernie Savage) 역 - 라이언 허스트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B중대 2소대(헨리 헨릭의 소대) 3분대장. 헨리 헨릭이 전장에서 조우한 월맹 정찰병을 잡기 위해 막무가내로 뛰어가자 제지를 해보지만 소대장이 이를 무시하고 계속 쫓아가자 할 수 없이 소대장의 뒤를 따르다 매복한 적의 기습에 당황하는 소대장을 진정시킨 후 소대의 혼란을 수습하여 근처 풀 숲으로 엄폐하여 월맹군에 맞선다. 전사한 헨리 헨릭의 유언으로 소대 지휘권을 인수하여, 포병 지원을 받아 풀숲에서 계속 버틴다. 그러나 월맹군 포병의 무자비한 소이탄 포격과 빗발치는 소화기 사격 그리고 미친듯이 몰려오는 월맹군에 맞서느라 고립된 소대 부상병들이 전부 출혈 과다로 사망한다. 15일에는 중대장 네이달에게 어떻게든 버틴다고 보고한다. 다음날 오전에 구하러 오겠다는 말에 절망하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생존한 소대원들과 월맹군의 야간 공격에 맞서다 탄약이 떨어지자 대검을 들고 미친듯이 싸운다. 다음날 구출하러 온 중대원들의 목소리에 풀숲 시체 더미에 숨은 다른 생존자 갈렌 벙검 기술상병(SP4 Galen Bungum)[10]과 함께 극적으로 구조된다. 구조 직후 플럼리 원사는 '이런 날이 좋은 날이다. 새비지 병장.'이라고 말한다. 직후 같이 살아남은 벙검과 함께 대대장 무어를 찾아가 전투에 재투입시켜달라고 한다.
- 찰리 헤이스팅스 중위(1st LT Charles "Charlie" Joseph Hastings) 역 - 로버트 배그넬
영화 중반에 잠시 등장하는 인물로 미합중국 공군(USAF)이 파견한 전방항공통제관(FAC)이다. 무어는 상황이 다급해지자 그에게 브로큰 애로우를 발동한다. 이 당시 미군의 유일한 이점인 풍부한 항공 지원 능력[11]을 십분 살려 폭격 좌표를 무전으로 보내 A-1H, A-4E, A-6로 월맹군을 싹 쓸어버리는 것으로 전세를 차츰 회복시키지만, 한 번은 실수로 좌표를 잘못 지시했다 무어의 제지를 받아 전투기에 즉시 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미 선두기가 폭탄을 투하한 직후라 아군 오폭이 발생하여 지미 나카야마를 포함한 아군 2명이 네이팜에 휩쓸려버린다. 이 같은 불상사로 순간 패닉에 빠졌으나, 너 덕분에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것이니 실수에 연연하지 말고[12] 계속 하라는 무어의 냉철한 격려를 받고 정신을 차려 다시 폭격을 유도한다.
- 헨리 헨릭 소위(2LT Henry Henrrick) 역 - 마크 블루카스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B중대 2소대장으로, 행군 훈련 때 뒤처지는 병력들의 원인은 살피지 않고 무작정 왜 이리 굼뜨냐며 윽박지르는 신임 장교다. 의욕은 좋지만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앞뒤를 보지 않는 모습 때문에 대대 주임원사에게 훈장에 눈이 먼 거 같다는 눈총을 받는다. 극중 강습 1파의 첨병소대 임부를 부여받아, 착륙 직후 발견한 월맹군 정찰병을 포획하기 위해 앞뒤 보지 않고 소대원을 이끌고 가다 본대와 너무 멀리 떨어지는 바람에 잃어버린 소대가 되고, 월맹군의 매복에 걸려 부대가 고립되자 패닉에 삐진다. 3분대장 새비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지만 이내 북월맹군의 총격으로 총상을 입어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죽기 직전 새비지에게 절대 적군들에게 통신음어표가 넘어가지 않게 하라면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의욕만 앞서는 나쁜 장교의 좋은 예를 보여주며 공식적으로 자신의 소대는 정원 44명 중 40명 사망, 2명 실종으로 사실상 전멸당했다.
- 토니 내댈 대위(CPT Tony Nadal) 역 - 주 가르시아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A중대장. 이아드랑 전투 당시 무어로부터 북베트남군이 계곡 측면을 우회 공격하기 위해 개울 바닥을 통과할테니 그곳을 방어하라는 명령을 받아 그곳을 사수한다. 고립된 척후소대 B중대 2소대를 구출하라는 명령을 받고 포위망 진입을 시도하지만 두터운 월맹군의 방어망으로 인해 실패하고, 두번째 시도에 성공하여 새비지를 포함한 생존자 2명을 구출한다.
- 톰 멧스커 대위 역 - 클락 그레그
초반 무어와 새로운 부하들의 첫 대면시 가장 첫줄 좌측에 있던 장교로, 전투가 시작된 직후에 무어 옆에서 본부와 무전 연락을 하다 부상을 당하여 헬기로 후송되나, 자리가 모자라다는 말을 듣고 양보하려다 그 직후 날라온 총탄 두 발을 맞고 사망하여 헬기에 같이 실려가는 모습이 나온다.
- 에드 투톨 프리먼 대위(CPT Ed W. "Too Tall" Freeman) 역 - 마크 맥크래큰
미 육군 제1기병사단 229강습헬기대대 A중대장 크랜달의 윙맨으로 육군 항공 조종사이다. 여섯대의 헬기 중 두번째 헬기 조종사.
키가 매우 크다 보니 주로 투 톨이라 불린다.[13] 클랜달과 함께 목숨을 걸고 자살행위에 가까운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결과 크랜달과 함께 명예훈장을 수훈했다. 프리먼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 해군 수병으로 2년 간 참전한 참전용사로 종전 후 육군 공병 부사관으로 재입대했다. 6.25 전쟁 당시 257명의 부대원 중 14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치열한 격전인 폭찹힐 전투의 생존자이다. 당시 공적으로 미 제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가 중사(E8)였던 그에게 직접 소위 계급장을 달아줘, 소위로 현지임관했다. 장교로 임관한 덕분에 그는 어릴 적 꿈이던 조종사에 도전할 수 있게 되어, 전후 육군 항공 조종사가 되었다.
- 갓볼트 일병(PFC Willie Godboldt) 역 - 에드윈 머로우
제1기병사단 7기병연대 1대대 C중대 2소대 소총수로, 파병 훈련 당시 발에 물집이 터져 상처가 까진 것 때문에 가장 뒤쳐져 등장한다. 이후 이아드랑 전투에서 16일 오후까지 조지건과 함께 북쪽 능선 최전선에서 싸웠으나 후퇴하는 과정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 지미 나카야마 일병(PFC Jimmy C. Nakayama, ジミー・C・ナカヤマ) 역 - 브라이언 티
제1기병사단 8공병대대 C중대 공병으로, 무어 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전투편조로 배속된 병력이다. 일본계 미국인 2세로 그의 삼촌 중에는 미 육군 제442연대전투단 소속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참전용사가 있다. 442연대전투단은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로 억류된 일본계 미국인 중 지원자들을 받아 구성한 일본계 부대이다. 김영옥이 소속된 제100대대도 이 442연대전투단 소속이었다. 지미 나카야마는 원래 미 아이다호 육군 주방위군 공병 소위로 임관했으나 복무 중 연방 육군 장교로 복무를 희망하여 연방 육군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장교 정원(TO)이 나오지 않아 임관을 기다리며 먼저 육군 공병 병사로 복무를 하게 되는데, 아이드랑 전투 당시에는 일병 계급이었다. 다들 걸리적거린다며 냉담하게 대하던 대대원들 중 유일하게 갤러웨이가 들이대는 카메라에 전투 중임에도 브이 자를 보이고 웃으며 호의적으로 대한다. 이름을 물어보는 갤러웨이에게 "얼마 전에 내 딸이 태어났는데 축하한다고 좀 전해달라"고 하는 등 유쾌한 성격으로, 그 직후 옆 대대원이 다치자 재빨리 의무병을 부르는 등 민첩하게 대응한다. 이후 브로큰 애로우 발동 도중 아군의 오폭으로 인해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어 후송 후 2일 뒤 사망한다. 전투 당시엔 그의 연방 육군 공병 소위 임관이 확정됐지만, 이 소식을 듣기 전에 전사했고, 묘비에도 반영되지 않아 최종 계급이 서류상으론 소위임에도 묘비엔 일병으로 기재되었다. 남아있는 영정은 육군 공병 장교의 정복 차림인데, 그가 주방위군 장교이던 시절에 찍은 것이다.
영화 위 워 솔저스가 개봉한 후 지미 나카야마의 아내와 딸은 조 갤러웨이에게 지미를 챙겨줘서 고마웠다는 편지를 보냈다. 이 때 지미의 딸 니키의 나이는 36살이었고, 조 갤러웨이는 그 긴 세월동안 지미와 그의 가족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 미스터 닉(Mr. Nik) 역 - 비엔 홍
남베트남 육군 레인저 부대(Biệt động quân Việt Nam Cộng hòa)에서 무어 대대에 파견된 통역관이다. 국방색 민무늬 전투복과 M1 철모를 쓴 다른 미군과 달리 타이거 스트라이프 위장 무늬 전투복과 부니햇을 착용해 대번에 눈에 띈다. 강습 1파로 무어와 같이 투입되었고 현장에서 포획한 월맹군 포로를 심문한 결과 작전 지역에 월맹군 병력이 생각보다 지나치게 많다는 정보를 얻는다. 이후 강습 2파가 도착할 때, 포로를 후송하기 위해 사단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끝난다.
5. 평가와 흥행
미국 참전용사 커뮤니티에서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재킷처럼 영화적 가치로써는 훌륭한 영화지만 미군을 너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아 참전용사들에게 비판받는 작품들과는 비교가 된다. 하지만 이아드랑 전투에 참전한 몇몇 참전용사들은 지나치게 할 무어 중령의 시선으로 표현한 영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흥행은 좋지 못해 7500만 달러 제작비로 미국에서 7800만 달러 수익을 버는데 그쳤고 해외 수익은 5천만 달러도 되지 못했다. 다 합쳐 1억 3천만 달러도 되지 않아 본전치기인 1억 5천만 달러조차 벌지 못해 흥행에는 실패했다.
6. 기타
종군 기자로 현장에 있었던 원작의 공동 저자 조 갤로웨이는 영화의 75% 정도는 맞고 25%는 허구라고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이 정도면 놀라운 편.도입부는 적장 응우옌 후 안의 회상씬으로 베트남군의 기습공격에 패배당하는 프랑스 육군의 모습이 잠깐 나온다. 프랑스 국기(삼색기)가 달린 나팔을 바라보면서 살아있는 프랑스군을 사살하라고 명령하는 응우옌 후 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14] 이 장면의 베트남군과 프랑스군이 싸우는 전투를 1954년의 디엔비엔푸 전투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 전투는 인도차이나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안케 전투다. 위키피디아 문서 영화상에서도 첫 장면에 프랑스군이 들어간 중부고원지대를 미군이 들어갔다고 언급한다.
출동하기 전 무어가 자신이 지휘하는 7기병연대가 과거 인디언 토벌 작전 중 인디언들에게 전멸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7기병대의 전멸은 미군의 끔찍한 흑역사 중 하나로, 인디언 전쟁 당시 리틀 빅혼 전투 중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가 이끈 미 육군 제7기병연대는 아메리카 원주민 수우족 전사들에게 포위당해 사실상 전멸했다. 나중에 헬리콥터로 이동하는 공중강습부대가 새로 창설했을 때 이 새로운 헬리콥터 강습부대가 미래의 기병대가 될 것을 희망하며 기병대의 단대호를 붙여주었다. 이번에도 과거와 똑같이 월맹군의 본거지를 치러 들어가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과거의 역사가 오버랩 돼서 과거처럼 방심하면 안된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다.북베트남군 지휘관 응우옌 후 안을 연기한 돈 두옹(Don Duong)은 SBS 창사 특집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베트콩 역으로 출연했고, 이 드라마의 전야제 참석를 위해 한국에 내한한 적도 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베트남전 당시엔 어린 학생이었고 백마부대 소속 한국군에게 태권도를 배운 적이 있다고 한다. 링크 응우옌 후 안은 할 무어에 비해 출연 비중은 적지만 침착하고 냉철한 판단으로 베트남군을 지휘하며 무어의 부대를 곤경에 넣는 등 작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다. 허나 베트남에서 한국의 안성기급 국민 배우 지위에 있던 돈 두옹은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베트남에서 수년간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전투가 끝난 후 현장에 돌아온 응우옌 후 안이 미군이 전장에 꽂아놓고 철수한 성조기를 뽑아 들었다, "전쟁이 계속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며 나무가지에 도로 꽂는데, 성조기를 도로 꽂은 것을 베트남 공안 당국에선 미군에 대한 찬양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이 여파로 베트남 정부에 의해 배우 활동을 금지당한 채 가택연금을 당했다. # 연금 해제 이후 그는 결국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심장마비로 쉰다섯이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전투의 거의 마지막에 미군들이 총검 돌격을 감행하고 그 직후에 UH-1 건쉽이 미니건과 로켓탄으로 지원 사격을 날리는 장면은 픽션이다. 무어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실제로는 그 상황에 때맞춰 온 공군의 폭격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영화의 극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전투 중 너무 뜨거워서 발사할 수 없는 상태인 박격포를 무어와 다른 군인들이 오줌으로 식히는 장면이 유명하다. 원래는 식수까지 포에 뿌려가며 사격을 강행했는데 물도 떨어지자 무어가 "그럼 오줌으로라도 식혀!"라며 직접 허리띠를 풀고 시범을 보여 포반 대원들도 뒤따라서 오줌을 누는 장면이 압권이다.
전쟁이 끝나고 20년이 흐른 1994년, 미 육군 중장으로 퇴역한 할 무어와 베트남군 최고 계급인 상장으로 복무 중이던 응우옌 후 안이 과거 전투 지역을 찾아, 당시 전투를 이야기하며 과거를 회상했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전후에 다시 만나면 그러하듯,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주요 인물들 중 응우옌이 저 만남을 가진 이듬해 1995년에 68세로 먼저 사망했고, 플럼리는 2012년 10월 10일에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무어는 2017년 2월 10일에 95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94세에 세상을 떠났다. 무어는 중장까지 진급하여 주한 미8군 부사령관, 미 육군 7사단장 등을 역임하며 다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삽입곡 중 이아드랑 계곡에 헬기를 타고 투입되는 장면과 착검 돌격 장면에서 나오는 곡은 Sgt. MacKenzie다. 원래는 영화에 삽입할 목적이 아니라 조셉 맥켄지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자신의 할아버지를 기리면서 쓴 곡이다. 감독 랜들 월리스가 곡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편곡 후 삽입했다고 밝혔다. 유심히 들어보면 영어인 듯 영어 아닌 가사가 들리는데 스코트어라서 그렇다.
엔딩 크레딧 부근에 삽입된 곡의 제목은 The Mansions of the Lord로 랜들 월리스가 직접 쓴 찬가이다. 영화 삽입곡으로 만들어진 노래지만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고 미군 관련 합창단에서도 종종 부르는 편이다.
촬영 당시 엑스트라들의 휴식 시간에 지급된 담배와 성냥, 간식, 휴지 등은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나온 물건을 그대로 복각해 만든 물건으로 지급되었다고 한다. 엑스트라라고 할지라도 그 시대로 돌아간 척만 해서는 안 되고, 그 시대에 정말 가 있어야 영화에 시대상이 배어 나온다는 감독의 원칙 때문이라고 한다.
공식 자막이 엉망이다. 각종 오역으로 점철되었으며, 군사 용어 자문을 받지 않아서인지 조명탄을 야광탄이라고 한다든지, '사격 임무'를 '임무 중지'로 번역한다든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1] 하버드 석사학위는 베트남 전쟁 파병을 마친 후인 1968년 미래시점에 취득함.[원문] What idiot would keep ordering that in the middle of a goddamn battle?[3] 전사를 통지하는 택시 기사도 이런 일을 떠맡을 걸 예상 못해서인지 굉장히 난처해하는데, 자세히 보면 줄리에게 방문한 택시 기사는 지긋한 나이에다가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 야상인 M51 점퍼를 입고 있어서 택시기사도 한국전 참전 용사임을 암시한다.[4] 나중에는 교전 중 포위되었다 오랜 시간의 혈투 속에 간신히 살아돌아와 흙투성이 몰골에 넋을 잃은 얼굴의 새비지에게 이전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이런 날이 좋은 날이다."라고 본인 방식의 위로/격려를 해준다.[5]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한국 소설 '하얀전쟁'에서도 한국군 병사들이 M16 소총을 가리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벼운 장난감 총 같아서 믿음이 안 간다는 식의 부정적인 감상을 토로하는 장면이 언급된다.[6] 여담으로 처음 헬기에 탑승할 때는 라이카 M3 카메라였지만 M16을 받을 때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전자식 필름 카메라를 쓴다. 엄밀히 말해 고증 오류.[7] 프럼리 원사의 대답 원문은 Ain't no such thing today, boy(오늘은 그런 거 없어, 꼬맹아)[8] 간파당한 이유는 무어 역시 "내가 적 지휘관이라도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 뛰어난 지휘관인 무어도 인정할 정도로 응우옌이 매우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였을 정도의 명장이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도리어 간파당한 것이다[9] 돈 두옹은 영화초반 프랑스 군대의 부상자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했고, 이로 인해 베트남 배우 협회에서 제명되고, 베트남에서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여권도 압수되었다. LA뉴스 기사[10] 당시 미 육군 전투병과는 상병인 Corporal(E4)부터 부사관(NCO)이었지만, 기술행정 병과는 따로 Specialist 계급이 부여되고, 최저 계급은 기술상병(SP4, E4)부터 시작한다. 기술행정 병과는 각 특기에 따라 부사관 권한이 부여되는 계급이 각각 다르다. 가령 군악 특기는 기술중사(SP7, E7)부터 부사관 권한이 부여되고, 이 권한은 기술행정 병과 내에서만 통용된다. 같은 소대라도 기술중사는 전투병과의 일등병에게 선임자 대우는 받지만, 지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11] 본인의 말로 "7천에서 3만 5천 피트까지 천피트마다 비행기가 쫙 깔렸습니다! 지원이 올 겁니다!"라며 자신감있게 보고한다.[12] 아군 오폭의 최종 책임은 브로큰 애로우를 발동한 무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13] 당시 그의 키는 6피트 4인치(=약 195cm)였는데, 그때 기준으로 조종사를 하기에는 너무 키가 크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에서도 무어보다 머리 하나 반개 만큼 커서 무어가 올려다 봐야 했다.[14] 하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그는 베트남 정부로부터 출국금지 당하고, 5년간 연기활동을 금지당했다.글로브뉴스 기사 베트남 배우 협회에서 제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