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3399> 제442보병연대 442nd Infantry Regime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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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일 | 1944년 | |||||
해체일 | 1946년 | |||||
소속 | 미국 육군 | |||||
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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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2연대전투단과 제100보병대대의 제2차 세계 대전 공로를 인정해 의회 명예 황금 훈장 수여 법안에 서명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참전용사들.[1]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백악관 행정명령 9066호로 수용된 일본계 미국인 2세들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구성된 미국 육군의 연대급 부대이다. 부대의 모토는 "Go for Broke!"[2]였다.
통칭 니세이[3] 부대로 불렸으며, 예하의 제100보병대대는 현재도 예비군 소속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부대의 전공이 인정돼서 독자적인 어깨 소매 휘장(Shoulder Sleeve Insignia)을 사용할 수 있는 부대 중 하나다.
대한민국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김영옥 대령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이 부대 소속으로 참전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2. 역사
1941년 12월 7일 일본제국이 미합중국을 대상으로 기습적인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였다. 미국 건국 이후 최초의 외세의 직접적인 공격이었던 만큼 미국인들에게 그 충격은 상당했다. 더불어, 인종주의에 기반해 우월한 백인이 비-백인에게 압도적인 패배를 했다는 것은 미국인에게 엄청난 굴욕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그 악감정은 자연스래 미국 내 일본인 이민자들에 대한 보복으로 이어졌고, 일본계 미국인들은 주정부와 연방정부를 가리지 않고 당국으로부터 일본의 스파이라는 명분으로 불법 체포와 구금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일본인 강제 수용소까지 설립되었다.[4] 민간차원에서는 묻지마 공격, 테러, 집단 왕따 등이 행해졌다.자신들이 일본인이기 이전에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공유했던 당시 상당수의 일본계 이민자 2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본 문화보다 미국식 자유민주적 가치에 익숙했으며 그들 중은 개신교 및 천주교 신자들도 상당했다. 자신들이 미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일본제국과 천황에 대한 충성을 부인하여 미국사회에 당당한 한 국민으로 인정받아 수용소에서 비참한 생활을 강요받은 가족을 대신해, 자신들이 미국 사회에 기여하면 일본계에 향해진 차별이 완화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했다.
제442연대전투단은 제100보병대대가 먼저 창설된 이후인 1943년에 일본계 미국인 부대를 창설할 수 있도록 허용되면서, 본격적으로 자원자들을 받아 제442연대전투단이 창설되었다. 다만 이들은 태평양 전선에서 싸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제442연대전투단은 미국 본토에서 훈련을 마친 뒤 제1대대를 제외한 상태[5]에서 1944년 5월 이탈리아로 파병되었고, 제34보병사단 소속으로 이미 싸우고 있던 제100보병대대와 합류했다. 그리고 제100보병대대는 명칭을 제1대대로 바꾸지 않고 제442연대전투단에 합류했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제442연대전투단은 1944년 6월 수베레토에서 첫 실전을 경험했고, 아르노 강까지 진격했다. 이후 남프랑스 전선으로 전속되고나서는 제36보병사단 소속으로 마르세유에 상륙해 브뤼에르와 비퐁텐느에서 전투를 치렀다. 그리고 같은 사단 소속이였던 제141보병연대 1대대가 고립되자[6], 당시 사단장이던 존 달퀴스트 소장은 제442연대전투단에 구출을 명령했다.
제442연대전투단은 격전 끝에 고립되었던 대대를 구출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200여 명을 구출하기 위해 8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7]
이후 제442연대전투단은 리비에라로 재배치되었고,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의 순찰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지크프리트 라인에 배치된 제522야전포병대대를 제외한 나머지 부대는 이탈리아로 복귀해 고딕 라인을 돌파하는데 투입되었고, 이탈리아에서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442연대는 유럽 전선에서 싸우며 큰 전과를 거두었고, “Go For Broke(죽기 살기로)“라는 모토 아래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연대로 기록되었다.
3. 상훈
제442연대전투단은 미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부대로 알려져있다. 제442연대전투단은 총 8회의 대통령 부대 표창(Presidential Unit Citation)을 받았으며, 부대원들은 총합 18,143개의 표창을 받았다. 부대원들 중 21명이 명예 훈장(Medals of Honor)을 받았고[8], 52명이 수훈십자장(Distinguished Service Cross)을 받았다[9]. 이외에도 1명이 수훈근무훈장(Distinguished Service Medal)을, 560명이 은성훈장(Silver Star Medal)을[10], 22명이 공로훈장(Legion of Merit Medal)을, 15명이 군인훈장(Soldier's Medal)을, 4,000여 명이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11]을, 4,000여 명이 상이군인훈장(Purple Heart)을 받았다.1962년에는 텍사스 주방위군 소속이던 141보병연대 1대대를 구조해낸 것에 대한 감사로, 텍사스 주지사 존 코널리가 제442연대전투단의 살아있던 참전용사들을 명예 텍사스인으로 임명했다.
2011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제442연대전투단과 군사정보국에서 복무한 일본계 미국인 2세들에게 의회 명예 황금 훈장(Congressional Gold Medal)이 수여되었다.
2012년에는 살아있는 참전용사들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수여되었다.
[1] 맨 우측의 당시 제대군인장관 에릭 신세키를 비롯해 대니얼 이노우에, 노먼 미네타, 마이크 혼다, 메이지 히로노 등 유명 일본계 미국인 정치인들도 참석하였다.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대니얼 이노우에는 제442연대전투단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했으며, 명예 훈장을 수훈받은 참전용사다.[2] 하와이 도박장 속어다. 뜻은 올인, 한마디로 박살날 각오로 덤빈다는 뜻이다.[3] Nisei. 2세(二世)'의 일본식 독음 'にせい'를 뜻한다.[4] 실제로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의 스파이 행위는 실제했다.[5] 본토에 남은 제1대대는 독립부대인 제171보병대대로 재편되었다.[6] 속칭 잃어버린 대대(Lost Battalion).[7] 달퀴스트 사단장은 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잃어버린 대대를 구출한 이후, 달퀴스트 사단장은 제442보병연대를 시찰하던 와중 적은 수의 부대원을 보고 다른 부대원은 어디있냐고 연대장을 질책했지만, 이에 버질 밀러 연대장은 "그들이 전부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달퀴스트 사단장이 본토에 시찰을 갔다가 전 100보병대대장 고든 싱글스 중령을 마주쳤는데, 싱글스 중령도 높은 계급의 상관에게 예의를 차렸지만 끝내 달퀴스트 장군의 악수 요청을 거절했다고 한다.[8] 종전 당시에는 1명이었지만, 2000년 6월에 수훈십자장을 받았던 참전용사들 중 대니얼 이노우에를 포함한 19명의 훈장이 명예훈장으로 격상되었다.[9] 명예 훈장으로 승격된 훈장 포함.[10] 이 중 28명이 중복 수훈했다.[11] 이 중 1,200명이 중복 수훈했고, 1명이 2000년 6월에 명예 훈장으로 승격됐으며, 1명이 2009년 9월에 은성훈장으로 승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