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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4 19:02:40

대니얼 모건

초대 버지니아 하원 의원
대니얼 모건
Daniel Morgan
파일:1000141367.jpg
출생 1735년
13개 식민지 뉴저지 식민지 헌터든 카운티
사망 1802년 7월 6일 (향년 65-67세)
미국 버지니아주 윈체스터
복무 대륙군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준장
복무 기간 1775~1883, 1894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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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뉴저지 식민지 헌터든 카운티에서 태어났고 16세때 아버지와 싸워 가출하고 나서 버지니아 식민지 윈체스터 교외에 이주했다. 여러 일을 접했고 육체적인 일에 재능을 보이며 농사도 혼자서 무난하게 지을 정도였다. 번 돈으로 소와 말을 사서 마부로 일했다. 프랜치 인디언 전쟁 당시 수송업무에 종사했으며 듀케인 요새에서 상관 폭행으로 인해 500대에 가까운 채찍질을 맞고 영국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할 당시 사격솜씨가 뛰어난 인원들을 뽑은 모건의 저격수들을 편성해 버지니아에서 보스턴으로 넘어와 구식 소총이였으나 정확한 저격으로 영국군을 사살하며 보스턴을 구원했다. 이후 캐나다 원정당시 베네딕트 아놀드부대 소속으로 참가해 아놀드가 퀘벡에서 총상을 입고 대리로 지휘했으나 포로로 잡혔다. 포로 협정으로 석방 된 후 대령으로 진급했다.

자신의 부대인 저격부대를 확대편성했고 버지니아, 메릴랜드, 펜실베이니아인으로 구성했다. 1777년 거의 1년간 원주민으로 위장하고 뉴욕, 뉴저지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며 영국군을 괴롭혔다. 이후 호레이쇼 게이츠의 부대에 소속되어 새러토가 전투에 참가해 사이먼 프레이저를 포함한 영국군 장교를 많이 사살해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상부에서 질투해 전투 후 준장 진급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게이츠가 캠든 전투에서 패배해 보직해임되고 나서 준장으로 진급했다. 게이츠의 후임 너새니얼 그린은 모건에게 독립적으로 싸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1781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카우펜스에서 펼쳐진 전투에서 영국군을 상대로 거짓으로 퇴각 후 매복한 저격수들이 영국군을 사살하기 시작했고 예비대인 기병을 투입해 전멸시켰다. 전후 훈장을 수여받았고 1794년 군에 복귀해 위스키 반란을 진압했다. 버지니아 하원의원을 지냈으며 1802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