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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fff> 이재선 李在善 | Lee Jae-sun | |
[1] | |
출생 | 1959년 9월 21일[2] |
경상북도 안동군 예안면 도촌동[3] 지통마[4] (現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촌길 505)[5] | |
사망 | 2017년 11월 2일[6] (향년 58세)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아주대학교병원 | |
본관 | 경주 이씨[7] |
자 | 계의(繫義) |
부모 | 아버지 이경희, 어머니 구호명 |
배우자 | 박인복 |
자녀 | 아들 이성호[8], 딸 이OO[9], 이주영[10] |
형제자매 | 형 이재국, 이재영 남동생 이재명, 이재문 누나 이재순[11], 여동생 이재옥 |
학력 | 삼계국민학교[12] (졸업 / 15회) 예안중학교 인계분교장[13] (졸업)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 / 학사) |
경력 | 공인회계사 성남시시설관리공단 고문회계사 박사모 성남지부장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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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 대외적으로는 제35대 경기도지사를 지내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재명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의 4살 터울 친형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2016년~2017년 박사모 성남시지부장을 지냈다.2. 상세
1959년 11월 5일 경상북도 안동군(현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에서 아버지 이경희와 어머니 능성 구씨 구두회(具斗會)의 딸[14] 구호명 사이의 5남 4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법적 나이는 이재명과 5살 차이이지만, 이재명이 주민등록이 잘못 된 거라[15] 실제로는 4살 차이라고 한다.삼계국민학교와 예안중학교 인계분교[16]를 졸업했다. 학교에서 안동고등학교나 금오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권유했으나 경제적인 부담과 군대 문제[17][18]때문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1976년 성남에 있던 아버지의 부름으로 성남으로 가족을 따라 이주했다. 정수직업훈련원을 다니며 중기정비기능사 2급을 취득한 후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근무하다가 1980년 검정고시에 합격한다. 1983년 건국대학교 경영학과를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이재선이 2010. 3. 16. 에 쓴 글을 보면, 대입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이재명을 보면서 자극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또한 이재명이 1982년에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전액장학금 및 매월 20만원을 받고 입학하면서 그 중 5만원을 이재선에게 줘서 이재선이 공장을 그만두고 대입공부를 하게 됐다고 한다.
이재선. 내 삶의 소중한 선택. 검정고시와 대학진학
당시 이재선은 전국 12,805등의 성적표를 받아든 뒤 고려대학교와 외국어대학교에 입학을 문의했으나 결국 등록금 면제와 월 20만원의 도서보조비를 지급하는 건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대학에 재학하던 중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하였다. 동화회계법인과 영화회계법인을 거쳐 한국투자신탁에서 회계사로 근무하다 독립하여 분당신도시에 회계사무소를 개업해서 사망하기 전까지 운영한다.
1997년 일간지에 ‘외채 눈덩이…의식개혁 급하다’라는 칼럼을 기고했는데, 원화가치가 하락하는데도 수출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고 당시 경제 상황을 진단했다. #
이재명의 친형이며, 이재명이 10대 때 공장의 소년공 노동자로 살던 시절에도 이재명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19] 시민운동 당시까진 이재명과 서로 힘을 합쳤다. 게다가 이재명과 부인이 처음 만나게 해준 것도 형수인 이재선의 부인 밀양 박씨 박종수(朴鍾洙)의 딸 박인복[20][21]이었다. 2000년대 초반 성남시시설관리공단[22]의 고문회계사로 활동한 적도 있고, 2008년에는 광복절 특집으로 방송된 대한민국 60주년 특집 도전 골든벨에 출연해 최후의 2인으로 남기까지도 했다. 참고로 해당 방송에는 그의 부인 박인복과 아들 이성호도 함께 출연했다.#
그러나 이재명이 성남시장이 된 뒤론 성남시의 사안에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고, 가족과의 사이 역시 극도로 악화돼 모친을 협박 및 폭행하고 여동생을 폭행한 시기도 이쯤이다. 그 이후 이재선은 이재명의 극렬 안티로 탈바꿈하게 된다. 아예 박사모·태극기 부대 쪽에서 논 이유도 이재명과의 대립으로 추측된다.
성남일보나 2016년 12월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인 신의한수 등에서 밝힌 이재선의 가족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동생이 정계 입문 후 지자체 예산 운영과 인사 등용에 대해 지적했던 것이 형제 사이가 벌어지게 된 화근이었다고 한다. 형은 회계사로서 직업의식에 따라 문제제기[23]를 했다고 주장했고, 이재명 지사는 이를 민간인의 월권이라고 판단하고 형의 참여를 제지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공동명의의 주택 처분을 하며 생긴 소득의 소유권 분쟁과 모친 폭행 여부로 갈등을 빚으면서 정점에 달했다. 노모 폭행한 아들 L모씨에 100m 접근금지 명령
이재선은 어머니에게 협박 및 폭행한 사실이 있다. 이재선의 딸 이주영의 SNS 게시물에 의하면 존속상해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마치 어머니 폭행 사실이 없었던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상해 행위의 죄명을 존속상해가 아닌 단순 상해로 변경했을 뿐이고 실제로는 어머니를 폭행하고 벌금형의 처분을 받았다. 법원이 이재선의 노모폭행을 사실로 인정했기에 벌금형과 별도로 어머니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을 내렸던 것이고, 검찰이 약식기소했다 해서 판사가 사실인지 여부를 전혀 살펴보지 않고 벌금형을 선고해 주는 게 아니다. 약식기소 역시 약식일 뿐 당연히 기소이므로 판사가 기소내용이 진실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오히려 이재선이 어머니를 폭행한 사실이 없었다면 굳이 정식재판을 청구하지도, 유죄 선고 후 항소하지도 않을 이유가 없다. 폭행은 과실범 처벌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범죄에 대해서만 유무죄를 판단할 수 있다.
EI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J의 2015. 2. 9.자 소견서에는 "Y은 2012년부터 과잉행동, 과대망상, 수면욕구 감소 등의 증상이 시작되었고, 울증과 조증 증상이 반복되다 2014년 재발된과대망상, 피해망상 및 과잉행동 등의 증상으로 본원에서 입원 치료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공판기록 제24권 14081면). EK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L의 2017. 8. 17.자 협의진료회신서에는 "Y은 이 무렵(피고인이 O시장에 당선된 2010.경 무렵으로 보인다)부터 조증 삽화를 간헐적으로 경험하며 가족들에게 충동적으로 욕설을 하며 버럭 화를 내는 일이 있었음. 2012년에는 가족회의 자리에서 말다툼이 심해지며 몸싸움까지 하였고, 당시 조증 삽화가 있던 환자는 백화점 앞 노점상들에게 공격적 행동을 하여 잠시 내과에 입원하기도 하였음"이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공판기록 제24권 14090면).
Y은 ⓐ 2013. 2. 20. 'EE한의원'에서 심신안정을 위한 약재를 처방받았고(공판기록 제26권 15411~15413면),
ⓑ 2013. 3. 13. EF 의원에서 우울증, 불면증 등으로 진료를 받았으며(공판기록 제18권 10740면),
ⓒ 2013. 3. 16. 처인 BO에게 죽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한 후 차량을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하여 트럭과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일으키기도 했고, ⓓ 결국 2014. 11. 21. 처인 BO과 딸인 EU에 의해 정신병원인 EI병원에 강제입원되었고, 그때부터 2014. 12. 29.까지 위 병원에서 정신건강 치료를 받았다.
교통사고건에 대해 이재선의 부인 박인복은 말을 바꾼 정황이 있다.
이재선의 부인 박인복도 "졸음운전이었을 뿐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시도는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2014년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면서 작성한 입원기록에는 당시 교통사고에 대해 "자살 시도를 했다", "고의로 교통사고를 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14년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부곡정신병원에 아내의 권유로 입원했다. # # 여담으로 이준석의 여동생이 이 당시 이재선의 치료를 담당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를 이준석이 위키라이브와의 인터뷰에서 의료정보가 아니란 판단 하에 상담내용을 언급한 것 때문에 이준석의 여동생은 시민단체에게 환자의 비밀을 누설했단 이유로 고발을 당하기도 했다.#
2012년 어머니 구호명이 이재선에 대한 정신건강 치료 의뢰서를 작성한 적 있다. #
2016~2017년 박사모 성남시지부장을 지냈다.
3. 동생 이재명 및 어머니와 형제들과의 불화
가족이라는 점이 무색하게 이재명을 포함 다른 형제들과 정말 사이가 나빴다. 이재선은 어머니를 협박 및 폭행하고 동생들을 폭행했다.성남일보나 2016년 12월 신의한수 등에서 밝힌 이재선 가족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동생이 정계 입문 후 지자체 예산 운영과 인사 등용에 대해 지적했던 것이 형제 사이가 벌어지게 된 화근이었다고 한다.
이재명과 친이재명계에선 이재선은 성남시장 비서실장에게 4명의 공무원 인사를 요구하고, 감사관에게는 관내 대학교수 자리를 알선할 것을 요구하는 등 인사개입 및 이권청탁을 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했고, 이를 이재명이 차단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이재선 녹취록
이재선은 2017년 11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이재명이 빈소에 직접 찾아갔으나 이재선의 가족들에게 결국 조문마저 거부당했다.[24] 이재선의 사망 이후 이재명은 최종적으로 법원에 의해 이재명은 2012년 이재선의 강제입원 시도에 관여한 점이 인정됐다. 판결문 해석 다만 법원은 치료받을 상황이 맞는 것으로 보여 이재명이 악의를 가지고 강제입원을 추진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단체장의 정당한 업무"에 해당하기에 직권남용 무죄의 이유를 밝혔다.
훗날 장영하 변호사가 폭로한 통화 녹음에 의하면, 2016년 2월 박인복(이재선의 부인)과의 통화에서 박인복이 왜 자기 남편을 자살시도를 할 정도까지 핍박했냐고 항의하자 이재명 역시 "죽었어야 해! 죽었어야 마땅해!"라며 이재선을 향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으며
2018년, 친문 계열의 스피커인 뉴비씨에 출연했던 이재선 부인의 증언에 의하면 처음에는 시민 활동도 하고 진보신당을 지지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에도 방문해 참배를 한 적이 있으며, 노 전 대통령의 저서를 읽고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진보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의 거물급 인사인 이재명[25]과의 불화속에서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곳은 오직 박사모밖에 없었기에 박사모에서 행동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박사모는 6개월 활동하다 회계 정리 문제로 인해 탈퇴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재명은 이재선 사후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자신의 가족사 관련 공세가 심화되자 "내 출신의 비천함은 내 잘못이 아니니 나를 탓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기도 했다.이재명 연설
4. 사후
2021년 9월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과 거기에 이재명이 관련되어 있는것 같다는 논란이 터지면서 그가 재조명받고 있다. 이재선 녹취록이 공개되었는데 신흥동 공원 건립과 대장동 개발을 결합하여 추진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하지만 신흥동 공원 사업이 대장동 개발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민간 기업인 화천대유의 이익은 더 크게 남았을 것이 분명하다. 화천대유라는 특정 기업이 개발 이익을 많이 남긴 것이 사회 논란이 된 와중에, 신흥동 공원 사업이 대장동 개발에서 빠진다면 화천대유에게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셈이라 이재선의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 #, #
20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낙선한 후 이재선의 아들이 새로운보수당 마이너 갤러리,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에 글을 올렸다. 이재선은 자녀들에게 그리우며 멋진 회계사이셨고 자랑스러웠던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항상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박수홍 횡령 피해 의혹 논란에서 박수홍의 부친이 집안을 일으켜세운 박수홍을 제쳐두고 장남을 싸고 든 것을 두고서, 서민은 이재선의 모친이 이재명을 편든 것과 흡사하다고 평했다.#
김성태와 안부수의 대북송금 혐의 사건이 이재명을 위해 일어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자. 이재명이 2021년 9월 집사부일체에서 "형님은 제가 간첩이라고 믿었어요."라고 했던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1] 고인의 블로그 프로필 사진으로 올라온 사진이며 사진 속 배경은 서울남대문경찰서 옆 서울스퀘어로, 바로 맞은편의 서울역 광역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에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2] 음력 8월 19일[3] 경상북도는 대부분의 군이 1988년 이전까지 읍, 면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리가 아닌 동을 썼다. 다만 상주시, 문경시, 경주시, 봉화군과 1963년 강원도에서 이관된 울진군은 1988년 이전에도 읍, 면의 하위 행정구역에 리를 썼다.[4] 일부 매체에서 지통마을로 표기하고 있지만, 도촌길 입구의 표지판에도 나와 있듯이 지통마가 정확한 지명이다. 한편 네이버 지도에서는 '지통마'를 검색하면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가 나오며 '지통말'을 검색해야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가 나온다.[5] 도촌리 668[6] 폐암 투병 중 사망. 출처[7] 국당공파(菊堂公派)-제정공파(霽亭公派) 41세 재(在) 항렬.#(족보)[8]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을 지지하였다. 이재명의 낙선이 확실해지자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 와 새로운보수당 마이너 갤러리# , 에펨코리아 정치/시사 게시판# 에 인증과 함께 감사를 표하는 글을 올렸다.[9] 기관지 천식으로 사망[10] 이성호의 누나. 김혜경 녹취록에서 김혜경이 전화를 건 당사자[11] 아들인 '김대용'은 암사동 모녀 살인 사건의 범인이다.[12] 현 월곡초등학교 삼계분교장. 동생 이재명도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 고인의 블로그에 삼계초등학교 총동창회에 참석한 글이 있다.[13] 통폐합 직전 이름은 안동중학교 인계분교장. 웅부중학교에 통폐합되었다.[14] 출처: 《경주이씨족보》 이경희편.[15] 1963년생인데 1964년생으로 주민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엔 높은 영아사망률로 인해 1년 정도 늦게 주민등록하는 일이 흔했다.[16] 형제들 중 유일하게 중학교를 졸업했다.[17] 금오공고는 장학금을 주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졸업 후 하사관으로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 이재선한테는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18] 참고로 안동고는 예나 지금이나 경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고다.[19] 이건 의외로 이재명이 형과 갈등이 생겼을때도 강연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정치인이 되고 형이 변한거라며, 오히려 청소년기에는 자신에게 버팀목이었던 소중한 형이었다고 한다. 부친이 이재명이 대학 가겠다고 공부하는 걸 일하기 싫어 꾀부리는 거라고 생각해서 방해하고 괴롭힐때 이재선이 이를 막아주려 했고, 이재명과 단둘이 대화할 때마다 형이랑 너만은 꼭 같이 계속 공부를 하자고 이재명을 도와주며 형제 중 이재명의 공부를 가장 독려하던 형이었다고 한다. 부친이 괴롭힐 때 둘이서 서로 끌어안고 운 적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형제 중 두사람만 변호사와 회계사라는 전문직 종사자였다. 그래서 10대 때는 형제자매 중 가장 고마운 형이었다고 한다.[20] 1961년 1월 16일생. 숭의여자전문대학(현 숭의여자대학교) 졸업. 출처: 《경주이씨족보》 이재선편.[21] 이건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이 팟캐스트 "맘마이스"에 출연했을 때 직접 밝힌 것이었는데, 이재명의 장모(김혜경의 모친)와 이재선의 장모(형수 박인복의 모친)가 당시 교회에서 친목모임으로 절친해진 사이여서, 이재명을 알기 전부터 형수와 김혜경도 서로 알던 사이였고 그래서 형수가 시동생인 이재명(당시 사법연수원생)을 소개해준 것이라고 한다. 당시 진행자 중 한 명이었던 정영진이 "(처음 소개한 게) 그 형수님이라고요?"라고 말했고, 다른 진행자인 최욱이 "아이, 이재명 시장님이 형님이 많으세요. 그래서 형수님이 한 분이 아니세요."라고 말하며 말렸지만, 김혜경이 "그 형수님 맞아요."라고 말해서 진행자들이 당황했다.[22] 후일 시설관리공단은 2014년 1월 1일 성남도시개발공사와 통합되었다.[23] 시기상 문제제기가 된 사건은 성남판교대장도시개발사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같은 시설관리공단의 기획본부장이자 이재명의 측근인 유동규를 지목하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이 일을 전후로 이재선은 유동규에게 고소를 당했는데, 이재선이 이재명을 통해 고소를 취하하려 하자 이재명은 직권남용이라며 이를 거절했다.#[24] 참고로, 이재명의 모친이나 이재명의 다른 형제들도 이재선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25] 사실 이재명은 2016년말 탄핵 국면 이전까지 좀 인지도 있는 기초단체장이었지 절대 거물급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