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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재명]]
1. 개요
이재명과 타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설명한 문서.2. 범 민주당계 정치인
2.1. 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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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친명#s-|]]번 문단을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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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2.2.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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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비상계엄 당시 급히 귀국한 김경수 전 도지사를 예방한 이재명 대표 |
7대 지선에서 민주당의 험지인 경상남도지사와 가장 큰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지사 두 곳을 탈환한 선봉장이자 지선 대승의 주역들이지만 둘 사이의 접점은 크게 없었다. 김경수 전 지사는 당시 친문의 핵심으로 평가받았고, 이재명 전 지사는 그와 정반대로 비문계의 희망이자, 본인은 친문이라 부정하였어도 문재인 전 대통령과 살짝 다른 길을 걷는 등 계파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 후보에 선출되어 민주당의 주류로 떠올랐을 때엔 김경수 지사는 지사직을 박탈당한채 실형을 살고 있기도 하였고.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김경수에 대한 사면복권을 건의했다는 뜻을 내비치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보였고, 김경수 역시 조국,문재인과 함께하는 오찬에서 이재명과 함께하며 날을 세우지 않는 모습을 보였지만 21대 대선 국면에서 김경수 전 도지사가 22대 총선 당시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며 비이재명계로서의 행보를 시작하였다. 다만 아직까지는 현실적인 부분에서만 조언을 할뿐이다.
다만 그후 2024년 2월 13일 이재명대표와 회동한 자리에서는 "내란 극복을 위해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3. 김동연
|
제20대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 이후 이재명과 김동연 |
경기도지사 당선 후 이재명 대표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줄곧 보여왔지만, 자신의 집무실을 포함한 검찰의 경기도청 압수수색 이후 태도가 달라졌다.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을 두고도 “야당 대표에 대한 무리한 구속 시도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과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조선일보등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국감 당시김혜경 법카 유용 의혹을 직접 수사의뢰했다고 보도하자. 경기도 대변인실 입장문을 통해 "지난 17일 국회 행안위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법인카드 감사와 관련해 김동연 지사의 발언이 왜곡 보도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언론중재위 중재신청을 포함한 법적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하며 갈라치기성 기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
또한 경기도청에 대한 압수수색이 계속 이뤄지자 김동연 본인에 대한 공격이라며 기자회견까지 열어 반발했다. 기자회견에서는 압수수색에 대한 불쾌감을 내비친 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검찰이 선택적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반문하였다. #
2.4. 김민석
|
최고위원 회의에서 김민석 의원과 토론중인 이재명 대표 |
정확히 이야기 하면 22대 총선을 전후로 완전히 신 친명계의 좌장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이전까지 딱히 친명임을 강하게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이낙연 전 총리가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갈등이 지속되던 2023년 12월 이낙연 전 총리를 향해 사쿠라라고 빗대며 강한 비판을 가한 뒤 본격적으로 이재명 대표와 사이가 가까워졌다.
2024년 8월 전당대회에서 이 둘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 드러났는데, 득표율이 처음 공개되었을때 김민석 최고위원 후보는 3위로 나타났다. 최고위원 당선에는 넉넉하지만 수석최고위원에는 모자란 정도였는데, 이재명 당시 당대표 후보가 유세하던중 "김민석 후보 표가 왜이리 안나오느냐"라고 발언하며 대놓고 김민석 후보의 표를 유도했고, 이후 김민석 후보의 표가 급속도로 상승하며 압도적인 차이로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2] 사실상 이재명의 힘 실어주기로 수석최고위원이 된것.
이후 수석최고위원이자 더불어민주당의 브레인으로 평가받으며 이재명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와 함께 당내 현안에 제일 많은 모습을 비추고 있다.
2.5. 김부겸
|
2023년 12월 김부겸 전 총리와 만난 이재명 대표 |
같은 총리출신인 정세균,이낙연등과 마찬가지로 20대 대선 국면 이전까지는 큰 접점이 없었다. 그 전까지 김부겸은 친문의 핵심으로서 국무총리의 자리까지 올랐을만큼 중앙정계에서 큰 존재감을 드러낸 반면 이재명 대표는 당시 본인의 인지도와는 별개로 경기도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할수 있었다. 애초에 김부겸 전 총리 역시 경기도 군포시에서 3선을 한 경력이 있지만 이재명이 성남시장에 당선되어 성남에서 정치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무렵에는 대구광역시로 옮겨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정치를 하였기도 하였고. 2023년 12월에는 이재명 대표가 김부겸 전 총리를 예방하고, 21대 총선에서는 이해찬 전 총리와 함께 공동선대위원장을 제의하고 김 전 총리가 받아들이면서 같이 22대 총선을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로 이끌기도 하였다.
하지만 20대 대선 이후 친명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고 이재명 대표 역시 국회 입성과 더불어 당대표까지 선출되며 중앙정계에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내비치자 이 대표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를 간간이 내며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21대 대선이 조기에 열릴 가능성이 커지자 김부겸 전 총리가 이 대표를 비난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비이재명계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다만 이재명 대표가 허위사실공표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당원으로서 한시름 덜었습니다."라며 옹호하기도 하였다.
2.6.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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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amu.wiki/thread/FunctionalDeafeningObsequiousWealth|토론]]을 통해 이재명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소개한 영상 위주의 서술을 존치한다.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나무위키:기본방침/이용자 관리 방침#편집권 남용|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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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인생에 결정적 한 방!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마디. |
사법연수원 시절 돈도 없고 경력도 없어서 과연 변호사로 먹고 살 수 있을지 하는 마음에 변호사가 되기엔 겁이 났다고 한다. 이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연에 와서 "변호사는 굶지 않는다"라는 말을 하면서 과감하게 변호사 개업을 했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노무현이 정치개혁과 선거개혁을 하면서 정치는 1도 할 생각이 없었던 이재명이 이를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나 이재명도 참여정부 레임덕 시기에 정동영과 함께 노무현을 비판한 적이 있다.# 안희정, 이광재, 유시민 등과 같이 마지막까지 노무현을 지지한 친노는 아니었고, 대다수의 민주당 정치인들과 비슷하게 참여정부 말기에 거리를 두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재평가를 한 케이스다. 다만 정동영처럼 확실한 비노 노선을 탔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대선주자가 되고 난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호의적인 것과는 별개로 친노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많이 냈었다.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선 경선 당시 '정치적 유산을 이용해서 정치를 하고 싶지 않다'며 문재인, 안희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2.7.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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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장 시절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와의 회동 |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만난 자리에서도 이재명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충언을 함과 동시에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도 제시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정부를 작심 비판한 적도 있다.#
"저 이재명, 내년 3월 9일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대통령 취임식장에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굳게 손잡고 함께 설 것입니다."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확정 연설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 이후에는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서 이재명 지사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또, 경선 절차가 원만하게 진행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5]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확정 연설
20대 대선 낙선 이후[6]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위로와 격려 차원에서 이재명 대표를 비공개로 초청해 환담을 나눴다는 사실이 이재명 고문의 계양 을 국회의원 예비후보 출마 기자회견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또한 이재명이 당대표에 오른 이후 공식적으로 양산에 있는 문재인을 만나 친문과 연대하며 친문통합을 천명했다.
'친문 통합' 양산행‥"친문·친명은 같다"
이재명은 친문계, 문재인은 친명계?…“친문·친명 지지자 같아”
당사자들도 같이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한때 퇴임 이후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는 트위터에 좋아요를 누르는 등 이재명 대표에게 비판적인 입장이 아니냐는 추측도 존재했으나.# 2023년 1월 2일 이재명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행사 초대도 거부하고 평산마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러 가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이 대표 중심으로 민주당이 민생경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며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가 절대 후퇴해선 안 된다"고 말하며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거나#, 이재명 대표의 단식 투쟁을 전화 통화#로 응원하거나, 병문안#까지 하는 등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피습을 당하자 병문안을 가려고 하고, 1월 6일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과 가진 오찬에서 "나는 이제 늙고 힘이 없지만 여러분들이 야권통합을 통해 꼭 정권교체를 이뤄달라"는 당부를 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사실상 이낙연의 신당창당을 우회적으로 반대하는 발언을 하면서 이재명 대표에게 힘을 실어 줬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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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는 이재명 대표 |
그리고 피습 이후 이재명이 평산마을에 방문하자 그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8.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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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포옹하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
박원순 전 시장이 사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둘의 정치적 서사가 상당히 비슷했다. 둘다 인권변호사 출신으로서, 국회의원 당선 경험 없이 지자체장으로만 정치경력을 보냈다. 또한 둘다 문재인과 나쁘지 않은 사이라고 공언한것과 별개로 비문재인 계파의 중심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7대 지선 이후로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라는, 수도권의 두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만나게 된 둘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체급이자 매우 막역한 사이로 평가받았다. 박원순 전 시장 역시 박원순계를 구성할 만큼 정치적 체급이 큰 인물이라 친명계에 들어갈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19대 대선 시점에서 박 시장이 경선 출마를 포기하며 은근히 이 시장을 밀어줄만큼 오래전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둘의 정치적 서사는 공교롭게도 일주일을 전후로 엇갈리고 말았다. 2020년 7월 9일 박원순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된 박원순 전 시장은 자살을 선택하며 정치 경력이 끝나고 말았고 2018년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혐의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던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일주일 뒤인 2020년 7월 16일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며 정치인생에서 제일 큰 고비를 넘겼고, 이 기세를 이어 대선후보에도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부터 긴밀히 소통해온 관계였기 때문에 이재명도 박원순 시장의 비보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 지자체장으로 언제나 자신보다 한발 앞서나갔던 인물"로 평하며 황망한 작별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추모하였다.
2.9.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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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과 여의도에서 오찬을 가진 모습 |
이해찬은 이재명의 스케줄에 같이 나타기도 했고, 이해찬계 인물들이 대거 이재명 캠프에 들어가는 등 사실상 이재명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선대위에 합류하여 일정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2.10.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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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당시 전현희 후보의 유세 상황 |
이낙연,전해철과 함께 비이재명계를 대표하고 있으며 임종석 전 실장이 이재명 대표에게 계속해서 날선 비판을 가하고 있어 사이는 좋지 않은 편이다.
2022년 8월 이재명이 당대표에 선출될때부터 20대 대선과 8대 지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며 비토의 목소리를 냈고, 22대 총선 국면에서 정계 은퇴 선언을 깨고 중구,성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선언을 하였지만 전현희 후보를 공천한 친명계로부터 험지 차출이 아니면 공천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국면 이후에도 이재명 대표가 아니더라도 정권교체가 순탄히 진행되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이재명 일극체제를 비판하였고, 다시 한번 20대 대선 패배를 언급하며 역대 최초로 레임덕 없이 말년까지 지지율 40%를 넘긴 문재인 정부를 이어받지 못하고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점을 재차 비판하며 이재명 대표 체제에 대해 반기를 들고 있다.
2.11. 전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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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국회 예산정책협의회에서 |
이재명 대표가 당내 중앙에 입성하기 전인 자치단체장 시절 가장 대립했던 당내 정치인중 한명이었다.
둘의 인연은 7대 지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7대 지선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승으로 끝난 선거와는 별개로 이미 수도권 지역에서는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의 성공을 기반으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석권이 유력하였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은 성남시장과 19대 대선 경선에서 쌓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체급을 더 키우고자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였고, 친문 진영 역시 2대 지선에서 임창열 후보가 당선된 이후 무려 16년만에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탈환이 유력한 상황이었고, 가장 많은 유권자들이 모여있는 경기도지사로 당선된다는 것은 유력 정치인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기회기 때문에 친문의 핵심인 전해철을 경선에 출마시켰다.
서로 경기도지사 경쟁자로서 경선에 출마하였고, 이때 이재명 후보가 전해철 후보에게 강한 공격을 했을때 19대 대선 경선 국면과 맞물려 친문과 강력히 대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2018년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혐의 사건 2심에서 유죄가 나오자 전해철 의원이 이재명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며 갈등이 봉합되나 싶었지만 22대 총선에서 전해철 의원이 경선에서 탈락하며 다시 갈등의 불씨가 지펴졌고, 전해철 의원 역시 김동연 지사의 경기도정자문위원회 위원장에 합류하며 이재명과 대립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2.12. 정동영
과거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초대 대표를 역임할 정도로 매우 가까운 사이이며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인물이었다. 과거 정통 대표 당시 연설# 그리고 정동영도 17대 대선 당시 이재명을 대통령 후보 비서실 수석부실장에 임명했었다. |
성남시장 후보시절 정동영 상임고문의 지지유세[8] |
2022년 1월 17일 정동영이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는데 가장 힘을 썼다.
2.13. 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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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호 의원과 회의중인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보수세가 강한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 갑에서 정치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몰라도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전까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상당한 강경파로 평가받은 이재명과 달리[10] 정성호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상당히 중도적인 성향으로 평가받으며, 때로는 당내에서는 우파로도 평가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지만 정성호 의원과 이재명 대표의 관계는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으며, 이재명의 당대표 시절 최대위기였던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에도 부결을 던졌으며, 허위사실공표 사건과 위증교사 사건에도 꾸준히 무죄를 주장하며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이대표의 리더십은 굳건할것이라며 이재명 대표를 엄호하는 입장에 서고 있다.
2.14.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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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총선을 앞두고 회담을 가진 이재명 대표와 정세균 전 통합민주당 대표 |
이재명 대표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정세균 전 대표 시절 민주당 경기동부 지역 책임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한때 정세균계로 분류된 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이재명이 후보로 확정되었으나 이낙연 전 대표가 사퇴 후보의 무효표 처리 논란으로 승복하지 못하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결과에 승복하라면서 이재명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2.15. 추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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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민주당 최종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과 포옹하는 추미애 |
대선 경선 과정에서 추미애 전 장관은 이재명 후보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이러한 모습에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 후 사퇴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으나 경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결과에 일부 이낙연측 의원, 지지자들이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함께 경선에 참여한 박용진, 정세균, 김두관, 이광재[11] 등과 함께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며 다시 한 번 이재명에게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 범진보계 정치인
이재명의 정치 성향이 민주당 내에서는 가장 왼쪽이다 보니 정의당 등 진보정당과도 접점이 있다. 다만 기본소득당 소속 인사들은 이재명에 우호적인 반면 정의당 인사들은 이재명을 연이어 공격하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을 계기로 정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을 적폐세력으로 간주하며 강도 높은 비난을 시작했기 때문이다.또한 이재명이 기본소득, 무상시리즈 같은 진보적 정책의제를 선점하면서 정의당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졌는데, 정의당 입장에서는 그대로 둔다면 당의 지지기반을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재명에게 결코 우호적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선 기간에는 본인이 심상정에 비해 평균적으로 보수적인 공약을 내놓았기에 대립 양상이 점차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3.1.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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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0대 대선 공개토론회에서 |
2021년 기준으로 정의당부터가 더불어민주당을 우파정당이라 보고 있고, 그래서 사이는 좋지 않은 편이다.
2022년 2월 20대 대선 후보 토론에서 심상정 후보는 정치적으로 더 멀리 있는 윤석열 후보나 안철수 후보보다 이재명 후보를 향한 공세를 더 펼치기도 해, 둘의 관계가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선거가 임박해서 이재명이 다당제를 원칙으로 한 정치교체 어젠다를 제시했을 때, 심상정은 냉소적으로 반응하며 거부했고 이재명은 그 상태에서 매우 근소하게 낙선했기 때문에 관계가 좋아질 수 있을지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2024년 4월 11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른 다음날에 심상정이 공식적으로 정계 은퇴 선언을 함으로서 앞으로 접점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3.2. 용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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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단식중인 이재명 대표를 찾은 용혜인 대표 |
용혜인은 타당 의원 중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친명으로 분류되기까지 할 정도로 굉장히 사이가 좋다. 이재명이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는 현재 용혜인이 속한 기본소득당과는 호흡이 잘 맞고 있다. 용혜인이 국회의원 임기 중 아이를 출산하자 이재명이 페이스북으로 축하 댓글을 남겼다. 이재명이 제안한 기본사회위원회의 자문단장으로 용혜인을 임명하며 "각별한 의미가 있다"고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용혜인도 이재명의 단식에 지지 방문을 하기도 하고, 이재명 체포동의안 표결에도 반대표를 던졌다.
3.3.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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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식에 함께 참석한 이재명과 유시민[12] | 2025년 4월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한 이재명 예비후보와 진행자 유시민[13] |
유시민이 정계에 한창 몸을 담고 있을때 이재명은 4대 지선과 18대 총선에서 패배하는 등 아직 당선조차 되지 못한 신인 정치인이었고, 5대 지선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 커리어를 시작할때는 대조적으로 유시민이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시기였다. 또한 이재명이 본격적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며 박근혜 정부에 대항하기 시작해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을때 유시민은 이미 정계를 은퇴하고 정치평론가로서 살고 있었으니 정치인 대 정치인으로서 맞닥뜨린 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무래도 이재명이 처음 대선주자로 각광받을때에는 비문재인 계열의 정치인으로 평가받았고, 본인 역시 친노,친문이 아니라는 점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조하다 보니 친노의 핵심 중 한명이자 친문 어용 지식인으로 본인을 평가하는 유시민과 온건한 사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실제로 7대 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것을 두고 썰전에서 '이 당선을 두고 정치인 이재명이 정치인 남경필을 이긴 것인가? 경선에서 같이 경쟁하던 전해철 후보가 대신 출마했어도 이정도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재명 후보의 득표율과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 득표율은 차이가 얼마 안나지만 남경필 후보의 득표율과 자유한국당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 득표율은 꽤나 차이 날정도로 남 후보의 득표율이 높았는데, 이는 이재명의 승리가 아닌 민주당의 승리였다. 하지만 당선 소감에서 이재명 후보가 민주당 지지자들이나 민주당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했다'는 뜻의 취지를 밝히며 이재명 당선자에게 비토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시민이 잠시 정치평론을 그만두던 2020년 4월~2021년 12월 사이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전까지만 해도 이재명이 당의 비주류 후보이자 당의 대부분이던 친문과는 먼 사이로 평가받았지만 이 1년 8개월 동안 대선후보였던 박원순,이낙연이 차례로 몰락하고 오히려 3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부활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대 대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될 정도로 당의 주류가 된 것이다. 이 상황과 맞물려 평론가 복귀 이후 유시민은 친명 평론가로 보일 정도로 이재명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의 대선 선출 이후 유시민의 노무현재단 이사장 퇴임이 다가오자 이낙연계 진영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다면 유시민의 정계 복귀가 답안일수도 있다라며 이재명 끌어내리기를 시도했지만 다수의 정치인들이 절대 그럴일이 없을 것이라며 일축하였고,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유시민 본인과 제일 가까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후단협에게 끊임없이 후보 사퇴를 종용받으며 당했던 일들을 생각한다면 이재명 후보에게 후보 사퇴를 강요한다는 것이 오히려 난이도 높은 일이었고, 유시민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계자 역시 "후단협이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을 괴롭혔는지 잘 아는 유 이사장이 그런 쪽에 귀를 기울일 일은 절대 없다"라며 설을 일축했다.
이후 이재명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당선되자 당대표를 향한 공격을 그만두라며 한때 친문이었던 정치인까지 과감하게 비판하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고, 대놓고 반명 스탠스를 보이지는 않지만 완전히 친명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대선주자로서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김동연 경선후보에게 이러면 안된다며 강하게 질책했고, 심지어 같은 친노-친문 직계이자 가까운 사이인 김경수 경선후보에게도 '이번 경선에서는 착한 2등 전략을 써야 한다'라며 이재명 후보에게 과한 공격을 자제하라는 평론을 남기기도 하였다.
3.4. 이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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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이낙연 전 대표와의 회동[14] |
대선 경선 당시엔 라이벌 관계였고, 경선 직후 결선투표 여부를 두고 이낙연과 지지층들이 불복까지 했었지만 결국 승복선언을 하고 물러나면서 흐지부지됐다. 대선에서 이재명이 패배한 이후 잠시 침묵하는 사이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수장이 되어 여기서 승리를 한다면 친낙계가 다시 주류를 잡을수 있었으나... 친명에 속하는 김동연이 경기도지사에 신승할 정도로 대참패를 겪은 이후 이낙연과 친낙계는 기반을 완전히 상실했고 당대표 선거에서도 완전히 밀리자 모든 책임을 진다며 미국으로 넘어간 이후 한동안 접점이 없는 상태다. 친문세력들 중 국회에 남은 친이낙연계도 당내 주류가 된 이재명계에 밀려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고 친문 중 이재명에 붙은 의원들은 힘을 유지하게 되며 친이낙연계는 더더욱 위축되었다.
2023년 4월, 이낙연이 장인상을 치를 때 이재명도 조문하러 와서 재회했다. #
6월이 되자 이낙연이 귀국했지만 현재까지는 접점이 없는 상태다. 9월 이재명이 단식투쟁에 나섰을 때 농성장을 찾아 단식 중단을 호소하기도 했다.
2024년 4월에 열리는 22대 총선이 다가오며 100일 남짓 남은 2023년 12월에 다시 이낙연과 이재명이 충돌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재명은 친명계들을 중심으로 요직에 앉히며 이낙연계와 충돌을 빚어왔는데 공천권까지 쥐며 총선에 개입할 의지를 보이자 이낙연과 이낙연계는 결국 창당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분열을 경계하는 입장도 양측 모두 일정부분 공감하기는 했다.
결국 사태를 봉합하고자 12월 말 이재명과 명낙회담이 성사되었고 이재명은 "현 정권에 맞서 분열은 옳지 않다."며 탈당을 멈추라는 권유를 했지만 이낙연은 '총선 개입하지 말아라' 라는 서로간의 이견만 확인하는데 그쳤고 이낙연 측은 "이재명 당대표는 변화의 의지가 없었다."며 짤막한 후기를 남기며 사실상 갈라지게 되었다.
결국 이낙연은 탈당후 신당을 창당 하였으나 22대 총선에서 궤멸수준의 냉혹한 성적표를 받아든 반면, 이재명은 자신이 진두지휘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입지를 되찾게 되며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게 된다.
3.5.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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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총선 이후 첫 만남을 가진 두 당대표 |
두 사람은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크게 반발한 (당시)성남시장 이재명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가자 조국이 지원 및 위로차 방문하여 토크 콘서트를 진행한바 있다. #
조국 사태 당시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가 조국 사태에 대하여 대신 사과하는 행보를 보이는 등 조국을 멀리하려 할 때도 있었지만, 22대 총선 당시 조국이 조국혁신당을 창당한 뒤 비례대표로 범민주계 지지자의 투표율을 끌어올려 이재명 체제의 민주당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고, 조국혁신당의 선전으로 무시할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갔기에 22대 총선 이후 자주 회동하는 사이가 되었다.
조국 전 대표 역시 이재명 대표와의 화합을 강조하며 원팀을 약속하였고,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지역을 제외하면 단일화에 쉽게 협조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둘의 사이는 좋아보이는 편. 조국 전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고 피선거권이 박탈되었지만 이전부터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시 사면을 내심 기대중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최종심 선고 이후에도 이재명 대표가 조국 사태에 대한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 등 우호적 관계는 유지되고 있다.
4. 범보수계 정치인
4.1. 권성동
두 사람은 중앙대학교 법학과 80, 82학번으로 둘이서 술자리도 자주 가졌고, 사법고시도 함께 준비하는 등 매우 절친한 선후배 관계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경쟁 정당 소속이지만, 권성동 대표와의 만남 자리에서는 여전히 정서적으로 가까운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특히 이재명이 사법연수원생이던 시절에는 권성동의 아내인 김진희가 자신과 친했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이재명 대표에게 미팅을 시켜준 적도 있다고 한다. 동문' 이재명 권성동...첫 대면서 '미팅 이야기'?
하지만 현재는 정치적으로 가장 대립하고 경쟁하고 있는 거대양당의 대표들이기 때문에 표면적인 공적인 관계는 그리 좋지 못하다. 권성동, 이재명 또 저격했다…중대 고시반 형제의 난투극
2024년 12월 18일 당대표와 원내대표 자격으로 회동한 이재명과 권성동 |
2024년 12월 17일 국민의힘 한동훈이 사퇴한 이후 권성동이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고 더불어민주당 당사를 방문하여 회담을 가졌다.# 이재명은 권성동이 대학 선배이며 같이 옆방에서 고시 공부하던 사이라고 말했다.#
4.2.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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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종로에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을 예방한 이재명 대표 |
김종인 역시 기본소득에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재명의 기본소득 정책이 대선 핫이슈가 될 거라고 예상하거나# 이재명이 기본소득에 대해 설명할 자신이 없는 것 같다고 보는 등# 비록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이재명에 은근히 관심을 보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이재명도 정권교체로 생각하는 국민이 많을 거라고 보고 있다.# 이후 국민통합정부에 참여한다는 설이 제기되었으나, 최종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이재명과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바뀐 것도 사실이라서, 향후에 그를 정식으로 도울 가능성도 크다.[15]
더불어민주당의 대선과 지선패배이후 친이낙연계를 중심으로 이재명 책임론이 대두되자, 김종인은 “민주당 선거 패배가 이재명 탓이라는 것은 비논리적인 오판”,“이 의원은 3·9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졌고, 1610만표라고 하는 엄청난 표를 얻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보궐선거에 출마를 했기 때문에 지방선거를 참패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논리상으로 설명 할 수가 없다"라며 이재명을 매우 강하게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4.3.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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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故 박종철 열사의 어머니 故 정차순 여사의 장례식에서 |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당시 이재명은 이준석 후보를 지지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를 향해서 "이준석 현상은 변화의 시작"이라면서도 "극우 포퓰리즘으로 흐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견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
이후 대선정국이 되면서 두 사람 간에도 가시 돋친 설전들이 오갔다. 이재명은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과 관련해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전 원내대표를 향해 각각 봉고파직(封庫罷職)[16], 위리안치(圍籬安置)[17]하도록 하겠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고, 이에 이준석 대표는 "이 지사의 추악한 가면을 확 찢어 놓겠다", "본인이나 셀프 봉고파직에 위리안치하라"고 응수했다. # #
이후 이재명이 당 대표에 출마하면서 서로 양당의 대표로서 만나게 되나 싶었지만, 그 전에 이준석이 당대표 직무정지를 당하면서 만날 일은 없게 되었다. 다만, 이준석이 22대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면서 반윤 연대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껄끄러웠던 관계의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생겼다. 일단, 이준석 본인은 반윤 연대를 목적으로 창당한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본래 이준석의 성향도 온건 성향이라서 사상적으로 마냥 충돌만 할 수준은 아닌데다, 똑같이 윤석열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점과 같은 야당 인사로서 정책 면에서 협력할 부분이 꽤 많다는 점에서[18], 이전처럼 적대 관계로 만날 가능성은 많이 낮아졌다.
4.4. 이명박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이재명 대표. |
4.5.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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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제6차 촛불시위에서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시위카드를 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
박근혜가 대통령 시절 이재명은 성남시장이었다. 국정농단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이재명은 박근혜의 탄핵을 최초로 주장했다. 이로 인해 이재명의 인지도도 꽤나 올라갔다. 또한 이재명은 박근혜의 사면에 원칙적으로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23]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박근혜를 사면했다고 하자 아쉬운 면이 있다면서도 청와대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박근혜의 친동생인 박근령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대위 총괄특보단 고문에 임명되었다. # 그리고 일부 친박 단체들이 “탄핵 주범은 국민의힘”이라며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4.6.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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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대구시청을 방문한 이재명 대표 |
큰 접점은 없으나, 서로 좋게 보지 않는 편이다.
홍준표가 윤석열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후보로 확정될 기미가 보이자 직접 이재명을 비난하며 공방을 벌였다. 홍준표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재명을 잡아넣을 것", "이재명은 구치소에 가야 할 사람"이라며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 그러나 이후 11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홍준표가 탈락한 이후엔 다소 의미가 퇴색되었으나 현재 홍준표는 대구시장으로, 이재명은 민주당 대표로 부활하여 둘 다 다시 차기 대권을 노리는 중이다.
이처럼 완전히 상극임에도 일부 홍준표 지지자들이 경선 이후 이재명 지지로 선회하거나 대선에서 결국 이재명을 뽑는 경우도 있었다.[24]
홍준표/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두 사람의 스탠스가 완전히 정반대임에도,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2023년 5월 10일, 이재명과 홍준표가 공식적으로 처음 만남을 가졌다. 다만 만나자마자 오랜만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비공식적으로는 몇차례 접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피습 사건 당시 부산에서 헬기로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일부에서 과잉의전으로 공격하자 이재명은 야당대표로써 국가 서열이 높은 만큼 당연하다며 옹호해주기도 하였다.
4.7.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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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윤석열-이재명 영수회담에서 |
문서의 이재명 문단 참고
2024년 현재 이재명의 가장 큰 정치적 라이벌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많은 대중들은 국정농단 사태와 19대 대선을 계기로 서로의 존재를 알고, 20대 대선 정국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치적 대면을 시작했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대중들의 인식과 달리 두 사람은 정치에 입문하기 이전부터 구면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이재명이 성남시에서 인권변호사 활동을 하던 시기, 공교롭게도 윤석열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 소속 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같은 지역에서 일하다보니 검사-변호사 관계로 자주 대면하게 되었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투쟁 당시에는 법정에서 직접 대면하기도 했는데, 당시 파업을 주도한 신상진 전 의협회장을 기소한 검사가 윤석열이었고 이재명은 신상진의 1심 변호사를 맡았다. 1~2심에서 신상진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의사면허가 위태로워졌지만, 대법원에서 파기환송[25]되어 벌금 200만원으로 감형되어 의사면허 취소를 피했다.
2010년대에 접어들어 이재명이 정치에 진출하고, 윤석열은 박영수 특검 밑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조사하며 다시 법조계에 복귀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윤석열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에 임명되어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이끌어냈다. 이 때문에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임명되기 이전까지는 같은 진영의 인물이었다.
지금으로써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2017년 대선 잠룡 시절 "1호 공약으로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겠다"라고 한적이 있다.#
그러나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 조국을 비롯한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개시,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과 반대되는 노선을 타게 되었다. 윤석열은 이 후 1년 6개월간 검찰개혁을 놓고 문재인 정부와 갈등을 벌이다 결국 총장직을 사퇴, 검찰을 나온 뒤 야권인 보수 진영으로 들어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 윤석열과 이재명은 다른 진영 정치인으로 분류되었으며, 각자 서로의 진영에서 대권지지율 1위를 차지하면서 정치적 라이벌로 급부상하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본선에서 두 사람은 각 당의 최종 후보로 선출,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를 펼치며 치열한 공방을 벌이게 된다. 각 진영의 지지기반과 세력이 이전 대선때보다 많이 분열되면서 결과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국힘 진영에서 홍준표 계열 인사들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독자 출마로 지지기반이 분열되었으나 막판에 들어 안철수와의 단일화가 성공하면서 윤석열은 0.73% 차이의 아주 근소한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26]
이재명은 대선에서 아쉽게 낙선했지만, 대선 기간동안 쌓아놓은 당내 입지를 바탕으로 3개월 뒤 열린 6.1 지방선거에 출마해 계양 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27]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지만, 별개로 이재명의 지지도는 굳건했다.
2개월 뒤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77.7%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대표에 당선되었고, 윤석열과 이재명은 대통령-제1야당 대표로 본격적인 대결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을 향해 검찰독재라는 용어를 쓰며 그들의 정치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윤석열은 이재명의 당대표 당선 후 피의자랑 대화할 수 없다는 논리로 영수회담 한번 열지 않았고, 정부와 야당 모두 협치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그들의 관계는 갈등 그 이상으로 나가질 못하고 있다.[28]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사람은 2차전을 치르게 되었다. 둘 중 하나 패배한 쪽은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이 확실하기에 20대 대선에 이어 또 한번 진검승부를 펼쳤다. 이재명은 더불어민주연합과 민주당의 우군을 자청한 조국혁신당을 뒤에 업고 범민주진영의 총선 승리를 위해 칼을 갈았고 그 결과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윤석열 정부에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주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계속되는 공세와 명태균 게이트, 김건희 특검법등의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사당에 특전사병력을 투입하고 국회의원 등이 포함된 체포명단에 이재명 대표를 포함시키는 등 그를 '물리력을 동원해' 제거하려 하였으며, 국회의사당에서 계엄령 해제 상정 후부터 아예 대통령 호칭을 빼버리고 윤석열 이라고만 지칭하고, 윤석열 탄핵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둘의 대립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결론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이라는 최악의 자충수를 두면서 급격하게 탄핵 여론이 확산되었고 결과적으로 8:0의 결과로 탄핵이 인용되면서 이재명 대표는 사법리스크로 인해 위기에 몰리던 판을 단숨에 뒤집게 되었다.
4.8. 조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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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충돌중인 조원진 의원과 이재명 시장[29] |
2014년 성남시장 시절 국정감사 중 충돌한 적이 있으며#[30], 박근혜 탄핵을 두고 완전히 다른 입장을 견지했다. 2018년 국감장에서 충돌한 적이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 기간에 조원진 측에 직접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내 같이 국민통합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하였으나 거부당했고, 대신 조원진 측이 정책토론회를 열 것을 역제안했지만 이재명 측은 확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20대 대선때 표를 더 얻기 위해 조원진과 접촉하여 이들을 지지세력을 포섭하는데 성공했고 조원진도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윤석열에게 복수할 기회라며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을 외치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극우 친박을 포섭함으로써 중도층이 일부 떨어져나가 악수가 되었고 대선에 패배한 이후로는 아예 접점을 끊었다.
4.9.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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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한국노총 전국단위노조대표대회에서 |
경제학자 출신인 유승민은 이재명의 기본소득 제도를 가장 날세게 비판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31]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에 JTBC에서 토론을 했을 때에도 이재명이 유승민의 "보수 개혁"에 대해서 거짓말한다고 인신 공격한 적이 있기 때문에 유승민이 이재명을 좋게 볼 턱이 없다.[32]
그러나 이재명은 유승민의 공약 일부를 수용 하는 등 그에게 구애를 했다. 그리고 유승민도 8회 지선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면서 필요하면 이재명의 정책도 계승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은 유승민이 이재명에게 호의적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경기도에서 아직까지도 높은 이재명 지지율을 염두에 두고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4.10.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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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국민미래포럼에서 |
이재명이 보편복지인 기본소득을 주장한다면 오세훈은 선별복지인 안심소득을 핵심 정책으로 밀고 있어 이재명과는 정치/정책적으로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특히 이재명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보편적인 복지 정책을 강조해 왔지만 오세훈은 전국적인 대세이던 무상급식마저 폐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복지정책에 대한 시각은 완전히 정 반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8회 지선 국면에서는 이재명이 세빛섬을 세금둥둥섬이라고 부르며 오세훈의 서울시정을 비판하자 오세훈이 그야말로 조작의 화신이라며 응수했다.[33]
다만 의외로 둘의 행적에 접점도 꽤 많은 편인데 흥미롭게도 둘 다 민변 출신의 변호사이다. 이재명은 과거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민변에 일찍히 발을 들였고 오세훈 역시 일조권 소송을 계기로 민변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때문에 정치/정책적으로는 부딪히는 사이여도 서로 유능하다고 인정하는 모양.
4.11. 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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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세계지식포럼에서 |
여당 비대위원장과 야당 당대표로 서로 극명하게 대립하였다.
4.12. 남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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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썰전에서 만난 모습 |
남경필이 경기도지사였을 때 이재명은 산하 기초자치단체장인 성남시장이었으며, 이재명이 성남시 자체 예산으로 시행하려던 복지 사업[34]에 남경필이 제동을 거는 등 당시에도 충돌이 있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후보가 되고 남경필과 서로에 대한 네거티브를 하면서 갈등이 증폭되었다.[35] 따라서 사이가 좋을 리가 없다.
그러나 남경필이 정계에서 은퇴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는 여전히 정계에서 활동중인 이재명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경필이 정치에 손을 놓은 만큼 선거로 쌓인 앙금이 지금까지 남아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4.13.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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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비상계엄해제안이 통과된 이후 |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수락하며 영입되어 정치인으로써 시험대에 오른채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 부임 이후 2018년 이재명 허위사실공표 혐의 사건, 이재명 백현동 용도변경 논란, 김성태와 안부수의 대북송금 혐의 사건, 대장동 사건 등등 이재명하고 관련된 의혹들을 조사하였고 체포동의안을 2번이나 제시하고 2차에는 가결되었으나 구속심사에서는 기각되는 등의 일을 겪었으니 당연히 한동훈과의 관계는 윤석열 다음으로 최악의 관계이자 원수 사이이다.
이재명은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특검법 동시에 하자며 추진하면 한동훈은 "총선용 악법이자 방탄용 악법"이라며 반발했고 이재명을 따르는 친명계 의원들이 공격 강도가 심해지면 한동훈 또한 이재명 이름은 거론하지 않지만 이재명을 저격하는 발언으로 응수하기도 하였다.
비대위 임명 이후에는 관례로써 야당 대표인 이재명과 만났을때 서로간에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기는 하였다.
[1] 일명 7인회로 언급되며 원조 친명으로 포함되는 인물들중 아직 원내에 잔류하고 있는 인물은 김영진,정성호뿐이며 김영진 의원은 현재 원내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고, 정성호 역시 겉으로는 원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2] 반대로 친명계를 '명팔이'라고 비난하며 반기를 든 정봉주 후보는 1위에서 6위까지 떨어지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어 최고위원 당선에 실패했다.[3] 김대중-노무현 관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념이 다르다고 정치인들이 서로 주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의외로 적은 것과 마찬가지다.[4] 국무회의 문서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원래는 장관급 광역자치단체장인 서울시장에게만 지자체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5] 이 입장은 필연캠프 쪽에서 불복 입장을 밝히기도 전에 나왔다. 덕분에 필연캠프 측에서 불복 입장이 나오고도 금세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6] 여담이지만 만약 이재명이 20대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이명박근혜의 민주당 버전으로 쓰일 수도 있었으나 윤석열의 당선으로 실현되지 못했다.[7] 당연히 문재인이 이낙연을 지지하지 않는 게,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은 각각 당이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쪼개지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당을 수습해 평화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더불어민주당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는 성과를 거뒀다. 2024년 현재 가장 최근에 민주당 분당 사태를 터트린 안철수의 입지가 어떻게 됐는지를 안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역린을 건드리는 발언인 셈이다.[8] 왼쪽부터 순서대로 박영선, 이재명, 정동영.[9] 다만 본인은 자신이 아무 계파에도 속하지 않는다며 완강히 부인했다.[10]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후 21대 대선이 조기에 열릴 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 협치를 강조하고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우클릭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인식은 강경파 인상이 강하다.[11] 이광재는 예비경선 과정에서 정세균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하였다.[12] 이 당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함께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안희정 전 충청남도지사가 참석하였다.[13] 도올 김용옥도 참석하였다.[14] 이 대화 이후 둘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갈라서게 되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둘의 가장 최근 사진이 되었다.[15] 다만, 김종인은 뼛속까지 내각제주의자인 반면 이재명은 철저한 대통령중심제를 지향하며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를 혐오하는 사람이라 결국에는 김종인이 이재명을 돕지 않을거라는 이야기도 많다.[16]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파면하고 창고를 봉해 잠그는 일.[17] 유배된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형벌[18] 이재명과는 달리 선별적 복지를 지향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이준석 본인을 필두로 한 이준석계 전원이 복지 및 노동권 강화 문제에 관심이 크기때문에, 똑같이 복지 및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재명계 인사들과 접점이 생길 여지가 많다.[19] 반이재명 쪽에선 이 때문에 이재명을 이재명박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은 국당공파 파조 이천의 장남 이경중의 21대손이고, 이재명은 삼남 이달충의 23대손으로 둘은 즉 44촌간이다. 이 정도면 사실상 가문만 같은 남남이다.[20] 특히 이재명이 이명박한테 감정이 안좋은데다 임태희가 이명박의 최측근이면서 당시 이재명이랑 활동 영역이 같은 성남시에서 잠시 동안 겹쳤던 인물이기도 해서 기본적으로 관계가 좋지 않다.[21] 성남시장이 되기도 전에 이명박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고, 다음 아고라로 이명박 대통령을 극렬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22] 이 박창달이란 인물은 박정희 정부 시절 민주공화당에 입당해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당적을 오랫동안 이어오던 인물이다. 또한 중간에 친이명박계의 늘푸른한국당 창당에 참여한 점을 보면 알다시피 이명박의 최측근이기도 했다.[23] 다만 대구경북에서 대선 유세 중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란 워딩을 의도적으로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당연히 이재명 성격, 화법상 비유한 것이지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다.[24] 물론 이재명과 홍준표도 사이가 좋지는 않지만, 윤석열과 홍준표는 여러모로 상극이기 때문.[25] 의료법 위반의 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었다. 당시 주심대법관은 김영란.[26] 이낙연계 지지자들의 이탈, 이재명-심상정의 단일화 실패, 윤석열-안철수의 단일화 성공 3가지 중 하나라도 맞지 않았다면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불가능했다. 이재명은 당시 범보수진영 일부 인사들과 2030 여성층들을 끌어모으며 지지도를 폭넓게 넓히고 있었지만 윤석열은 자신의 당 안에서도 계파에 따라 지지기반이 많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27] 송영길이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면서 그의 지역구를 이어받았다.[28]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에 윤석열과 이재명이 영수회담을 가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협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도 있었으나, 영수회담 성사 이전부터 서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영수회담 결과 또한 이태원참사특별법 통과 이외에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29] 경기도 성남시 환풍구 붕괴사고로 인한 국정감사장에서 만난 적이 있다.[30] 여기서 조원진의 "실실 쪼개요?" 발언은 이재명이 시장 시절 출연한 양세형의 숏터뷰에서 양세형이 따라하기도 했다.#[31] 여기에 이재명을 허경영과 비교한 적이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나온 이재명의 비판적 별명이 보급형 허경영일 정도다.[32] 더군다나 이재명은 기재부 및 홍남기 등 보수적 경제관료들을 싫어하는 입장이기에 더더욱[33] 참고로 세빛섬은 민자사업이라 서울시 예산이 별도로 들어간게 없다. 건설 당시에 일었던 논란도 민간 기업에게 특혜를 준다는 식의 논란이였지 세금 낭비라는 지적은 아니었다.[34] 청년배당, 무상공공산후조리원, 무상교복. 일명 3대 복지 사업으로, 이재명의 성남시장 시기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35] 남경필이 이재명의 가족 문제를 언급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