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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6 11:33:03

인도네시아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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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원
2.1. 토착어 고전 문학(7–19세기)2.2. 네덜란드령 동인도 문학2.3. 동인도 말레이어 근대 문학(–1945)
3. 현대 문학의 역사
3.1. 45세대3.2. 50세대3.3. 66세대3.4. 1980년대와 1990년대3.5. 2000년대와 그 이후
4. 참고문헌5.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 목록

1. 개요

인도네시아에서 발달한 인도네시아어 문학을 설명하는 문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는 다른 유력한 지방어인 자바어, 순다어, 미낭카바우어, 발리어 등으로도 현대 문학 작품이 창작되었으며 창작되고 있지만, 이들 지방어 문학사에서는 인도네시아어 문학사와 같은 세대 구분을 사용하기 어려우며 관련 자료를 구하기도 상대적으로 어려우므로 일단은 인도네시아어 문학만을 다루기로 한다.

문학 작품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콤파스 그라메디아 그룹에서 운영하는 그라메디아(Gramedia)라는 서점이 전국적으로 매장을 갖추고 있는데, 한국의 교보문고와 대략 유사한 위치에 있다. 자카르타, 수라바야, 반둥 등지에서 인도네시아 문학 작품을 취급하는 서점을 찾는다면 우선 그라메디아 매장을 둘러보는 것이 좋으며, 다음으로 각 도시별로 다양한 독립서점이나 도서관 등을 찾아가볼 수 있다.

2. 기원

인도네시아 현대 문학의 기원[1]에 입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1) 19세기까지의 말레이어, 자바어[2], 순다어[3] 고전 문학, (2)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네덜란드어로 이루어진 네덜란드령 동인도 문학, 그리고 (3) 20세기 초중반에 마인어로 이루어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근대 문학을 포괄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

2.1. 토착어 고전 문학(7–19세기)

2.2. 네덜란드령 동인도 문학

19세기 후반부터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주제로 한 네덜란드어 소설과 기행문학이 융성하기 시작하였다. 동인도 문학의 역사적 시기는 크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양적으로 나눈 것이 아니라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윤리정책(Ethische Politiek, Politik Etis)이 실시된 1901년부터를 따로 구분한 것이다. 20세기 초의 많은 작가는 동인도인이면서도 유럽계 혹은 유럽계 혼혈인 이중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네덜란드어 문학에서 동인도 문학은 독특한 입지를 갖추게 되었다. 윤리정책의 시행으로 동인도 토착민도 식민 모국인 네덜란드에 유학하거나 취업하는 데 대한 문호가 개방되었고, 이에 따라 동인도인이 유학 등을 거치면서 네덜란드어로 네덜란드어 문학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독립 초기 인도네시아 작가들은 거의 인도네시아어로 작품을 썼지만, 중등교육을 받았을 경우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고 고전 및 동시대 네덜란드어 문학을 읽었다. 특히 《막스 하벨라르》는 사실상 모든 초기 인도네시아 작가가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유명하였다.[4] 하이릴 안와르(Chairil Anwar) 등 일부 작가는 네덜란드어로도 작품을 쓰려고 시도했다.

2.3. 동인도 말레이어 근대 문학(–1945)

20세기 초 말레이어(정확히는 리아우 말레이어를 토대로 형성된[5] 문어체 말레이어, 소위 '고급 말레이어Bahasa Melayu tinggi')는 네덜란드 식민 정부에 의해 각급 학교의 교육어로서 사용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몇몇 교과서가 말레이어로 편찬되었으나 양질의 독서 자료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19세기까지 말레이어는 자위 문자로 기록되어 왔는데, 네덜란드 식민 정부는 로마자로 말레이어를 표기하였고 과거 자위 문자 문헌은 충분히 로마자로 옮겨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편 로마자로는 당시 다량의 독립 출판물이 시장 말레이어나 중화 말레이어로 범람하고 있었다. 이러한 출판물은 대개 질이 낮아 식민 정부가 대중에게 유해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6][7]

따라서 네덜란드는 동인도에서 "토착민들에게 적절한 읽을거리를 제공하여"[8] 로마자 표기로 표준화된 고급 말레이어 사용을 장려하고, 이 고급 말레이어를 문어로서 발전시키기 위해 1908년 대중교육독서위원회(네덜란드어: Commissie voor de Inlansche School en Volkslectuur[9]; Komisi (untuk) Bacaan Rakyat)라는 국영 출판사를 세워 많은 말레이어 저서 및 번역서[10]를 정식 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 출판사가 1917년 확대 개편되어 대중독서국(Kantoor voor de Volkslectuur)이 되었으며, 이것이 1918년 개칭된 것이 바로 발라이 푸스타카[11](Balai Poestaka, Balai Pustaka '도서국')이다.[12] 이 출판사에서 최초의 인도네시아 근대 작가들이 작품을 출판하였다. 발라이 푸스타카 세대의 문학은 그저 유럽의 문학을 조악하게 모방한 것이었다는 평도 있으나, 고급 말레이어의 근대적 문체를 확립하였고 나아가 작가들이 동인도의 사회 문제를 문학적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토착민(pribumi) 작가가 동인도의 정치적 자유의 확대나 동인도 독립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식민정부에 의해 제약되었으며, 편집 과정에서 그러한 부분을 삭제하거나 고쳐 쓰기도 했고 아예 출판 허가를 거부당하기도 했다.[13] 발라이 푸스타카는 고급 말레이어 외에 자바어, 순다어로도 문학 서적을 출간하였으며, 발리어마두라어로도 소수의 서적을 출간하였다.

1930년대에는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보통교육 확대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 있었고, 말레이어로 된 다양한 신문이 발간되었다. 1925년의 통계를 보면 말레이어로 된 신문이 200종에 이르러 있었다(일부만 말레이어인 경우도 포함).[14] 전국적 보통교육의 보급은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15], 근대적 교육을 받은 식자층이 어느 정도 형성되었으며 또한 부디우토모 등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새로운 동인도의 이름이 될 '인도네시아'의 언어로서 인도네시아어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퍼져가고 있었다.

이미 동인도에서도 네덜란드어 잡지 《젊은 자바》(Jong Java, 1915), 《청년 수마트라 연맹》(Jong Sumatranen Bond, 1917) 등이 창간되어 봉건제를 비판하고 새로운 근대적 민족 정체성을 옹호하고 있었다. 1921년 말레이어 문예지 《말라야》(Malaya)를 창간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여 실패하였다. 그러나 《판지 푸스타카》(Pandji Poestaka, 1930), 《부상(浮上)》(Timboel, 1932) 등 말레이어 잡지의 문예면에서 말레이어 문예지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가 있었다.[16] 1933년 아르메인 파네(Armijn Pane), 아미르 함자(Amir Hamzah), 수탄 탁디르 알리샤바나 세 문학동인이 마침내 본격적인 인도네시아어 문예지 《푸장가 바루》(Poedjangga Baroe, Pujangga Baru, '새로운 푸장가')를 창간하였다. 《푸장가 바루》의 활동으로 비로소 인도네시아 문학은 시대의 요구에 발맞추어 새로운 민족주의적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3. 현대 문학의 역사

3.1. 45세대

45세대에 의해 인도네시아 독립과 새로운 국가 건설에 대한 민족주의적 청사진이 문학적으로 분출하였다. 비슷하게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는 푸장가 바루 세대가 보다 낭만적, 이상주의적이라면, 45세대는 보다 사실주의적으로 민족주의와 독립 문제에 접근하였다. 45세대의 민족주의적 신조는 아스룰 사니와 리바이 아핀(Rivai Apin) 등 45세대 문인들이 1950년 10월 22일에 《시아삿》(Siasat)에 발표한 짧은 선언문 〈글랑강 신조서〉(Surat Kepercayaan Gelanggang)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며, 이에 따라 45세대를 '글랑강 세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글랑강'이란 인도네시아어로 '경기장' , '싸움터' 내지 '활동 무대'를 뜻하는 단어로, 신생 인도네시아의 국민으로서 세계 앞에 선 작가들의 자신감에 찬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세대의 작가들은 정확하고 방대한 정보에 바탕을 둔 폭넓은 세계 인식을 강조하였으며, 선배 세대 《푸장가 바루》 등의 순진한 이상주의, 낭만주의나 '문학을 위한 문학'에 비판적이었다. 이 세대는 선배 동인도 작가들보다는 오히려 푸장가 바루 세대가 거부했던 네덜란드의 80년대(1880년대) 세대(Tachtigers) 작가들의 개인주의적 작풍에 큰 영향을 받았다.[17]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초기 인도네시아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가로 꼽히고 있다. 프라무댜는 1925년 자바섬의 블로라군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으며 민족의식에 눈떴으며, 일본 제국이 동인도에서 물러난 후 인도네시아 독립을 꿈꾸며 카라왕(Karawang)군에서 무장조직에 참가하고, 자카르타에서 단편소설 및 선전문구를 쓰며 독립 투쟁에 매진하였다. 1947–1949년 동안 돌아온 네덜란드 식민정부에 의해 구금되었지만 이 기간에 소설 《사냥》(Perburuan, 1950) 등을 썼다. 이후 《유격대원의 가족》(Keluarga Gerilya, 1950), 《해변의 소녀》(Gadis Pantai, 1965) 등을 쓰며 인도네시아 문학계의 주요 작가로 활동하였다.

아스룰 사니, 리바이 아핀과 함께 45세대의 이념적 리더였던[18] 하이릴 안와르는 초기 인도네시아 시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시인이다. 당대 유럽과 아시아의 정세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실존주의초현실주의의 영향 하에 창작 활동을 하였으며 7년가량의 시간 동안 100여 편의 시와 번역시를 남기고 앙드레 지드존 스타인벡을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하였으나, 극심한 생활고와 건강 악화로 26세의 나이로 1949년 4월 28일 요절하였다. 하이릴의 사망일인 4월 28일은 나중에 인도네시아 정부에 의해 '문학의 날'로 지정된다.[19]

3.2. 50세대

수카르노 시대인 1950년부터 1965년까지의 문학을 이끌어간 것은 문예지 《키사》(Kisah)였다. 이 시대의 문학은 시와 단편소설이 주도하였으며, 신생 인도네시아가 가지는 국민국가로서의 정체성 탐구가 주된 테마였다. 그러나 정치색이 뚜렷한 몇 개의 문화기구가 창작을 주도하여 평범한 수준의 정치적 작품들이 범람하였으므로, 직전 45세대의 하이릴 안와르 등에 의해 시도되었던 활발한 형식적 실험과 비교하면 기법 면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보기도 한다. 특히 1950년 인도네시아 공산당(PKI)과 연계된 르크라(Lekra; Lembaga Kebudayaan Rakyat, '인민문화기구')라는 민족주의적 좌파 작가들의 문예운동이 발족되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한 좌파 문예이론 도입 및 문학활동이 이루어졌다. 르크라는 여러 정치적 문화기구 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전 세대의 저명한 작가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도 르크라 소속으로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대표적인 문화기구로서 나들라툴울라마(NU)와 연계된 르스부미(Lesbumi, 인도네시아 무슬림 문화예술기구), 인도네시아 국민당과 연계된 국민문화기구(Lembaga Kebudayaan Nasional), 프르티(Perti, 이슬람 학교협회)와 연계된 르스키(Leski, 이슬람 문화예술기구), 인도네시아 사회당(PSI)과 연계된 LKASM, 가톨릭당과 연계된 LKKI(인도네시아 가톨릭 문화기구), 인도네시아당과 연계된 르스비(Lesbi, 인도네시아 문화예술기구) 등이 있었는데, 서술한 것처럼 저마다 후원하는 정당이나 이념 단체가 있었다.[20]

목타르 루비스는 수카르노 시대에 《인도네시아 라야》(Indonesia Raya, 1949–1974[21]) 지의 창간자이자 편집주간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문학 활동을 하였다. 한국 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수카르노 정권의 독재성을 비판하다 1956–1966년 투옥당하였으나, 감옥에서 대표작 《자카르타의 황혼》을 집필하였다. 인도네시아 사회의 권위주의, 부조리, 부패상을 통렬하게 비판하였으며,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였다. 1975년 2월 4일 수하르토 정부에 의해서도 2개월가량 투옥되었던 적이 있다.

3.3. 66세대

수카르노 시대 후기인 1963년 8월, 르크라의 정치적 기획에 반하여, 정치는 변화를 주도하는 특권적 문화 영역이 아니라 그저 여러 문화 영역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을 견지하며 르크라에 맞서는 '문화선언'(Manifesto Kebudayaan, Manikebu) 그룹이 결성되었다. 이에 속하는 작가들로는 한스 야신(H.B. Jassin), 위라트모 수키토(Wiratmo Soekito), 트리스노 수마르조(Trisno Sumardjo), 자이니(Zaini), 수 혹 진(Soe Hok Djin), 아립 부디만(Arief Budiman), 구나완 모하맛, 타우픽 이스마일 등이 있었다. 이들은 수카르노 퇴진 이후에도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와 크게 반목하지 않는 선에서는 활동을 이어 갔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66세대의 지도자 격 인물이 되었다.[22]

1966년 7월 15일 목타르 루비스가 창간한 문예지 《지평》(Horison)은 시대의 이정표였다. 1965년 9월 30일의 쿠데타 후 이어진 혼란기에 좌파 정치 세력은 심하게 위축되었고 사회주의자들은 탄압받게 되었다. 르크라는 해체되었고, 가담했거나 연계된 작가들은 투옥되거나 인도네시아를 떠났다. 이 시기 망명한 많은 좌파 작가들은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이나 공산권에서 문학 활동을 하였다.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이때 부루 섬에서 유형 생활을 하며 부루 4부작[23]을 집필하였다. 50세대에 속하며 하층민의 소외와 정치적 풍자를 주로 다루는 작품활동을 했던 시인 렌드라는 이 시기 저항시인의 지도자격인 위치로서, 1974년의 학생 시위 등에서 수하르토에 맞선 반정부 운동의 중심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지평》은 정치적 탄압과 저항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유지되었는데, 1966–1975년 이 문예지는 인도네시아에서 공식적으로 출간이 승인된 유일한 문예지였으며 자연히 여기에 실린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수하르토의 신질서 체제 하에서는 전반적으로 문학의 탈정치화가 이루어졌으며, 90년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작가들은 탄압을 두려워하며 공개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을 삼가게 되었다. 66세대 가운데 이완 시마투팡과 푸투 위자야가 인도네시아적인 마술적 리얼리즘을 시도하는 등 이러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문학적 실험은 활발히 이루어졌다.[24] 1968년 11월 10일 자카르타 주지사 알리 사디킨(Ali Sadikin)이 설립한 문화예술 센터 타만 이스마일 마르주키(Taman Ismail Marzuki, TIM)는 다양한 문학적 실험의 중심지가 되었다.[25]

우마르 카얌은 학계에서 사회학자로 활동하면서 독립적으로 참여적 목소리를 내었다. 구나완 모하맛은 《템포》(Tempo, 1971년 창간)라는 독립 언론을 창간하고 편집하며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로서 활동하였는데, 《섹스, 문학, 우리》(Seks, Sastra, Kita, 1980) 등이 초기 대표작이다. 수타르지 바크리는 구나완 모하맛, 사이니 카엠(Saini K.M.), 압둘 하디 웨엠(Abdul Hadi W.M.) 등이 시도한 70년대의 성찰적 실험시를 가장 탁월하게 전개한 시인으로 손꼽힌다. 다나르토는 초기부터 부조리성을 서사 구성에 활용하여 수피 신비주의의 강한 영향 하에서 단편소설을 썼는데, 신과 인간, 세계 간의 관계에 대한 신비주의적 통찰이 돋보이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3.4. 1980년대와 1990년대

이 시대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은 2018년 현재 인도네시아 문학의 중견 작가군을 이루고 있는 세대로, 이에 압리잘 말나(Afrizal Malna, 1957–), 투티 헤라티(Toeti Heraty, 1933–), 익사카 바누(Iksaka Banu, 1964–), 젭리 알카티리(Zeffry Alkatiri, 1959–), 니르완 데완토(Nirwan Dewanto, 1961–), 세노 구미라 아지다르마(Seno Gumira Ajidarma, 1958–), 아쳅 잠잠 노르(Acep Zamzam Noor, 1960–), 조코 피누르보(Joko Pinurbo, 1962–), 위지 투쿨(Widji Thukul, 1963–1998년 실종) 등이 속한다.

특정한 한두 문예지가 세대 전체를 주도하던 시대는 이때 막을 내렸다. 국민적 정체성, 노동 문제, 시적 서정성, 역사와 식민주의 등은 여전히 중요한 문학의 주제였지만, 그 외에도 젠더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가 문학의 전면으로 나오게 되었다. 투티 헤라티는 박학다식함으로 논쟁에서 동시대 남성 문인들을 압도하며 인도네시아 문학에 페미니즘을 도입한 선구자 격의 시인이다. 세노 구미라 아지다르마는 특유의 저널리즘과 초현실주의가 혼합된 스타일로 동티모르에서 벌어진 인도네시아군의 학살 사건이나 대학의 급진적 학생운동, 아체에서의 폭력사태 등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경제 성장으로 인해 증가한 중산층 독자도 출판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80년대부터 힐만 하리위자야(Hilman Hariwijaya, 1964–) 등에 의해 문학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아직 다양한 분야의 장르 문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가령 과학소설의 경우, 인도네시아 작가가 쓴 최초의 장편 과학소설로는 조코 를로노(Djoko Lelono, 1944–)의 1976년작 《태양으로 낙하하다》(Jatuh ke Matahari)가 꼽히며 조코 를로노는 그 후에도 꾸준히 과학소설을 썼다. 그러나 민주화 이전까지 인도네시아의 과학소설 장르에서는 조코 를로노 등 개인의 예외적 작품 외에 규모 있는 창작자 집단이나 열성적인 팬덤이 형성되지는 못했다.

일군의 시인들은 시 자체가 가지는 언어적 형식에 천착하여, 운율 또는 구조를 파괴하거나, 극단적인 운율을 시도하거나, 수많은 이미지를 산문적으로 병치하는 시를 썼다. '놀이로서의 시'를 추구한 사파르디 조코 다모노(Sapardi Djoko Damono, 1940–)가 80년대에 시작한 이미지즘적 시를 비롯, 이에 영향받은 압리잘 말나의 시 등이 대표적이다. 보다 극단적인 예로는 '악동'(Mbeling) 그룹에 속하는 레미 실라도(Remy Sylado, 1945–), 유디스티라 아르디 누그라하(Yudhistira Ardi Nugraha, 1954–)가 있는데, 이들은 이러한 유형의 형식 실험을 전면적으로 전개하였다.[26]

80년대에는 전 세대의 압둘 하디 웨엠 등이 시작한 수피적 신비주의 시 역시 다양한 시인의 관심을 받았다. 이 시대의 수피 신비주의 계열 시인으로는 아쳅 잠잠 노르, 자말 라만(Jamal D. Rahman), 아맛 슈바누딘 알위(Ahmad Syubbanuddin Alwy), 아맛 누룰라(Ahmad Nurullah) 등이 있다.[27]

90년대가 되면 장기화된 수하르토 독재에 대한 비판이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여러 대학에서 반체제 서클이 활발히 활동하였으며, 당둣 형식을 전유한 민중가요가 학생 시위 때마다 울려퍼졌다. 위지 투쿨은 이 시대에 가장 강경하게 수하르토 정권을 비판한 시인으로, 특히 대학 운동권 사이에서 신세대 저항운동의 문학적 아이콘이었다.[28]

3.5. 2000년대와 그 이후

2000년대는 인도네시아에서 대중문학의 부상이 완성된 시기이다. 아유 우타미(Ayu Utami)의 1998년작 《사만》(Saman)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여성 작가들이 가벼운 문체로 자유분방하게 성과 사랑, 도시 생활에 대해 서술하는 칙릿(chicklit)이 주로 10–20대의 젊은 여성들에게 유행하였다.[29] 2001년 첫 권이 나온 데위 르스타리(Dewi Lestari)의 《초신성》(Supernova) 시리즈는 인기 면에서 인도네시아 퀴어 문학과 장르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으며, 이후 인도네시아어로 된 로맨스 소설, 과학소설, 판타지 소설, 추리소설, 공포소설 등의 붐이 일었다.

도시(인도네시아 대도시 또는 영미권, 서유럽, 튀르키예, 동북아시아 등)를 배경으로 젊은 중산층 주인공이 등장하며, 읽기 쉽고 로맨스, 직업, 라이프스타일 등을 다루는 대중문학 장르 '메트로팝(metropop)'도 젊은 독자에게 인기 있다. 2010년 전후쯤 별도의 장르로 분류되기 시작해 2020년대 중반 현재 웬만한 대형 서점에는 메트로팝만 취급하는 별도 서가가 있을 정도다. 이 장르의 선구자로는 앞 절에서 언급한 힐만 하리위자야가 있다.

한편으로는 비교적 덜 대중영합적인 방식으로 진지한 문학을 추구하는 작가들도 계속해서 새로이 생겨나고 있다. 에카 쿠르니아완(Eka Kurniawan)은 《아름다움 그것은 상처》(Cantik Itu Luka, 2002)와 《호랑이 남자》(Lelaki Harimau, 2004) 등의 작품에서 전 시대의 이완 시마투팡 등이 시도했던 마술적 리얼리즘을 독자적으로 발전시켜 국제적인 찬사[30]를 받았다. 오카 루스미니(Oka Rusmini), 키키 술리스툐(Kiki Sulistyo), 이르마 아그랸티(Irma Agryanti), 데아 아누그라(Dea Anugrah) 등 새로운 감각의 시인들도 등장하여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린다 크리스탄티(Linda Christanty)도 2000년대 초 단편 분야에서 문학적 혁신을 시도했다.

오랫동안 인도네시아 소설은 여성과 젠더를 다루어 왔다. 최근 영미권동북아시아에서 페미니즘, 퀴어 이론, 탈식민주의 담론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동시에 번역 등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수입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소수자성에 대해 학술, 예술, 사회 운동 차원에서 다루는 다양한 논의가 축적되어 왔다. 이에 응답해 동시대 인도네시아 문학도 기존 인도네시아 문학의 전통 위에서 더욱 섬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들을 취급해 나가고 있다. 2020년 전후의 작가 가운데는 인도네시아 전통과 민속, 특히 다양한 귀신과 괴물을 동원해 인도네시아 사회의 가부장적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탄 파라마디타(Intan Paramaditha), 이성애 규범성에 대해 SF적 상상력을 동원해 질문하는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Norman Erikson Pasaribu) 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수적인 사회에서의 퀴어 정체성 이야기를 종종 발랄하게 풀어내는 누릴 바스리(Nuril Basri)도 있다.

2010년대 이래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동향은 이제 수하르토 시대에 벌어졌던 국가와 공동체의 폭력이 문학적으로 점점 덜 금기시되고 있고, 인도네시아의 어두운 근현대사를 다루는 많은 작품들이 비평적,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2010년대의 대표작으로는 에카 쿠르니아완의 작품들 및 레일라 추도리(Leila Chudori)의 《바다가 이야기하다》(Laut Bercerita, 2018), 락스미 파문착(Laksmi Pamuntjak)의 《암바》(Amba, 2012) 등이 있다.

2008년 자카르타 남부에 설립된 종합예술센터 살리하라 공동체(Komunitas Salihara)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시대 예술가들이 참여 및 교류하는 장으로, 2018년 현재 인도네시아 예술의 중심지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다. 구나완 모하맛(창립자), 아유 우타미, 하십 아미니(Hasif Amini, 소설가이자 번역가로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번역함), 니르완 데완토, 아시킨 하산(Asikin Hasan, 미술 평론가, 큐레이터), 토니 프라보워(Tony Prabowo, 작곡가) 등이 살리하라 공동체에서 관리위원(dewan kurator)으로 활동하고 있다.

4. 참고문헌

5. 한국어로 번역된 작품 목록


[1] '인도네시아'라는 국가는 1945년에 생겨났으므로 그 전의 문학 작품은 엄격히 말해서는 인도네시아 문학이라고 하기 어렵다.[2] 자바어는 인도네시아어의 직접적인 기원이 아니지만, 문학어이자 문화어로서 자바섬과 근방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많은 작가들의 모어였다.[3] 순다어는 20세기 말 이전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자바어 다음으로 모어 화자가 많았던 언어로, 인도네시아어 모어 화자 수가 순다어와 비슷해지거나 순다어를 역전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순다어 역시 많은 작가들의 모어였다.[4]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막스 하벨라르》가 정작 인도네시아어로 공식적으로 초역, 출판된 것은 1972년(역자 한스 야신Hans Jassin. 이름은 유럽식이지만 술라웨시섬 고론탈로 출신의 인도네시아인이며 당대의 저명한 비평가였다.)이 되어서였다.[5]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3)[6] (Balfas 1976, 51)[7] 한편으로,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던 화인들의 말레이어 문학이 실질적으로 비화교계 마인어 문학에 테마나 문체 등에서 깊은 영향을 주었고, 양적으로도 거대하였으나 인종차별적 편견, 인도네시아 민족주의 등에 의해 배제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근대 초기 화인 말레이어 문학은 이러한 비판을 의식해 현재(21세기 초) 광범위한 재평가 과정에 있으며, 이 작업이 완료되면 근대 인도네시아어 문학사의 시작점이 50년 정도 앞당겨질 수 있다고 한다. - 고영훈, 《자바 우체부길》.[8] (Siregar 1964, 32)[9] 추후 Commissie voor de Volkslectuur '대중독서위원회'로 축약 개칭[10] 초기 번역서는 《톰 소여의 모험》, 《모히칸족의 최후》, 《집 없는 아이》(Sans Famille) 등[11] 한국어 문헌에서는 이중모음 'ai'의 실제 발음을 고려해서 '발레이 푸스타카' 또는 '발레이 뿌스따까'로 적는 경우가 많으나, 한국어 문헌의 실제 인도네시아어 표기는 'e' 모음이나 파열음의 표기 등에서 특별한 기준 없이 중구난방이고, 최소한의 기준이라 할 만한 외래어표기법에 해당 예외조항이 규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일단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발라이'로 적는다.[12] (Balfas 1976, 51)[13] 가령 《푸장가 바루》에 실렸던 아르메인 파네의 《족쇄》는 원래 발라이 푸스타카에서 출판을 거부한 작품이다.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3)[14] (Lowenberg 2000, 140)[15] 1945년 기준 20.7%의 초등교육 대상 연령(7–12세) 어린이만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동 시기 성인 문해율도 아무리 높게 잡아도 20%를 넘기지 않았다. (Lowenberg 2000, 140)[16] (Siregar 1964, 73-74)[17]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60)[18]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55)[19] (데일리 인도네시아 2018년 6월 26일)[20]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98)[21] 수하르토 시대에도 한동안 존속하였으나 1974년 정부에 의해 폐간[22]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99)[23] 《인간의 대지》(Bumi Manusia, 1980), 《모든 민족의 아이》(Anak Semua Bangsa, 1980), 《발자국》(Jejak Langkah, 1985), 《유리의 집》(Rumah Kaca, 1988)[24] (Anderson 1998, 337)[25]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211)[26]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226-227)[27]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230)[28] (McGlynn, Herliany and Cole 2017, 228)[29] (Agustina 2017, 73-86)[30] 맨부커 국제상 2016년 롱리스트(《호랑이 남자》) 등[31] 목타르 루비스, 우마르 카얌, 푸투 위자야, 알리 악바르 나비스 등 작품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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