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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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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일 1968년 1월 19일
창업주 허진규
회장 허진규
유형 중견 기업
본사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45 (도화동)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지배구조4. 기타5. 기업정신6. 역대 그룹임원7. 계열사 목록
7.1. 현존7.2. 해산/매각
8. 오너 일가9. 참고 문헌

[clearfix]

1. 개요

일진홀딩스를 주축으로 한 정밀산업 특화 기업집단이다. 그룹, 지주회사 본사는 서울 소재지만 사업장 다수의 위치와 창업주 허진규 회장의 고향 등의 영향으로 전라북도향토기업에 준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일진그룹은 배전금구류, 동복강선, 공업용 다이아몬드, PCB용 전해동박 등 전량 수입에 의존했던 고부가가치 품목들을 자체 개발해가며 척박한 부품/소재 산업 발전에 주력하였다.

2. 역사

1965년 한국차량기계제작소에 취직해서 일하던 덕명 허진규 창업주[1]가 자기 직장이 부도가 나자 평소 허진규의 성실함을 눈여겨 봐온 일본인 공장장의 조언[2]을 받아 1968년 서울 노량진 실개천 자택 마당에 세운 '일진금속공업사'를 기반으로 한다. 이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가 비철 주물 사업을 한다는 것을 알고 삼양전기에서 선풍기 알루미늄 스탠드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든 것이 최초의 제품이다. 다만 처음 시작한 사업이라서 주문받은 물량은 3,000개 정도로 당시로서는 꽤 컸지만 이익은 못 봤다고 한다. 이후 그는 전국에 전봇대 설치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에 착안해 종업원 2명과 함께 자택 창고에서 수입용을 대체할 국산 배전용 부품을 만들었으나 국산 제품의 품질을 의심한 한국전력에 수차례 거절당한 끝에 결국 납품에 성공해 기반을 다졌다. 현재의 일진전기의 전신으로서 전선을 주로 생산하는 전선사업부와 변압기를 주로 생산하는 중전기사업부의 핵심 축을 만들게 된 시발점이다. 몇달 뒤에는 양평동으로 공장을 옮겼다.

1975년에는 회사 자산과 맞먹는 금액인 2억 5,000만원을 쏟아 부어가며 국내 최초로 동복강선[3]을 독자 개발한 뒤 일진전기공업사를 '일진금속공업'으로 법인화했다. 1978년에는 수출사업부를 떼내 '(주)일진'을 출범시켰고, 1982년 일진경금속을 세운 뒤 1986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 신사옥으로 이전했다.

1978년 동박 기술 국산화에 들어가서, 1988년 인쇄회로기판(PCB) 동박 개발에 성공했다. 구리를 고도의 공정 기술을 이용해 얇게 편 동박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차세대 통신 등에 쓰이는 전자산업의 핵심소재로 쓰임새가 커지고 있다. 이후에도 전기차 배터리용 동박 상용화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머리카락 굵기의 1/50 두께인 초극박 동박 개발에 성공하며 일본 미쓰이가 독점하던 반도체 핵심소재 국산화에 성공했고, 현재 삼성전자에 공급하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세계 TOP3에 드는 글로벌 동박 제조기업이다. 2022년 롯데케미칼에 2조 7,000억 원에 매각했고, 회사명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바뀌었다. 다만 일진머티리얼즈를 매각하면서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사세가 줄어 들었다.

1987년에는 덕산금속을 세우며 500억원을 들여서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개발해냈으나 당시 세계 공업용 다이아몬드 시장을 영국 드비어스와 양분하고 있던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은 시장 통제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미국 "잭 웰치"가 이끄는 제너럴 일렉트릭과의 4년 동안 진행된 법정 공방전을[4] 이겨냈고,[5][6] 결국 기술을 지켜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일진다이아몬드는 세계 3대 공업용 다이아몬드 제조회사이다.

2014년 일진하이솔루스는 현대자동차수소 연료탱크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 모델인 수소 탱크모델 '타입4'를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은 세계에서 일진하이솔루스와 일본 토요타 뿐이다. 2021년에는 독일 BMW에 차량 플랫폼에 맞춰 타입4 수소연료 저장시스템을 개발해 공급하기로 했다. 2022년에는 현대자동차의 북미 수출용 수소트럭의 타입4 수소연료 저장시스템 공급사로 선정되었다.

1990년 신소재공동연구소를 지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기증했다. 기업이 연구소를 지어 대학에 기증한 사례로는 국내 최초이다. 당시 일진 영업이익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연구소 설립에 투입했는데, 이에 대해서 우려가 있었지만 허진규 회장이 결정했다고 한다.

1993년 덕명학술문화재단(현 일진과학기술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금 지원과 연구비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1990년 서울방송 설립 당시 주주로 참여하고[7]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벤처기업 'ETEX 사'를 인수했으며, 1994년에 계열사를 부문별로 나누며 부문장 체제를 도입한 뒤 1996년 일진파이낸스를 세워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97년 그룹 로고를 바꾸고 1998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이천전기를, 2000년 옛 세풍그룹 계열이던 전주방송을 각각 인수했다. 2003년 전산업체 일진네트웍스를 세우고 수입차 딜러사 일진자동차도 세웠으나 2021년 비주력사업 정리 차원에서 수입차 딜러사업에서 손을 뗐다. 2008년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 투자부문을 합쳐 지주사 '일진홀딩스'로 출범시켜 지주회사 총괄구조로 재편됐다.

2022년 마곡 R&D센터 신사옥 건설 및 이전이 완료됨에 따라 35년 이상 지속된 마포 중심 활동이 종료됐다. 마포에 일부 관계사와 일진빌딩은 현재 그대로 유지 중이며, 건물을 통해 임대사업을 지속할 예정이다.

3. 지배구조

2023년 4월 기준
주주명 지분율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허정석
29.12%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일진파트너스
24.64%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김향식
0.80%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허세경
0.3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허승은
0.3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일진과학기술문화재단
0.13%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자사주
6.81%

4. 기타

기업문화는 공업이라는 업종 특성상 남성적 문화가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실제는 타기업과 큰 차이는 없다. 그룹 창업주이자 왕회장인 허진규 회장이 1965년 ROTC 장교 1기생 출신이라는 것도 이런 이미지를 준 것으로 보인다. 허진규 회장은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했으며 ROTC 1기로 임관했다. 일진그룹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직하는 와중에도 서울대학교 ROTC 총동창회 회장을 하거나 ROTC중앙회에서 간부급 요직을 역임하는 등 ROTC제도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재계 인물 중 한명으로 그룹문화가 남성적, 수직적으로 인식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2015년 영화 <베테랑> 옥상 씬 백그라운드에 대문짝만하게 나온다.

일진회, 일진과는 당연히 관련없다. 사명 '일진(日進)'은 '날마다 전진한다'는 의미이다. 회사 이름 때문에 채용 시즌마다 취준생 톡방에서 '찐따 경력직 특채 되나요' 등의 드립이 꼬박꼬박 올라온다.

5. 기업정신

(1절)찬연히 타오르는 동녘의 해를 보라 / 오늘의 터전 위에 내일의 꿈을 심고
신념과 용기로 마음을 갈고 닦아 / 겨레의 번영 위해 전진하는 일진

(후렴)기상도 드높다 일진이라네 / 세계로 뻗어가자 새 역사를 만들자

(2절)희망의 이 아침에 치솟는 해를 보라 / 오늘의 보람에서 정열을 불태워서
사랑과 슬기로 다 함께 굳게 뭉쳐 / 조국의 영광 위해 전진하는 일진

6. 역대 그룹임원

7. 계열사 목록

7.1. 현존

7.2. 해산/매각

8. 오너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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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참고 문헌



[1] 고향은 전라북도 부안군. 일진홀딩스가 전주방송을 소유하게된 데에는 이 영향도 일부 있다.[2] 허진규에게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말고, 자네는 창업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조언과 함께 한국은 비철금속을 비롯한 주물 사업이 시작단계라서 전망이 밝다며 그가 간직하고 있던 주물 도면을 건네주면서 기술개발에 참고하라 했다고 한다.[3] 일진에서 개발한 동복강선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에 전깃불이 들어갈 수 있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농어촌 근대화에 기여한 제품이였다.[4] GE측의 기술자를 초빙하여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생산해 주력 제품으로 키워나가려는 중에, 이 제품이 GE 제품 일부와 9할 가까이 일치하다는 명분으로 송사가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5] 당시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시장 진입을 노리던 잭 웰치가 한전 사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한국에는 아직 지적재산권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지 않은 상태이며, 이 상황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자 죽이기식 송사'는 오히려 한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에 대한 반감을 키울 것"이라 충고해준 말을 받아들여, 다이아몬드 계열사 측을 설득했다고 한다.[6] 당시 일진 허 회장의 인덕(人德, 다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는 복)과 한전 사장의 언행이 업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전혀 다른 업종에 일진 기업 측과 일면식이나 이해관계가 전혀 없었던 사람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7] 재미있게도 지금은 그 SBS의 네트워크 가맹국인 JTV를 소유하고있다.[사진] 파일:일진전기.jpg[9] 2021년 사명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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