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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22:39:04

조조(삼국지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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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어린시절쬬.jpg파일:20살쬬.jpg파일:기도위조조.jpg파일:쬬쬬.jpg
어린 시절 20살 시절 기도위 시절 반동탁연합 제후 시절
파일:서주 조조.jpg파일:미용사잘했어.jpg파일:돌아온 조맹덕 ㅁㄹ.jpg파일:조조_오소전투.png
서주 대학살 당시 협천자 과정 당시 하비 전투 시점 관도대전 시점[1]
파일:승상 조조.jpg 파일:조조 입촉.jpg 파일:조조 위공.jpg 파일:조조위왕.jpg
승상 즉위 시점 입촉 시점
(시즌 8 18화)
위공 즉위 후
(시즌 9 6화)
위왕 즉위 후
파일명 뭐야
1. 개요2. 캐릭터 묘사
2.1. 외형2.2. 성격2.3. 능력2.4. 추태
3. 작중 행적4. 인물 관계
4.1. 주적4.2. 부하들
4.2.1. 장수진4.2.2. 참모진
4.3. 가족들
5. 비판6. 여담

1. 개요

네이버 웹툰 삼국지톡에 등장하는 조조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캐릭터 묘사

2.1. 외형

청회색 머리칼에 하얀 피부와 벽안, 그리고 다크서클이 드리운 사나운 인상의 안경 캐릭터[2]로 등장한다. 고전적으로 중화권에서 묘사되는 살집이 있는 체격에 덥수룩한 수염이 난 조조의 모습(대표적으로 신삼국조조)과는 정반대. 이런 식으로 조조의 외모를 묘사한 다른 작품으로는 고우영 삼국지가 있다.

관우, 주유, 원소 등과 함께 삼국지톡 대표 비주얼 담당.[3] 풍성한 수염을 지녔다고 묘사되는[4] 원작과 달리 수염 하나 없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손권이 가졌던 특징인 벽안도 조조가 가져갔다.[5] 그러나 동탁 암살에 실패한 이후부터는 조금이지만 턱수염이 생겼다가, 당장 면도하라는 독자들의 반발에 부딪혔는지 다시 밀었다.

그리고 시즌 7, 구체적으로는 승상에 오른 이후 다시 턱수염이 생겼다. 조숭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제법 보이는 편이고 이제 조조의 나이도 중년이니 앞으로는 그대로 수염이 유지될 것이다. 입촉 시점에 이르러서는 인상이 아버지 조숭과 상당히 비슷해졌다.

2.2. 성격

일반적으로 삼국지 관련 창작물에서 뭐든지 다 잘하는 만능 초인으로 묘사되는 것과는 달리 삼국지톡에서는 성장형 캐릭터로 묘사되는 듯 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미숙하고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점을 보인다.[6] 더욱이 욱하는 성격이 있어서 흥분하면 과격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보통 냉철한 성격으로 묘사되는 창작물의 조조상과는 정반대지만 여백사 사건이나 서주대학살 등 조조가 격정적인 성격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많아 오히려 고증이 잘된 편이다.

물론 여전히 머리는 팽팽 돌아가고 상황 판단은 누구보다 빠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감정조절 문제 때문에 대형사고를 여러 차례 내는 것이 문제.[7] 이런 성정 때문에 순심은 순욱이 조조에게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8] 덕분에 제정신이 아니던 서주대학살 때는 유비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고[9], 연주에서 여포와 진궁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런 흉년으로 인해 원소에게 의탁할 마음까지 품었던 당시에는, 금방 회복하긴 했지만 정욱이 조조라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라며 다그치자 한창 정신적으로 몰려있던 상태라 "난 몰라."라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0] 하비 공방전 당시에도 순유의 수몰 작전과 송헌 & 후성 & 위속의 배신 전까지는 진짜 퇴각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고, 이후 원소가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선포하자 제대로 겁먹어서 자신을 손절할 마음을 품고 있는 유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굳게 믿었다가 그를 놓쳐 버리는 대 실책을 저질렀다. 본격적으로 원소와 싸우게 되는 관도대전에서도 허유가 원소의 보급창고가 있는 오소에 대한 정보를 들고 투항해오는 천운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원소의 흙성 작전으로 인해 완전히 독안에 든 쥐 꼴이 되자 정신적으로 몰려서 횡설수설하면서 원소는 죽어도 이길 수 없다고 자괴하기도 했다.

즉, 능력은 확실한데 의외로 약한 멘탈욱하는 성질이 약점. 그리고 연재가 계속될수록 자신의 목적에 방해가 된다면 무조건 제거하고 보려는 극단적인 면모가 두드러진다. 여기에 생명을 경시하는 성향이 매우 강해서, 때로 무모한 도박이나 위험한 선택도 하지만 그 이유가 '자기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인 유비와는 역시 대비된다.

그리고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대상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대로 판단해 좋다 싶으면 긁어모아 쓴다는 것도 꾸준히 강조되는 특징이다. 일단 협천자에 오르기 전에도 남들이 버렸다 평하는 이들을 여럿 뽑았고, 논영회 때도 비 오는 마당에 삼선 슬리퍼 신고 손수 매실을 따와서는 소주와 와인, 캐비어와 뻥튀기가 섞인 기묘한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제갈량을 제외한 낭야중 학생들은 뭔 쓰레기통도 아니고 남들이 버린 인재 주워서 쓴다, 그만큼 기반이 약한 내시ㅅ끼라 비웃었고, 장수는 가후가 괜히 항복하라 한 것 아니냐고 속으로 웃으며 과소평가했지만[11], 유비는 "답다, 다워! 지가 좋아하는 거 싹싹 긁어모았구만..."이라며 정확히 꿰뚫어 본다. 혹자는 그런 후줄근한 차림이야말로 조조가 누구도 감히 지적할 수 없는 절대권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나이가 40대로 접어들면서 꼰대 기믹이 붙었다. 정욱 등 책사들이 손책을 경계할 것을 간언해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행태가 그렇게 극혐하던 동탁을 조금씩 닮아가는 등. 시즌 3까지 보여준 '과격한 방식으로나마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점차 망탁조의 멤버에 걸맞은 모습으로 흑화하고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꼰대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려들고, 서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의미에서의 꼰대지, 옛것에 고리타분하다는 의미의 꼰대는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역사상의 조조나 삼톡 내에서의 조조나 이런 쪽으로는 상당히 열려있는 편으로 묘사된다.

적벽대전부터는 50대가 되면서 이전보다 나른한 인상이 되었다. 이는 노쇠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12], 거듭된 승리와 대업의 완수를 코앞에 두고 있어 자만심에 빠진 것이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자만심에 빠진 나머지 이전과 달리 책사들의 충고를 듣지 않고 적의 계략에 넘어가도 잘못을 인정하기는 켜녕 실수였다며 자기합리화를 하며 아랫사람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풍조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는 채모를 처형하는 에피소드에서부터 드러나는데, 주유의 뻔한 계략에 넘어가 수군 총책임자인 채모를 죽이자 이에 경악한 정욱이 무슨 짓을 한 것이냐는 외침에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지만, 대수롭지 않게 어차피 뇌물이나 갑질같은 죄를 지었을 놈이었다며 자기합리화를 하고 전장에서 픽픽 죽어나가는 게 장수인데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다며[13] 끝까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14]

2.3. 능력

내 사람을 의심하며... 어찌 큰일 해내길 바랄까![15]
일단 인재를 뽑으면 믿는 것이 내 원칙이다.[16]

조조의 능력으로 확실히 묘사되는 것은 부하들에게 충성심을 사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불 같이 화를 내는 탓에 진궁에게 배신당하는 일도 있었지만[17], 신하와 장수들을 입이 마르게 칭찬하고 허물없이 대하며 포상도 잘 챙겨줘서 부하들이 죽음을 불사르며 충성한다. 자신의 권위를 거스르는 자에게는 용서가 없지만 자기의 말을 잘 듣고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에게는 정말 아낌없이 칭찬을 하며, 평소에 독불장군처럼 굴다가도 책사들에게 조언을 구할 때는 '부탁'을 하는 등 공손하게 굴며 상대를 띄워주며, 전장에서도 장수들과 생사를 함께하며 그들을 격려해준다.

이런 부하들의 충성심이 가장 잘 드러난 게 하후돈이 눈을 잃었을 때인데,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조조에게 충성을 불사르는 하후돈과 이전 등을 보며 여포가 ‘나는 힘을 잃으면 부하들에게 배신당하는데 왜 조조는 힘을 잃어도 다들 따르냐.’라고 열폭하는 장면을 통해 조조가 그렇게 패배를 겪고도 결국 승자가 될 수 있던 이유를 보여준다.

순욱이나 진궁 등이 등장할 시점에선 그나마 가장 개혁 의지와 난세 평정의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욱만 해도 50살까지 임관하지 않다가 조조를 보고 희망을 얻어 출사했다.[18]

여러 창작물과 달리 조조를 결함이 있는 인물로 묘사함과 동시에 왜 수많은 사람들이 조조에게 매력을 느꼈는지도 놓치지 않고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성향이 강한 많은 조조의 재해석과 달리 조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그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때야 비로소 훌륭한 지략을 펼쳐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데 서투른 면모를 많이 보인다.만년 캐해석 실패[19] 실제 역사에서 조조는 순욱의 인물 감정평에 크게 도움을 받았고, 반대로 유비는 제갈량조차 놓친 인물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해낸 일화가 있어서, 양자의 차이를 부각할 겸 유비는 사람 보는 눈이 비상하고 조조는 그렇지 못한 걸로 설정한 것 같다.[20]
그래도 협천자 이후로 원소가 말한 명분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면서 원소의 본심을 꿰뚫는 등, 조금은 나아진 편이다.

2.4. 추태

2020년 중반기로 접어들면서, 연재 초기에 종종 댓글에 거론되었던 조조 인성파탄 3대 사건이 다 나왔다. 여백사 일가 살해 사건, 서주 대학살, 완성 전투 흑역사.[21] 이에 독자들의 조조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뚫은 지 오래. 서주대학살 에피소드 때도 어느 정도 남아 있던 조조빠들조차 완성의 패배는 실드치지 못하고, 심지어 탈덕을 선언하는 사람들까지 나올 정도이다.

완성 전투 연재 당시에는 불륜을 저지르고 유부녀를 탐하는 등 성적으로 방종하기 그지없는 지저분한 사생활이 미화 없이 직설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독자들이 매우 질색했다.[22] '인간적으로 너무 추하다', '어떻게 원소가 조조한테 졌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이들도 있고 다 필요없다며 적벽대전한중 공방전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들도 많다.[23]

3. 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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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물 관계

4.1. 주적

4.2. 부하들

4.2.1. 장수진

4.2.2. 참모진

4.3. 가족들

5. 비판

항목이 길어져서 분리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6. 여담


[1] 원소군의 보급기지인 오소를 공격할 때.[2] 안경은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다. 초반엔 안경을 매번 쓰고 나왔으나 최근엔 안경을 자신의 '본심'을 숨겨야 할 때 쓰는 것 같다.[3] 삼톡 등장인물들 중 정사에서 미남으로 묘사되는 사람은 관우, 주유, 제갈량, 순욱, 손책, 원소, 공손찬 등. (관우의 경우 용모 자체보다는 근사한 수염이 강조되며 제갈량이 그걸 강조한 별명으로 부를 정도였는데, 남자가 수염을 기르는 게 당연했던 시대에 멋진 수염을 굳이 부각한 건 간접적으로 용모의 준수함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조조의 외모에 대한 언급은 수염이 풍성했다는 게 끝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외모가 그다지 출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중론. 다만 조조의 손자인 조예는, 절세미녀였던 어머니를 닮기라도 했는지 미남이었다고.[4] 특히 수염에 대한 부분은 연의에서 조조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나온 묘사다.[5] 다만 조조가 지닌 벽안의 경우는 거의 짙은 청회색에 가깝고 손권은 더 밝고 쨍한 색의 벽안으로 묘사된다.[6] 이로 인해 원소로부터는 '순진한 아만', 노식으로부터는 '(원소의)착한 동생'이라는 평을 받았다.[7] 서주대학살만 해도 냉정하게 판단하는게 아니라 공성전에서 불리해지자 그냥은 못간다고 보복성 학살을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8] 원소와 달리 조조는 권력이라는 칼을 잡으면 앞뒤 분간 못하고 그 칼을 마구 휘두를 인간이라고 평가했다.[9] 유비에게 집중하고 있다가 배후에서 관우와 장비가 나타나자 그들이 유비 옆에 없는 것을 알아채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이미 했으면서도 당황하고, 공융과 태사자가 이끄는 원군이 나타나자 혼란스러워하다가 유비의 존재를 아예 깜빡하고, 뒤늦게 유비를 다시 떠올리지만 이미 유비의 계략에 넘어간 뒤였다. 아무리 이성이 증발한 상황이었다곤 해도 유난히 빈틈을 많이 보였다.[10] 이때는 속으로 "난 살면서 실패밖에 못했다..." 라며 자학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베댓에서 지적하듯 "실패가 많았다는 것은 도전을 그만큼 많이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11] 그러다 조조 뒤에서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라리며 도끼를 들고 있는 전위를 보고 생각을 고쳤다.[12] 작중에서도 일단 물러가서 기회를 노리자는 가후의 의견에 "자신은 이미 50을 넘겼고 손주놈까지 봤다. 나한테 시간이 없다"며 거절하는 장면으로 보아 나이가 들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역시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더구나 숙적인 원소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을 봤으니...[13] 이를 들은 순유와 정욱은 아연실색하고 마는데, 조조 역시 젊은 시절 최전선에서 싸운데다 조앙, 전위처럼 많은 이들이 조조를 위해 진심으로 목숨을 바쳤던 것을 생각하면 조조가 얼마나 오만해졌는지 알 수 있다.[14] 조조의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하던 정욱마저 1인자가 걸리는 병에 걸렸다며 한탄하고, 허유는 보다못해 지금 자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아냐며 조조의 멱살까지 잡으며 항의하고, 옛 친구이자 주군이었던 원소의 오만함과 몰락하는 모습을 오버랩하며 치를 떤다.[15] 관도대전 86화 참고[16] 극중 정사 각주에 나온 내용[17] 서주 대학살 당시 진궁이 무릎을 꿇고 눈물까지 흘리며 서주 백성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조조는 투정 취급하며 무시하고, 여백사 사건을 통해 조조에 대해 불안한 감정이 섞여있던 진궁은 결국 이 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돌아서버린다.[18] 정욱은 조조에게 임관한 뒤 이름을 바꾼 일을 얘기하며 조조를 "자신의 태양"이라고 일컫는다. 그렇기에 조조가 원소 휘하로 들어가려 하자, '이 정욱의 태양이 남의 그림자 아래 숨으려 해?!'라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19] 조조가 '이 사람은 분명 ㅇㅇ할 것이다' 하면 얼마 안 가 상대가 ㅇㅇ와 정반대의 행동을 하곤 한다. Ex) "주먹질은 그 인간 스타일 아냐" → 같은 화에서 원소는 자신과 하진의 밀담을 엿들은 병사들을 직접 죽여 살인멸구를 자행[20] 그런데 예외가 둘 있으니, 바로 자기 자신과 평생의 숙적이 될 어느 남자. 유독 이 두 경우에 한해서만 정확한 판단과 뛰어난 통찰력을 보여준다. 유비에 대해서도 잘못 판단한 적이 없는 건 아닌데 다른 사람들을 파악할 때 헛다리를 자주 짚는 것에 비하면 훨씬 양호하다. 캐해석 스탯을 본인과 유비한테 몰빵했나 논영회를 염두에 둔 묘사일지도...?[21] 심지어 이 쪽은 이 사단을 겪고도 유부녀 밝히는 지저분한 버릇을 못 고친 게 제일 큰 문제다.[22] 오죽하면 조앙이 죽기 직전 가후가 조조를 두고 "시체로 강 메우는 색골"이라 평했을 때, 반론은 고사하고 "조맹덕 한줄소개" 라는 반응이 큰 호응을 얻는 지경[23] 서주 대학살 때 떨어져 나간 팬층보다 완성 전투 때 떨어져 나간 팬층이 더 많았는데 이는 연출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서주 대학살 때는 조조나 그의 군사들이 백성을 대놓고 살해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연출하지 않았고(잔뜩 쌓인 시신을 통해 학살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만 했지 실제 살해 장면은 안 나왔다), 가끔 조조가 얼굴을 비칠 때는 '분노에 미친 무자비한 학살마'로 그려져 최종 보스 같은 인상을 주었다. 반면 완성 전투 때는 조조의 추태를 노골적으로 묘사하였고, 그것이 현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정치인/재벌의 두 집 살림'이라든지 '갑질 상사의 성추행'과 유사하여 독자들에게 그 추잡스러움이 더욱 직접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 짓거리의 결과로 자기 목숨이 위험해지자 평소에는 관심도 안 주던 20살밖에 안 된 아들을 대신 잡아먹고 살아남는 막장 부모의 추태까지 보였으니...[24] 비단옷을 건네는 조조가 굉장히 아련하게 묘사된다.[25] 삼톡 초기 부녀자 팬덤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조합이다.[26] 이때 조조는 손권에게 아들을 볼모로 보내라고 했는데, 아직 후사가 없었던 손권은 "이 꼰대가 자기 집에 애들 많다고 다른 집도 다 똑같은줄 아나?"면서 디스하고 황개는 "애들만 많을까? 마누라들도 많겠지"라 맞장구를 쳤다.[27] 조조가 오랜만에 진심으로 신나하며 조씨 가족 특유의 애칭인망둥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또 보자고 배웅한다.[주의] 조조가 그렇게 생각할 뿐 도겸은 조숭의 죽음과 전혀 무관하다. 도겸의 부하가 재물에 눈이 멀어 저 혼자 폭주한 것뿐. 도겸은 조숭이 왜 하필이면 서주 땅에서 살해당했냐며, 차라리 조조에게 험한 꼴을 당하기 전에 빨리 죽고 싶다고 절망했다. 즉 조조가 도겸을 원수로 규정하고 서주를 공격한 건,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분노를 돌릴 곳이 필요했는데 공교롭게도 사건이 발생한 곳이 서주 땅이란 이유만으로 억울한 도겸을 찍은 것.[29] 조조가 죄 없는 서주 백성들을 학살했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 사람이, 조조를 죽이기 위해 서주 백성들의 목숨을 갈아넣는 것도 거리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후에 서주의 진규, 진등 부자는 진궁을 향해 "조조가 서주를 피바다로 만들었지만 당신 때문에 쌓인 시체도 장난 아니다", "당신이야말로 초심을 잃었다"고 비난했으며, 진궁은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피에 젖은 손으로 바닥을 닦으려다 도리어 온 바닥에 피칠갑을 해 놓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깨닫고 멘붕했다.[30] 뭐 하셔? 빨리 (전화를) 받으셔요, 아버지! 이 망둥이 효도 받으셔야지?[31] 조조가 영옥에게 사과하려고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언급이 나오는 장면에서 한 댓글은 이렇게 평했다. "(조조의 사죄가) 진심이든 아니든 정영옥이 알 바 아니다. 조조는 이제 남편도 애 아빠도 아닌 내 새끼 죽인 놈이니까."[32] 실제 역사에서 가기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이다.[33] 그래도 이후 다른 아들들(조비, 조창, 조식)과 달리 아들럼이라 부르면서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그래도 조조딴에는 나름 큰아들을 아꼈던 것으로 보이긴 한다.[34]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에 안 맞게 굉장히 맑으면서도 뿌듯해하는 표정이다. 해당 컷의 한 베댓은 '아버지가 바람이나 피우느라 자기 나이도 모를 정도로 무관심했으니, 그런 아버지에게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을 것. 그래서 이렇게 해서 아버지가 자신을 절대 잊지 않게 된다는 생각으로 기뻤을 것'이라 평한다. 실제로 조조는 이 사건으로 인해 평생동안 조앙의 죽음을 후회하며 자신을 구하기 위해 희생한 큰아들을 잊지 못했다. 서주 대학살조차 후회한 적이 없는 그 조조가 조앙에 대해서는 "걔를 그렇게 잃고 걔 엄마랑 갈라선 건 후회된다. 저승에 갔는데 조앙이 나더러 자기 어머니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고 언급할 정도였다.[35] 이때 조조가 본색을 숨기기 위해 안경을 썼을 때처럼 본인도 종일 실눈으로 있다가 해당 대사를 하면서 눈을 번뜩인다.[36] 실제로 조조는 조예가 자신을 많이 닮았다는 이유로 무척 아꼈다고 한다.[37] 정확히는 원소는 '아만ㅎ', 십상시들은 '조아만이', 정영옥은 '조아만(씨)'.[38] 고대 중국에서 성인을 본명도 아니고 아명으로 부르는 건 어린애 취급하는 것으로서 대단한 모욕이었으며, 성인을 아명으로 불러도 되는 건 부모 아니면 배우자(초혼 연령이 낮았으므로 어려서 결혼한)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원소가 늘 조조를 아명으로 불러서 둘이 결혼했냐는 드립도 초반에 좀 돌았다. 진지하게 논하면 '어릴 때 만난 친구니까 + 조조를 자기 부하로 보지 동등한 상대로 여기지 않아서' 그러는 것일 가능성이 있으며, 십상시들은 자기들이 조등과 동급이라 생각해서 조조를 만만히 여겨 애 다루듯 대한 것이다. 정영옥은 일찍이 결혼한 본부인인데다 나이도 위라고 하니 애초에 아명으로 불러도 되는 입장이고.[39] 수건을 뒤집어쓴 채로 첫 등장을 했기 때문에 베댓이 '오늘부터 나는 아만의 수건!'이었다.[40] 물론 유비가 다리를 굽힌데다가, 화면 앵글도 기울어진 상태였다.[41] 독자들 사이에서는 23cm(한나라 1척)×7= 161cm 라는 게 기정사실로 통한다.[42] 실제로 위씨춘추에 의하면 조조는 '체구는 작았지만 의기양양했다'고 하므로, 단신인 것이 고증에도 부합한다.[43] 첫 등장한 클로즈업 컷에서는 근육질 거구처럼 보였는데, 이어진 전신 컷을 보니 라면박스 하나에 앉아 있던 조조 옆에서 라면박스 두 개를 받침대로 놓고 서 있었다. 안 그래도 짤막한 몸통과 팔다리가 근육 때문에 굵기까지 해서 더욱 짜리몽땅해 보인다. 제보한 거 브라더니?[44] 예시-귓 속 깊은 곳에서 둥,둥,둥 소리가 울린다. 이는 분노한 내 심장 소리인가 아니면 울려 퍼지기 시작한 전쟁터의 북소리인가![45] 창천항로에서의 묘사처럼 시체가 강물을 막은 참혹한 광경이 그대로 그려졌다. 게다가 본작에서 그 광경을 목도한 것은 유관장 삼형제가 아닌 소년 제갈량이다.[46] 사실 고대를 지나 현대까지도 민간인이 군사를 비롯한 모든 생산활동의 원동력인 건 변하지 않기에, 전략 폭격을 통해 민간시설을 타격하고 전쟁 의지 자체를 꺾는 양상이 보이긴 한다. 그러나 전략 폭격은 안전한 후방의 민간인을 전쟁에 노출시켜 반전 여론을 형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엄연히 폭격 이전에 민간인에게 경고 방송을 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당연히 군사를 보내어 민간인을 직접 학살케 하는 것은 전략적 행동이 아닌, 증오와 광기에 의한 미친 짓으로 치부된다. 반전 여론을 돋구어 전쟁 의지를 꺾긴 커녕, 결사 항쟁 여론만 낳기 때문. 항우신안대학살을 생각해 보자.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패색이 짙음에도 "대일본제국은 결코 항복하지 않을것이며 모든 신민들이 죽창을 들고서라도 싸울것이다!" 라며 발악을 해서 두 차례 원자폭탄 드롭으로 대학살을 했는데 이때는 일본이 그야말로 경악해서 무조건 항복을 했지만 어쨌든 대학살이라 후대의 평가가 갈린다.[47] 이때부터 눈가의 다크서클도 더더욱 짙어졌다.[48] 여백사 일가 살해, 서주 대학살, 과거사 회피, 완성에서 과부에게 집적대다 전투 말아먹고 아들까지 죽게 한 사건 등.[49] 조조가 초중반에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과격하고 살벌한 짓을 수 차례 하기는 했으나, 원소가 십상시를 조지려고 민가에 불을 지르는 작전을 내놓자 강하게 반발했고, 십상시 파벌이든 아니든 환관을 모조리 죽이겠다는 노선에도 인간백정 되기가 쉬운 줄 아냐고 화를 내는 등 무고한 사람을 학살하는 데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게다가 죽이거나 노린 대상들이 십상시동탁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쓰레기들이었기에 크게 비난받진 않았다. 그러나 여백사 일가 살해 사건을 기점으로 인기가 조금씩 떨어지다가 서주대학살 때 굉장한 비판을 받으며 인기가 떡락했으며, 완성 전투의 흑역사로 인해 이미지가 시궁창에 처박히며 심지어는 그 동탁보다 추하다는 평가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