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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관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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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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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1c25> 중국 관광 역사 역사, 방중관광객 수
유의사항 유의사항
특징 장점, 단점(까다로운 입국 절차)
주요지역 관광거리와 볼거리 주요지역 관광거리와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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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0년대2. 1980년대3. 1990~2000년대4. 2010년대 이후

1. 1950년대

의외로 중국은 지금과 달리 외국인의 입국을 허용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국가다. 1950년대~1970년대에는 문화대혁명죽의 장막으로 불리는 폐쇄적인 공산주의 통치로 개방이 되지 않았고 덩샤오핑화궈펑을 밀어낸 1979년부터 개혁 및 개방을 실시했으며 1990년대부터는 개방이 확대된다.

2. 1980년대

한국인들에게 관광비자가 발급되기 시작된 것은 1994년부터이지만 중국 관광이 실제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은 더 오래되어 1988년부터라고 봐도 무방하며 관광 상품도 1988년도를 기점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중국이 참여하면서 한중 간 영사관 개설에 합의해 인적 교류를 시범적으로 실시하며 시작된 것인데 이때만 해도 한국 국적자에게 아직 관광비자가 나오지 않았고 여행사가 단체 관광객을 초청하는 초청장 발급 형식 방문비자로 단체 관광에 한해 개방하였다.

이때는 당연히 현재와 같은 자유여행 내진 배낭여행은 아직 꿈도 꿀 수 없던 때였다. 애초 중국에 가려면 무려 반공 교육을 이수했는데 정부가 중국에서 북한인과의 접촉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때 한국이 6.10 항쟁1988 서울 올림픽을 거치며 막 해외여행 자유화가 막 시작되었고, 구 공산권인 동구권 및 소련이 붕괴되고 있을 때였기도 했고 무엇보다 중국이 한국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인데다가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중국에 대해 입국과 관련해서 굳이 까탈스럽게 굴 이유가 적었고 마찬가지로 중국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 올림픽에 연달아 참여하고 1990년에는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도 개최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까탈스럽게 굴 이유가 없었다. [1]

그래서 이때부터 한국인 관광객이 들어왔고 반대로 조선족이라 불리는 재중동포나 중국 대륙인 이민자들이 대거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도 이때부터였다. 특히 조선족의 경우 처음 들어오기 시작한 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다만 이 당시 공식 수교는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에 입국할 때 미리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방문 허가 및 방첩교육을 받고 홍콩일본에서 중국 방문용 비자를 따로 받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특히 홍콩을 자주 거쳤으며 홍콩에 있던 중국 대표부[2]에서 비자를 받고 대한민국 주 홍콩 총영사관에 들려 반공 교육을 이수한 뒤에 중국 본토에 들어가고는 했었다.

그리고 한중 직항노선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중국/소련의 서울 올림픽 참여를 전후해 저 둘과 영사관계를 맺을 때부터 논의가 되었는데 비정기편이지만 1989년 8월 19일 베이징에서 열렸던 아시아핸드볼선수권대회 참가자와 1985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는 상하이 국제 모터쇼 참석자를 태운 대한항공 특별전세편이 첫 직항 비행기가 되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에도 비자에 꼬박꼬박 초청장을 요구하다가 관광비자 발급 허용으로 절차가 간소화된 것은 1994년의 일이다. 그 전까진 꼬박꼬박 초청장을 요구했다. 그래서 개인 관광을 하기에는 매우 번거로워서 연변에 친척이나 지인이 있지 않는 이상은 단체 관광으로 왔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 대부분 단체 관광의 목적지는 베이징시, 선양시, 백두산, 상하이시, 몽골 고원 등 그간 한국인이 보고 싶어 했던 곳들이었다.

3. 1990~2000년대

본격적인 중국 관광 및 유학이 활성화된 건 1995년~ 2000년의 5년 사이로 생각보다 오래되진 않았다. 그 20~25년 사이에 현재는 그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한국인이 많아졌고 중국에서의 한류 열풍도 강해졌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에서는 IMF 경제 위기의 출구 전략으로 중국 진출 붐이 일기도 했다. 국내에서 부도의 쓴맛을 보고 나서 재기를 시도하던 여러 중소기업들이 앞다투어 그때 막 뜨기 시작하던 중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 내며 중국에 진출하고 그 뒤 브랜드 론칭하고 성공하거나 혹은 망하거나 하면서 베이징의 왕징 및 우다오커우, 상하이의 홍차오 등에는 한인 숫자가 엄청 늘어 한인촌이 형성되게 되었다. 이 중국 붐은 2001년 중국이 WTO 회원으로 정식으로 가입한 카타르 도하 서밋 이후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에는 중국인의 소득이 너무 낮아 소비력도 약했고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인건비가 매년 급속히 상승하여 경공업 쪽은 채산성이 떨어진 데다가 중국 정부의 기술 빼먹고 먹튀 짓을 당한 기업이 많아서 결국 대부분 도로 빠져나와야 했다.

4. 2010년대 이후

2010년대 이후 현재는 베트남을 두고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베트남은 기술 먹튀 논란도 없는데 아직까지 그런 논란이 나올만큼 발전하지 못한 탓이다. 물론 중국에 비해 못 사는 나라라 아직까지 구매력이 낮고 이쪽도 생각보다 강경한 사회주의 국가라 규제 등도 문제다.

현재는 개방도시들만 보면 대한민국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구글 등을 이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비자 발급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입국이 까다로우며 규제가 빡빡한 사회주의 국가의 특징들이 남아 있는 국가다. 그래도 자국민 수요도 엄청난 덕택에 여행 인프라는 잘 되어 있는 편이고 비슷한 조건인 중국의 라이벌 국가인 인도보다는 안전하고 쾌적한 국가다.


[1] 당시 중국은 월급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한국 돈 몇 만 원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당시의 한국도 월급 수준이 높지 않아서 일반 직장인들은 월급 수십만 원 정도만 받은 것이 보통이었고 월 100만 원 받으면 잘 사는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중국보다는 훨씬 잘 살았었다.[2]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엔 같은 사무실에서 이름만 홍콩마카오판공실로 바꿔 존재한다. 홍콩 행정장관 위쪽에 명목 상 홍콩 정부 총괄기구는 이쪽이지만 실권은 행정장관에 위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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