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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채화(綵花)란 종이, 비단, 모시, 밀랍 등으로 만든 전통 조화(인조 모형 꽃)이다. 궁중에서 사용된 것은 궁중채화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 종이꽃은 궁중의 의식[1], 사대부 집안의 잔치, 아전, 서민 계층에까지 사용되었다. 종이꽃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匠)이 있었는데, 이들을 조화장(造花匠) 또는 지화장(紙花匠)이라 불렀다. 종이꽃에 쓰이는 색채는 주로 빨간색 · 노란색 · 초록색이다.
2. 궁중채화
대한민국 국가무형문화재 124호이다.조선시대 궁중의 연회(진연) 등에서 사용되었다. 고려사에 궁중에서 제작된 채화와 이를 맡은 직책이 존재했고 임금이 꽃을 하사한 기록이 있는걸 보면 조선시대 이전부터 전래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궁중에는 채화를 만드는 장인인 화장(花匠)들이 있었는데 종묘제례를 관장하는 봉상시에 6인, 빈객의 연향 등을 맡던 예빈시에 6인, 내지시에 2인의 화장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실전될 뻔 했다가 상술한 국가무형문화재 124호 보유자인 황수로 궁중채화장이 기록 그대로 복원했다.# 경상남도 양산시에 황수로 궁중채화장이 설립한 한국궁중꽃박물관에서 궁중채화를 전문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2.1. 준화
준화(樽花)는 병에 꽂아 연회장을 장식한 채화다. 꽃 뿐만 아니라 나비와 두루미, 공작새 등 새 모양을 함께 장식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홍벽도화준>은 임금의 어좌 양옆을 장식한 한쌍의 화준(꽃항아리)에 각각 수천개의 홍색, 벽색 오얏꽃 모형들을 넣어 재현한 작품이다.2.2. 상화
상화(床花)는 연회 잔칫상 위를 장식한 채화다. 고임상 등 연회에 올라온 음식에 꽂은 채화로는 세갈래 가지에 꽃이 달린 홍도삼지화(紅桃三枝花), 연못의 연꽃을 형상화한 수파련(水波蓮) 등이 있으며, 그 외 월계화[2], 사계화, 목단(모란)화등을 사용했다.2.3. 잠화
잠화는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머리에 꽂는 채화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따르면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거행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정조와 혜경궁 홍씨는 어잠사권화(御簪絲圈花)를, 백관 이하는 홍도이지화(紅桃二枝花)를 꽂았다고 한다.2.4. 지당판 채화
지당판(池塘板)은 침상과 비슷한 모양의 상 위에 등롱과 큰 연꽃 모형들을 세우고, 그 주변으로 모란화준 7개를 놓은 실내 인공 정원이다. 본래 궁중 가무를 위한 도구로, 연꽃 핀 연못을 상징한다고 한다.3. 기타
3.1. 윤회매
고결한 선비정신이 담긴 밀랍매화꽃 '윤회매'영원히 지지 않는 예술, 윤회매 X 윤회매의 명맥을 잇다
윤회매(輪廻梅)는 밀랍 등으로 만든 인조 매화이며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고안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