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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15:58:20

꼭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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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꼭두박물관에서의 소개3. 꼭두의 분류
3.1. 안내하기3.2. 호위하기3.3. 시중들기3.4. 해우하기
4. 국내외 인식과 위상5. 같이보기

1. 개요

꼭두는 상여의 부속물로 인물상, 혹은 동물과 식물의 형상이며, 나무로 만들어져 있기에 목우(木偶)라고도 한다. 현재 남아있는 꼭두는 주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8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혹자는 순장의 흔적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순장제가 없어진 것과 꼭두가 나타난 시기의 격차가 너무 큰데다, 순장을 대신하여 부장품으로서 묻히는 토우샤브티 등과 달리 꼭두는 상여의 장식물로 망자와 함께 묻히지 않아 순장의 개념과는 괴리가 크다. 물론 죽은 자를 보호하거나, 즐겁게하거나, 수발을 들어준다는 등의 기능은 유사하니, 꼭두가 나타나게 된 심리적 배경은 순장제와 비슷할 것이다.

2. 꼭두박물관에서의 소개

이 항목은 꼭두박물관의 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꼭두박물관 홈페이지 참조. 박물관에 직접 못가더라도,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많은 전시물을 공개하고 있으니 참고하자.

꼭두의 어원에 대해서는 외국어 유래설, 토착어설 등 여러 가지 말이 있으나, 모두 분명치 않다.[1] 꼭두새벽, 꼭두배기, 꼭두머리 등과 같이 꼭두라는 말은 제일 빠른 시간이나 제일 윗부분을 일컫는 것으로서[2],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있는 경계의 영역을 가리켰다.

꼭두의 의미는 바로 일상적 시간과 공간의 경계에 속하는 것, 혹은 그 경계선상에서 나타나는 환상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꼭두는 서양 종교 전통의 천사[3]처럼 우리와 초월적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이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인형"이라는 말은 일본어에서 차용된 것이며, 꼭두라는 말에 비해 지나치게 인간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어서 사용하기 적절치 않다.

꼭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전통 상여에 속해 있던 꼭두가 대표적이다. 이 꼭두가 지닌 가치, 아름다움, 다양성은 다른 어떤 꼭두보다도 꼭두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상여의 꼭두는 한국 전통시대부터 근대 초기에 이르는 나무 조각상 가운데 하나로서, 상여를 장식하고 있던 다양한 인물상과 동식물의 형상이다.

꼭두는 힘든 길을 가고 있는 이와 동행하는 존재이자, 그와 함께 즐거움 및 고통을 나누고 있는 존재이다. 이승과 저승, 현실과 꿈 사이를 오고 가는 존재인 꼭두는 천사나 신선처럼 일상과 비일상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괴로워하거나 슬픔에 잠긴 이를 위로하고 지켜주는 일을 한다.

지역적으로 꼭두는 전라도, 경상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많이 나타났다. 특히 충청도 지방에서는 "넓대기"라고 부르는 평면적인 꼭두가 널리 쓰여서, 지역 별로 특징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상도의 꼭두는 그 지역의 불교적 영향력 때문에 특히 불조각상과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지역적 특성은 일제강점기에 점차 모호해 지는 경향을 띠게 된다. 북한 지역에도 꼭두가 존재했으리라는 추측을 하고 있지만, 아직 확인 할 수 없는 형편이다.

3. 꼭두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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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이미지와 무조건 일치시킬 수는 없다. 인물상의 꼭두는 일상의 인간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非)인간계 및 초(超)인간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꼭두는 크게 인물상 꼭두, 용 꼭두, 봉황 꼭두로 나뉘는데, 특이하게도 지배층의 상여에는 인물상의 꼭두가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사람모습의 꼭두는 다음의 네 가지 기능 범주로 나눌 수 있다.

3.1. 안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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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것으로, 움직임과 옮겨감의 주제가 두드러진다. 일자 용 위의 중심에 모셔져 있는 나무 꼭두의 경우에 이런 기능이 현저하다. 이 꼭두는 대부분 역동적인 분위기를 띠며, 용과 봉황, 혹은 융합적인 동물 등 비인간적 혹은 초인간적 존재와 더불어 나타난다.

3.2. 호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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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나쁜 영향력의 침입을 받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으로, 무기를 들고 있거나 위협적인 표정을 하고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파일:external/67c5ba9a38274987ff50e20ea897fc1b622dbc48b526215567c153e754953cb0.jpg
무서운 얼굴 모습의 귀면[4]도 여기에 해당된다. 고종의 장례 행렬에서도 보인 방상씨[5]의 경우도 이 범주에 속한다. 시대적인 변화가 담겨져서, 조선시대에는 무관의 모습을 하다가, 대한제국 때와 일제강점기에는 경찰, 그리고 해방 후에는 총 든 군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3.3. 시중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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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에게 생시와도 같은 시중을 드는 것 또한 꼭두 역할의 양상이다. 안내하기의 경우는 앞장서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반면, 이 경우에는 뒤따르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동태적이라기보다는 정태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시녀나 나인 등 여인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3.4. 해우하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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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불안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별은 슬픔의 정조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은 불안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분위기 전환의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거나, 거꾸로 서서 곤두 도는 연희를 하는 모습으로지 나타나는 재인 꼭두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도 나와 EDM에 맞춰 춤추는 모습을 보였다.

4. 국내외 인식과 위상

파일:external/kyoposhinmun.com/1380898023-10.jpg[7]


의외로 2012년 뒤부터 외국에서 꽤 알려졌는데, 이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념하여 열린 특별전,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8]가 호평가득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유럽 4개국 독일, 헝가리, 벨기에, 프랑스등지의 현지에서 열띤 반응이 있어 유럽 순회전 전시회까지 가졌었다. 심지어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인류학 박물관은 이때 주독한국문화원의 동 전시회 개최 제의에 대해 예정에 없던 특별 전시 홀까지 제공했다. 오히려 국내보다 성원이 있었던것. 씁쓸한 현실이다. 다만 김옥랑 관장과 꼭두박물관의 노력 덕으로 구글링을 하면 꼭두 사진이 꽤 나온다.

파일:꼭두메이트.jpg
현재는 핸섬스튜디오라는 업체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꼭두메이트> 피규어 제품군을 판매하고 있다. 네이버 쇼핑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5. 같이보기


[1] 외래어설은 독일의 리하르트 피셸(Richard Pischel) 교수가 1900년에 처음 주장했다. 그는 세계 꼭두극의 발상지를 인도로 지목했고, 인도의 꼭두 원형인 대머리 난쟁이 바라문 인형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와양극(Wajan Purwa)의 세말(Semar)로, 터키에서는 가라괴오즈(Karagoze)로, 페르시아에서는 카살 파아라완(Kacal Pahlawan)으로, 중국에서는 곽독(郭禿)으로 변형되었다고 보았다. 이들은 모두 대머리 골계극의 인형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에 따르면 꼭두각시 인형극을 일컫는 단어인 인도의 kuki, kukli나 터키의 kukla를 중국인들이 곽독(郭禿:궈투)으로 음차하고, 이것이 다시 한국어의 꼭두, 일본어의 쿠구쯔(クグツ)로 이어졌다고 본다. 한국의 남사당패가 꼭두각시극을 공연했고, 일본 역시 헤이안 시대 이래 인형놀이로 공연을 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근거를 갖고 있기는 하다. 그밖에 오토 슈피스(Otto Spies)는 괴뢰나 곽독이 알타이어의 꼽추나 난쟁이를 지칭하는 말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2] 꼭두각시와 같이 없는것, 허깨비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남사당패 덜미에 쓰인 꼭두각시라는 말이 바로 이 상여가마의 꼭두에서 유래됐을 가능성도 있다면 허깨비라는 의미는 여기서 파생된 것일테지만 말이다. 현재 꼭두 자체는 허깨비라는 의미와 상여의 꼭두 두가지 의미를 가진다. 과거에는 인형의 순 우리말로 쓰였다는 해석도 있다. 여기서 인형은 과거에 생각한 인형과 개념차이가 있겠지마는...[3] 꼭두박물관 김옥랑 관장은 꼭두를 사자(死子)의 수호천사로 여겼다.[4] 또는 용면. 위 사진은 상여가마에 장식된 귀면(용면)꼭두이다.[5] 방상씨는 고종과 같이 높은 자의 장례 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흔히 쓰였다. 얼마나 화려하게 치장하였나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게렉터 블로그 주인장이 설명했듯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6] 꼭두박물관의 표현으로는 즐겁게하기,[7] 우측 두번째가 김옥랑 관장이다.[8] 가본 사람 말로는 상여소리가 배경음으로 깔려있었다고 한다. 마침 뒷배경도 꽃상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