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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4 15:42:05

보료

파일:보료.jpg

전통 좌식 생활에서 깔고 앉는 침구다. 온돌의 딱딱함으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는 실용적인 침구로 위의 사진에서 바닥에 길게 깐 요를 말한다.

보료의 크기는 옛날에는 너비 80cm에 길이는 190~195cm, 높이는 5~7cm 정도였으나, 지금은 현대인의 체격에 맞추어 너비 90cm, 길이 210cm, 높이 15cm 정도 더 크고 높게 나온다.

보통은 바닥에 까는 넓은 요형태만 보료라고 하기도 하지만, 안석·장침·사방침·방석 등을 모두 총칭하기도 한다. 등받이인 안석(案席), 머리나 팔꿈치를 받치는 장침(長枕), 팔꿈치를 괴는 용도인 정육면체의 사방침(四方枕)이 기본 구성인 구삼벌이고, 여기에 보료를 더한 것이 보료일습이다. 보료일습에 방석 다섯 개를 더한 것이 구관(九官)이다. 방석이 다섯 개인 이유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보료 앞에는 보통 경상[1]이나 서안[2], 여자들은 경대[3]를 추가적으로 두고 생활한다. 이외에도 식사 시에는 밥상을, 차를 마실 때는 다과상을 둔다.

보료의 경우 방석처럼 무늬가 있는 쪽을 위로 해서 깔지만 잘 때 까는 요는 쉽게 더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보료와는 반대로 무늬가 있는 쪽을 아래로 깐다. 보료는 사치품의 하나라 주로 비단을 썼지만 이불이나 요는 일상용품이라 몸에 닿는 부분은 무명이나 광목을 주로 이용했다.

잠을 잘 때에는 개어서 다른 곳에 두고 이불을 깔거나 혹은 다른 방에서 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종함녕전에 보료 세 채를 깔고 침수 들었다는 삼축당 김씨의 증언이 있다.[4]

사용 시 주의사항이 하나 있는데 안석 뒤에 병풍이 있으면 기대면 안 된다. 병풍은 고정되어 있지 않아 넘어질 수 있다. 그리고 병풍은 애초에 자립할 수 없어 구색을 위해 세워두는 용도만 수행한다. 그러나 안석이 벽이나 단단한 의자 등받이에 세워진 경우에는 맘 편히 기대도 된다.

원래 보료의 두께가 얇았으나 최근 들어 두껍게 제작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 위에서 간단하게 낮잠을 잘 수도 있고 소파대용으로 쓸 수 있다. 또 나무형 평상에 올려서 쓸 수도 있다.

요즘에는 혼수용품으로 주로 쓰며, 집안 어르신들의 방을 꾸밀 때도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전기장판이나 일인용 요를 보료라고 이름붙여 판매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사극에서 주로 나오는 소품이다. 사치품이라 주로 극중에서 높으신 분들이 자주 사용한다. 보통 방의 주인이 사용하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 방문하면 방의 주인이 비켜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보료가 놓인 곳이 상석이기 때문이다.

검소함으로 유명한 영조는 이 보료를 닳으면 꿰메어가며 썼으며 보다못한 신하가 좋은 보료를 지어 바치자 몸이 게을러진다며 도로 물렸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1] 경전이나 책을 얹어놓고 읽는 데 쓰였던 책상 #[2]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전통 책상 #[3] 화장품과 화장용품들을 보관하던 거울이 달린 작은 목가구로 좌경(座鏡)이라고도 한다.#[4] 출처: 조선조궁중풍속연구(김용숙, 일지사, 1987)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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