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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21:28:57

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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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갓6.jpg

파일:갓.jpg

1. 설명2. 조선시대의 흑립3. 현대의 흑립4. 평가

1. 설명

흑립()은 과거 한국 남성이 썼던 모자들 중 하나다. 우리가 가장 흔히 아는 으로서, 그 형태는 조선시대에 정립되었다.

갓과 같은 형태의 모자는 삼국시대 때부터 있었던 방립이 시초이다. 그때 당시에는 대나무, 줄기, 갈대 등을 꼬아서 만들 수 있는 대부분의 모든 것들로 만들었고 딱히 생긴 모양도 정립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형태는 고려시대에도 이어진다.

원간섭기 때 말총으로 만든 몽골식 모자인 발립이 전해진다. 고려도경에 나탄난 묘사를 보면 중기까지만 해도 군인들은 무거운 투구는 그냥 등에다 걸치고 문라건이나 발립을 갑옷 위에 쓰고 다녔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말총으로 모자를 만드는 기술이 전해진 게 발전하며 나타난 흑립이 정립된 것은 성종 무렵으로 보는데, 이는 조선 초기에 해당하는 김시습의 초상화에 나타난 갓이 대나무를 엮어 만든 것임을 근거로 한다.

파일:E9mOpXf.jpg
드라마 정도전에서 묘사된 죽립의 모습.

그래서 용의 눈물, 정도전 같은 여말선초를 다룬 사극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대나무로 만들고 검게 칠한 갓을 쓰고 나온다[1]. 초립과 비슷한 개념. 참고로, 상복을 입을 때는 천으로 만든 백립이나 삿갓을 썼다.

이것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은 갓장이라고 불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갓일(갓을 만드는 일)이 등록되어 있다. 여성 버전으로는 너울이 있다. 항목 참조.


무형문화재장들의 갓 만드는 장면.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어 각 부분마다 만드는 장인이 따로 있다. 그만큼 힘들고 손재주가 많이 필요하다. 제대로 만든 갓을 보면 알겠지만, 전통 문화 중에서도 정말 장인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섬세하고 고된 작업이다.

전체를 말총으로 만든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는데,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중앙의 모자부분인 대우만 말총으로 제작하고 갓의 챙 부분인 양태는 대나무를 아주 얇게 펴서 실처럼 가늘게 찢어 만든 죽사로 짠 테에 명주천을 올려 만든다.

2. 조선시대의 흑립

망건과 함께 말총(꼬리털)을 꼬아서 만들었으며 대부분의 조선시대 양반이면 하나씩은 꼭 가지고 있었다.[2]

파일:external/newsplus.chosun.com/2012061100599_3.jpg
출처

초중기에는 흑립의 크기가 너무 커지면서 망가지기 쉬웠다. 게다가 말의 꼬리로 만들기 때문에 군수물자로서 중요한 말을 상처입히는 경우가 많았다[3]. 결국,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은 넓은 갓을 금지시키게 된다. 그래서 구한말 찍힌 사진들을 보면 좁은 챙이 대부분이다. 반대로 조선 후기의 회화들을 보면 흑립이 대부분 크고 넓다. 이 짧은 챙은 6.25 전쟁기 미군 사진에도 나온다.# 역설적이게도 흑립을 쓰는 전통이 사라진 1970년대 이후부터의 영상물에 등장하는 갓은 조선 후기 스타일의 넓은 챙을 가진 흑립이 부활하여 2020년대 현재까지 꾸준히 등장하고 있으며, 현대 한국인의 관념에도 갓=넓은 흑립으로 이미지가 확립되어 있다.

파일:external/newsplus.chosun.com/2012061100599_4.jpg
출처 마찬가지로 비싼 갓통 + 백립.

은근히 관리하기 힘들어서 전용 갓통에 보관했다. 현대로 따지면 명품 코트, 의복 취급이니 애지중지 하는게 당연했다. 양반 이름이 붙은 사람은 최소 하나 이상을 구비했다. 몰락한 양반들은 해지거나 구겨진 갓을 쓰고 다녔기에, 양반의 가세를 구분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박제가는 자신의 수필에서 조선인들은 갓 하나를 가지고 차양이 다 떨어질 때까지 쓰다보니 나중에는 머리에 얹는 모자 부분만 남은 것도 예법이랍시고 쓰고 다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야 “저렇게 생긴 조선 모자도 있나보다”하고 넘기지만 조선인들이 보면 웃다 죽을 판이라며 아예 갓을 없애는 게 낫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양반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양민, 심지어 노비도 쓰고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값이 무지막지하게 비싸서 천석꾼, 만석꾼, 거상급의 부자가 아닌 이상 저렴한 패랭이나 격이 좀 낮은 탕건을 쓰지 이건 잘 못 쓰고 다닌 것.

특유의 가벼운 구조 덕분에, 착용할 시에는 갓끈으로 고정시키는게 중요했다. 연암 박지원열하일기에서 갓끈이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비평을 하기도 했다. 잘 쓰면 묘한 멋이 있다.

현대에 보기에도 가벼운 쓰개가 둥 떠있는 모양이 신기한 편인데,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는 그야말로 절정 간지템으로 취급 받아서 금방 유행을 타게 되었다.

검은색 단색의 디자인이기 때문에 부속품으로 멋을 부렸는데, 맨 위의 사극 사진처럼 양반용 흑립은 턱에 묶는 진짜 갓끈 외에도 갖가지 색깔의 구슬을 엮어 길게 늘어뜨린 장식용 갓끈이나 갓 맨 위에 올리는 옥로라는 옥 장식품 등으로 멋을 부렸다고 한다.

3. 현대의 흑립

단발령이 시행되고 점차 수요가 줄어들었다. 해방 이후 1960년대 전까지만 해도 간간히 노인분들이 쓰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갓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이것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민족종교갱정유도쪽 사람들이거나 굿하는 중인 무속인, 공연중인 전통 예능 계승자들이다. 그냥 한복을 즐겨입는 사람도 비슷하게 생긴 중절모를 쓰면 썼지 갓은 안 쓰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비싸고 불편한 물건이다(…). 그나마 개중에는 전통있는 명문종가 출신들, 가령 지금도 안동에서 노인정 대신 서원에 출입하는 노인들은 집집마다 갓을 구비하고 있으며 갓을 쓰고 다닌다.

현대 일반인의 기준으로 볼때 '전통의상에서 머리에 쓰는 물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게 이거다. 가끔 1000냥 가게에서 팔리기도 하지만 메이드 인 차이나. 정말이지 대충 만든게 수두룩하다.[4] 불교용품점에서도 종종 파는데, 대부분 무속인들의 장식품용이다.

제대로 만든 갓은 굉장히 아름다울 뿐더러,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독특한 멋이 있다. 풍모가 좋은 선비가 제대로 만든 갓을 쓰면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여러모로 중세 조선에서는 간지템, 패션 아이템의 최선두였던 셈.

18세기에 갓을 처음 본 서양인들은 조선인들이 만들어낸 갓에서 어마어마한 손재주와 가볍고도 우아한 모양새에 놀랐다고.[5]

나폴레옹도 조선인의 복식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영국의 해군 대위인 바실 홀(basil hall)이 조선오키나와를 돌아본 뒤, 나폴레옹이 유배하고 있던 세인트 헬레나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홀 대위가 보여준 조선인들의 스케치를 유심히 보던 나폴레옹은

파일:조선사또 이승렬.jpg
"이 노인[6]은 아주 큰 모자를 썼군. 길고 흰 수염에 쥐고 있는 기다란 파이프(담뱃대)도 재미있게 생겼구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라며 이 옷은 어떻게 만들었는지, 값은 얼마인지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에 고작해야 열흘 남짓 있었던 홀 대위가 알 리가 없었다(...)
“공기와 빛이 알맞게 통하고 여러 용도에 따라 제작되는 조선의 모자 패션은 파리 사람들이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
-프랑스의 민속학자 샤를 바라
“조선 사람들은 대체로 소박하고 단순하지만 모자만큼은 예외적으로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7]

모자의 나라 갓조선의 위엄(feat. 넷플릭스 킹덤)
현대에 들어서도, 2019년작 드라마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되자 외국인 시청자들이 갓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4. 평가

필요성 면에서는 여러모로 조선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흥선대원군이 조선후기 온갖 모자들의 챙을 줄이라는 명령을 한 걸 보면 알겠지만, 조선 여성들의 가체와 함께 대표적인 낭비의 소산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가볍고 통풍성이 좋아서 더울 때는 나름대로 훌륭한 모자였다. 실학파에서는 비를 막아주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했지만, 잘 생각해보면 고급 모자류 중에서 비를 막아주는 물건은 현대에도 없다.[8] 그리고 비가 올 때는 갈모라고 따로 갓 위에 덮어 쓰는 방수용 모자가 따로 있었다.

흑립은 대표적인 신분제의 상징인데다가, 민족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외국의 귀족제 사치품들을 생각해보면 딱히 조선의 양반들만 이상했던 건 아니다.[9] 가령 유럽의 경우 근세 이후부터는 가발이 귀족과 상류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었다. 귀족들이 착용하는 고급 가발들이 매우 고가의 물건이었음은 물론이고, 이때문에 여인네들이 머리 위에 어린아이를 숨긴 바구니를 이고 지나가는 행인의 가발을 퍽치기하는(…) 풍조까지 생겨 가발을 쓴 사람은 빈민가에서 머리를 움켜쥐고 빠르게 허겁지겁 지나가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연구자들 중에는 오히려 조선시대 장인들의 손재주나 근면성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참고로 흑립은 너무 섬세한 물건이라서, 외국으로 반출되는 경우가 적었다고 한다.

사실 현대의 사극 등에서 사용되는 흑립은 고증이 아주 좋다고는 할 수 없는데, 본래 대우는 말총을 촘촘히 엮어서 만들기 때문에 사람의 긴 머리카락이 반사광을 내는 것처럼 색이 매우 진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윤기가 흐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양태는 얇은 비단을 씌우기 때문에 서양의 실크 햇과 비슷한 광택이 난다. 민영익을 포함해 사진이 남아있는 근대 세도가의 모습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그러나 현대에 재현되어 판매되는 흑립들은 합성섬유 등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는 거의 표현되지 않고 그냥 망사처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갓을 사용하려면 안 그래도 부족할 예산이 갓 하나 사는데 전부 쓰이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1] 정도전에서 묘사된 정몽주의 경우처럼 발립을 혼용하여 시대상을 더더욱 돋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2] 허생전에서도 언급된다. '제주도의 말총을 매점매석했더니 온 조선의 부를 손에 넣게 되었다'는 묘사가 괜히 들어간게 아니다![3] 초기 명나라에서도 조선에서 유래한 마미군이 유행하자 군대와 관청의 말총까지 훔쳐 폐단이 심하다는 기록이 있다.[4] 흥선대원군이 괜히 절약하겠다고 쩨쩨하게 챙 넓이를 줄인게 아니다. 갓이나 말총이 많이 유통되었던 과거에나 쓰고 다닐 만한 물건이지 현재는 제대로 만들어서 관리하려면 등골이 휠 정도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5] 프랑스가 놀란 조선의 모자(帽子) 문화, 헤럴드경제, 2017년 6월 13일[6] 기록에 따르면 비인 현감 이승렬이라고 한다[7] 특히 엘리자베스 키스의 경우 판화를 통해 조선의 다양한 모자를 소개하기도 했다.[8] 페도라실크 햇 같은 경우 어느 정도 방수성은 있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이고 이쪽도 비에 완전히 젖으면 펠트 모자답게 쭈그러들어 망가진다.[9] 민주주의 시대에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신분제도, 왕정, 독재자 같은 비민주적인 계급 시스템들은 실용성보다는 하위 계급의 부를 갈취하고 과시하는데 주력할 수 밖에 없다. 조선 후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왕조국가들이 그랬는데 딱히 조선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이런면에선 오히려 조선은 그나마 멋을 낼 수 있는게 갓의 품질, 도포의 재질 같이 당장 눈에 띄지는 않고 약간 봐야 그 고급 품질을 느낄 수 있는 물건들이었던 만큼 상류층의 과시 문화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억압적인 쪽에 속했다. 애초에 유교가 중시하는 것이 한눈에 튀지 않는 것, 사치보다는 검소한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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