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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모(弁形帽), 조우관(鳥羽冠)·조미관(鳥尾冠)[1], 절풍(折風)[2]
1. 개요
高麗俗服窮袴, 冠折風一梁, 謂之幘. 知讀五經. 使人在京師, 中書郎王融戱之曰: 「服之不衷, 身之災也. 頭上定是何物?」 答曰: 「此卽古弁之遺像也.」
高璉年百餘歲卒.
고(구)려인의 습속은 좁은 바지를 입고, 관(冠)으로는 일량(一梁)의 절풍(折風)을 쓰는데, 이를 책(幘)이라 한다. 오경(五經)을 읽을 줄 안다. (고구려의) 사신이 수도(國都)에 있을 때 중서랑(中書郞) 왕융(王融)이 희롱하기를, "입은 것이 적합하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 위에 얹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니, (고구려 사신이,) "이것은 바로 옛날 고깔(弁)의 잔영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고연(高璉)은 나이 백여세에 졸(卒)하였다.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고구려(高句麗) 출처
고대 한국사 삼국시대 때 쓰던 모자. 관모(官帽)의 한 종류이다.高璉年百餘歲卒.
고(구)려인의 습속은 좁은 바지를 입고, 관(冠)으로는 일량(一梁)의 절풍(折風)을 쓰는데, 이를 책(幘)이라 한다. 오경(五經)을 읽을 줄 안다. (고구려의) 사신이 수도(國都)에 있을 때 중서랑(中書郞) 왕융(王融)이 희롱하기를, "입은 것이 적합하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 위에 얹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하니, (고구려 사신이,) "이것은 바로 옛날 고깔(弁)의 잔영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고연(高璉)은 나이 백여세에 졸(卒)하였다.
남제서(南齊書) 동남이열전(東南夷列傳) 고구려(高句麗) 출처
관모(冠帽) 부분과 조우(鳥羽)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신분이나 지위가 있는 사람이 쓰는데, 고깔[3]에 양 옆으로 깃털을 꽂은 다음 머리 위에 올리고 턱 아래에서 끈을 묶어 고정하는 식으로 쓴다. 대체로 깃털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을 더 높은 계급으로 친다.
세 나라
절풍(折風)은 뒷날까지 일반 고구려인의 대표적인 모자로서 고깔(弁)모양이었다. 사인(士人)들은 이에 조우(鳥羽)를 꽂아 장식하였는데 조우를 관(冠)에 꽂는 것은 북아시아 제종족(諸種族)에서 널리 보이는 원시종교로서의 조류숭배(鳥類崇拜)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항마양귀(降魔攘鬼)의 주술적인 성격을 지녔다. 새털을 모자에 꽂는 풍속은 신라와 백제에도 있었다.
『북사(北史)』고려전(高麗傳)에서 전하는 귀인(貴人)의 관(冠)이라는 소골(蘇骨)을 절풍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양자(兩者)를 구분하여 소골을 『삼국지(三國志)』의 '책이무후(幘而無後)'한 관모로 보는 설도 있다.
≪參考文獻≫ 李龍範, 「高句麗人의 鳥羽挿冠에 대하여」『東國史學』 4, 1956. 출처
『북사(北史)』고려전(高麗傳)에서 전하는 귀인(貴人)의 관(冠)이라는 소골(蘇骨)을 절풍과 동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양자(兩者)를 구분하여 소골을 『삼국지(三國志)』의 '책이무후(幘而無後)'한 관모로 보는 설도 있다.
≪參考文獻≫ 李龍範, 「高句麗人의 鳥羽挿冠에 대하여」『東國史學』 4, 1956. 출처
2. 종류
삼국시대 관모, 관식 일러스트/절풍, 조우관,고깔,변형모1500년전 원형 그대로… 신라 모자 출토
조우관의 주재료는 가죽이나 말총 등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고학적 연구결과 자작나무 껍질로 만드는 것이 밝혀졌다. 위 사진처럼 실존 유물이 존재한다.
자작나무 껍질은 백화수피(白樺樹皮)라고도 부르며[6] 질기고 튼튼해 예로부터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목공예 재료로 써왔다. 한국의 자작나무 껍질 공예 유물 중 유명한 사례로 천마총에서 발굴한 천마도[7]와 천마총 백화수피제 채화판이 있는데 이 유물들 역시 조우관과 마찬가지로 자작나무 껍질이 주재료이다. 조우관 위에 덧씌우는 금속제 고깔들 또한 조우관과 거의 같은 형태를 띄고 있다.
3. 역사
일반적으로 스키타이(샤카 Sakā) 문화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정확한 유래를 알 수 없다. 절풍, 조우관의 스키타이 유래설에 대한 반론
초기에는 여러가지 깃털을 사용한 천연 깃털 양식을 썼던 것으로 보이는데 시대가 흐를수록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금속제 양식이 나타났다. 이런 금속제 양식은 삼한 중에서도 특히 신라의 것이 많이 발굴되었다.
회화에서도 조우관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데 고구려의 쌍영총과 무영총 고분 벽화에서 조우관을 쓴 사람이 말을 달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백제는 양직공도에서 조우관을 쓴 백제 사신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신라는 1971년 중국 섬서성박물관이 발굴한 예빈도 그림에서 조우관을 쓴 신라 사신을 볼 수 있다. 가야는 유물을 통해 조우관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7세기 중반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서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를 찬 사신들이 발견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8] 고구려나 신라의 사신으로 추정하며, 고구려라면 연개소문 집권시 돌궐과의 연합을 통해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보낸 밀사가 아니냐는 설이 있으나 사마르칸트로 직접 고구려인들이 사신을 보낸건 아니고, 조우관은 극동의 고구려인에 대한 상징으로서 고구려 사절을 그려놓았다는 주장도 있다.
시대가 흐르며 모자의 형태는 계속 바뀌었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중기부터는 관복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조우관 문화는 여전히 공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발견된 당나라 황태자 이현(李賢, 654~684)의 무덤 벽화 예빈도에서 신라 사신이 조우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고굴 제355굴에서도 조우관을 쓴 한국인 2명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삼국시대를 한참 지나서 통일신라 말기에 해당하는, 즉 중국이 오대십국시대 즈음으로 접어들 무렵이다.
고려 시대 이후부터는 관모에 깃털 장식을 하는 경우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전립, 주립, 갓 등 다른 모자에 깃털 장식을 하는 문화는 남아서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4. 착용
무용총 수렵도 |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
무용총 동벽 기마도(騎馬圖) | 안악3호분 행렬도 |
무용총 접객도 | 수산리 고분 영접도 |
덕흥리고분 통로서벽 묘주 행차도 | 덕흥리고분 널방서벽 마사희(馬射戱)도 |
<안악 3호분 행렬도>에서는 대부분이 군인이긴 하나 좌측 중앙에 백마를 탄 무관을 비롯해 투구를 쓰지 않은 병사들과 묘주까지 모두 변형모나 책을 쓰고 있으며 깃털을 꽂아 장식한 조우관을 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무용총 접객도>에서는 조우관 대신 접대를 하는 쪽은 변형모를, 접대를 받는 쪽은 상투관으로 보이는 걸 쓰고 있다.
<수산리 고분 영접도>에서 역시 신분이 높은 사람들로 보이지만 조우관을 쓰지 않고 영접을 하는 쪽과 받는 쪽 모두 뒤가 높게 솟은 흑책으로 보이는 모자를 쓰고 있다.
<덕흥리 고분 통로서벽 - 묘주 행차도>를 보면 묘주를 수행하는 기마무사 등이 조우관이 아닌 무관용 책(幘)[10]을 쓰고 있다.
<덕흥리 고분 널방서벽 - 마사희도>에서는 기마궁술을 겨루는 무사들이 조우관이 아닌 수건(두건, 그 중에서도 흑건)을 쓰고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고구려 고분 벽화 묘사로 보아 고구려인 남성은 신분고하를 가리지 않고 대게 조우관을 쓰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신 일상과 행사에서 대게 깃털을 꽂지 않은 기본 변형모를 쓰거나 책, 상투관, 수건(두건)을 주로 쓰고 있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용총 수렵도>에서 보이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인 남성들은 조우관을 일상적으로 착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관련 논문
위에서 언급한 벽화들 가운데서도 조우관이 보이는 건 <무용총 수렵도 속 사냥을 하는 남성들>, <무용총 무용도 속 춤을 추는 남성>,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속 고구려인>뿐이며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은 다른 벽화들을 보아도 변형모, 책, 상투관, 수건(두건)은 흔하게 그려져 있지만 조우관은 찾기 어렵다. 조우관이 그려진 고구려 벽화는 집안의 <마선구 1호분(모사도)>, <무용총>, <장천 1호분>과 남포/평양/대동/순천의 <동암리 고분>, <쌍영총(모사도)>, <개마총> 6군데 뿐이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은 5세기 초반 <동암리 고분>이다.
이에 대해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남자복식의 양식 분석(이미현, 2004)>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 주변국에도 이러한 鳥羽(조우)를 (변형모 또는 투구 등에) 삽식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백제나 신라는 朝拜(조배, 조회하고 배례함)나 祭祀(제사), 儀禮(의례)시에 착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肅愼(숙신)이나 靺鞨(말갈), 契丹(거란), 蒙古(몽고)의 경우에도 儀禮(의례) 혹은 장식용으로 鳥羽(조우)를 삽식했다고 한다. 즉 고구려의 鳥羽(조우) 삽식 풍속은 특정한 북방민족에게서 받아들인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렵문화를 가진 민족들간에 주술적인 의미로 공통적으로 갖게 된 풍습으로 생각한다.
이를 통해 추측해 보면 고구려에서 조우관은 사냥놀이를 하거나 축하행사 또는 의례에 참석하는 경우처럼 특별한 날에 멋을 내기 위해 변형모에 깃털로 장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 있다.5. 미디어
실제 삼국시대 역사에서는 발굴한 유물로만 보아도 조선 시대의 갓만큼 자주 보이는 모자이지만 어째서인지 사극에서는 조우관을 쓴 인물들을 보기가 힘들다. 아마도 실제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해야 하고 장기적인 소품 관리가 까다로운 점이 가장 큰 이유인듯 하다. 그래서 그냥 상투를 틀고 이마에 두건을 두르는 걸로 처리하거나 중국식 관모나 쓰개를 쓰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KBS사극 삼국기에서 엑스트라들이 잠깐 착용했었다.
KBS사극 대조영에서 초기에 잠깐 나왔다. 고사계와 요동출신들이 이 조우관을 잠깐 착용했다.
MBC 사극 계백에서 김춘추가 이 조우관을 쓴 모습이 몇차례 나오기는 했다. 또한 초기에는 백제의 관모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서 사용하는 모습이 보여 호평을 받았으나, 중후반대 이후로 자본의 압박인지 중국식 상투쓰개를 사용한다(…). 다행히 제왕의 딸 수백향에서 다시 상당수준으로 고증된 백제 관모와 금동관모가 등장해 중국식 상투쓰개 일색이던 고대사 사극에서 후술할 근초고왕, 대왕의 꿈과 더불어 좋은 선례를 남겼다.
근초고왕에 등장한 오라관 | 대왕의 꿈에 등장한 조우관 |
코에이에서 여포에게 항상 이 조우관 비스무리 한 것을 씌운다(...).[11]
쿠키런의 흑당맛 쿠키가 착용하고 있다.
6. 외부 링크
[1] 변형모에 새의 날개나 꼬리에서 따온 깃털을 꽂은 것[2] 고구려에서 부르던 별칭이다. 말을 탈 때 바람을 막아주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바람막이[3] 고깔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 조우관의 몸체 부분을 가르키는 말에서 유래했다. 고대 한국어에 대한 차자 표기로는 高思曷伊(고ㅅ갈이).[4] 기록에 없어서 그렇지 가야도 조우관을 사용했다. #[5] 비슷하게 새와 관련이 있는 문화로 솟대가 있다. 이 또한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문화이다.[6] 백화수는 자작나무의 다른 이름이다.[7] 백화수피 위에 가죽을 덧대어 완성했다.[8] #[9] 고구려 시대를 묘사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출연진들이 조우관을 썼느냐 안 썼느냐를 가지고 의상 고증이 잘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는 하는데 조우관을 쓰는 것이 고증 자체에는 더 맞다.[10] 문관이나 무관의 의례용 모자로, 뒷부분의 운두가 두 갈래로 갈라져 앞으로 구부러진 형태와 운두가 뾰족하게 솟은 형태 두 가지가 있음. 전자는 문관용이며 후자는 무관용[11] 중국 내부에서 그려진 여포 그림이 원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