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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성근의 별명을 담은 문서.2. 상세
2.1. 야신(野神)?
기자: 2002년 한국시리즈 직후 김성근 감독을 '야신'으로 치켜세웠지요. 지금도 '야신'이라는 칭찬이 유효한가요.
김응용 감독: 솔직히 얘기하자면, 승자는 패자를 보다듬어 줘야하잖아요. 그게 예의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겼다, 그러면 죽은 사람 한 번 더 죽이는 거잖아.
- [김응용 감독 인터뷰] "야신 김성근? 패자 배려차원에서 한 말"
김응용 감독: 솔직히 얘기하자면, 승자는 패자를 보다듬어 줘야하잖아요. 그게 예의지.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겼다, 그러면 죽은 사람 한 번 더 죽이는 거잖아.
- [김응용 감독 인터뷰] "야신 김성근? 패자 배려차원에서 한 말"
"야, 이게 말이야 내(김응용)가 야신이라고 그러면 사람들이 야구 신이다 그럴 것 아니냐. 그러면 그 사람(김성근)을 이긴 나는 뭐가 되냐. 나는 사실 그걸 노리고 한 말인데 성근이만 야신으로 떴어. 나는 뜨지 못하고" 그러고는 막 웃더라고요
- 하일성
- 하일성
'야구의 신' 혹은 줄여서 '야신'이라는 별칭은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응용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우승소감 중 "LG 김성근 감독이 워낙 잘했어요 '신이 아닌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라고 한 발언에서 유래되었다. 이 말은 전해 들은 김성근 감독은 이 발언에 대해 "내가 신이면 나를 이긴 자기는 뭐가 되는 것이냐"라면서 웃어넘겼다.
김응용 감독은 이런 방식의 언론 플레이를 자주 했다. 강하면 비하하고, 약하면 과장하는 등. 김응용의 야신 발언은 우승한 후에 나왔기 때문에 상대를 띄워서 자신을 더 높이는 김응용 특유의 화술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립서비스.
KBS N sports의 '한국야구 레전드'에서 김응용 감독이 회상하기를 '신도 여러가지 신이 있다'면서 농담을 했다.
김응용과 김성근의 비교에 대해서는 김응용 vs 김성근 문서 참조.
야신이라는 명칭 때문에 야신상의 모델이자 전설적인 골키퍼 레프 야신과 헷갈려 하는 사람이 있다. 2회 WBC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김인식을 어떻게든 도와주겠다는 김성근 감독과, 김인식 감독이 같이 인터뷰를 했었는데, 도중에 야신이 김인식을 도와준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프레이즈가 등장했었다. 그러자 왜 축구 선수가 우리 김인식 감독을 도와주냐는 질문이 나와서 인터뷰 장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고, 김성근도 웃으면서 이러니까 야신이라고 좀 부르지 말라고 했다는 것. 그러나 SK를 맡은 뒤 보여준 엄청난 성과와 나이를 초월한 김성근의 언행 덕분에, 야신이라는 별명은 립서비스가 아니라 김성근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만큼 김성근을 상징하는 별칭으로 굳어졌다.
여담으로 야신의 유래를 다르게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백종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이 2014년 11월 3일 스포탈코리아에 쓴 '(야구는 구라다2) 야신의 평생 열등감 - 김응용'에 나와 있다. 기사 말미 '에필로그 - 야신의 유래'를 보면 김응룡 감독이 김성근 감독을 야신이라고 한 것은 김성근 감독이 하도 작전이 많고, 변화가 심하니까 못마땅해서 비꼬아 한 소리라고 한다. 다만 그 칼럼의 전반적 내용은 김성근 감독을 높게 평가하는 내용이므로 백종인 칼럼니스트가 김성근 감독을 격하하기 위해 쓴 것은 아니다. 스포탈코리아 [1]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기 전에는 SK 와이번스 시절의 좋은 성적과 함께 언론과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이미지 매우 자주 불리던 별명이었고 2015시즌 중반까지도 자주 그렇게 불렸으나, 시즌 후반부터 보여진 독선적 운영과 투수 혹사논란이 불거진 이후로는 거의 불리지 않는 별명이 되어버렸다. 그 대신 킬성근, 곡성근[2] 등으로 불리는 경향이 매우 많아졌다.
2015년 한화 시절 이후에도 야신이라고 쓰이긴 하나, 지금 다시 이 별명을 돌아보면 그저 허상일 뿐이었다. 오히려 비꼬는 말로 변질되었고, 야구는 쥐뿔도 모르는 병신 혹은 야바위의 신처럼 노골적인 멸칭까지 나왔다.
2.2. 인천예수
SK 감독 시절 별명이다. 사실 호의적인 뜻에서 시작된 별명은 아니다. SK 감독 시절 김성근은 온갖 비매너 플레이로 타팀팬들의 비난을 수시로 받았는데, SK갤러들이 김성근에 대한 비판에 대해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일방적으로 김성근을 찬양하자, 이를 혐오하는 타팀 팬들이 SK 와이번스 갤러리를 중세갤이라 부르고 김성근을 예수라며 비꼬면서 생긴 별명이었던 것. 애당초 인천예수라는 말을 처음 만든 것도 SK갤러들과 싸우던 두산 팬이다.그러나 태평양 시절을 기억하는 올드 인천팬들에게는 김성근이라는 인물 자체의 이미지가 좋았기 때문에 예수라는 별명 또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컸고, 최근에는 오히려 SK 팬들이 앞장서서 인천예수라는 말을 사용하며 김성근 감독 팬질 부흥의 새 역사를 쓰고 있으니 아이러니.
그런데 올드 인천팬들에게 김성근의 이미지가 좋다는 김성근 감독팬들의 주장이 사실과는 다르다는 반론이 있다. 태평양 감독 시절 김성근은 태평양과 남아있는 계약을 파기하고 삼성으로 가기 위해 임호균 각서 파동까지 일으켜 가며 프런트와 마찰을 빚었고, 경질된지 며칠만에 삼성 감독으로 선임되었기 때문에 인천 올드팬인 도원아재들은 김성근에게 배신감과 환멸을 느끼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말도 있다.
김광현의 결혼식 때 한 말이 많은 칭송을 받았다. 그가 한 말은 포기하지 마라. 이 위기를 넘겨야 진짜 강해지는 것이다. 괴로워하지 말라. 나중에 그들이 무릎꿇게 만들면 된다.
2.3. 잠자리 눈(겹눈)
한화 감독 시절 별명인데 스톡킹에서 김광수당시 수석코치가 언급하였다.2.4. 가네바야시 세이콘
자세한 내용은 세이콘 드립 문서 참고하십시오.재일교포 시절 김성근 감독의 일본 이름.
2.5. 킬성근
감독 생활 중 하도 굴려 선수 생활이 힘들어지거나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게 된 선수가 많아 붙여진 별명이다. 여담으로 류중일하고 늘 비교되고 있다. 첫번째 베플을 보자.혹사 사례는 김성근/구설/선수 기용 관련 논란 참조.
2.6. 성수동 시라소니
2.7. 그 외
- 김성근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잠자리 눈깔'이라고 한다. 다방면으로, 다각적으로 모든 정황 및 상황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 한다.
- 2002년까지 야구계에서 김성근 감독을 지칭한 유명한 별명은 '새가슴 감독'이었다. 이 별명은 포스트시즌에만 진출하면 맥없이 탈락했던 김성근 감독을 꼬집는 별명이었다. 이를 김성근 감독의 「포스트시즌 징크스」라 부르기도 했다.
- SK 왕조 시절, SK 갤러들은 송도큰형이라는 별명을 많이 썼다.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인천 할아버지'[4]는 별명이 어떠냐 묻자, '인천 사는 건 맞는데 할아버지는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본인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며 손자도 없는데 할아버지, 노인 이런 말 싫다고. 감독으로서의 자기 철학과도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오냐오냐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을 훈육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선수들은 자기 자식들과 다름없는 존재이기에 할아버지가 아닌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5] 이에 이기광이 '인천 큰형'이라고 하자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2군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6] |
- KBS에서 SK 2군 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때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은 모습으로 등장, 예미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사적인 자리에서의 패션을 보면 여든을 앞둔 춘추라고는 볼 수 없을만큼 젊은 패션감각을 보여주기도 한다.[7] 심지어, 자기관리도 매우 철저하기에 이 패션이 더 두드러진다.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은 아니지만, 그 흔한 똥배 하나 없을 정도. 춘추를 감안하면 확실히 탄탄한 편이다. 아무리 운동선수였다고는 하지만 여든이 다되어가는 고령인데도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를 하루에 100개 이상씩 하고, 식단관리도 하며, 한화시절에도 선수들이 받을 수준의 펑고를 직접 치는건 보통 관리로는 불가능하다.
- 한화에서 와서 100kg가 넘는 한화 선수들의 살을 엄청나게 뺐고 새로 트레이드한 허도환에 대해서도 곧바로 체중 감량을 지시해 야구계의 숀리, 긴숀근이라는 드립이 터져나왔다. 한때는 김태균이 살빼서 포텐이 다시 터진거라는 해석이 나왔으나 현재는 김태균이 늘 그렇듯이 후반기 체력이 부치는 모습을 보이고 넥센의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이 재조명 받으면서 구시대의 잔재임이 드러났다.
- 야구 내적으로는 이런저런 구설수가 많으나, 팬 서비스가 좋은 편이다. SK 와이번스 구단에 지금도 있는 팬서비스 거절시 벌금이라는 규정을 만든 게 김성근. 여튼 이래저래 잡음은 많아도 팬 서비스 하나는 끝내줬다고. 아직 팬 서비스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훌륭한 팬서비스는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선수들 사이에서 평이 좋은 편인데, 특히 선수협 사태에서 준 도움이 대표적이며 이혼 이후 빚쟁이에게 시달리던 박철순을 지원해준 사례가 유명하다. 김광현, 정우람 등 SK 왕조 시절 주축 선수들은 이미 김성근이 경질당한 이후임에도 김성근 감독을 스승으로 모시며 주례를 부탁한 바 있다. 그 외 쌍방울, 엘지 시절 선수들도 김성근에 대한 존경을 인터뷰 등에서 자주 표현하고 있으며, 심지어 살려조로 시끄러웠던 한화 선수들조차도 우호적인 선수들이 많다.
- 최강야구에서는 그의 집이 있는 성수동과 시라소니를 합쳐 '성수동 시라소니'라고 불린다. 정근우가 붙인 별명 이후 방송내에서 그의 별명을 붙일 때마다 성수동이 붙는다.
[1] 참고로 백종인과 그가 쓰는 '야구는 구라다2' 자체도 2014년 잭 그레인키가 '개막전 호주에서 하기 싫다' 는 발언 이후 부상으로 가지 못하게 되자 잭 그레인키와 함께 커쇼를 묶어서 '야비한 놈들, 얍삽한 놈들' 이라 비하하고 류현진을 '우리 귀염둥이' '야비한 놈들이 꾀 쓰는 사이에 묵묵하게 일만하다 다칠까 걱정' 이라 하는 등 상태가 영 좋지 않은 칼럼이다.[2] 유래는 해당 영화에 등장하는 일본 출신 외지인에서 왔으며, 김성근 감독이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점과 투수 혹사를 비롯한 독불장군식 운영으로 인해 팀이 손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해서 붙은 별명이다.[3] 코로나로 인하여 입원하여 경기 참여을 못했을 때, 이대호와 정근우가 "할아버지! 어디 가셨어요? 왜 자꾸 뽈뽈뽈 돌아다니세요.."라고 언급했다. 정작 가는 곳은 노량진, 대원중학교, 병원 끝.[4] 상술한 '인천예수'가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던 만큼 방송용으로 순화한 것으로 보인다.[5] 이 점에 있어서 또 정반대인게 김응용인데, 김응용은 기본적으로 훈육하는 아버지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선수들의 사생활은 앞가림만 잘한다면 적당히 못 본 체하면서 뒤에서 지켜보는 할아버지 타입이다.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타입.[6] 2011년 5월 15일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 <나는 프로다 - 프로야구 2군 선수단>에서의 한 장면. 이 방송을 실시간으로 보던 야구 커뮤니티들은 저 장면에서 전부 다 빵 터졌다.[7] 실제로는 60이 넘기 전까지는 일반적인 중년 노년 아저씨들처럼 입고 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선수들이 훈련하러 올 때 사복으로 청바지를 입고 들어오는 것도 금지했다고 한다. 환갑이 넘은 뒤에야 일상생활에서 청바지를 입어보고 편하다는 것을 느껴서 청바지를 자주 입게 되었다고 한다. 패션잡지도 틈틈히 보면서 연구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