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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해하면 안 될 것이, 김성근이 의도적으로 정근우를 따라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정근우가 이런 상황을 진짜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그랬으면 김성근 앞에서 장난스레 "감독님의 얼굴을 본 순간 난 죽었다고 생각했다."라는 드립을 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저 둘은 안 친할래야 안 친할 수가 없는 사이다. 정근우의 결혼식 주례는 김성근이었으며, 유퀴즈 김성근 편에 정근우가 잠시 출연했을때도 김성근을 슬쩍 아버지라고 칭할 정도로 그를 존경한다. 다만 김성근과 엮이면 고생 길이 열린다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질색하는 편이긴 하나, 이것마저도 모든 선수가 다 질색하기에 큰 의미는 없다.[1]
근우의 움직이는 절
유튜브 최강야구 동영상에 달린 댓글
유튜브 최강야구 동영상에 달린 댓글
2. 질긴 인연
SK 와이번스-한화 이글스-LG 트윈스에 이어 최강야구(예능)까지 다른 팀에서 뛴 적도 많지만 같은 팀에서 같이 야구를 한 인연이 깊다.2.1. SK 와이번스
정근우는 고려대 졸업 직후인 2005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7번으로 SK 와이번스에 지명돼 입단했고 김성근은 2007년부터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김성근은 부임 초창기부터 '지옥의 펑고'로 불리는 혹독한 훈련으로 정근우를 단련시켰고[2]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이라는 황금기를 함께했다. 시간이 지나 정근우가 '리그 최고 2루수'라는 닉네임을 받은 이후에도 김성근식 지옥훈련은 계속 됐고 정근우 역시 별 도리 없이 그 훈련을 견뎌내야 했다.
2.2. 한화 이글스
또다시 시간이 흘러 2017년 김성근은 한화에서 경질되었고, 이후 2022년 지도자로서 은퇴를 선언했으며, 정근우 역시 한화를 떠나 2020년 LG에서 마지막 1년을 보낸 후 은퇴, 프로 무대를 떠나면서 이제는 진짜로 만날 일이 없을 거라 예상되었다.
2.3. 최강야구
그러나 야구 예능 프로그램인 JTBC 최강야구의 최강 몬스터즈 선수로 뛰고 있던 정근우의 앞에 이승엽의 뒤를 이어 최강 몬스터즈의 새 감독으로 선임된 김성근이 등장하면서 두 사람은 또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장시원 PD가 지도자 은퇴를 선언한 김성근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후쿠오카로 날아갔고[4] 김성근이 감독직을 승낙하자마자 장시원 PD가 바로 자료를 바쳤을 정도였다. 그리고 정근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절규했다고 한다.여담으로 2023 시즌 최강야구 스프링캠프에서 일명 개밥 훈련을 하던 이택근이 말하기로는 왜 정근우가 '산란기 짤'을 만들어냈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본인이 해보니 누워있는 게 훨씬 편하다고. 그리고 김성근 감독을 가장 잘 아는 정근우답게 김성근 감독의 공식 동시통역사 역할을 하게 되었고, 주장 박용택은 김성근의 오더 비둘기가 되면서 대변인이 되었다.[7]
최강야구 시즌3 고려대학교 직관전때 중간 이벤트로 키스타임을 진행했는데 이때 카메라에 김성근 감독이 잡히게 되자, 자막으로 그런데 누가 함?이라고 했을때 정근우가 김성근 감독 옆으로 와서 볼에 뽀뽀를 하였다. 몬스터즈 덕아웃의 반응은 "정근우니까 했지 다른 사람이였으면 절대 못했다."급. 이젠 대놓고 김성근 감독 앞에서 "스바라시~ 투스타데쓰~!"라고 깐족거리면서 다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김성근 감독도 반응해준다.
2024년 설날을 맞이해 두 사람이 현대백화점의 설날 특선 광고를 찍게 되었다.
3. 유사 사례
3.1. 김성근 감독과 선수들
사실 김성근 감독이 워낙 팀을 많이 옮겨다닌 탓에 굉장히 흔한 케이스. 특히 김성근 감독은 스타일상 이미 퇴물이 되었다고 보는 노장들도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하다는 지론 아래 팀이 바뀔 때마다 대거 베테랑을 데리고 오는 특징이 있고, 또 선수들도 이런 김성근의 특징을 알고 경쟁 등에 밀려 은퇴 위기가 왔을 때 김성근 감독에게 연락을 하는 경우가 잦다. 정근우처럼 3번이나, 그것도 장기간 팀이 겹치고 주전 선수로 계속 활약한 케이스는 좀 희귀하지만 2번 정도는 아주 흔한 케이스.3.1.1. 3번 이상 겹친 사례
- 정근우
이 문서가 만들어진 계기. 다만 정근우의 케이스는 사실 다른 케이스보다 좀더 특별한 게, 다른 케이스는 김성근 감독이 영입을 원하거나 김성근 감독이 이미 있는 상태에서 김성근 감독을 찾아온 케이스들이다. 즉 절이 싫어서 떠난 게 아니라 중이 절을 찾아온 케이스. 정근우의 경우는 SK 시절도, 한화 시절도, 최강야구 시절까지도 정근우가 먼저 있고 김성근 감독이 나중에 온 케이스로 가장 독특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 조범현
원조 절이 쫓아와요 관계. 후술할 김경문을 밀어냈던 조범현도 바로 같은 해 1990년 바로 신인 김태형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며 1991년 당시 김성근 신임 감독이 이끄는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다. 조범현은 아예 고등학교 시절 대건고 야구부 해체 당시 김성근 감독이 충암고로 데려와 충암고 중심 선수로 활약한 고교 시절부터의 제자였으며, OB에서도 김성근 감독의 지원 아래 김경문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었다. 심지어 은퇴 후에는 쌍방울 배터리코치로 김성근호의 핵심 멤버인 박경완을 키워냈으니 코치 시절까지 보면 4번 겹친 사례. 그보다 이후인 기아 감독으로서 당시 SK 감독이었던 김성근과 대립 관계를 잠시 형성한 적은 있지만, 한국시리즈 7차전이 끝나자마자 조범현이 인사하고 김성근이 축하해준다거나 김성근 감독의 딸이 오빠라고 부를 정도의 유사 부자 관계를 유지하는 중.
- 이광길
어찌 보면 정근우, 조범현을 넘어 가장 역대급으로 이어지는, 김성근 사단의 핵심 멤버이자 영혼의 파트너. 시작은 태평양 시절 선수와 감독으로 만난 것을 시작으로 1991년 김성근 감독이 삼성으로 이직할 때 같이 이직하였다. 심지어 김성근 감독의 삼성 사퇴와 함께 은퇴. 이후 고향인 대전에서 음식점, 노래방 등 여러 사업을 하다가 김성근 감독의 추천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김성근 감독 휘하의 쌍방울에서 1군 주루코치로 활약하였다. 그 후 고향인 대전을 연고로 하는 한화에서 잠시 코치로 있다가 2007년 스승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고 다시 또 작전-주루코치로 활약하며 2011년 김성근 감독 사퇴 시기까지 같이 하였다.[8] 이제는 최강야구의 수석 코치로까지 인연이 이어지며 장장 5개 팀에서 인연을 맺고 있다. 인연이 이어지기 전인 OB 시절, 이광길 본인이 아래의 김경문 휘하에 있었던 고양 원더스 시절, 김성근 감독 최악의 흑역사인 한화 시절을 제외하면 모든 팀에서 함께 하고 있는 것.
- 김재현
말 그대로 애증의 사이. 신바람야구를 이끌었던 신인 트로이카의 축이었던 김재현은 1997년 신장염, 2000년초 선수협 활동 등으로 구단의 눈밖에 난 상태였고, 1999년 이병규의 등장으로 포지션 경쟁마저 밀려나면서 사실상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때 2001년 이광은 감독이 부진으로 사퇴하면서 2군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대행으로 올라오며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감성근 감독은 사분오열한 팀을 특유의 카리스마로 휘어잡으며 2002년 팀을 준우승까지 끌어올렸고, 김재현 또한 그 과정에서 김성근과 당시 LG로 트레이드되었던 양준혁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상하기도 하였다. 본래 김재현은 문란한 사생활로 유명했던 선수였으나[9] 김성근 감독 휘하에서 정신을 차리고 팀의 베테랑으로서의 자리를 잡았고,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는 김성근 감독이 어쩌면 타자로서의 마지막 타석일 수도 있을 거라는 판단 아래 고관절 괴사로 사실상 은퇴 기로에 있던 김재현을 대타로 기용, 2루타성 타구를 치며 타점을 올리고도 절뚝거리면서 1루로 간신히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을 감동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고관절 수술을 마친 김재현은 2004년 SK로 FA이적하였는데, 2007년 김성근 감독이 SK로 오면서 다시금 인연을 맺었다. 여기서의 김재현은 그간의 좋은 인연이었음에도 이재원과 플래툰으로 기용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트레이드를 요청할 정도로 관계가 악화되었으나[10], 시즌 2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성적임에도 200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김성근 감독이 김재현을 포함하며 관계가 회복되었고, 여기서 김재현이 대활약하며 기대에 부응하였다. 이후 원래의 타격을 되찾으며 SK 왕조의 주축으로 자리잡았고, 원래 은퇴 후 야구계를 떠나려 하였으나 김성근 감독의 조언으로 은퇴 후 진로를 변경할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에 대해 김재현도 인터뷰에서 "시련과 영광을 주신 분"이라며 애증을 표현한 사이. 이후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부임하면서 타격코치로 부임, 지도자로서의 첫 행보를 시작하며 3번째 인연을 맺었다. 다만 한화에서 김성근 감독이 보여준 행보는 그간의 오랜 인연으로도 김재현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김재현이었던 만큼 이를 참지 못하고 결국 사퇴하고 만다.[11]
- 권용관
LG 시절 주전급으로 올라선 게 김성근 감독 시절이며, SK와 한화 시절 김성근 감독의 요청에 따라 계속해서 영입되어 1.5군 유틸로 내야 수비 강화에 주로 투입되었다. 다른 선수들이 적어도 잠시라도 팀의 주전급 활약을 한 것과는 달리, 항상 준주전급 정도였음에도 계속돼서 영입된 독특한 케이스이다. 다만 한화 때는 이미 40대에 접어들 시점으로 노쇠화가 심했음에도 계속 중용, 살려조 문제, 송은범 기용 등과 함께 한화 시절 김성근 비판의 주요 요소로 작용하였다.
3.1.2. 2번 겹친 사례
- 김경문
팀을 옮겨 가면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또 다른 사례. 김경문은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고 김성근은 OB의 초대 투수코치이자 제2대 감독이 되면서 본격적인 사제 관계를 이어갔다. 다만 썩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김영덕 시기까지 부동의 주전 포수였던 김경문은 김성근 감독이 조범현을 밀면서[12] 1988년 시즌을 끝으로 김성근이 OB를 떠나고 이듬해 태평양 돌핀스로 이동했는데, 김성근이 당시 태평양의 허약한 포수진을 강화하기 위해 조범현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김경문을 스스로 데려오게 된다. 그러나 태평양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김성근마저도 1990년 시즌 이후 태평양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동행은 끝을 맺게 된다.
- 한대화
말 그대로 역대급 악연. 아마추어부터 해결사, 대형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한대화는 1983년 OB로 입단하였으나, 1985년 개인훈련 도중 약수터의 돌려쓰는 바가지가 화근이 되어 A형 간염에 걸리면서 체력 관리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당시부터 강훈으로 유명했던 김성근 감독이었고 특히 그 시기에는 병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조차 없던 시기였던 만큼, 김성근 감독은 훈련에 태만한 선수로 한대화를 꼽았고 한대화 또한 병 때문에 안 되는데 억지로 밀어붙이는 김성근 감독과 심각한 불화에 빠져들었다. 결국 한대화는 은퇴 기로에까지 몰리다가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고,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주의인 김응용 감독과의 케미가 폭발, 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한대화는 엘지 시절까지 주축 선수로 활약하였으나, 1996년 시즌 노쇠화로 엘지에서 밀려나면서 김성근 감독의 쌍방울로 다시금 트레이드된다. 당시 쌍방울에서의 김성근 감독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해당 트레이드 또한 김성근 감독 주도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이고 그때만 해도 김성근 감독 특유의 노장 은퇴 연장 수순으로 보였으나, 역시나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한대화의 특성은 다시금 갈등으로 이어졌다. 결국 한대화는 시즌 중 은퇴를 결심하였고, 분노한 김성근 감독은 구단에서 레전드에 대한 예우로 준비하던 은퇴식마저 반대하면서 리그를 호령하던 3루수 한대화는 은퇴식조차 없이 임의탈퇴로 초라하게 은퇴하게 되었다.
- 이호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케이스.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에 투수로 입단했던 이호준은 출중한 재능만큼이나 방탕한 생활 태도 때문에 구단의 속을 썩였던 유망주였다. 이 당시 해태 2군을 지휘하던 사람이 김성근이었는데 당시 김성근 2군 감독은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이호준을 붙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호준은 김성근이 "고기를 사먹고 체력 관리를 확실히 하라"고 쥐어준 용돈을 광주시내 나이트클럽에서 유흥비로 썼을 정도로 말썽꾸러기였다고 한다. 1995년을 끝으로 김성근은 해태를 떠났고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이호준은 타이거즈 타선의 유망주로 성장했다. 2000년 이호준이 성영재와의 트레이드로 SK 유니폼을 먼저 입었고 2007년 김성근이 SK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졌다. 다행히 김성근의 SK 감독 재임 중 이호준은 팀을 대표하는 핵심 타자로서 일명 'SK 왕조'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김성근이 2011년 SK를 떠났고 이호준도 2012년을 끝으로 SK에서 NC로 이적했다.
- 송은범
애제자이지만 팬들의 큰 비난을 받은 사례. SK 시절 김성근 감독 휘하의 송은범은 믿을 수 있는 스윙맨이자, 이닝 소화력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김광현의 뒤를 잇는 토종 선발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SK 프런트와의 갈등 끝에 사임한 후 송은범은 점차 그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는데,[13] 기아에서 2년 연속 7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면서 완전히 추락하였다. 하지만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부임하면서 당시 FA 투수진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던 한화가 4년 34억이라는 계약을 안겨주었고, 당시 코치였던 김정준[14] 또한 송은범은 섬세한 투수라서 사용법이 따로 있다고 인터뷰하며 송은범 사용설명서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지없이 나쁜 성적을 거두면서 사용설명서는 어디있냐는 비아냥을 들었고, 그럼에도 중용된다는 점에서 김일성근-김정일준-김정은범이라는 극단적인 비난을 받기도. 정작 송은범은 김성근 사퇴 이후 송진우 코치의 조언에 따라 투심을 던지면서 불펜 필승조로 부활, 정작 사용설명서는 송진우한테 있었냐는 비아냥을 다시 듣기도 했다. 송은범이 LG에서 은퇴한 이후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서 다시 만났으나 탈락하며 팬들로서는 아쉬움이 남았으나, 오히려 그 이후 송은범이 삼성에 재취업에 성공하면서 새옹지마가 되었다. 한편, 송은범은 이 문서의 다른 주인공인 정근우와도 인연이 깊은데, SK(9년), 한화(5년), LG(1년. 2020)까지 장장 15년을 계속 팀을 바꾸면서도 같은 팀 동료로 생활하였다.
- 정우람
SK 시절 김성근의 혹사에도 절대 망가지지 않는 금강불괴로 유명했다. 김성근 사퇴 이후에도 오랜 시간 SK의 레전드로 계속 활약하였으나,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감독으로 돌아오니 2016년 FA 신청 때 바로 한화로 이적하며 두번째 인연을 맺었다. 둘 간의 애정 또한 굉장히 깊은 편으로, 김태균 유투브에서 김성근 감독을 '할아버지'라고 표현하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FA 당시에도 김성근 감독이 한화에 있었기에 다시 같이 해보고 싶어서 왔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선수로서의 활약도를 보면 보통 팀을 옮길 때는 나이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전으로서의 활약이 이어지기 어려운데, 정근우, 김재현과 함께 제대로 된 주전으로서 김성근과 꾸준히 활약한 만큼, 개인적 관계뿐 아니라 감독과 선수로서도 좋은 관계였던 편. 다만 SK 시절 김성근의 혹사에 아예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고 2012년 마무리 전환까지 겹치면서 결국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인터뷰에서 토로한 바 있고, 실제로 김성근 때 성적도 압도적이지만 관리를 제대로 받았던 이상군 감독 대행과 한용덕 감독 시절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관리가 필요없는 선수까진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기타 사례
상술한 사례 이외에도 김성근 감독은 다른 팀 이적 후 기존 제자들이 은퇴 기로에 놓였을 때 다시 데려오거나 하는 경우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정말 수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윤석환(OB-삼성), 신경식(OB-삼성), 박정현(태평양-쌍방울), 김성래(삼성-쌍방울), 이종두(삼성-쌍방울), 심성보(쌍방울-LG), 윤재국(쌍방울-SK), 최동수(LG-SK) 등이 있으며, 삼성 2군 당시 본인이 직접 육성했던 배영수(삼성-한화)도 넓게 보면 포함된다. 은퇴 후 코치 형태로 이어진 케이스라면 계형철(OB 선수로 시작, 쌍방울-SK-한화 코치 역임), 이홍범(OB 선수로 시작, LG-SK-한화 코치 역임)이 대표적이다.
3.2. 김성근 이외 사례
- 김응용-양준혁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상징하는 양대 명장인 김응용과 김성근이지만, 수많은 팀을 돌아다닌 김성근과는 달리 해태-삼성만 이끌었던 김응용의 특성상 여러 팀에서 같이 만난 선수는 거의 없다. 다만 독특한 케이스로 양준혁이 있는데, 마무리 투수를 필요로 했던 삼성이 양준혁을 임창용과 트레이드하자, 해태로 절대 가기 싫어하며 은퇴까지 결심하려던 것을 김응용 감독의 간곡한 설득으로 1년 후 타팀으로 트레이드해준다는 조건으로 같이 하게 되었다. 양준혁은 여기서 첫 3할-30홈런-100타점의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이후 LG로 트레이드되어 활약하다가 FA 시장에 나섰으나, 선수협 주동자로 찍힌 상태라 8개 구단 사장단이 모두 양준혁을 영입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우승 청부사로 부임한 김응용 감독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양준혁은 고향 삼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2002년 한국시리즈 5할로 삼성의 첫 포스트시즌 우승에 일조하였다. 2003년에도 팀은 3위에 그쳤지만 이마양 트리오로 33홈런 92타점을 기록, 김응용 감독 시기 삼성 타선의 핵심 중 한명으로 활약하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따라 아직도 양준혁은 김응용을 최고의 은사로 꼽고 있다.
- 염경엽-허도환
실제로 사이가 좋은 김성근-정근우랑은 대척점이라고 볼 수 있다. 허도환과 염경엽은 세 번째로 만났으며[15] 허도환은 염경엽이 있을 때 2번이나 트레이드되었다. 염경엽 감독은 LG 감독으로 부임하고 나서도 허도환을 백업 포수로조차 활용할 계획이 없음을 전했는데 이 때 언론 인터뷰를 통해 "허도환이 필요없는 선수는 아니지만 일단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며 허도환도 제2의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고 전했다. '세 번의 만남, 두 번의 트레이드'...악연인가 선연인가, 염경엽 감독과의 질긴 인연[16][17] 그러나 2번 포수로 점찍은 김기연이 절망적인 실력을 보여주자 허도환이 2번 포수 역할을 맡게됐고, 이후 2023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승선하여 우승 멤버가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해당 움짤은 정확한 장소는 불명이나 태국에서 홍수가나며 불상이 물에 떠밀려 내려온것으로 추정된다.
4. 관련 문서
[1] 아예 이대호는 감독님을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선수 시절에 안만난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직접 발언할 수준이다.[2] 정근우는 부산고와 고려대에서 3루수로 뛰었지만 수비에 약점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성근의 제자이자 정근우의 프로 첫 스승이었던 조범현 당시 SK 감독은 3루수보다 2루수가 더 어울린다고 판단해 2006년부터 그를 2루수로 기용했으나 이 때도 수비 불안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내야수였던 그를 외야수로 돌렸던 것도 내야 수비 불안 때문이었다. 결국 고질적 수비 불안은 김성근의 펑고에 의해 고쳐지게 된다.[3] 이 짤이 워낙 유명해서 두루두루 널리 퍼뜨려진 것.[4] 이승엽 감독의 마지막 경기였던 부산고등학교와의 연전이 끝나자마자 바로 김성근의 지인을 통해 만남을 주선했다고 한다. 첫 식당에서 촬영 허가가 나지 않아 두 번째 식당에서 상황을 설명했고, 스케줄 차 한국에 입국한 김성근에게 최종 결정 여부를 들었다고 한다.[5] 이후 장시원 PD가 어떠냐고 한 질문에 정근우는 해탈한 웃음과 함께 "세번쨉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불타오르게 되었다. 제작진들도 연신 정근우에게 불꽃 CG를 난사했을 정도. 그리고 화면과 자막으로는 없지만 김성근 감독이 멀리서 걸어오는 동안 "아이 나 저 걸음걸이 어디서 많이 봤어!"라며 절규 섞인 웃음을 자아냈다.[6] 링크를 건 영상은 스페셜 하이라이트 영상인데, 비단 정근우뿐만 아니라 최강야구에 출연한 모든 선수들이 멘붕 상태였다. 그 와중에 이택근이 "김성근 감독님인데?"라는 말을 남기고 무의식적으로 "IC"를 뱉는 게 묘미다.[7] 사실상 정근우와 박용택(LG 트윈스 데뷔 때 감독)이 선수들 중에서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깊기 때문에 제작진도 이에 맞춰서 둘에게 불꽃을 난사할 정도이다. 거기에 해설 중인 김선우에게 빨리 정장 벗기고 유니폼 입히라고 장시원 PD에게 반 협박 중이다.[8] 다만 이후 김성근과 갈라지게 됐는데, 김성근이 고양 원더스로 간 반면 본인은 김경문의 부름을 받아 NC 다이노스로 가서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9] 음주운전만 2차례 적발되었고, 당시 장인 어른이 참다못해 차 키를 압수했다는 일화까지 전한다. 후술할 고관절 괴사 또한 이러한 사생활이 원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최훈의 웹툰 GM 시리즈에서 놀기 좋아하는 천재 타자 안준민의 롤모델이 당시의 김재현이 아니냐는 카더라도 있을 정도.[10]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였다.[11] 김성근 감독과 김재현의 스타일을 아는 팬들은 이 시점을 기점으로 김성근의 시대가 사실상 끝이 났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의 독보적인 위치에 김성근 감독과의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면서도 성격상 유일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김재현 코치까지 나간 이상, 사실상 김성근 감독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판단인 것. 결국 다음해인 2017년 김성근 감독도 경질되였다.[12] 김성근은 충암고 시절부터 조범현의 스승이었으며, 후에도 거의 유사 부자관계와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었다는 의견이 있는 한편, 수비를 강조하는 김성근 감독의 특성상 조범현을 더 선호했다는 의견도 있다.[13] 기아에서의 추락이 너무 극적이어서 그렇지, 2011년 김성근 사퇴 이후 송은범의 성적은 이미 내리막을 향하고 있었다. 기아가 송은범을 데려올 때도 생각보다 반대 여론이 높았던 이유.[14] 김성근 감독의 친아들이자 한국에 전력 분석이란 개념을 도입한 초창기 멤버이다. 다만 한화에서의 행보와 해설위원으로서의 행보로 그 빛이 크게 바랬다.[15] 넥센, SK, LG[16] 하지만 지금과 그때를 비교해보면 사정이 다른 것이 당시 허도환은 전성기 나이였으며 박동원은 터지기 직전, 김재현은 유망주였고 유선정은 군복무 중이라 주전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는데도 못 올라간 거고 지금은 거액 FA 계약으로 몸값이 치솟은 박동원, 바로 밑에는 유망주 포수 김기연, 전준호 등 각광받는 포수들이 있는 데다가 본인도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었다. 1~2년 더 뛸까싶은 노장과 가능성을 보여준 유망주 포수가 있다면 어딜 선택할지는 당연지사. 즉, 10년전에는 진짜 찍혀서 못 뛴 거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운 노쇠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우선순위가 밀린 것.[17] 더군다나 포수는 키우기 대단히 힘들어서 젊을 때부터 키워놔도 성공할까 말까하는 포지션이다. 이건 어느 나라 리그 가도 똑같으며 허도환 나이를 생각하면 지도자 준비에 들어가는 것도 현명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