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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

타이거 우즈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996년 PGA Tour 올해의 신인상
우디 어스틴(미국)[1] 타이거 우즈(미국)[2] 스튜어트 싱크(미국)[3]

1997년 PGA 올해의 선수PGA Tour 올해의 선수
톰 레먼(미국) 타이거 우즈(미국) 마크 오메라(미국)[4]
1999년~2003년 PGA 올해의 선수PGA Tour 올해의 선수
마크 오메라(미국) 타이거 우즈(미국) 비제이 싱(피지)[5]
2005년 ~ 2007년 PGA 올해의 선수PGA Tour 올해의 선수
비제이 싱(피지) 타이거 우즈(미국) 파드리그 헤링턴(아일랜드)
2009년 PGA 올해의 선수PGA Tour 올해의 선수
파드리그 헤링턴(아일랜드) 타이거 우즈(미국) 짐 퓨릭(미국)
2013년 PGA 올해의 선수PGA Tour 올해의 선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타이거 우즈(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white 통산 11회 PGA 올해의 선수 및 PGA Tour 올해의 선수상 수상}}}

1997년 PGA Tour 상금왕
톰 레먼(미국) 타이거 우즈(미국) 데이비드 듀발(미국) [6]
1999년 ~ 2002년 PGA Tour 상금왕
데이비드 듀발(미국) 타이거 우즈(미국) 비제이 싱(피지)
2005년 ~ 2007년 PGA Tour 상금왕
비제이 싱(피지) 타이거 우즈(미국) 비제이 싱(피지)
2009년 PGA Tour 상금왕
비제이 싱(피지) 타이거 우즈(미국) 맷 쿠차(미국)
2013년 PGA Tour 상금왕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타이거 우즈(미국)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white 통산 10회 PGA Tour 상금왕}}}

파일:sportsillustrated_logo.png
1996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파일:external/i.kinja-img.com/18j5gqxjv8dd0jpg.jpg
칼 립켄 주니어 타이거 우즈 딘 스미스

파일:sportsillustrated_logo.png
2000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파일:external/cdn-jpg.si.com/00_006274405.jpg
미국 여자
축구대표팀
타이거 우즈 커트 실링
&랜디 존슨
}}} ||
파일:타이거 우즈.jpg
<colbgcolor=#d4001f><colcolor=#ffffff> 타이거 우즈
Tiger Woods
본명 엘드릭 톤트 우즈
Eldrick Tont Woods
출생 1975년 12월 30일 ([age(1975-12-30)]세)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사이프러스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 / 중퇴)
종목 골프
데뷔 1996년 PGA 입회
소속 SUN DAY RED
신체 185cm, 84kg, A형
종교 불교
최고 순위 1위 (2019년 현재 총 683주)[7]
통산 승수 109승[8]
PGA Tour 82승[9]
European Tour 41승[10]
JGTO Tour 3승[11]
Asian Tour 2승
PGA Tour of Australasia 1승
기타 대회 16승[12]
메이저 우승 Masters Tournament(1997, 2001, 2002, 2005, 2019)
U.S. Open(2000, 2002, 2008)
The Open Championship(2000, 2005, 2006)
PGA Championship(1999, 2000, 2006, 2007)
수상 내역 PGA Tour Rookie of The Year(1996)
PGA Player of the Year[13](1997, 1999, 2000, 2001, 2002, 2003, 2005, 2006, 2007, 2009, 2013)
PGA Tour Player of the Year[14](1997, 1999, 2000, 2001, 2002, 2003, 2005, 2006, 2007, 2009, 2013)
PGA Tour leading money winner(1997, 1999, 2000, 2001, 2002, 2005, 2006, 2007, 2009, 2013)
Vardon Trophy[15](1999, 2000, 2001, 2002, 2003, 2005, 2007, 2009, 2013)
Byron Nelson Award[16](1999, 2000, 2001, 2002, 2003, 2005, 2006, 2007, 2009)
FedExCup 챔피언(2007, 2009)
AP통신 선정, 올해의 남자 스포츠 선수(1997, 1999, 2000, 2006)
가족 부모님
샘 알렉시스 우즈,(2007),
아들 찰리 액셀 우즈,(2009),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서명 파일:타이거 우즈 서명.svg

1. 개요2. 특징3. 선수 경력4. Tiger, Major History5. TOP 10 Play of Tiger Woods
5.1. PGA Tour Best Shot TOP 105.2. Major Moment
6. 아버지 “얼 우즈”7. 플레이 스타일8. 우승 경력9. 상금 및 순위10. 기록
10.1. 경력 기록 및 통계10.2. 수상 기록10.3. 기타
11. 여담
11.1. 섹스 스캔들11.2. 약물 문제11.3. 시청률의 남자11.4. 라이벌, 필 미켈슨11.5. 자동차 사고11.6. 기타
12. 참고 문헌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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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cdn-s3.si.com/gettyimages-1619142.jpg
Tiger Era.의 시작을 알린 1997년 Masters Tournament[17]
파일:external/s.yimg.com/Part-GTY-632862904-1-1-0.jpg
타이거 우즈의 드라이버 샷[18]
가장 지배적인 스포츠스타
2018년 ESPN선정 지난 20년간 가장 지배적인 선수 1위 선정[19]
Hello World!
타이거 우즈의 프로 데뷔 전 기자 회견에서 첫 마디[20]

미국골프 선수. 이전까지만 해도 특정 계층에 한정되어 있던 골프의 인기를 전 세대, 글로벌로 파급시킨 인물로[21] 2021년 기준 가장 돈을 많이 번 현역 운동선수이다. 지금도 골프를 대표하는 스타하면 일반인들은 타이거 우즈를 떠올리는 경우가 압도적일 정도로 골프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로 별명은 ‘골프의 황제‘ 였다.

2. 특징

전형적인 혼혈 스타 플레이어다. 얼핏 생긴 것만 봐선 흑인이지만[22], 아버지 얼 우즈부터가 아메리칸 흑인 + 아메리칸 인디언과 중국인 혈통이다. 어머니 쿨티다도 반만 태국인이고 나머지는 중국인 + 백인의 혈통이다.[23] 타이거는 이에 대해 스스로를 Caucablasian(caucasian + black + Asian)이라고 칭한 적도 있다. 자신을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며, 아시안 아메리칸이라고도 한 그는 "나는 흑인 골퍼가 아니라 그냥 최고의 프로 골퍼가 되고 싶다.”라는 말로 본인을 둘러 싼 인종 관련 이야기를 셧다운 시킨 적도 있다.

1991년부터 미국 주니어 아마추어 3연패, 1994년부터 US 아마추어 3연패라는 금자탑을 남긴 후 1996년 여름, 나이키와 계약을 맺고 프로로 전향했다. 당시 프로 필드의 잔디도 밟지 않은 애송이에게서 '슈퍼스타의 아우라'를 본 나이키는 계약 시점부터 5년 간 4천만 달러를 지급하고 보너스로 750만 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24] "앞으로 쌓일 제 재산을 관리할 회계사의 관리를 위해 회계 공부를 해야겠네요."라는 당찬 발언을 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던 타이거의 프로 첫 발에는 기대와 불안감, 환호와 시샘이 가득했다. 이후 우즈는 메이저대회 15승[25]을 포함하여 PGA Tour에서만 82승[26]을 거두며 완벽히 투어를 지배했고, 이와 같은 초대형 슈퍼스타의 탄생과 더불어 PGA 투어 자체의 몸집도 매우 커지게 되었다. 구체적인 숫자로 언급하자면[27] 타이거가 데뷔한 1996년 PGA Tour의 총 상금액은 7,000만 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 1980년대 후반과 비교하면 1.5배 가량 성장을 이룬 수치였다. 하지만 1997년 Masters Tournament를 통해 타이거가 골프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 보이고 난 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한[28] PGA Tour는 타이거의 데뷔 당시보다 무려 2.5배에 가까운 1억 6,500만달러의 상금 규모를 자랑하는 투어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메이저 5승을 포함한 24승을 거둔 타이거의 지배적인 활약이 절대적이었다. 타이거의 활약을 시작으로 투어의 성장은 멈출 줄 몰랐고 2010년에는 3억 달러 능선까지 올랐다.

타이거의 카리스마 넘치는 플레이에 의해 돈을 번 것은 본인과 PGA Tour 뿐만이 아니었다. 동료들도 덩달아 부자가 되었다. 비슷한 시기 그와 라이벌리를 이뤘던 필 미켈슨, 비제이 싱, 어니 엘스, 짐 퓨릭[29] 등은 실력에 준하는 엄청난 상금과 후원액으로 거부가 되었다. 1990년에 단일 시즌 상금 100만 달러 이상을 번 선수는 단 2명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107명으로 뛰었다. 과거에는 투어 프로를 하면서도 투잡을 해야 가족을 건사했는데, 이제는 상금 순위 100위 안에만 들어도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2010년 초반 스캔들로 인해 타이거가 투어를 비웠을 당시, "우승 기회가 생겼는데 기쁘지 않냐."는 매스컴의 질문에 "아니다. 그가 와야 투어가 활발히 돌아간다. 빠른 컴백을 기원한다."는 동료들의 인터뷰는 결코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타이거 우즈의 라이벌은 전성기 시절 타이거 우즈 그 자신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골프계에서는 실력과 영향력 등 관련된 모든 부분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였으며, '스포츠'임에도 대중의 인식 속에서는 '레저'로 보여지던 골프를 '스포츠'로 확고히 인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86년부터 집계된 World Golf Ranking[30][31]에서도 총 683주나 1위를 차지하며, 총 331주의 기록으로 2위를 한 그랙 노먼(호주)을 아득히 따돌릴 정도로 전성기 시절의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142개 대회를 나가면서 모두 컷 통과[32]를 했다. 즉 7년 동안 142개 대회를 나가면서 모든 대회에서 상금을 챙겼다는 건데, "아침에 들어온 샷감이 오후에 나가더라"라는 말이 있는 '기복 심한 스포츠' 골프에서 이와 같은 기록을 세운 것은 전인미답의 경지.[33]

2019년을 기준으로, 타이거 우즈는 총 355회의 PGA 투어 대회를 출전했고 이 중 22.81%의 승률을 기록했다. 2위를 밝히면 아마도 엄청난 기록임이 수긍이 갈텐데 바로 7%대의 우승확률을 가진 필 미켈슨이다. 355회의 출전 중 324회 컷 통과를 하여 컷 메이크 확률 또한 91.26%라는 넘사벽의 숫자. 자신이 출전한 경기의 70%만 컷 메이크를 해도 엄청나게 꾸준한 선수라는 평을 듣는다고 보면 기적같은 수치이다. 이 중 197번의 TOP10 확률 또한 55%가 넘는다. 그야말로 골프의 신이다.

사생활 면에서는 거의 철저할 정도로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했다. 스웨덴 출신 모델인 아내하고 결혼할 때도 거의 첩보 작전 수준의 극비 결혼식을 올렸을 정도였다. 물론 그러다보니 2000년대 후반 후술된 섹스 스캔들로 인해 더 충격을 주기도 했고, 이전보단 많은 것이 노출되었지만 지금도 본인은 물론 가족에 대한 노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디어와의 인터뷰가 극히 적기 때문에 역으로 쓸데없는 가십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세계 골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골퍼답게 매년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스포츠 재벌이다. 상금으로만 누적 1억 달러를 돌파했으며[34] 무엇보다 스폰서 금액을 포함하여 광고로 벌어 들인 돈이 엄청나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2012년 한 번을 제외하고 매년 가장 돈을 많이 번 스포츠 스타로 뽑혔다. 한 해 수입이 1억 달러 이상이었으니 다른 골프 선수들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2009년에 발생한 섹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상품성은 대단해서 여전히 미국 스포츠 선수 수익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고, 종목 불문해도 타이거 우즈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운동선수는 2020년 현재 로저 페더러르브론 제임스 등 극히 일부 뿐이다.

3. 선수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타이거 우즈/선수 경력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Tiger, Major History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타이거 우즈/메이저 기록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TOP 10 Play of Tiger Woods

타이거 우즈의 골프 역사에 영원히 새겨질 최고의 플레이들만 모아 놓은 영상이다.

앞선 글들에서 대부분 설명되어 있으니 글과 함께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듯 하다. 일반 투어 대회 TOP 10과 메이저 대회 TOP 10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타이거 우즈 골프 인생 최고의 샷 20개를 보는 셈이다.

타이거의 전성기 플레이를 보면서 골프의 진수를 경험해 보자.

5.1. PGA Tour Best Shot TOP 10

5.2. Major Moment

6. 아버지 “얼 우즈”

파일:external/static01.nyt.com/04woods600.jpg
아버지 얼 우즈와의 즐거운 한 때
2006년 사망한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 얼 우즈도 인생사나 교육 철학에서 여러 일화를 남겼다.

일단 얼 우즈는 보통의 스포츠맨 아버지들처럼 아들의 성공에 대리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캔자스주의 첫 흑인 야구선수였으며, 베트남 전쟁 때는 그린베레의 일원으로 게릴라 특전 작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때 만나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남베트남중령 Vuong Dang 'Tiger' Phong[35]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에게 '타이거'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는 아들의 교육도 대화를 통한 부드러운 스타일을 선호했는데, “아들을 골프 챔피언이 아닌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다. 학교 숙제를 해야 골프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골프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유를 주었다.”라는 교육 철학을 밝힌 바도 있었다. 또한 이미지 훈련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시절 얼 우즈는 타이거에게 이미지 훈련을 시작했고, 불교식 훈련 방식을 통해 아들에게 겸손함과 정신적 강인함을 키워 주었다. 반면 기합이나 구타, 스파르타식 훈련 방식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그가 아들과 함께 하며 들려준 이야기들은 타이거의 성공에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가 책을 통해 밝힌, 아들 타이거에게 들려준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한번 한 실수에 집착하다 보면 계속 반복하지만, 실수를 인정하면 그것을 통해 배우고 성장한다. 너는 어느 쪽을 택하겠니?
2등 한 게 어쨌단 말인가. 오직 한 사람 또는 한 팀만이 자신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감동적인 일이다.
불평은 사람을 부정적이고 우울하며 유치하게 만들 뿐이다. 그런 자세는 주변 사람들 사기까지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친구 배낭에 재미있는 문구 붙이기, 할아버지께 예고 없이 전화하기, 몰래 집안 일 도와 부모님 일손 덜어드리기, 노숙자 보호소를 찾아 오후 시간을 보내기, 입원한 어린이들과 놀아주기…. 이런 일들을 종종 하거라, 네게 큰 기쁨이 넘칠 것이다.

아버지의 케어 속에 타이거는 역대 최고의 골프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훗날 그가 일으킨 스캔들을 아버지가 살아 생전 못 본 것은 다행이기도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 부자(父子)의 관계는 지금도 가족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매우 모범적인 관계로 여겨진다.

2006년 74세를 일기로 사망한 아버지에 대해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음의 글을 올렸다.
“아버지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훌륭한 롤(role) 모델이었다. 아버지가 많이 그리울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서 이룩한 위대한 일들을 생각하면 깊은 감명을 받는다. 당신은 훌륭한 아버지이자 코치였고, 멘토이자 친구였다. 당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아버지도 아들와 마찬가지로 이혼 경력이 있으며 타이거 우즈의 할아버지도 2번 결혼한 전력이 있다. 어찌보면 집안 내력(?)인 셈. 다만 이혼 후 시간이 지나 결혼한건지 바람인지는 불분명하다.

7.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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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부치 하먼 – 행크 헤이니 – 션 폴리 시대의 타이거 스윙[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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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치 하먼과 함께 하던 시절의 타이거 우즈 드라이버 샷 시퀀스
“사람들은 메이저에서 숱한 승리를 안겨 준 스윙을 굳이 바꾸려는 나에게 멍청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대체 스윙을 왜 바꾸는 거냐고 따져 묻기까지 했죠. 하지만 나는, 이런 변화를 통해야만 스스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타이거가 술회했듯 그는 정상의 위치에서 스윙 교정이라는, 기존에는 없었던 길을 걸은 바 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하지만 모두 바뀐 스윙으로 정상에 올랐다. 스윙 변경 후 필드에 복귀, 그 때마다 세상을 호령했으며 이를 통해 상금 1위의 자리와 올해의 선수 자리도 재입성 했다[37]. 그러나 잦은 스윙 변경에도 불구하고 무릎과 허리 등에 입은 부상은 극복해내지 못했다.

타이거는 장타로 필드를 장악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최초의 골퍼다. 장타를 치기 위해 피트니스에 집중하는 트랜드를 만든 것도 그이다. 너무 지나친 근육이 부상을 야기했다는 일부의 의견도 있지만 로리 매킬로이 같은 사례[38]도 있으니 아직 확실히 증명된 바 없다. 다만, 장타가 곧 돈을 부른다는 것은 사실이어서 타이거 이후 드라이버로 300야드를 칠 줄 모르면 톱 플레이어가 되기 어려워졌다.

1997년 Masters Tournament에서 보여 준 타이거의 퍼포먼스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동시에 영감을 주었다. 그 전에도 잭 니클라우스처럼 실제 ‘우드’로 된 드라이버로 300야드 가까이 친 ‘정신 나간’ 선수도 있었고 존 댈리처럼 ‘시즌 평균 거리 300야드’의 시대를 연 선수도 있었지만 타이거처럼 ‘승리를 위해선 장타가 필수’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례는 없었다. 그만큼 완벽했다.

멀리 보낸 뒤 숏 아이언으로 세컨샷을 핀에 붙이는 타이거의 플레이스타일이 많은 영향을 미쳐 지금은 누구나 비슷한 전략으로 경기를 펼치고 이 때문에 각 투어협회는 코스의 전장을 늘이고 페어웨이를 좁히고 러프와 그린을 어렵게 편성하는 등 바쁘게 손을 대야 했다. 타이거로 인해 더욱 과학적이고 치밀한 분석과 업체간 경쟁을 통해 드라이버의 성능 상승 및 그에 따른 볼의 변경 등 골프에 쓰이는 도구 전체가 변혁의 시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장타’가 골프에서 최고의 무기임을 알려 준 타이거이지만, 실제로 드라이버샷은 그의 커리어 내내 불안함을 감출 수 없는 약점이기도 했다. 무릎의 부상 그리고 행크 헤이니를 만나 스윙을 변경한 이후 드라이버는 더 불안정해졌고[39] 드라이버 때문에 불안한 경기력을 보여준 적이 많았다. 드라이버가 똑바로 가는 날이면 누구도 제어가 어려울 정도. 오죽하면 본인도 “내 Family Name이 우즈(Woods)가 아니고 페어웨어(Fairway)였으면 훨씬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을텐데…”라고 자조적인 농담을 했을까.

반면에 아이언 샷은 매우 뛰어났다. 특히 요즘에는 잘 다루지 않으려는 롱 아이언, 이를테면 2번 – 3번 아이언처럼 요즘에는 하이브리드나 로우 우드 넘버로 대체되는 아이언을 곧잘 사용했고, 이를 통해 방향이 불안정했던 드라이버의 약점을 보완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그린과 그린 주변의 골프부터 시작한 타이거는 본능적으로 칩 샷과 퍼트를 했고, 일부의 평론가들은 “타이거 골프의 정수는 그린과 그 주변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숏게임도 매우 뛰어 났다. 흔히들 ‘숏게임 마스터’로 필 미켈슨을 말하지만 그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샷으로 임팩트를 많이 주었을 뿐 안전하고 실제 승리를 이끄는 숏게임을 자주 펼친 것은 타이거였다.

전성기에는 퍼트의 안정감 또한 매우 좋았다. 아버지 얼 우즈의 가르침대로 보고 있는 그린의 라이를 그대로 머리에 그려서 본 그대로 퍼팅하는 방식이었고, 이 방식은 긴박한 순간에 늘 효과를 주었다. 실제 투어 동료들이 뽑은 "경쟁자에게서 가장 빼앗아 오고 싶은 기술"을 설문하자 1위에 '타이거의 퍼팅'이 선정되었을 정도.

전반적인 스윙 기술이 뛰어난 선수로, 모든 샷을 하이 & 로우로 나누어 드로우 / 페이드 샷을 자유자재로 쳤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메이저 대회에서도 이 기술들을 거리낌없이 시도했고, 성공하며 골프팬들에게 임팩트 있는 감동과 수많은 하이라이트 필름을 남겼다.

멘탈 또한 매우 뛰어나서 상대를 잡아 먹을 듯한 기세로 경기 중엔 거의 미소도 보이지 않고 갤러리도 상대하지 않는 냉정함을 보였다. 시합 중 보인 고도의 집중력과 승부욕으로 전성기 시절엔 경쟁자를 두지 않았다. 실수를 하면 바로 회복할 줄 알았고, ‘어퍼컷’ 세리 모니 등을 통해 갤러리의 응원을 본인 것으로 할 줄 아는 영민한 경기 운영 능력도 지녔다.

프로가 봐도 대단한 샷을 보여준다고 한다. 나름 메이저 우승자이자 역대 총 상금 순위에서도 TOP 10에 드는 짐 퓨릭은 “예전에 같이 라이더컵에서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실제 타이거의 샷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건 뭐, 그냥 나는 큰 실수만 안 해도 이 친구 덕분에 이길 수 있겠구나, 할 정도의 샷을 해요. 거리가 문제가 아니라 볼이 클럽에 맞아서 뻗어 나가는 걸 직접 보면 아마 무슨 소리인 줄 아실 거에요.”라고 인터뷰 했었고, 다른 PGA 투어 동료들도 “볼 때마다 샷의 질이 너무 달라서 놀란다.”고 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샷 메이킹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골프 토털 패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Tiger Woods Swing, 1993 ~ 2016

8. 우승 경력

1996 PGA 투어 Las Vegas Invitational
1996 PGA 투어 Walt Disney World/Oldsmobile Classic
1997 PGA 투어 Mercedes Championships
1997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
1997 PGA 투어 GTE Byron Nelson Golf Classic
1997 PGA 투어 Motorola Western Open
1998 PGA 투어 BellSouth Classic
1998 유러피언 투어 Johnnie Walker Classic
1999 PGA 투어 Buick Invitational
1998 유러피언 투어 Deutsche Bank – SAP Open TPC of Europe
1999 PGA 투어 Memorial Tournament
1999 PGA 투어 Motorola Western Open
1999 PGA 투어 PGA Championship
1999 WGC - NEC Invitational
1999 PGA 투어 National Car Rental Golf Classic/Disney
1999 PGA 투어 The Tour Championship
1999 WGC - American Express Championship
2000 PGA 투어 Mercedes Championships
2000 PGA 투어 AT&T Pebble Beach National Pro-Am
2000 PGA 투어 Bay Hill Invitational[40]
2000 PGA 투어 Memorial Tournament
2000 PGA 투어 U.S. Open
2000 PGA 투어 The Open Championship
2000 PGA 투어 PGA Championship
2000 WGC - NEC Invitational
2000 PGA 투어 Bell Canadian Open
2000 유러피언 투어 Johnnie Walker Classic
2001 PGA 투어 Bay Hill Invitational
2001 PGA 투어 THE PLAYERS Championship
2001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
2001 유러피언 투어 Deutsche Bank – SAP Open TPC of Europe
2001 PGA 투어 Memorial Tournament
2001 WGC - NEC Invitational
2002 PGA 투어 Bay Hill Invitational presented by Cooper Tires
2002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
2002 유러피언 투어 Deutsche Bank – SAP Open TPC of Europe
2002 PGA 투어 U.S. Open
2002 PGA 투어 Buick Open
2002 WGC - American Express Championship
2003 PGA 투어 Buick Invitational
2003 WGC - Accenture Match Play Championship
2003 PGA 투어 Bay Hill Invitational presented by Cooper Tires
2003 PGA 투어 100th Western Open presented by Golf Digest
2003 WGC - American Express Championship
2004 WGC - Accenture Match Play Championship
2005 PGA 투어 Buick Invitational
2005 PGA 투어 Ford Championship at Doral
2005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
2005 PGA 투어 The Open Championship
2005 WGC - NEC Invitational
2005 WGC - American Express Championship
2005 JGTO[41] 던롭 피닉스
2006 PGA 투어 Buick Invitational
2006 유러피언 투어 Dubai Desert Classic
2006 PGA 투어 Ford Championship at Doral
2006 PGA 투어 The Open Championship
2006 PGA 투어 Buick Open
2006 PGA 투어 PGA Championship
2006 WGC - Bridgestone Invitational
2006 PGA 투어 Deutsche Bank Championship
2006 WGC - American Express Championship
2006 JGTO 던롭 피닉스
2007 PGA 투어 Buick Invitational
2007 WGC - CA Championship
2007 PGA 투어 Wachovia Championship
2007 WGC - Bridgestone Invitational
2007 PGA 투어 PGA Championship
2007 PGA 투어 BMW Championship
2007 PGA 투어 The Tour Championship presented by Coca-Cola
2008 PGA 투어 Buick Invitational
2008 유러피언 투어 Dubai Desert Classic
2008 WGC - Accenture Match Play Championship
2008 PGA 투어 Arnold Palmer Invitational presented by MasterCard
2008 PGA 투어 U.S. Open
2009 PGA 투어 Arnold Palmer Invitational presented by MasterCard
2009 PGA 투어 Memorial Tournament
2009 PGA 투어 AT&T National[42]
2009 PGA 투어 Buick Open
2009 WGC - Bridgestone Invitational
2008 유러피언 투어 JBWere Masters
2009 PGA 투어 BMW Championship
2012 PGA 투어 Arnold Palmer Invitational presented by MasterCard
2012 PGA 투어 Memorial Tournament presented by Nationwide Insurance
2012 PGA 투어 AT&T National
2013 PGA 투어 Farmers Insurance Open
2013 WGC - Cadillac Championship
2013 PGA 투어 Arnold Palmer Invitational presented by MasterCard
2013 PGA 투어 THE PLAYERS Championship
2013 WGC - Bridgestone Invitational
2018 PGA 투어 The Tour Championship[43]
2019 PGA 투어 Masters Tournament[44]
2019 PGA 투어 ZOZO Championship[45]

9. 상금 및 순위

1위는 볼드 처리

10. 기록

10.1. 경력 기록 및 통계

10.2. 수상 기록

10.3. 기타

11. 여담

11.1. 섹스 스캔들

2009년 말에 터진 타이거의 섹스 스캔들은 골프를 모르는 이들 사이에도 화제가 되었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처음엔 타블로이드 신문의 진위를 알 수 없는 선정적인 기사 같았지만, 사태는 일파만파 퍼졌고 우즈의 여성 편력은 10여 명을 헤아릴 정도로 번져나갔다. 그 풀스토리는 대서사시를 방불케 했으며, 수많은 매체들이 타임라인을 그려가며 타이거가 만났던 여성들에게 번호를 매길 정도가 되었다. 약 2년 동안 지속된 폭로전으로 타이거뿐만 아니라 PGA 전체가 큰 타격을 받았다.

대표적인 황색언론인 ‘내셔널 인콰이어리 지’[48]가 타이거와 동갑내기인 뉴욕의 클럽 매니저와의 불륜을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내셔널 인콰이어리 지’의 주장에 상대 여자로 지목된 여성은 사실을 부정했고, 타이거는 묵묵부답으로 응했다. 하지만 기사가 발표된 지 이틀 후 타이거가 탄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길거리에 있는 소화전을 들이받았다는 뉴스가 전국에 알려졌다. 타이거는 타박상을 약간 입었지만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고, 본인의 홈페이지로 운전과실이라고 주장한다. 본인과 가족의 프라이버시를 지켜달라는 당부와 함께 공식성명을 발표했지만, 부부가 인터뷰 중 이 상황에 대한 정황을 코멘트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밝혀진다. 사실은 타이거의 불륜 사실에 대해 추궁하던 아내 엘린이 분노를 이기지 못해 부부싸움을 했고, 그 와중에 드라이버를 집어 들고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타이거는 도망치듯 차를 타고 급히 운전하다가 그만 차량사고가 발생한 것. 이 거짓말을 신호탄으로 타이거가 불륜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은 점점 사실로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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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이드의 표지를 장식한 수많은 타이거의 그녀들
그리고 얼마 후 또 다른 여성 한 명이 오랜 기간 타이거의 섹스 파트너였음을 밝힌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게 타이거가 음성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문자와 전화 번호를 삭제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첫 번째로 지목되었던 여성도 “그가 유부남인 것은 알지만… 사랑한다.” 하고 밝히며 그간의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밝힌다.

이에 상황을 안정시킬 수 없음을 안 타이거는 공식성명을 통해 밝혀진 불륜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깊이 후회한다며 많은 이들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하지만 타이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캔들은 점점 확산되었다. "나도 타이거 우즈와 불륜했다."는 여성이 하나 둘씩 나오더니 20명에 육박했다.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타이거에 대한 가십 기사를 쏟아냈다. 게다가 일부 불륜녀들은 아기까지 가졌다고 주장했으나, 모두 법정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타이거의 여자들에 대한 인기투표까지 진행하는 상황까지 펼쳐졌다.

타이거는 명성을 크게 잃고, 아내인 엘린과의 이혼 위기에 몰렸다. 이혼하는 대신, 45일간 미시시피주에 있는 클리닉에서 섹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신치료를 받기로 했지만, 스캔들에 관련된 뉴스는 계속되었다. 급기야 타이거가 ‘피부색’에 대한 콤플렉스로 백인 여성들만 상대하며 변태적인 성행위를 펼친 것이라는 의견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그의 불륜 파트너 중 하나였던 졸리 페리올로는 타이거 우즈가 양성애자라는 주장을 해서 주목을 끌었으나, 타이거 우즈는 이를 부인하면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골프’가 아닌 이슈로 다뤄지는 타이거를 보고 그를 사랑해 온 많은 팬들은 생소했고 참담했으며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됐다. 그러면서 타이거를 모델로 썼던 여러 스폰서 회사들이 계약을 중단하였고, 이 스캔들로 엑센츄어, AT&T, 게토레이, GM 등의 기업이 잃은 주가 손실이 50억 달러(약 6조 원)에서 심하면 120억 달러(약 14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자 견디지 못한 엘린은 2010년 8월 23일, 타이거와의 이혼 소송을 완료하였다. 전처에게는 타이거에 대한 언급 금지 및 자녀들의 양육을 책임지는 조건으로 위자료 약 1억 달러가 지급되었다.

여담이지만 불륜 스캔들 이후 열린 2013년 열린 U.S. 오픈 대회에서 관중들이 타이거 우즈의 샷에 맞춰 "Get in the hole!(홀/구멍에 넣어라!)"라고 외치자 이들 중 한 명이 "That's what she said!(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겠지!)"라고 한 마디를 덧붙인 사건이 있었다. 우즈에 대한 인식이 바닥을 친 이후 일어난 사건인지라 현재까지도 "NOT ALL HEROES WEAR CAPES(꼭 망토를 뒤집어써야만 영웅은 아니지!)"와 같이 해당 관중을 옹호하는 댓글이 달리는 중이다.

11.2. 약물 문제

새로운 스윙 코치 영입 이후 2016년 12월 야심찬 복귀를 했으나 몇 경기 뛰지 못하고 부상 재발로 인한 칩거 중이었던 타이거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뉴스가 나와 화제가 되었다.

미국 동부 현지시간으로 2017년 5월 29일 새벽 3시경에 자신이 살고 있던 플로리다 주피터 타운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밀리터리 트레일 도로에서 음주운전 체포 소식이 현지 언론으로부터 전달되었다. 이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으나, 현지 언론에서는 하필이면 메모리얼 데이 때 음주운전을 일으켰다는 점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머그샷 사진도 뜨고, 그 대단했던 타이거조차 음주 운전으로 스스로 최악의 인간이 되는가 했지만, 혈중 알코올 테스트 결과는 알콜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상태가 나왔다. 즉, 음주운전이 아니었던 것이다[49] 사실은 ‘약물 중독’에 의한 사고로, 본인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운전을 하던 중 발생하여 본의 아니게 상황이 만들어진 것.

실제 타이거가 적발된 상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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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샷에 찍힌 타이거의 모습. 심하게 중독되어 있는 모습으로 충격을 주었다.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인한 약물중독 증상으로 인해 정신 잃고 운전하다가 DUI에 걸린 것이다. 즉 타이거는 중독성 심한 진통제에 의존할 정도로 몸 상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이후 타이거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사설 집중 프로그램을 마쳤다며 앞으로도 주변인들과 함께 현재의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변함없이 본인을 지지하고 걱정해 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현재 타이거는 약물을 통제/관리하고 몸의 통증과 이에 따른 수면 장애를 치료하는 전문적인 도움을 받는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자신이 받은 치료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종류, 골프 복귀 계획 등은 밝히지 않았다. 2017년 말 복귀 후, 현재까지 무난히 복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 시점에서는 약물에 대한 의존도가 많이 낮아진 것으로 보면 되겠다. 실제로 근래에는 '부상'에 대한 언급 자체가 줄어서 몸 상태가 잘 회복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11.3. 시청률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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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를 보기 위해 몰려 든 중국인 갤러리들. 나이키 이벤트에서의 모습.
타이거 우즈 이펙트라는 말은 꽤 신빙성 있는 말이다. 그가 출전하냐 안 하냐에 따라 대회의 시청률과 상금, 미디어의 기사량에 차이가 난다. 타이거는 (당연하지만) 선두권에 있어도 줄곧 그의 플레이가 중계되지만, 우승과 상관없는 경기 중이어도 그의 플레이는 중간 중간 비춰진다.

타이거는 제한적인 대회 출전을 하였다. 메이저 대회와 WGC, 시즌 후 열리는 Fedex Cup 플레이오프, 그리고 위대한 대선배들의 인비테이셔널인 '아놀드 파머 인비테이셔널'과 '더 메모리얼 클래식'. 그 외에는 본인 재단이 주최하는 대회나 출전료를 충분히 주는 대회[52]에 참가를 하고 PGA 투어에 오랜 기간 기여해 온 전통 있는 대회에나 얼굴을 비췄다. 그리고 선별된 대회에서 매우 높은 확률로 우승을 거뒀다. 최경주가 말했듯이 "매일 같은 코스에서 경기한다고 해서, 내가 이 코스를 다 꿰고 있다고 해서 스코어가 잘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타이거의 승리는 결코 폄하될 수 없다.

2016년 기준으로, 타이거가 나왔던 대회와 그렇지 않은 대회의 시청률을 비교한 자료가 있다. 지금도 필드를 호령하고 수많은 스폰서를 유니폼 곳곳에 부친 선수들이 넘쳐 나지만 역시 타이거 앞에서는 역부족이다. 숫자가 증명한다.

2016년 9월호 The Golf 데이터의 일부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11.4. 라이벌, 필 미켈슨

파일:external/media.golfdigest.com/comparing-tiger-woods-phil-mickelson-swing-sequences.jpg
타이거와 필의 드라이버 티샷 모습[53]
지난 20여 년간 남자 골프계를 대표하는 선수가 누구였느냐는 질문에는 아마도 십중팔구 '타이거 우즈'라는 이름이 나올 것이다. OK, 그건 알고 있고 또 한 명만 더 대본다면? 이라고 질문하면 여기서는 최소 50% 이상의 지분이 이 선수에게 주어질 것이다. 바로 필 미켈슨이었다.

흑인과 백인, 우타자와 좌타자, 차갑고 냉정한 카리스마와 서글서글한 미소의 팬 페이보릿 플레이어, 맹렬한 어퍼컷 세리머니와 차분하게 엄지 손가락만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 둘은 여러모로 비교가 많이 된다. 나이로 4살이 위인 필이 업계 선배이긴 하지만, 역대급 선수인 후배 덕에 많은 이득[54]을 본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선후배 사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마치 살인사건 공판장 같은 타이거의 인터뷰장은 수 많은 프레스가 집중하지만 그다지 재미있는 뉴스 거리는 나오지 않는다. 웃으면서 기자 회견장에 등장하는 필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나 기타 다른 골프계 이외의 이슈를 언급하며 주위를 환기 시킨다. 타이거만큼 프레스가 집중되지 않지만 언제나 그의 인터뷰장은 활기차다. 타이거는 경기 중에 사인을 해주거나 갤러리와 하이파이브조차 하지 않으나[55], 필은 미국이건 어디건 본인을 보러 오는 이들에게는 늘 넉넉한 미소로 싸인도 해주고 악수도 해준다.

역대급 대학 선수인 필이 프로에 적응하는데는 약 2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으나 타이거에게는 6개월조차 필요 없었다. 둘 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뛰어난 퍼포먼스로 무장된 선수이기에 팬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사실 팬, 그리고 매스컴의 관심, 골프 역사에서의 위치 그 어느 것을 비교해도 필은 타이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PGA는 언제나 둘을 벤 호건 vs 샘 스니드, 잭 니클라우스 vs 아놀드 파머와 같은 라이벌리로 묶으려 하지만 일단 골프를 지켜본 사람들은 안다. 둘은 라이벌이라는 이름으로 묶기에는 지금까지 쌓은 업적의 차이가 꽤 있다는 것을. 심지어 필의 커리어도 역대급이다. 단지 타이거의 존재감이 그 이상으로 거대할 뿐이었다.

2004년 라이더컵에서의 이슈로 한때 둘은 서로를 외면한 적도 있었다. 2005년과 2006년, Masters Tournament에서 서로가 그린 자켓을 입혀주는 상황도 연출되었으나[56] 둘은 서로를 친근하게 대하지도, 아니 아예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타이거가 스캔들로, 필이 가족사[57]로 인해 인생의 쓴맛을 보면서 둘은 조금 가까워졌다. 타이거에게 첫 딸이 태어났을 때 필이 탁구대를 보낼 정도로 둘을 둘러싼 전반적인 상황은 부드러워 졌다. 어떤 면에서 둘의 관계는 배트맨조커 같다. 서로가 상대의 가진 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분명 필은 자신을 뛰어넘은 타이거의 업적과 15번의 메이저 타이틀(특히 U.S Open!)이 부러울 테고, 타이거는 필이 전방위적으로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는 인간적인 매력을 훔치고 싶을지 모른다.

아래 영상은 타이거와 필이 라운드 파트너로 맞이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정도 둘의 캐릭터가 잘 나오는 (심지어 재미있는) 영상이니 한 번 감상해 보자.
"알아, 다 안다고" 필의 유머 감각이 빛나는 씬[58]
지난 라이더컵에서 미국의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 타이거는 부단장으로서, 필은 선수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기간 동안 둘은 대화하며 웃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기도 했다. 서로를 의식하며 살아 왔던 지난 세월도 모두 부질없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욕심을 내려놓고 나니 서로를 편안하게 대하게 된 듯하다.

둘의 지난 20년 간의 기록을 비교하며 관련 항목의 글을 마치도록 한다. 기준은 2019년까지다.

친구보단 라이벌이었고, 친근함보다는 날카로운 이미지가 강했던 둘 사이지만 2018년 Masters Tournament를 앞두고 연습 경기에서 포볼 게임의 한 조를 이뤄 플레이하는 흔치 않은 광경을 선보였다. 둘 다 세월 속의 풍랑을 거쳐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해진 뒤 자신에게 있어서의 서로의 의미를 이해한 듯한 느낌. 2019년 기준 Masters Tournament 8회 우승(타이거 5회 + 필 3회)에 빛나는 리빙 레전드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11.5. 자동차 사고

2021년 2월 23일 아침 7시(현지 시각), 로스앤젤레스 광역권 도시인 란초 팔로스 베르데스(Rancho Palos Verdes)에서 제네시스 주최 골프 대회로 스폰싱받은 제네시스 GV80 차량을 몰고 운전을 하다가 도로를 벗어나 차가 구르는 사고를 당했다. 우즈는 즉시 UCLA 병원으로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다. 오른쪽 정강뼈종아리뼈 등이 산산조각이 났다고 하며 정강뼈에 철심을 꽂고, 발목과 발목뼈는 나사와 핀으로 고정해둔 상태라고 한다. 우즈 재단은 이후 타이거가 의식을 회복한 상태이며, 현재 회복 중이라고 상태를 알렸다. 그러나 다리가 골절되어 선수 커리어에 큰 지장이 생겼다. 그나마 다행히 음주운전이나 마약 복용은 아니었고 안전벨트와 에어백 등 덕에 목숨을 건졌다. 실제로 구조 당시 본인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은 있었다.

우즈가 달리던 도로는 급격한 커브의 내리막길이었는데, 그 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 의하면 꽤나 위험한 길이라고 하며 경찰 또한 그 지점에서 과속으로 인한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브리핑에서 밝혔다. 영상에 의하면 우즈의 차도 도로를 벗어나 나무를 들이받고 옆으로 몇 바퀴 구른 것으로 보인다. 평소 우즈와 함께 골프를 쳤고 대통령 재임 시절 자유의 메달까지 수여했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우즈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빠른 쾌유를 비는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 언론에서는 전복사고라고 표현했지만, 지붕과 문짝이 구른 흔적이 없고, 대신 엔진룸과 테일게이트만 파손되었기 때문에 앞과 뒤로 충돌이 있었다가 마지막에 쓰러진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으로 제네시스는 뜻밖의 홍보 효과를 얻었다. 수 미터를 굴러떨어졌음에도 차 내부가 멀쩡했고, LA 경찰은 사건 조사결과 "차량 앞부분과 범퍼가 완전히 파괴됐지만 차량 내부는 거의 온전한 상태여서 우즈가 살아남을 수 있는 쿠션 역할을 했다"며 "그렇지 않았다면 치명적인 사고가 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거기에 BMW렉서스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제네시스라는 브랜드가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기까지 했다. USA 투데이는 '타이거 우즈의 사고가 잘 알려지지 않은 럭셔리 브랜드를 스포트라이트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적었다. 시속 140킬로미터로 과속하다가 사고가 났다는 2021년 4월 8일자 워싱턴포스트발 기사가 나왔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이로 인해 제네시스의 안전성을 다시 한 번 입증하게 되었다.

로스엔젤레스 주 보안관에 의하면 타이거 우즈는 제한속도 45mph(약 72km/h)구간에서 무려 84~87mph(135~140km/h)로 과속했다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59] 또한 워싱턴포스트 기사에 의하면 직접적으로 부딪힌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시속 140km에 육박하는 엄청난 속도에서 사고가 났는데 목숨을 건진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사고 직전 커브길에서 오히려 과속한 것으로 보아, 의식이 없이 악셀을 밟은 걸로 보였다. 음주나 약물 흔적은 없단 점에서 졸음운전이었을 거란 점이 유력하고 해외 매체들은 전했다.

2022년 2월 타이거 우즈가 현대자동차정의선 회장에게 고맙다며 식사를 대접했다.#

11.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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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타이거 우즈 PGA TOUR 14'의 표지. 좌로부터 세베 - 타이거 - 로리.[60]
1999년부터 14년 간 이어져오던 EA의 <타이거 우즈 PGA 투어> 골프 게임은 2013년에 PS3XBOX360으로 나온 <타이거 우즈 PGA 투어 14>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며, 차세대 콘솔로 나오는 새로운 골프 게임을 위해 EA는 2015년 기준 세계랭킹 1위의 골프선수인 로리 매킬로이와 계약을 맺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
그럼에도, '타이거 우즈'라는 이름값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기에, 먼 훗날 PGA Tour 2K23에선 다시금 표지모델을 꿰찼다.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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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장으로 8년 만의 라이더컵 우승을 가져오다. 경기 중 활짝 웃는 타이거.
미국 vs 유럽 간, 2년에 한 번씩 미국과 유럽 대륙을 오가며 치러지는 지상 최대의 골프 축제 '라이더 컵'에는 1997년부터 2012년까지 통산 7회 참가했다. 통산 13승 17패로 승률이 43% 밖에 안된다. ‘개인’ 타이거 우즈가 투어에 남긴 업적에 비교하자면 라이더컵에서는 제 역할을 못해 주었다고 봐도 무방. 역사에 남을 2004년의 패배에도 필 미켈슨과 한 조를 이룬 타이거 팀이 처참하게 패한 것이 시발점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해당 이슈는 라이더컵이 있을 때마다 불거졌고, 당시 단장이었던 할 서튼은 이후 다시는 라이더컵은 물론 ‘프레지던트컵’ 단장 후보에도 이름을 못 올릴 정도였다. 부상으로 대회 참가가 어려웠던 2016년 대회에는 부단장으로 팀 화합에 노력하며 8년 만에 유럽 팀을 꺾는 데 나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인 ‘인터내셔널 팀’을 상대하는 ‘프레지던트 컵’에서는 24승으로 미국 선발 선수 중 역대 1위의 승수를 기록 중이다. 통산 8회 출전에, 승리 포인트로 11회 출전한 필 미켈슨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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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 본과 즐거운 한 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활강에서 금메달, 2012년 알파인 스키 월드컵 활강 우승, 여자 스키 월드컵 슈퍼게임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는 미국의 스키 스타 린지 본과 연애한 적이 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한 때 둘은 호사가에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유명 셀러브리티 커플이었다. 물론 둘의 연애 소식이 전해지자 “또 백인 여자냐”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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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에서 앙숙으로. 스티브 윌리암스와의 어색한 악수를 나누는 타이거.
오랜 기간 No.1의 위치에 있었고, 온화한 잭 니클라우스조차 “그와 실제로 말을 섞어 본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을 정도로, 타이거는 사람과의 관계를 최소화하며 경기 및 스폰서 행사 외에는 거의 두문불출했던 인물이다.

업계 관계자 혹은 투어 동료 중 일부와는 사소한 오해 등을 계기로 관계가 나쁜 인물들이 몇몇 있는데 특히 비제이 싱 – 닉 팔도 – 세르히오 가르시아 [62] 등과는 오랜 기간 불편한 사이였다. 세르히오의 2017년 Masters Tournament 우승에 타이거가 축하 멘트를 건넨 것은 꽤 놀라운 뉴스 중 하나였다.

메이저 13승을 합작한 전 캐디 스티브 윌리암스도 유명한 앙숙 관계다. 옛 클라이언트에게 악담만 퍼붓는 스티브가 나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요새 들어서는 본인의 발언의 왜곡되었다고 오히려 억울해하는 중이다. 물론 타이거는 이에 대해서도 따로 코멘트하지 않았다.

로저 페더러가 메이저 대회 10회 우승을 했을 때의 CF 영상이다. 나레이션으로 로저 페더러의 업적을 죽 나열하다가 막바지에 직접 등장하더니 자기는 메이저 대회 12회 우승했다면서 얼른 쫓아오라고 한다. 페더러와 연락을 주고 받고, 때론 페더러의 경기를 관람하는 등 둘의 친분이 좋기 때문에 가능했던 익살스러운 CF다.

2018년 현재 기준으로 하자면, 타이거가 2개의 메이저 우승을 더하는 사이 페더러는 메이저 20회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스캔들 - 부상으로 타이거가 주춤했듯이 페더러 또한 부진과 기술적 결함을 수정하는 등의 이유로 기량 하락을 느끼게 해주었으나 2017년부터 훌륭히 컴백, 역대 최고의 테니스 선수 중 한 명으로서의 커리어를 이어 가고 있다.

정상적인 18시즌 복귀를 진행 중인 타이거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례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마침내 2018년 Tour Championship 우승과 15번째 메이저 우승으로 꽃을 피웠다.

2023년 2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저스틴 토머스'에게 장난으로 생리대를 건넨 것이 논란이 되었다. 자신의 티샷이 토머스보다 더 멀리 날아가자 '소녀처럼 경기한다'고 놀린다고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우즈는 사과하였다. 국내 기사

12. 참고 문헌

13. 관련 문서



[1] 1964년~현재. 통산 10승을 기록했으나 두드러진 업적은 남기지 못했다.[2] 1996년 8월에 데뷔, 겨우 3개월 남짓 뛰었으나 2번의 우승으로 어렵지 않게 신인왕을 수상했다.[3] 1973년~현재. 통산 14승을 기록 중인 배테랑 골퍼이다. 2009년 The Open Championship 우승자이지만, 60세의 노구로 감동의 경기를 치른 대선배 톰 왓슨을 연장에서 꺾고 우승한 탓에 크게 환영 받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4] 1957년~현재. 타이거 우즈가 마음을 터 놓은 몇 안되는 투어 동료이다. 1998년 Masters Tournament와 The Open Championship 우승자로 그 해가 본인 최고의 전성기.[5] 1963년~현재. 피지 출신의 레전드 골퍼이다. 우즈 시대의 경쟁자 중 하나였으나 우즈와는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 Masters Tournament와 1998년 & 2004년의 PGA Championship 우승자. PGA Tour 34승을 비롯, 프로 통산 61승을 거뒀다. PGA Tour 최초의 연간 상금 1,000만달러(2004년) 시대를 연 선수. 2006년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으나 최근 약물설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6] 1971년~현재. 타이거 시대에 세계 1위를 거머쥔 몇 안되는 선수였지만 갑작스런 입스 현상으로 부진에 빠진 불운한 선수다. 2001년 The Open Championship 우승자로 현재는 골프 채널의 해설자로써 활약 중이다.[7] 연으로 환산하면 무려 13년 하고도 7주다.[8] 2019년 4월 15일 기준[9] 전설적인 골퍼 샘 스니드와 타이 기록이다.[10] 현재 역대 3위이며 WGC 등 포함된 기록이다. 물론 일반적인 유러피언 투어에도 초청 받아 우승한 바 있다.[11] 일본 남자 골프 투어[12] PGA Grand Slam of Golf(해당 연도 메이저 챔피언만 모아 2라운드로 치러지는 이벤트 대회) 등도 모두 포함이다.[13] 해당 연도 우승 및 TOP10 회수를 근거로 뽑는 상[14] 해당 연도의 가장 뛰어났던 선수를 동료들의 투표를 통해 받는 상[15] 해당 연도 최저타를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 기준은 60라운드 이상.[16] 해당 연도 최저타를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 기준은 50라운드 이상.[17] 18번 홀에서 마지막 퍼트를 끝낸 뒤 포효하는 타이거. 물론 대회 시작 전에도 타이거 우즈는 스타였다. 데뷔 1년도 되지 않아 3승을 거두며 '천재 골퍼'라는 스포트라이트에 걸맞은 활약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는 '메이저 대회'를 제패해야 비로소 실력자로 인정을 받는데, 타이거는 데뷔 후 맞이한 생애 첫 메이저에서 2위를 12타로 제치는 압도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우승하는 대형 사고를 친다. 마이클 조던에 버금가는 전 지구적 슈퍼스타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인 순간이다.[18] 17년부터 용품 계약을 한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를 들고[19] 2위:르브론 제임스,10위:우사인 볼트,11위:리오넬 메시,14위:크리스티아누 호날두[20] 이 후 나이키의 TV-CM에서도 활용되었다.[21] 한국만 해도 이 당시 남자 골프는 타이거 우즈, 여자 골프는 박세리라는 스타로 인해 저변이 많이 넓어졌다.[22] 때문에 이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었던 흑인 슈퍼스타라는 점이 타이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물론 데뷔 초에는 은연 중에 '흑인'이라서 괄시받은 부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괄시받던 이 골퍼는 PGA Tour를 전 세계 프로 스포츠 10위권의 매출을 기록하는 단체로 만드는 대활약을 펼쳤고, '은혜를 입은' PGA 측은 어느새 슈퍼스타가 된 이 골퍼가 승리의 포효를 할 때마다 함께 세리머니를 하는 든든한 후원 단체가 되었다.[23] 정확히는 시노타이계 + 백인계 인도네시아인 혼혈이다.[24] 지금의 골프 스타에겐 그리 큰 돈은 아닐 수 있으나 1996년 당시 시점에서는 스타급 프로 선수의 1년치 상금 이상이었기에 프로 선수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기 힘들었다. "그 애송이가 보여준 게 뭐길래 그렇게 많은 돈을 받죠?" 증명하는 데는 1년도 채 필요하지 않았다.[25] 역대 2위이며 1위는 레전드 잭 니클라우스의 18승이다.[26] 잭 니클라우스보다 전 세대의 스타 'Slammy' 샘 스니드와 함께 공동 1위다.[27] 2017년 4월 4일, 마스터스에 관심 한 번 가져볼 만한 이유 by 골프 담당 美스테리한 기자들 기사 참조.[28] 2000년.[29] 1970 ~ 현재. 8자 스윙으로 불리는 독특한 스윙 자세로 유명한 프로. 스윙의 리듬은 동료들이 입을 모아 현역 최고로 칭할 정도의 유니크함과 실력을 갖춘 프로이다. 2003년 U.S. Open 포함 PGA 투어 17승, 프로 통산 26승을 기록 중이다. 2018년 라이더컵 미국팀 단장으로 선임된 상태인데, 재미있는 것은 선수 본인의 라이더컵 승률은 최악이라는 점이었다.[30] 최초의 세계 랭킹 1위는 독일 출신의 베른하르트 랑거. 2010년대 후반 시니어 투어를 완전 독점할 정도의 빼어난 골퍼였다.[31] 이전의 슈퍼스타들, 벤 호건 - 샘 스니드 - 아놀드 파머 - 잭 니클라우스 - 게리 플레이어 등은 당연하지만 세계 랭킹에서 취급된 적이 없다. 프로 골프 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엔 너무 빨리 세상에 나온 셈이다.[32] 남자 골프 기준, 총 4일 대회를 할 때 1~2일을 예선전, 3~4일을 본선으로 친다. 스폰서가 건 상금을 출전 선수 모두에게 줄 수 없기 때문. 3일째 골프를 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한데 대회 참가자 전체 순위에서 상위 60% 안에 드는 것이다(대회마다 다소 상이하다. 4일째 추가 컷을 하는 대회도 있음). 내가 1~2일 동안 5언더를 쳤는데 상위 60% 넘는 사람들이 6언더를 치면 컷 탈락했다. 1오버를 쳐도 상위 60%에 들면 컷 통과를 할 수 있다.[33]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골퍼라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컨디션 조절 실패 혹은 불운 등으로 컷 탈락을 한다. 한 시즌 동안 컷 탈락을 한 번도 하지 않으면 선수 스스로도 매우 긍지를 가질 정도였다.[34] 당연 역대 골프 선수 중 최초며 아직까지 유일무이하다.[35] 후일 조사에 따르면 타이거 퐁 중령은 남베트남이 패망한 후 1년 뒤인 1976년 북베트남의 강제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한다.[36] 점점 백스윙의 톱이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37] 단, 세 번째 스윙 변경을 통해서는 메이저 타이틀을 가져오지 못했다.[38] 엄청난 피트니스로 몸을 키웠고 이에 따른 부상의 우려도 있었으나, 스스로 축구하다 다친 것과 골퍼에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허리 부상 외엔 두꺼워진 몸이 불러온 부상의 사례가 없다.[39] 행크 헤이니가 타이거 우즈와 있었던 일을 발표한 ‘Big Miss’에서도 막상 레슨을 해 보니 생각보다 드라이버에 대한 공포심이 너무 커서 놀랐다고 술회한 바 있다.[40] 이 후 Arnold Palmer Invitational로 변경되었다.[41] 일본 남자 프로 골프 투어다.[42] 현재는 Quicken Loans National로 타이거 우즈 재단에서 치르는 대회가 되었다.[43] 1, 876일 만의 PGA 투어 우승 달성이다.[44] 11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 달성이다.[45] 개인 통산 최다승 타이 기록이다.[46] The U.S. Open 이후 무릎 부상으로 남은 시즌을 포기했다.[47] 대부분의 선수는 10~20개 대회 사이의 연속 컷 통과 기록을 가지고 있다.[48] 대략 한국의 스포츠 신문쯤 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황색언론이다. 사실 이미지는 웬만한 한국 스포츠 신문만도 못하다.[49] DUI(Driving Under the Influence)는 음주운전, 약물 중독 중 운전, 졸음 운전 운전자가 통제 불가능한 몸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적발되는 모든 사례를 포함한다. 정도에 따라 경/중범죄로 취급되는 범죄인데. 습관적으로 가장 잦은 사례인 음주운전으로 번역하다 보니 착오가 생긴 것.[50] 오피오이드 성분 진통제, 즉 변형 아편이다. 올리버쌤의 영상에도 한 주제를 통으로 할애할 정도로 쎄고 중독적인 진통제이며, 미드 House M.D.에서 나왔던 아주 강력하고 중독성있는 진통제[51] 취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에게 밖에서 직선으로 걸어보라는 테스트의 일종[52] 두바이에서 열리는 유러피언 대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약 2~30억원대의 출전료를 받고 대회 참가를 한다. 경기도 하기 전에 우승자보다 더 많은 금액을 손에 넣는 셈이다.[53] 2016년 4월호 골프 다이제스트 발췌[54] 상금 액수의 상승과 투어에의 관심도 증가 등이 있다.[55] 이러한 타이거의 행동은 부상 끝에 복귀한 2018년 이후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팬들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면서 기존의 이미지를 변화시켜 가는 중이며 오직 '승리'만 바라 보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인생의 여유를 느끼며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56] 타이거가 2005년에 우승했고, 필이 2004년과 2006년에 우승했다.[57] 어머니와 아내의 유방암 발병 문제였으며, 다행히도 큰 문제 없이 치료되었다.[58] 2002년 Tour Championship에서 있었던 일로, 필이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하기 전의 일이다. 대회 참가가 곧 우승을 의미하던 시절인 타이거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거기서 장내 아나운서가 타이거의 최신 커리어를 저렇게 길게 읊어 대니 필 입장에서는 농담 삼아서라도 한 마디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59] 커브길에서 이 정도 속도로 밟으면 무슨 차를 탔건 간에 사고를 피할 수 없다.[60] 타이거와 아놀드 파머가 표지인 버전도 있다.[61] 여담으로 전작인 2K21의 표지 모델은 저스틴 토마스.[62] 2013년에 있었던 갤러리 환호성 문제 때문에 사이가 더 악화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세르히오가 인터뷰 도중 우즈한테 저녁 식사로 프라이드 치킨을 대접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가 엄청나게 까인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 흑인과 치킨을 무작정 연결하는 건 인종차별에 속하는 결례인데, 사이가 안 좋은 상태에서 말했으니 그 의도를 의심 받은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르히오는 아디다스랑 계약이 끊길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