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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6:43:58

토야마루 침몰사고

토야마루에서 넘어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external/perdurabo10.tripod.com/toyamaru.jpg
토야마루 침몰 사고
공식 명칭 [ruby(洞爺丸事故, ruby=とうやまるじこ)]
일시 1954년 9월 26일 22시 43분
유형 태풍으로 침몰
발생 위치 일본 하코다테시 쓰가루해협
탑승인원 1,309명
사망 1,159명
구조 150명
기종 철도 연락선

1. 개요2. 토야마루3. 전개
3.1. 사고 당일3.2. 태풍의 습격3.3. 출항3.4. 최후
4. 사고의 여파5. 둘러보기

1. 개요

일본의 배 토야마루가 태풍 마리(台風第15号 Marie)[1]에 의해 침몰한 사고. "일본 국철 전후 5대 사고(国鉄戦後五大事故)" 중 하나다.[2] 하지만 사망자 수나 사고 원인을 감안할 때 나머지 4개의 사고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독보적인 대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토야마루

일본에서 운행한 기차 수송 연락선이며 이름은 홋카이도에 있는 토야코라는 호수에서 따 왔다. 제2차 세계 대전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세이칸 연락선이 죄다 미군의 폭격으로 침몰되거나 항행불능이 되어 여러 척의 연락선을 전후에 새로 건조하였는데 토야마루도 그 중 한 척이었다. 4천 톤급 선박으로 1947년에 만들어져서 아오모리에서 홋카이도하코다테를 연결하는 여러 페리들 중 하나였다.

3. 전개

3.1. 사고 당일

1954년 9월 26일 그 날도 토야마루는 아오모리에서 승객들과 철도차량 몇 량[3]을 실어서 쓰가루해협을 건너 하코다테에 도착했다.

3.2. 태풍의 습격

문제는 그 날 태풍이 쓰가루 해협을 지난다는 예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후 3시경 토야마루는 이 날 운휴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예보대로 비가 퍼붓고 파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오후 5시 비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도 잦아들었다. 이는 이날 오후에 하코다테가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상 예보와도 딱 맞아떨어졌다.

토야마루 호의 콘도 선장은 지금 토야마루 호는 태풍의 눈 안에 있고 당시 기상대 예보대로 오후 6시 30분에는 태풍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당시 하코다테는 태풍의 눈 안에 있던 것이 아니라 본디 홋카이도에 형성된 폐색전선이 태풍에 휘감아 내려오면서 생긴 음영지대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 시절에는 인공위성이 없었고[4] 통신 사정도 좋지 않아서 태풍의 눈을 정확히 확인하기 힘들었다.

3.3. 출항

승무원들은 결국 출항을 결정했지만 이미 이때부터 불안한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으니... 태풍이 다시 강해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다시 하코다테 앞바다에는 많은 비가 내렸고 그만큼 바람과 파도가 강해졌지만 토야마루는 개의치 않고 그저 태풍이 물러갔다는 기상예보만 믿고 출항하였다.

오후 6시 39분 토야마루는 승객과 승무원 1,309명을 태우고 하코다테 항을 떠나서 아오모리로 항행하기 시작했지만 기상상태가 너무 악화되자 오후 7시 1분 하코다테 외항에 잠깐 정박하여 바다 상태를 보기로 결정하고 닻을 내린다.

3.4. 최후

하지만 태풍의 눈을 벗어난 뒤 다시 폭풍우 속으로 들아간 토야마루는 미칠 듯이 빨라져 있던 유속으로 인해 닻이 고정되지 않았다. 뒤이어 파도가 배를 강타했고, 갑판이 낮은 페리[5]의 특성상 바닷물이 그대로 갑판을 넘어서 증기 추진이던 엔진실까지 물이 들어갔다. 결국 동력을 잃게 된 토야마루는 3시간 넘게 하코다테 항 일대를 표류했다. 그 와중에 선장은 하코다테 인근 나나에 해변으로 피항하려고 했지만 엔진이 꺼졌기 때문에 소용없었다.

결국 22시 26분 토야마루는 SOS를 쳤지만 너무 늦었고 단 17분 후인 22시 43분 침몰하고 말았다.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1,309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150명이었고 무려 1,15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들 중에는 선거 유세를 위해 자신의 선거구로 갔던 유력 정치인을 비롯해서 홋카이도에 배치되어 있던 미군도 소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잘못된 기상 예보로 가라앉은 배가 토야마루호 한 척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세이칸을 왕래하는 (열차)화물선 수 척이 침몰되었고 여객선인 토야마루에서 어마어마한 사상자가 나와서 그렇지 이들 배의 승무원 사망자만 해도 무려 227명이었다.

4. 사고의 여파

일본판 타이타닉이 따로 없을 수준의 대참사로, 일본 사회는 그야말로 큰 충격을 받았다.[6] 당시에는 미국의 지원에 의해 달러가 많이 흘러들어와서 어느 정도 경제의 기틀을 잡고 슬슬 앞으로 전진했는데 이 사고로 인해서 엄청난 심적인 충격을 받았다.

새로운 배를 건조하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 대타로 세이칸 항로에 투입된 연락선은 부관연락선으로 투입되었던 케이후쿠마루(景福丸/경복환)[7]였다. 케이후쿠마루는 1960년대까지 세이칸 항로에 투입되었고 퇴역 후에는 하코다테에서 선상호텔로 재활용되다가 해체되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세이칸 터널의 굴착이 결정되었고 1988년에 완성되어서 더 이상 유사한 사고가 벌어질 일은 없게 되었지만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오가는 페리는 아직 남아 있는데 카페리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아오모리나 하코다테 양쪽에서 매일 15회(!) 운항한다. 다만 홋카이도로 여행가는 대다수의 철도 동호인들을 포함한 외국의 여행자들은 JR패스를 이용해서 열차로 홋카이도로 진입하거나 비행기로 바로 삿포로로 찾아가는 편이지[8] 이렇게 아오모리에서 배로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다. 아오모리 말고 오마와 하코다테를 오가는 페리도 있다.


세이칸 연락선 운항 마지막 날[9]아오모리역 풍경. 참고로 영상에 나온 핫코다마루는 아오모리역 근처에 가면 보존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5. 둘러보기

일본국유철도 전후 5대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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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구분 사고 일시 사고 명칭
철도사고 1951.04.23. 사쿠라기초 사고
해상사고 1954.09.26. 토야마루 침몰사고
해상사고 1955.05.11.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철도사고 1962.05.03. 미카와시마 사고
철도사고 1963.11.09. 츠루미 사고 }}}}}}}}}


역대 일본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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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colcolor=#000>사망사건명
2022년 4월 23일
26 카즈 1호 침몰 사고
2021년 12월 17일
27 2021년 오사카 빌딩 방화 사건
2020년 9월 2일
43 걸프 라이프스톡1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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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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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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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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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2,996 24 9.11 테러
2001년 9월 1일
44 가부키초 빌딩 화재사건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96년 2월 10일
20 토요하마 터널 붕괴 사고
1994년 4월 26일
264 중화항공 140편 추락 사고
1991년 5월 14일
42 시가라키 고원철도 열차 충돌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88년 7월 23일
30 나다시 사건
1988년 3월 24일
29 27 상하이 열차 붕괴 사고(1988년)
1987년 11월 28일
159 47 남아프리카 항공 295편 추락 사고
1986년 2월 11일
24 호텔 다이토우칸 화재
1985년 8월 12일
520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1985년 5월 17일
62 미츠비시 유바리 탄광 사고
1985년 3월 31일
26 세토선 카이요마루 사고
1985년 1월 28일
25 사이가와 버스 추락 사고
1983년 12월 7일
93 34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충돌 사고
1983년 9월 1일
269 28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2년 2월 9일
24 일본항공 350편 추락 사고
1982년 2월 8일
33 호텔 뉴재팬 화재
1982년 1월 6일
32 제28아케보노마루 침몰 사고
1981년 10월 16일
93 호쿠탄 유바리 신탄광 가스 누출 사고
1980년 11월 20일
45 카와지 프린스 호텔 화재
1980년 9월 9일
44 더비셔호 침몰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79년 11월 28일
257 24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1977년 9월 27일
34 일본항공 715편 추락사고
1975년 1월 1일
24 아오키호 버스 추락 사고
1974년 11월 9일
33 다이쥬오 요마루 침몰 사고
1974년 3월 3일
346 48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11월 29일
103 다이요 백화점 화재
1972년 11월 28일
61 일본항공 446편 추락 사고
1972년 11월 16일
30 호쿠리쿠 터널 화재
1972년 6월 14일
86 일본항공 471편 추락 사고
1972년 5월 13일
118 센니치 백화점 화재사건
1972년 3월 19~20일
24 후지산 대량 조난 사건
1971년 10월 25일
25 킨테츠 오사카선 열차 충돌사고
1971년 7월 30일
162 전일본공수 시즈쿠이시 공중충돌 사고
1971년 7월 3일
68 동아국내항공 63편 추락 사고
1970년 4월 8일
79 덴로쿠 가스 폭발사고
1970년 1월 24일
24 캘리포니아 호 침몰사고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69년 4월 15일
31 미 해군 C-121 추락 사고
1969년 2월 5일
31 반코 호텔 화재
1969년 1월 4일
31 보리바아마루 침몰 사고
1968년 11월 2일
30 이케노보만게츠죠 화재 사고
1968년 8월 18일
104 히다 강 버스 추락사고
1966년 11월 13일
50 전일본공수 533편 추락 사고
1966년 3월 11일
30 키쿠후치 호텔 화재
1966년 3월 5일
124 영국해외항공 911편 추락 사고
1966년 3월 4일
64 캐나다 퍼시픽 항공 402편 사고
1966년 2월 4일
133 전일본공수 602편 추락 사고
1965년 10월 7일
209 마리아나 해역 어선 집단 조난 사고
1965년 6월 1일
237 야마노 탄광 가스 폭발 사고
1964년 2월 27일
20 후지 항공기 추락 사고
1966년 2월 4일
133 전일본공수 60편 추락 사고
1963년 11월 9일
458 미이케 탄광 폭발사고
1963년 11월 9일
161 츠루미 사고
1963년 2월 26일
47 토키와마루 침몰 사고
1962년 11월 18일
39 제1 무나카타 호 침몰 사고
1962년 5월 3일
160 미카와시마 사고
1962년 5월 3일
28 히에이산 버스 추락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 사건명
1958년 8월 12일
33 시즈오카현 전일본공수 추락 사고
1958년 3월 7일
26 미 해병대 C-119C 추락 사고
1958년 1월 26일
167 난카이마루 조난 사건
1957년 4월 12일
113 제5 키타가와마루 침몰 사고
1956년 10월 15일
42 롯켄 열차 충돌 사고
1956년 1월 1일
124 야히코 신사 사건
1955년 7월 28일
36 하시호쿠 중학교 수난 사건
1955년 5월 11일
168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1955년 4월 16~17일
73 아베 광업 보타산 붕괴 사고
1955년 2월 17일
99 성모의 양로원 화재 사건
1954년 10월 8일
22 우치우마루 침몰 사고
1954년 9월 26일
1159 토야마루 침몰사고
1954년 9월 26일
35 이와나니 화재
1954년 2월 1일
35 홋카이도 미 해병대 C-46D 추락 사고
1953년 8월 15일
107 다이쇼이케 댐 붕괴 사고
1953년 6월 18일
129 타치카와 미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1953년 2월 14일
21 오카츠타마 화학공업 폭발 사고
1953년 2월 4일
80 신세이마루 침몰 사고
1952년 9월 24일
31 다이고타이요마루 조난 사고
1952년 4월 9일
37 일본항공 301편 추락 사고
1951년 11월 3일
32 오즈행 버스 화재
1951년 7월 15일
28 텐류가와 버스 추락 사고
1951년 5월 19일
42 오하라 극장 화재
1951년 4월 24일
106 사쿠라기초 사고
1950년 11월 7일
34 하시가와노 버스 추락 사고
1950년 9월 26일
23 미 해병대 C-54D 추락 사고
1950년 7월 26일
25 미 공군 C-47D 추락 사고
1950년 4월 21일
35 카타가와현 미군 C-54기 추락 사고
1950년 2월 11일
22 구마모토 버스 추락 사고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9월 22일
29 이노타니 대교 붕괴 사고
1949년 4월 30일
63 나타치 기뢰 폭발 사고
1948년 3월 31일
49 킨테츠 나라선 열차 추돌 사고
1948년 1월 28일
188 죠오마루 조난 사고
1948년 1월 5일
36 메이테츠 세토선 열차 탈선 사고
1947년 5월 29일
41 미 공군 C-54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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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사망자별 해상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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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비전시 사고만 기재함. 전쟁 중 일어난 선박 침몰은 제외.
<rowcolor=#ffffff> 순위 이름 날짜 사망자 수 사고 원인 발생 위치 비고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1 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 1987년 12월 20일 4364명도냐 파즈
11명벡터
선박간 충돌 타블라스 해협, 필리핀해 비전시 해상사고 사망자 수 1위
20세기 해양사고 중 최다 사망자
2 르 줄라호 침몰사고 2002년 9월 26일 1863명 과적
정비 불량
감비아 연안 21세기 해양사고 중 최다 사망자
3 스파이스 아일랜더호 침몰 사고 2011년 9월 10일 1573명 과적 잔지바르 해협, 탄자니아 연안
4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2년 4월 15일 1514명 빙산 충돌 북대서양
5 태홍호 침몰 사고 1822년 2월 5일 1500명추정치 암초 충돌 벨비더 여울, 남중국해 19세기 해상사고 중 최다 사망자
6 술타나호 침몰 사고 1865년 4월 27일 1168명 보일러 폭발 미시시피강
7 토야마루호 침몰 사고 1954년 9월 26일 1159명 악천후 쓰가루 해협
8 제너럴 슬로컴호 화재 1904년 7월 15일 1021명 화재 이스트 강
9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 침몰 사고 1914년 5월 29일 1012명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
2명스토스타드
선박간 충돌 세인트 로랜스 강
10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침몰 사고 2006년 2월 1012명 화재 두바 연안, 홍해
}}}}}}}}} ||


[1] 이 사고 이후 일본 기상청이 "토야마루 태풍(洞爺丸台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2] 나머지는 사쿠라기초 사고, 시운마루호 침몰 사고, 미카와시마 사고, 츠루미 사고이다.[3] 당시 세이칸 터널은 계획 되어 있던 단계였기 때문에 도호쿠 본선을 따라서 도쿄에서 아오모리까지 운행한 후 아오모리 역에서 연락선에 기차를 실어서 하코다테로 건너가서 하코다테에서 다시 삿포로로 올라가는 식으로 열차가 운행했다. 지금의 아오모리역하코다테역이 바다 방면의 두단식 승강장을 취한 이유는 이것이다.[4] 인류 최초의 위성인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건 이 사건이 발생한 지 3년 뒤의 일이다.[5] 애초에 철도차량을 실어나르기 위해서 이 배의 갑판은 정말 낮았다. 해수면에서 겨우 몇 십 cm 가량만 높았을 뿐이었다. 구형 카 페리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보인다.[6] 일기예보가 잘못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한데 엔진에 물이 들어갔는데 3시간 동안 멍때리고 있었던 것은 심각한 문제다.[7] 서울의 경복궁의 이름을 따서 만든 배다.[8] 그 유명한 JAL123 참사 당시 대파당한 B747-100SR이 고정투입될 정도로 가축수송이 이뤄지는 중이다. 현재는 B777-300, A350-1000이 다닌다.[9] 1988년 3월 13일. 당일 세이칸 터널이 개통했다. 어떤 의미로는 희비가 교차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