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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15:02:07

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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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형3. 역사
3.1. 선사시대3.2. 문명시대
4. 과의 비교5. 여담6. 관련 문서7.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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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투창()은 을 던지는 행위, 또는 그러한 용도로 만들어진 투척용 창을 일컫는 말이다.

2. 어형

조선 시대에는 투척용 창을 '표창'이라 불렀는데, 시대가 변하며 의미가 달라져서 오늘날엔 일본의 슈리켄이나 쿠나이 등 작은 투척용 날붙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영어로 javelin이라고 하며, 백병전 용도인 spear장창pike와 구분하는 말이다. 동로마 시기엔 dart도 투창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표창처럼 현대에 와서 작은 화살 따위를 일컫는 의미로 바뀌었다.

해양 생물을 잡는 용도의 창은 작살이라는 별개의 표현을 쓴다.

3. 역사

3.1. 선사시대

오늘날에는 스포츠로만 종종 이루어지는 활동이지만 인간이라는 종의 발전에 매우 혁혁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모든 동물들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강력하게 물건을 던지는 능력이 있다.# 영장류 중에는 팔힘이 인간보다 억센 것들이 많지만, 섬세하게 컨트롤하여 던지는 능력만큼은 인간이 훨씬 우월하다.[1] 그래서 인류는 오래전부터 사냥전쟁을 위해 던지는 도구를 이용해 왔고, 투창은 그 중 하나다.

던지는 행위가 인간의 진화적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인간 어깨의 가동영역은 투창을 사용하기 위함이라는 이유 외에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 체중을 원심력으로 싣고 투척할 수 있게 하며. 대흉근 이두근 사이 근육들이 세분화되어 있어 미세한 조정을 통해 궤적을 정밀하게 유도할 수 있다. 그리고 어깨의 위치가 낮아 어깨가 슬완골과 수평을 이루도록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면 팔이 견딜 수 있는 무게나 휘두르는데는 불리해서 지탱하거나 짓누르거나 앞발치기 공격이 매우 약해진다는 단점이 있어 거의 모든 생물에게 이러한 각도의 연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수평적인 어깨각도 덕에 힘을 온전히 전달하여 투척속도를 극단적으로 높게 올릴 수 있고 그 원동력으로 척추와 다리로 균형을 잡으며 체중을 싣고 던질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이족보행도 무언가를 던지기 위해 시작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이다.

투창의 역할은 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매우 절대적이었다. 활은 기원전 7000년 경에야 첫 유물이 발견되는 반면, 투창은 인간이 도구를 쓰기 시작한 매우 오랜 시절부터 쓰여왔다.

3.2. 문명시대


이 등장하면서 주도적인 투사 무기의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군용 병기로는 여전히 활약하였다. 로마 군단병들은 필룸을 한두 개 던진 뒤 근접전에 들어갔고, 비슷하게 아즈텍 제국의 전사들은 아틀라틀로 돌촉 달린 투창을 던지고 흑요석 무기로 육박전을 벌이는 것이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동로마 제국도 10세기까지 보병의 20~30% 정도는 투창으로 무장했다. 당시의 전쟁에서는 중무장한 병력끼리 백병전을 벌이는 비중이 높았고, 합성궁 계통의 강력한 원거리 무기가 없어 갑옷에 효율적인 투창의 활용도가 컸기 때문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경우 기후와 산지가 많은 지형의 특성상 궁병보다 알모가바르라는 투창병을 선호했고, 경기병 또한 히네테라 불리는 투창을 던지는 기병들을 양산하기도 했으며, 카탈루냐 용병들 또한 이러한 투창병들이 상당 부분의 비율로 차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아프리카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에서도 화약 무기의 전파속도 문제와 수렵 생활 비중 문제로 투창이 근세까지 정규 병장으로 유지되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17세기까지도 현역 병장으로 유지되는 기염을 토한다.

조선에서도 역시 투창이 사용됐다.[2] 방패를 든 등패수들이 장비하여 적의 전열을 흩뜨리는 용도로 사용했다. 그리고 적이 다가오면 창을 던지고 칼을 뽑아 백병전을 벌였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기병들은 말에 탄 채 속도의 이점을 살려 적군에게 창을 던지고 빠지는 히트 앤드 런 전술을 애용했고 화살을 거뜬히 튕겨내는 중갑을 껴입은 적을 죽이기 위해서도 창을 썼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여러 불편함 때문에 점점 투창이 작아지긴 했지만 끝까지 투창을 버리지 않았고 중세 말기에 전설적인 무용을 떨쳤던 카탈루냐 용병대도 투창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시대가 흐르며 더욱 발전한 투사 무기인 쇠뇌가 도입되자 투창의 용도는 크게 줄었고, 이후 화약과 총기가 널리 퍼지면서 투창은 군용으로는 자취를 완전히 감췄다. 오늘날에는 창던지기라는 육상 종목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육전에서는 이처럼 투창이 쇠퇴했지만 해양 생물을 잡는 창인 작살은 오늘날에도 애용되고 있다. 수중전용 총기에서 보듯 은 수중에서 쓰기가 쉽지 않으며 그물 등 다른 어획 수단도 대형 해양 생물을 잡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4. 과의 비교

위에서 보듯 이라는 대항마가 등장한 이후에도 활과 병행하여 쓰였는데, 두 무기는 약간 역할이 달랐다.

일단 활과 차별화된 관통력을 위하여 찌르기용 창보단 가볍지만 화살보다는 크고 무겁게 만들었다.[3]. 대표적인 투창인 필룸의 경우 길이 2m 이상에 무게는 최대 5kg 정도로 생각보다 상당히 무겁다. 고대부터 중세까지, '화살쯤은 가볍게 막던 방패와 갑옷이 투창을 맞으니 박살 나고, 몸통에 맞으면 죽었다' 등의 기록이 많다. 인류사에서 투창이 정말로 도태된 것은 훨씬 더 강력하고, 편리하기까지 한 이 등장하고서의 일이었다.

단점은 활에 비해서 꽤나 많다고 볼 수 있다.
  1. 활에 비해 사정거리가 짧다.
  2. 궤적과 투사체를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3. 화살보다 관통력이 강하긴 하지만 정도가 되면 소용 없다. 따라서 공성전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4. 의 크기가 꽤 되기 때문에 기습이 어렵다.
  5. 위와 같은 이유로 대량의 창을 휴대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이 세 가지 단점은 해전에서는 별 상관없었는지, 고대 전투에서 불화살 못지않게 불을 붙인 투창이 해전에 꽤나 쓰인 모양. 일단은 창은 전력을 다해 던지면 사람 한 명이 뽑기엔 버거운 경우가 많고 더군다나 목조선이 많던 시대에는 불을 붙인 창이 박혀있을수록 배의 수명도 위태롭다. 기습의 경우엔 애시당초 창을 던질 거리면 배는 충분히 근접했을테니 경계를 부실하게 한 게 아닌 이상 기습 자체가 불가능했고, 적재량은 배가 대신할 수 있었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역할은 대포가 발명된 이후 소멸하게 된다.

5. 여담

6. 관련 문서

7.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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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구에서도 보듯 무언가를 제대로 던지는 일은 단순히 어깨만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손목은 기본이요 허리하반신까지 모두 사용하는 전신 동작이고, 매우 정교한 자세 제어 능력을 요구로 한다. 게다가 정확하게 공의 궤적이나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포수 쪽으로 던져야 한다.[2] 상술했듯이 조선에서는 투창을 표창이라고 불렀다.[3] 투창에서 자루 부분을 빼서 숨기기 쉽게 만든 뼘창이나 유엽비도 등 화살보다 작은 놈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살상력 확보 목적으로 금속을 많이 넣어 무게를 무겁게 만들기 때문에 화살보다는 무겁다.[4] 원래는 저 행사가 현대문물 반입을 제한하는 행사라, 드론을 띄운 것 자체가 비매너였다고 한다.[5] 잘 알려져있는 대로 오늘날 수중에서 지배적인 병기는 어뢰인데, 이는 일종의 로켓으로 근대에야 제작이 가능해진 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