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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2 22:12:34

리인액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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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중세시대 전투재현 행사 한국의 재현 행사 중 일부[1] 일본 마츠리 도중 갑주를 입고 행진하는 아이들

1. 개요2. 유래3. 분류 및 유사 계열4. 현황
4.1. 서구
4.1.1. 문제점
4.2. 일본4.3. 한국
4.3.1. 국내 리인액트먼트 팀4.3.2. 문제점
4.3.2.1. 외부 문제
4.3.2.1.1. 대중인식4.3.2.1.2. 국내법4.3.2.1.3. 비용 관련
4.3.2.2. 재현가사회 문제
4.3.2.2.1. 재현성4.3.2.2.2. 정치성4.3.2.2.3. 사회성
5. 사건사고6. 관련 문서

1. 개요

Historical Re-enactment[2]

리인액트먼트, 우리말로는 역사적 재현 행위 정도로 옮길 수 있다. 리인액트먼트의 참가자를 리인액터(Re-enacter)라고 부르는데, 이는 재현자 또는 재현배우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2. 유래

리인액트먼트 및 그와 유사한 행위는 그 뿌리가 상당히 깊다. 예를 들어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에서의 검투경기가 그렇다. 검투경기는 로마의 시민들에게 로마가 겪은 다양한 전투를 보여주고 잡아온 포로를 죽은 영웅들에 바친다는 의미로 시작하였는데, 검투사의 병종이 로마가 싸웠던 적 민족의 이름이었다는 점에서 재현에 가깝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시대 기사의 토너먼트 경기 역시 리인액트적인 테마를 갖고 열리기도 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의 고딕 부흥과 낭만주의의 유행 덕분에 중세 마상창경기를 재현하거나 과거의 큰 전투를 재현하고 기념하는 행사가 각국에서 실시되었는데, 이것을 근대적 리인액트먼트의 시초로 보고 있다.

현대의 리인액트먼트는 리인액터 그룹이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대규모 기념 이벤트에 참여하거나 주최하는 일도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가 아마추어의 취미로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취미로서의 리인액트와 공공 이벤트로서 개최하는 역사 축제 간에는 약간 차이가 있다.

3. 분류 및 유사 계열

대체로 위로 갈수록 역사적 사실의 재현에 충실한 편이며, 아래로 갈수록 오락성이나 상업성이 중시되는 편이다.

4. 현황

4.1. 서구

소위 양덕의 위엄이라 부르는 것이 여기에도 해당된다.


캡션

예를 들면 이런 거(…). 심지어는 당시에 사용한 군악과 구령(고전 그리스어)까지 재현한 것이다.

리인액트 문화가 자리잡은 서구의 경우, 기본적으로 '재현'으로 참전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태도를 전제한다.[3] 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남의 취미에 간섭하지 않는 개인주의적 배려도 크게 한 몫한다. 사실 리인액트는 당대 역사 연구나 유물·골동품 수집 등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면 클래식 음악 등에 비해 결코 그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서구에서 리인액트에 대한 대접이 의외로 좋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매년 미국이나 유럽 곳곳에서는 대규모 재현행사나 경연대회가 개최된다. 코난 오브라이언의 코난 쇼에서 이를 소재로 촬영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남북전쟁(미국내전)을 주제로 한 리인액트먼트에 참가한 것. 물론 코난 쇼답게 여러 가지 개드립으로 가득하다. 영상 1 영상 2(한국어 자막)

실제로 미국에선 남북전쟁이 리인액터계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은데, 2013년 게티즈버그 전투에선 1만명 넘게 동원한 적도 있다.

꼭 선진국이나 대규모 기업이 개최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걸어서 세계속으로 벨라루스편을 봐도 동유럽의 작은 나라 벨라루스에서 600년 전의 그룬발트 전투(#)나 나폴레옹 전쟁 러시아 원정(#) 등 여러 전투를 재현하는 행사를 촬영했는데 전자는 참가자들이 각자 준비해온 플레이트 아머의 퀄리티가 척 봐도 상당하고 후자는 폭탄을 뻥뻥 터뜨리고 기병대까지 등장하는 등 행사 규모가 꽤 큰 것을 볼 수 있다.

전쟁 영화에서 군인 역할에 대규모로 초빙·동원되기도 한다. 제일 좋은 예로써 자주 인용되는 영화로는 1994년작 <게티즈버그>가 있다. 미국 전역에서 수천 명의 리인액터들이 몰려들었는데, 자기들이 더 신나서 보수 없이 자원하여 영화제작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 영화 후반부의 후덜덜한 전투 장면은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다만 규모 면에서는 비범하지만, 아무래도 직업 군인이나 전문 연기자가 아닌 아마추어들이어서 그런지 전투장면의 생동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특히 백병전 장면은 부상 사고 우려나 비싼 장비 상할까 걱정하는 때문인지 어기적거리는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영화사가 보상을 약속하거나 장비를 지급해주지 않는 이상 제작사가 제작비 아끼는 대가로 치러야 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진짜 참전자들의 전우회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참전자들을 추억(?)에 잠기게 해 주는 아들/손주뻘 되는 이들의 재롱잔치 역할도 한다. 일례로 2차대전 미 육군 공수부대 소속 참전자 전우회를 위해 관련 리인액터들이 전우회관 앞뜰에 강하했다(…). 일부 참전용사들은 리인액트먼트들의 완벽한 강하에 대해 "우리는 엉덩방아 찍으면서 착지했어" 라며 꾸중 아닌 꾸중을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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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이 세계제국으로 영토를 넓힐 수 있었던 비결

규모가 큰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하다 보면 별개의 성격을 가진 리인액터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경우도 있는데, 위 짤방처럼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다.

리인액트먼트의 영역에 포함되는지는 애매하나, 중세 기술력만을 사용하여 성을 건축하는 사례도 있다. 상술한 분류에 따르면 역사적 재현이나 리빙 히스토리에 해당할 것이다.
1820~60년대의 남부 음악들을 그 시기의 스타일로 연주하는 리인액트먼트 밴드 2nd South Carolina String Band도 존재한다. I Wish I Was in Dixie의 연주 영상.

4.1.1.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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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친위대의 군복을 입고 리인액트먼트 클럽 멤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미국 공화당 후보 리치 이오트(우측 2번째). 2010년에 더 애틀랜틱(The Atlantic) 지에서 공개했다. 이오트는 이 사진 하나 때문에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장났다.
그들[4]은 나치 유니폼을 입고 전투를 재현하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교육적"이며 역사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방어한다. 이는 이오트[5]도 마찬가지다. 이 방어 논리의 문제점은 바로 단정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 재현 활동은 나치들에 관한 가장 두드러진 역사적 진실인 홀로코스트를 경시(downplay)하거나 쉽게 무시해버리기(simply ignore) 때문이다. 나는 이오트가 활동했던 비킹(Wiking) 클럽의 웹사이트[6]를 꽤 오래 살펴보았는데, "홀로코스트"나 "유대인"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7] 물론 나치들이 일부 잘못을 저질렀다는 형식적인 경고문은 있었다. 하지만 그 클럽에서 말하는 "역사"의 주안점은 무장친위대원들이 세운 전공들을 영광스럽게 묘사하고 그들이 벌인 잔혹 행위들을 변명하는 데 할애되고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내가 실제 학계의 학자들을 언급하자 다수의 회원들이 나를 비난(chastised)했다는 것이다. "승리한 측의 역사가들은 항상 그들이 보는 대로만 역사를 쓰는 법이다."라는 식이었다. 그리고 숲 속에서 진지하게 군인들을 연기하는 자신들이야말로 나치즘에 대한 진정한 권위자라고 주장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되는 역사 왜곡이다.
- 더 애틀랜틱(The Atlantic) 지의 편집장 조슈아 그린(Joshua Green), 2010년의 칼럼 "나치 리인액트먼트의 문제점은 무엇인가(What's Wrong With Nazi Reenacting)"에서.
"나치에 의해 완전히 파괴당했던 유럽에서,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군의 군복을 입고 그들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독일 군대가 히틀러를 위해 점령한 땅에서 이것을 나치가 저지른 집단학살이나 전쟁 범죄로부터 분리할 수는 없다. (독일군 리인액트 클럽들이) 극우적이거나 극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역겨운 농담(sick joke)이다."
- 2022년, 영국의 유대인 시민단체인 커뮤니티 시큐리티 트러스트(CST)의 정책국장 데이브 리치 박사가 독일군 리인액트 단체들에 대하여 남긴 비판.

서양에서도 리인액트먼트에 대해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슈츠슈타펠이나 코만도, 심지어는 현대의 특수부대 같은 엘리트 그룹의 리인액트를 하는 부류 중에는 밀리터리 베테랑인 양 행동하지만, 실제 베테랑들이 보면 병정놀음이나 하는 가소로운 풋사과놈들인 경우도 많다. 승전기념행사 등의 공공 이벤트에 적극 참여하여 봉사하는 모범적인 그룹과 준 프로급에 도달한 고수도 있지만, 리인액터는 거의 대부분 실제 프로가 아니며 리인액트먼트는 어디까지나 취미일 따름이다. 그리고 일부 현역 군인들은 피땀흘려 따낸 훈련기장과 부대패치를 리인액터들이 멋대로 달고, 민간인 게이머 주제에 마치 자신들이 실전에서 피흘리는 특수부대원인것마냥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령 2차 대전 참전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재현 수준에 대해 평가해달라는 리인액터들에 대해 "너무 뚱뚱하다"라며 되려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8]

그 외에도 역사적, 정치적 문제에 깊게 연관된 경우도 다수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국방군나치 친위대남북 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을 재현하는 팀들의 경우 역사 왜곡과 정치적 극우주의 운동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부분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상의 범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경고문을 웹사이트 대문에 달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법적인 문제에 얽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걸어 놓은 면피용 문구일 뿐이다. 실제로는 나치와 남부연합의 역사적 범죄 행위에 대해 변호하는 이들이 다수다.

4.2.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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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은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장으로 유명한 기후현 세키가하라에서 열린 세키가하라 축제의 한 장면이다. 2016년 대하드라마 사나다마루에서 이시다 미츠나리 역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배우 야마모토 코지가 축제 리인액트먼트에 미츠나리 갑주를 입고 참여하기도 했다.# 우측은 보신 전쟁 당시 막부측 번들이었던 도호쿠의 오우 열번 동맹을 재현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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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센다이 아오바 마츠리에서 센다이를 거점으로 삼았던 조상 다테 마사무네의 갑주를 후손 다테 야스무네가 입고 행진하는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이나 시마즈의 거점이었던 가고시마에서는 시마즈 요시히로시마즈의 퇴각을 기념하는 의미로 갑주를 입고 행진하는 묘엔지마이리(妙円寺詣り) 등 주로 축제에서 많이 행해진다.

4.3. 한국


캡션

- 수문장 교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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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인들의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국군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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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속촌에 등장한 스파르탄 삼선슬리퍼가 거슬린다.

해외와 마찬가지로 국가기관 주도로 진행되는 행사와 동호인들의 취미로 나눌 수 있다.

국가 주도 행사의 예로는 6.25 전쟁에 관련, 지평리전투 낙동강 전투 춘천지구 전투. 재현 행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 밖에도 서울의 여러 고궁의 수문장 교대식, 국군의 날 행진[9], 3.1 운동, 4.19 혁명, 6월 항쟁, 명량 해전, 한산도 대첩 등의 재현행사 등이 있다.

동호인들 주도의 리인액트먼트 행사는 에어소프트 규제가 심한 국내 사정상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플래툰 컨벤션 등의 행사에서는 심심치않게 다양한 분야의 재현가들을 볼 수 있다.[10] 또한, 현재 대외적으로 가끔 플래툰 등의 관련 언론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국내의 모 리인액트먼트 팀의 행사는 활발한 수준에 접어들고 있다.[11]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던 초창기(1990년대 중반)에 비하자면, 점차 저변이 확대되어 가는 것이라 보아도 좋겠다.

4.3.1. 국내 리인액트먼트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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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 문제점

4.3.2.1. 외부 문제
4.3.2.1.1. 대중인식
우리나라에서 리인액트먼트를 쉽게 시행할 수 없는 한국만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근대 이전 시대라면 그런 논란이 거의 없지만, 이후라면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오늘날까지도 몹시 민감한 주제가 많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제강점기한국 전쟁 리인액트먼트를 하자면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다. 다음은 시대별로 나열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부마항쟁이나, 1979년 12.12반란 사건, 1980년 5월 18일부터 있었던 5.18 민주화운동/학살으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다. [20]
4.3.2.1.2. 국내법
휴전 상태인 한국의 특성상 군용품에 적용되는 엄격한 법적 규제로 말미암아 법에 저촉되지 않고는 정확한 재현이 불가능하거나 비정상적인 유통경로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현용 장비들은 한국의 법규에 가로막혀있어[24] 재현이 불가능하다. 게다가 오래된 장비라도 수사기관에서 자의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단속하는 경우가 있어 수집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3년에 베트남전 당시 군장과 군복을 거래하던 이가 경찰에 단속된 적이 있었다. 당사자는 이미 현용 군수품이 아님을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결국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 공소권 없음으로 사법절차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당사자가 받은 고충은...[25][26]

군인의 모습을 재현할 때 필수적인 '총기'도 문제다. 국내법상 일본 등에서는 소지 가능한 화약식 모델건은 물론 무가동 실총[27]마저도 소지가 불가능하다. 에어소프트건을 사용하더라도 모의총포 규제를 피해가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도 사정은 더 나은 전근대 시대라도 도검류나 석궁 등도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관련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휴전 중인 국가라는 특성 때문에 북한, 소련[28] 등 적국 군복이나 군장, 상징물 등을 소지 또는 착용하면 국가보안법으로 문제될 것 같지만 의외로 적국의 사상을 찬양하는 게 아니고 비판하기 위해 수집하는 것이라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밑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법 해석 자체가 수사기관 유리한 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수준이기 때문에 너무 대놓고 밖에 입고다니는 것은 주의하는 것이 좋다.
4.3.2.1.3. 비용 관련
원래 모든 취미는 돈이 드는 것이 사실이고 취미를 즐기려면 경제적인 기반이 갖춘 상태에서 하는 것을 권장한다.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은 미성년자나 20대의 경우 알리 익스프레스와 같은 중국 직구 플랫폼을 이용하여 구입해서 갖춘다고 해서 딱히 뭐라할 이유도 없고 동대문의류시장에 가서 원단 하나하나 그 당시 재현 기준에 맞춰어 수제작을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해서 뭐라고 할 이유도 없다.

리인액트먼트라는 것은 각자가 알아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면 되는 것이지 하나하나 규정을 만들어가며 "어떤 물건을 꼭 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1000%확률로 매니아를 가장한 업자이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의 정성과 노력으로 취미를 즐기면 되는 것이지. 결코 서로 비하의 수단으로 소모되고 싸움만 벌이면 그 어떤 사람들도 이 취미에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안그래도 무기나 총을 들고 안좋은 이미지가 박히기 쉬운 대한민국에서는 사람들간의 악감정을 가져봐야 좋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예시로 들자면, 어느 메이커에서 나온 에어소프트건도 실총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고 어차피 껍데기만 실총과 같은 사이즈의 장난감총이거나 모형일 뿐이다. 그런데 거기다가 각인이 뭐가 잘못되었고를 따져봐야 어차피 사람들은 각인따위 공을 들여서 보지 않는데, 서로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 뿐이다.
4.3.2.2. 재현가사회 문제
4.3.2.2.1. 재현성
리인액트먼트는 역사를 재현하고 기리는 행위인데, 몇 가지 문제로 그러한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역사 연구의 문제와 그에 대한 접근, 그것을 다루는 태도에서 기인한다.

우선 시대적으로 특정 시간대에 재현활동이 편중되는 문제가 있는데, 특히 한국사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근·현대나 조선 시대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가까운 시대일수록 현 시점과의 접점이 많고 그만큼 관심도가 높은 점, 그리고 과거로 갈수록 사료를 찾기 어려워진다는 점 등이 작용한다. 심지어 근현대라도 대내외적으로 부침이 많았기에 생각보다 자료가 부실한 경우가 많다. 난리통에 소실된 경우도 있었고, 국내외 여론을 의식하여 조직적으로 은폐된 사례도 많았다.

그나마 관련 연구들이 진행되어 2000년도 이후부터는 전근대에 관해서도 여러 자료가 축적되고 간행물로도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역사에 대한 리인액터들의 무지와 부정적 심상이 강해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재현활동을 하고는 싶어하면서도 역사를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잘 모르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역사를 배운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사진판독학 개론 수준의 비전문성을 보이고 있다. 그 역사를 배우는 사람은 극히 적을 뿐더러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취향대로 장비를 세팅 및 설정하고서는 거기에 합리화하기 위해 논리를 지어내는 식이다.

리인액트먼트에 관하여 포용하고 다 받아들일지 아니면 본격적으로 제대로 하는 재현팀이 될지 끝이 안 나는 싸움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공부가 안된 상태에서 하다보니 본인들도 고증에 대해서 지적하면서도 정작 그것도 틀린 경우가 많다.

결국 전문적이지 않은 집단들이 모여 있으니 비판을 받아도 기분상해죄로 팀끼리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하고 주제가 중첩된 재현팀이 있다면 도토리 키재기 식의 서로 자기들이 옳다는 식으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지금이야 인터넷이 발달돼서 번역기도 돌릴 수 있어서 정보의 취득이 쉽지만, 불과 2010년대만 하더라도 서로 싸우기 위해서 원로 밀덕 어르신들을 모셔다가 싸움 붙이기 급급했던 흑역사들이 있다. 문제는 그 원로 밀덕도 같은 이유에서 전문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보니 잘못된 정보가 전파가 되었었고, 그걸 신봉하는 다음 세대에 영향이 있어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하는 경우도 생긴다.[30]

해결방법은 "내가 생각하는 주장이 항상 틀릴 수 있다."라는 것을 인지하고서 확실한 출처를 찾아서 제시하는 것이다. 원래 어느 분야든 자기가 좋아하거나 전공으로 삼는 부문만 전문성이 있지 모든 걸 다 알기 어렵거니와, 그 좁은 분야조차 대학원 수준으로 가면 생각보다 더 많은 세부전공으로 나뉘어질만큼 역사는 그렇게 겉핧기 식으로 배운다고 해서 배워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출처를 제시할 수 없다면 무슨 말을 한들 그럴듯할지언정 아무 공신력도 없는 수준 밖에 안 된다. 설령 나름 출처를 달더라도 책 한두 권에 의지해서야 그 분야 전체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여전히 얕은 지식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유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활동이 자기 지식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이해를 높이고 리인액트먼트라는 취미를 더 잘 즐기기 위한 활동으로 대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나마 좀 더 진지하게 서적들에 접근하려는 경우에도 뜻밖의 난관이 남아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지다보니 역사 사료의 맥락과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부 단어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는 도서 플랫폼의 조사 집계에서도 나오는데, 대체적으로 책을 안 읽는 세대가 2030세대로 90년대 초반생부터 2000년도 중후반을 아우른다.

이미지와 영상만 접해서 성장한 세대들은 SNS에서 누군가 선동만하면 다 낚이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가령 고종의 청군 파병 요청과 외세의 개입논란의 경우 청군 파병 요청을 안 했다고 퍼트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전같으면 학계에서까지 굳이 언급할 일도 아니었을 일인데 인터넷 시대에 잘못된 정보라고 해도 파급력이 강력하다보니 한국사학자 연구자들이 수고롭게 반박하는 추세이다.

이 또한 잘 알고 하면 문제가 없는데, 자기 마음대로 재현하고 싶은 마음과 자의적인 정치관으로 역사를 왜곡 해석하는 순간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다. 리인액트먼트는 역사성을 지니는 취미이므로, 이 취미를 시작했다면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4.3.2.2.2. 정치성
상기 서구권의 문제점과 비슷한 문제이다. 사정이 비슷했던 과거의 대체역사물 향유층이나 밀덕 등 관련 집단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던 현상으로, 극우/ 수구 성향 색채를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때는 이쪽도 영미권이나 프랑스, 러시아 등 정보의 저변이 넓어지기 전에는 독일과 일본에 대한 선호나 애호가 높았고 더 나아가 제국주의국수주의, 심지어 파시즘의 영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제국주의의 경험이 있던 국가들은 1차 세계대전 승전일이라든가 러일전쟁 100주년 기념 퍼레이드등 그들이 이긴 전쟁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명하기 때문이다.

1990년 PC 통신 시절에서 그대로 정체된 독뽕, 일뽕 망령 매니아가 많은 편이다. 과거엔 멀리 유학을 가지 못하는 한계점도 있었고[31]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다오는 편이라 일본에서 발간된 책들을 번역본들을 출판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나 독일군 그리고 미군에 대한 자료취합이라든가 지식은 전문가 급으로 성장한 것도 일본 번역판을 들여오면서 성장한 것이 현재 우리나라 밀리터리 리인액트먼트에도 영향을 끼쳤다해도 과언이 아니다.[32]

2000년도 인터넷 보급이 이후, 유용원 군사세계,[33] 디시인사이드 군사갤러리, 총기갤러리, 에어소프트건 갤러리 등지에서 군사 매니아 논객으로 활동하면서 다수 군쪽 인사와 인맥에 포진되어있고 그러다보니 성향도 진보가 아닌 보수 성향의 인사들이 20대에서부터 50대까지 포진해있는 편이다.

삐뚤어진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말미암아, "한국인은 한국군 코스프레만 해야한다."라든가 소련 및 동구권의 무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매도되는 경우마저 있다.[34]

결국 인신공격으로 공격하기 힘드니 취미를 빌미로 공격하는 경우에 해당하는데,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 파고들어 하면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에 대해서 남의 눈치나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도 인생으로 볼 때 현명하지 않다.
4.3.2.2.3. 사회성
다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서울 코믹월드 등지에 밀리터리 코스프레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일부 리인액트먼트 취미가들은 단지 재현 행사가 아닌 코믹 등에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수준 낮게 보는 경우가 많다. 몇몇 밀리터리 동호인들이 서코에서 사고를 쳐댄 덕에 이미지가 안 좋아진 걸 감안해도, 상당수의 밀리터리 동호인이 오덕질을 같이 향유하는데다 겸사겸사 눈치 안 보고 군장 입고 돌아다녀 볼 기회라 코믹에 나가는 것임에도, 무슨 리인액트같은 상급 단계에 진입한 사람이 아직도 애들마냥 코믹 같은 데를 가냐는 식으로 비하하는 꼰대들이 꽤 많았었다. 심지어 한때는, 코믹으로 입문하고 리인액터로 승급하는 식으로 무슨 절차가 있는 양 여기는 경우도 많았고, 안 그래도 싸움질 많은 동네에서 리인액트 지상주의자(?)와 코믹 참가파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고증을 철저하게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부담을 느낀 재현자들이 소극적으로 활동하거나 활동을 중단하기도 하며, 혹은 서로 "밀스퍼거"나 "역스퍼거" 등으로 매도하며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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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하나 꼽자면 총기 파지법 훈수를 들 수 있다. 대체적으로 군필자가 미성년자나 여성 밀코어 상대로 벌어진다. 그러나 사격술 및 그 하위 문서들이나 전진무의탁 등의 문서에서도 서술되듯, 사격 자세와 파지법은 종류가 매우 다양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한국군에서 교육하는 내용이 부적절할 수도 있다. 재현자들의 참여의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재현을 계기로 해당 지식과 맥락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면서 관심을 환기하는 데에 의의를 두어야지 비로소 가치있고 유익한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 등 서양의 리인액터 단체들은 참전자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역사와 그 당시의 사회상을 연구하는 아주 바람직한 취미를 향유하고 있으나, 한국의 경우 자국 편향적인 역사인식을 애국심으로 보는 경우가 있어서 우리나라에 대해 좋게 기술하고 봐야하는 풍조가 있는데, 이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리 적절치 않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최대한 중립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러한 시각으로 보는 성향이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다. 서양조차 영국백인우월주의 단체가 커밍아웃한 채 운영하는 2차대전 군장 재현품 판매상이 있었을 정도다. 근데 열등한 황인종인 코리안이 물건 주문해도 친절하게 잘만 보내줬다. 돈 앞에선 이념은 내다 버리는 것임을 인증했다.

이러한 마인드를 기반으로 이 취미계 내외에 존재하던 기성세대들은 가뜩이나 유입이 적은 이 취미계에 들어오려는 뉴비들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숙지해야 할 점은, '옷'은 그저 옷일 뿐이며, 그 '옷'을 입는다해서 어떤 정치적인 편견이나 사상이 없음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앞서 언급한 기성세대들은 군복만보고 당사자의 생각이나 의견은 묻지 않고 곧바로 배척하는 섣부른 행동을 한 적이 있으며, 이 행위로 인해 이 취미계가 소위 '그들만의 리그'의 양상을 띔과 동시에 뉴비가 잘 끼어들지 못하는 상황도 만들었다. 자신들 보기에 고까우면 차라리 하지 말라는 양상 사실상 '반사회적인'이라는 것이 앞서 말한 상황에 기인한다. 이에 대해 의혹이나 반론을 제기하면 한국인 아니냐?' 라고 나오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다. 극우 일본인이 자신들의 뜻에 반하는 사람들에게 '너 재일이지!'라고 하며 서로에게 비뚤어진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과 똑같다.

만약 이 취미를 이끌어 갈 청소년 계층마저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리인액트의 미래는 영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또한 일본이 약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 그랬듯이 베트남 전쟁에서와 같이 타국민에 대해 피해를 입혔던 적이 있있다. 가령 라이따이한이라든가, 촌락에 대한 학살이라든가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의 태도를 찾아보는 것이 영 힘들다. 애당초 이를 쉬쉬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미군도 중동 지역에서의 포로 학대와 파괴를 일삼았고, 2010년대까지 툭하면 미국에서도 전쟁범죄 문제로 특보가 나고 그랬다. 정 궁금하면 구글링을 해보자, 상당한 혐짤이 검색될 것이다. 70여 년 전 나치의 피해자인 유대인 집단들도 오늘날에는 팔레스타인 학살에 동참하고 있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11세기 때 시작한 십자군 원정도 최초에는 성스러운 교황의 군대라는 명목에 조직되었지만, 이들은 악랄한 만행들을 저질렀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어느 국가의 군대든 깨끗하고 정의로운 군대는 없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것처럼 전쟁은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군은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이고, 전쟁의 정의는 "폭력"으로 자기 쪽의 정치적 입장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명예와 의무로 포장되지만 군이 정치 목적 폭력 집단이란 것은 변하지 않으며, 당연하게도 정치적 목적이 끼면 더러운 것들이 수반된다.

다만, 한국에서 "왜 똑같이 나쁜 놈들 옷인데 나치 군복은 되고 일본 군복은 안 되냐?"와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은 특정 지역의 해당 피복 착용 집단에 대한 감정상의 차이를 무시한 행위다. 당장 독일, 프랑스만 해도 구 나치에 직접적으로 데여 본 경험이 있는 반면, 반대로 일본과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의 전투 외엔 별 악연이 없다. 반대로, 한국인들에겐 나치는 그 옷 입고 한반도에 발디뎌 본 이들도 없는 이들이고, 일본군은 한국을 직접적으로 식민통치한 식민제국의 군대이다. 양국에서 이들에 대해 느끼는 증오심 등 불편한 감정의 정도가 같기를 바라는 거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다. 프랑스 육군 외인부대 복장이 알제리인이나 베트남인들에게 거부감을 주니 현지에서 입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국 밀리터리 행사에서 같은 이유로 입지 말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에스토니아발트 3국처럼 소련에 더 많이 데여서 무장친위대 외인부대 입대자를 애국자로 대하는 곳도 있다. 즉, 현지의 역사적 배경 등을 무시하고 "얘나 쟤나 똑같이 나쁜 앤데 왜 얘 건 냅두고 쟤 건 까냐? 모순 아니냐?"고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는 소리이다.

일부 위처럼 걔나걔나 다 같이 나쁜 놈이니 금지하려면 다 같이 하든가 식의 논리를 내세우는 이들이 또 주장하는 것으로, "일본에선 광복군 재현자도 나오고 심지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다룬 동인지도 내는데 한국은 왜 속좁게 일본군 한다고 욕하냐"는 소리가 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식민지로 지배당했던 이들이 지배했던 이들 및 그 상징물을 보는 시각과, 반대의 경우는 당연히 이에 대한 감정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였던 이들이야 자기가 억눌렀던 대상들이 저항을 하기 위해 만든 단체를 연구하든 재현하든 하는 것이 그 관계가 해제된 뒤엔 한 두 세대만 걸러도 별다른 거부감이 남지 않는 반면, 피해자는 몇 세대를 가도 그 증오심이 남기 쉬우며 특히 가해 당사국이 과거 청산과 반성 및 재발 태도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더 심화된다. 한국에서 구 일본군 재현자가 고운 시선은 못 받아도 지금처럼 한국에서 할 짓이 못된다는 정도의 눈치까진 안 받을 것이다.

결국 이 취미 자체가 이러한 것들을 재현하는 것인데, 자신들과 다른 집단 소속원이라면 제국주의일뽕이네, 빨갱이네, 나치뽕이네 까며 자기들 취미바닥 내부에서 하루가 멀다않고 지들끼리 분란과 깽판을 치고 있으니, 이것이 이 취미로 유입되는 뉴비가 사라지는 제1순위의 이유이고, 기존에 하던 사람이 떠나가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제대로 개념을 갖추고 재현을 하는 몇몇 재현팀은 재현 협회를 맺고, 리인액트먼트 행사를 열고 일본을 비롯한 리인액트먼트 선진국과 교류하는 등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밀리터리 코스어들과 상호 교류가 전혀 없고, 그들과는 달리 폐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다 국내 재현가 인구가 대단히 적다보니 한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이친목질이 대단히 만연해 있으며, 이로 인해 신규 인원의 유입이 상당히 버겁다. 다만, 이는 그냥 특정인들끼리 마음이 잘 맞아 더 자주 어울리고, 자기들이 평소 행실이 개판이라 미운털이 박혀 배척당하는 이들이 이를 친목질이라 멋대로 규정하고 매도하는 경우도 허다하기에, 정말 친목질인지는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취미의 특성상 오프라인에서 몸을 부대끼는(…) 일이 다반사인데, 사람 성격상 좀 믿음직한 사람이랑 어울리고 싶어하는건 당연한 심리다. 그리고 친목질한다며 비웃던 인간들도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친목질을 일삼고 지들끼리 싸우고 분열하는 악습도 반복되고 있으며, 새로 이 취미에 발담그는 이들에게 무슨 선배라도 되는 양 훈수를 두는 선비질을 일삼고 있다.

그 결과 위에서 언급한 문제에 대한 자정노력은 대단히 부족하다.

과거 국내 재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청소년층은 이제 성인으로 성장하였고, 군 복무를 하던 이들도 대부분 전역하였다.[39] 활동이 활발했던 핵심 멤버들도 거의 대부분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그나마 유지되던 재현팀이 통폐합되고 대대적인 조직 쇄신이 진행되는 등 매해를 넘기기가 위태로운 상태다.

앞에서 서술하였듯 국내 재현가 인구 자체가 대단히 적어 재현 팀의 팀원들이 돌려쓰기(…) 급으로 이리저리 양다리 걸친 사례가 많은 것을 볼 때, 국내의 리인액트먼트의 미래는 결코 밝지는 않아 보인다.

물론 이런 문제는 리인액트 문화 자체가 성숙하고 저변이 넓어지면 장기적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리인액트라는 취미 자체가 역사를 공부하는 취미이다. 취미 향유층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관심 많고 의지 충만하며 공부 말고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싶어 하는 연령대의 유입이 필수적인데, 교육 과정에서 역사 교육의 비중이 대폭 줄어들고, 심지어 정반대로 비뚤어진 역사적 인식까지 만연해 가는 마당에 제대로 된 역사에 제대로 된 흥미를 가지고 다가 올 사람은 많지 않다. 저변이 늘려면 젊은 세대와 뉴비가 들어와야 하는데, 제대로 재현하고 외국 단체와 교류하려면 흥미뿐만 아니라 열정과 외국어 독해와 구사 능력, 재력 또한 상당해야 하므로 그런 게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뉴비, 특히 가난한 젋은 층에겐 기존 재현가들은 더욱 다가가기 어려운 벽이 된다. 그렇다고 이미 그런 것을 갖추고 있는 사람은 이미 기성세대로서 리인액트 문화에 관심이 없거나 영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아주 끊기지는 않고 있지만, 진입에 성공하고 유지하는 사람이 희소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제 불황 등의 원인으로 세계적으로 리인액트먼트 취미 애호가의 수가 줄고 있는 추세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다. 서구권의 여러 주요 밀리터리 행사들이 점차 규모가 줄거나 아예 열리지 않는 등,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쪽 역시 이 취미를 시작하는 이들이 없지 않으나, 고령 등으로 죽거나 관두는 이들이 더 많아서 그 규모가 줄고 있다. 명맥이 끊길 수준은 아니지만, 여튼 한국이나 이보다 규모는 크지만 일본 등도 역시 이 취미가 하는 사람만 하다시피하고, 그 사람들이 없어지면 빈자리가 잘 안 채워지는 건 똑같다.

5. 사건사고

===# 2010 G20 서울 정상회의 사태 #===
가뜩이나 열악한 여건인데, 총기, 도검 등의 모조품에 대한 법규마저도 지나치게 가혹한 한국의 경찰, 법무 행정까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0년 10월 22일의 사례가 있다.

2010 G20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한답시고 경찰 단속이 강화되었다. 물론 테러 방지를 위한 거니까 취지는 좋다. 실제로 부산에서 모 폭력조직이 러시아제 물건을 다루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그에 부속되는 물건의 유입 경로를 파악하던 도중에 국내의 모 리인액터가 경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재현가들은 이런 문제로 수사를 하는 건 늘 있던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투덜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제대로 뒤집어 지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으니...

경찰이 MRE 발열팩[40]을 폭발물이라고 해석하여 재현가들 중 MRE를 먹은 사람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뭐병. 민수용 발열 전투식량 다 압수할 기세 그럴 거면 뻥궁도 압수해야지!

물론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된 The Colony에서 MRE의 발열팩을 이용해 위협용 도구를 만드는 법이 나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폭발음을 내서 상대를 혼란시키기 위한 거지 살상용은 아니었다. MRE가 폭발적으로 뜨거워진다고, 약간의 수소가 발생한다고, MRE에 들어 있는 성냥을 뇌관이라고 억지를 부린 것이다.

나아가 현 정권 전복을 위한 대민선동과 비인가 불법무기 소지 및 테러용의 폭발물 제조혐의로 베트남 전쟁 이후의 모든 군장과 전동건을 압수하여 파기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용품 및 소련군 군장은 압수대상이 아니었지만. 경찰 공식 조사에는 보드카에 휴지를 꼽아 화염병으로 만들었고, MRE용 1회용 티슈에 성냥을 꼽아 폭탄으로 간주했다. 그나마 일부 증거물은 분실됐으며, 대한민국 검찰청에 제출되지도 않았다.

완전히 창원사태의 2010년 판(…)이라고 할 만한 만행이었다. 덕분에 국내 군사 관련 역사 재현가들은 크게 두 부류로 갈렸다.
  1. 이 취미 더러워서 못 하겠다, 때려치자.
  2. 나라에서 우리더러 겨울잠을 자라 하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져 있을 거야.
    ㅠㅠ

재현가들도 대외적으로 적극 대처하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시의 전광석화 + 매우 강압적이었던 경찰의 일처리 방식이나, 상황 전파도 늦었고, 무엇보다도 취미 특성상 자칫 잘못하면 줄줄이 엮여 나갈 위험성이 다분하였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국내 리인액터 집단을 생각하면 대외적 대처 같은 건 꿈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 플래툰 컨벤션 국방경비대 재현(?) 논란 #===
2013년 8월 플래툰 컨밴션에 참가한 일본군 재현자들이 중 대한민국 육군의 전신인 국방경비대 재현을 했다고 주장하며 구 일본 육군의 군복을 입고 나타난 일로 발생한 논란.

해당 행사에 첫날, 둘째날 참가한 참가자 중 국방경비대를 재현했다고 주장하는 참가자가 양일 각각 1팀(첫날 1인, 둘째 날 2인)씩 등장했다. 재현 시기는 국방경비대 창설 초창기라 부착물만 제거된 일본 육군복을 입고 있었고, 장비도 일본 육군 장비가 대부분인 동시에 군도까지 차고 있었기에 누가 보아도 구 일본 육군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복장이었다. 때문에, 이 양일의 리인액터들이 정말로 국방경비대 재현을 한 것인지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매우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첫날 참가한 참가자는 자신에게 일본군 복장을 하고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일본군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방경비대 복장을 하고 있다고 알리느라 우기느라 진땀을 빼야 했고, 계속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군도까지 차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인들로부터 비난까지 받았다. 한술 더 떠서 엄밀히 말하면 일본군 복장에 부착물만 떼고 그대로 입었기 때문에 국방경비대라 설명을 해도 믿을 사람이 없었다. 결국 계속된 질문과 비난을 버티지 못하고 일찍이 회장을 떠나고 강퇴 말았다. 둘째 날 나타난 참가자 2인 팀의 경우는 첫날의 그 재현자처럼 국방경비대라고 주장한 뒤, 첫날의 재현자와는 달리 계속 회장을 누비고 다녔다. 이들 2인은 첫날의 위 인물에게 큰 관심(?)을 갖고 여러 차례 이에 대해 물어보는 등 대화를 나누고, 퍼뜨리지 않겠다는 약속하에 사진을 찍는 등의 행위를 했다. 본의 아니었기는 했지만, 첫날의 인물이 둘째 날의 두 명에게 일종의 명분을 줘 버린 셈이다. 그리고, 이들은 첫날의 인물과 한 약속을 어기고 자기들의 지인인 중2병걸린 고등학생 한 명 등에게 사진을 넘겼는데, 이 고등학생이 이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하면서 이름을 이상하게 바꾸고 "매국노"라는 표현을 쓰는 등 모욕적인 행위를 하다 적발, 경찰에 넘겨져 처벌받기 직전 부모가 나서서 빈 끝에 합의금 지불과 사과문 작성 등을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하는 인실좆을 당했다. 이들의 이러한 모습은 분명히 첫째날의 재현자와는 달리 오랜 시간 시선에 노출되게 만들었기에, 그들의 재현이 정말로 국방경비대 재현인지 의문을 품은 다른 재현자들이 생겼다.[41]

그래서 플컨이 끝난 바로 다음 날, 모 밀리터리 동호인 커뮤니티에 플컨 둘째날 보였던 국방경비대 재현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질문글[42]이 올라왔다. 그 글이 올라오자 글 작성자처럼 의구심을 품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덧글이 달렸고, 그들의 섣부른 재현을 질타하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반대 의견으로 어디까지나 국방경비대 재현이므로 너무 뭐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그 국방경비대 재현자들의 섣부른 재현으로 논란을 일으킨 점을 반성한다는 내용의 사과문과 함께 사건이 수습되고, 질문글 작성자도 사과글을 올리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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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플래툰 컨벤션 당시 2013년 10월 블로그

하지만 그 뒤에 2013년 10월경 일본의 모 블로그에서 플컨에 나왔던 참가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이 계급장 등 부착물이 온전한, 빼도박도 못할 일본 육군 복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발견되었고, 해당 블로그 원문에 '현재, 한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일본군 재현자의 단체사진입니다. 전부 제 친구들로, 동료입니다. 저까지 합해 6명의 동료들입니다.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중심으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본군 재현은 꽤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네이버의 한 까페에 관련 사진들이 있다.

참고로 일본 밀리터리 동호인계에서도 일본군 리인액트는 유니크한 취향으로 통한다. 그래서 해당 재현자들이 제대로 된 국방경비대를 재현한 것이 아닌, 원래부터 일본군장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고 그걸 공공장소에서 꺼내 입어보려는 욕심으로 국방경비대를 사칭하며 돌아다닌 것이라고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비난을 받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상기의 참가자들은 끼리끼리 뭉쳐서 플컨에 부스를 내서 나오는 등(...) 철면피 같은 행위를 보였기에 군장계에서 배척되어 완전 매장된 상태다.[43] 위에 언급된 대로 리인액트 취미를 향유하는 인구가 워낙 적다보니 악명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 신도림역 나치 알게마이네 SS 장교 리인액터 출몰 사건 #===
2014년 11월 13일 신도림역에서 나치 친위대 알게마이네-SS[44] 게슈타포 장교의 제복을 입은 인물들을 봤다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그냥 보편적 디자인을 한 각종 무장친위대의 위장복들이나 올리브 드랩 톤의 M42 Feldmantel 같은 야전용 트렌치 코트 같은 실용적 방한장비나 마크 전부 뗀 M43 야전모 정도야 눈치가 좀 보일 뿐 나치군용 롱부츠 같은 눈에 띄는 물건들만 안 신고 혼착하는 쌥쌥이를 갖다 치고 다니면 지금도 그냥 패션 정도로 보지 사람들이 째려보지는 않는 정도라 너무 대놓고 안 다니면 문제 없는데, 문제는 나치 독일 친위대 중에서 그것도 무장친위대 정예사단들과 아인자츠그루펜 같은 말살부대 다음으로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게슈타포를 위시한 알게마이네-SS를 상징하는 검은 제복은 반나치법안이 있는 독일, 프랑스 등을 제외하면 비교적 관대한 유럽 서구 국가나 심지어는 제2차 세계 대전 등의 과거 역사와 현재 우경화가 지속되고 있는 일본[45] 등지의 지역에서도 역시 일부 제한된 행사장에서 눈치보며 겨우 착용과 리인액트먼트를 허가받거나 양해마저도 구하고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 입고 집에 갈 땐 벗는 옷인데도, 그 많고 많은 공공장소들 중에서 그것도 환승역이라는 특성상 외국인도 많이 몰리는 장소에서 그따위 옷을 대놓고 입고 돌아다녔다는 점에서 더욱 부적절한 행동이라 비난 받았다.

심지어 이 사진 속의 인물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일본을 "동화나라"유치하다라고 부르는 등 손발이 오글거리는 표현을 갖다 쏟아부은 중증 일빠였던 데다가, 이전에도 한국 및 일본에서 행사장이 아닌 일반 길거리와 학교 등에서 2차대전 때의 독일 군복들을 입고 다니며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을 자랑하고 자신의 대학원[46] 졸업식장에 역시 SS 장교 제복을 입고 간 사실을 자랑하는 무개념 관심병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어 비난은 배가되었다.[47]

그의 왼쪽에 뒤통수만 보이는 빠박이(…)[48] 역시 2차대전 독일 육군 장교의 전투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역시 이 SS 장교 옷을 입었던 인간의 졸업식 때 저 옷을 입고 오고, 바로 위 항목의 인물들과 함께 구 일본 육군 제복을 입고 일본 블로그에 올려 언플을 하는 등 마찬가지로 무개념 인증을 한 인간이다. 한 놈은 머리가 X라 길고 한 놈은 빠박이다. 밸런스 조절 못 하나?

===# 서코 일본 해군 공수부대 출몰 사건 #===
2015년 2월 15일, 제130회 서울코믹월드 행사가 열린 SETEC행사장에서, 일본 해군 공수부대 전투복을 입은 이가 출몰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람은 위의 두 사건에 모두 연루된, 바로 위 신도림역 사건의 빠박이(...)와 동일 인물로, 심지어 서코에서는 길 한복판에서 할복 연출을 한답시고 동영상(...)까지 찍은데다, 넷상에서 벌어진 배틀에서 자기 할아버지가 일본 육군 오장이었다고 주장[49][50]하며 자폭질을 했다 까이기까지 한 무개념이었다.

이 인간은 일본 군복을 대놓고 입었다는 것에 더해, 자신이 앞으로 서코 안 오겠다고 한 선언을 스스로 깨버렸다는 점과, 계급장과 모자[51] 없이 상하의만 차려입고 와서는 사복인 척 하고 코스프레 등록조차 안 하고 놀다 갔다는 점이 들통났고, 정작 자신과 지 친구들이 툭하면 자기들도 틀린 곳 투성이인데도 고증 부심을 부리면서 다른 재현자들 까기 바빴으면서 자기는 쳐맞을 게 무서웠는지 비고증 상태로 도둑마냥 슬적 왔다 튀었기에 더욱 까였다.

결국, 누군가가 코믹월드 측에 해당 인물의 출입을 영구 통제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현재 이 인간은 일본으로 도피성 유학을 가 있는 상태로, 트위터로 되도 않는 일본어 실력[52]으로 한국을 까고 일본 그것도 구 일본 제국 시절을 빠는 글들을 쓰며 넷 우익들의 환심을 사보려 기를 쓰고 있다.

===# 일본 육군 복장 일코 사건 #===
2014년 어느 날, 위 사건의 주동자들과 친분 관계였던 어느 일뽕[53]이 자신의 카카오스토리에 일본 육군 보병 상등병 전투복을 입고 VIPS에서 식사하는 인증샷을 찍어 올렸다가, 누군가에 의해 유출되어 퍼져 비난받은 바 있었다. 해당 인물은 이전부터 SS 장군의 검은색 정복을 걸치고 길거리를 싸돌아다니는 장면을 찍어 올렸던 전적이 있는데다, 조선이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협력한 준전범국이라거나 장준하 선생이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등 망언을 했던 적이 있어 더더욱 비난을 받았다.

이래놓고 정신을 못 차렸는지, 극장에 일본 육군 장교 복장을 하고 영화 암살을 보러 가거나, 또 다시 식당에서 위 일본 육군복을 입고 밥먹는 장면 등을 올렸다가 털려서 다시 욕을 먹었다. 카스 친구랍시고 데리고 있던 것들이 죄 신상털기에 동참하는 참 알흠다운 우정이다.

저러고도 한동안 정신 못차리고 특정 인물에 대한 도발적인 문장을 카스 메인에 올려놓는 등 한심한 짓을 하다가, 모교에 알려져 교내에서 개망신과 따돌림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2012년 서울에서 국가보훈처 개최, 코사모, 물파스 코스프레 단체가 참여한 호국보훈퍼레이드 중 참가한 한국 재현가들이다. 각각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 육군 장교, 한국광복군, KLO(일부 인원들이 무장SS의 위장복을 미군으로부터 지급받아 착용한 바 있다.[2] 역사학에서도 종종 re-enactment가 등장하는데, 이 경우는 재현 행사가 아닌 역사 연구 방법으로서의 re-enactment일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 경우 우리말로 옮길 때는 "추체험(追體驗)"으로 옮긴다. 사학사(史學史)나 역사학 연구방법론, 역사철학 등을 배울 때 종종 언급된다.[3] 서양에서는 참전자에 대한 예우를 매우 중시한다. 콜 오브 듀티: 어드밴스드 워페어에서 'X키를 눌러 조의를 표하십시오'가 전사자를 가벼이 보는 것이냐며 굉장한 논란이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4]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관련 리인액트먼트 단체들의 회원들을 지칭한다.[5] 지난 2010년 선거 당시 미국 오하이오주 제9구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리치 이오트(Rich Iott)'를 의미한다. 그는 그 해 10월 이 기사를 통해 나치 리인액트먼트 단체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까발려져 사방에서 비판을 받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물론이고 공화당을 지지하던 유대인 단체들, 폭스 뉴스와 심지어는 그가 속한 공화당의 많은 의원들마저도 그를 비토하는 성명을 냈을 정도였다.[6] 무장친위대 제5기갑사단 '비킹'을 재현하기 위해 모인 밀리터리 동호인들의 리인액트 클럽이다. 리치 이오트도 여기서 부원으로 활동했다.[7] 비킹 사단은 친독적 밀리터리 동호인들이 학살과 무관한 '깨끗한 전투부대'라고 변호하는 대표적인 친위대 사단 중 하나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 달리 비킹 사단은 1943년에 벌어진 수확제 작전에서 자그마치 4만 2천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바 있다. 따라서 비킹 사단의 책임을 서술하지 않는 이 동호인들의 행동은 그 자체로 심각한 역사 왜곡에 해당한다. 불리한 정보를 슬쩍 제거하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의 뒤틀린 역사관을 드러내는 것이다.[8] <제2차 세계대전의 신화와 진실> 436p.[9] 행위자가 군인이지만 의장병이 아닌 한 자기 본래 특기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10] 직접 제작한 레드 코트와 머스킷을 들고 나온 사람도 목격된 바 있다. 또한 2022년 경부터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대육군의 전열보병 등을 재현한 사람도 출몰하고 있다.[11] 2020년 초 모 리인액트먼트 팀이 해외 페이스북 포럼에 2차대전 행사사진을 올렸다가 미국 곳곳이 락다운중인 코시국에 무슨짓이냐는 양덕의 질타(미국 재현팀으로 오인함)를 받았었고, 우린 한국인이고 여긴 상황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해명하여 멋쩍은 사과를 받은적도 있다.[12] 이와 유사하게, 2차대전 승전국 내에서 나치 독일 리인액트먼트가 흔하고 인기가 있지도 않다. 신나치주의로 인종차별주의자로 취급받는 중이며 섣불리 그들이 따라한다고 따라해도 된다고 믿어도 안된다.[13] 일본제국군복을 즐겨입는 일본인 계정과 교류가 활발하다면 빼박 이런 부류들이다. 본인들은 아니라고는 하면서 독립운동사를 연구할 목적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일본군복을 입었고 독립운동가는 가차없이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뉴라이트 계열이라고 보면 된다.[14] 1920년대 재정부족으로 여러 루트로 구한 일본 군복을 입은 독립군들도 있지만 이들은 모포에 태극기를 붙여 본인들의 정체성을 나타냈다. 또한 1945년 8월 15일 이후 당시 광복군이 미군정과 대립하면서 일본군내에 있는 한국인 병사를 모집하는 경우로 일본군복과 혼착된 사진이 다수 보이지만 이때도 일본 군복을 그대로 입은게 아닌 미군의 원조군복을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에서 착용했다. 즉 재현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15]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보고(1950년대 후생사업 관련 참고인 조사)(2019. 12. 6.) 참조 이 내용은 다음 카페의 승리부대전우회에 실린 진범홍의 '나의 병영일기' 참조. Cafe.daum.net/15X38R39R50R/lwSy/2046?q=진범홍 검색일: 2022. 10. 20[16] 노태우는 중령으로 진급한 1967년 월남 파병에 맹호부대 1연대 3대대(재구대대) 대대장 대대장으로 참전했을 당시 퀴논 전투에서 북베트남 군대를 전멸시킨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17] 전두환은 1970년 육군 제9보병사단 제29보병연대 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는데, 상관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당시 9사단장이자 이후 육군특수전사령부의 2대 사령관인 조천성 장군이 '사병들은 마실 물도 마땅치 않은데 전두환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테니스나 치고 앉았다'고 29연대장에서 해임시켜야 한다는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전두환의 연대가 군공이 전혀 없자 전두환은 무기밀매상으로 부터 적성화기 다수를 구매해서 그걸 노획물이라고 속여 상부에 바치며 있지도 않은 군공이 있다고 속였다. 그러나 이 전두환의 거짓말은 바로 들통났다.[18] 1964년부터 참전한 베트남 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 병사와 현지 베트남 여성의 결혼으로 태어난 2세. 라이따이한 중 일부가 한국군에 의한 강간으로 태어났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전시에 베트남 해방 전선(베트콩)은 한국군을 포함해서 자신들이 적대시하는 모든 베트남 파병군이 고문, 학살, 강간 등의 전쟁 범죄를 밥먹듯이 저질렀다고 선전하는 게 매우 흔했다. 다만 실제 강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있으며, 실제로 강간죄로 처벌받은 군인들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쟁 중 점령군인이 현지 여성을 강간하는 일은 어떤 전쟁에서건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19] 2020년도 이후로 중국교민만큼 베트남 교민들도 상당수 정착해 살고 있다.[20] 12.12 이후로는 특전사는 신군부의 친위부대가 되었기 때문에, 충정복을 입고 광주 진압부대가 맞다 아니다 논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비난받기 싫으면 어지간해서는 하지 말자.[21] 게다가 비교적 좋은데서 근무를 해서 군복무 시절 나쁜 생각을 별로 가지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라도 군대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주 높은 확률로 뉴스에 보도되고 이렇게 뉴스등을 통해 군대의 사건사고등을 접하기에 본인이 정말 힘들게 군생활을 보내지 않았더라도 군대에 대한 인식은 자연스레 나빠지게 될 수 밖에 없다.[22] 리인액터들은 필드에서 참호를 파고 경계를 서며, 정찰을 돌거나 짬을 배식받으며 시간을 보낸다.[23] 결국 집에서 군장 수집만 하는 콜렉터가 되거나 서바이벌 게이머로 전향하는 케이스가 대다수이다.[24] 현용 군수품은 판매, 구매, 소지, 사용 모두가 불법이다.[25] 사실 군복류는 얼마든지 입수, 복제가 가능한 품목이므로, 규제하여도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고가이거나 기밀을 요하는 일부 부대피복을 빼면 전역자들이 집에 가져가도록 허락해왔고, 심지어 독일처럼 중고 피복에 등급을 매겨 민간에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국가들에서 참전 용사나 퇴역 군인이 자기가 현역 시절 입던 정복 등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행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 예비역 단체 상당수가 대민물의 일으키기 딱 좋은 불량 전투복을 입고 다니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비교적 단정한 피복 착용을 무조건적으로 막기 때문이다. 물론, 예비역이나 민간인이 군복을 착용만 한 것을 넘어, 사칭 행위를 하는 것은 엄벌한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군복을 민간인이 입수해 사칭하는 범죄 행위 증가 가능성은, 군복보다는 신분증 등에 대한 철저한 검사와 단속을 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단순히 제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출입 통제 구역을 통과시키거나, 사칭 행위에 속아 넘어가는 것도 일상적으로 철저히 신분증 등을 확인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당연시되는 사회에선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선진국이 괜히 선진국이 아니다. 다만, 영국에서도 교통 경찰용 형광 조끼만 입고 들이대도 관공서든 공공시설이든 다 관계자인줄 알고 들여보내주더라는 실험결과가 있었던걸 보면 이런 부분은 그냥 만국 공통인 듯.[26] 제복이 없어도 사복 차림으로 위조 신분증을 들이대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사칭은 가능하다. 게다가, 대한민국 국군은 사칭해봐야 별 효과도 없는 병 피복은 전역시 전역복 한 벌만 빼고는 철저히 반납시키면서, 사칭 위험성이 더 큰 부사관이나 장교는 전역시 개인 피복 반납 의무가 없는 모순을 지니고 있다. 부사관, 장교의 자비로 구매하는 피복들 역시 임관시에 초도보급되는 것이 있으므로 최소 그에 해당하는 분량은 반납해야 하는 게 맞고, 정복이나 근무복 등을 후임에게 비공식적으로 물려주는 식으로 많이 활용되기에 일부에서 제기하는 재활용 불용설은 설득력이 없다.[27] 총구에 쇳물을 부어넣고 노리쇠나 공이를 용접하여 격발을 불가케 한 실총. 물론 일본에서는 실총만 허가되는게 아니라 화포라도 동일한 방법으로 발사가 불가능하게 하면 소유가 가능한 모양이다. 실제로 독일제 오리지널 88mm 대공포 포구를 메우고 주퇴기를 반토막낸채로 한 민간인이 소유하고 있다.[28] 다만 소련은 1990년에 한국과 수교를 맺은 적도 있고,무엇보다 1991년에 망해버려서 큰 의미는 없다[29] 전투작전 관련 문서도 삭제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보수진영조차 미국 문서관리청 기밀자료나 해외 유엔군으로 참전한 회고록에 의존하는 편이다.[30] 단순히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을 넘어서 해당 인물에 대해서 근거없는 정치적·인신적 비난까지 가하는 경우도 허다했다.[31] 1980년대에 미국으로 유학가는건 상류층이나 가능했다.[32] 유명 유투버라든가 소위 말하는 「성공한 밀덕」이라고 불리는 세대들은 대체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과 함께 발전된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일뽕화가 커졌고 관련 역사 지식도 구 일본제국군에 대한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독립운동사를 모르는 촌극이 벌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33] 유용원 기자가 국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당선이 되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수/수구 성향의 커뮤니티이다.[34] 실제 그런 일이 정치권에서 나타났고 홍범도 장군이 레닌으로부터 받은 권총이라는 논리랑 동일하다.[35] 유사해보이는 분야와의 본질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도매금으로 취급하거나, 그 권위를 악용해 해악을 끼치거나 탈취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 이에 관해서는 사안에 따라 리인액트먼트 쪽이 피해자나 가해자 어느 쪽이든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36]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태도나 재현성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한다. 전자는 특히 정치나 도덕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 두드러진다. 후자는 리인액트먼트 자체를 규정하는 정체성(즉 역사적 재현 행위)과 리인액트먼트가 실제 명맥을 이어나가게 만드는 동력(즉 오락성과 그에 따른 활력) 사이에서의 갈등에서 비롯한다. 후자는 곧 리인액트먼트의 진(眞)과 미(美. 혹은 쾌快) 중 무엇이 중요하느냐는 물음이기도 하다.[37] 리인액트먼트는 많은 경우 군사사나 무기사 측면에서 (특히 근현대 중심으로) 활성화되었기에, 국내처럼 무기류 취급에 민감한 곳일수록 크게 작용한다.[38] 각각 "밀리터리"와 "역사"를 "아스퍼거 증후군"과 합성한 것이다.[39] 국내에서 유일한 한국 전쟁 재현팀이 핵심 멤버들의 입대(...)로 인해 공중분해되었고, 2013년에는 2차대전 재현팀에 통폐합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40] 발열팩이 들어있는 비닐 주머니로 MRE의 기본 구성품이다. 약간의 물(종이컵으로 반컵정도.)을 넣으면 증기가 발생하며, 이를 이용해 음식을 데우는 데 사용 한다. 증기가 발생하므로 화상에 주의 해야 하지만, 터진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다.[41] 이들이 일본군과 차이를 두기 위해 소지한 물품은 미군 콜트 탄입대 하나와 태극기 하나 정도였다. 적어도 첫날에 나온 사람보단 국방경비대를 어필하기 위해 신경을 쓰기야 했다.(다만 남부 권총 등 성능이 열악했던 당시 일본군의 권총 때문에 노획권총을 소지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면 이것 또한 엄밀히 말하면 일본군 고증이고, 이들도 군도를 들고 나왔다.) 그나마 태극기마저도 노획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꼬질꼬질한 태극기를 망토처럼 둘러쓰고 나온 상태였는데 2002년 월드컵 이후로나 태극기를 이용한 패션의 하나로 망토 태극기가 유행했었지 최소한 국방경비대 신분으로 하고 다닐 짓은 아니다. 군대 안에서 태극기를 이렇게 하고 다녔다면 무슨 상황이 벌어졌을지 생각해 보자.[42] 원본글이 삭제되어 캡쳐본으로 연결하였음.[43] 이 사건 이후로 플컨에 일본군 재현을 하고 오지 않았고 플컨 참가 부스의 태반을 차지하는 건샵 쪽은 군장 쪽에 별 관심이 없는 탓에 블랙리스트에 올라가거나 참가를 거부당하지는 않았서 가능했다.[44] SS-VT(슈츠슈타펠 페어퓌궁슈트루펜)이라는 무장부대의 분리로 무장친위대가 공식 사병단체이자 당군조직으로서 창설되자 SD 보안방첩대, 게슈타포 등 여러 행정사무와 정치 관련 정책들만 담당하던 치안조직들과 행정병과 조직들은 모두 일반친위대, 즉 알게마이네-SS라는 칭호를 받으며 친위대를 대표하는 일종의 의장단으로도 취급받았기에 무장친위대와는 차별화되어 SS 직제 안에서 분류가 갈리게 되었다.[45] 이게 의외로 무시하기 힘들면서도 아이러니하긴 하나 하필 그러한 어마무시한 전범의 과거를 보유하고 계승하는 중인 일본에서조차도 나치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인식은 전혀 좋지 않다. 심지어 리인액터들이나 2030 세대 및 중장년 남성들은 물론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의 여성들조차 그 악명을 알고 상당수가 그 얘기를 들으면 우회적으로 말을 돌릴 만큼 혐오하고 꺼리는 반응을 보이며 나치, 그 중 SS는 정말 볼드모트 취급할 정도이다. 심지어 우파 지지 기질이 있는 사람들도 나치는 정말 꺼리는 의외의 인물들이나 의외로 개념이 잡힌 이들이 많아서 그 일본 안에서도 자국 역사에 관련해선 해석이나 결이 안 맞는 말을 해도 친위대, 국방군과 나치당 등의 나치군 관련 소재는 아주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상당하다. 하도 인종차별주의 극우 시위대만 조명해서 그렇지 일본에서도 나치는 직접 언급만큼은 준금기어다.[46] 교육대학원 석사 과정이었다고 한다. 애들한테 뭘 가르칠지 무섭다. K-괴벨스[47] 네이버에서 Ika*i라는 닉네임을 썼으며, 자신의 본명과 육군 병 복무시절 군번을 인증하기까지 한 철면피이기도 하다. 자기가 스스로 공개하고 다닌 본명은 황진X. 이 사람 아니다.[48] 본명은 이인X, 닉네임은 심심하면 애니메이션 여캐들 중 하나로 골라잡아 바꿨으나 그 가운데 인덱스로 흔히 통한다. 이 인간은 이 취미계에서 수많은 병크를 터트린 인간이다.[49] 알고보니 허위로 밝혀졌다. 조상까지 주작질에 써먹는 패륜아[50] 우리나라로 치면 하사계급이며, 조선인 부사관들도 꽤 흔하게 널려있었으니 만약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않다.[51] 다른 건 몰라도, 일본 육해군 특유의 그 약모(전투모)는 척 봐도 그거인 줄 알게 만든다.[52] 한 일본인이 그 트위터 계정 글을 읽고 나서 "초등학생 수준 미만"이라 평했다 한다.[53] 모 대학 국제통상학과 재학 중 장학금을 받은 내역이 찍힌 통장 인증샷을 올렸다가 이것이 퍼져 신상이 까발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