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인물이 개발한 M1903 반자동 전환용 노리쇠에 대한 내용은 페더슨 장비 문서 참고하십시오.
Pedersen Rifle 페더슨 소총 | |||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반자동소총 | ||
원산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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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920년대 | ||
개발 | 존 페더슨 | ||
개발년도 | 1920년대 | ||
생산수 | 150정 미만으로 추정 | ||
사용국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 | ||
세부사항 | |||
탄약 | 7×51mm (.276 페더슨) 6.5mm 아리사카 (갑형 소총) | ||
급탄 | 10발들이 내장형 탄창 10발 엔블록 클립 | ||
작동방식 | 토글 지연 블로우백 | ||
총열길이 | 609.6mm (24인치) | ||
전장 | 1117.6mm (44인치) | ||
중량 | 4.082kg (9파운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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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orgotten Weapons의 리뷰 및 사격 영상 |
2. 역사
1920년대 초반, 미 육군 병기부(Ordance Department)는 1차 대전부터 줄곧 써왔던 볼트액션식 스프링필드 M1903을 대체하기 위해 반자동소총 위원회(Semi-automatic Rifle Board)를 통해 새로운 반자동 소총 채택계획을 수립하였다. 사업 공고 직후 10개 회사의 치열한 각축전이 펼쳐졌다. 미국 내에서는 존 페더슨과 존 C. 개런드를 비롯해 톰슨 기관단총을 제작한 존 톰슨, 존 브라우닝의 이복형제인 조나단 에드먼드 브라우닝(통칭 에드 브라우닝) 등이 참여하였고 이어서 체코의 ZH-29와 덴마크의 방 소총, 프랑스의 RSC 소총, 스위스(독일) 등 여러 국가가 참여하였다.원래 미군의 계획에 따라 반자동 소총을 개발하기로 해 경쟁이 시작되었다.[2] 개런드부터 페더슨, 톰슨, 에드 브라우닝, 이어 체코, 덴마크, 프랑스, 심지어 독일까지[3] 여러 국가의 개발자들이 참가했고, 테스트 과정에서 톰슨 소총은 지나치게 긴 총몸과 생각보다 복잡한 내부구조 때문에 테스트에서 떨어졌으며, 에드 브라우닝의 콜트 M1929 또한 비슷한 문제로 인해 탈락했고, 최종적으로 남은 것은 페더슨과 개런드였다.[4]
이 소총은 루거 P08과 같은 토글 액션에 지연 블로우백 방식을 합친 토글 지연 블로우백 방식으로 작동하며, 당시로서는 단순하고 명중률도 높았지만, 지연 블로우백 작동 방식으로 인해 약실이 고압일 때 탄피를 추출해야 했기 때문에 탄피가 약실에 눌어붙어 배출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탄에 왁스 코팅을 해야했다.[5] 참고로 슈바르츠로제 기관총도 토글 지연 블로우백 방식으로 작동하는 바람에 같은 문제를 보여서 노리쇠와 연동되는 기름 공급 장치를 이용해 탄에 기름을 뿌려야 했다. 이 문제는 2차 대전 말에 개발된 StG44의 후속작인 롤러 지연 블로우백 방식으로 작동하는 StG45에서 약실에 홈을 파 연소 가스 일부를 홈으로 들여보내 탄피가 약실에 눌어붙는 현상을 방지하는 방식인 각인 약실을 도입함으로써 해결되었으며, 이 방식은 현대의 지연 블로우백 방식 총기인 H&K G3이나 FAMAS에도 적용되었다.
그러다가 존 페더슨이 병기국과 같이 설계한 .276 페더슨(7×51mm)을 제작하면서 이 탄환을 호환하는 조건으로 변경하면서 2 라운드가 시작됐다.[6] 전과 마찬가지로 페더슨과 개런드의 이파전이 이어졌는데, 페더슨의 소총은 탄을 왁스로 코팅해야 하는 게 끝내 발목을 잡으면서 결국 M1 개런드가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7][8]
3. 파생형
3.1. 시제 갑형 자동소총
시제 자동소총 갑(試製自動小銃甲) |
Forgotten Weapons의 리뷰 영상 |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인리스티드 - 튀니지 전역 연합군 장비와 갑형 소총으로 등장했다.
- 디 오더: 1886 - 'M82 자동 장전 카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5. 참고 자료
6. 둘러보기
보병장비 둘러보기 | |||
근대 (~1914) | 대전기 (1914~1945) | 냉전기 (1945~1991) | 현대전 (1992~) |
[1] 페더슨 장비와 레밍턴 M10의 개발자.[2] 대공황으로 예산이 날아갈 때 그나마 얼마 안 드는 소총 개발은 죽지 않고 계속됐다. 재미있는 건 당시 독일이나 영국, 소련 등은 경제공황으로 대부분 보병무기 개발을 포기하거나 소폭 개량하는 형식으로만 진행되었다는 것.[3] 반자동소총 말고도 권총 부문에서 루거 P08 등도 M1911과 경쟁하기도 했다.[4] 이후 콜트 M1929는 윈체스터 G30 및 G30M, M2를 거치면서 개량을 거듭한 결과 M1 카빈의 원형이 되었고, 내구성 문제로 탈락한 화이트 소총은 M14 소총의 가스 작동 구조에 영향을 끼쳤다.[5] 반면 개런드는 초반 뇌관 작동식 블로우백이라는, 현대에도 흔치 않은 독특한 설계였다. 그런데 갑자기 미군이 소총의 작약을 변경하면서 탄의 압력이 변했고, 이게 뇌관 작동식에 치명타가 되었다. 뭔 짓을 해도 해결이 안 되자 바로 지금의 가스 피스톤과 회전식 노리쇠를 쓰는 가스압 방식을 채택했다.[6] 이때도 타 국가 개발자들 역시 참가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7] 이후 개런드의 설계가 채용되고 드디어 제식으로 생산을 하려 할 때,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당시 소장)이 기존 제식 탄종인 .30-06 스프링필드 탄 재고 문제로 반대하는 바람에 .30-06 탄을 사용하도록 변경되었다. .30-06 탄의 탄피가 .276 탄보다 더 굵어 탄창 용량이 10발에서 8발로 줄어들었지만, 그 대신 보급의 편의가 확실해졌다.[8] SVT-40이나 게베어 43처럼 탄창을 돌출시켰으면 10발 들이도 가능했지만, 아쉽게도 당시에는 이물질 유입 문제를 우려해 탄창이 총몸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설계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탄창이 돌출되고 분리되는 M1 카빈의 등장으로 불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