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아민 결핍증 Thiamine deficienc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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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6,#272727> 이명 | <colbgcolor=#fff,#191919>각기병(Beriberi, 전통적 명칭) 비타민B1 결핍증(Vitamin B1 deficiency) |
국제질병분류기호 (ICD-10) | E51.1 |
의학주제표목 (MeSH) | D001602 |
진료과 | 내과, 신경과, 가정의학과, 소아청소년과 |
질병 원인 | 비타민B1의 섭취 부족 혹은 소화 흡수 장애에 따른 결핍증(영양 장애) |
관련 증상 | 무감각증, 전신 부종, 근육통, 식욕 부진, 호흡 부전 |
관련 질병 |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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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각기병(脚氣病, Beriberi) 또는 티아민 결핍증(Thiamine deficiency)은 비타민B 복합체 중 비타민B1이 결핍되어 나타나는 병이다.영어 명칭인 '베리베리(Beriberi)'는 싱할라어로 '할 수 없어. 할 수 없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러 증상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다. 통곡류(현미, 통밀 등), 맥주효모, 콩류, 감자류, 돼지고기, 간, 삼치, 넙치, 견과류, 아스파라거스 등 비타민B1이 들어있는 식품을 매일 섭취하는 것으로 치료한다. 비타민 B1은 거의 몸에 저장되지 않으므로 매일 섭취해야 한다. 가공식품에 의존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종합영양제를 먹어야 한다.
티아민은 세포 내의 에너지 대사에 필요한 조효소의 구성성분이고 하루 필요량은 1-2 mg이다. 근데 이놈은 체내축적이 별로 안 돼서 매일 꾸준히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 주요 증상으로는 무기력증, 수전증, 부종, 신경염 등이다. 치료하지 않으면 증세가 악화되다 사망한다.
각기병은 비타민 발견의 계기가 된 질병이기도 하다. 비타민(티아민)이 결핍되어 나타나는 질병이기 때문에 어떻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비타민은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이 각기병에 대해 연구하다가 이론적으로 그 존재가 처음 예측되었고, 훗날 스즈키 우메타로라는 일본의 화학자가 실제로 발견해내면서 인류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비타민이 발견되기 전인 19세기 서구 의학에서는, 식문화의 차이로 인하여 서구권에서는 찾기 힘든 이 질병이 병원균에 감염되어 발병하는지 식중독인지 풍토병인지 논쟁이 많았다고 한다. 결론은 셋 다 아니었고, 비타민 결핍으로 인해 일어나는 류의 질병이었던 것이다. 유사한 사례로는, 비타민C 결핍으로 발병하는 괴혈병이 있다.
2. 쌀 주식 지역의 풍토병
19세기 이전에 쌀을 주식으로 삼던 동아시아 지방의 풍토병으로 악명 높았다. 비타민B1의 섭취는 콩류, 감자, 곡물의 씨눈이나 돼지고기에서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데, 프리츠 하버가 공기를 곡물로 바꾸는 마법을 발명하기 이전 시대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기가 남아돌리는 없고, 곡물의 씨눈이 티아민의 유일한 섭취처나 다름없었다.각기병과 같은 기반 곡물에 따른 풍토성 결핍증은 각 곡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인데, 쌀의 경우에는 어마어머한 단위 면적당 열량과 (무논 한정) 0에 가까운 지력 소모 덕분에 극히 높은 저점을 가졌으나 매우 낮은 고점을 가진 "저부가가치" 곡물에 해당되며, 이유는 제분가치가 0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쌀의 경제적 특성은 각기병과 하등관계 없고,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제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인한, 쌀의 요리 방법 제한이다. 이 제분가치가 없다는 것은 쌀의 섭취 방법을 쌀밥을 지어먹는 것으로 한정시킨다. 그리고, 쌀밥은, 쌀의 도정을 적게 하였을수록 정말 파멸적으로 맛이 없다.[1][2]
하버-보슈 법이라는 기적 수준의, 어쩌면 인류 문명에 있어 유일하게 진정한 의미의 발명이라 할만한 대혁신이 있기 이전 시대에, 쌀을 주식으로 하는 지역에서 잘 도정된 쌀로 지은 밥은 부의 상징이었을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했다. 따라서, 누구든 흰 쌀밥을 먹고 싶어하지 도정 덜 된 쌀밥이나 잡곡밥을 먹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쌀을 정밀하게 도정하면 티아민이 있는 배아가 죄다 떨어져나간다는 함정이 있던 것이다. 쌀의 경우 밀과 달리 배아가 배유 속에 있지 않고 호분층인 쌀겨로만 보호를 받는 특이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제대로" 도정을 하면 가차없이 배아가 사라져버리는 곡물이다. 그래서, 흰 쌀밥만 먹으면 각기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물론, 밀이라 해도 본래 배아를 보호하는 것은 호분층[3]이며, 밀도 분명 도정 과정은 필수적으로 거치는 작물이지만, 밀의 경우 쌀과 달리 배아 주변에 배유가 조금이나마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배아가 그리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으며, 제분이 필수적인 만큼 "일단 전부 갈아버리니까" 어떤식으로든 소량의 티아민이나마 보존되는 것이 거의 보장되는 것과 달리 쌀은 설령 제분한다 하더라도 도정 과정에서부터 배아가 없어져버리므로 티아민이 없는 곡물이라 봐도 무방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동남아와 달리 극동에서는 흰 쌀밥조차 먹기 힘들었던 하류층을 대상으로는 오히려 각기병이 흔치 않았다. 차라리 기근이 와서 죄다 굶어죽는 게 훨씬 흔한 풍경이었을 정도. 제대로 도정한 흰 쌀은 화폐를 대체할 정도로 가치가 높았기 때문에 쌀밥을 매일같이 먹으면 잘사는 집이었고, 같은 쌀밥이라도 여유가 없다면 도정률이 낮은 현미를 먹었고 콩밥이나 보리밥 같은 잡곡밥은 사정이 안 되는 집안에서 먹는 식사였고, 빈민들도 쌀밥을 배 터지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일본에선 1950년대 중반, 한국에선 1970년대 후반부터였다.[4] 하류층에서는 흰 쌀밥은커녕 맛 없는 잡곡밥이나 안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일 지경이었으나 대신 티아민이 부족할 일도 없었던 것과 달리, 굶을 일만 없는 생활수준을 가진 계층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5]
게다가 극동에선 고기가 귀했기 때문에[6] 흰 쌀밥을 매일 먹을 정도의 생활수준으론 문자 그대로 흰 쌀밥만 매일 먹을 수 있었다는 생활수준 장벽이 형성되었다. 상류층의 경우 간간히 육고기든 물고기든 고기반찬을 먹을 수준이 된 것과 달리 중산층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극동에서 각기병은 중산층의 고질병이나 다름없었다.
흰 쌀밥만 먹으면 각기병에 걸린다는 것은 지극히 자명했기 때문에, 동아시아 각국에선 흰쌀만 먹지 않고 현미나 메밀, 콩 같은 잡곡, 특히 도정 안 한 곡물을 먹으면 낫는다는 치료법이 전해졌다. 여러 기록을 보면 대략 3-4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이 같은 치료법이 전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어지간히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니고선 간단히 치료가 가능했다.[7]
게다가, 기후 문제로 인해 겨울에 반드시 쌀 농사를 쉬게 되는 극동에서는 어쨌든 부수 산출로 보리 따위가 추가되었으므로, 티아민의 공급처 자체는 넉넉한 편이었다. 따라서 각기병의 창궐은 중산층에 국한되었으며, 걸리더라도 치료 자체는 쉬웠다. 하지만, 동남아와 같이 1년 내내 쌀만 무한정 이어서 키울 수 있는 곳에서는 쌀만 넘쳐서 하층민에도 각기병이 창궐하여 엄청난 피해를 유발했다.[8]
2.1. 일본의 사정
20세기 초 열강국가 중에서도 유독 일본에서 이 병이 잦았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 갑자기, 특히 군대에서 환자가 급증하여 이를 치료하고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 또한 크게 진척되었다.일본에서는 보다 일찍이 19세기 무렵부터 대도시를 중심으로 각기병이 횡행했다. 특히 예전부터 에도(현 도쿄) 지역에서 백미를 많이 먹다 각기병에 걸리는 일이 많아 에도병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약간 살만 해서 삼시세끼 백미를 먹긴 하는데 반찬류가 부실한 식사를 하는, 재산 수준이 어중간한 도시 사람이 걸리는 일종의 사치병'으로 여겨졌다. 각종 반찬류를 골고루 먹는 상류층은 물론, 돈 없어 싼 잡곡만 먹던 하류층이 되려 이 병에 걸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당시 일본은 개화기에 각종 신기술의 등장으로 농업 수준이 급격히 발달하여 쌀이 풍부히 유통되었고, 전통적으로 쌀을 도정하던 방식인 물레방아를 대신하여 증기식 도정기계가 도입되고 보편화되자 이전보다 쌀의 껍질을 많이 깎아 하얀 백미를 만들기가 쉬워졌다. 새하얀 쌀밥이 풍족한 식사의 기준으로 여겨지던 것은 물론 여러 차례 도정한 백미는 잡곡밥이나 도정이 덜 된 현미밥보다 밥이 빠르고 맛있게 지어졌기 때문에 서민 계층에 쉽게 퍼져나갔다. 그러나 쌀은 도정을 거듭해 껍질을 많이 깎을수록 하얀 속살만 남은 백미가 되어 부드럽고 맛이 좋아지지만, 그만큼 비타민B가 많이 함유된 배아 부분이 제거된다. 동시에 값싼 잡곡을 천시했던 문화, 영양소에 대한 연구의 미비, 값싼 채소 반찬조차 사치로 여길 만큼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반복했던 서민들의 시대상으로 인해 딱히 반찬도 없이 백미밥에 소금만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결과 전국의 큰 도시마다 에도병이 들끓었다. 게다가 정작 그 무렵의 에도 지방에서는 각기병이 발병했을 때 초라하더라도 잡곡밥이나 메밀로 만든 소바를 한 그릇 먹으면 금방 낫더라는 민간요법이 이미 퍼져 있어서 그리 심각하게 유행하지도 않았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특히 일본군에서 각기병 환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일본 육군이나 일본 해군 내의 육상 부대에서도 심각했지만 장거리 항해를 나선 해군 함선에서 그 빈도가 더욱 높았고,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에서는 원인과 치료법을 찾지 못해 한참을 고생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전통적 처방인 '잡곡을 먹는다'는 민간요법은 이미 입증사례가 있는데도 서구 과학이 아니라고 무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유학을 다녀온 해군 군의총감인 타카키 카네히로(高木兼寛 1849~1920)[9]가 각기병을 해결하고자 조사를 개시한다. 당시 군인들 중에서도 장교들은 발병이 드물고 사병들에게 빈번했는데, 타카키는 두 비교집단 간의 결정적인 차이가 '식단'에 있음을 발견했다. 당시 일본 해군에서는 서구권 해군의 제도를 받아들여 기본 식재료인 쌀만 현물로 지급하고 그 외 부식류는 수병 개개인에게 현금을 지급해 식사조별로 알아서 구매 및 조리해 먹는 방식을 채택하여, 신병을 모집할 때 '삼시세끼 흰 쌀밥을 먹여주겠다'는 광고문구를 내걸었다. 그리고 실제로 수병들에게 삼시세끼 흰 쌀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백미만을 현물 배급했다. 물론 부식비도 지급되었지만, 부식비는 용돈 수준으로 적어 반찬을 풍족하게 먹을 정도는 못되었던데다가, 열악한 환경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수병들은 몇 푼 되지도 않는 부식비를 정박해 있는 동안 술값이나 화대 비용으로 탕진해버리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착실하게 고향의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정작 항해하는 동안에는 몇 주에서 몇 달을 백미밥만으로 버텼으니 각기병에 걸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육군 병사들도 얼추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어쩌다 산채나 열매라도 채집할 수 있었던 이들과 달리 장기간 항해를 하느라 어떤 식으로든 사식을 섭취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해군에서 특히 문제가 심각했던 것도 이때문이었다.
이에 타카키는 각기병 발병 원인이 영양분 결핍으로 인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비타민 B가 풍부한 보리와 잡곡, 육류까지 혼합된, 각기병에 특효약인 식단을 해군에 도입했다. 특히나 카레라이스가 이 일화로 유명하다.
사실 이 시기는 비타민의 존재가 발견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타카키는 단백질 등이 모자란 식단이 문제라 판단했고 해군에 서양 요리를 도입하려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야말로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식에서 먹는 육류나 콩에 비타민 B군이 풍부했기 때문에 각기병에 특효인 것은 같았다. 그리고 타카키의 주장을 해군성도 받아들여 수병들의 식단을 직접 관리하는 동시에 부식까지 전부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과 불만이 많았다. 일단 용돈이 줄어들어 버린다는 사소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수병들이 보리밥이나 잡곡밥보다 흰쌀밥을 선호한 것은 쌀밥이 더 먹기좋고 맛있다는 당연한 이유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주로 가난한 하층민들이 잡곡밥을 먹었고, 흰 쌀밥을 삼시 세끼먹는것은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일본군에 복무한 장병들 가운데 상당수는 흰쌀밥을 삼시세끼 먹는다는 선전에 혹해서 군대에 입대하였다. 당연히 이들은 흰 쌀밥을 삼시세끼 먹는것을 신분상승의 증표로 여겼기 때문에 아무리 반찬이 부실하고 군생활이 힘들어도 그래도 쌀밥을 삼시세끼 먹으니 출세했다고 느꼈는데, 이런 와중에 갑자기 보리밥이나 콩밥같은 잡곡밥을 먹인다 하니까 우리를 호구로 보냐면서 불만이 드높아진것이었다. 비타민 B가 풍부한 현미로 바꾸었더라면 문제를 해결하고 불만도 덜했겠지만, 당시에 현미는 그냥 값싸고 맛없는 쌀이어서 일부러 찾아 먹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만일 잡곡밥을 먹는 것을 강요했다면 포템킨 반란 같은 선상반란이 일본에서도 일어났을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단순히 음식 선호 때문에 잡곡밥이나 보리밥을 거부한 것도 아니다. 보리밥을 예로 들면, 지금이야 압맥이나 할맥처럼 밥 짓기에 편하게 도정된 보리가 시판되지만, 이때는 그냥 통보리밖에 없었다. 때문에 보리밥을 지으려면 일단 통보리를 하루 정도 물에 충분히 불린 뒤에 한 번 삶고, 다시 식힌 다음에 쌀과 섞어 밥을 해야 했다. 물에 하루 정도 불리지 않거나, 불려도 삶지 않거나, 불리지 않고 그냥 삶기만 하면 제대로 보리가 익지 않아 매우 딱딱해진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탓에 특히 야외 훈련 시에는 보리밥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1884년 원양 항해에 나선 연습함 츠쿠바에서 빵과 양식을 포함한 식단 개선 실험을 했다. 결과적으로 장기 항해를 했음에도 각기병으로 인한 사망자 및 중증 환자가 1명도 발생하지 않자, 해군은 해당 방법이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고 식단을 혼분식+양식 체계로 개선했다. 이 식단 개선 과정 중에 탄생한 것이 일본식 카레이다. 카레는 인도 음식이지만, 인도를 지배한 영국 해군은 스튜에 알루커리 가루를 넣은 형태의 해군의 선상 급식 메뉴로 도입했고, 영국 해군에 유학한 타카키가 이를 일본 해군의 급식에도 도입하였다. 일본 해군에서는 이걸 보다 걸쭉한 카레라이스로 로컬라이징해서 해군에 도입했다. 전후 이것이 일본 민간인들에게도 전파되어 오늘날 일본의 국민 요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카레조차도 보급 초기엔 누렇고 걸쭉한 카레를 처음 본 수병들이 어린이가 싸 놓은 설사똥같은 걸 준다며 먹기를 거부하는 등 저항이 꽤 있었다.
식단 개선은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했고, 1884년 이후로 일본 해군에서는 각기병으로 죽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상술하듯이 보리밥 혼식이나 당시에 낯설었던 양식을 먹는것에 대해서 격심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이들이 나오는 등 문제도 있었다. 츠쿠바의 원양 항해 때도, 서양식 빵식에 적응 못한 수병들 일부가 보급받은 빵을 바다에 버려서, 식사 시간만 되면 주변 바다에 빵들이 둥둥 떠다녔다고 한다. 그나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이들이 내키지 않아도 양식을 먹기 시작하고 군대 특성상 가능한 강제로 먹이는 조치 등을 통해 점차 익숙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츠쿠바에서 발생한 소수의 각기 환자들이 죄다 이런 밥투정꾼들이라는 게 밝혀지며 타카키의 말이 설득력을 얻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됐다. 이 이론을 제시한 타카키가 쌀을 만악의 근원 비슷하게 생각해 매 끼니를 혼식으로 지급하게 한 탓도 있었는데, 사실 비타민은 인체에 극히 소량만을 요구하기 때문에 하루~이틀에 한 끼만 잡곡을 섞어도 아무 문제가 없으므로 좀 과한 조치이긴 했다. 하지만 카레, 니쿠쟈가처럼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개선한 조리법들이 차츰 등장하며 어떻게든 해결됐다. 현존하는 많은 서양식과 혼합된 일식 메뉴들은 이렇게 대부분 일본군 특히 해군에서 서양식 식단을 로컬라이징해 도입하려는 시도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들로, 전후 육해군 전역자들을 통해 민간에도 퍼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일본 육군은 일본군 내부의 해군과 육군간 자존심 문제가 있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해군 놈들'의 방법을 베끼기를 싫어했다. 그리고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반면, 일본 육군은 독일 육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독일인 로베르트 코흐의 세균설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아 세균설을 강하게 신봉하는 군의관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독일 유학파 출신 문학가 겸 육군 군의총감 모리 오가이가 각기병의 원인이 세균이라는 설을 지지하는 바람에, 육군은 러일전쟁 때까지 식단 개선이 없었다. 그래서 러일전쟁 당시 수많은 일본 육군 각기병 환자들에게 정로환을 처방했지만 당연히 효과가 없었고, 결국 전쟁중에 수만 명이나 각기병으로 사망하고서야 자존심을 굽히고 해군식을 받아들여 식단을 개선했다. 육군 군의총감이었던 모리 오가이는 훗날 학계에서 비타민B1을 발견해 각기병의 원인이 비타민B1 결핍임이 증명된 뒤에도 죽는 날까지 각기병 세균 원인설을 밀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육군은 그가 죽고 나서야 방침을 바꿨다. 이 때문에 모리 오가이의 군의총감 시절 경력은 흑역사로 통한다.
각기병은 일본인 병리학자 스즈키 우메타로가 1910년에 비타민 B1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나서 발병 기전이 해명되었으며, 비타민 B1의 복용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스즈키가 최초로 규명해냈다. 이 스즈키의 비타민 B1 발견은 인류가 처음으로 비타민이라는 물질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이었으며, 그의 발견 이후로 다른 종류의 비타민들도 속속들이 기능이 밝혀지면서 생물학계가 수십년 간 비타민 연구 열풍을 겪게되었다.
3. 발병 기전
- 인체 내에서 비타민B1은 TPP(Thiamine Pyrophosphate)의 형태로 존재한다.
- TPP는 피루브산에서 아세틸 CoA를 만드는 과정과, TCA 회로에서 중요한 조효소로 작용한다.
TCA 회로는 인체에 필수적인 에너지 통화(Enegry currency)인 ATP를 만드는 회로인데, 이 과정에 필수적인 조효소인 TPP가 티아민의 공급 부족으로 결핍되게 되면 ATP의 생성 또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해지며 심장 수축 등에 문제가 생기고, 그 결과로 혈액 순환의 문제, 심부전, 부종 등이 발생하게 된다. - TPP는 아세틸콜린 합성의 조효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TPP가 결핍되면 아세틸콜린의 합성에 문제가 생기고, 아세틸콜린의 합성이 지연됨에 따라 신경계의 여러가지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4. 치료
고용량의 비타민B1을 공급한다.5. 현대
현대에 이르러서는 곡류에 인위적으로 비타민을 첨가해 영양분을 강화하고 있고, 육류는 물론 다양한 식단을 섭취할 방법이 늘어나서 걸리기 힘든 병이 되었다. 하지만 인스턴트 식품은 장기보존을 위한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비타민이 파괴되기 쉬워 인스턴트 식품만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여전히 각기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일본에서 20~30대 독신남녀들이나 직장인[10]들이 갑자기 이 병에 걸린 적도 있었는데, 편의점 도시락과 인스턴트로만 3끼를 채운 사람들이었다.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일부러 작정하고 걸리려고 해도 힘든 병이라고 하지만 매일 매일 몇달 몇 년 동안 밥도 안 먹고 술만 먹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생긴다. 그나마 맥주는 비타민B가 풍부해 좀 낫지만, 맥주라고 해도 그렇게 먹다가 각기병에 걸리기 이전에 죄다 간경화나 심장마비나 중풍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알코올 의존증이 좀 심한 상태가 아닌 이상은 웬만한 알코올 중독자들 대부분이 이렇게 먹지 않겠지만, 심한 진성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술이 곧 밥이고 물이며 안주는 구색 맞추기일 뿐이다. 따라서 중독이 심한 사람은 오히려 말랐고[11] 상술한 대로 각기병 위험이 높다.
다른 영양분 결핍증세와 마찬가지로 재난상황 등의 물자가 부족한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기아 등에 의해 발생할 수는 있다. 만약에 대비해 상시 비타민을 섭취하고, 유통기한이 긴 영양제 등을 비축하는 것이 좋다.
인스턴트 라면은 각기병 예방을 위해 비타민 B1, B2를 인위적으로 첨가한다. 그래서 라면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으면 각기병에는 안 걸린다. 밀가루 덩어리인 라면 사리가 흰색이 아닌 노란 빛을 내는 이유가 바로 이 비타민 B2 첨가물인 리보플라빈을 넣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생물계열 학습만화에서는 각기병을 언급하면서 컵라면을 먹는 어린이 삽화를 종종 볼 수 있었을 정도로, 80년대에는 각기병의 원인으로 라면이 지목된 과거가 있다. 그때는 라면은 편식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밀가루가공품과 식재료에 다 집어넣는 비타민 첨가물은 어찌됐든 간에 성장기 아동에게 라면 한봉지론 영양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또한 6.25 전쟁 이후 1960-70년대에 어린이 비타민 보충과 각기병 예방을 위해 효모정제인 원기소에 비타민 B군이 잔뜩 들어있었다. 1980년대에 회사가 부도났지만 요즘 들어 다시 판매한다.
2005년 국민건강 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비타민 B를 1인당 하루 권장량의 120% 이상 섭취한다고 한다. 하지만 티아민은 쉽게 걸러지는 수용성 물질이라서 과다섭취한다고 해도 소변으로 간단히 배출되기 때문에 신장에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과다섭취를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고사리를 생으로 먹으면 안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고사리 내의 효소인 티아미네이즈가 체내의 비타민 B1을 개박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생 고사리의 중독 증상 중 하나가 각기병이다.
6. 기타
상록수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채영신이 죽기 전에 각기병으로 고생했으며 다만 직접적인 사인은 맹장염이다.한국에서는 괴혈병과 더불어 교과서나 TV 같은 매체에서 역사적 사례로는 자주 들어보지만 실제 발병 사례는 거의 보지 못하는 질병 취급[12]을 받는다. 이는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각기병 관련 기록은 500년동안 10건 내외로 기록되어 있으며 각기병이 제일 유행했던 시기인 상록수의 배경인 일제강점기에서도 문화통치시기 정도로 한정되어 있으며, 어정쩡한 중산층에서나 많이 걸렸기에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들한테도 낯선 병으로 인식된다.
사실 한국도 일본처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지배계층이 주로 쌀밥을 먹긴 했었다. 그러나 한민족들은 전통적으로 비타민 B가 있는 잡곡, 고기 섭취량이 일본에 비해 많았으며 특히 한식의 필수 향신료인 마늘은 비타민 B 덩어리 자체였기에 알게 모르게 한국인들은 비타민 B를 자주 섭취했던 것이다.
게다가 전술한 일제강점기 때도 백미는 지주들이 값을 높게 쳐주는 일본에만 팔았으니 다수의 조선인은 만주에서 수입한 좁쌀을 먹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미국에서 원조받은 밀가루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더구나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정부에서 대놓고 혼분식 장려 운동을 하기도 했고, 1980년대 이후로는 고기류의 섭취가 늘었다. 또한 한국인들은 일본처럼 흰 쌀밥만 고집하지 않고 나름 영양가도 있는 흑미를 넣은 흑미밥을 즐겨먹었기에 걸릴 일이 없게 된 것이다.
7. 각종 미디어에서의 등장
7.1. 서브컬처계에서의 등장
- 저, 능력은 평균치로 해달라고 말했잖아요!
단행본 6권 분량에서 리트리아가 각기병에 걸려 마일에 의해 치료받았다. - 문호 스트레이독스
관련 내용이 언급되었다. - 대장금
등장인물 중 하나인 자순대비가 각기병 증세가 있으나, 공교롭게도 각기병에 좋은 음식들[13]과 탕약을 못 먹는다는 설정이 붙었다. 결국 장금이가 자신의 수랏간 시절 주특기를 살려 환약(丸藥)을 먹기 좋게 만들었고 자순대비 역시 입맛에 맞는 그 환약을 먹고 차도를 보였다.[14] - 장금이의 꿈
2기 중 금강산 부분에서 아랫마을 사람들이 앓았던 질병으로 보인다. - 타임슬립 닥터 진
주인공을 도와 간호 일을 하고 있던 사키의 어머님이 흰 죽만 먹다가 발병한다. - 전국 코마치 고생담
치료법이 확실하지 않은 전국시대인 점을 이용해 치료법으로 공가쪽의 사람들을 오다 노부나가의 진영으로 회유하는 데 쓰며 서양선교사에게 치료법을 알려주며 대신 그 당시 일본서 구할 수 없는 생물들을 일본에 들여오는 거래를 한다.각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 그걸 치료했다고!?
7.2. 영화에서의 등장
문여송 감독의 1977년작 "진짜 진짜 좋아해"의 남자 주인공은 고등학생 마라톤 선수인데 극 중 각기 심장병에 의해 사망하게 된다. 의사의 진단이 각기 심장병이지만, 영어 자막이 각기병에 해당하는 beriberi heart disease이고, 대사에서 비타민 B1 결핍 때문에 발생한다고 명확히 이야기하고 있다.[1] 지금 먹는 도정 덜된 현미밥은 현대 기술로 적당히 최대한 도정하면서 어떻게 씨눈을 보존한 것이므로 과거의 도정 덜 된 막장 쌀과 비교할 게 못 된다. 게다가 극도의 개량으로 쌀 자체의 맛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도 감안해야 한다. 이전 시대의 "현미"는 현미가 아니라 꿀꿀이밥으로 봐도 무방하다![2] 맛이 없다는 문제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유럽 혁명사 뒷편에 갓 구운 밀빵을 못 먹으면 반란나는 현실이 숨어있었다. 이것은 감자의 보급을 늦추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과거 수준을 감안해도 일단 제대로 도정한 흰 쌀밥은 (갓 지은 것 한정) 그 자체로도 맛있는 것과 달리 빵은 버터 등 과거 매우 비싼 부재료가 안 들어가면... 몇 분 전에 새로 구운 빵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먹기 힘들 만큼 파멸적으로 맛 없었다. 이 또한 사회경제적 파급이 엄청났지만 이 문서에서 다룰 이야기는 아니다.[3] 쌀의 호분층은 쌀겨라 부른다.[4] 일본군에서 각기병이 문제가 되었을 때 사병들이 보리밥 혼식하면 바로 해결되는 걸 "흰 쌀밥 먹자고 군대 왔는데!"하며 불평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5] 상류층이야 먹을 게 훨씬 넉넉하니 각기병 걸릴 일이 없었고...[6] 그리고, 도정 -> 제분 -> 제빵이라는 3중 가공을 거쳐야 하는 밀에 비해 도정만 하면 되는 쌀은 엄청난 열량을 제외해도 우수한 점이 많았지만, 대신 가축 사료로 쓰는 보조 곡물과 함께 경작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웠다. 높은 인구 부양력을 대가로 너무 많은 기초 인력 소모와, 열량 대비 매우 큰 무게와 제분처리 불가에 의한 부담 가중이 만드는 매우 나쁜 운송 효율로 인해, 여분의 토지를 마련하기 어려웠으므로 가축 먹일 작물을 키울 여력이 날 수 없었다. 게다가 밀의 경우 반드시 윤작해야 했던 것과 달리, 쌀의 경우 모내기를 하는 무논을 쓸 경우 지력 소모가 0 수준이라 주구장창 쌀만 키우기 십상이었던 것은 덤.[7] 이는 나이아신 결핍이라는 개노답 문제를 만든 제분된 옥수수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나은 것이다. 이쪽의 경우에는 당대 기준으로 대책이 사실상 없다시피했다! (원주민들의 생존 비법인 맛 없는 닉스타말 처리를 거치는 것 말곤...)[8] 심지어 1950-60년대 까지만 해도 동남아에서 각기병은 엄청난 문제였다. 그 당시 필리핀,말라야 등지 건강 정보 관련된 거 보면 각기병 예방하자는 게 흔하게 나올 정도.[9] 1888년 일본 최초 박사 수여자중 한 명, 육군과는 다르게 다양한 섭취 방법을 동원해 각기병을 예방한 공적을 인정받아 후일 육군 군의감 모리 린타로는 받지 못한 귀족인 남작 작위를 받았다.[10] 구내 식당과 제대로 된 점심시간이 있는 회사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 영양사가 최소한 1주일에 몇 번은 밥에 잡곡을 섞는다. 소위 블랙기업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발생하기 쉬운데, 사원복지가 형편없는데다 과중한 노동시간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가 거의 불가능해서 그렇다.[11] 알코올은 1 g당 열량 7 kcal를 내는 고칼로리 성분이지만 그 자체가 몸에 축적되지는 않는다. 다만 술을 마시면서 다른 음식을 안주로 먹을 때 그 음식들의 탄수화물이나 지방이 몸에 축적되는 것을 촉진시킨다. 술을 마셔서 살이 찐다고 하는 건 이 때문이다.[12] 그래서 인지 일본에서 학교 신체검사를 받을 때마다 각기병 여부를 반드시 검사하는 것에 반해 한국에선 신체검사는 고사하고 교과서에서만 듣는 희귀병 취급 받는다.[13] 팥, 보리, 율무, 마늘, 대추, 다시마, 우렁이, 잉어 등[14] 대비가 평하길 환약의 맛이 율란과 같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달달한 맛이 돌도록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