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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기주쿠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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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62057> [ruby(慶應, ruby=けいおう, color=#F5F5F5)][ruby(義塾, ruby=ぎじゅく, color=#F5F5F5)][ruby(大学, ruby=だいがく, color=#F5F5F5)]
게이오기주쿠대학
Keio University

파일:게이오기주쿠대학 워드마크.svg

대학 정보
<colcolor=#fff> 정식 명칭 慶應義塾大学
모토 <colbgcolor=#162057><colcolor=#fff> 라틴어 Calamvs Gladio Fortior
한국어 펜은 칼보다 강하다
영어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설립 연도 1858년 란가쿠주쿠 (蘭学塾, 난학숙) ([age(1858-01-01)]주년)[1]
국가
[[일본|]][[틀:국기|]][[틀:국기|]]
소재 미타(三田) 캠퍼스
도쿄도 미나토구 미타
시바쿄리츠(芝共立) 캠퍼스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코엔
시나노마치(信濃町) 캠퍼스
도쿄도 신주쿠구 미카지마
히요시(日吉) 캠퍼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코호쿠구 히요시
야가미(矢上) 캠퍼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코호쿠구 히요시
쇼난후지사와(湘南藤沢) 캠퍼스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엔도
분류 사립대학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 (福沢 諭吉)
이사장 겸 총장[2] 제20대 이토 코헤이 (伊藤 公平)[3]
재학생 학부 28,747명 (2023년)
대학원 4,771명 (2023년)
교직원 교원 2,776명 (2023년)
직원 3,328명 (2023년)[4]
상징 마스코트 유니콘 (Unicorn)
색상
블루
레드
옐로우
링크 홈페이지 파일:게이오기주쿠대학 심볼.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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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와세다대학과의 라이벌 의식3. 출신 인물4. 역사5. 상징6. 교가7. 학풍8. 입학 관련
8.1. 내부 진학
9. 캠퍼스10. 세계대학평가 및 국제 교류11. 기타
11.1. 사건 사고11.2. 한자 표기에 관해
12. 조직
12.1. 학부12.2. 연구과12.3. 계열학교 (일관교육교)12.4.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 (SFC)
12.4.1. SFC 학부12.4.2. SFC 연구과

[clearfix]

1. 개요

파일:게이오기주쿠대학 캠퍼스.jpg
▲ 게이오기주쿠대학
▲ 게이오기주쿠대학 캠퍼스 소개 영상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약칭은 게이오([ruby(慶應, ruby=けいおう)]) 또는 게이다이([ruby(慶大, ruby=けいだい)])이다. 도쿄도 미나토구에 대학 본부를 두고 있다. 와세다대학과 함께 일본 최초의 사립대학 중 하나이며, 1920년 2월 5일 와세다대와 같은 일자에 대학 인가를 받은 것 등 밀접한 역사 관계가 있기 때문에 흔히 양측 사학을 지칭할때 소케이(早慶)[5]라는 약칭으로 부른다. 도쿄 6대학중 하나이기도 하다.[6]

게이오대는 역대 4명의 일본 내각총리대신[7]과 수백명 이상의 일본 정치인을 배출하였으며, 대한민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롯데 신유열 전무가 상학부 졸업,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본교 MBA 석사 출신이다.[8] 또한 일본항공 JAL의 창립자 반도 슌이치와 히타치 제작소의 창립자 쿠하라 후사노스케, 돈키호테의 창립자 야스다 다카오를 비롯한 일본의 여러 대기업의 회장, 사장 등 2019년 기준 가장 많은 상장기업 대표를 배출했다. #

게이오기주쿠대학은 '학교법인 게이오기주쿠(学校法人慶應義塾)'의 소속 학교로서, 계열학교로 소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소중고대 일관교(小中高大一貫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름 가운데 게이오(慶應, 경응)는 1868년 최종적으로 개칭된 교명이다.[9] 게이오기주쿠대학의 경우 공식 명칭이 '게이오기주쿠다이가쿠(慶應義塾大学)'이며, 학교 공식 홈페이지의 한국어 안내에서 '게이오기주쿠대학'이라고 표기하나, 일본인, 한국인 유학생 및 수험생들은 대부분 '게이오(慶應) 대학[10]'이라고 약칭으로 부른다. 영문 명칭 역시 '기주쿠'와 '대학'을 합쳐 '유니버시티(university)'에 대응시켜 Keio University라고 한다. 윤석열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일본 소재 대학 중 30년 만에 연설한 곳이기도 하다. # #

지역중핵 및 특색 있는 연구대학(J-PEAKS)[11]에 채택되었다.[12]

2. 와세다대학과의 라이벌 의식

설립부터 전통적으로 와세다대학과 고전적 라이벌 관계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친선 및 양교 간의 교류 증진을 위한 스포츠 등 각종 정기전인 "소케이센(조경전, 早慶戦)"을 매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의 앞 글자인 '조(早)'자와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의 '경(慶)'자를 따서 '조경전'이라 쓰고, 게이오대 측에서도 주로 '소케이센'이라고 읽는다. 소케이센(조경전)이라고 표기하는 게이오대학 공식 공지 # 게이오기주쿠대학 측에서는 '게이소센(慶早戦)'이라고 읽기도 한다. 소케이센은 한국의 연고전/고연전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소케이센과 연고전 뿐 아니라, 대표컬러, 더블캠퍼스정책 등 연세대는 게이오대의 영향을, 고려대는 와세다대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3. 출신 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게이오기주쿠대학/출신 인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한국경제에 의하면, 게이오대 동문회인 미타회라는 이름은 본교가 있는 도쿄 미나토구 미타캠퍼스에서 차용했다. 종합본부 격인 게이오연합미타회 산하에는 졸업연도별, 지역별, 업종별, 기업별로 800개 이상의 미타회가 결성돼 있으며 회원수는 약 38만명에 달한다.

4. 역사

5. 상징

파일:게이오기주쿠대학 엠블럼.svg 파일:게이오기주쿠대학 심볼.svg
로고 교장

6. 교가

게이오기주쿠대학 교가
게이오기주쿠 숙가([ruby(慶應義塾, ruby=けいおうきじゅく)][ruby(塾歌, ruby=じゅくか)])
일본어 한국어
一、
見よ
風に鳴るわが旗を
[ruby(新潮, ruby=にいじお)][ruby(寄, ruby=よ)]するあかつきの
嵐の中にはためきて
文化の[ruby(護, ruby=まも)]りたからかに
貫き樹てし誇りあり
樹てんかなこの旗を
強く雄々しく樹てんかな
あゝわが義塾
慶應慶應慶應

二、
[ruby(往, ruby=ゆ)]け
[ruby(涯, ruby=かぎり)]なきこの道を
[ruby(究, ruby=きわ)]めていよゝ遠くとも
わが手に[ruby(執, ruby=と)]れる[ruby(炬火, ruby=かがりび)]は
叡智の光あきらかに
ゆくて正しく照らすなり
往かんかなこの道を
遠く遥けく往かんかな
あゝわが義塾
慶應慶應慶應

三、
起て
日はめぐる丘の上
[ruby(春秋, ruby=はるあき)]ふかめ揺ぎなき
学びの城を[ruby(承, ruby=う)]け[ruby(嗣, ruby=つ)]ぎて
[ruby(執, ruby=と)]る筆かざすわが[ruby(額, ruby=ぬか)]の
[ruby(徽章, ruby=しるし)]の[ruby(誉, ruby=ほまれ)]世に[ruby(布, ruby=し)]かん
生きんかなこの丘に
高く新たに生きんかな
あゝわが義塾
慶應慶應慶應
1절
보라
바람에 날리는 우리의 깃발을
새 물결 이는 새벽의
폭풍우 속에서 펄럭이며
문화의 수호 높다랗게
한결같이 우뚝서니 자랑스럽다
세우지 않겠느냐 이 깃발을
굳세게 씩씩하게 세우지 않겠느냐
아아 나의 의숙
게이오 게이오 게이오

2절
가라
끝 없는 이 길을
끊임없이 가라 아무리 멀더라도
우리 손에 쥐어진 횃불은
뛰어난 지혜의 광채 환하게
가는 길 바르게 빛추리라
가지 않겠느냐 이 길을
멀리 또 멀리까지 가지 않겠느냐
아아 나의 의숙
게이오 게이오 게이오

3절
서라
해는 비치는 언덕의 위
한 해 세월 깊게 흔들림 없이
배움의 성채를 이어받아
잡은 붓을 비추는 우리의 이마에 빛나는
휘장의 명예를 세계에 수놓자
살지 않겠느냐 이 언덕에
높고 새로이 살지 않겠느냐
아아 나의 의숙
게이오 게이오 게이오

작곡은 일본의 원로 첼리스트 노부토키 기요시(信時潔), 작사는 일본의 작가이자 본 대학 교원, 명예 박사를 직임한 도미타 마사후미(富田正文)가 맡았다.


7. 학풍

'실학' 또는 '실용적인 학문'을 교육의 기본이념으로 정하여 사회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학문을 연구한다. 창립자이자 교육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네덜란드에서 유래한 일본내 근대 실학의 본류였던 난학(蘭學)에 기초하여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이러한 난학에는 정치학, 법학, 외교학을 비롯하여, 의학, 이학(理學), 공학 등 다분야적인 근대 학문의 기초가 포함되었으며, 이는 그가 창립한 게이오기주쿠의 정체성의 확립과, 본격적인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한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실제로 이런 교풍 하에서 졸업생들은 주로 재계에 많이 진출한다. 특히 재계에서 중역으로 자리잡은 졸업생들이 다시 자녀를 게이오기주쿠대학에 진학시켜 학벌을 통한 부와 권력의 이양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오래전부터 부유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본교의 본 캠퍼스가 위치한 도쿄의 미타(三田)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미타카이(三田会)'라고 불리는 동창회가 유명하며[15] 대학수험을 하지 않은 이들이라도 일본 내에서 ‘게이오’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드물다. 미타카이로 대표되는 이러한 졸업생-재학생 간의 커뮤니티는 게이오 대학을 포함한 부속 고등학교,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까지 재단에 소속된 학교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상술했듯 그들의 학부모 역시 졸업생인 경우가 많아, 졸업생을 '쥬쿠인(塾員, 숙원)'이라 부르며 여전히 학교 울타리 안의 구성원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렇게 학교 전반에 엘리트 주의가 만연할 것만 같은 예상과는 달리, 현재는 그러한 이미지를 많이 탈피한 상태다. 과거에 존재했던 내부생(별도의 대학입시 없이 같은 재단 내에 속해 있는 학교에서 양호한 성적을 거둘 시 자동으로 진급하는 제도를 통해 입학한 학생)과 외부생(일반입시를 통해 입학한 학생 또는 유학생) 간의 차별 대우, 타 대학에 대한 멸시 등은 사실상 거의 사라진 상태다. 혹여 이러한 것들을 조장하는 학생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학생들 사이에서 뒷담화의 대상이 될 확률이 매우 크며, 이는 지난 수십년간 대대적인 국제화 및 개방화를 위해 노력해 온 학교의 방침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으로써, 학교 내에서도 상당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실제로 일본 대학 전반은 빠르게는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세계화 전략을 펴왔으며, 게이오대학 역시 일찌감치 이러한 조류에 적응하려 애써왔다. 이러한 노력은 본 대학의 유학생 입시 제도의 확대에도 영향을 주었다.

8. 입학 관련

8.1. 내부 진학

게이오대학의 부속 고등학교 졸업생은 웬만하면 시험 없이 게이오기주쿠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이렇게 입시를 거치지 않고 같은 학교법인 소속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에스컬레이터식(エスカレーター式)이라고 한다. 게이오 부속 고등학교 중 대표격에 해당하는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의 경우 2019년 졸업생 808명 중 797명이, '게이오기주쿠 여자고등학교', '게이오기주쿠 시키고등학교'[18]에서도 매년 수백 명의 졸업생이 게이오대학에 무시험 진학한다. 이렇게 대학에 올라온 대학생들은 '내부생(内部生)'이라 불리며, 게이오의 교풍을 주도하는 그룹이 된다.

게이오 부속 고등학교에서 게이오대학으로 내부진학을 하는 학생들의 학력 편차는 천차만별이다.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여자고등학교 과정 입시의 편차치76이다. 게이오 입학 보장이라는 메리트가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이다. 하지만 부속초등학교인 유치사에 입학한 뒤로 별다른 수험공부 없이 무시험 전형으로 대학에까지 내부진학한 금수저는 당연하지만 학력 면에서 그다지 두각을 드러낸다는 평은 없다. 그러나 값비싼 사립대의 학비[19]를 길게는 초중고대 16년간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의 기업인, 전문직, 정치인[20], 연예인, 그 외 여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자녀들이 초중고 내부 진학생 중 많기 때문에 대학부터 게이오인 사람들은 4년만 학교에 다니는 '손님'이며, 대학 입학 이전부터 게이오에 소속해 온 자신들이야말로 진짜 게이오 보이/걸이라고 여기는 등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구별의식이 강하다. 이들 내부생은 인원도 많은 편이며[21] 단결력도 높고 게이오에 오랜 기간 재적하여 문화에도 친숙하며 장차 부모의 사회적 계층을 그대로 물려받을 고위층 자녀가 대부분인 등 여러 요소가 모두 이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교내의 주류를 구성하며, 오히려 정당하게 입시를 치러 들어온 외부 출신이 비주류 취급을 받는다고 성토하는 소리도 많다.

게이오 전체에서 고등학교에서 내부 진학으로 올라온 비율은 24.3% 정도로, 실제로 내부진학 희망 학생은 100% 진학한다. 한 해 약 1400명정도 진학한다고 한다.

게이오대학의 입학은 보장하지만 학부 결정에선 내부생의 내신을 반영하기 때문에 의학부, 경제/법학부 등 인기 학부는 경쟁이 치열하다.

9. 캠퍼스

10. 세계대학평가 및 국제 교류

국제적인 평가로는 QS 세계 대학 랭킹에서 2025년 기준 188위(일본 10위)를 차지했다. THE 세계 대학 랭킹 2024년 기준 601-800위(일본 랭킹 14위),CWTS 레이던 랭킹[23] 2021년 540위[24]/980위[25] ,ARWU 2024에서는 301-400위(일본 10위)를 기록했다. 학술 연구 성과 지표인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는 2024년 일본 10위를 기록했다.

한국 대학 중 가장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으며 비슷한 학풍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학교는 연세대학교이다. 소케이전(와세다-게이오전)이 초창기 연고전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과, 도쿄에 근접한 항구도시인 요코하마가 있는 가나가와현의 히요시캠퍼스에 보내는 정책을 참고로, 연세대도 모든 1학년생을 인천광역시의 송도캠퍼스로 보내고 있다는 점 등이 유사하다. 그 밖에도, 대표색상이 남색과 곤색으로 같은 청색 계열이고, 동문회의 기부적립금이 사립대학중 가장 많다는 등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실제로 게이오기주쿠대학의 해외거점 중 하나를 연세대학교에 두고 있으며, 연세대와 석사, 박사 복수학위를 2005년부터 제공하고 있다. 연세대-게이오대 복수학위 연세대 기사 그 밖에도, 게이오대/연세대/홍콩대 3Campus 프로그램 등을 통해 아시아의 주요 대학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교 중 상호간 학부 교환학생을 보내고 있는 학교는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부산대학교 이며,특히 상호간 숙식비 장학제도가 있어 1학기 380여 만원을 대학에 미리 내면 월간 10만엔씩 6~7개월을 지원받을 수 있다. 미국 아이비 리그브라운 대학교,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등 전세계 여러 대학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한국 대학과 연구교류협정관계는 하기와 같다.

11. 기타

11.1. 사건 사고

11.2. 한자 표기에 관해

게이오기주쿠를 구자체로 표기(慶應義塾)하거나 신자체로도 표기(慶応義塾)하지만, 이 대학은 구자체(慶應義塾)로 쓰고 있다.[40] 단 '대학' 부분은 신자체 大学으로 고쳐서 표기한다. 게이오(慶應)는 고메이 덴노연호이기도 하니 이 부분만은 획을 줄여 쓰기를 꺼려서[41] 원래의 표기를 고집한 것 같다. 출판사나 언론사, 또는 필기할 때 신자체(慶応義塾)로 쓰는 경우도 있는 듯하지만 대학 측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듯.

慶이 획이 많은 관계로 이 대학 학생들 사이에서는 장난스러운 비공식 약자가 쓰인다고 한다. 慶가 일본어에서 K와 발음이 같으니까 慶 대신에 广 안에 K를 집어 넣은 형태로 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두 번째 글자 應 또는 応까지도 발음이 같은 O를 이용해서 广 안에 O를 집어넣은 형태로 바꿔쓰는 경우도 있다. 아예 더 나아가서 두 글자 모두 广가 공통 요소로 있으므로 한 글자로 합쳐서 广 아래에 KO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12. 조직

12.1. 학부

[ 펼치기 · 접기 ] 학부 리스트
* 문학부

12.2. 연구과


상기의 연구과 과정은 학부와 연계되어 학사와 석박사의 경계가 모호하다. 특히 한국과 달리 이공계는 내부진학률이 80% 가량이라 따로 노는 경향이 거의 없다. 하기의 대학원은 사회인 (직장인) 전문직(専門職) Professional 대학원으로 학부과정은 없고 석박사과정만 존재한다. 그래도 게이오의 동문이 되기 위해 일본에서는 인기가 많고 실제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도 게이오 MBA 출신이기도 하다.

12.3. 계열학교 (일관교육교)

12.4.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 (SFC)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소재한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신설 캠퍼스.[48] 1990년에 설치.

SFC(쇼난 후지사와 캠퍼스)는 게이오기주쿠의 6개의 캠퍼스 중 한 개의 캠퍼스 일 뿐, 분교는 아니다. 또한, SFC라는 이름은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Shonan Fujisawa Campus)의 약자이며, 영어 이니셜을 붙이는 것으로 게이오대학측에서 의도적으로 캠퍼스의 이름을 브랜드화 시킨 것이다.

학부는 종합정책학부, 환경정보학부, 간호의료학부, 대학원은 정책 미디어 연구과, 건강 매니저먼트 연구과,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게이오기주쿠 쇼난 후지사와 중등부와 고등부가 설치되어 있다. 특히 종합정책학부의 경우, 일본에는 상당수의 대학에 종합정책학부라는 명칭의 학부가 있는데, 쇼난 후지사와 캠퍼스의 종합정책학부가 일본에서 최초로 창설된 종합정책학부로 대학개혁의 선구자로 주목을 끌었다.

설립 이래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학을 중시하는 학풍에 따라 기존의 학문적 틀에서 벗어나 학제간 연구 및 융합학문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1986년에 새로운 캠퍼스와 학부의 설치가 결정되었고 캠퍼스 시설 공사와 인허가 등의 절차를 거쳐 1990년에 학부가 1994년에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었다. 당초 SFC의 학부 과정은 단일학부로 개설할 계획이였으나, 문과와 이과를 분리해 개설을 요구한 문부과학성에 의해 지금은 문과에 해당하는 종합정책학부와 이과에 해당하는 환경정보학부로 나뉘어 학부가 설치되었다. 실제로 두 학부는 필수과목과 연구영역에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기반과목과 첨단과목의 이수 조건에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두 학부는 서로 학제적으로 과목을 이수할 수 있다.

위 내용과 같이 두 학부의 역사는 길지 않다. SFC는 21세기에 들어서 전국의 각 대학이 종합정책학 혹은 환경 및 정보 관련 학부를 설치 하는것에 큰 영향을 주었고 융합 학문과 학제적 연구를 주도하는 문부과학성의 대학원 지원 정책에도 큰 공헌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2012년에 문부과학성의 리딩 대학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정부 지원을 받는 20개 프로젝트 중에서 S 평가를 받은 3개 프로젝트 중 하나가 SFC가 주도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입시 면에서는 설립 초기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 SFC는 학내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유지하기 위해 두 학부의 정원의 1 / 4 를 학생의 성적과 관계없이 사회적 활동실적만을 고려한 AO입시[49] 개인의 역량을 보고 선발하고 있다. 또한 일반 입시제도는 수험과목이 수학 또는 영어 선택, 그리고 소논문 형식인 두 과목 형식[50]이라 게이오기주쿠대학의 타 학부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 SFC가 이러한 입시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소논문을 통해 문제 해결능력을 가진 수험생을 선발하면서 수험생들이 자신의 흥미 분야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라고 설명한다. 다만,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SFC는 수험과목이 적어 난이도가 쉽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글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51]

2009년 부터 2013년 까지 재일교포 출신이자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였던 전길남 박사가 SFC 정책 미디어 연구과 특별연구 교수로 재직하였다. 일본의 인터넷 아버지라고 불리는 무라이 쥰(村井純) 박사도 SFC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

학생 라운지엔 서브웨이가 있다. 타 매장에 비해서 소규모 매장이기 때문에 소스, 빵의 선택지가 적으므로 잘 확인해야 한다.

캠퍼스에 호수가 위치해 있는데, 정식 명칭은 걸리버호수(ガリバー池)이나 오리가 서식하고 있어서 오리호수(카모이케)(鴨池)라고 불린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한 캠퍼스 고유의 문화가 있는데, 바로 호수 앞의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과제를 하거나, 유유히 휴식을 취하거나 하는 것이다. 이를 카모루(カモる)라고 하는데, 카모이케(鴨池)의 카모에 る를 붙여서 동사화 한것이다.

12.4.1. SFC 학부

12.4.2. SFC 연구과


[1] 당대 수많은 교육기관처럼 난학을 가르치는 곳으로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0년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으로 승격되었다.[2] 사실 게이오에서는 총장이라는 직함은 없고, 대신하여 숙장(塾長)을 사용한다. 대학뿐만이 아니라 부속 소학교,중학교,고등학교까지 걸친 학교법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의 대표라는 뜻.[3] 프로필, 일본어[4] 계약직 포함[5] 와세다와 게이오의 머리글자를 음독으로 읽은 것이다. 물론 게이오기주쿠대학 입장에서는 게이소(慶早)라고도 한다.[6] 유사하게 2000년대부터 한일 4대학 연맹 행사도 한다.[7] 이누카이 쓰요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하시모토 류타로, 이시바 시게루[8] 두 명 모두 할아버지가 (신격호, 이병철) 소케이 라인 대학인 와세다대학 출신이며, 이재용은 아버지도 와세다대학을 졸업했는데, 이재용이 서울대 졸업 후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에 유학한 것은 부친인 고 이건희 회장의 권유 때문이라고 한다. 조부, 부친의 일본 학연 인맥 네트워크를 물려받으면서 이를 확장하기 위한 일환으로 사료된다. #[9] 고메이 천황이 1865년부터 1868년까지 사용한 일본의 연호이고, 기주쿠(의숙, 義塾)는 근대에 동양에서 사립 교육기관을 이르던 말이다. 게이오기주쿠대학 측에서는 한국어 홈페이지 등에 한국어 교명을 게이오의숙대학이 아닌 게이오기주쿠대학으로 소개한다. 사실 한국에서도 양정의숙, 휘문의숙 등 '의숙'이란 말을 붙인 교육기관이 있었으나, 오늘날 한국어에서는 교육기관명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다만 학교법인명으로는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어휘상으로는 '기주쿠(義塾, 의숙)' 뒤에 '대학'을 또 붙이면 겹말이 되지만, 일본 현지에서도 의숙이라는 말은 예스러운 고유명사 취급을 받아 '기주쿠대학'과 같은 표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10] 다이가쿠[11] 슈퍼글로벌대학의 지원이 끝난 이후, 문부과학성이 연구력 강화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12] 사실상 사립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채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은 사립대학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립 형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13] 쉽게 말해 게이오 의숙. 19세기 후반 당시 조사 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후원을 받아 게이오 의숙에 다니게 된 조선인 유학생이 바로 유길준이다.[14] 재단법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에 대학령에 의한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學)을 설립하는 건을 다이쇼 9년 2월 5일 인가한다.[15] 심지어 라이벌인 와세다대학 안에도 미타카이가 있다고 한다. 물론 (당연하지만) 그 역은 존재하지 않는다.[16] 약 75%가 간토 출신이며 도쿄도 출신은 40%에 육박한다[17] 물론 사립대학에도 센터시험을 이용해서 입학하는 입시전형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입시전형에 비해 난이도가 매우 높고, 선발정원은 매우 적기에 사실상 없는 수준이라고 봐도 된다.[18] 시키고등학교는 게이오기주쿠 고교, 게이오기주쿠 여고와는 달리 유치사 또는 중등부/보통부에서 올라오는 내부생들은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시험쳐서 들어온 외부생들이 90% 정도가 된다고 한다.[19] 해당 링크를 참조하면 알 수 있는데, 부속 초등부의 등록금은 입학 첫 해에 163만엔에 재학 중엔 129만엔, 중등부는 첫 해 143만엔에 재학 중 109만엔, 고교는 첫 해 132만엔에 재학 중 98만엔으로 게이오대학의 등록금과 비슷하거나 비싸다. 거기에 요코하마 초등부라든가 쇼난 후지사와 고등부 등의 부속학교는 이보다도 비싸다.[20] 나카소네 야스타카기시 노부치요 등 세습 정치인 가문이 많다.[21] 다만 고교 출신 내부생이 워낙 많아서 그렇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부 진학을 해온 인원은 상대적으로 수가 적고 내부생 중에서도 어나더 클래스로 취급받는다.[22] 경영관리연구과(KBS), 시스템디자인매니지먼트연구과(SDM), 미디어디자인연구과(KMD)[23] 해당 평가는 논문의 질 등 여러 지표에 따라 순위가 다르기에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 중 하나인 P(top 5%)와 PP(top 5%)를 기준으로 했다.[24] P(top 5%): 상위 5% 논문의 수[25] PP(top 5%): 해당 대학의 상위 5% 논문의 비율[26] 여학생의 경우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와세다는 여학생 입학을 허락하고 있지 않았기에, 일본의 황족 자제들이 다니던 학교인 가쿠슈인과 주로 비교되곤 했다.[27] 한국에서는 성균관대학교가 그나마 비슷한 경우이긴 하다. 성균관(成均館)이라는 말이 유교 이념에서 따온 성균(成均)+관청을 뜻하는 관(館)이기 따문에 한국식 작명법을 따른다면 성균대학교가 되어야 하겠지만, 성균관 그대로 사용했다.[28] 사립대학 의학부 학비가 비싼 곳은 1학년은 게이오의 3-4배, 2-6학년은 2배까지 간다.[29] 아버지가 엘리트 관료이다.[30] 대학원 석사과정에 한해 복수학위 프로그램을 통해 연세대학교와 게이오기주쿠대학에 동시에 재학할 수 있다. 단, 연세대학교에서는 국제대학원, 정치학과, 경제학과, 사회학과가, 게이오기주쿠대학은 SFC의 정책미디어연구과가 대상.[31] 独立自尊, 実学, 気品の泉源, 半学半教, 自我作古, 社中協力[32] 그러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과 전통은 큰 틀에서 유지되지만, 세부적인 점에 대해서는 현대적인 관점에 맞추어서 계속되는 비판과 수정이 가해지고 있다. 서류상의 호칭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으나, 실제 대화시에는 선생이라고 호칭한다. '교수님'이라고 하지 않는 것부터가 전통도 전통이거니와 매우 진보적인 분위기의 대학교임을 나타낸다.[33] 학점 제한이 있다고 한다.[34] 물론 도쿄대학 같은 곳보다는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선수가 많다.[35] 다른 기부처의 예시로 정책연구대학원대학, 도쿄해양대학이 있다.[36] 당시 사건이 언론사에 보도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사건은 일본 내에서 크게 번지진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연달아 터지는 이들 가해자 집단과 대학 측의 화려한 병크들 때문에 사건은 점점 커져갔다.[37] 결국 동아리만 해체되고 가해자들은 해당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지만,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여론이 악화되는 수준이 상당해지자 대학 측은 11월 5일 이들 강간 가해자들에게 무기한 정학이라는 매우 가벼운 처벌을 내리면서 일본 내에서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38] 미스 게이오의 주관 동아리가 바로 해당 사건이 일어난 광고학 연구회였고, 해당 범죄가 일어난 원인 역시 미스 게이오를 앞두고 합숙하던 도중에 발생한 일이다.[39] 참고로 히요시역에서의 난동으로 2009년도 미스 게이오 대회는 중지되었지만, 그 이듬해인 2010년에 다시 부활했다.[40] 일본의 구자체는 표준은 아니나 인명 등에서 여럿 쓰인다.[41] 아예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날 연호 게이오를 공식 문서에서 신자체(慶応)로 쓰긴 한다. 다만 굳이 예를 표하고자 할 땐 구자체를 쓰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을 극도로 높이는 존칭인 사마(様)를 좀 더 정성스럽게 써서 존경을 표하고자 할 때 구자체인 사마(樣)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42] 이 대학원의 석사과정은 경영학 분야의 학술석사이며 MBA과정은 아래의 경영관리연구과에서 담당한다.[43] 경영대학원이다. MBA(경영학 석사)과정은 이 대학원에서 담당한다. MBA과정에서는 특이하게 졸업에 있어서 석사논문을 필수로 작성해야 한다. 만약에 정규 석사논문을 쓴 MBA 졸업자가 해외의 박사과정 지원할 경우, 이력서에 'MBA by research'로 명기한다. 그리고 와세다대학의 경영대학원(Waseda Business School)은 박사과정이 없고 MBA과정만 존재하며 MBA과정에 대한 다양성을 추구(전일제, 1년제, 야간 파트타임등)하는데 반해 게이오대학 경영대학원은 MBA과정은 전일제만 존재하지만 박사과정이 존재한다.[44] 일본에서 유치사라는 명칭에 대한 개그도 존재한다.[45] 입학 시 기부금으로 일단 300만 엔 내고 시작한다. 그리고 아무리 바보일지라도 대학 진학까진 걱정이 없다.[46] 정확히 말하면, 수의축산전문학교가 전신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수의축산전문학교를 대학 농학부로 전환하려고 했으나, 전쟁피해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게이오기주쿠에서 설치할 여력이 없었고, 결국 폐교되었다. 이후 농업고등학교로 전환하여 운영되다가, 1957년 현재의 보통과 학교로 전환되면서(동시에 교명도 현재의 교명으로 변경) 대학 내부진학이 실시되었다.[47] 전신이 전신이다 보니, 게이오기주쿠에 속한 다른 고등학교와는 달리 이질적인 느낌이 강하고, 실제로 게이오기주쿠의 중등부, 보통부 남학생들이 이곳으로 진학하는 경우는 10% 미만에 불과하다. 현재 고등학교로 쓰이고 있는 건물은 1945년까지는 대학예과로 쓰이던 건물이었다.[48] 게이오기주쿠대학의 종합정책계열 이원화 캠퍼스.[49] 이러한 선발과정은 게이오기주쿠대학의 명예와 전통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50] 소논문 작성은 한개의 과목으로 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한과목 입시인 셈.[51] 두과목 입시인 종합정책학부와 환경정보학부의 편차치70이다. 그러나 센터시험을 수험하지 않고 다른 대학에 비해 과목수가 적어 사립대 자체가 편차치가 높은 경향이 있으므로 편차치만으로 비교는 불가능하다. 애초에 SFC는 기존의 대학 편차치주의를 벗어나 학생 개인의 사고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합격기준을 다른과목보다 소논문시험에 비중을 크게 둔다고 한다.[52] 1~2학년에 해당. 3~4학년은 시나노마치 캠퍼스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