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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신당 | |
공식 명칭 | <colbgcolor=#fff,#1F2023>국민신당 (國民新黨, New National Party) |
창당일 | 1997년 10월 10일 |
해산일 | 1998년 9월 28일 (해산 직후 새정치국민회의에 일괄 합류)[2] |
선행 조직 | [[신한국당|]] (이인제 신한국당 대선경선 불복으로 대선출마를 위해 이인제계가 탈당) |
해산 전 총재 | 이만섭 / 7선 (6·7·10-12·14·15대) |
해산 전 원내총무 | 이용삼 / 재선 (14·15대) |
해산 전 사무총장 | 박범진 / 재선 (14·15대) |
해산 전 정책위의장 | 한이헌 / 초선 (15대) |
중앙당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70길 15-1 (여의도동) |
의석 수 | 8석 / 299석 |
당 색 | 청록색 (#336C77) |
푸른색 (#195D9E) |
[clearfix]
1. 개요
중앙당사는 초기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안원빌딩 3, 5, 9층, 장덕빌딩 8층[3], 남중빌딩 8층[4] 등 3곳을 쓰다가 이후 구 신한국당이 쓰던 극동VIP빌딩으로 이사갔다. 해산 후 당사 사무실은 새정치국민회의로 넘겨져 정책위원회 사무실이 됐다.
2. 상세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는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결선에 진출하였으나 패배한 후, 아들 병역 의혹을 계기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신당을 창당했다. 신한국당의 서석재, 황명수 등을 포함한 민주계[5] 일부와 박범진 등 민정계 일부 정치인들이 합류하였다. 창당대회에서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총재, 이인제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당명을 PC통신 등을 통하여 공모하였다. 공모된 이름은 '새시대국민연합', '참여민주당', '국민참여당' 등의 이름이 있었지만 모두 진부하거나 당시 김대중이 총재로 있던 정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국민정당'과 '21세기 국민연합'을 놓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결정된 건 국민신당. 일본에서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일본신당에서 힌트를 얻은듯 하다.[6]
창당 시점에는 한때 지지도에서 이회창 후보를 앞지르고, 김대중 후보를 바짝 추격할 정도로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창당 과정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측근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의혹이 이회창, 김대중 모두로부터 제기되었고, 그 해 초 국정 비리로 구속되었던 김현철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국민신당과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은 허무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인제는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이회창(한나라당)에 이어 3위(492만표, 19.2%)로 낙선하였다.[7] 1998년 6월 4일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DJP연합 대 한나라당의 구도 속에 전일순 후보가 충청남도 논산시장에 당선되는 데 그쳤다.[8][9] 그리고 그 해 7월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1명의 당선인도 배출하지 못했다.
결국 1998년 8월 28일 이만섭 전 총재[10]와 이인제 전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6명의 소속 국회의원[11]과 전일순 전 논산시장 등 이인제계와 대다수 당원은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고, 김학원 전 의원, 송광호 전 의원은 탈당 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으며, 한이헌 전 의원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남으면서 소멸되었다.[12] 이들 중 원유철 등 대부분은 그 후 다시 친정인 한나라당에 복당하였고[13], 이인제도 여러 차례의 당적 변경 끝에 2012년 새누리당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피닉제 전설의 시작. 국민신당을 창당하기 전의 이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닮은 외모로 중장년층에서의 인기가 높았으며 노동부장관을 지내며 쌓은 소신있고 능력있는 이미지로 젊은 층에서도 환영받았다. 하지만 실제 대선에서는 중장년층 지지율이 이회창으로 쏠리면서 선거를 말아먹기는 했지만 젊은층 사이에서 지지는 남아있었기 때문에 19%라는 득표율을 올렸던 것이었다. 요새 이미지와는 천지차이.
3. 역대 지도부
4.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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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내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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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대 선거 결과
-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이인제 득표수 4,925,591표, 득표율 19.20% 낙선 (3위)
-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자치단체장 후보[14], 광역의회의원 후보 전원 낙선, 기초자치단체장 후보 1명 당선[15]
- 1998년 4월 재보궐선거 - 이종혁(부산 서구), 신진욱(경북 의성군) 전원 낙선
- 1998년 7월 재보궐선거 - 박찬종(서울 서초구 갑), 김정태(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전원 낙선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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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정부 이후 |
[1] 공식적으로는 해산 후 개별 합류했지만, 사실상 흡수 합당에 가까운 형태로 합류했다.[2] 자민련 합류파를 제외한 당원들 전체가 무소속을 거치지 않고 해산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 되는 등, 실질적으로 흡수 합당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실제로 몇몇 기사에는 흡수 합당이라고 보도되었다. 또한 한나라당으로 넘어간 자유민주연합과 달리 당 재산까지 전부 새정치국민회의로 넘어갔다.[3] 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4] 이후 해당 건물 8층은 게임회사인 메가 엔터프라이즈가 입주했고 친박연대 중앙당사가 위치했었으며, 이후에는 새누리당 서울시당이 위치했다. 2020년에는 국민의힘이 해당 건물을 통째로 매입하여 중앙당사로 삼았다.[5]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되고 나서의 구 통일민주당 출신 정치인을 말한다.[6] 한때 'XX신당' 류의 이름이 여러 곳에서 쓰였다.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한 김용환 의원이 세운 희망의한국신당이라든지. 몇 년 후 민주당계 정당 중 하나인 대통합민주신당도 신당 명칭을 사용했다. 한참 이후에는 이준석이 세운 개혁신당도 생겼다.[7] 이 기록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699만표, 21.4%)를 얻기 전까지는 제3지대 정당 최고득표율 이었다.(이인제가 갱신하기 전까지 제3지대 정당 최고득표율은 전 선거인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388만표, 16.3%)).[8] 잘 알려져 있다시피 논산시는 이인제의 고향으로, 그의 4선(전체경력은 6선) 텃밭이었다. 그나마도 전일순은 2000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9] 이때 국민신당 소속으로 출마한 사람 중 추후 당선된 사람은 이훈국 인천 서구청장, 김동식 김포시장, 오세창 동두천시장, 임창선 여주군수가 있다.[10] 이후 차기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다시 한 번 역임하였다.[11] 김운환, 박범진, 서석재, 원유철, 이용삼, 장을병.[12] 그나마도 한이헌은 이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한다.[13] 민주당에 그대로 눌러앉은 일부 인사로는 이만섭, 홍재형, 이용삼, 박수현 등이 있다.[14] 울산광역시장 후보 강정호, 대전광역시장 후보 송천영 인천광역시장 김용모 후보 대구광역시장 후보 유성환.[15] 충청남도 논산시장 전일순 후보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