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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5:21:26

금란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금란교회
金蘭敎會 | Kumnan Methodist Church
파일:금란교회 로고.svg
파일:external/pds.skyedaily.com/1356021216N9ecQ4qrRvkckpSI.jpg
<colbgcolor=#0c4da2><colcolor=#ffffff> 설립일 1958년 11월 ([age(1958-11-01)]주년)
소속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소속교단 기독교대한감리회
담임목사 김정민 (2008~)
표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물든 교회 (요한복음 13장 34~35절)
위치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455 (망우동)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규모4. 논란 및 사건사고
4.1. 前 담임목사 김홍도 논란 및 사건사고4.2. 문화방송 본사 점거 농성4.3. 보수우익집회 교인 동원 논란
5. 여담6. 연계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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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식 명칭은 금란감리교회(金蘭監理敎會, Kumnan Methodist Church)[1]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에 위치한 개신교 감리회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이다. '금란'이라는 이름은 이화여자대학교 제7대[2] 총장인 김활란[3]의 성씨인 김(金)과 이름의 끝인 란(蘭)에서 딴 것이다.

2. 역사

파일:Kumnanchurch1958.jpg 파일:Kumnanchurch1961.jpg
1958년 천막교회 시절의 금란교회 1961년에 완공된 금란교회 본당
파일:Kumnanchurch1971.jpg 파일:Kumnanchurch1973.jpg
1971년에 증축된 금란교회 본당 1973년에 완공된 금란교회 본당
파일:Kumnanchurch1984.jpg
1984년에 완공된 금란교회 본당

1958년 11월에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4]에 천막을 치는 것으로 설립했다. 이화여대에서 기증한 부지에다 본당을 건설했는데 1971년 3월에 김홍도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기 시작한 후, 교인 수가 늘면서 1973년에 교회 건물을 증축하기도 했다.

교인수가 늘기 시작하다보니 80년대 이후에는 원래 있던 교회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기 시작했는데 원래 있던 교회건물을 허무는 동안에는 인근 건물이나 부지를 임시로 사용하기도 했다.

1982년 8월부터 1984년 8월까지 교회의 맞은편 건물을 임시로 사용했다.[5]

1990년대 이후에는 본당 주변에 교육관 건물을 세우기도 했고 1984년에 완공한 건물을 1995년에 허물고 새로 짓기 시작해 2000년에 완공했다. 본당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는 기간에는 송곡고등학교 주변의 부지에다가 임시건물을 세워 사용하기도 했다.[6]

이 교회와 한때 자유주의적 신(新)신학이 대세였던 감리교신학대학교가 충돌하는 일이 있었고, 해당 총장이 제적되면서 감신대가 복음주의 노선으로 전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3. 규모

2000년에 완공한 본당 건물을 보면 10층 규모로 지어졌는데, 위의 사진이 금란교회 구조도이다. 지하6층부터 지상10층까지 있는데, 지하6층부터 지하3층이 지하주차장이다. 여기에 올라온 금란교회 건물 내부모습 사진은 3~5층에 있는 대성전이다. 대성전의 좌석은 약 7000석이다.

7~10층은 성가대가 연습하는 곳과 영유아부, 소년부, 초중고등부 교사실, 교회학교 사무실, 청년회 사무실, 교회활동과 관련된 사무실, 부원끼리 개별예배를 하는 곳으로 이뤄져있다. 또한 8층에는 정암전인기독학교라는 학교도 운영중이다.

본당은 2023년 리모델링이 이루어졌으나, 노동자들의 임금 지급을 7개월이나 미루었다. 이는 2024년 3월 10일 낮 본당 앞의 시위대에 의해 알려졌다.

본당 주변에 교육관이 있는데 교육관에서도 부원끼리 개별모임과 예배를 하는 곳이 있다. 교육관은 2010년대 들어서 리모델링이 이루어졌는데 금란교회 교육관은 블레싱랜드라고도 부른다.[7] 교육관 건물에는 금란교회에서 세운 유치원과 상담센터가 있는데 유치원이름은 정암유치원이라고 부른다. 유치원 이름 정암은 김홍도 목사의 호이다.

교단인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는 교단[8]으로 2006년 7월 20~24일 5일간 금란교회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WMC)가 열렸고, 여기서 합의한 대로 가톨릭교회루터교회이신칭의(의화) 교리 합의를 감리회도 참여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당시 교황청 발터 카스퍼 추기경한국 가톨릭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직접 참여하여 축하했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바로 앞 망우로 중앙버스전용차로 정류소 이름도 금란교회로 되어 있다. 구리나 남양주로 가는 경기도 시내버스들이 상당수 정차하며 서울 도심 방면으로는 270번, 262번 등이 정차하여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다만 전철역(망우역, 양원역)과는 미묘하게 거리가 있다.

4. 논란 및 사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前 담임목사 김홍도 논란 및 사건사고

전반적으로 중도~진보 성향을 보이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치고는 논란 및 사건사고가 많은 편인데, 대부분의 논란이 오랜시간 교회를 이끌었던 김홍도 목사 때문에 일어났다. 자세한 내용은 김홍도 목사 사건사고 문단 참조.

4.2. 문화방송 본사 점거 농성

1998년 4월 9일, 문화방송(MBC)의 시사매거진 2580이 담임목사 김홍도의 각종 비리를 폭로하는 방송을 하자, 다음날 오후 1시경부터 5시간 가량 교회 신도 2천여명이 여의도 MBC 본사 사옥 모든 출입문을 막은 채 시위 난동을 부렸다.

이 여파로 당시 AM 라디오의 전국 퀴즈열전, 양희경의 트로트 가요앨범, FM 라디오가요응접실 등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MBC 사옥 출입을 하지 못해 내부에 있던 대체 인력으로 방송되었다. 또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던 이득렬 당시 사장을 비롯한 MBC 경영진들 역시 사옥 출입을 저지당했고, 결국 강제로 귀가했다.

이듬해인 1999년 어느 이단 집단MBC TV 주조정실에 난입해 방송을 강제로 중단시킨 사고가 터지면서, 해당 사건 또한 재조명되었다.

4.3. 보수우익집회 교인 동원 논란

2004년 노무현 정부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을 추진하자 금란교회는 순복음교회 등 다른 대형교회와 손잡고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국가보안법 지지,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집회를 대규모로 개최하면서 교인들을 동원하였다. 이후에도 보수우익 정치집회마다 교인들을 동원한다는 의혹이 계속 나왔다. 다만 2010년대 이후로는 교회 차원에서의 공개적인 정치활동이나 집회 참여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여담

파일:금란교회나라위한기도제목1.png 파일:금란교회나라위한기도제목2.png
파일:금란교회나라위한기도제목3.png
금란교회의 수요예배와 주일(일요)저녁예배의 마지막 기도시 나오는 기도제목 영상 장면 중 나라를 위한 기도제목으로 2021년 1월 기도제목 영상의 업데이트된 기도제목 영상이다.

6. 연계 버스

망우로 중앙버스전용차로
우림시장.망우사거리 금란교회 동부제일병원.망우리공원


[1] Kumran이나 Kumlan이 아닌 이유는 한국어의 음운규칙인 비음화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즉 발음형이 \[금난\]으로 난다. 현재 영문 표기법대로하면 Geumnan이다. 표기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영문명 표기법이 다르기도 하고, 사람 이름에서 따온 경우에는 표기법에서 자유롭기 때문이기도 하다.[2] 이화의 설립자는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부인이지, 김활란이 아니다.[3] 친일반민족행위자이며, 창씨명은 아마기 가츠란(天城活蘭)이다.[4] 현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1963년 동대문구에 편입되었으며 1988년에 분구되었다.[5] 금란교회에서는 "교회의 맞은편(망우동 201-2, 49번 버스 종점자리)에 위치한 우성쇼핑센터 건물에 입주하여 성전완공 전까지 그곳에서 매주 예배를 드렸고, 약 2년간의 건축 끝에 1984년 8월 연건평 2,500평 6,000석의 대성전에 입당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6] 임시건물을 세워 교회로 사용한 곳은 현재 서울특별시 북부병원이 있는 곳으로 임시건물을 세워 교회로 사용했을 때 송곡고등학교의 운동장이 금란교회 주차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7] 리모델링이 되기 전에는 그냥 금란교회 교육관이라고만 불렸으며 입구에는 '금란교회 제2교육관'이라는 명판이 붙어있었다. 제2교육관이라는 명칭은 1984년에 완공되어 1995년에 철거된 본당 건물과 같이 있던 제1교육관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8] 다만, 공식적 금란교회에서는 WCC와 어떠한 연관도 없으며, 교회일치운동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해왔다. 2013년 WCC 준비위원회에서 금란교회를 무단으로 등록한 것이라고 한다. (공식 입장) 2019년에도 같은 입장의 결의문을 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