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10:32:13

김순택(기업인)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1428A0><tablebgcolor=#1428A0><tablealign=center> 파일:삼성 워드마크 화이트.svg삼성전자
인물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1428A0"
경계현 | 고동진 | 고정욱 | 권오현 | 권혁빈 | 김광석 | 김기남 | 김수목 | 김영기 | 김재명 | 김제리 | 김종기 | 김종민 | 김준성 | 김현석 | 김현종 | 김훈 | 노태문 | 량멍쑹 | 마크 리퍼트 | 문용석 | 박상권 | 박종천 | 신종균 | 심수옥 | 쓰쓰미 히로유키 | 안지홍 | 양향자 | 엄대현 | 원기찬 | 윤부근 | 윤종용 | 이건희 | 이근면 | 이기태 | 이병철 | 이상훈 | 이수빈 | 이영희 | 이인용 | 이재용 | 이학수 | 임형규 | 장동훈 | 정광열 | 정상희 | 정은승 | 정준명 | 정재은 | 정현호 | 정형돈 | 정호준 | 조수용 | 진대제 | 최윤호 | 최지성 | 최진균 | 한정민 | 한종희 | 한진우 | 홍종기 | 황창규
}}}}}}}}}}}} ||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 부회장
김순택
金淳澤 | Kim Soon-taek
파일:김순택.jpg
<colbgcolor=#034ea2><colcolor=#fff> 출생 1949년 7월 17일 ([age(1949-07-17)]세)
경상북도 대구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경북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경북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 / 학사)
가족 배우자 김해숙, 장녀 김태연1978년 9월 2일생
경력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위원장 겸 실장(부회장)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 부회장
삼성SDI 대표이사 사장
삼성그룹 미주본사 대표이사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 대표이사
제일합섬 입사

1. 개요2. 약력3. 생애4. 활동5. 수상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2. 약력

3. 생애

1947년 7월 17일 경상북도 대구시에서 태어났다. 한 해 100명씩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던 경북고에서 전교 50등 안에 드는 성적을 유지했지만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대구에서 학교를 계속 다녔다. 당시 일곱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을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1969년 경북대학교 경제학과(현 경제통상학부)에 입학하였다. 대학 입학 직후 바로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했고, 공부를 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1학년 때 1차 시험에 합격했으나 2차 시험에서는 낙방했다. 공부라면 어지간히 자신있어 했던 그였기에 충격은 적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저의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무원은 저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생활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초장부터 고시공부에 뛰어든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지 못한데 대한…."

대학시절 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북대 인근 3공단에서 밤낮없이 일하던 근로자들의 모습이었다. 산업입국(産業立國)의 기치 아래 섬유, 염색공장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던 때였다.
"나는 생존을 위해 저렇게 처절하게 공부하고 있는가…스스로 자문해 봤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위해 청춘을 불태울 수 있다면 후회없는 한판의 인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1972년 11월 삼성그룹 공채시험에 합격해 대구에 있던 제일합섬에 배치를 받았다.[1] 1978년부터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장기간 근무해 그룹 통할 업무에 익숙하며, 특히 1991년 비서팀장으로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 그룹 내에서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과 비전을 꿰뚫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이후 삼성중공업 건설기계부문 대표이사, 삼성그룹 미주본사 대표이사 등을 거쳐 1999년부터 10년간 삼성SDI 사장을 지냈다.

2010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동시에 신사업추진단장직을 맡았다. 조직상 삼성전자에 소속돼 있었지만 사실상 그룹 전체의 신성장동력 사업을 확보하는 일을 책임졌다.

2012년 6월 미래전략실장에서 물러났고, 2013년 4월 삼성그룹 부회장에서 사직함으로써 41년간 재직한 삼성을 떠났다.

4. 활동

4.1. 삼성회장비서실

1978년부터 1996년까지 대략 17년간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4.2. 삼성SDI

파일:1000001499.jpg
2006년 삼성SDI 사장 시절
1999년에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2000년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2009년 12월까지 대표이사를 맡았다. 삼성그룹 내에서 10년 동안 한 명이 한 회사를 계속 맡아 경영한 예는 극히 드물다.

4.3.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파일:1000001500.jpg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2010년 12월 삼성그룹 초대 미래전략실 실장으로 선임되었다.

2012년 6월 7일 건강상의 이유로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최지성 부회장 신임 실장으로 선임되었다.

4.4. 은퇴

미래전략실장 직에서 물러난 뒤 한동안 부회장 직만을 유지하면서 이렇다할 행보를 보이지 않다가 2013년 4월 1일 삼성에서 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2년 처음 삼성에 입사한지 41년 만이다. 통상 삼성의 부회장급은 퇴임 이후에도 사무실과 급여 등의 혜택을 이전과 동일하게 제공받으며 고문이나 상담역 등을 맡아 2년 가량 회사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그룹의 이런 대우를 마다하고 조용히 회사를 떠났다.

은퇴 이후 10년이 지난 2024년 현재까지 일절 외부활동 소식이 없다. 다른 임원급 인사들이 자주 언론에 등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5. 수상



[1] 입사 동기로 구학서 신세계 사장, 고홍식 삼성아토피나 사장, 이용순 삼성정밀화학 사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