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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투쟁 당시의 김영삼[1] |
쓸데없는 소리. 국민이 고생하는데 내가 외국에 나갈 수 있겠소? 나를 해외에 보내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오. 나를 시체로 만들어 해외로 부치시오.
- 1983년, 단식 당시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권익현이 찾아와 외유를 권하자 한 말.
- 1983년, 단식 당시 민주정의당 사무총장 권익현이 찾아와 외유를 권하자 한 말.
1. 개요
1983년에 김영삼이 자신의 요구 조건을 내걸면서 23일간 단식투쟁한 사건.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상징적인 단식투쟁으로 평가받는다.2. 전개
1983년 5월 18일 김영삼은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세 번째 해를 맞아 희생자들을 위령하고 독재에 항거하는 뜻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는데 구속 인사의 전원 석방과 해금, 해직 교수 및 근로자와 제적 학생의 복직, 복교, 복권, 언론의 자유, 개헌 및 국보위 제정 법률의 개폐 등을 요구하면서 단식을 이어가자 전두환 정부는 5월 25일 서울대학교병원 특실에 강제 입원시켰다.[2][3] 정부는 링거 치료를 강제하였고 김영삼 또한 링거는 거부하지 않았으나, 6월 9일까지 단식 자체는 멈추지 않았다.전두환 정부는 김영삼을 가택연금시켰을 뿐만 아니라 언론도 철통같이 통제하였는데 소위 땡전뉴스로 대표되는 보도지침에 의거해서 독재정권에 불리한 기사는 일체 내보낼 수 없었지만 동아일보가 '모 재야인사의 식사 문제가 화제다' 식으로 모호한 몇 개의 문장을 집어넣었고 행간을 읽는 데 도통한 독자들은 '누군가 단식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고 한다. 이후 다른 신문들도 1단이나마 따라서 보도하기 시작했다.[4]
더불어 이때 안기부 직원들이 찾아와서 병실 앞에서 불고기 구워 먹기 등의 찌질한 짓을 일삼았는데 단식을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지하기 위해 정보 기관에 걸맞지 않은 일까지 저지른 것이다.[5] 이렇게 이 사건이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김영삼이 워낙 강경하게 단식 투쟁을 지속한 데다 이대로는 오히려 민심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는 건의로 결국 전두환이 김영삼의 가택 연금을 전격적으로 풀어주기로 했다. 이에 민주정의당 권익현 사무총장이 직접 병실에 찾아와 이 사실을 알리고 단식을 풀 것을 권유했는데 김영삼은 "협상은 없다. 난 죽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남겼지만 이 소식을 들은 김수환 추기경 등이 찾아와서 간곡히 설득하면서 결국 단식 투쟁을 멈췄다.
관련 루머로 김영삼 보름달 사건이 있다. 김영삼이 '단식하다 말고 몰래 보름달빵을 먹었다'는 헛소문인데 저 소문의 등장인물이나 주로 퍼지던 시기를 고려하면 김영삼이 김대중과 완전히 틀어져 3당 합당을 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DJ 지지 세력(동교동계 + 민주당 + 호남권)의 김영삼 세력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공격이라는 설도 유력하다. 사실, 정말로 굶고 있던 상태에서 갑자기 보름달 빵을 먹었으면 당연히 탈이 났을 것이다.
3. 대중매체에서
- 1998년작 SBS 정치 대하드라마 <삼김시대> 17회에서 한 회차의 분량 반 이상을 이 사건으로 할애했다.
- 2005년작 MBC 특별기획 주말드라마 <제5공화국> 32회에서도 다룬 바 있다.
[1] 영양 부족으로 매우 야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2] 당시 안기부 요원들과 경찰이 집을 급습하여 김영삼을 강제로 납치하다시피 그를 병원으로 끌고 갔다. 당시 같이 있던 가족들조차 김영삼이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결국 김영삼의 아들이 안기부 요원 하나를 잡아다 칼로 협박하여 간신히 그가 서울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을 정도였다.[3] 이 사건은 당시 일본과 미국 등 외국의 신문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가 들어가던 사안이었고, 중남미 독재정권 스타일의 폭정을 휘두를 수 없던 이상 전두환조차 이들의 눈치를 어느 정도 볼 수 밖에는 없었다.[4] 당시 당국은 이 사건을 보도할 때 단식이란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고 사회면 2단 이하에 보도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 결과 편집기자들이 제목만 2단 크기로 하고 뱀처럼 한 줄로 길게 기사량을 늘리느라 고생했다고 한다.[5] 2014년 광화문 폭식농성을 연상케 한다. 극우 커뮤니티 일베저장소 회원들이 하던 저열하고 찌질한 짓을 일국의 정보 기관이 저지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