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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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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김완섭
金完燮 | Kim Wan-seop
파일:external/blog-imgs-26-origin.fc2.com/kimwansup03.jpg
출생 1963년 ([age(1963-12-31)]-[age(1963-01-01)]세)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직업 사회운동가, 소설가, 기자, 작가, 평론가, 번역가, 언론인, 방송인
학력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천문학 82 / 중퇴)
종교 가톨릭
가족 부모, 1남 2녀 중 첫째[1]

1. 개요2. 행적3. 친일반민족행위 옹호자로서의 행적4. 논란 및 사건 사고5. 그 외6. 저서7. 참고 자료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자 출신 작가, 번역가, 문학 평론가, 언론인, 인터넷 논객. 또한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을 모독하고 한국을 폄하하는 등 여러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인물이었다.

2. 행적

1963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태어나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서울대학교 이과 계열에 입학해 물리학 및 정치경제학을 공부했으나 1989년에 중퇴했다. 1985~86년 방위병으로 14개월간 복무했다.

학창시절부터 가톨릭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후 열성 가톨릭교도로서 관련 저서의 번역과 편집을 맡았다. 자칭 맑스예수의 제자라 불렀다.

파일:external/www.study21.org/wanseop.jpg

1980년 고등학교 2학년 때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했다.[2] 5월 27일 전남도청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했고, 군인들에게 연행되어 구타당한 채 몇 달 동안 구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하다가 풀려났다고 후술할 쿠키뉴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간 김완섭의 주장에 대해 공인된 사료는 없었으나 2023년 KBS 다큐멘터리 로숑과 쇼벨의 엔딩 크레딧[3]에 5월 27일 도청에서 계엄군에게 진압된 후 결박되어 있는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등장했다.

대학 입학 후에도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1987년 서울대 복학생 협의회장을 맡았다. 같은 해 12월 구로구청 선거부정 항의 점거농성 사건에 참여해 수감되기도 하였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로는 서울대학교 82학번인 원희룡[4], 진중권과 동기였다고 한다.[5] 물론 재학 당시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복잡하던 시대에 사회에 대한 참여는 없고 얌전하게 학교만 다닌 진중권이 지금 사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했다.[6]

그러나 진중권은 유시민이나 심재철처럼 학생운동의 지도부는 아니었지만, 각종 시위나 집회에는 뻔질나게 참여한 인물로, 스스로도 "나는 그냥 되는 대로 따라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와서 보니 학생운동의 역사에 남은 현장에는 꼭 내가 가 있었더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실제 진중권은 서울대 PD계열 운동권의 이론가로 학생운동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히 조국, 이진경(본명 박태호)[7]와 함께 <주체사상비판>을 출판하면서 당시 운동권에서 광풍을 일으키고 있던 주체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졸업후에는 독일 유학 직전까지는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약칭 노문연)에서 활동했다.

진중권의 학자나 사회평론가로서의 능력이나 노선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8]하지만, 엄연히 학생운동, 사회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을 얌전히 학교만 다녔다고 폄하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국내에서 진중권이 좌파 논객의 대표로 자리잡자 이를 질투한 김완섭의 열폭이라고 보는 의견이 대다수다.

1989년부터 <하이테크정보>, <소프트월드> 등 잡지사 기자 등을 역임하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해 소설가, 문학 평론가로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3> 같은 컴퓨터 전문도서를 냈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의 진화>를 번역한 바 있다. 1990년대 초중반 PC통신 하이텔에서 활동했는데, 활동 초기에는 컴퓨터 혁명을 다룬 글들을 올렸으나 관심을 받지 못하자, 그는 운동권, 여성, 종교와 같은 논쟁이 많은 소재만을 골라 자극적인 글을 쓰면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모 PC통신 동호회의 부정한 권력을 고발하면서 온라인에서 다수와 싸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서울대 동호회에선 운동권들에게 ''우루과이라운드를 도입해 글로벌화하자"고 하자 다수 회원들로부터 "죽창으로 찔러죽이겠다"며 욕을 얻어먹었다.

서울대 통신망 '버들골'에서 '창녀론'을 설파해 징계를 받으면서 네티즌들에게 점차 유명세를 탔고, 극렬 반여성주의 및 반운동권 성향 논객으로서 천리안극렬 페미니스트 논객인 '신정모라'[9]와 대립각을 형성했다.

1995년 <창녀론>을 책으로 내면서 일약 문제 작가로 발돋움했고, 이 여파는 동아TV <오미영의 뜨거운 세상> 1996년 1월 28일 방영분, 동년 6월 23일 <MBC 스페셜> '또 하나의 문화, 우리시대의 성' 편 등지에서 각각 다루어졌다. 그 내용은 아래 내용을 참조. 반면 그는 그해 9월 29일에 그간 올려 온 게시글들이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하이텔에서 이용정지를 당하고 ID를 개명한 뒤 천리안 및 나우누리로 옮겨 전자도서관 '도깨비 방망이(go doby)'의 '김완섭이 본 세상'이란 칼럼란에서 같은 논조의 글을 올렸으며, '섹스강국론'과 부여 무장공비 사건 조작극론 등 3개 게시글이 논란이 되어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ID 중지요청을 받은 바 있으나 나우콤 측이 이 글들을 삭제하고 자제를 요청해가며 이를 철회했다. 하이텔에서도 ID가 회복된 틈을 타서 복귀했으나 비슷한 행보를 보였다.(김중태의 증언글, '96 정보통신 검열백서 일부 내용)

전체적인 행보의 흐름을 살펴 보면, 사상 혹은 성향의 일관성이 아니라, 운동권/사회운동 - 여성/성담론 - 친일문제 - ... 등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점에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에 관하여 의도적으로 논란을 촉발하는 모습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그 논란도 선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제창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핫토픽을 따라 다니며 작위적으로 반대 포지션을 취하는 행태로 노이즈 마케팅적인 모습을 보인다.

1996년부터 2년간 호주로 이주했다가, 귀국 후 '코스닥신문'을 창간하여 편집주간으로 일한 바 있다.

3. 친일반민족행위 옹호자로서의 행적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국민들을 속여 왔습니다. 역사를 날조해 착한 일본인들을 마치 강도였던 것처럼 매도하고 우리 민족의 황금기였던 일제시대를 마치 지옥이라도 된 것처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하지만 역사에 관한한 국민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도 세뇌당해 있습니다. 만약 진실을 알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그동안 속아 살아온 것이 너무도 분해서 며칠동안 잠도 잘 수 없을 것입니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은 이같은 한국의 역사날조와 반일세뇌교육을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진실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지난 2002년에 처음 나왔지만, 한국 정부기관의 탄압으로 인해 서점에서는 판매되지 못하게 되었고, 저자는 반일단체들의 잇따른 고소/고발과 경/검찰의 편파적인 수사, 테러 등으로 인해 수배 상태에서 도피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서점들이 모두 판매 금지시키고 매장에서 철수시켰기 때문입니다.


『친일파를 위한 변명』 저자소개에 나오는 김완섭의 글인 "한국인 여러분".

전에도 그런 기미가 더러 있었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부터는 아예 대놓고 본격적인 친일파가 되었다. 2001년 7월경부터 '다음 칼럼'을 통해 '일본을 존경하는 마음'이란 인터넷 칼럼방을 만들어 친일 글들을 올린 탓에 비난을 받은 바 있으며, 칼럼들 중 <민비와 조선말기 친일파 애국자들>이란 글에서 명성황후를 "방중술에 능해 고종을 현혹하여 권력을 휘둘렀다"거나, '한일합병의 과정' 파트에서 민영환 열사 등 자결한 구한말 열사들에게 "정치적 이유로 인한 자결인지, 다른 이유인지 모른다"는 식으로 기술하여 명성황후의 후손으로부터 고소당해 이듬해 7월 불구속 기소됐다.

2002년 초 <친일파를 위한 변명>을 냈는데, 일제 식민통치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독립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책이다. 발간 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역사적 사실 왜곡 등을 이유로 청소년 유해매체물(간행물)로 지정했고, 저자 본인 역시 2003년 5월에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등 한일 민간단체들과 위안부/징용 피해자 및 유족들, 고종 황제의 손자 이석, 명성황후 5촌 종증손 등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2005년 9월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패소당했다.

그러나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논리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이미 2001년 7월에 나온 후 4개월 만에 무려 35만 부가 팔려 식민지 수혜론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이 덕분에 동년 8월 23일 도쿄 기자회견에서 일제 식민통치를 높게 평가하며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서도 극우들의 입장을 옹호했고, 쇼가쿠칸의 월간 <SAPIO> 지 2003년 1월 22일 ~ 2월 5일자 합본호에 그의 대담이 실렸으며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같은 일본 극우세력의 거두와 대담도 하였고, 일본에서 왜곡 교과서 발행을 주도하는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사람들과 인맥을 쌓았으며 2000년대 내내 인터넷에서 고 젠카 및 최기호 교수와 더불어 대표적인 친일 논객으로 명성을 날렸다.[10] 같은 시기 다음 카페 '친일파를 위한 변명'[11]도 운영했다.

이 와중에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일본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고 하나, 문전박대당했다. 그런데 이것 자체도 본인 주장일 뿐이고 실제 신청을 했는지 여부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더구나 본인이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한 민주화 유공자임과 더불어 한나라당 비판 등을 이유로 진보주의 세력임을 자칭 중이나 어떤 주장을 보나 진보와는 매우 거리가 있다.

2003년에 다음 칼럼 및 <친일파를 위한 변명> 건으로 서울지법으로부터 벌금 700만원형을 선고받았고, 2005년에도 <새 친일파를 위한 변명>의 유관순 모욕 건으로 검찰에 기소됐다가 2011년 대법원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벌금을 물고 만다. (판례 2008도3120)

4. 논란 및 사건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김완섭/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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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 외

김완섭이 아고라에 올린 글들[12]

행동 자체만 보면 역사 갤러리 유저와 판박이인데 그래서 역갤에는 김완섭의 발언이 자주 인용되곤 했다.

2009년, 광우병 사태가 있었을 때 나름대로 반대하는 의견을 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워낭소리의 불법 다운에 대해서 옹호하는 듯한 태도의 글을 썼다가 네티즌들에게 비판만 받았다. 김완섭 본인은 워낭소리를 마구 욕했다. 이후 정치적으로는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다.

2014년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한국미국조작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 글을 남겼다.[13] 그러면서 선장 등에게서 발견되는 특정지역 사투리가 우연이겠느냐고 하는 등 또다시 지역비하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작 최원일 함장은 대구출신이다.

그러나 2010년대 말 이후로는 거의 잊혀진 수준이다. 김완섭이 글을 올린 지 2달 정도 됐을 때 '이제 관심도 못 받는구나 한심한 놈아' 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였다.

2017년 12월에 다음 아고라에 작성한 글에는 2018년 7월이 되어서야 답글이 달렸고, 조회수도 150 안팎이다. 이미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

가족들이 여동생의 결혼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김완섭을 부끄러워 한다는 증거이다. #

2020년 12월 현재 스타크래프트 여캠 방에서 비조리 또는 pizory라는 닉네임으로 별풍선을 쏘면서 여러 방에서 열혈팬이라는 칭호를 달고 활동하며, 와이고수에서 동일 닉네임으로 활동중이다. 한 여자 BJ가 본인이 응원하는 여캠에게 리그 오브 레전드 한 판 하자고 했다는 이유로 해당 여캠을 저격하고, 그 방에서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어그로를 끌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후 다시 와이고수에 글을 올리며 본인만의 억울함을 표출했다.

6. 저서

7. 참고 자료

8. 관련 문서



[1] 여동생 2명과는 나이터울이 꽤 된다고 한다.[2] 실제로 5.18 단체에서는 김완섭의 유공자 취소를 결의했다. 일단 이러한 사실로 보아 5.18 유공자인 것은 명백한 것 같다. #[3] 47분 21초.[4] 아이러니하게도 원희룡은 김완섭에게 악플을 남겨 고소당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변론을 맡게 된다(...). 독도를 일본에 돌려주라는 김완섭의 일본 제국스러운 망언에 대해 당시 담당 검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화가 났다고 할 정도로 문제있는 발언이었으며 결국 악플러 전원이 죄가 안됨(위법성조각) 처분(위법하기는 하지만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 처리 방침)으로 끝났다.[5] 참고로 같은 학번 동기동문으로는 나경원, 조국 등이 추가로 있다.[6] 애초에 대학이란 곳은 소속 학과가 다르면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거나, 같은 강의를 듣는 게 아닌 이상, 서로 남남일 수 밖에 없다. 원희룡공법학과, 진중권미학과, 김완섭은 천문학과 출신이니, 만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일단 서로가 문과이과라는 차이도 있다[7] 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1987년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약칭:사사방)을 출판해서 당시 운동권과 사회과학계에 사회구성체 논쟁이란 파란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이진경은 공안기관의 추적을 피해기 위해서 지은 가명으로 '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다의 약자.[8] 진중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미학 전공자로의 전문성과 학문적 성취, 시사평론가로서의 팩트체크에 대해선 많은 논란이 있다.[9] 2000년대 초반부터 ‘신정모라 문학서재’, ‘엄마성쓰기협회’, '통일시대 여성주의' 등의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2010년경에 포털사이트 다음의 종북성향 카페 '태양계통신' 및 네이버 카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바로알기' 등지에 참여하여 종북 성향 게시글을 올려오다 2013년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막말로 성향만 다르지 김완섭과 똑같은 종자다.(기사)[10] 이러한 독립운동 비판, 친일사관 등의 흐름은 지만원, 이영훈, 진명행 등으로도 계승되나, 이영훈과 진명행은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는 측면에 더 가까우며 김완섭과 달리 우익 스탠스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2020년에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도 <서울신문> 시론을 통해 이영훈 저서 <반일 종족주의>와 비교하며 언급했다.[11] 당시 도메인은 'cafe.daum.net/projapanese'였다.[12] 다음 아고라 서비스가 종료되어 제목만 볼 수 있다.[13] 다만 종북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천안함 음모론을 주장하는 경우는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