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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 과거 | 겐요샤 · 다테노카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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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보수주의/분파 | }}}}}}}}} |
1. 개요
헤이세이 8년(1996년), 중학교의 역사 교과서가 일제히 ‘종군위안부’라는 용어가 나타난 것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단어가 중학생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되어 계속 사용된다면, 일본인의 마음에 달래기 어려운 상처를 주고, 일본 사회에 커다란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었습니다.
‘새역모’의 운동은 교과서의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고, ‘자학사관’[1]의 비판과 극복이라는 테마를 일본 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것입니다. 앞에 서술한 ‘종군위안부’가 교과서에서 사라진 일은 최근의 구체적인 성과이며, 남경사건(남경대학살)에서도 ‘새역모’는 그 진상 규명에 큰 역할을 남겼습니다. 오키나와 집단자결에서도, 그 진상을 ‘새역모’가 솔선하여 현지 답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앞으로도 ‘새역모’가 솔선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쿠호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일찍이 ‘새역모’의 교과서를 발행했던 후소사의 자회사로, 교과서의 집필 멤버도 일찍이 ‘새역모’에 속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교육재생기구’의 멤버가 집필하였습니다.
- 2011년 9월 5일 스기하라 세이시로 회장 취임식 연설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新しい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극우 단체다.‘새역모’의 운동은 교과서의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고, ‘자학사관’[1]의 비판과 극복이라는 테마를 일본 사회에 뿌리내리게 한 것입니다. 앞에 서술한 ‘종군위안부’가 교과서에서 사라진 일은 최근의 구체적인 성과이며, 남경사건(남경대학살)에서도 ‘새역모’는 그 진상 규명에 큰 역할을 남겼습니다. 오키나와 집단자결에서도, 그 진상을 ‘새역모’가 솔선하여 현지 답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앞으로도 ‘새역모’가 솔선하여 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쿠호사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일찍이 ‘새역모’의 교과서를 발행했던 후소사의 자회사로, 교과서의 집필 멤버도 일찍이 ‘새역모’에 속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교육재생기구’의 멤버가 집필하였습니다.
- 2011년 9월 5일 스기하라 세이시로 회장 취임식 연설문
한국에서 주로 쓰는 약칭은 새역모이고 일본측에선 만드는 모임이라는 뜻의 츠쿠루카이(つくる会)를 자주 쓴다. 한마디로 자신의 국가와 민족에 유리한 역사를 만드는 단체다.
2. 상세
1997년에 결성되었으며 그 이름답게 일본 고등학교 과정에서 쓰는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 모임이다.[2] 문제라면 이들이 마쓰모토 겐이치 선생이 말하는 일본 극우의 진면모와 타락상을 보여주는 진짜배기 수구꼴통 인면수심이라는 점이다. 대동아전쟁에서 아시아를 위해서 총대를 멘 대일본제국 만세!가 그들의 이념이다.일본 교과서 개정 때마다 왜곡 수준을 넘어 거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실은 교과서를 제출하여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 충격과 공포, 그리고 강한 반발을 유발시키고 있다. 뉴스에 나오는 왜곡 교과서 논란의 근본 원인이다. 대표적인 새역모 교과서인 지유샤 교과서의 역사왜곡 내용들
다만 일본 현지에서도 새역모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것이 사실인지라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저 꼰대들은 왜 저럼?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지식인들 역시 저것들이 제정신이냐?라면서 까고 있다.[3] 하지만 핵심 인사들이 정/재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탓에 그 세력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후쇼샤[4]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는 2007년 채택률 부진으로 발행 중단됐다.[5] 결국 일본 내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상의 집단인 것이다. 이미 2001년에는 신좌파 중 혁명적노동자당 건설을 지향하는 해방파전국협의회(전협파)가 사무실 방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니시오 간지와 함께 새역모를 만든 후지오카 노부카즈[6] 타쿠쇼쿠대학 교수가 회장직을 오랫동안 역임했으나 지유샤 교과서 채택율 부진과 더불어 역사 교과서 연표가 도쿄 서적 역사 교과서 연표를 표절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1년 9월 5일 사퇴하고, 그 뒤를 스기하라 세이시로 무사시노 대학원 교수가 이었다.
참고로 이 인간들은 자신들의 사관을 제3의 길이라고 칭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좌익 사관은 소련 코민테른 사관이며, 우익 사관은 미국 도쿄 재판 사관이라 그렇다고 주장한다.
다만 일본에서 국수주의 성향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세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다. 일본이 누구나 다 안다는 이유로 근현대사 자체를 잘 안 가르치는 경향이 있어 젊은 층들은 전 세대들의 역사를 잘 모르는데다가, 새역모가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역사는 다 거짓말이다! 겁에 질려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우리의 진실된 역사를 용기있게 말하련다!"라는 식의 역사에 대해 평소에 관심은 있으나 관련 자료를 찾아 보지는 않는 사람들이 쉽게 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동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 잘 먹히는 듯. 하지만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이 상당히 낮은 것은 함정.
2020년, 문부과학성은 교과서 검정에서 이례적으로 모든 새역모 교과서를 전부 불합격시켰다. 극히 이례적이라고 한다.#
2022학년도 새역모 중등부 사회 교과서는 채택률이 112만부 중 435부로 사실상 채택되고 있지 않다. 일본 고등학생 수로 따지면 단 1곳의 고등학교만 사용하는 셈이다. #
3. 관련 인물
- 대표적 멤버
아베 신조[7] - 前 일본 총리이시하라 신타로[8] - 前 도쿄 도지사- 고바야시 요시노리 - 극우 만화가.
세지마 류조[9] - 불모지대로 유명한 인물.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을 연결하는 정재계의 흑막중에 한명이다.- 기타 관련 인물
- 코무로 나오키 - 일본 정치학계의 거두 중 한명으로, 자유주의 사관론자이자 천황주의자다. 새역모 찬동자로 이름을 내걸고 있다.
- 스기타 미오 - 현 자민당 소속 중의원. 이사로 활동했었다.
4. 명단
의도를 잘 모르고 들어갔다가 나가거나 중간에 변심으로 탈퇴, 또는 새롭게 들어왔던 인물도 있으니 참고만 할 것. 또한, 명단 작성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4.1. 구성원
2013년 6월 30일 기준.- 회장
- 스기하라 세이시로(杉原誠四郎): 전 조세이대학 교수
- 부회장
- 오카노 토시아키(岡野俊昭): 전 초시시장, 전 초시시립 제5중학교장
- 타카이케 카츠히코(高池勝彦)[10]: 변호사
- 토요시마 노리오(豊島典雄): 정치 애널리스트, 전 교린대학 교수, 전 사쿠신가쿠잉대학 교수
- 후쿠시 아츠시(福地惇): 고치대학 교수, 전 문부과학성 초중등교육국 교과서 검정관 주임, 전 다이쇼대학 교수
- 이사
- 아에바 미치히로(饗庭道弘)[11]: 유니워드 주식회사, 아에바상회 대표이사
- 이시하라 타카오(石原隆夫): 1급 건축사
- 코야마 츠네노리(小山常実): 오오츠키단기대학 교수
- 토미오카 고이치로(富岡幸一郎): 관동학원대학 교수, 표현사[12] 편집장
- 하마노 아키치(濱野晃吉)[13]: 주식회사경영센터 사장, 칸사이 방위를 지지하는 모임 회원
- 후지오카 노부카츠(藤岡信勝)[14]: 척식대학 객원교수, 전 도쿄대학 교수, 자유주의사관 연구회 대표
- 모로바시 시케이치(諸橋茂一): 교육을 생각하는 이시카와현민회장, KBM 사장
- 야마모토 시게루(山本茂): 전 규슈여자대학 교수
- 요시나가 슌(吉永潤): 고베대학 부교수
- 감사
- 고문
- 이지리 치오(井尻千男): 척식대학 일본문화연구소 고문
- 가세 히데아끼(加瀬英明): 외교 평론가, 지유사 사장
- 다쿠호 타다모리(田久保忠衛): 행신대학 명예교수
- 나카시노 타카노리(中條高徳): 아사히 맥주 명예고문, 사단법인일본국제청년문화협회 회장, 일본전략연구포럼회 회장
- 사무국장
- 에치고 준타로(越後俊太郎)
4.2. 찬동자
찬동자 리스트가 꽤나 변화무쌍 하므로 확인 일자를 반드시 병기하여 챕터 처리하기 바람.4.2.1. 1990년대?
카쿠 류자부로(賀来龍三郎) 전 캐논 대표가 문서에 나오듯 2001년 죽기 전에 명단에 있는 스크랩이 있다.4.2.2. 2004년 11월 19일
- 아이카와 켄타로(相川賢太郎): 미쓰비시 중공업 회장
- 아이치 카즈오(愛知和男): 칸사이대학 명예교수
- 아카와 사와코(阿川佐和子): 에세이스트
- 아카와 히로유키(阿川弘之): 작가
- 아키모토 마에토쿠(秋本協徳): 종교법인 신생불교교단대표위원
- 아키야마 쇼코(秋山昌廣): Ship & Ocean 재단 회장
- 아사쿠라 타츠오(朝倉龍夫): 일본합성고무 주식회사 이사
- 아소무라 구니아키(阿曽村 邦昭): Reitaku University 객원교수
- 아마이케 세이지(天池清次): 전 동맹 회장
- 아라 켄이치(阿羅健一): 난징사건[16] 연구가
- 아라키 카즈히로(荒木和博): 척식대학 해외사정연구소 조교수
- 이께다 아키요시(池田彰孝): SMK (株) 회장
- 이사와 모토히코(井沢元彦): 작가
- 이시이 고이치로(石井公一郎): 전 브리지스톤 자전거 (株) 사장
- 이시가키 키치요(石垣貴千代): 동양대학 전 교수
- 이시카와 미치오(石川迪夫): 홋카이도대학 전 교수
- 이시카와 무츠로(石川六郎): 시까지마건설 (株) 명예회장
- 이시사카 아스히꼬(石坂泰彦): 전 (株) 마츠야 회장
- 이시도 슈꾸로(石堂淑朗): 각본가
-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작가, 정치가
- 이지리 치오(井尻千男): 평론가
- 이즈미 사브로(泉三郎): 작가
- 이치다 히로미(市田ひろみ): 의복평론가
- 이지치 시게노리(伊地知重威): 아사히은행 (株) 이사
- 이치무라 신이치(市村眞一): 교토대학 명예교수
- 이토 켄이치(伊藤憲一): 아오야마학원대학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 이토 타카(伊藤隆): 도쿄대학 명예교수
- 이토 테츠오(伊藤哲夫): 일본정책연구센터 소장
- 이나오 카즈히사(稲尾和久): 야구 해설가,
- 이나가키 다께(稲垣武): 저널리스트
- 이나가키 나오토(稲垣直): 의사, (財) 일본국방협회 평의원
- 이나야마 레이호(稲山霊芳): 염법진교[17] 등주
- 이하라 키치노스케(伊原吉之助): 帝塚山大学 명예교수
- 이하라 고지(井原甲二): 월간 MOKU 편집장
- 이마이 엔메(今井圓明): 중산사 주지
- 이마이 미치꼬(今井通子): 의사, 등산가
- 이요타 토시오(伊豫田敏雄): 아오야마 감사법인 회장
- 이오리 마사토시(伊従正敏): 히노자동차판매 (株) 이사
- 이리에 다까노리(入江隆則): 문예 평론가
- 이리에 미치마사(入江通雅): 아오야마학원대학 명예교수
- 이나미 이치지(印南一路): 게이오기주쿠대학 총합정책학부 교수
- 우에스기 치토시(上杉千年): 역사교과서 연구가
- 우에다 아츠시(上田篤): 건축학자
- 우에노 기미오(上野公夫): 중외제약 (株) 명예 회장
- 우사미 타다노부(宇佐美忠信): (財) 후지회사교육센터 이사장
- 우치다 사토시(内田智): 변호사
- 우치무라 고스케(内村剛介): 전 소피아대학 교수
- 우노 세이치(宇野精一): 도쿄대학 명예교수
- 우메사와 쇼헤(梅澤昇平): 학교법인 尚美학원대학 교수
- 우루시 구니오미(漆邦臣): 시나가와 여학원 이사장 겸 교장
- 에나미 카쿠한(叡南覚範): 겐리츠인 주지
- 엔도 히로이치(遠藤浩一): 평론가
- 엔도 타카시(遠藤太嘉志): 일본 그레스볼 협회 이사장
- 엔가와 마사시(淡河義正): 다이세이건설 (株) 이사
- 오오사와 지쥬(大澤自聚): 서산흥륭사 명예원가
- 오오시마 요이치(大島陽一): 동경은행리서치인터네셔널 (株) 사장
- 오오스미 고테츠(大角光徹): 엄왕원 주지
- 오오타 요시오(太田芳雄): 긴자 에스더 식품 (株) 사장
- 오오츠키 타카노부(大月隆寛): 민속학자
- 오오하라 야스오(大原康男): 고쿠가쿠인대학 교수
- 오오케 에이코(大宅映子): 평론가
- 오카사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외교평론가
- 오카다 에이코(岡田英弘): 동경외대 명예교수
- 오가타 이치오(緒方一夫): 오사카 대만 동향회 부회장
- 오가타 요시타카(緒方嘉隆): 의사
- 오카모토 카즈야(岡本和也): 미쯔비시도쿄UFJ은행 전무이사. 동 은행 행장, 증권회사 사장, 마츠야 고문을 거쳐 지금은 후지큐 * 감사로 있다.
- 오가와 요시오(小川義男): 세마야마가오카 고등학교 교장
- 오구시 카즈오(小串和夫): 네츠다 신궁 궁사[18]
- 오쿠미야 마사타케(奥宮正武): PHP연구소 연구고문
- 오케타니 히데아끼(桶谷秀昭): 문예 평론가, 동양대학 교수
- 오자키 마모루(尾崎護): 국민금융공고 전 총재
- 오다 신(小田晋): 국제의료복지대학 교수
- 오다 스베히로(小田全宏): 일본정책포럼 대표
- 오다무라 시로(小田村四郎): 전 척식대학 학장
- 오노사와 토시유끼(小野澤知之): 히까루기획 고문
- 오노다 히로(小野田寛郎): (財)오노다자연주꾸[19] 이사장
- 오사나이 다까유끼(小山内 高行) : 외교 평론가
- 오야마 가즈노부(小山和伸): 가나가와대학 교수
- 카에츠 고꾸(嘉悦 克): 카에츠학원 상무이사
- 카에시 노부유끼(加地伸行): 도시샤대학 이사, 오사카대학 명예교수
- 카라타니 테츠오(粕谷哲夫): 상업 컨설턴트
- 카세 히데아키(加瀬英明): 외교 평론가
- 카타오카 테츠야(片岡鉄哉): 전 스탠퍼드 대학교 후버연구소 상급연구원
- 카츠오카 칸지(勝岡寛次): 명성대학 전후교육사연구센터 전임연구원
- 카츠다 키타로(勝田吉太郎): 교토대학 명예교수
- 카토 쥰페이(加藤淳平): 고베 토키와대학 국제학부 교수
- 카토 타카히사(加藤隆久): 이끼다신사 궁사
- 카토 히데오(加藤日出男): (財) 젊은뿌리회 (若い根っこの会) 회장
- 카토 히로시(加藤 寛): 치바상과대학 학장
- 카토 요시로(加藤芳郎): 만화가
- 카네스기 히데노부(金杉秀信): 전 동맹 부회장
- 카미시노 토시아끼(上條 俊昭): 경제 평론가
- 카미무라 카즈오(上村和男): 국민문화연구회 이사장
- 카미야 후지(神谷不二): 토요히데카즈 (東洋英和) 여학원 대학 교수
- 카라츠 하지메(唐津 一): 도카이대학 교수
- 카와카츠 해이타(川勝平太):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
- 카와카미 테츠하루(川上哲治): NHK 야구해설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 감독
- 카와구찌 요(川口洋): 가쿠슈인대학 교수
- 카와시마 히로모리(川島廣守): 전 일본프로야구 커미셔너
- 카와세 이치오(川瀬一雄): 돗판유회 (トッパン友の会) 회장
- 카와니와 에이이치(川廷榮一): 아시아테니스연맹 회장
- 카와무라 시게쿠니(川村茂邦): 대일본잉크화학공업 (株) 고문
- 키타가타 켄조(北方謙三): 작가
- 키무라 나오미(木村治美): 에세이스트
- 유키타가 테츠야(行徳哲男): 일본BE연구소 주재
- 쿠사까 고진(日下公人): 다마대학 (多摩大学) 명예교수
- 쿠후지 미요꼬(工藤美代子): 논픽션 작가
- 쿠리키 히사오(九里幾久雄): 우라카즈대학 (浦和大学) 명예교수
- 쿠보 요시카즈(久保 芳和): 칸사이학원대학 (関西学院大学) 명예교수
- 쿠라하라 치아키(藏原千秋): 단자협회 (短資協会) 회장
- 쿠로다 신(黒田眞): (財)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 이사장
- 코 분유(黄文雄): 평론가[20]
- 코와노 쇼조(河野正三): 고령자주택재단 이사장
- 코시 칸지로(輿寛次郎): 일본고무시스 (株) 고문
- 코지마 나오키(小島直記): 작가
- 코토 타츠다(後藤達太): (株) 서일본은행 행장. 전직은 일본항공 전무. 2016년 3월 31일 후쿠오카 시에서 폐렴 * 으로 사망. 92세. 지금의 서일본시티은행의 기초를 닦은 인물.
- 코토 치아키(後藤 千秋): (株) 오바야시구미 전무이사
- 코바야시 우미토루(小林海暢): 前 진언종 천통사파 관장
- 코바야시 타카시(小林 喬): 도미쿠니(富国)생명보험상호회사 사장
- 코바야시 미치노리(小林道憲): 후쿠이대학 교수
- 코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 만화가
- 코보리 케이이치로(小堀桂一郎): 도쿄대학 명예교수. 동 대학 독문과 졸, 동 대학원 비교문화학 박사. 쇼와의 신봉자로 알려져 * 있으며, 여성 천황 반대론자이다. 94년에 동 대학 교수 자리에서 명퇴하여 명예교수가 됨.
- 코보리 코우센(小堀光詮): 삼천원(三千院)문 유적 문지기
- 코무로 나오키(小室直樹): 현대정치연구소 정치학자
- 코야마 츠네노리(小山常実): 오오츠키단기대학 교수
- 사에끼 쇼이치(佐伯彰一): 문예평론가
- 사카이 마사야스(酒井正晴): 쇼와비행기공업 (株) 사장
- 사까가와 쇼(境川尚): 일본스모협회이사, 전 요코즈나
- 사카구치 미요코(坂口美代子): 사카구치전열 (株) 대표이사
- 사카노 츠네타까(坂野常隆): 시미즈건설 (株) 대표이사
- 사쿠라이 슈(櫻井 修): 스미토모신탁은행 (株) 특별고문
- 사세 쇼모리(佐瀬昌盛): 타쿠쇼쿠대학 해외사정연구소 소장
- 사사 아츠유키(佐々淳行): 전 내각안전보장실장
- 사토 아이꼬(佐藤愛子): 작가
- 사토 카즈오(佐藤和男): 아오야마학원대학 명예교수
- 사토 카츠키(佐藤勝巳): 현대한국연구소 소장
- 사토미 야스오(里見泰男): 전 대성건설 (株) 이사
- 사와타 아키오(澤田昭夫): 도쿄 준신(純心) 여자대학 교수
- 시카 마나부(志賀學): 전 특허청장관
- 시게에다 타쿠미(重枝琢巳): 전 동맹 서기장
- 시노자와 히데오(篠沢秀夫): 가쿠슈인대학 명예교수
- 시마자키 킨야(嶋崎欽也): 분쿄토[21] (株) 대표이사
- 시마다 야스오(島田晴雄):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 교수
- 시마다 요이치(島田洋一): 후쿠이현립대학 교수
- 시미즈 세하치로(清水馨八郎): 치바대학 명예교수
- 시키 케타로(尚樹 啓太郎): 도카이대학 명예교수
- 시라이 에이지(白井永二): 쓰루오카 야와타궁 명예궁사
- 시라이 히로시(白井浩司): 게이오기주쿠대학 명예교수
- 스기하라 아키라(杉原 明): 닛쇼이와이 (日商岩井) 고문
- 스기야마 쇼지(杉山昭二): 토플러 (株) 이사 겸 회장
- 스즈키 사부로스케(鈴木 三郎助): 아지노모토 이사 겸 명예회장
- 스즈키 센키치로(鈴木仙吉郎): 북일본빌딩관리 (株) 전무이사
- 스즈키 히사아키(鈴木久章): 요코하마고무 (株) 이사
- 스후지 켄이치로(須藤 研一郎): 아사히공업사 (株) 전 회장
- 스미타니 타이(角谷 泰): 加商 사장
- 세이케 키요시(清家 清): 건축가
- 세키구치 코우(関口 孝): 불소호념회 교단 이사
- 세키네 히로부미(関根廣文): 고베제강소 (株) 특별고문
- 세지마 류조(瀬島 龍三): 아세아대학 이사장 겸 NTT 고문.[22]
- 타카끼 기조(高木 桂蔵): 시즈오카현립대학 교수
- 타카이케 카츠히코(高池 勝彦): 변호사
- 타카시로 신이치로(高城 申一郎): 스미토모부동산 (株) 이사 겸 회장
- 타카사키 이치로(高崎一郎): 미츠코시 고문
- 타카하시 유(高橋 勇): 오사카 지부 동맹 고문
- 타카하시 겐(高橋 元): 자본시장진흥재단 이사장
- 타카하시 시로(高橋 史朗): 명성대학 (明星大学) 교수
- 타카하시 요시마사(高橋季義): 킨덴 (株) 전 사장
- 타카하시 마사시(高橋 正): 치바상과대학 교수
- 타카하시 테츠로(高橋 鐵郎): 가와사키중공업 (株) 전 부사장
- 타카하시 묘사이(高橋妙斉): 환희원 주지
- 타카모리 아키노리(高森明勅): 척식대학 객원교수
- 타키후지 손쿄(瀧藤尊教): 사천왕사 전 관장법사
- 타키야마 요(瀧山養): 교통연구가
- 타쿠호 타다에(田久保 忠衛): 교린대학 객원교수
- 타테우치 미츠마사(建内 光儀): 카모 별뇌신사 궁사
- 타케오 나오(竹尾治男): 도시바플랜트건설 (株) 명예이사
- 타시타 마사아키(田下 昌明): 도요오카중앙병원장
- 타테노 아리후미(立野有文): 사쿠라가오카 여자학원 이사장
- 타나카 타카시(田中 敬): 요코하마은행 특별고문
- 타나카 츠네요시(田中恆清): 신토정치연맹[23] 간사장
- 타나카 토시미치(田中 利道): 퍼시픽브레인센터 (株) 고문
- 타나카 히데미치(田中 英道): 미술역사가, 도호쿠대학 대학원 교수
- 타네가시마 케이(種子島 経): 전 BMW 도쿄 (株) 사장
- 데구치 준토쿠(出口順得): 화종 사천왕사 집사장
- 테라시마 다이조(寺島泰三): 일본향우연맹 회장
- 테이 켄로(土居健朗): 정신과 의사
- 테야마 이치유키(遠山一行): 음악평론가
- 토가시 노부코(富樫 信子): 공인회계사
- 토키와 신페이(常磐新平): 작가
- 토쿠나가 요이치(徳永 洋一): BSC (株) 대표이사 겸 회장
- 토쿠마스 준마오(徳増須磨夫): 스미토모해상보험 (株) 이사
- 토비야마 이치오(飛山一男): 이스즈 (株) 고문
- 토마베치 시케토루(苫米地重亨): 정치평론가
- 토미사와 시게노부(冨澤 繁信): 전 스미토모신탁은행 상무이사
- 토미다 테츠로(富田徹郎): FCG 회장
- 토모쿠니 하치로(友國八郎): 오사카상선-미츠이선박 (株) 이사
- 토요다 아리츠네(豊田有恒): 작가
- 나가오카 미노루(長岡 實): 전 대장(大蔵)사무차관
- 나카가와 히로미(中川 弘美): 전 KAO[24] (株) 회장
- 나카가와 하치요(中川八洋): 쓰쿠바대학 교수. 후쿠오카 슈유칸 출신. 도쿄대학 항공과 우주공학코스 졸, 스탠퍼드 * 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 과기청 근무 후 츠쿠바 교수로 전직. 08년에 퇴직하여 명예교수.
- 나카시마 슈조(中島 修三): 변호사
- 나카시마 치히로(中島千尋): 교토대학 명예교수
- 나카시노 타카마사(中條 高徳): 아사히 맥주 (株) 명예고문
-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 輝政): 교토대학 교수
- 나카노 겐코(中野玄光): 정토종 진복사 주지
- 나카무라 사이(中村 粲): 독협대학 (獨協大学) 교수
- 나카무라 고(中村功): 동일본하우스 (株) 회장
- 나카무라 카츠노리(中村 勝範): 평성국제대학 학장
- 나코시 지코노스케(名越二荒之助): 전 타카치호상과대학 교수
- 나스카와 히로시(名須川 浩): 일본해석유[25] (株) 부사장 겸 이사
- 나미카와 에타(濤川栄太): 작가, 신 마츠시타무라쥬뀨 대표
- 니시 요시오(西 鋭夫): Reitaku University 교수
- 니시오 칸지(西尾幹二): 평론가
- 니시오카 츠토무(西岡 力): 동경기독교대학 교수[26]
- 니시다 마사오(西田 昌男): 帝人 (株) 부사장 겸 이사
- 니시베 스스무(西部邁): 평론가, 히데아키대학 (秀明大学) 교수
- 니시무라 카츠키(西村 勝巳): 체육스포츠정책학회 회장, 일본무도학회 고문
- 닛타 히토시(新田 均): 고각칸대학 교수
- 니와 하루키(丹羽 春喜): 오사카학원대학 교수
- 노구치 타케토시(野口 武利): 시즈오카현 노동자복지협의회 회장
- 노구치 마사카즈(野口 義和): 大新東 (株) 부사장
- 하가 토오루(芳賀 徹): 도쿄대학 명예교수
- 하시구치 슈(橋口 収): 히로시마은행 이사
- 하세가와 케이타로(長谷川 慶太郎): 경제평론가
- 하세가와 시노부(長谷川 忍): 이케부쿠로터미널 (株) 사장
- 하세가와 미치코(長谷川 三千子): 사이타마대학 교수
- 하세가와 타다노부(長谷川 霊信): 염법진교 교무총장
- 하타 이쿠히코(秦 郁彦): 니혼대학 교수
- 하타 마사시(八田 誠): 일본교통협회 부회장
- 하야시 켄고(林 慧兒): 저널 "日橋文化" 발행인
- 하야시 시로(林 四郎): 에세이스트
- 하야시 히데히코(林 秀彦): 작가
- 하야시 후지오(早矢仕 不二夫): 전 도쿄동맹 회장
- 하야시 마리코(林 真理子): 작가
- 하라다 키조(原多 喜三): 偕行社 회장
- 하즈키 타케오(茨木 武雄): 종이펄프업경영자간담회 사무국장
- 하라다 시게루(原田 滋): 기계산업기념사업재단 고문
- 히가시나카노 슈도(東中野 修道): 아세아대학 교수
- 히지카타 타케(土方 武): 일본달걀산업 (株) 회장
- 히라카와 유키히로(平川 祐弘): 후쿠오카여학원대학 교수
- 히라노 도미쿠니(平野 富國): 전 후지사와오다큐[27] (株) 대표이사사장
- 히로이케 칸토(廣池 幹堂): 모럴로지연구소 이사장
- 히로세 모토오(廣瀬 元夫): 히로세빌딩 (株) 사장
- 히로세 시미즈(廣瀬 靜水): 인류애선회 (人類愛善会) 명예회장
- 후까다 유스케(深田 祐介): 작가
- 후까노 카즈오(深野 和夫): 산요합동은행 (山陰合同銀行) 이사
- 후끼우라 타다마사(吹浦 忠正): 사이타마현립대학 교수
- 후쿠다 마사오(福田 繁雄): 그래픽 디자이너
- 후쿠다 하야리(福田 逸): 메이지대학 교수
- 후쿠미츠 신(藤光 賢): 천태종 총장
- 후쿠이 마사키(藤井 厳喜):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후지오카 노부카츠(藤岡 信勝): 척식대학 교수
- 후지타 슌쿄우(藤田 俊教): 今熊野観音寺 명예주지
- 후지타 모토시(藤田 元司): NHK프로야구해설,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 감독.
- 후네무라 토오루(船村 徹): 일본작곡가협회 회장
- 후루다치 고세(古館康生): 전 쟈와석유투자[28] (株) 사장
- 호리에 마사오(堀江 正夫): 영령에 화답하는 모임 회장
- 마에노 토오루(前野 徹): 아시아경제인간담회 회장
- 마키 후유히코(牧 冬彦): 고베제강소 (株) 이사
- 마키노 스바루(牧野 昇): 미쓰비시종합연구소 이사
- 마츠다 쇼조(松多 昭三): 손해보험회관 (株) 사장
- 마츠모토 요(松本 洋): 국제문화회관 전무이사
- 마츠모토 미치스케(松本 道介): 주오대학 문학부 교수
- 마루야마 토시오(丸山 利男): 前 일본개발은행 (日本開発銀行)[29] * 이사
- 마루야마 히데히코(丸山 秀彦): 대본산 국분사 총장
- 미에노 고(三重野康): 교린대학 객원교수
- 미야케 히사유키(三宅 久之): 정치평론가[30]
- 미야자키 마사시(宮崎 仁): 아라비아석유 이사
- 미야자키 마사히로(宮崎 正弘): 평론가, 작가
- 미야자치 요시타카(宮崎 義敬): 신토정치연맹 회장
- 미야타 요시지(宮田 義二): 철강노조연대 고문
- 미야니시 고래미치(宮西 惟道): 일기신사 (日枝神社) 궁사
- 미야노 노보루(宮野 澄): 논픽션 작가
- 미야모토 시로(宮本 四郎): 세계경제정보서비스 이사장
- 무라이 노부오(村井 信夫): 전 고마쓰건설공업[31] (株) 부사장 겸 이사
- 무라오 지로(村尾 次郎): 전 문부과학성 주임교과서검정관
- 무라타 쇼코(村田 照子): 무라타학원 이사장
- 무라타 로헤이(村田 良平): 일본재단 특별고문
- 모모세 메이지(百瀬 明治): 저술업
- 모모치 아키라(百地 章): 니혼대학 법학부 교수
- 모리타 젠로(森田 禅朗): 전 화종 사천왕사 관장
- 야츠키 슈지(八木 秀次): 타카사키경제대학 조교수
- 야쿠야마 아키라(役山 明): 偕行会 회장
- 야스모토 미노리(安本 美典): 전 산노대학 (産能大学) 교수
- 야다베 마사키(矢田部 正巳): 신사본청 총장[32]
- 야나세 지로(梁瀬 次耶): 야나세[33] (株) 대표회장
- 야노 지로(矢野 次郎): 식산주택상호 (株) 이사
- 야노 타마(矢野 弾): 야노경제연구소 부회장
- 야노 쥰히코(矢野 俊比古): 도쿄중소기업투자육성 (株) 감사
- 야마구치 고스케(山口 康助): 동경교육간담회 대표간사
- 야마카와 쿄코(山川 京子): 「桃の会」 주재
- 야마사키 세조(山崎 誠三): 산종(山種)종합연구소 (株) 회장 겸 이사
- 야마토 요시아키(大和 嘉章): 비지니스브레인-오오타쇼와 (株) 부사장 겸 이사
- 야마모토 요시후라(山本 孝圓): 천태진성종 관장
- 야마모토 타쿠시(山本 卓眞): 후지츠 (株) 명예회장
- 야야마 타로(屋山 太郎) : 정치평론가
- 요코미조 마사오(横溝 雅夫): 전 명성대학 (明星大学) 경제학부 교수
- 요시쿠니 이치로(吉國 一郎): 전 내각법제국 장관[34], NTT 특별고문
- 요시다 카즈오(吉田 和男): 교토대학 교수
- 요시다 게이토(吉田 啓堂): 일본불교종협호회 이사장
- 요시다 마나부(吉田 學): 수교회 (水交会) 회장
- 와카츠키 미키오(若月 三喜雄): 일본총합연구소 (株) 이사장
- 와타나베 야스로(渡邉 晴朗): 전 마루베니 (株) 상임고문
- 와타리 아키라(亘理 彰): 전 방위사무차관[35], 일본부동산연구소회장
5. 외부 링크
- 자유사 새로운 역사 교과서([ruby(自由社, ruby=じゆうしゃ)][ruby(新, ruby=あたら)]しい[ruby(歴史, ruby=れきし)][ruby(教科書, ruby=きょうかしょ)])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출판사인 '자유사([ruby(自由社, ruby=じゆうしゃ)])'가 자사에서 출판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ruby(新, ruby=あたら)]しい[ruby(歴史, ruby=れきし)][ruby(教科書, ruby=きょうかしょ)])'를 54.53MB 크기의 PDF 파일로 변환해 무료 배포하고 있다.
6. 관련 문서
- 일본 극우사관
- 일본 극우사관/관련인물
- 일본회의
-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
- 국수주의/행태/일본
- 애국 비즈니스
- 국가신토
- 극우
- 근린 제국 조항
- 일본 제국
- 전체주의
- 파시즘
- 국수주의
- 일본의 역사왜곡
- 뉴라이트(대한민국)
[1] 새역모를 비롯한 일본 극우에서는 기존의 사관을 자학사관이라는 식으로 폄하한다.[2] 물론 검정이니까 일부 학생들만 본다.[3] 재일교포 강상중 교수가 도쿄대 교수 시절 TV에 나와 '도쿄대에 입학하고 싶은 수험생은 이 책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이런 엉터리 교과서로 도쿄대 입시에 합격할 수 있을 수 같냐?'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도쿄대 본고사에서 일본사는 단순히 객관식이나 빈칸 채우기 정도의 문제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논술식 문제이므로 수험자의 사관(史觀)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비아냥이라기 보다 팩폭에 가까운 발언[4] 참고로 후지산케이 계열 자회사다. 주요 간행물로는 주간지인 SPA!가 있다. 물론 이 잡지도 일본 극우 성향이 배어있어서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유명작인 고마니즘 선언이 거쳐간 잡지이기도 하다. 후쇼샤 이전에는 리빙매거진이라는 사명을 썼었다.[5] 단, 내용이 형편없어서 채택되지 못했다기 보다는 어차피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야마카와 출판사(山川出版社)의 독점체제인데 저 정도의 파장 정도로 야마카와 출판사의 아성을 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게 사실에 가깝다.[6] 새역모의 이론가로 전 도쿄대 교육학부 교수, 그의 제자들이 문부과학성 요직에 상당수 포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짐.[7] 2022년 7월 8일 사망.[8] 2022년 2월 1일 사망.[9] 2007년 9월 4일 사망.[10] 현 회장대리.[11] 현 미야기현 지부장[12] 일본의 출판사[13] 현 오사카 지부장[14] 전 회장, 현 교과서 기획 편집위원장[15] 현 가나가와현 지부장[16] 일본 우익들은 난징 대학살을 아주 축소하여 난징사건이라 부른다.[17] 역전에서 종이랑 삿갓 쓰고 탁발하는 종교[18] 신궁에서 잡일 하는 종교인[19] 한국의 학원이라 보면 된다.[20] 대만 출신이며 공자식인설을 적극적으로 퍼뜨리는 인간이다.[21] 일본의 출판사.[22] 구 일본군 출신으로 최종 계급과 역직은 육군중좌, 관동군 참모. 권익현의 절친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에 11년간 포로로 있다가 석방 후 이토추에 입사, 회장까지 올라갔다. 그 후 나가소네 내각의 행정청 장관을 역임.[23] 일제의 제정일치를 지향하는 단체.[24] 화장품 메이커.[25] 주유소 에네오스ENEOS[26] 북한인권운동가며 2011북한자유주간서울대회 행사 개막식에서 북한 인권 운동의 대모 수잔 솔티의 바로 옆에 앉았다.[27] 동경의 사철[28] japex[29] 현 일본정책투자은행(DBJ). 한국산업은행의 일본 버전 국책은행.[30] 특이사항으로 원래 마이니치 신문 기자 출신에다 70년대에는 테레비 아사히 저녁뉴스 * 캐스터를 맡기도 했다. 물론 극우로 전향한 이후 요미우리 TV 등 우익 성향 매체에서도 활동했다.[31] 세계 건설장비 2위[32] 신토의 우두머리[33] 일본의 독일차딜러 대표격[34] 대한민국 법제처장 격.[35] 대한민국 국방부 차관보 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