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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3 17:35:43

김청기

김청기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문화훈장 수훈자
파일:문화보관.jpg
<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21년
이름 김청기
분야 애니메이션 감독
보관문화훈장(3등급)

}}} ||
<colbgcolor=#000><colcolor=#fff> 김청기
Kim Chung gi | 金靑基
파일:김청기_영화감독.jpg
본명 김청기
별명 로보트 태권브이의 아버지
출생 1941년 4월 18일 ([age(1941-04-18)]세)
경기도 경성부
(現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가족 아버지
아내
아들 김우종[1] 포함 2남 1녀
며느리 윤주원
학력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 63[2] / 전문학사)
종교 개신교
직업 애니메이션 감독, 만화가, 영화 감독, 유튜버
소속 서울동화 프로덕션(1973 ~ 1990, 2004~)[3]
BUM 영화 제작소(1992 ~ 1993)
→ 스톤벨 애니메이션(1995 ~ 1997)
홈페이지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수훈 보관문화훈장(2021년 수여)
데뷔 만화: 1960년 '무적의 오프린'
애니메이션: 1976년 '로보트 태권브이'

1. 개요2. 생애
2.1. 로보트 태권 V 제작2.2. 표절 논란2.3. 애니메이션
3. 제작 작품
3.1. 애니메이션
3.1.1. 로봇 애니메이션3.1.2. 그 외 애니메이션
3.2. 실사, 특촬 (어린이 영화)
4. 수상내역5. 주요 경력6.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애니메이션 감독, 만화가, 영화 감독으로 1970~80년대 어린이들이었다면 이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당시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대표작으로는 로보트 태권 V, 똘이장군, 우뢰매 시리즈 등등이 있으며 "로보트 태권브이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러나 수많은 일본미국 만화들 표절 논란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애초에 이 표절 관련도 복잡한 사정이 있다. 우선 대표작인 태권V 는 일본 마징가Z로부터 표절 논란이 휩싸여 있다. 그러나 마징가Z의 디자인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마징가 이후 등장한 모든 거대 로봇물이 크든 작든 간에 마징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어느정도선까지를 표절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다. 또 84 태권V나 우뢰매 등은 김청기 개인적인 의지와 무관하게 당시 일본 완구업체로부터 낡은 금형을 사다가 로봇을 만들고 만화영화의 제작을 후원했던 우리나라 만화/완구 업계의 구조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당시 중고 금형을 우리나라에 팔았던 일본 완구업체 또한 이러한 유통 구조의 시발점이자 한 축이었다. 실제로 일본 업체들은 이같은 유통 구조의 한 축이었고, 그랬기에 일본 측에서 우리나라에서 같은 로봇을 그대로 베껴 생산해내는 것을 뻔히 알고도 전혀 문제 삼지 않았으며, 문제 삼을 수도 없었다. 애초에 일본 업체들이 이 로봇 디자인을 가지고 한국에서 완구 및 애니메이션 사업을 하도록 승인해준 것이기 때문이다.[4] 따라서 일본 업체의 허가를 받아 금형을 사다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을 가지고 표절이라 말할 수 있느냐라는 표절의 정의의 관한 고찰과 근원적인 물음도 존재한다.

또 당시 군사정권의 영향과 전쟁을 겪었던 과거사를 기반으로 반공 소재를 애니메이션으로 다루었다, 특히 북한의 최고존엄동물농장에서 등장하는 독재자 나폴레옹[5]을 연상시키는 악당 돼지로 묘사한 점 때문에 당시엔 호평이었으나 과거부터 운동권 계층이나 민주화 이후 북한에 대해 편견을 불러 일으킨다는 이유로 후세에 극렬한 비판을 받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인터뷰[6](2010년)나 신동아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다.

2. 생애

1941년 4월 18일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일본 적산가옥에서 살았다. 벽에 낙서를 하니, 아버지가 꾸짖기는커녕 칭찬을 해줬다. 한국전쟁 이후 미8군 부대에서 나오는 코믹스들을 따라그렸다[7]. 1960년대 만화가로 첫 입문하여 19세 때 <무적의 오프린>이라는 단행본을 냈다. 그게 성공하자, 본격적으로 길을 찾는다. 이후엔 애니메이션에 발을 들인 시작점이 되었다고... 1970년대 초부터는 16밀리 카메라로 영상기록을 하거나, 원시적인 애니메이션으로 CF 등을 제작한다. 이후 선화공주와 손오공의 동화에도 참여하며 실력을 쌓았다.

이후 애니메이션 제작사 '서울동화프로덕션'를 창립하여 똘이장군, 은하함대지구호, 삼국지1~2, 꼬마어사 똘이, 공룡 100만년 똘이, 혹성 로보트 썬더 A, 수퍼 태권V, 쏠라 원투쓰리, 스페이스 간담 V , 다윗과 골리앗, 84 태권V, 꾸러기발명왕, 메카3, 똘이와 제타 로보트 등을 제작하였고 '로보트 태권 V 90'이 서울 관객 5399명으로 흥행에 참패하면서 마지막으로 폐업하고 감독 김춘범이 회사 인수를 하여 (주)BUM[8] 영화제작소와 ㈜토토엔터테인먼트를 거치며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는 서울동화픽쳐스로 운영 중이다. 이후에도 해당 제작사는 김청기 감독 참여 시절의 판권을 가지고 있고 극장 애니, 실사 영화들을 주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실사 영화에도 어느 정도 손댔다는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어린이 영화 업계에도 큰 영향력을 끼친 바가 있다.

2.1. 로보트 태권 V 제작

그는 손오공, 보물섬, 황금박쥐[9] 원화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말이 참여지, 실제로는 하청 애니메이션을 그렸다. 그러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스토리보다는 동작이나 흐름에 재미있는 요소가 있으면 그걸 확대시켰고[10], 마징가가 그렇게 대박이 났다. 한국 애들이 마징가Z가 한국 것인 줄 알고 열광했는데, 당시 한국은 반일감정이 격했던 시절이라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 어린이의 정신을 지배한다고 해서 우리 애니메이션을 만들자고 했다고 한다.[11]

그런데 인터뷰에서 보면 사람은 동전의 양면이 있고 태어나면서 악한이 있냐, 주위 환경 때문에 그렇다는 말을 했다. 김 감독은 태권도를 전혀 못해서 태권도 유단자를 데리고 16밀리 카메라로 찍어서 한 프레임씩 태권도 동작을 그려나갔다고 한다. 월트 디즈니에서는 많이 쓰였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최초라고 한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수적인 셀도 달러 유출 때문에 수입이 어려워지자 엑스레이 필름을 긁어서 했다고 한다. 그런데 마사오란 인물이 장발이니까 잘려나갔다. 그 시대에는 장발 단속이 애니메이션에도 적용되던 시절이었다. 스토리보드, 원화, 동화 등도 거의 혼자 힘으로 해서 태권브이는 대박났지만 사당동의 1800만원이나 하는 집 한 채를 날려버렸다. 그 충격으로 아내의 입이 돌아가버렸는데 김 감독에게 "당신은 이름을 얻었지만, 우린 집을 잃었다."고 했다.

2.2. 표절 논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청기의 영화인생 자체가 표절로 점철되어 있다. 2000년대 이후 로보트 태권 V마징가를 대놓고 표절한 작품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김청기에 대한 평가가 매우 나빠졌다. 과거 저작권 의식이란 게 없던 시절 표절을 일삼았음에도 시대적 이점으로 과도하게 찬양받았던 데 대한 반작용인 것. 매번 일본 작품을 배껴왔으면서 인터뷰 등에서 반일정신을 말하고 '우리의 만화', '우리의 로봇' 같은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위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태권브이의 초기 컨셉 등이 발견되면서 그레이트 마징가를 그대로 디자인 변형도 없이 사용하려 했고, 심지어 제목조차 태권브이가 아닌 마징가 태권으로 마징가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려다 도중 태권브이로 제목을 바꾸고 디자인을 변경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더욱 큰 비판을 받았다.

태권브이의 모티브에 대해서도, 2000년대 초반 이순신 장군이 모티브라 주장하였지만 다소 논란이 많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에서는 이순신 모티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뒤늦게나마 논란에 대해 알게 된 것 같다. #

파일:/img/img_link7/880/879650_1.jpg

위의 스샷이 링크의 인터뷰 영상에서 발췌한 것으로 2000년 초반에 발언한 이순신 장군 모티브가 아닌 간접적으로 표절을 인정하는 것이다.

2017년 12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열렸던 김청기 감독의 강연 중에 나왔던 내용에 의하면 이미 최초 기획단계에서부터 지방흥행사, 완구사[12] 등의 스폰서들의 요구로 당시 마징가Z가 인기가 있으니 마징가 캐릭터를 이용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했던 것을 김청기 감독이 반대하여 제목부터 '마징가 태권'에서 현재의 '로보트 태권브이'로 바뀌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마징가Z의 이미지를 그대로 그리는 것 또한 당시 기술력이나 실력면에서 부족하였기에 그 특징만을 따와서 그렸다고 김청기 감독이 직접 말하였다. 이후 태권V가 상영되던 해에 마징가Z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던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관계자가 찾아와 "잘봤다. 혹시 우리 애니메이션 일을 해보지 않겠나?"라는 TV애니메이션 하청제작 제안을 하였지다. 그러나 김청기 감독은 당시 TV애니메이션보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에 목말라 있었기에 이를 거절하였다고 밝혔다.

김청기의 강연내용 일부영상

알쓸신잡 7회에서 정재승김영하 작가가 같이 갔었던 로봇 박물관과 애니메이션 박물관 관람에도 언급이 되었다. 70년대에 김청기 감독이 뇌파를 이용한 독창적이기도 한 조종 설정을 국내 업계에서 처음으로 생각했다는 데 의의도 있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는 두 사람이 로봇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오해한 것이다. 태권브이 이전에 제작된 용자 라이딘(1975)에서는 마징가 제트처럼 자동차를 운전하는 조종간 시스템이 아닌 조종사의 팔에 부착한 기계팔의 움직임을 따라하는 혼연일체 시스템을 도입했고, 로봇이 공격을 받았을 때 조종사가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설정을 선보였다. 먼저 조종사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그것을 따라하는 주역 메카 로봇이라는 연출은 용자 라이덴에서 먼저 선보였고, 로보트 태권브이도 그 연출을 따라했다. 그런데 용자 라이덴에서는 주인공 조종사의 팔에 부착된 장치로 로봇이 조종사의 움직임을 따라 한다는 설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1976년작 로보트 태권 브이에서는 그런 설정은 없고 마징가 제트처럼 조종간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조종사의 뇌파로 조종한다는 설정은 작품 내에서는 어떠한 설명도 없다.

같은 감독(나가하마 타다오)의 연출작 투장 다이모스(1978)에서는 조종사와 주력로봇이 에반게리온처럼 싱크로나이즈해서 무술(격투기 가라테)를 주무기로 하는 연출을 하는데, 이는 로보트 태권 V 시리즈에서는 1984년에야 나오는 설정이다. 참고로 컴퓨터와 유저가 뇌파로 연결되는 설정은 서구 SF에서도 1981년의 사이버펑크 선구적인 작품 Vernor Steffen Vinge의 True Names이다.

현재는 이같은 논란이 태권 V의 리메이크 영화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건 단순히 표절의 문제가 아니라 태권 V 리메이크를 기획한 여러 회사들과 각자 계약을 맺었고 3중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태권브이의 판권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것은 2000년대 초 태권브이 붐 당시의 이야기로 이때 신원동화와 스튜디오 브이, 그리고 신씨네 사이에서 김청기가 판권을 돌린 것 때문에 당시 여러 기획이 파토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태권브이 실사화의 경우는 이미 신씨네로 판권이 인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김청기가 이중계약을 맺을 수도 없고[13], 실상 이미 신씨네에 판권을 넘긴 상태이기 때문에 기획을 파토낼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신원동화와 스튜디오 브이는 판권계약을 맺지 않고 그저 김청기를 고문으로 들여 기획을 진행하다 김청기와의 갈등으로 엎어진 것이다. 실제로 2005년경 진행되어 온 태권브이 영화화는 실제 제작사였던 DDS가 미래전사 런딤의 흥행을 말아먹으면서 초토화가 되어버려 파토가 난 것이지 김청기가 손을 썼기 때문에 기획이 엎어진 것은 아니다. 2007년 이후론 1990년 이전 작품들의 판권은 '서울동화픽쳐스'가 이후 미디어 믹스 판권은 유프로덕션과 김청기[14]에게 있던 것이 '신씨네'라는 영화 제작사에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태권브이 관련 미디어 믹스에 과거 표절 논란 같은 대다수의 잡음이 일어나는 원인은 감독보단 영화 제작사인 신씨네의 책임이 큰 편이다.

사실 《한국 슈퍼 로봇 열전》 앞에 실린 김청기 감독의 추천사를 읽어보면 자신이 해왔던 표절들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는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도적으로 도용을 해온 장본인 중 한 사람으로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모든 팩트와 세간의 비판을 부정하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꼰대'라는 10~30대 젊은 소비층의 비판과는 좀 다른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만화영화의 선구자로 추앙받고 영웅시되던 시절에 나온 고백이 아니라 온갖 표절로 비판받고 난 후에 자기반성 비슷한 발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가지고 포장할 건덕지는 못 된다는 의견도 있다.

자세한 태권 브이와 관련한 표절 논란은 로보트 태권 V 시리즈/비판 및 논란 문서 참조.

2.3. 애니메이션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을 보고 놀랐는데, 비즈니스적 논리가 아니라 작가가 자유롭게 만드는 거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동용이 아니라 철학 쪽으로 하고 싶다고, 그러나 정작 이 분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이걸루 돈 좀 벌었네 아니면 망했네가 초점이고 작품성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15] 그리고 괴작 취급인 초합금 로보트 쏠라 원투쓰리에 대해 기자가 질문을 던지자, "망했어!" 한마디만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해에 태어났는데, 하야오 감독을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한다고 한다.

사실 이런 비난은 데즈카 오사무도 꽤나 받았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동시대 일본은 경제 복구가 된 상태였고, 거기에 한국에선 아직 사정이 넉넉치 않았고 군사정부의 영향도 있어 숱하게 벌여왔던 작가들에 대한 검열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16] 부러워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면서 프랑스를 본받자고 한다. 프랑스 문화원 같은 곳을 가면 퀄러티 높은 작품들이 많은데, 대부분 정부에서 지원을 하는 건데 한국 정부도 지원을 해줬으면 한다고... 그러면서 10억(!)을 들여서 1년에 하나씩 만들면 10년 후에는 100억짜리가 된다고 한다. 사실 정부에서 지원해줘야 하는 것도 맞긴 하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 제작사가 자립할 수 있는 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 모르는 편이다. 정작 감독으로서 스스로 창작한 것은 몆 개 안되고 매번 카피만 해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 부풀려진 커리어와 명성 그리고 그에 걸맞지 못한 감독으로서의 실력

3. 제작 작품

3.1. 애니메이션

3.1.1. 로봇 애니메이션

3.1.2. 그 외 애니메이션

3.2. 실사, 특촬 (어린이 영화)

4. 수상내역

5. 주요 경력

6. 기타



[1] 1982년 8월 3일 출생. 아역 배우 출신. 1988년 영화 <뉴머신 우뢰매>로 데뷔. 배우자는 윤주원이다.[2] #[3] 올림피아 소극장 설립(1988~1990)[4] 물론 건담은 문제가 되었다. 이는 금형이든 판권이든 일본 측과 전혀 협의가 없었기 때문. 즉 김청기 감독과는 다른 케이스다.[5] 이오시프 스탈린을 묘사, 풍자한 것이다.[6] 인터뷰어는 세븐데이즈, 구타유발자들원신연 감독[7] 이런 방식으로 미국만화를 벤치마킹한 대한민국 만화씬 초창기의 작품이 바로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다. 하지만 라이파이 시리즈는 김산호 작가만의 독자적인 개성으로 오늘날에도 독창성을 인정받는 걸작이다. 다만 작가가 환빠흑화한 뒤에는 이쪽 작품만 그리고 있어서 그렇지.[8] 비유엠, 범이라고도 함. 범영화제작소라고 쓰는 게 옳겠지만 기존 BUM 글자를 타이핑한 로고 말고 호랑이 얼굴이 들어간 로고도 혼용된 것으로 보아 명칭 역시 회사 공식에서는 범영화제작소와 비유엠영화제작소 표기가 혼용되었다.[9] 만약 이것이 동양방송이 참여한 황금박쥐라면 뻥일 가능성이 높다. 이 작품은 일본의 원청회사였던 제일동화에서 그려보낸 원화를 한국의 동양방송이 동화 작업이나 채색 등의 하청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만화영화에 검은 별과 황금박쥐#라고 미국 만화 배트맨을 표절한 만화영화가 있기는 하다. 황금박쥐 캐릭터가 배트맨의 판박이. 아마도 이 만화영화에서 원화를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이 영화는 개봉일자가 1979년이라 이미 태권브이로 감독을 한 김청기가 이 작품에서 원화를 그렸다고 보기는 힘들다.[10] 현재에도 존재하는 옴니버스 전개 방식의 애니메이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하다.[11] 당시 일제강점기가 30여년 정도나 지났고 1965년에 한일수교을 맺었다고 해도 당시에 한일협정반대운동이 있었을 만큼 반일감정과 과거사 문제 또한 복잡했던 부분이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까진 이런 생각이 주로 정설이었을 수밖엔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 돼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추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반만년 역사 동안 지켜온 우리 민족의 문화는 하루아침에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이며 더 이상의 문화 쇄국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란 말이 이런 가치관에 대한 주요 반박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12] 실제로 한국 메카물에서 일본 메카의 표절이 많았던 이유가 완구업체 스폰싱 관련 이해관계적 이유로도 상당 부분이 설명된다. 물론 원산지인 일본도 역시 장난감 장사를 해야 하니 (특히 아동대상) 애니메이션에 완구업체 스폰서가 중요하겠지만, 당시 옛날 한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한국의 열악했던 제조업 수준으로는 독창적인 금형장비를 생산하기가 달렸을 테니, 이미 일본 공장에서 돌아가는 완구생산금형을 모방하거나 오래된 금형을 중고로 사서 쓰거나, 혹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베끼거나 하는 식으로 하위호환 카피를 하였을 테니 말이다.[13] 하지만 이렇게 했다간 제작사들에게 고소를 먹는다.[14] 캐릭터 원작자로써 지식재산권은 존재한다.[15] 후술할 심형래가 이 분에게 제작을 배운 걸 생각하면 심형래의 흥행지상주의도 전혀 이상하지만은 않다.[16] 미국이나 일본도 검열이 아주 없는 게 아니었다. 미국의 만화계도 실버 에이지 이전까지 50~60년대를 거쳐 시행했던 '코믹스 코드'라던가 일본도 70년대까지 여러 사유의 검열에 하도 많이 시달렸다.[17] 스폰서였던 뽀빠이 과학이 내놓은 당시 쏠라 원, 투의 완구는 갓마즈로 합체하기 위한 변형 기믹이 있었다. 쏠라 포 파이브 식스가 나왔으면 합체를 했을지도?[18] 스트리트 파이터 Q판이라고 해서 Q라고 붙여진것으로 추정됨. 'Q'는 중화권 창작물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치비 혹은 디폴메, 이와 준하게 우스꽝스럽게 된 캐릭터나 그림체를 지칭하는 표현이다.[19] 그런데 관람등급이 무려 전체 관람가!!! 아주 약간 선정적인 장면도 나오고 잔인한 폭력 장면도 여지없이 나오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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