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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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 노무현의 비판과 논란을 정리한 문서이다.2. 과격한 언행
워낙 자기 주장이 강했던 사람이고, 이런 자신의 주장을 공적인 자리에서 진행한 연설에서조차 과격하게 표현하다보니 임기 중 유난히 언행에 대한 시시비비가 잦았던 대통령이기도 하다.[1]예나 지금이나 이 언행 문제가 터질 때마다 노무현 본인과 지지자들은 항상 '전체 내용은 그렇지 않은데 문제가 될 법한 발언만 강조해서 내보낸 언론이 문제다.'라는 식으로 해명하였다.[2]
이를테면 위 사진의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발언은 취임 3달 쯤, 2003년 5.18 기념식 때 5.18묘역 입구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5.18 행사추진위 간부들의 사과 및 시위 학생 선처를 부탁하는 자리였다. 당연히 분위기는 무거웠고 격 없이 장난 식으로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노사모라는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이 생길만큼 국민들의 자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 중 하나였는데 취임한지 3개월도 안 돼서 굳이 저러한 식의 표현을 사용해 국민들의 비판을 샀다.[3]
발언 자체가 반 민주적인 발언이라는 지적도 있었는데 실제로 당시 언론에서 노조 등 이익 단체들과 공권력의 충돌을 예상하고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
결국 노무현의 이러한 행보로 인해서 당시 오마이뉴스에선 ‘노무현 정부는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라는 평을 내리기도 하였다. #.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 직을 못 해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 (집단행동 등)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결국 이 발언이 언론에 반복적으로 다뤄지면서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구절만 남게 된다. 결국 ‘국민을 협박하는 대통령’, ‘대통령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발언’, ‘취임 몇 달이 지났다고 벌써 대통령 못 해먹겠다는 소리가 나오냐’, ‘스스로 임기 중 사퇴 가능성을 내비치며 레임덕을 자초했다’ 등 온갖 비판이 쏟아졌다.
같은 논지를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이 발언이 술김에 혹은 막말 - 반론의 형식으로 뒤집히는 수사에서라도 나와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 발언이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국민들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데 있다. 매 정권이 그러하듯, 국민들은 집권 초기에 정부에 대해 큰 기대와 희망을 거는 것이 사실이고 정부 역시 세상을 다 바꿀 것처럼 의욕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로 정책을 추진한다. 저 발언이 집권 말기도 아니고 집권 초기에 나온 것인데, 그걸 듣는 국민들 혹은 노무현을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만들어준 유권자들에게는 얼마나 섭섭하고 아쉬운 소리인지 모른다. 다소 과격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자녀가 부모에게 ‘우리 집이 가난해서 너무 살기가 힘들어’라고 한다면 그 가정이 실제로 가난한지 가난한지를 따지지 않더라도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먹먹해질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비유는 그다지 적절치 않은 것이, 자식은 탄생에 대한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자식이 가난해서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하는 원인과 그 책임은 온전히 부모에게 있는 것이다.
여하튼 대통령은 대선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인물이다. 대선에서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은 후보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데 그를 뽑지 않은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당연히 빈정거릴 만하며 그를 뽑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못 해먹겠다’ 발언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아주 잘못된 발언이었던 것이다. 아예 그런 발언이 머릿속 사전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위험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권력과 동시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노무현이 내뱉은 말들 중 도가 지나치게 과격한 발언이 있다면, 2007년 대선 정국에서 한나라당 후보인 이명박을 비난한 것에 대해 중앙선관위가 헌법 7조에 규정된 ‘공무원의 정치중립’ 위반이라고 결정하자 ‘그 놈의 헌법’이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고[4](#), ‘남북 대화만 잘 되면 깽판 쳐도 좋다’는 발언(#)[5]을 한 적도 있다. 심지어 기자실 통폐합에 앞서 대못질 해버리겠다고 한 것이라든지, 뇌물을 받은 형을 옹호하기 위해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에게 ‘좋은 학교 나와서 출세하신 분이 촌부[6]에게 고개 숙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비아냥댄 적도 있었다.[7] 이 일로 인해 노무현은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고, 지지자들조차 이 발언은 너무 경솔했다는 평을 내린다.
이것 외에도 ‘호남 의원들과는 정치를 못 해먹겠다(#)’라는 식의 지역비하로 볼 수 있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해당 발언이 나온 맥락을 적어보면 당시 전라남도 나주시에서 열린 광주·전남 주요 인사 오찬 간담회에서 ‘무조건 호남 뭉치자’라고만 외쳐대는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을 보고 갑갑한 마음이 들어 이들과는 정치를 못 해먹겠다는 발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 노무현 입장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일단 뭉치고 보자는 말만 반복해대니 그걸 보고 답답했을 것이고 그래서 저런 발언이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다 해도 정치를 같이 못 해먹겠다라는 식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또한 대통령 당선 후 ‘호남 사람들이 나 좋아서 찍은 게 아니라 이회창 싫어서 나를 찍은 것(#)’이라고 발언하는 바람에 많은 국민들의 뒷목을 잡게 했고, 가뜩이나 호남 출신 의원이 많은 당내에서도 큰 반발을 불러왔다. 결국 4회 지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전라북도밖에 못 먹고 전남을 민주당에게 빼앗기게 된다.
그 외에도 위에서 언급했던,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 다음 날인 2007년 6월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 ‘그 놈의 헌법’ 발언 외에도 우리나라 선거법은 위헌이며 위선적인 제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위헌'적인 법으로 자신이 당선된 것을 잊기라도 한 모양. 이 외에도 노무현이 헌법과 헌법기관을 무시한 발언은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 박사 학위 수여식 직후에는 ‘후진국에서나 하는 5년 단임제, 한 마디로 쪽팔린다’와 ‘어디까지가 선거 운동이고 어디까지가 선거 중립인가. 모호한 구성 요건은 위헌이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으며, 2007년 6월 21일 헌법재판소에 ‘자연인 노무현’을 청구인으로 헌법소원을 낼 당시에는 ‘국민으로서 개인의 정치적 표현 자유가 침해됐다’, ‘선거 중립이든 정치적 중립이든 대통령에게 그런 의무를 부여한 나라는 후진국 밖에 없다’는 발언을 내뱉은 적도 있다(#).
또한 타인과 논쟁을 할 때 이성을 가지고 논쟁을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 꼬투리를 잡고 얼굴만 붉으락푸르락 거리면 논쟁의 해결에 있어서 전혀 좋지 않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을 때에도 ‘이 양반아 너 몇 살이야, 애비가 누구야!’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8] 애비라는 표현이 욕설처럼 그렇게 심각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식 석상에서 저렇게 원색적으로 쓸 만한 표현인지도 다소 의문이 들기는 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몇 개월만에 노동자들이 잇달아 분신을 하자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던 시대는 지났다’라는 막말을 하여 노동계의 분노를 샀다(#). 당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에서는 ‘충격을 넘어 절망스럽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라는 말로 노무현을 비난했다. 과거 노무현이 노동계와 친밀한 관계를 가진 인권변호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기 부정이라는 평가도 나왔을 정도.
2006년 12월 21일에는 사실상 즉흥으로[9] 1시간 넘게 연설을 했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에서는 대본 없이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즉흥 연설을 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점이 총집합되었는데, 얼차려를 받는 것을 ‘뺑뺑이를 돌린다’라고 표현을 한다거나, ‘옛날에 국방장관들이 나와서 떠들어쌌는데’[10]라고 한다거나, ‘그렇게 별들 달고 꺼드럭거리고 말았다는 얘깁니까?’, ‘그 많은 돈으로 다 떡 사 먹었느냐?’, ‘미국 응딩이 뒤에서 숨어서 형님 빽만 믿겠다’, ‘까무러치는 판인데’, ‘와들와들 사시나무 떨듯이’라는, 공식 석상에서의 연설이라기에는 도저히 부적절하고 저급한 표현들을 수도 없이 남발했다. 해당 연설이 훗날 그저 웃긴 발언들로 취급되고 온갖 부분들이 밈으로 쓰이면서 비판이 줄어든 것이지 표현 자체의 부적절성은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자세한 비판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50차 상임위원회 연설 문서 참조.
또한, 2003년 노무현이 일본 방문 중 일본공산당의 시이 가즈오(志位 和夫) 위원장을 만나 회담을 가졌을 때,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라고 발언했다(#). 원래 이 문구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달성 측면에서 볼 때 공산당 역시 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상황이 되어야 한다’라는 의도였으나, 대한민국의 특징성 때문에 공산주의를 북한, 주적으로 인식하는 국민에게는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2004년 MBC 시사매거진 2580 500회 특집 대담에서 노무현이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을 탄압하는 법으로 많이 쓰여 왔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인권 탄압이 있었고, 그래서 이것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다’라고 발언했는데, 그로 인해 안 그래도 팽팽하게 맞서던 찬반론자들이 상당수 존재하던 상황에서 이러한 발언을 하여 상당한 논쟁을 불러왔다.
김구를 ‘실패한 지도자’라고 표현한 것이 화근이 되어 각계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별히 김구를 비난하는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에서 ‘일본국민과의 대화’(TBS, 도쿄방송) 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발언인데, 일본 여자 방청객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노무현은 ‘김구 선생이었으나 정치적으로 성공을 못해 그 뒤 에이브러햄 링컨으로 바꿨다’라고 발언했다. 김구를 더 이상 존경하지 않는다는 표현이지만, 누가 누구를 존경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이니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국내도 제3국도 아닌 일본에서, 그것도 현충일에 해당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11]
한편 대선 기간 중 이회창 후보와의 TV 토론에서 경제성장률 관련 논쟁을 하다가 이회창은 6% 성장을 얘기했으나 자신은 7%는 달성해야 한다며 핀잔을 줬었는데, 추후 그 말은 표심 때문에 즉흥적으로 내뱉은 것이라고 스스로 실토하기도 했다(#.
본인의 품위 없고 과격한 언행은 노무현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는지, 그의 자서전에도 ‘대통령으로써 그러면 안 되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라며 반성하는 대목이 나온다.
3. 가정폭력과 성희롱 논란
그 친구들이 보기에는 나야말로 아내 위에 군림하는 남편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아내를) 조져야 돼! 밥상좀 들어달라고 하면, 밥상 엎어 버리고, 이불 개라고 하면 물 젖은 발로 이불을 질겅질겅 밟아버리는 거야. 그렇게 해야 꽉 잡고 살 수 있는 거야."
"그래도 남자한테는 여자가 서너명은 항상 있어야지. 한명은 가정용, 또 한명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뺑뺑이용, 그리고 또 한명은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오솔길용. 이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민주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던 1994년에 쓴 자서전인 '여보, 나좀 도와줘'라는 책에 과거 자신이 가정폭력과 성희롱을 저질렀다고 썼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남경필 대변인은 노무현의 자서전을 근거로 '아내 때리고 조져야 한다더니... 이런 사람이 대통령 될 자격 있나?'라며 노무현을 비판했다(#).[12] 특히 자서전에 있는 '가정용, 뺑뺑이용, 오솔길용' 발언은 워낙 문제적인 발언이기에 지금도 종종 언급되는 비판거리 중의 하나이다.참고로 여기서 언급되는 뺑뺑이는 밤의 불장난을 의미하는 용어로, 대통령이 된 후에 작통권 연설에서 말한 뺑뺑이(얼차려)와는 다른 뜻이다. 그리고 '오솔길용'은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로 산책용, 아주아주 순화하면 플라토닉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하간 '오솔길용'은 노무현의 부정적인 면모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로 쓰인다. 또한 앞 뒤에 생략된 부분을 보면 83년경 운동권 청년들과 대화하다가 한 말이고 이 소리를 듣자 청년들의 얼굴 색이 변했다는 언급이 있다. 80년대의 운동권들마저도 경악할 만한 발언이었다는 소리다.
심지어 퇴임 이후에도 고성과 욕설, 심지어 집기까지 던지는 등 아내와 거칠게 싸웠다는 증언이 사후에 나왔다. 다만, 이 시기가 권양숙 여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논란과 이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등이 있던 시기였던 터라 부부 사이가 좋기에는 어려웠다.[13]
4. NLL 대화록 논란
노무현 사후 유출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서 NLL과 관련하여 북한에 대한 저자세 외교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대화록 논란을 주도했던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훗날 포기 발언은 없었다고 고백했다. #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조.5. 김지태와의 인연 논란
노무현은 60년 김해 진영중학교 2학년 재학중 친일 부정축재 의혹이 있는 김지태가 설립한 부일장학회 시험에 합격해 1년 동안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부산상고(現 개성고)에 입학해서도 동문회장인 김지태가 교내에 만든 '백양장학회'에서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78년에는 김지태가 설립한 삼화그룹 고문 변호사로 일했으며 자신의 자전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이 과정을 언급하기도 하였는데 "나는 장학금만 바라보고 부산상고에 입학해 김지태 선생의 후배가 되었다"면서 "나의 오늘은 그 분(김지태)이 디딤돌을 놓아준 셈"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또한 1984년엔 김지태 회장의 유족들이 부탁한 117억원 짜리 상속세 소송을 맡아 전액을 취소 시키는 승소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그는 착수금 2000만원, 승소 사례금 4000만원을 포함 총 6000만원을 김지태 유족으로 부터 받았다고 한다. # 정수장학회의 논란이 한창이던 2012년 10월 22일,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은 노무현과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원래 명칭)의 원 소유자인 김지태와의 이와 같은 인연을 들어 논란을 촉발 시켰다.
이정현 전 의원은 "김지태씨는 친일 부정축재 의혹이 있는데, 민주당이 언제부터 그런 의혹이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됐냐?" 라고 말했다. # 그러나, 이 발언을 두고 같은 날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이정현의 발언을 비판하며 "민주당이 '왜 강압과 부당한 방법으로 남의 재산을 강탈하고 그 위에서 온갖 혜택을 누렸냐'고 묻자 느닷없이 새누리당 이 단장이 '너도 한패냐' 라고 윽박지르고 나섰다"라고 말했다. #
6. 이명박 관련
6.1. 이명박 불법사찰 논란
이 기사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8월부터 네달간 국정원 직원이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친인척과 가족들의 뒷조사를 광범위하게 진행한 사실이 법원 판결을 통해 드러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전직 국정원 직원 고 모 씨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고씨는 당시 이명박의 주변인물 131명에 대해 500여 건의 정보를 수집해 42페이지의 보고서를 작성.
뒷조사 대상은 김윤옥 여사와 처남 김재정 씨, 맏형 이상은 씨 일가뿐 아니라 둘째형 이상득 의원 일가 등 친인척 대부분이 포함.
추가로 신현송 전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참모그룹도 포함되었음.
특히 BBK 사건의 당사자였던 김경준 씨와 부인 이보라 씨도 뒷조사 대상이었으며 국정원 직원 고씨는 이들의 부동산 보유 현황과 소득 내역, 주민등록 정보 등을 전방위로 조사함.
이에 대해 국정원은 "공직자의 비리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적법한 직무를 수행한 것"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보내기도 하였으나, 재판부는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넘어선 조사'였다며, 국정원 직원 고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뒷조사 대상은 김윤옥 여사와 처남 김재정 씨, 맏형 이상은 씨 일가뿐 아니라 둘째형 이상득 의원 일가 등 친인척 대부분이 포함.
추가로 신현송 전 대통령 경제보좌관과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 참모그룹도 포함되었음.
특히 BBK 사건의 당사자였던 김경준 씨와 부인 이보라 씨도 뒷조사 대상이었으며 국정원 직원 고씨는 이들의 부동산 보유 현황과 소득 내역, 주민등록 정보 등을 전방위로 조사함.
다만 법원에선 이 사건을 고씨 개인의 단독행위로 판단하였다. 고씨는 법정에서 ‘서울 서초동에 이명박 대통령의 차명 부동산이 있다’는 첩보를 듣고 상급자의 승인을 받아 조사업무를 진행했으며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상부의 지시를 받아 수사업무를 진행했다는 고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고씨의 상관이 다른 보고를 받으며 이 대통령의 서초동 땅에 대한 이야기를 고씨로부터 들었지만, 상관은 고씨에게 무리하지 말고 여의치 않으면 안 해도 좋으니 그만두라고 당부했을 뿐이며 이후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해 조사를 그만둔 것으로 생각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며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등 적정한 절차도 없이 개인정보 등을 지속적으로 열람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항소심에서도 법원의 판결은 변함없이 유지되어 형이 확정 되었다.#
7. 청와대 사진사의 사진 유출 사건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하자면 참여정부 초반인 2003년 초반에 국정원 간부 22명 전원의 사진[14] 공개되는 큰 사태가 발생했다. 유출시킨 사람은 청와대 사진사인 서모씨였고 유출시킨 신문은 오마이뉴스였다고 한다. 당연히 "청와대의 보안의식 불감증이 중증에 달했다" "국정원의 업무 기강이 풀어질대로 풀어져 있다." "청와대와 국정원이 이럴진대 국민은 누구를 믿고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는가."등 크게 비판을 받았고 노무현은 이에 대해서 "있을 수 없는 일" "진상조사를 해 냉정하게 책임을 묻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흐른 후인 2004년 2월 25일, 민주당은 참여정부 출범 1주년을 맞아 '실패한 1년, 잃어버린 1년이'라는 제목의 국정평가 보고서를 배포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11가지 자질부족 사례'라는 항목이 있었고, '호남인 이회창 싫어서 나 찍은 것' 발언, 방미 중 청와대 비서진 전화불통 사건등과 더불어 이 사진 유출 사건이 자질부족 사례에 같이 포함이 되어 있었다.8. 비판론자 탄압 논란
2005년 9월, 참여정부의 친북적인 대북정책을 비판한 홍관희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감봉과 1년간 대외활동 금지 처분을 받은 이후 사직을 권고 받는 등의 중징계들을 받았다. 기사 1 기사 2몇 개월 후인 2006년 6월에는 외부 강연을 미리 신고하지 않고 국가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1개월 정직 처분을 받게되었다. 기사 이 사건을 두고 자유시민연대는 과거 폐쇄된 군부시절을 연상케 한다고 평했다.
게다가 검사들과의 대담에서 자신에게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던 검사를 좌천시켰었다. 이 검사는 그나마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는 어찌 승진했지만 결국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검사장 승진 탈락 및 고검 좌천을 통해 끝까지 정치보복을 당했다.관련기사
9. 피아제 시계 관련 논란
노무현 내지는 그의 가족이 박연차 게이트 당시 그에게서 피아제 사의 약 1억원 상당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논란과, 나아가서 이걸 논두렁에 버렸다는 루머가 퍼진 것과 관련된 논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계를 받고 나서 폐기한 것은 사실이 맞으나, 논두렁에 버렸다는 말은 사실인것이 아니라 그저 루머이다.2009년 5월 27일(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일 후)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쪽에서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을 통해 시계를 전달했고, 노건평의 부인이 권양숙 여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노건평과 문재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노건평 : 권 여사는 시계 장식이 요란해 노 전 대통령에게 드려도 사용할 만한 시계가 아니라고 판단했으며, 이에 따라 "돌려주시던가, 아니면 형님이 쓰시라" 라고 사양하다 결국 받은 것으로 안다.
문재인 : 권 여사는 "그저 고급시계 정도로 생각했는데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시계가 1억원짜리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후 권양숙은 “1억원씩이나 하는 시계가 있느냐”며 놀랐고, 결국 이 시계를 파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시민은 시계를 알게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계를 부쉈다고[15] 한다.문재인 : 권 여사는 "그저 고급시계 정도로 생각했는데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시계가 1억원짜리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2023년 3월 17일, 노무현재단은 권양숙이 해당 시계를 박연차 측으로부터 받았으며, 노무현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인지하고 시계를 폐기했다고 밝혔다.# 이는 노무현과 직접적으로 관련 단체서 공식적으로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에게 명품시계를 받았다고 사실관계 정리를 한 것으로 큰 의의가 있다.
즉 피아제 시계가 "박연차→노건평→권양숙" 순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족에게 전달된 것은 사실이며, 권양숙 여사가 이를 파기해 증거를 인멸하는 과정은 맞고, 그 증거 인멸을 공표한 것이 국정원의 여론공작 논란이라는 것이다. 이 시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16] 거부한 것과는 관계없이 노건평이 시계를 받은 시점부터 이미 대통령이 시계를 받은 것은 사실이 된다. 기사 1 기사 2 기사 3 기사들에서도 보다시피, 국정원이 증거인멸 사실을 과장해 언론에 흘렸다는 논란이 있을 뿐이다.[17]
10. 자살을 선택한 것에 대한 평가 논쟁
노무현이 자살을 택한 것에 대해서는 개개인마다 견해가 매우 달라서 지속적인 논쟁거리로 비화되었다. 변호하는 견해와 부정하는 견해로 나뉘어져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10.1. 변호하는 견해
"진정으로 부패한 자는 부패와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개혁운동가였다. 범죄자들은 범죄를 가지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ㅡ런던 <더 타임스> 논평 中
ㅡ런던 <더 타임스> 논평 中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진 사람.
유시민
정치보복이 담긴 표적수사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견해가 있다. 자살이 근본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지만, 표적 수사로 인한 개인의 억울함과 주변 사람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고, 근본적으로는 표적 수사와 정치 보복이 문제라는 견해이다. 그밖에도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안상영 전 부산광역시장, 박태영 전 전남도지사 등 정치적 사건의 검찰 수사 중 자살한 이들의 사례와 함께 강도 높은 검찰의 표적 수사가 불러온 폐해라는 것이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정몽헌과 안상영은 노무현 정권 당시의 수사 중에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 이는 달리 말하면 주변 사람들의 범죄를 염두에 두는 것이기도 하다.유시민
안희정은 노무현이 죽음을 택한 원인은 이명박 정부와 검찰의 정치 보복, 표적 수사가 원인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편으로는 언론 역시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일반적으로 자살이 부정적이기는 해도, '극한 상황에 몰린 상황에서 무조건 버티라고 말하는것은 의지드립과 상충될 수 있으며, 만일 그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처럼 사람들이 다시 돌아보고 노무현을 안타까워 했을 리도 없고, 주변인들도 계속해서 조리돌림과 망신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라는 견해이다.
실제의 유무죄와 관계없이 수사와 이후 처벌 과정에서 노무현 개인, 가족과 그와 연관된 여러 인물들의 평판 뿐 아니라 그 자신이 내세웠던 여러 가치들 또한 모욕당하고 힘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친노폐족'이라는 말이 있었듯이 노무현과 그가 상징하던 가치를 지지했던 측근들과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입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의 선택은 미래가 사라진 듯한 개인의 고통, 가족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공적인 가치까지 염두에 둔 복합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의 속마음을 다 알기는 어려우나, 비리를 저지르고 부끄러워 자살했다는 식의 평가가 일부분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죽기 직전에,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글에 자신은 더 이상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고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기에 지지자들이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단 몇십자의 글자뿐이지만 사망 직전 그의 복잡한 심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글귀다.
10.2. 부정적인 견해
노무현이 대통령 되면 이제 이상 더 대통령의 의혹 사건을 가지고 국회에서 밤낮 조사하자, 이렇게 싸우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부정부패 없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부패 문제가 국회 일의 절반을 넘습니다.
- 노무현, 2002년 12월 16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친인척과 측근 비리가 노무현의 자살에 가장 큰 동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좋게 볼 수 없다는 평이 있다. 가장이 측근도 아니고 혈육을 나눈 가족들까지 비리에 연루되어있다는 사실을 임기 내내, 그리고 퇴임 이후에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상당히 큰 오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18][19]- 노무현, 2002년 12월 16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노무현은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권자라는, 국민을 대표했었던 인물로서, 이런 사례를 남겨 대한민국의 대외적 이미지 실추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피하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세계 역사에서 국가 수장이 자살한 경우는 많지 않으며,[20] 퇴임한 대통령 중 불법 혐의로 인해 자살한 인물은 더욱 희귀하다.[21]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던 문재인은 노무현이 자신의 아내 권양숙이 박연차 게이트에 직접적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고 증언했다. #
자살과 그 의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이 실망한 것은 청렴과 도덕성을 누누이 국민들 앞에서 강조하고 주장했으며 당당한 어투로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는 대통령 임기 당시의 공약[22]과 개인의 모토가 해당 비리사태로 인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는 진실을 감정적으로 대응하여 그가 마지막으로 법과 제도를 존중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퇴임 후 그가 봉하마을에서 귀향 연설을 할 때 [23] 노무현 본인이 분명 자신의 입으로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라야 진짜 정치인입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노무현 본인은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자신의 말을 결과적으로 지키지 않았다. 비록 저 말이 대통령 퇴임 후에 한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노무현 본인이 어려울 때 시련을 견디지 않고 목숨을 끊음으로서, 언행불일치를 보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2017년 노무현의 가치를 내세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노회찬, 박원순 등 유력 인물들이 논란이 터지자 자살로 사태를 덮어버린 일이 일어나버려 사실상 노무현이 최악의 선례를 만들어버린 꼴이 되었다. 그나마 노회찬은 일이 밝혀지고 그것을 인정, 사죄하는 글을 쓰고 떠나기라도 했지만, 박원순은 자신이 성범죄 건으로 피소된 걸 알자마자 자살해버려 진상 규명과 피해자 2차 가해 등 극심한 혼란을 야기했다. 이 와중에 임종석[24] 등 민주당원들은 박원순을 제2의 노무현으로 만들기 위해 성역화를 시도한 건지 피해호소인 망언과 박원순이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냐는 식의 발언 등으로 끊임없이 박원순을 옹호해서 민심을 잃는 추태를 보였고, 이는 이듬해 있던 재보궐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참패, 나아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교체라는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낳은 20대 대선에도 영향을 주었다.
11. 6.15 기념일 우중(雨中)골프
6.15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6.15란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줄임말이고, 이 선언은 김대중이 자신의 임기 시절인 2000년 당시 남북 간에 평화통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정일과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그런데 노무현이 이 6.15 기념일 3주년인 2003년 6월 15일 당일 6.15 행사를 하는 대신에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고 이로 인해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당시 재신임, 측근비리, 대선자금 수사로 들끓는 시기에 “골프나 한번 치시라”고 참모들이 권유했을 리는 만무하고, 결국 노무현 본인이나 부인 권양숙 여사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골프를 친다고 6.15와 관련된 정부 차원의 행사를 전혀 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노무현은 "의도적으로 6.15 선언을 무시하고 있다"[25]든가, "취임한 지 아직 반년도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해야하는 일들은 안 하고 쓸데없이 골프나 치러간다"는 비판 등을 받게 되었다.2년 후인 2005년 6월 18일에도 서울 인근 골프장에서 군 수뇌부 및 안보관련 고위인사들과 골프 회동을 가지다 북한군 병사 1명이 강원 철원군의 최전방부대 철책선을 뚫고 월남하는 등 ‘군기강 해이’ 문제가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중 이뤄진 것이어서 또다시 여론과 동떨어진 ‘부적절한 행사’가 아니었느냐는 비판을 받았었다. #
12. 태풍 매미 당시 뮤지컬 관람
2003년 9월 12일 당시 한국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태풍인 매미가 상륙하였다. 그런데 이 날 뮤지컬 관람을 하는 바람에 논란이 불거졌다. 그런데 청와대에 따르면 노무현은 이 당시에 아무것도 안한게 아니라 국가안전보장이사회로부터 2차례에 걸쳐 태풍 상황을 보고받았으며 공연 직전과 직후에도 상황을 보고받고 필요한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또한 정만호 의정비서관에 따르면 이미 오래전에 잡아놓은 일정이기도 했다고 한다. 곧 이미 오래전에 일정을 잡아 놓은 뮤지컬을 노무현은 일정에 따라 보러 갔는데 그 날 하필이면 초강력 태풍이 한국으로 올라왔고 노무현은 이에 대해서 필요한 명령을 하달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역대급 규모의 태풍이 상륙할거란건 당연히 예측되었으며 그로인해 관계공무원들은 비상대기를 하고있던 상황인데 대통령이 태풍이 상륙할줄 모르고 예정된 행사를 진행했다는 해명은 구차하기 그지없는 변명일 뿐이다.[26] 당연히 이런 변명은 큰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여론 때문에 노무현은 9월 24일 당시 국민에게 송구스럽다며 대국민 사과까지 하게 되었다.[27]13. 한일정상회담에서의 '다케시마' 호칭
일본에서 자행한 논란의 발언이 몇가지 있었는데, 2004년 7월 21일 한일정상회담 당시 독도를 일본이 자국 영토라며 부르는 호칭인 다케시마라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다.
21일 정상회담이 끝난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말)라고 한차례 호칭했다. 일본 기자가 "역사인식 문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다케시마 문제 등 현안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인식은 무엇이며, 이런 장벽을 어떻게 메워나갈지 알고 싶다"고 묻자 노무현은 "우리 한국에는 "혼삿날은 장삿말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좋은 날은 되도록 좋은 말만 하자는 뜻인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다케시마 문제에 관해서는 적당하게 얘기하고 넘어가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하고자 한다"고 대답했다. 또한 한.일간 과거사 문제와 관련, "정부간 새로운 합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공식적 제기나 쟁점화를 하는 것을 가급적이면 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임기내 이 문제를 공식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밝혔다.
볼 것도 없이 이같은 다케시마 발언은 당시 국내 정치권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은 22일 오전 상임운영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원 위원은 "내 고향이 제주도"라고 밝힌 뒤, 이번 정상회담이 영화 '쉬리' 촬영장소에서 이뤄진 점을 지목하며 "쉬리의 언덕에 다케시마가 웬말이냐. 의원들끼리 독도 방문 추진하려고 하는데 정부 공식 명칭인 다케시마 방문 계획으로 바꿔야 될까 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이 '친일진상규명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듯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로 국내에서는 정치적으로 재미 볼 것은 다 보면서 고이즈미 총리에게는 다케시마라 그랬다"고 비판했다. #
당시 노무현이 다케시마라고 말한 것을 한국측 통역사가 독도라고 바꿔 통역해야 했다. 우리측 통역관이 ‘독도’로 정정할 정도로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는 ‘다케시마’라는 표현에 대해 대한민국 정상이 생각없이 일본기자의 표현 그대로 지칭하고서도 실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볼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 실제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내에서 그의 외교 정책을 "굴종 외교"로 규정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14. 책에서의 비난
세상을 지배하는 개들(로랑 제라(2003))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노무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혐오스러운 감정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읽음에 주의하자.주의사항: 가끔 신물이 날 정도로 종이신문을 씹는다.
이 개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짖는 것이다. 일단 열 받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짖어댄다. 그곳이 남의 집 마당이든 공공장소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일단 짖어대면 사방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러나 북쪽 개들에게만은 예외로, 한 배를 탄 동무처럼 짖지 않고 호의를 베푼다. 부잣집 개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잘 먹고 호사하는 애완용 개나 고관들의 족보를 채워진 비싼 개는 무조건 공격대상이다. 특히 신문사 사장집 고양이와는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있어 틈만 생기면 으르렁거린다. 단점은 때와 장소를 가려 짖는 눈치가 모자라 스스로 곤경을 자초하는 데 있다. 하지만 연약한 면도 있어서 곧잘 운다. 이 유별난 종자는 자신의 성격을 검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 검사가 일반 검사일 때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낸다. 한번은 검사받던 중 막 나가버린 적도 있다. 사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주인집을 통째로 옮기는 성향도 있어 조심스럽게 키워야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개들 - 로랑 제라(2003)#1#2
프랑스의 풍자 만화가가 그린 것으로, '진돗개' 노무현은 한국 특별판에만 추가 된 표현이다. 다만 당시 정부와 견원 지간이었던 보수 신문의 부정적 시각을 그대로 옮겨온 듯. 이 책은 내용은 봤을때 어른들이 볼 법한 하드코어 정치풍자이고 강아지가 검열삭제하는 장면까지 있다. 그에 비해 겉보기는 어린이 책처럼 얇은 두께와 하드커버가 특징이다. 이 개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짖는 것이다. 일단 열 받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짖어댄다. 그곳이 남의 집 마당이든 공공장소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일단 짖어대면 사방이 소란스러워진다. 그러나 북쪽 개들에게만은 예외로, 한 배를 탄 동무처럼 짖지 않고 호의를 베푼다. 부잣집 개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아 잘 먹고 호사하는 애완용 개나 고관들의 족보를 채워진 비싼 개는 무조건 공격대상이다. 특히 신문사 사장집 고양이와는 씻을 수 없는 원한이 있어 틈만 생기면 으르렁거린다. 단점은 때와 장소를 가려 짖는 눈치가 모자라 스스로 곤경을 자초하는 데 있다. 하지만 연약한 면도 있어서 곧잘 운다. 이 유별난 종자는 자신의 성격을 검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 검사가 일반 검사일 때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낸다. 한번은 검사받던 중 막 나가버린 적도 있다. 사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주인집을 통째로 옮기는 성향도 있어 조심스럽게 키워야 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개들 - 로랑 제라(2003)#1#2
[1] 세상을 지배하는 개들 에서 노무현이 나온다.[2] 한편으로는 지지자들조차 대통령의 자리에서 공식석상에서는 발언수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대부분 같은 의견을 내보였다.[3] 노무현은 발언 직후 영부인 권양숙에게 호되게 혼이 났다고 후일담을 남긴 바 있다.[4] 노무현은 법조인(판사, 변호사) 출신이고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당연히 헌법의 중요성을 모를 사람이 아니므로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다.[5] 하지만 노무현 정권때 남북관계는 거의 발전이 없었다. 남북해운합의서(2005년 8월 10일) 체결이 유일하게 김대중 정권 때보다 발전한 것이다.[6] 자신이 형이 순진무구한 사람이라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쓴 표현이나, 노무현의 형 노건평 씨는 1978년 7급 공무원 시절에 수뢰 혐의로 징계, 파면당한 이력이 있고, 그 이후로도 해 먹은 이력이 많은 사람이라 순진무구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노무현의 판사직 사직도 노건평의 비리가 큰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노무현은 노건평이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연루되었을 때 내가 사과하는 것은 형의 죄를 인정하는 격이 되니 사과할 수 없다고 버티기도 했다.[7] 발언 직후 남상국 사장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강 다리에서 투신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일 회고록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서 ‘(실명을 언급한 것은) 나의 실수였다’라고 밝혔다. 2009년 송영길 의원은 이 사건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8] 물론, 당연히 특정인에게 이런 발언을 한 것이 아닌, '이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발언이었다.[9] 원래 20분간 연설하고 내려올 예정이었으나 노무현 본인이 즉흥으로 80분 가량을 끊김없이 연설했다.[10] ‘자꾸 말을 많이 하는데’ 정도로 말했으면 적당했을 것이다.[11] 존경하는 인물이 김구에서 링컨으로 바뀌었다는 노무현의 대답은 그가 대선 후보 시절 집필한 ‘노무현이 만난 링컨’ 서두에 등장하는 문장과 거의 판박이 수준이다. 일종의 소신이지만 그런 말을 한 시간과 장소가 심히 부적절했다.[12] 노무현의 해당 자서전은 그가 '나의 과거는 이랬지만, 지금은 참회하고 다른 사람이 됐다'라는 취지로 반성하며 쓴 책인데 사실 가정에서 폭력을 저지르고 단순히 후회하는 것이 전형적인 폭력남편들의 흔한 변명 레퍼토리이기는 하다.[13] 노 전 대통령 서거 전 날의 집안 분위기가 그랬었다고 한 측근이 익명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백무현의 만화 노무현이나 회고록 같은 책에서 묘사되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었다.[14] 문제는 이 22명에 신상 공개가 허용된 정무직 간부들뿐 아니라 국ㆍ실장들의 얼굴도 모두 들어 있었는데, 이들은 국정원의 실무를 책임지는 중추 간부라서 이름을 비롯한 신상 자체가 국가 기밀로 분류돼 법적으로 공개가 금지되어 있는 사람들이다.[15] 피의자가 직접 증거를 인멸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16]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의 주장에 의하면 수사 과정에서 노무현은 권양숙이 밖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반면 유시민에 의하면 노무현에게 직접 망치로 부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17] 사실 이것도 조사로 밝혀진 게 아니라 당시 중수부장이었던 이인규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 측에서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원세훈 입장문 전국언론노동조합의 SBS 논두렁 시계 보도 진상조사에서도 국정원이 개입한 여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에 체류 중인 이인규는 필요하다면 한국에 와서 조사를 받겠다고 밝히기는 하였다.[18] 2004년부터 노건평씨와 그의 처남 민경찬씨가 친인척 비리를 감시하는 민정수석의 표적이 된 이래로 쭉 측근 비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몰랐을까라는 점이다. 참고로, 민정수석은 대통령비서실의 산하 집단으로, 대통령과 직접적인 면담을 주기적으로 주고 받는다. #[19]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은 임기 말에 비서실장까지 오르는 문재인이었다.[20] 굳이 대통령 뿐만 아니라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 전 근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왕, 황제까지 전부 포함해서.[21] 참고로 2009년 기준으로, 노무현 이전에 가장 최근에 자살한 권력자는 2003년에 병마와 싸우다 총으로 자살한 카를로스 로베르토 레이나 전 온두라스 대통령. 후자의 예는 20세기 중반 브라질의 독재자 제툴리오 바르가스. 경제 악화로 인해 군부로부터 사임 요구를 받았고 결국 1954년에 마찬가지로 총으로 자살했다.[22] 사실 공약 때만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 문서의 맨 위에 링크를 걸어 놓은 뉴스 내용에도 적혀있듯이 재임 중에도 노무현은 도덕성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늘 강조해왔다.[23] 이 영상의 3분 20초 즈음[24]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그 사람이 맞다. 정치적 야인이던 시절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밑에서 정무부시장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25] 노무현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제일 먼저 서명한 법이 대북송금 특검법이다.[26] 서울과 인천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가 모두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었을 정도로 대형태풍이었다.[27] 최낙정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이걸 무리하게 옹호하다가 경질되는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