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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별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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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본고사
2.1. 특징2.2. 순기능 - 일정 수준 이상의 공부 역량을 기르는 데 최적화된 문제2.3. 역기능2.4. 역사
2.4.1. 광복 이후 ~ 70년대: 본고사 세대2.4.2. 1981년 ~ 1993년: 대학입학 학력고사 세대2.4.3. 1994년 ~ 1996년: 본고사+대학수학능력시험+내신 세대2.4.4. 1997년 ~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세대
2.5. 부활 가능성?2.6. 3불정책과의 관련성
3. 본고사 외의 대학별고사 전형4. 관련 문서

1. 개요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5조(입학전형자료) ①대학은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 대학별고사(논술 등 필답고사, 면접·구술고사, 신체검사, 실기·실험고사 및 교직적성·인성검사를 말한다)의 성적과 자기소개서 등 교과성적외의 자료 등을 입학전형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제10조(대학등의 입학전형 등) ① 대학은 대학별고사를 실시하는 경우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 또는 평가하여서는 아니 된다.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입학 시험. 고등교육법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넓은 의미로는 논술이나 면접, 실기시험 등도 다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좁은 의미로는 논술을 제외하고 국영수 중심의 교과 지식을 평가하는 지필고사(주로 본고사라 함)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사실 본고사는 정식 용어는 아니고 1969학년도부터 대학입학 예비고사가 시행되면서 예비고사의 상대개념으로 쓰이기 시작한 말이지만, 예비고사가 폐지된 후로도 국영수 중심의 교과 지식을 묻는 필기시험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정착하여 통용되고 있다.

본 문서에는 주로 본고사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2. 본고사

2.1. 특징

보통 2~3시간 남짓한 시간에 문항 수는 5문제에서 많아야 10문제를 넘지 않게 출제되며 모두 주관식 서술형으로 답해야 한다.

가장 큰 특징은, 수능과 비교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극도로 심화된 해당 과목의 지식과 이해를 요구한다. 평이한 난이도의 객관식 문제를 빠르게 풀어나가는 수능 스타일에만 익숙하고 심화된 서술형 테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수험생은 문제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펜 한 번 못 대본 채 멍하니 백지를 본 채 수험장을 구경만 하고 그냥 나오게 된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대학별본고사는 결국 학력고사의 도입에 따라 역사속으로 사라져 현재 논술고사가 그 흔적처럼 남아있다.

과거 한국에 본고사만 있던 시절에도 난이도는 극악이었다. 간단한 예시로, 단기 4286년도(서기 1953년도) 연희대학 (연세대학교의 옛 명칭) 본고사는 최현배[1] 교수와 장기원[2] 교수가 직접 출제했는데, 전체 응시자 중 과반수가 100점 만점에 20점 미만의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파일:attachment/yonsei_test.jpg

참고로 당시 합격선은 70점대이며 경쟁률은 30:1.[3] 유형 자체는 요즘 학교 시험의 유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참고로 여기 보이는 문제가 본고사 문제 전부이다.중간에 사진은 무엇인가...

서울대 출신인 김운회(교수)의하면 서울대에서는 수험생 절반이 수학은 거의 0점을 받았다고 한다. 100점 만점 기준으로 20-30점을 넘기면 거의 합격선에 든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수학 만점을 받는 대괴수들은 언제나 극소수지만 발생했고, 대체로 물리학과를 필두로[4] 전기/화공/기계과에 진학해 선두권을 형성했다고 한다.[5]

본고사식 입시가 대세인 일본도[6] 예비고사(센터시험)와 비교했을 때 훨씬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난이도 쩔기로 유명한 도쿄대학 본고사 수리는 이과(이학부/공학부/농학부/의학부)의 경우 150분 6문제, 문과(법학부/경제학부/문학부)의 경우 100분 4문제 출제되는데, 난이도가 쩌는 해에는 2문제만 제대로 풀어도 붙을 수 있다.[7][8] 이 때문에 수능보다도 평이한 난이도와 문제은행 식으로 출제되는 센터시험은 MARCH 이상을 노리는 일본의 상위권 수험생들에겐 변별력 없는 워밍업 정도로 취급된다.

2.2. 순기능 - 일정 수준 이상의 공부 역량을 기르는 데 최적화된 문제

입시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방법 중 하나로 '추후 학문을 공부해나가거나 응용하는 데에 불필요한 요소'가 있다. 예를 들면
  1. 지엽적인 사항에 대해서 지나치게 세세한 암기를 요구하는 것
  2. 빡빡한 시간제한을 두는 것[9] (속칭 '타임어택')
  3. 수험자가 틀리기 쉽도록 고의로 함정을 파는 것[10]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수능은 확실히 1번 문제점으로부터는 자유롭지만 2,3번 문제점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능은 기본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것 외에도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변별력을 확보해야하고 이를 2,3 번으로 해결하는 것이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수능이 2,3번 문제를 어느 정도로 가지고 있는지는 출제년도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으나 본고사보다는 문제가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본고사는 그냥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버리면 (상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한) 변별력을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11]

게다가 해당년도의 수능이 실제로 어떻게 출제되는지와는 별개로 수험생들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2,3번 문제에 대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게 된다.가계의 사교육비 부담과 입시를 통한 계층고정과 같은 문제들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시간이라는 귀중한 자원이 어디에 투자되는가도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입시공부에 시간을 들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가피하다면 그 시간이 입시 뿐만 아니라 학문연구나 응용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우수한 학생들이 빨리 풀기 연습이나 함정 피하기 연습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다.

2.3. 역기능

문제는 극도로 심화된 지식과 사고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교육상품의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간다는 점이다. 때문에 사교육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교육부의 주적이 된다. 또한 시험 문제 자체의 난이도는 매우 높고 고도로 심화된 지식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량에 중심을 두어 학생들의 사고력과 수학능력을 평가한다는 목적을 둔다면 타당성(validity)이 상당히 떨어질 수도 있다. 사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수능이다. 미국의 SAT가 간단한 지식만을 요구하며 순수한 역량평가적 측면이 강한 반면 한국의 수능은 지식 역시 상당 수준으로 물어보고 있다. 수능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수능 시험이 어느 정도 사고력을 측정하고, 기계적인 암기(암기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로 되는 시험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그리고 본고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시험에 대한 채점권한을 대학이 가진다는 것, 그리고 대학은 이를 악용하여 온갖 입시 비리를 저지른다는 것,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는 것[12] 이므로 적어도 수능의 변별력,난이도를 비판할 수는 있어도 과연 대학들이 본고사 부활을 주장할 자격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니, 당장 본고사가 폐지된 지금도 수능만으로는 선발하지 않는 학과(주로 예체능)에서 입시비리가 매년 터지는[13] 건 본질적으로 채점 권한이 국가가 아니라 대학에 있다는 걸 악용한 것이다. 이를 보아 본고사가 현 수능보다 우월한 입시제도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4. 역사

한국에서의 대학별고사(본고사)의 역사는 예비고사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2.4.1. 광복 이후 ~ 70년대: 본고사 세대

광복 이후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국가 주도의 학력평가시험이 없던 시절에는 대학 자율적으로 학생을 뽑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학별고사(본고사)만 있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1962학년도에 사립대학들의 입시비리를 없앤다는 취지[14]로 전국 대학 총정원의 1배수를 국가시험으로 선발하는 충격과 공포를 시전했다.[15] 그러나 63학년도 시험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1969학년도부터 340점 만점의 예비고사를 통해 1차로 지원자를 거르고[16] 2차로 본고사를 치르게 되었지만, '예비고사는 예선통과고 역시 '본고사가 본게임''이라는 인식이었다.[17] 당연히 본고사는 각 대학에서 치렀으며 국어, 영어, 수학이 기본인데 이걸 그대로 가져가거나 여기에서 몇 과목 추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절 입학하였던 현재의 장년층 내지 노년층(특히 교수들) 중에는 자신이 본고사 세대였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학력고사 세대와 수능 세대를 낮춰보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18]

본고사의 장점은 문제가 매우 어렵고 모든 문제가 서술형이기 때문에 학생의 실력을 가려내는 변별력은 탁월하지만, 심화된 사고력의 사교육이 만연하게 된다는 매우 큰 단점이 있었다.

현재 본고사식 입시가 대세인 일본의 예시를 들면, 도쿄대학교토대학은 둘 다 일본에서 1, 2위를 다투는 킹왕짱 종합대학이지만 출제 교수진에 따라 문제 성향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19] 이런 본고사식 입시는 하루이틀 벼락치기로는 해결할 수 없고, 오랜 시간에 걸쳐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스템에 비해 교육상품의 가격이 월등히 높았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는 70년대 고액 과외가 성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이들 세대는 최소 59세이며, 2026년경을 기점으로 본고사 세대는 모두 노인이 된다.

2.4.2. 1981년 ~ 1993년: 대학입학 학력고사 세대

1980년에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심 달래기의 일환으로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하여 1981학년도부터 고액과외의 원인이었던 본고사를 일괄적으로 폐지하고, 1969학년도부터 시행해오던 예비고사의 점수와 고교내신만으로 전형을 실시하도록 했다.[20] 1982학년도[21]에는 예비고사의 이름이 대학입학학력고사로 변경되었고 국가 총정원의 1.x배수를 컷트하는 제도를 폐지했다. 처음 학력고사는 암기 중심에 과목도 고교 거의 전과목(15과목)을 다루는 시험이어서 그럭 저럭 난이도에 불만은 없었다. 이 때 서울대 최상위학과 커트라인이 310점대, 연세대 경영학과 등이 290점대. 그러나 차츰 암기 위주의 시험에 대한 비판이 있자 80년대 후반에는 본고사 못지 않게 변별력이 쩔어주는 시험으로 바뀐다.[22] 아주 어려운 1989~1991학년도의 경우 340점 만점[23]에 300~310점을 넘으면 전국 100등 이내의 등수가 나왔고[24], 280 ~ 290점을 넘으면 서울대 법대와 물리학과[25]를 그냥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웠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대학들은 학력고사가 본고사를 대체할 만큼 확실하게 변별력을 가지기에 교육부에 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최상위권(최소 7% 이내)의 이야기였다. 중위권 학생들 중에서는 학력고사는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못 풀겠다는 학생들이 속출했고, 모르는 문제는 아예 찍어야 했기 때문에 중하위권에게 있어 학력고사는 오히려 변별력이 떨어졌다.[26][27] 또한 과외, 교습 금지령으로 인해 교육상품은 오히려 음지에서 몰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었다. 이 시기 '한 대학생의 행동이 수상해서 간첩이나 주사파인줄 알고 뒤를 따라가봤더니 올빼미 과외더라' 식의 도시전설이 유행하기도 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학력고사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역량을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단순 지식의 암기량 테스트가 아니냐'는 비판에 거세게 부딪히게 된다. 이에 1994년부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실시하게 되었다. 아울러 학력고사 시절부터 점수대별 대학교 서열이 어렴풋하게 잡히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도 학교별 편차가 심해 후대와 같은 일률적인 서열정리는 어려운 시기라 할 수 있다.[28]

2.4.3. 1994년 ~ 1996년: 본고사+대학수학능력시험+내신 세대

1994년부터 본고사가 부활하여 서울대 등 최상위권으로 불리는 몇몇 대학교에서 치뤄졌다. 과외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이 3년간 의외로 지방의 평범한 평준화 고등학교에서도 아이들끼리 칠판에 일본 본고사 수학문제 풀면서 붙은 케이스들이 나왔다. 실제로도 현재 쉬운 수능 체제보다 이 당시 본고사 때 도리어 지방 출신 학생들이 많이 오기도 하였다. 이 시기 본고사를 치뤄본 세대들 중 일부는 과외로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걸을 던져야 하는 '진검승부'에 비유하고, 수학 한문제를 2시간 ~ 3시간에 걸쳐 고민하던 시절을 추억하기도 한다.

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교과 과목과 논술고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대학별로 보는 과목이 달랐다.

서울대 같은 경우 본고사 40%, 수능 20%, 내신 40%였기 때문에, 수능을 만점 맞더라도 본고사 수학에서 한문제 망치면 떨어질 수 있다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서술형이라 부분 점수가 있음). 당시 수능 수석이던 배호필 군 같은 경우 수능 수석이라고 해서 좋긴 했는데, 가만 생각하니 본고사 망치면 말짱 꽝이란 생각에 수능 수석이 별 실속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고 한다.[29]

그러나 논란이 많던 본고사는 1997학년도 신입생선발부터 국립대학교는 본고사를 실시하지 못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한편 사립대학의 경우 강제사항이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사립대학들도 본고사를 자율적으로 폐지하였다. 원래는 시행전 폐지될 수도 있었지만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수험생에게 혼란을 주면 안된다(...)는 이유로 3년간 진행된 것. 하지만 본고사 과목 중 논술은 폐지되지 않았고, 그것이 현재까지 수시시험에서의 논술고사로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2.4.4. 1997년 ~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세대

대학수학능력시험 항목 참고.

2.5. 부활 가능성?

현재는 수능에 교육부의 필사적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의 수능 등급제로 인하여 수능이 변별력이 약화되어 논술이 강화되는것을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 이후 대학 자율화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본고사가 본격적으로 실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 좀더 정확하게 덧붙이면, 이미 어지간한 대학교 수시에서는 통합논술로 위장한 본고사가 출제되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 유수의 대학들이 수시의 비율을 점점 늘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사실 논술 시험이 아니라 수시형 수능 중심 전형인 경우가 많다는 점은 있지만.
또한, 국내 4개의 과학기술원 중 하나인 카이스트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지 않고 자기소개서나 각종 수상실적와 과외활동, 내신 등을 평가해 1차 합격생을 뽑은 후 수리 논구술 시험이라는 명칭의 본고사를 통해 입학생을 선발했었다.

역시 특수한 대학에 속하는 경찰대학사관학교들(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은 서울대와 정반대로 1차 본고사와 체력장, 신체검사를 통해 최종 합격자의 2배수 인원을 선발한 후 수능점수로 줄세워 신입생을 뽑는 방식을 쓰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들 학교들도 우선선발 비중을 점점 늘려가는 중. 현재 육사와 해사는 70%, 공사는 100%. 수능 안보고 뽑는 생도의 비율이 그 정도라는 것.

또 다른 특수대학인 한국예술종합학교 또한 수능을 반영하지 않고 각 전공별 실기시험이라 부르는 본고사를 통해 입학생을 선발한다.

종합대학이지만 포항공과대학교는 전 인원을 수시로만 뽑고, 카이스트와 달리 수능성적 없이 자기소개서와 수리 구술면접으로 선발한다.

3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서울대학교는 일본의 센터시험+본고사 시스템처럼 수능 점수를 통해 상위 2배수까지 선발한 다음 수능+논술+학생부 교과/비교과 합산 점수[30]를 통해 1차 합격자의 50%를 최종 선발하는 시스템을 쓰고 있었으나, 2013학년도부터 자연계와 경영대학에서 논술을 면접으로 대체하였고, 2015 입시부터는 정시 논구술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주요 사립대의 경우 2007년까지만 해도 교과부와 시도 교육청이 각종 규제를 통해 전력으로 본고사 부활을 저지하여 본고사가 유명무실했다. 물론 정시에 본고사가 있긴 하지만 수능 우선선발(수능 100%로 학생을 뽑는 전형)이 전체 정원의 80%이상이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었다. 쉽게 얘기해서 수능을 매우 잘 보고 논술 남들 쓰는대로만 쓰면 붙는다는 이야기. 결국 정시에서 본고사는 2009년을 기점으로 많은 대학에서 폐지하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교육정책이 대학 자율화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서서히 본고사 시스템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실제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수시모집의 비중이 확대되자 본고사를 정시에서 전부 폐지하는 대신 모두 수시에서 비중을 확대하였다. 고려대는 2009 입시부터 교과부의 3불 정책을 조금씩 벗어나려는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연세대는 대놓고 2012 입시부터 본격적인 본고사 부활을 예고했다. 결국 2011 연고대 수시에서 본고사 문제들이 통합교과형 논술의 탈을 뒤집어쓰고[31] 대거 출제되었고, 이로 인해 학원가에 본고사 열풍이 한층 가열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내신+수능+논술이라는 조합의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이 다시 나왔었다.[32]

하지만 박근혜 정부로 바뀌면서 입시간소화 정책을 실시하였고,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가 되어 비중이 줄고 있는 추세이다.

2.6. 3불정책과의 관련성

정부에선 본고사를 매우 싫어한다. 3불 정책(고교등급제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본고사 금지)에 위반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염려하고 있기 때문.

그런데 대학입시에서 수시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대학별고사의 비중 역시 크게 늘어났으나, 대학별고사 대비 교습은 수능과 달리 교과부나 EBSi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본고사 금지의 원칙은 유명무실해진 채 이제는 거의 방관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3. 본고사 외의 대학별고사 전형

4. 관련 문서


[1] 국어학자로 주시경의 제자. 한글 보급과 문법 연구에 기여했으며 연세대 문과대 건물 중 이 분의 호를 딴 외솔관이 있다.[2] 수학자로 한국 수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연세대 장기원 기념관이 독립건물로 있었으나 그 자리에 개교120주년 학술정보관이 지어지면서, 학술정보관 안에 장기원 국제회의실, 장기원 기념실이 생겼다.[3] 출처:연세춘추 고서 보관본[4] 70년대 초반 서울대 물리학과의 포스는 압도적이었다. 당시 그나마 물리과에 비벼볼만한 이과 전공은 공대 전화기 정도 뿐이었고 의대는 역시 상위권이긴 했지만 현재와 같은 위치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니 물리학과에 수학 본고사 고득점자가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5] 특히 물리과의 70년대 학번인 고참 교수님들은 상당수가 본고사 수학 초고득점자 내지 만점자들이라는 카더라도 있다.[6] 사실 일본에서는 본고사라는 말을 안쓴다. 그냥 2차학력시험, 개별학력검사라고 한다.[7] 이과1류(물리,수학 중심)와 이과2류(생물,화학 중심) 합격자의 평균 정답수는 2개, 이과3류(의학)는 3.5~4개(출처: 首都圏 国公立大医学部 数学入試問題 15ヵ年(平成9年~平成23年) 聖文新社.[8]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완전히 답하진 못하고 다른 문제 부분점수를 공략하지만.[9] 수험자의 입장에서 시간이 부족하면 단순히 시간이 부족해 못 푸는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초조함에 실수가 늘어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기 쉽다. 또 쉬운 문제를 일반적인 속도보다 빨리 풀어 시간을 절약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10] 함정이 중요한 개념적 구분을 물어보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기준이 모호하거나 사소한 착각을 유발하는 방식이라면 문제가 된다.[11] 여담으로 아래에서는 본고사가 교수들도 못푸는 문제를 내고 뻐긴다고 비난하지만 그런면에서는 현행 입시제도가 오히려 더 심각하다. 만일 교수들을 상대로 별도의 연습없이 본고사 중심의 입시와 현행 입시를 치르게 한다면 위에서 지적한 2,3번 문제때문에 후자의 경우에 교수들의 성적이 더욱 나쁠 것이다.[12] 특히 유명한 예로 1979년 고려대는 본고사에서 입시 부정 의혹을 받자 그 본고사 문제지를 새벽에 파기하는 짓을 저질렀다.[13] 당장 장시호,정유라 만 보더라도, 본고사와 관계없어 보이지만 채점에서 당락결정까지 모두 대학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본고사와 본질적으로 같다.[14] 당시 정원외로 돈을 받고 입학시켜주는 일이 사립대학들 사이에 만연해있었다.[15] 이 때 학과별로 총정원을 선발했기 때문에 일류대학의 경우 전국공통커트라인보다 상위의 점수를 받고도 탈락하는 학생도 있었고 반대로 커트라인을 넘는 지원자가 거의 없어 미달되는 학과도 있었다. 1차 탈락자는 미달된 학교의 동일학과에 지원할 수 있었다.[16] 시행 첫해에는 총정원의 1.5배수를 선발[17] 다만, 76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대부분의 대학이 예비고사 반영율을 대폭 높이게 되어 예비고사가 사실상 입학을 좌우하게 되어 이런 인식은 사그라들었다..[18] 물론 입시가 쉬워졌다고 학생들의 전반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만큼 꼰대짓에 불과하다. 또 교수 정도되면 연구실적으로 말해야지 대입시험 성적으로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19] 지금 입시 학원에서 '서울대반', '연고대반' 등의 반 이름도 수능 성적에 따른 수준별 줄세우기 분류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아니고 지망하는 대학별 본고사 난이도와 성향에 따른 60~70년대의 분류가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20] 학력고사항목의 "유래와 역사"참조[21] 따라서 학력고사세대는 엄밀히 말하면 82학번부터다. 그러나 통상 81학번을 포함한다.[22] 모든 과목이 그런 것은 아니고 주로 국영수, 특히 수학이 그랬다.[23] 필기고사 320점+체력장 20점[24] 그 당시 340점 만점에 300점 이상 받은 학생수가 1989년 900명대, 90~91년에는 1000명을 약간 넘는 정도였다. 참고로 당시 학력고사 응시자수는 98~99만명. 즉 300점 이상자의 수는 전체 응시자 수의 0.1% 정도라고 보면 된다.[25] 당시 문과, 이과의 최상위 학과. 90년대 중반까지 예비/학력고사 수석은 거의 이 두 학과에서 배출했다.[26] 1987년 이전의 학력고사는 위에 언급한 시기보다 쉬운 편이였고 또한 고교 전과목(15과목)이 학력고사 과목이였으니 큰 문제는 안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본고사 수준의 어려운 학력고사는 1989~1991년 3년간이라고 보면 된다.하지만 그때 인구가 끝내주게 많은 1970년, 1971년,, 1972년생들이 시험을 쳤다는 것.. 정준하도 이 덕분에 4수[27] 어려운 학력고사 때문에 일부 상위권을 포함한 중위권 이하에서 불만이 커졌고 그에 대한 반발로 1992,1993년 학력고사는 상대적으로 쉽게 출제되었다. 그 결과 1993년 학력고사에서 300점 이상자의 수는 약 3만명. 89~91년 시기 1천명 전후에서 왔다 갔다 한 것에 비하면 얼마나 시험이 쉬워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정도로 난이도가 널뛰기하면 지금같으면 난리날 듯.[28] 1980년대 초중반 대학입시 커트라인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서울대와 상위 사립대 사이의 점수차가 사립대끼리의 점수차이에 비해 매우 큰 편이였다. 사립대끼리는 학과에 따른 특이성도 있었던 시기였고. 따라서 일률적인 서열정리는 어려웠다. 참고로 80년대 후반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뀐 이후에는 대학들의 커트라인 비공개로 정확한 점수는 알기 어렵다.[29] 이 부분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한데, 당시에는 특차 전형이라고 해서 수능시험+내신만으로 우선 선발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이때는 서울대만 유일하게 그 제도 없이 100% 정시모집만 하고 있었다. 따라서 만약 연고대라도 가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본고사 걱정없이 수능시험 성적표를 들이미는 순간 합격이 보장되었으나 서울대를 갈 생각을 했기 때문에 별 실속없다는 얘기를 한 거였다.(만약 현행 수시처럼 특차에 합격하면 정시모집 지원 자체가 금지였다.) 실제 당시 고득점자 중 본고사에서의 불확실성 때문에 그냥 안전하게 연고대를 넣어서 특차로 가는 케이스도 있었다. 특히 의대 지망생 중에서.[30] 그나마도 2008학년도와 2009학년도에는 2차에서 수능 점수가 반영되지 않았고 면접을 보았다.[31] 물론 교과부의 태클을 피하기 위해서다.[32]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신조어가 2011년 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하는데 원래는 수능등급제 당시에 생겼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143&aid=0000020270 2005년 말에 서울대가 논술 예시를 발표하여 논술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내신+수능+논술 3가지를 모두 준비해야 부담이 생겼다. 실제로 2008학년도 정시에서는 서울시내 다수의 대학들에서 논술을 실시하면서 그 말이 실현되었다.[33] 구술면접과 같은 부분이 포함되기 때문에 일부 대학별고사와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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