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항목의 등장인물 표기는 정발판 기준으로 하되 항목 자체 개설은 흔히 알려진 이름으로 적습니다.
1. 개요
의외로 고증에 충실해서 잘 알려진 인물은 물론이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역사적 인물까지 구현되어 있다. 대부분의 항해사들은 실존 인물이며 현지어판 위키백과에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도 있다. 단 동일인물이 표기에 따라서 다른 인물로 나오기도 하고, 시대상 너무 일찍 나오거나, 너무 늦게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게임적 허용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단 한글판에 나오는 이름들을 보면 실제로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름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 코론은 몰라도 콜럼버스는 알고 마가랴네스는 몰라도 마젤란은 알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1] 또한 서양사 전공서에서마저도 한두번 나오고 말 인물들은 현지 표기 → 일본식 표기 → 우리나라 표기로 일종의 중역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실제 이름과는 거리가 먼 이름들이 나온다. 게다가 게임 번역자들이 외래어 표기법을 준수하지 않아서 같은 국적, 같은 이름인데도 표기가 미묘하게 다른 경우가 왕왕 있다.
캐릭터 초상화는 다른 시리즈와 달리 실사 지향인데, 플레이어의 초상화는 나이에 따라서 머리색깔이 바뀌거나 수염이 나기도 하는 등 인물 묘사가 굉장히 사실적이다. 게다가 대항해시대 3은 플레이어가 여급과 결혼할 수 있으므로 아내 고르려고 취향에 따라 전세계 여급 얼굴을 보고 다니는 유저들도 있다. 여급은 나이를 먹어도 얼굴이 변하지는 않는다.
2. 주인공
- 라몬 데 마르시아스(포르투갈)
- 에밀리오 알바레스(에스파냐)
초기 소지금은 5000+10000닢[2]
능력 | 체력 76 지력 74 무력 76 매력 81 운 79 생년월일 1456년 3월 19일 탐험가 |
기술 | 항해 2 운용 2 검술 1 사격술 1 웅변 1 측량 1 역사학 2 회계 1 과학 1 |
어학 | 스페인어 2 포르투갈어 3 로망스어 3 아랍어 1 |
초기 소지금은 2500+10000[3]
능력 | 체력 65 지력 82 무력 60 매력 88 운 70 생년월일 1457년 2월 15일 발굴자 |
기술 | 항해 2 운용 2 검술 2 포술 1 사격술 1 측량 1 역사학 1 회계 1 신학 1 |
어학 | 스페인어 3 포르투갈어 2 로망스어 3 아랍어 1 |
2명의 주인공이 기본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다른 캐릭터를 생성하여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기본적으로 설정된 캐릭터들은 스킬 배분이 그리 좋지 않으므로[4] 게임에 좀 익숙해진다면 새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즈해서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 탐험에는 여러 가지 기술이 필요하며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캐릭터의 스킬을 육성하여야 한다.
3. 경쟁자
- 바르톨레메우 디아스(포르투갈 왕국)
- 바스코 다 가마(포르투갈 왕국)
- 세바스찬 데 엘카노(에스파니아 왕국)
- 아메리고 베스풋치(에스파니아 왕국)
- 아퐁소 데 알브켈케(포르투갈 왕국)
- 에르난 콜테스(에스파니아 왕국)
- 잭 칼티에(프랑스 왕국)
- 존 캐벗(제노바 공화국)
- 크리스트발 코론(제노바 공화국)
-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포르투갈 왕국)
- 페르난도 데 마가랴네스(포르투갈 왕국)
- 프란시스코 데 아르메이다(포르투갈 왕국)
- 프란시스코 피사로(에스파니아 왕국)
- 하산 분 무하마드(하프스 왕조)
4. 항해자
아래 인물들은 만나서 물자구매도 가능하고 교전도 가능하나 등용은 불가능한 인물들이다.4.1. 포르투갈
- 두알테 파셰코 페레이라
- 디오고 로페스 데 세케이라
- 디오고 칸
- 로드리고 데 리마
- 안토니오 아브레우
- 아르발로 다만
- 아퐁소 아베이로 : 아퐁소 데 파이바와 동일인물으로 게임상에서는 다르게 구현.
- 에르난도 핀토 멘데스 : 포르투갈의 탐험가로 1542년경 일본에 표착, 타네가시마를 전달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핀투 여행기(원제는 편역. 일본에는 동양편역기로 발매되었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 조르제 알바레스
- 토메 피레스
- 페르난 고메스
- 페르난 페레스 데 안토라데 : 페르난 피레스 데 안토라데. 포트투갈의 상인 및 외교관으로 1517년 중국에 사절로 방문하여 황제를 배알하고 불랑기를 중국에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페르난 둘모
- 프란시스코 세란
4.2. 에스파니아
- 가스팔 콜테 레알 : Gaspar Corte-Real. 포르투갈의 탐험가로 1500년 뉴펀들랜드를 탐험한 이후 북서항로 개척 중 실종되었다. 게임에서는 에스파니아인으로 등장.
- 고메스 라스콘 : Gomez Rascon.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에 신대륙으로 출항할 때 동행했던 항해사. 핸드북에는 핀타 호의 선주들 중 한 명이라고 기재되어있다.
- 곤살로 데 코르도바
- 디에고 데 알마구로
- 디에고 데 올다스 : Diego de Ordaz. 코르테스의 부하였던 탐험가 및 군인으로 콜롬비아와 파나마 일대를 탐험했다.
- 루이 로포스 데 빌라로보스 : 루이 로페즈 데 빌라로보스. 탐험가로 필리핀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다.
- 마르코스 데 니사 : Marcos de Niza.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로 알바르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의 탐험을 기록하였다.
- 바스코 누녜스 데 바르보아
- 아롱소 데 오헤다 : 알론소 데 오헤다. 원래 콜럼버스의 부하로서 서인도 탐색 항해에 참여하였으나 이후 독립한 콩키스타도르로 파나마에 거점을 두고 기아나 일대를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
- 아롱소 데 크라도 : 알론소 데 그라도. 코르테스의 부하. 코르테스를 따라 멕시코에 와서 쿠아우테목의 왕비이자 몬테수마 2세의 딸인 테추키포와 결혼하였다.
- 아롱소 데 피네다 : 알론소 알바레즈 데 피네다. 탐험가 겸 지도제작자로 멕시코 만 일대를 탐험한 후 바닷길로 북상하여 텍사스 일대를 탐험했다.
- 안드레스 데 우르다네타 : 탐험가이자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 마젤란과 엘카노에 이어 2번째 세계일주 항해자로 필리핀에서 아카풀코까지 항해하는 항로[5]를 이용하여 세계일주에 성공했다.
-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콩키스타도르로 1517년 마야인들과 최초로 조우하여 유카탄 반도를 최로로 정복했다. 동시대에 동명이인으로 니카라과를 건설한 탐험가가 있다.
- 에르난도 데 소토
- 팡필로 데 나르바에스
- 페드로 데 발디비아 : 콩키스타도르.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밑에서 일하다가 이후 칠레 정복 중 사망. 칠레의 산티아고를 건설하였다.
- 페르난데스 데 엔시소 : 마르틴 페르난데스 데 엔시소. 본래 법률가, 학자였으며 Suma de Geographia 을 펴내어 신대륙에 대한 최초의 스페인어 기록을 남겼다.[6] 피사로의 식민지 사업이 실패하자 아롱소 데 오헤다와 함께 신대륙으로 갔으며, 파나마 지협을 식민지화했지만 인망이 없어서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에 의해 장악당하고 에스파냐로 쫒겨났다. 이후 발보아의 정적들에게 협조하여 그가 참수되도록 돕는다.
- 퐁세 데 레온
- 프란시스코 데 몬테보 : 프란시스코 데 몬테호. 콩키스타도르로 父, 子, 姪 3명이 있다. 유카탄 반도와 온두라스 일대를 탐험했다.
- 프란시스코 데 보바딜랴 : 콜럼버스의 히스파니올라에서의 통치를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1500년, 에스파냐 왕국의 명령으로 콜럼버스를 체포하고 에스파냐로로 송환했다. 그 후 2대 히스파니올라 총독을 지냈다.
- 후안 데 그리할바 : Juan de Grijalva. 콩키스타도르. 1508년 히스파니올라로, 1511년 쿠바로 갔다가 1518년 코르테스의 원정에 참여하여 멕시코 해안을 탐험하며 타바스코 강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그리할바 강으로 명명했다.
- 후안 데 아쿠아도 : 후안 데 아구아도(Juan de Aguado). 에스파냐의 관료. 콜럼버스가 개척하고 통치하던 라 이사벨라에서 콜럼버스가 폭정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접한 이사벨 1세가 그를 1492년 6월 2일에 라 이사벨라로 파견하였다. 그 폭정이 사실로 드러나자 콜럼버스는 후안 데 아쿠아도를 따라서 에스파냐로 돌아가 여왕에게 사죄한다.
- 후안 디아스 데 소리스 : Juan Díaz de Solís. 에스파냐 혹은 포르투갈의 탐험가로 유카탄과 브라질, 우루과이강, 파라냐강 일대를 탐험했다. 1515년 라플라타 강을 발견하지만 우루과이에서 원주민에게 살해당한다.
- 히메네스 데 케사다 : 에스파냐의 정복자. 콜롬비아를 정복하고 보고타를 건설했다.
4.3. 기타
- 도메니코 폰타롯사: 콜럼버스의 어머니와 성이 같은 상인.
- 발바로스 하이레딘 : 본편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사나이. 다만 전작과는 달리 웬만해선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 세바스티안 캐벗
- 아밀 후세인 : 아미르 후세인 알 쿠르디. 맘루크의 군인. 인도 일대에서의 기득권과 메카를 지키기 위해 디우 해전에서 프란시스쿠 드 알메이다가 이끄는 포르투갈의 해군과 싸워 패배했다.
- 암브로즈 알핀펠 : 독일어로는 암브로지우스 에힝어(Ambrosius Ehinger), 에스파냐어로는 암브로시오 알핀게르. 신성로마제국의 콩키스타도르. 1530년 베네주엘라를 탐험했으며 지금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일대인 클라인-베네디히(작은 베네치아)의 최초 통치자.
- 우르지 하이레딘
- 장 도 카사노바 : 장 드 카사노바. 프랑스의 해적으로 1467년에 콜럼버스를 습격했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이탈리아의 탐험가로 플로렌스 공국의 지원을 받아 뉴펀들랜드 등을 탐험했다.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와 브루클린 사이에 있는 해협인 '더 내로우스'를 발견하였으며, 오늘날 해당 지역의 현수교인 '베라차노-내로스 다리(Verrazano-Narrows Bridge)'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7]
- 케말 라이스 : 케말 레이스. 오스만 투르크의 군인. 1487년 에스파냐의 말라가, 발레아레스 제도를 공격하였다.
- 피리 레이스 : 피리 레이스 제독의 지도 항목 참조.
- 로버트 리네거 : 잉글랜드의 탐험가.
4.4. 가공 인물
전편 등장인물들. 레온 페렐로(페레로)는 등장하지만 다른 대항해시대2 인물들은 확인된 바가 없다.실제로 게임상에선 만날 수 없고 데이터로만 존재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 레온 페렐로
- 미케레 샤이록[8] : 셜록 은행장
- 알 베자스
- 에르네스트 로페스
- 옷토 스피놀라
- 조안 데 페렐로
- 카를로스 에제키에르 : 에제키엘 사령관
- 카타리나 데 에란쪼
- 피에트로 콘티
5. 동료
아래 인물들은 부관, 항해사, 측량사, 통역으로 등용이 가능한 인물들이다.5.1. 포르투갈
- 가르시아 데 소우자 : 포르투갈의 군인. 디에고 데 세케이라의 부하였으며 게임상에선 1495년 세우타에서 등장한다.
- 가르시아 엔리케스 : Garcia Henriquez. 1525년 안토니오 브리토의 뒤를 이어 포르투갈령 몰루카 제도의 2대 행정장관이 된다. 게임상에서는 1520년 테르나테에서 등장.
- 곤사로 고메스 데 에스피노사 : Gonzalo Gómez de Espinosa. 페르디난트 마젤란의 함대에서 1520년에 루이스 데 멘도사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고, 시신을 효수했다.
- 누노 바스 페레이라 : 마젤란이 포르투갈의 군인이던 시절 그의 상관이었으며 소팔라를 관할하는 포르투갈 함대의 총사령관이었다. 1509년 디우 해전에서 전사했다.
- 니콜라스 코엘류 : 니콜라우 코엘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탐험과 페드로 알바레스 카브랄의 브라질 탐험에 참가했다. 1504년에 포르투갈로 귀국하는 도중에 모잠비크의 퀴림바스 군도 주변에서 프란시스코 데 알부케르케와 함께 사망했다.
- 두알테 발보자 : 마젤란의 의형제로, 스페인과의 계약을 주선한 인물이다. 문인으로 마젤란의 항해에 동승했다가 필리핀에서 죽었다.
- 디에고 디아스 : 디오고 디아스.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형제로 바스코 다 가마의 함대와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의 함대에서 근무하였다.[9] 이후 카브랄 휘하에서 포르투갈령 인도 제2함대를 이끌고 희망봉을 지나다가 항로를 동쪽으로 틀어 낙오되는 바람에 마다가스카르 섬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 디오고 발보자 : 두알테 발보자와 동일인물으로 게임상에서는 다르게 구현.[10]
- 로드리게스 데 마프라 : 후안 로드리게스 마프라.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로 세계일주를 마친 이후 얼마 안가 사망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에스파냐 사람인데 게임에서는 포르투갈 항해사로 입력되어 있다.
- 로포 소아레스 : 로포 소아레스 데 알베르가리아.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의 뒤를 이어 인도 총독을 지냈다.
- 루이 데 파레일로 : Rui Faleiro. 마젤란의 친구이자 천문학자. 마젤란과 함께 에스파냐로 가서 마젤란이 에스파냐의 원조를 받아 출항하기 전까지 마젤란과 더불어 공동 선장이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항해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나침반, 해도 등을 준비해주었다. 마젤란이 출항한 후 포르투갈로 돌아가서 체포당하지만,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석방되고 에스파냐로 돌아가 퇴직금을 받았다. 이후 행적은 미상.
- 바스코 고메스 가리에고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본래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이후 스페인으로 들어와 마젤란의 함대에 합류했으며[11], 마젤란 사후 엘 카노와 함께 세계일주를 마치고 생환한 18인 중 한 명.[12]
- 벨로 데 에스코랄: 페로 에스코바르(Pero Escobar). 공식 게임북의 설명으로는 상투메를 발견했다고 한다. [13]
- 아르바로 데 메스키타 : 마젤란의 사촌으로, 세계일주 도중에 산 안토니오 호의 선장으로 임명되었지만 이에 선원들이 불만을 가져 반란이 일어났다.
- 아이레스 코레아 : Aires Correia. 카브랄의 부하로서 캘리컷에 설립된 상관에 배치되었다가 아랍 상인들의 습격으로 죽는다.
- 아퐁소 데 소우자 : 마르팀 알폰소 데 소우자. 브라질 일대에서 활동하여 상 비센테(São Vicente)를 건설한 후 포르투갈령 인도 총독을 역임한다.
- 아퐁소 데 파이바 : 아퐁소 아베이로와 동일인물으로 게임상에서는 다르게 구현.
- 안토니오 다 모타 : 포르투갈 출신의 상인으로 1542년 샴 왕국에서 탈출하여 중국 상선에 탔다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표류하여 조총을 전래한 세 명의 포르투갈 상인 중 한 명이다.[14]
- 안토니오 데 미란다 : 알부케르케의 부하. 1512년 샴의 왕이었던 라마티바디 2세(1491~1597)와의 우호통상을 위해 아유타야로 파견된 사절단의 대표였다.
- 안토니오 데 사르다냐 : 안토니오 데 살다냐. 알브켈케의 부하 군인이었으며 테이블 마운틴에 등정한 첫 유럽인이다.
- 안토니오 페이숏 : 포르투갈 출신의 상인으로 1542년 샴 왕국에서 탈출하여 중국 상선에 탔다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표류하여 조총을 전래한 세 명의 포르투갈 상인 중 한 명이다.[15]
- 에스테반 고메스 : 지도제작자 겸 항해자로 노바스코샤와 메인 일대를 탐험했다. 1519년 마젤란 함대에 합류하였으나 이후 마젤란에게 불만을 품고, 이듬해 마젤란 해협에서 풍랑에 의해 일시적으로 함대에서 이탈된 산 안토니오호의 선장인 메스키타를 설득하여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 조르제 데 메네세스 : Jorge de Menezes. 인도네시아를 탐험한 탐험가로 이후 포르투갈령 몰루카 제도의 3대 행정장관을 지냈으며, 파푸아뉴기니의 '파푸아'라는 이름을 지은 사람이다.
- 조안 다 노바 : 주앙 다 노바. 1501년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의 사망 후 포르투갈이 인도로 파견한 함대를 이끌면서 어센션 섬, 후안 데 노바 섬[16], 세인트헬레나 섬을 발견하였다. 이후 1509년 디우 해전에서 맘루크 함대와의 해전에서 승리하였다.
- 조안 데 리스보아 : 주안 데 리스본. 마젤란이 군인이던 1513년 아자모르 전투 당시 그의 상사였으나 마젤란과 사이가 나빴다.[17] 1506년 트리스탄 다 쿠냐와 함께 트리스탄 다 쿠냐 제도를 발견했으며 산 마티아스 만과 라플라타 강의 발견자로도 알려져있다.[18]
- 조안 데 메네제스 : 포르투갈의 군인. 1513년, 모로코[19]의 아젬무르 공략 전쟁[20]에서 사실상 지휘관이었다.
- 조안 세란 : 주앙 세란. 마젤란의 사촌이며 위의 프란시스코 세란의 형제다. 믈라카의 엔리케의 배신으로 인해 세부에서 독살당했다. 산티아고호의 선장이었다.
- 조안 카르발료 : 주앙 카르발류.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 크리스트발 라벨로 : Cristóbal Rabelo. 마젤란의 하인이었으며, 빅토리아 호의 함장으로서 그의 함대에 합류하여 마젤란이 사망한 막탄 전투에서 함께 전사하였다.
- 트리스탄 데 메네제스 : Tristão de Menezes. 포르투갈의 인도 함대의 선장 중 한 명으로 1517년 말라카로 떠나고 1520년 테르나테에 도착했다.[21]
- 페드로 데 소우자 : 페드로 데 소우사. 마젤란이 군인일 때 참전한 믈라카 원정에서 불화로 인해 마젤란을 해고하였다.
- 페드로 데 코비랸 : 외교관 겸 탐험가로 프레스터 존을 찾으라는 왕의 명을 받아 에티오피아에 다녀왔다.
- 페로 아퐁소 데 로로자 : Pero Afonso de Lorosa. 포르투갈령 테르나테에서 에스파냐의 침공을 도운 혐의를 문책당해 처형당한다.
- 페로 포가사 : Pêro Ferreira Fogaça. 프란시스쿠 드 알메이다의 부하로 킬와의 수비 임무를 받고 그곳에 배치되지만 킬와 수비에 실패한다.
- 페르난도 쿠티뇨 : Fernando Coutinho. 아폰소 데 알부케르케가 프란시스코 데 알메이다에 의하여 투옥당했을 때 리스본에서 파견되어 알부케르케가 사면되도록 하였으며 이어 1509년 캘리컷 공략을 명령하였다.
-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마젤란의 세계일주 함대 선원. 세계일주를 마치고 세비야로 생환한 18명 중 한 명.
- 프란시스코 알바레스 : 로드리고 데 리마와 동행한 선교사 겸 탐험가로 에티오피아 대사를 역임했다.
- 프란시스코 제이모토 : Francisco Zeimoto. 포르투갈 출신의 상인으로 1542년 샴 왕국에서 탈출하여 중국 상선에 탔다가 1543년 일본 다네가시마에 표류하여 조총을 전래한 세 명의 포르투갈 상인 중 한 명이다.[22]
5.2. 에스파니아
- 가르시 오르긴: Francisco García Holguín.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명령을 받아 1521년 판필로 나르바에스의 원정에 참여해 코르테스를 붙잡으려 했으나, 나르바에스가 패배하자 코르테스 군에 합류했다. 이후 테노치티틀란에서 쿠아우테목 왕자를 포획하여 코르테스에게 넘기는 공적을 세웠다. 10년 후에 그 공로로 멕시코의 시장으로 부임하다, 쿠바로 돌아가서 1545년 카요 카스티야를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로 명명했는데 그곳이 현재 쿠바의 올긴이다.
- 가르시아 호프레 데 로아이자: García Jofre de Loaisa. 1525년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5세가 파견한 몰루카 원정대의 대장으로서 라코루냐에서 마젤란 해협을 거쳐[23] 몰루카로 가는 도중 병사한다.
- 가스팔 데 케사다
- 디에고 가리에고: 마젤란 함대의 선원이었으며 마젤란 사후 세비야로 생환한 18명 중 한 명.
- 디에고 데 니에크사 : 디에고 데 니쿠에사. 콩키스타도르로서 1508년 파나마 일대에 식민지 Castilla de Oro를 건설하였다.
- 디에고 데 아라나 : 콜럼버스의 내연녀였던 베아트리스 엔리케스 데 아라나의 사촌으로 콜럼버스의 1차 원정에 참가하여,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세운 요새였던 라 나비다드에 남았다가 인근의 타이노 족 원주민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 로드리고 데 에스코베토 : 로드리고 데 에스코베도. 콜럼버스의 첫번째 항해에서 산타 마리아 호를 탔던 선원으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상륙의 첫 공증인.
- 로드리고 데 토리아나 :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 콜럼버스 선단 중 핀타 호의 선원으로서 바하마 제도의 육지를 보고 육지다!!!("¡Tierra! ¡Tierra!")라고 외친 사람. NASA의 심우주 기후 관측 위성의 별명인 트리아나의 어원이 되었다.
- 로페 찬카 : 콜럼버스의 2차 아메리카대륙 원정에 동행하도록 스페인 왕정에서 임명시킨 의사.
- 로페스 데 카르데나스 : 1540년 그랜드 캐니언을 최초로 발견한 백인이다.
- 루이스 데 멘도사
- 루이스 데 모리나 : 마젤란 함대에서 가스팔 데 케사다를 따라 반란한 인물이지만, 반란이 진압되자 마젤란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가스팔 데 케사다를 죽였다.
- 루이스 데 토레스 : 콜럼버스 선단의 통역사로 신대륙에 정착한 최초의 유대인이다.
- 마르틴 데 바렌시아 :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이자 선교사로서 코르테스의 요청을 받아 멕시코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 마르틴 아롱소 핀손 : 항해자 평제인 핀손 형제의 첫째로 콜럼버스 선단의 핀타 호의 선장.
- 마르틴 안다고야 : 피사로의 페루 원정에 참가했다고 한다.
- 미겔 데 로다스 : 마젤란이 사망한 이후 생환자들이 탄 빅토리아 호의 부선장.
-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 : Miguel López de Legazpi. 바스크계 항해자로 초대 필리핀 총독을 역임했다. 펠리페 데 사르세트의 할아버지.
- 미겔 산체스 : 엘 카노 함대에서 생존한 사람.
- 미겔 헤레스 데 에스테테 : 프란시스코 피사로 함대의 대원.
-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 바르톨로메 데 오르메도 : Bartolomé de Olmedo.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에 참가한 성직자로 교섭 업무를 주로 수행하였다. 몬테수마 2세에게 세례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 바르톨로메 루이스 : Bartolomé Ruiz. 에스파냐의 콩키스타도르. 에콰도르를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인.
-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 : 당시 멕시코의 총독이던 안토니오 멘도사로부터 '시볼라의 일곱 고을'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미국 남서부 지역을 탐험한다. 이 과정에서 콜로라도 강, 그랜드캐니언을 발견하기도 했고 부에블로 인디언과 아메리카 들소를 보기도 했지만 시볼라의 일곱 고을을 찾는데 실패하고 1542년 멕시코로 귀환했다.
- 베르나르 디아스 델 카스틸료: Bernal Díaz del Castillo. 어린 시절부터 코르테스를 수행하여 아즈텍 정복에 대한 책인 '누에바 에스파냐 정복의 진실한 역사(Historia verdadera de la conquista de la Nueva España)'를 남겼다.
- 비센테 데 바르벨테 : Vicente de Valverde. 도미니코회 수도자로 피사로를 따라 페루로 갔으며 이후 쿠스코 가톨릭 대교구의 초대 주교가 된다.
- 비센테 야녜스 핀손 : 항해자 형제인 핀손 형제의 막내로 콜럼버스 선단의 니냐 호의 선장.
- 사비에르 데 야소
- 세바스찬 베날카살 : 세바스티앙 데 벨라카자르(Sebastián de Belalcázar). 피사로의 부하였던 콩키스타도르로 에콰도르, 콜롬비아 일대에서 활동했다.
- 시에사 데 레온 : Pedro Cieza de León. 콩키스타도르로 페루에서 활동하였다. 페루 연대기(Crónica del Perú)를 저술하여 잉카 제국의 역사 연구나 안데스 지역의 풍습 연구에 기여했다.
- 아르바 누녜스 카베사 데 바카
- 아르발로 데 사아베트라 : 코르테스의 명으로 1527년 아메리카로부터 태평양을 넘어 몰루카 제도까지 도착하였다.
- 아마돌 데 라레스 : Amador de Lares. 코르테스가 산티아고 데 쿠바에 있을 무렵의 콘타도르였으며 재무관이었다. 코르테스와 친밀하여 그의 탐험계획을 듣고 승인해주었다.
- 안드레스 데 두에로 : Andrés de Duero. 아마돌 데 라레스의 비서. 코르테스와 친밀한 상인이었기 때문에 회계 특기가 높다.
- 안드레스 데 산마르틴 : Andrés de San Martín. 마젤란 함대의 수석 항해사이자 천문학자였기 때문에 과학과 측량 기술레벨이 3이다.
- 안토니오 데 모르가 : Antonio de Morga. 스페인의 군인이었으며 필리핀의 민속풍습 등을 기록한 책 Suceos de las islas Filipinas을 출간하였다.
- 안토니오 데 몬테시노스 : 도미니코회 수도자로 히스파놀라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며, 아이티에서의 원주민 학대를 규탄하는 등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함께 도메니코회의 일원으로서 아메리카 원주민을 구제하는 데에 힘썼다.
- 안토니오 데 코카 : 마젤란 함대의 경리관이며 산 안토니오호의 선장이었지만 느닷없이 선장에서 해임당하자 앙심을 품고 반란에 가담한다.
- 안톤 콜메네로 : Antón Hernández Colmenero. 마젤란 함대의 갑판장으로서 엘 카노와 함께 세계일주를 마치고 생환한 18인 중 한 명. 사격과 검술이 우수하여 정복자의 부관으로 쓰면 좋다.
- 에르난도 데 그리할바 : Hernando de Grijalva. 1520년 에르난 코르테스와 함께 멕시코 정복에 참여했으며, 1537년 코르테스의 명령을 받아 프란시스코 피사로를 지원하였다. 이후 태평양 탐험을 떠났으나, 몰루카 제도로 가자는 선원들의 요구를 거부하다가 반란으로 적도 근처에서 암살당했다.
- 에르난도 데 토레 : Hernando de la Torre. 향료 제도 파견 함대의 총대장이던 이니게스 데 카르키사노의 사망 후 후임 지휘관이 되었다.
- 엔리케 미라이에스 : 일명 믈라카의 엔리케. 마젤란이 믈라카에서 사들인 노예였으나 마젤란이 사후에 그의 재산을 떼 주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를 아꼈다. 이후 마젤란의 세계일주 함대에 승선했으나 마젤란이 죽은 후 마젤란의 친척들의 모욕으로 인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으며, 세부의 술탄을 부추겨서 그가 탐험대를 연회에 초대하여 베테랑 선원 상당수를 독살하게 만든 후 도주했다. 이후 행적은 불명.
- 오르티스 데 레테스 : 루이 로페스 데 빌라로보스의 부하로서, 그의 명령으로 몰루카 제도에서 동쪽으로 향해 멕시코로 귀환하는 항해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도중 뉴기니 섬을 발견하여 뉴기니 섬으로 명명하였다.
- 이니게스 데 카르키사노 : Martín Íñiguez de Carquizano. 가르시아 호프레 데 로아이자의 향료 제도(몰루카 제도)의 원정을 따라 참가하였으나, 로아이자, 엘카노, 살라사르를 비롯한 총대장들의 잇딴 사망 끝에 총대장이 되어 1527년에 함대를 길롤로 섬까지 이끌었다. 그곳에서 포르투갈 함대와 대립하거나 휴전을 하기도 하지만 포르투갈 사절단을 초청한 연회에서 결국 독살당한다. 에르난도 데 토레가 그의 지휘권을 대신한다.
- 크리스트발 데 모리나: Cristóbal de Molina. 에스파냐의 성직자이자 작가. 언제 아메리카 대륙에 온지는 알수없으나[24] 1556년 쿠스코에 정착하였다. 쿠스퀘뇨(쿠스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고 퀘추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등 원주민들과 밀접하게 융합하였고 원주민에게 교리를 전파하거나 잉카의 풍습을 수집하기도 했다. 투팍 아마루 1세가 처형당하기 직전 그를 만나서 위로하고 영적인 위안을 주기도 하는 등 원주민 문화에 동조적이었다.
- 크리스트발 킨텔로: Cristóbal Quintero. 마르틴 알롱소 핀손과 함께 핀타 호의 공동소유자로서 콜럼버스의 첫번재 원정에 참가하였다.
- 토르피오 아롱소 데 살라사르 : Toribio Alonso de Salazar. 가르시아 호프레 데 로아이자의 향료 제도(몰루카 제도)의 원정을 따라 참가하였으며, 로아이자, 엘카노의 잇단 죽음 이후 총대장이 되었으나 항해 도중 병사했다.
- 파스크왈 데 안다고야 : 파스쿠알 데 안다고야. 바스크계 콩키스타도르.1514년 페드라리아스 다빌라를 따라 카리브해로 왔고 1521년 파나마(산후안) 총독이 되었다. 이때 비루[25]라고 불리는 잉카 제국의 존재를 인식하고 1522년 잉카 정복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포파얀의 총독이 되었으나 세바스티안 벨 알카사르가 영역 침해를 이유로 고발하여 해임된다.
- 페드로 데 멘도사 : Pedro de Mendoza. 콩키스타도르. 1535년 라플라타 강 일대를 거슬러 올라가 1536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건설하지만 기근으로 인해 식민지 운영은 실패하고 본인도 매독에 걸려 1537년 에스파냐로 귀국하는 배에서 사망한다.
- 페드로 데 아르바라트 : 페드로 데 알바라도. 코르테스의 부관으로서 코르테스가 자신을 진압하러 온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와 싸우기 위하여 쿠바로 떠난 사이 아즈텍의 식인축제인 톡스카틀 축제를 참관하다가 경악한 나머지 인디오들을 학살해버렸다. 이 톡스카틀제의 대학살로 인하여 아즈텍인들이 코르테스에게 봉기하게 된다. 1524년 과테말라 정복.
- 페드로 산체스 데 라 레이나 : 마젤란 함대에 있던 선상사제였으나 반란에 가담하여 후안 데 카르타헤나와 함께 버려졌다.
- 페드로 코레아: 공식 게임북에는 콜럼버스의 처남으로 기록되어있다. 사라고사에서 1480년 등장.
- 페라롱소 니뇨 : 페드로 알론소 니뇨(Pedro Alonso Niño)로도 불린다. 후안 니뇨의 동생이었으며 콜럼버스의 첫 원정의 산타 마리아 호의 조종사였다.
- 페르난데스 데 부스타만테 : 마젤란 함대에서 생존한 이발사 겸 외과의사.[26]
- 펠리페 데 사르세트: Felipe de Salcedo. 멕시코에서 필리핀으로 항해한 미구엘 로페스 데 레가스피의 원정대의 일원이었다.
- 프란시스코 데 오레랴나 : 콩키스타도르. 피사로의 명령으로 아마존 강을 처음으로 종주하여 오렐라냐 강이라고 이름붙였다.
- 프란시스코 데 우료아: Francisco de Ulloa. 코르테스의 세번째 항해에 참가했으며, 코르테스가 라파스에 세웠던 식민지의 책임자였다. 이후 코르테스의 명령으로 바하 칼리포르니아로 항해하던 도중 실종된다.
- 프란시스코 데 헤레스 : 프란시스코 피사로 함대의 대원.
- 프란시스코 로르당 : 콜럼버스의 함대에 합류한 항해사였으며 히스파니올라의 관리자로 임명되지만 1498년에 그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 프란시스코 아르보 : 마젤란 함대의 생존자.
- 헤르니모 로페스 데 게라 : 마젤란에게 불만을 품은 에스테반 고메스가 탈주시킨 산 안토니오 호의 선장이 되었다.
- 헤로니모 아기랄 : 스페인 출신의 성직자로 1511년 선교를 목적으로 파나마로 갔다가 난파당해 마야족에게 사로잡혀 8년간 노예로 지내다가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구출된다. 이후 코르테스의 멕시코 원정에 참가하여 말린체와 함께 인디오들의 언어를 스페인어로 통역했다.
- 후안 니뇨 : Juan Niño. 콜럼버스 함대의 선박인 니냐 호의 소유주였다.
- 후안 데 가에타노 : 위의 루이 로페즈 데 빌라로보스와 함께 항해하였으며, 하와이와 마셜 제도를 탐험한 최초의 유럽인으로 꼽힌다.
- 후안 데 라 코사 : 항해사 겸 지도제작자. 여러 항해자들을 따라다니며 지도를 만들었으며 특히 콜럼버스의 2차 탐험에 참여하면서 제작한 지도는 해당 탐험을 기록한 유일한 지도로서 가치가 높다.
- 후안 데 산탄델 : Juan de Santander.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로서 세계일주를 마치고 생환한 18인 중 한 명.
- 후안 데 스마라가 : 멕시코 교구의 초대 주교.
- 후안 데 아쿠리오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 엘 카노와 함께 세계일주를 마치고 생환한 18인 중 한 명.
- 후안 데 에롤리아가 : 마젤란 함대의 항해사로, 반란에 저항하다가 살해당했다.
- 후안 데 카르타헤나 : 회계사로 마젤란과 갈등을 일으킨 사람.
5.3. 기타
- 나코다 이스마엘(Nakoda Ismael) : 몰루카 제도 일대의 무어인 상인. 안토니우 아브레우의 몰루카 원정대의 선장 겸 뱃길안내인으로 일했다.
- 니콜라스 데 페데르만 : Nikolaus Federmann. 독일계 콩키스타도르. 암브로즈 알핀펠(=암브로시우스 에힝어)의 뒤를 이어 클라인-베네디히(오늘날의 베네수엘라)를 통치했으며, 이후 세바스티안 벨라카사르와 히메네스 케사다와 함께 보고타를 공동 건설한다.
- 니콜라오 데 나포레스 : Nicolás de Nápoles 혹은 Nicholas the Greek. 그리스의 도시인 나플리오 출신으로서 마젤란의 빅토리아 호의 갑판원. 마젤란 사후 엘 카노와 함께 세계일주를 마친 18명 중 한 명.
- 도냐 마리나
- 로드위고 바르테마 : 루도비코 디 바르테마. 이탈리아인 여행가로 비무슬림 순례자로는 최초로 메카에 방문했다.
- 마르틴 데 유디시프스 : Martin de Judicibus. 제노바 출신 항해사로, 마젤란 함대의 감독관으로 마젤란이 죽은 후에 엘 카노가 이끌고 돌아온 빅토리아 호의 생존자 중 한 명.
- 미케레 데 크레오: 제노바 출신 상인으로 콜럼버스의 친구.
- 바티스타 다 이모라: 프란시스코회 신부. 1482년 아비시니아(프레스터 존)로 가서 황제를 알현했다.
- 아흐마드 이븐 마지드
- 안토니오 피가페타
- 윌리엄 호킨스 : William Hawkins 또는 Hawkyns. 영국 출신의 상인. 1528년경 기니 해안으로 출항하여 무역을 했으며 1530년대에는 브라질 해안에 진출하여 원주민들과 교류했다. 칼레 해전으로 유명한 존 호킨스의 아버지.
- 조지 안드루즈 : 영국인이지만 에스파냐로 귀화했다. 마젤란 함대의 트리니다드 호의 포술장이었다.
- 휴 윌로비
5.4. 가공 인물
- 곤사로 질 바르보아
- 디에고 코레아
- 라비 아브라함 데 베자
- 롯꼬 아렘켈
- 조안 소아레스
- 주세 데 루메고
- 후안 데 에스칸테
- 후안 로드리고 아코스타
- 감찰관 : 정식 항해사는 아니고, 스폰서와 계약을 맺을 때 감시역으로 따라오는 사람이다. 이름은 랜덤으로, 매번 계약을 맺을 때마다 바뀐다. 정규 항해사가 아니라 하는 일은 없지만, 발견물을 찾을 때마다 멘트를 넣거나, 부관과 만담을 하거나 맞장구 등을 쳐주기 때문에 굳이 계약건이 아니더라도 데리고 다닐만 하다.
너, 내 동료가 되라!만일 가짜 발견물로 스폰서를 속이려고 할 때, 돈을 주고 매수할 수도 있고 여차하면 죽여버릴 수도 있다. 물론 들키면 감옥행이고, 안 들켜도 감찰관이 없어졌다는 것이 발각되면 지명수배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 감옥행을 예약하게 된다. 또한 계약은 한 번에 1계약만 가능한데, 감찰관을 데리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스폰서와 계약을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감찰관을 처분해버림과 동시에 이전 스폰서로부터 지명수배를 받게 된다.
6. 스폰서
굵은 글씨는 A급 스폰서.6.1. 포르투갈
- 가스팔 코레아: Gaspar Correia. 마젤란과 동시대의 역사가.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의 비서였으며, 직접 인도에 살면서 '인도의 전설(Lendas da Índia)'을 저술했다. 1563년 인도 고아에서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했다.
- 디오고 오르티스 : 포르투갈의 왕실예배당 사제. 콜럼버스의 항해 계획을 각하하였다.
- 루카스 램: 리스본에 파견된 Welser 상회의 대리인이었다.
- 바르톨로메우 말키오니 : 리스본의 피렌체 상인들을 이끌며 활동한 은행가. 공동경영자인 장 포르방과 함께 산호 독점권을 취득했다. 그의 아들은 아프리카 무역과 설탕 무역에 종사하였다.
- 아르발로 다 코스타 : 스페인에 있던 포르투갈 대사로, 마젤란과 스페인의 밀약을 눈치채고 그의 암살을 지시했다.
- 아르발로 데 브라간사 : 포르투갈의 귀족으로 마누엘 1세의 백부였다. 궁중 내 보수파를 누르고 마누엘 1세의 왕권강화에 기여하였다.
- 아퐁소 데 알브켈케 : 경쟁자 중 한 명이지만 1514년부터는 고아의 총독으로서 등장한다.
- 안토니오 발디 : 1471년에 리스본에 은행을 개업했던 상인이지만 게임상에선 오포르토에서 등장하고 있다.
- 안토니오 브리토 : 포르투갈령 몰루카 제도의 초대 행정장관. 마누엘1세에게 스페인의 후원으로 향료제도에 도달한 마젤란에 대해 보고서를 보냈다. 1521년 테르나테에서 등장하므로 동아시아나 오세아니아 발견물 탐색에 쓰면 편한 스폰서.
- 조안 2세 → 마누엘 1세
- 조안 에스토레이트 : 페르낭 둘모에게 투자한 상인.
- 페르난 마르티스 : 리스본 교회 참사회원. 알폰소5세의 명령으로 토스카넬리에게 서방항로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6.2. 에스파니아
- 가스팔 데 에스피노사 : 파나마에서 피사로의 페루 원정에 출자한 상인들 중 한 명.
- 게랄루스 메르카토르
- 곤사로 피사로
- 니콜라스 데 오반도
- 돈 엔리케 데 구스만 : Enrique Pérez de Guzmán y Fonseca, 2nd Duke of Medina Sidonia. 메디나 시도니아의 2대 공작. 콜럼버스의 지지자.
- 디에고 베라스케스
- 루이스 데 산탄헬: 아라곤 왕국의 재무대신으로서 콜럼버스의 항해를 이자벨 여왕이 지원하도록 설득하였고, 본인도 일부 자금을 융자해주었다.
- 막시밀리아노 트란실바노 : 카를로스1세의 비서. 마젤란의 항해를 비서로부터 듣고 기록했다.
- 산초 데 마티엔소 : 세비야 대성당 참사회원. 마젤란의 친구로서 그의 항해를 원조했다.
-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 : 언어학자. 스페인 최초의 문법서인 '카스틸랴어 문법서'를 편집, 간행하였다.
- 안토니오 데 멘도사 :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초대 부왕.
- 안토니오 데 엘레라 : 마드리드의 역사학자. 곤살로 피사로의 아마존 강 유역 탐험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 알퐁소 구티엘레스 : 세빌리아 시회의원.
- 에르난도 루케 : 파나마 대성당 소속 학교장. 피사로의 페루 원정에 자금을 출자했다.
-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 예수회의 설립자
- 이자벨 1세 → 카를로스 1세[27]
- 크리스트발 데 알로 : 푸거상회 마드리드 주재 대리인. 마젤란 함대를 지원하였다.
- 페드라리아스 다빌라 :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 일면 페드라리아스. 스페인 정복자들의 첫 정착이지이던 산타마리아 라 안티구아 데 다리엔(현재는 콜롬비아 영토)이 해적소굴이 되자 1519년 스페인에서 파견되어 그곳을 평정한다. 이후 파나마시티를 개발한다.
- 프라이 에르난도 데 타라벨라 : 그라나다 대주교. 서인도사업의 심의위원회 의장.
- 프란시스코 데 마르도나도 : 1491년부터 1495년까지 그란 카나리아의 총독이었다.
- 프란시스코 레이넬 파레일로 : Francisco Faleiro. 마젤란의 항해사였던 루이 파레일로의 형제. 형제를 따라 에스파냐로 망명해서 에스파냐 신대륙 통상원의 수로학자 및 항해 고문으로 일했다.
- 후안 로드리게스 데 폰세카 : 스페인의 통상원총감으로 향로제도의 서회항로 탐색을 위해 마젤란을 기용하였다.
- 후안 페레스 데 마르체나 : 콜럼버스가 처음 에스파냐에 왔을때 의탁하던 수도원의 원장으로, 콜럼버스의 항해 계획을 듣고는 개인적 친분이 있던 이사벨 1세와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6.3. 이탈리아 제국(諸國)
- 니콜로 마키아벨리
- 로드리고 일 몰로: 루도비코 스포르차. 루도비코 일 모로로 더 알려져있다. 1494년 밀라노 공작이 되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비롯하여 예술과 학문을 지원했다. 그러나 1499년 밀라노를 상실했고 이듬해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1508년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프란체스코 1세 스포르차의 아들이자 프란체스코 2세의 아버지.
- 로렌쪼 데 메디치 → 지롤라모 사보나로라 → 알렉산드로 데 메디치[28]
-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 미켈레 스피놀라 : 공식게임북에서는 베네치아의 유력 무역상이라고 한다.
- 인노첸시오 8세 → 레오 10세
- 자노 프레고소: Giano Fregoso. 제노바 공화국의 원수.
- 체자레 보르지아
- 카를로 첸토리오네: 공식 게임북에선 제노바의 유명 상인이었으며 젊은 시절부터 콜럼버스의 선단에 있었다고 한다.
- 파올로 델 폿쪼 토스카넬리 : 수학자 및 천문학자였으며 핼리 혜성을 비롯한 혜성의 궤도 계산에 공을 들였다.
- 펠난드 델라 스칼라: 공식 게임북에서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원수였다고 한다.
- 프란체스코 귀짜르가디
- 프란체스코 키엘리가디: Francesco Chieregati. 나폴리의 테라모 주교로 재직했으며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후원자였다.
- 프란체스코 2세: 밀라노 공국의 왕. 스포르차 가문의 마지막 밀라노 공. 루도비코 일 모로로 더 알려진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아들.
6.4. 신성 로마 제국
- 리하르트 그라이펜크라우: Richard von Greiffenklau. 트리어 선제후국의 선제후이자 대주교였다.
- 마르틴 루터
- 마르틴 발트제뮬러
- 마르틴 베하임: 독일의 지도 제작자. 리스본을 방문하여 뛰어난 지리지식을 인정받아 조안2세의 배려로 항해위원회의 회원이 되었다. 1492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지구본인 "에르다프펠(Erdapfel)"을 제작하였다.
- 야코브 풋거
- 엔리크스 마르테르스 : Henricus Martellus. 지도학자. 1489년 희망봉이 기록된 세계지도를 남겼고 마르틴 발트제뮐러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 요제프 벨자: 풋거 가문과 함께 신성 로마 제국의 유력한 상인 가문인 Welser 상회의 총수.
- 요하네스 로이히린
- 요한 모이팅: 발트해에서 부를 축적한 모이팅 상회의 총수.
- 프란츠 투르쫀 : 공식 게임북에서는 독일의 투르쫀 상회의 당주라고 한다.
- 프리드리히 3세
- 프리드리히 현공
- 필립 대공 : 게임북의 설명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이면서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의 아버지라고 한다.
6.5. 기타
6.6. 가공 인물
7. 이벤트상의 인물
- 가정제 - 마카오 개항 이벤트에서 등장.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 누진가 누쿠우 - 콩고 왕국의 왕, 게임에서는 베닌 왕국 국적으로 되어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 다빈치 이벤트의 정확한 진행은 일단은 1486년 까지 만나야 하며 계약 중에는 설득이 불가능하니 만날 수 없다. 1487년에 다빈치에게 잠수폭탄을 받으면, 즉시 잠수폭탄을 소지한 상태로 다빈치를 다시 만나서 "무기가 도움이 되었냐며 이번엔 다른 무기를 개발 중"이란 대사를 들어야 한다. 위의 대화를 한 이후 정확히 1년 후에 다빈치를 만나면 작렬탄을 받을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무기가 도움이 되었냐며 이번엔 다른 무기를 개발 중" 대사를 들은 후 1년 후에 속사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저 대사가 진행된 이후에도 해당 아이템이 없는 상태로 재방문하면 같은 아템을 받을 수 있으며, 만약 1487년 12월 31일에 잠수폭탄을 받아서 "무기가 도움이 되었냐며 이번엔 다른 무기를 개발 중" 대사를 들은 후, 1년이 더 지나서 다빈치를 만나도 작렬탄을 받을 수 있으며, 1492년 12월 31일까지는 다빈치 이벤트는 진행되는 것이다 - 모크테스마 2세 -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
- 미켈란젤로 붜나로띠
- 브라도 쩨페시
- 아타와르바 -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
- 우르그 벡 - 알제의 해적으로 게임에서만 나오는 가공 인물
- 조안 바로스 - 포르투갈의 역사학자. 'Décadas da Ásia'라는 책을 썼다. 게임에서는 운송 이벤트로 등장한다.
- 츠카하라 보쿠덴 - 항목 참조. 게임에서는 금각사 이벤트에서 일기토 상대로 등장하나 데이터를 뜯어보기 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다. 여담으로 검술 수치가 0.
- 토팍 와루카 - 게임상에서는 아타우알파와 내전중인 동생으로 나온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아타우알파의 이복형제였던 와스카르로 추정. 위키백과
버그가 있으니 정확한 진행을 안했어도 이벤트가 진행될 수도 있지만, 다빈치 이벤트를 끝까지 진행 못했다면, 앞에 서술된 과정을 정확히 진행하자
[1] 딱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크리스토발 콜론이나 페르난도 데 마가야네스는 모두 에스파냐에 귀화해서 에스파냐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했다. 역사인물은 현지식으로 부르는게 보다 올바르다고 본다면 단 한번도 인연을 맺지 않은 영어식 이름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페르디난드 마젤란보다는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해도 과거에는 줄리어스 시저라고 부르다가 카이사르라고 부르지 않는가. 다만 문제는 콜론을 코론으로, 마가야네스를 마가랴네스로 기록한 것이다. 이건 일본어 읽기를 잘못한 것이며 역사인물의 이름이 뭐였는지를 몰랐다는 얘기도 된다.[2] 초기 자금은 5000닢이지만 후원자 파브리스 데 페레로에게 10000닢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3] 초기 자금은 2500닢이지만 후원자 프란시스코 데 에란쪼에게 10000닢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4] 성능이 나쁜 건 아니고, 항해사로 쉽게 커버할 수 있는 기술들 위주로 찍혀있어서 항해사로 쉽게 커버할 수 없는 의학이나 과학 등을 위주로 커스터마이즈한 캐릭터에 비해 장기적으로 불리한 것이 문제다. 거기에 운도 나름대로 중요한 요소인데 라몬은 좀 낫지만, 운이 이벤트를 보더라도 80을 넘기지 못하는 에밀리오의 경우 확실히 동전 굴릴때 난관이 좀 있다.[5] 이후 해당 항로의 이름은 우르다네타의 이름을 따서 '우르다네타 루트'로 명명되었다.[6] 같은 책에서 베네수엘라라는 지명을 명명하기도 했다.[7] 해당 다리를 명명하는 데에 있어서 알파벳 z를 미국식으로 1개로 정할지 이탈리아식으로 2개로 정할지에 대해서 논쟁이 발생하여 이탈리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 이슈가 불거지기도 했다.[8] 본래는 '미켈레 샤일록'이 올바른 표기이다.[9] 1500년 4월 카브랄의 함대에 있으면서 브라질을 발견한 이들 중 한명이 되었다.[10] 대항해시대3 가이드북에는 마젤란의 친구이자 장인으로서 다른 인물로 기록되어있다.[11] 마젤란의 항해를 지원한 스페인의 카를로스 1세는 포르투갈 선원은 마젤란을 포함한 10명까지만 고용할 것을 제한했는데, (나머지 9명은 프란시스코 데 메스키타, 루이스 아폰소 드 고이스, 주앙 다 실바, 누누 페르난데스, 두아르테 바르보사, 크리스토발 라벨로, 페르난도 로드리게스 마틴스, 에스테방 고메스. 주앙 로페스 카르발류) 이에 합류하기 위해 에스파냐의 바이오나 출신이라고 거짓말했다고 한다.[12] 세계일주를 마친 직후 가리에고가 국적을 속인 사실이 세비야 무역거래소에 발각되었는데, 이에 따라 항해를 마친 보수를 박탈당했는지는 불분명하다.[13] 1471년 황금해안 엘 미나에 도착했다고도 적혀있지만 이는 페르낭 고메스의 내용이다.[14] 멘데스 핀투의 기록과는 다르다. 안토니오 가르완의 세계신구발견사(Tratado dos Descobrimentos)에선 안토니오 다 모타, 안토니오 페이숏, 프란시스코 제이모토가 일본에 조총을 전래한 것으로 기록되었다.[15] 멘데스 핀투의 기록과는 다르다. 안토니오 가르완의 세계신구발견사(Tratado dos Descobrimentos)에선 안토니오 다 모타, 안토니오 페이숏, 프란시스코 제이모토가 일본에 조총을 전래한 것으로 기록되었다.[16]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섬이지만 어째서인지 에스파냐식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17] 이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브라질의 역사학자는 그가 마젤란의 탐험대의 일원이라고 잘못 발표하기도 했다.[18] 다만 라플라타 강의 발견자인지에 대해서는 스페인 측과 포르투갈 측의 의견차이가 있다.[19] 공식 핸드북에는 인도의 아자무르로 기재되어있다. 아자무르(Azamor)는 아젬무르(Azemmour)를 정복한 포르투갈에서 붙인 지명이다.[20]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시도하기 전 이 전투에 참전하여 무릎에 큰 부상을 입었으며, 허가없이 전선을 이탈하는 바람에 포르투갈 왕실은 마젤란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만다.[21] 테르나테의 술탄은 이웃 국가에 대한 군사적 우세를 점하기 위해 포르투갈이 감 라모(Gam Lamo)에 요새를 건설하는 것을 허가했다.[22] 멘데스 핀투의 기록과는 다르다. 안토니오 가르완의 세계신구발견사(Tratado dos Descobrimentos)에선 안토니오 다 모타, 안토니오 페이숏, 프란시스코 제이모토가 일본에 조총을 전래한 것으로 기록되었다.[23] 7척의 배 중 산 레스메스 호는 풍랑을 만나 원정대에서 외따로 떨어졌다가 다시 합류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혼곶을 발견하여 "여기가 육지의 끝"이라고 본국에 보고했다.[24] 공식 핸드북에는 피사로를 따라온 것으로 되어있으나 확실치 않다.[25] 파나마 남쪽의 강가에서 비루 족을 만났는데, 그 부족의 이름이 오늘날 페루의 유래이다. 이윽고 금과 은이 풍부한 잉카의 존재가 안다고야에 의해 본국에 알려지자 이를 들은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 원정을 떠나게 된다.[26] 중세에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하는 일이 흔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27] 후아나와 펠리페 1세는 생략된다.[28]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