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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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f2023><colcolor=#ffffff> 루퍼트 도버 Rupert Dover | 陶輝 | |
본명 | 루퍼트 티모시 알란 도버 Rupert Timothy Alan Dover |
중국명 | 陶輝 | To-fai(도휘) |
출생 | 1967년 8월 19일([age(1967-08-19)]세)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하트퍼드셔 하트퍼드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홍콩)[1] |
가족 | 아내[2] |
학력 | Bedford School (졸업) 맨체스터 대학교 (고고학, 학사) |
소속 | 홍콩 경무처 |
근무 | 1988년 ~ 2024년 |
최종 계급 | 경무관 (Assistant Commissioner)[3] |
주요 보직 | 구룡반도 서부 지역대 사령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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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홍콩 경무처의 영국인 전직 고위 경찰간부로 구룡반도 서부인 서구룡(西九龍, Kowloon West) 경찰국 지휘관을 지냈다.같은 영국인 데이비드 조던과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진압작전과 범죄수사 양쪽에 능통한 인물이다. 원래 경찰수사관 출신이다.[4]
2. 젊은 시절
잉글랜드 하트퍼드셔에서 태어났으며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고고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8년 영국령 홍콩으로 이주해 왕립 홍콩 경무처(Royal Hong Kong Police)에 간부후보생으로 입직했다.이미 홍콩 반환이 결정된 후인 1988년에 입직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친중파에 속했고 완전 토종 영국인이라 데이비드 조던[5]보다도 상징성이 큰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이 조던과 달리 커리어 초반부터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똑같이 PTU 소속이었지만 그는 공항경비나 항만/해안경비대 같이 어지간하면 시위진압에 차출될 일 없는 보직[6]을 자주 맡았기 때문이다.
반환 전부터 VIP 경호부대(VIP Protection Unit) 소속으로 편입되어 엘리트 코스를 밟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독찰(중위급)이라 소대장 보직을 맡았다.
2002년 총독찰을 달고 있던 그는 개항한 지 4년 된 홍콩 국제공항 경비대(Airport Security Unit)에 수사관으로 배치되었다. 다만 근무지 특성상 실제 임무는 경비부대 중대장이었다. 이때부터 몇 년간 공항경찰에서 중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2005년 WTO 반대시위 진압작전에 차출되지 않았다.[7]
이 사람이 본격적으로 언론에 데뷔한 건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당시였다. 당시 중령급인 고급경사였고 PTU 기동대장을 맡아 폭동적 시위진압에 앞장섰다. 그런데 이때는 최루탄도 5년 후에 비하면 몇 발 쏘지도 않은 데다 4년 후배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서 묻혔다(...)
2016년 새해 벽두부터 몽콕역 부근에서 노점상 단속에 항의하는 2016년 1월 구룡폭동[8] 진압작전에 참가해 영국인 동료인 데이비드 조던과 같이 폭도들을 때려잡고 다녔는데 역시 여기서도 묻혔다.
3.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구룡반도 시위현장에 출동한 도버 총경사. 간부급 근무복인 흰색 제복을 입고 보호대도 거의 안 차고 다녀서 눈에 잘 띈다.[9]
곧 조리처장(준장급) 진급을 하거나 퇴직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 소위 끝물[10] 총경사(대령급)였던 그는 이때 신계 남부 지역대(New Territories South, NTS) 부사령관을 맡고 있었고[11] 4년 후배인[12] 데이비드 조던 총경사와 함께 폭동적 시위진압에 앞장서서 뛰어들었다.
6월 12일 홍콩 입법회 앞 시위가 벌어졌을 때 지원 나간 부대는 그가 지휘한 부대로, 신계 남부 지역대 소속 PTU대였다. 이날 그는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위의 사진처럼 유틸리티 헬멧과 후추 스프레이 등 가벼운 무장을 하고 현장에 나가는 등 시위진압 작전에도 이전보다 얼굴을 자주 비추었다.[13] 구룡반도 지역대 소속 경찰들이 과도한 진압 임무로
그러던 와중에 새로 등장한 이 다크호스에게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이는 후술한다.
7월 7일 그가 구룡반도에서[16] 조슈아 웡을 비롯한 민주파 시위대에게 인간 띠로 포위당했다가 부하들이 개입해 인근 건물로 겨우 대피하는 사건이 터졌다. 민주파 측이 지난 시위에서 그가 직접 PTU대와 랩터부대를 이끌고 출동해 시위진압을 진두지휘한 일에 항의하기 위해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슈아 웡은 그를 만나 항의하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그가 국제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건 이때쯤일 듯 하다.
특히 그가 영국인이란 혈통 때문에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던 대부분의 친서방 국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이때를 전후로 노린 건지 경무처가 시위 관련 브리핑을 할 때 의도적으로 영국인 간부인 저스틴 세이브 등을 등장시켜 외신기자들의 질의응답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런 일을 겪은 뒤에도 8월 총파업이 벌어지자 장갑차를 끌고 와서 원래 하던 대로 진압했으며 홍콩 국제공항 점거시도 사태도 장갑차와 함께 M16 소총을 든 랩터부대를 동원해 진압해 버렸다.
시위의 클라이막스이자 시위를 실패로 이끈 11월 홍콩이공대학 점거 사태가 벌어지자 경무처는 홍콩 전 지역의 경찰관들을 끌어모았고 이에 따라 데이비드 조던과 함께 신계, 구룡반도와 홍콩 섬 구역의 경찰 병력을 끌어모아 포위 작전에 같이 참여했으며 결국 과격파 시위대는 이 포위전에서 나가떨어지고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경찰은 무장 시위 노선을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해 자신감을 얻고 활개치고 다녔다. 심지어 크리스마스 당일 사복경찰의 오인으로 인해 페퍼 스프레이를 맞았다.
2020년 초 사이쿵 주택 스캔들 이후에는 별다른 사고는 치지 않고 가끔 현장 시찰을 나오는 식으로 얼굴을 비췄다.
3.1. 조리처장 진급 및 영전
조리처장(Assistant Commissioner) 진급한 뒤의 루퍼트 도버. 그 사이 홍콩 행정장관에게 경찰관 표창을 받아서 약장에 은색 자형화 표장이 1개 더 추가되었다.
2020년 2월 조리처장(경무관급)으로 진급한 뒤 구룡반도 서부 지역대 사령관(Regional Commander, Kowloon West)으로 영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령관이 된 후 고위 경찰간부로서 언론 앞에 공개적으로 등장해 홍콩 반환 직후 중국의 일부인 홍콩 경찰관으로서의 삶을 묘사한 인터뷰를 남겼다.
조리처장으로 진급한 후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SCMP)와의 인터뷰에서 도버 조리처장이 프린스에드워드역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영상이다.
당시 몽콕 경찰서[17]는 그의 진압부대가 있던 경찰서들 중 하나였다. 다만 본인은 그때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기에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18]
그는 당시 시위대가 MTR 네트워크를 마치 자신들만이 이용 가능하고 경찰들은 진입할 수 없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대로 보고 있었던 듯 행동했다고 주장했는데 이 MTR을 시위대가 탈출 네트워크로 써먹었기 때문에 도주하는 시위대를 조기에 차단하지 못해 도시 곳곳에서 사보타주 행위가 계속되어 피해가 막심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시위대가 MTR은 자신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부적절한 무력 행사가 있었음에도 작전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한동안 언급되던 희생자 문제에 대해서는 '쓰레기 같은 소리'[19]라고 주장하며 홍콩 소방처 소속의 구조 요원들이 진입했을 때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경찰은 현장에 있었던 시위대는 전원 체포했고 무고한 시민들은 신원만 체크하고[20] 귀가시켜 줬다고 말하며 일축했다.
같은 날 했던 인터뷰에서 발췌한 또 다른 영상. 도버가 SNS상에서 경찰에 대한 '거짓 정보'가 퍼지고 있다고 말하며 홍콩이공대학 포위전 당시 자신이 현장에서 겪은 일화[21]를 소개하며 자신을 비롯한 외국인 출신 경찰관들이 인간 쓰레기로 매도당하는 것에 대해 자신은 본토 공안들과 완전 별개의 존재이며[22] 체포된 시위대를 즉결 처형한다거나 여성 시위대를 강간한다거나 하는 짓거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후에는 별 일 없이 조용히 사령관직을 지켰으며 2024년에 퇴직해 경찰을 떠났다.
4. 여담
- 강경 친중 성향과는 별개로 이 사람은 홍콩에 거주할 뿐이지 정체성이 철저해서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여기고 있다. 실제로 중국계 아내와 결혼했기 때문에 귀화가 가능함에도 만료될 때마다 비싼 돈 내고 영사관을 수차례 왔다갔다 하는 귀찮은 짓을 해 가면서 영국 여권을 갱신해서 들고 다닌다. 스스로 영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며 LinkedIn에 글을 자주 쓰는데 개인적인 생각도 자주 섞는다. 내용 성향상 보수당 지지자이며 근왕파로 추정된다.
- 2014년 중국인 여경 간부와 결혼했는데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기간에 네티즌들이 그의 신상을 털었다. 그런데 이때 아내의 페이스북 계정까지 모두 털렸다. 왜냐하면 홍콩은 영국 통치의 영향으로 영미권처럼 남편의 성을 따랐기 때문에 '도버(Dover)'라는 영문 성을 본 네티즌들에게 딱 걸렸다 엄청난 악플에 시달리다 못해 결국 아내는 페북 계정상의 영문 이름을 본인의 결혼 전 성으로 바꿔 버렸다.
[1] 홍콩은 국적 제도가 없으므로 괄호 처리.[2] 홍콩 경무처의 경장(영문명은 sergeant. 한국 경찰의 경사급이다)이다.[3] 홍콩에서는 조리처장이라고 한다.[4] 도버는 내근직인 본부 형사보안국 수사관으로도 2년 넘게 근무해 본 경험이 있었다. 사실 수사관 업무 자체는 훨씬 오래 맡았는데 워낙 굵직한 건수들을 전담하고 있었던지라 내근직으로 근무가 불가능했다. 공항경비대 전담 수사관을 맡았었는데 공항이라는 근무지 특성 상 공항경비대는 수사를 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공항경비대 중대장을 했다. 공항경찰에서 수사는 경무처가 파견한 마약수사관 등이 전담하니까 그렇다.[5] 조던은 영국인은 맞지만 영국 본토 출생이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이주민 2세 출신이기 때문에 사실상 크리올이다. 물론 싱가포르에서 이 사람의 존재감은 없는데 싱가포르가 막 독립한 뒤 자산 국유화 때문에 대부분 영국인이 싱가포르를 떠날 시기였기 때문이다. 도버는 영국 본토인 잉글랜드 태생이고 대학교도 명문대 중 하나인 맨체스터 대학교 출신이므로 굳이 순수한(...) 영국인을 따진다면 도버가 더 상징성이 크다.[6] 물론 절대 한직은 아니다. 국가중요시설에 속하는 공항, 항만 및 해상국경을 경비하는 경찰부대의 장교급 인물을 아무한테나 시킬 리가 없으니 말이다. 당장 대한민국의 해양경찰청만 해도 부산항을 경계하는 부산해경과 수도 서울 연안 및 인천국제공항 그리고 NLL을 모두 전담하는 인천해경,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가 관할 경계구역인 동해해경이 제일 중요한 곳들이다.[7] 반면 데이비드 조던은 당시 근무지가 홍콩섬이라 이때 센트럴로 뛰어나가 한국인 농민과 금속노조의 원정 시위를 진압했다.[8] 이건 민주화 시위가 아니었고 진짜 폭동이었다. 경찰관 납치 등등 어그로는 다 끌고 온갖 불법행위를 저질러 대는 판이라 우산 시위 때도 안 하던 실탄까지 발사하게 만들었다. 경찰관을 납치해 집단구타하는 일이 터지자 경찰 측은 야간순찰조와 비번 경찰관들까지 전부 끌어모아 진압을 보냈고 폭동은 하룻밤만에 끝났다.[9] 직접 무력을 쓸 일이 없는 계급이고 도버 본인 역시 장교 출신인 데이비드 조던과 달리 전형적인 문관이라서 그런지 그닥 힘 쓰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한다. 사진이 찍힐 당시 도버는 지원 나온 입장이라서 담당 지역대장의 요청에 따라 부대를 움직여 주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주 업무였다.[10] 홍콩 경찰의 주축인 현장 수사관들은 높아봐야 총독찰(대위급)이다. 그보다 높은 계급의 경찰관들은 대부분이 행정업무가 너무 많아서 책상에 붙어 있어야 하는 고위 수사직 또는 관리직이고 극소수만이 기동부대를 지휘하는데 그마저도 비상시에만 소집되는 부대의 경우 수사/관리직 간부들이 지휘관을 겸직하기 때문에 고급경사(중령급) 이상부터는 티오가 1/4 수준으로 팍 줄어든다. 물론 조리처장(준장급) 이상으로 올라가는 순간 티오는 수십 명 수준으로 줄기 때문에 조리처장 진급은 한국군에서 대령이 준장 진급하는 것만큼 하늘의 별 따기다.[11] 이 지역대는 당시 특이한 인사구조를 갖고 있었는데 사령관과 부사령관 전원 영국인이었다. 사령관은 도버와 임관 동기인 패트릭 라이들러(Patrick Laidler)로, 도버가 진급한 후에도 사령관직을 유지하다가 2020년 말 퇴직했다.[12] 조던은 1992년 입직했으며 도버는 1988년 입직했다. 나이는 조던이 1살 어리다.[13] 부사령관 직책에 있어서인지 행정업무를 관리직 경찰관들과 지역대 사령관에게 넘겨주고(또는 그러라는 명령을 받고) 본인은 현장 지휘에 주력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용 가능한 대부분의 경찰력을 투입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사령관이 직접 나갈 순 없으니 부사령관을 내보내는 게 맞기도 하고.[14] 경찰만 이런 것이 아니고 홍콩 소방처 대원들도 매번 사태를 키워버리는 경찰 때문에 피로가 누적되어 신계 쪽에서 인원을 일부 파견받아 업무를 수행했다.[15] 이 부분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도버는 자신이 현장에 없었고 당시 경찰관들도 자기 부대 소속이 아니어서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른다고 말하긴 했다. 더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긴 한데 도버가 직접 나섰다기보단 원래 그 동네에 근무하던 경찰들이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고 자신은 손을 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무성했다. 더구나 본인 담당구역(원래는 신계 남부 담당)도 아니고 지원 나온 상황이라 함부로 작전지시를 내릴 입장도 아니었을 것이다.[16] 정황상 이날도 신계에서 지원 나온 부대를 지휘하려고 지역대 본부에서 따라온 듯하다.[17] 프린스에드워드역에서 나오면 바로 코앞에 위치해 있다. 사건 당일 역에 진입한 경찰관들은 이곳에 상시 대기하는 랩터소대였다.[18]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하지만 이때 진입한 경찰관 숫자를 생각하면 도버가 현장에 없었다는 진술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총경급의 경찰간부가 직접 시위 현장에 나갈 정도면 그가 지휘권을 가진 모든 경찰 부대가 투입돼야 할 수준의 작전이 필요한 상황이어야 앞뒤가 맞는다. 지하철역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2~3개 중대면 작전하기에 충분했을 것이고 도버가 진압하라고 직접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 맞다고 할지라도 본인은 서에 남아서 상황을 주시하고 현장 지휘 업무는 경정급의 행동대장을 보내 처리했을 확률이 높다.[19] 영어: That is an absolute rubbish.[20] 굳이 신원체크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혹시 섞여 있을지 모를 밀입국자를 잡아내는 목적이 크다. 실제로 홍콩 경찰이 야간 순찰을 돌면서 신원 체크를 할 때 매번 잡히는 게 바로 밀입국자다.[21] 포위전을 벌이기엔 경찰 인원이 부족해서 옆동네에 있던 도버가 직접 부하들을 이끌고 지원을 나갔다고 한다. 그때 캠퍼스에서 탈출하던 시위대를 기습해 체포했는데 그 중 16살 좀 넘어 보이는 여학생이 도버의 얼굴을 알아봤고 도버가 자기 이름을 광동어로 밝히자 공포에 질리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도저히 그냥 연행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라서 본인이 직접 그 학생을 달랬다고 한다. "학생은 이러이러한 법규를 위반했기 때문에, 규정된 절차대로 경찰서로 이송될 것이고 아마 최대 48시간 정도 구금될 수 있겠지만 나이가 어리니까 훈방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경찰서로 가기 전에 구급대가 응급조치가 필요하면 먼저 조치할 거다. 안심해라. 나는 경찰이고 너 같은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임무다. 최초로 최루탄 발사 명령한 경찰관이 당신 아니었나 너를 해칠 사람은 우리들 중에 누구도 없다." 이런 식으로 학생을 겨우 달래서 경찰서에 보냈다고 한다.[22] 이때 본토 중국의 방식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말한다. 홍콩 경찰을 옹호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