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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문서는 문맥을 무시한 인용의 예시를 든 문서로, 예시를 제외한 문맥을 무시한 인용에 대한 설명은 문맥을 무시한 인용 문서에 서술한다.2. 예시
2.1. 종교
- 성경의 구절 중 하나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 기독교 신자들은 물론이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표현이며, 흔히 번창이나 성공을 기원하는 구절 정도로 여겨져 창업이나 개업 등에서 해당 문구가 쓰인 액자를 벽에 걸어두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원래 이 구절이 나오는 욥기에서는 여러모로 부정적인 상황에서 쓰였으며, 원래의 문맥을 생각하면 현재 쓰이는 축복과는 반대의 표현이다. 쉽게 생각하면 '의로운 척하기는. 네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거겠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하여 주시겠지만....' 정도이다. 욥은 당시 자신의 잘못이 아닌 마귀의 시험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사탄이 야훼에게 "욥이 당신을 섬기는 것은 배부르고 등 덥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다 뺏고 고통스럽게 하면 당신을 욕할 것이다."라고 하며 욥을 모함했다. 이에 여러 차례 고난을 줬음에도 야훼를 계속 섬기자 사탄이 "그의 뼈와 그의 살을 쳐 봐라"라고 해서 욥은 심한 부스럼을 얻었고, 그걸 위로하러 온 친구들이 한 말이 저것이다. 결정적으로 이 말은 신(하나님)이 아니라 욥의 친구가 한 말이다. 의미가 거의 유사한 사자성어인 "대기만성" 역시 문맥을 무시한 인용 사례이다.
-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 - 본래는 사도 파울로스가 일을 하지 않고 사건 사고나 일으키는 기독교도들을 꾸짖은 표현이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이를 불로 소득(자본 이익)을 부정하고 노동만이 이윤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변용했다. 즉, 건물주를 비롯한 자본가들 보고 굶으라는 소리다. 반대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파업 권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또 변용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둘 다 극단적인 표현에 의한 논리적 오류 취급을 받는다.
- 신약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한 가난한 과부가 동전 몇 푼을 헌금으로 내는 모습을 보고 예수가 '저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냈다. 저 과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헌금으로 바쳤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걸 가지고 일부 기독교인들은 '아무리 집안 형편이 어려워도 헌금은 꼭 내야 천국에 간다'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릴 때가 있다. 하지만 예수의 의도는 없는 형편에도 예물을 바치려 하는 그 과부의 신앙을 칭찬하면서, 동시에 그런 과부를 돕기는커녕 자기들 배만 불리거나 고액을 바치는 헌금자들만 중요시하는 고위 성직자들을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걸 현대로 가져와서 대조해 보면, 십일조와 헌금을 강제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 더러웠던 유대교 성직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의 천지 창조에 의심하는 부류에 대해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냐고 묻는 놈들을 벌할 지옥을 만들고 계셨다"라고 쓴 것을 두고 일부 기독교인들이 '그러니 창세기 내용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주장할 때가 있다. 하지만 원문(고백록 11권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발언을 바로 명백히 농담이라고 단정지었으며, 천지 창조에 대해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해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 원래 질문에 대해 그가 내놓은 답은 시간 자체가 천지 창조의 한 부분이므로 창조 이전에는 시간 또한 없었다는 내용이다. 더 모순되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을 이미 호되게 깠다는 점이다.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이라는 글귀에서는 대놓고 '성경을 어설프게 읽고 이성과 과학에 대해 허튼소리를 하는 자들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짓거리'라고 비판한다. 아예 "진리를 영접했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연 과학에 대해 허튼소리만 늘어놓으면 누가 우리 복음을 믿겠느냐"라고 일갈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리스도교의 자연 과학에 대한 이러한 유보적인 태도는 의외로 교부 시절부터 종교 개혁 시절까지 꾸준했다. 아우구스티누스만 해도 신플라톤주의와 마니교의 교리에 통달한 지식인이었고,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랍에서 유입된 그리스 고전 철학자들의 자연 철학을 중요하게 다뤘으며, 종교 개혁의 본격적인 기수 역할을 했던 마르틴 루터나 장 칼뱅 등의 종교 개혁가들 역시 스콜라 철학과 르네상스 사상사의 영향을 받은 인문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신학이 다루는 영역과 경험, 관찰로 파악 가능한 자연 과학적 영역을 구분하여 다루는 일에 능숙했다. 오히려 이 시기 이후 교파 간의 대립, 교조화 등으로 한창 피어나는 자연 과학에 딴지를 거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 그 외에도 성경에서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하는 글귀들은 악마가 광야에서 예수를 유혹할 때 사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돌을 빵으로 바꿔 보라든가....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나 신약 성경 마태복음 4장 1~11절 참고.
- "도박을 하는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한 것에 돈을 건다"라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은 도박의 해악을 경계하는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말이 종교 문단인 이 문단에 있는 이유는 사실 이 말의 원전이 파스칼의 내기, 즉 '신의 존재 여부와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은 '진리, 그것은 좋은 것이다'라는 뜻처럼 들리지만 원뜻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말이다. 학문적 추구의 대상이 되는 '진실'이나 '사실'과도 다르다. 한편 이 구절은 개신교 우파 중에서도 소위 '자유 진영' 추종자들이나 심지어 자유의지주의자들에게도 즐겨 인용되는데 여기서의 자유는 자유의지주의에서 말하는 그 자유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모든 인간이 실존적인 죄의 문제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으며 그 문제의 영원한 해답인 진리, 곧 예수가 그들을 죄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 '범사에 감사하라'(에페소서 5:20, 데살로니카전서 5:18)라는 내용만 가지고 어떠한 부조리에서 하느님이 있으니 긍정적으로 견뎌내고 복종하라는 이상한 설교가 판치고 있는데. 애초에 예수 생전(4복음서)에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바울로 서신은 로마 시절 잦은 기독교 탄압으로 흩어진 공동체를 위해 쓴 글이라 상황이 다르며, 바울로의 그 말 자체는 문맥적으로 따지고 봤을 때 로마의 탄압에도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필립비서 4:13)는 흔히 긍정주의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인용된다. 그러나, 필립비서는 사도 바울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쓰여진 서신으로, 특히 해당 대목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필립비 교회가 보낸 물질적 도움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자신이 "궁핍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이것이 또 다른 물질적 도움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생각해 준 데 대한 순수한 감사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울로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은 앞 절에서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하는" 상황으로 표현된다. 즉, 이 내용은 배고픔과 비참함마저도 그가 믿는 신과 함께 감내해 나가겠다는 바울로 개인의 고백인 것이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 원전에서는 간음한 여인에게 내려지려 했던 과도한 벌을 막은 것인데, 하느님이 내릴 만큼의 합당한 벌조차 받지 않기 위한 용도로 잘못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2.2. 문학과 예술
- 셰익스피어 - "과거는 미래의 서막이다.": 이 말은 사실 희곡 폭풍우에서 형을 쫓아낸 협잡꾼 안토니오가 또 다시 동료를 배신하려고 하며 내뱉는 말이다. # 즉, 과거에 형을 쫓아냈듯 동료를 쫓아내겠다는 뜻이다. 작가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인용인 셈이다.
-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 - "영국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바꿀 수 없다)." 아무리 셰익스피어의 위상이 크다고 해도 인도라는 거대 문화권의 가치를 일개 문학가보다도 낮게 취급하는 서구 우월주의적 발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역시 문맥을 무시한 것으로, 본래 칼라일의 발언은 '영국에게 인도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셰익스피어를 포기할 수는 없다'였다. 즉, 인도가 상징하는 경제적 가치보다 셰익스피어가 상징하는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의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주요 무역국이었다. 즉, 인도와 무역을 가져 얻는 경제적 이익은 포기하더라도 문화적 정신은 포기할 수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비유일 뿐이다. 그러나 의도가 어찌됐든 인도를 상대적으로 후려치는 발언인 데다 저 발언을 한 주체가 하필 인도인들의 철천지 원수인 영국인이다 보니 결코 좋게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멘트인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마광수 교수가 음란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연세대학교 학생들이 "마 교수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했다가 주한인도대사관에서 "우리가 아직도 식민지인 줄 아느냐"며 항의하는 사건도 있었다.
- 스티븐 스필버그 - "슈퍼히어로 영화는 서부극 영화처럼 몰락할 것이다": 이 구절만 딱 잘라서 보면 마치 스필버그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애저녁에 유행 끊긴 서부극처럼 곧 망하게 될 장르라고 폄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에는 잘 나갔던 서부극이 현대에는 유행의 흐름에 따라 쇠퇴한 것처럼, 슈퍼히어로 영화도 언젠가는 몰락을 피할 수 없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견해이다.[2]
-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의 "비디오 게임은 예술이 될 수 없다." - 이버트 본인은 게임에 대해 문외한도 아니고, 꽉 막힌 보수 성향도 아니다. 이버트의 논지는 게임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스포츠'의 형태에 더 가깝다는 주장이다.[3] 물론 게임과 예술 문서에 서술된 것처럼 '게임이라는 매체를 어떤 식으로 분류할 것인가'는 과거부터 현대까지 많은 담론이 오고갈 정도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많은 발언이긴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버트가 게임을 무시하거나 비하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단순히 게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밝힌 것뿐이다. 여기서 더 내용이 왜곡되어, 아예 이버트가 '게임은 '열등'해서 예술이 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는 잘못된 사실이 인터넷에 퍼지기도 했다. 이버트의 주장 원본
- "내 우울은 지성의 부산물이야. 넌 이해 못 해." - 정세랑 작가의 단편소설인 '옥상에서 만나요'의 수록작 '웨딩드레스 44'에 나온 구절이다. 우울증을 낭만화하는 중2병 환자들이 자기 우울증에 도취되어 패션 우울증을 전시할 때 인용되는 문구로 폄하되어 종종 비판받지만, 전체 맥락을 보면 결코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문장이다. 한 디자이너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거쳐간 여성 44명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담은 단편집으로, 결혼이 여자에게 갖는 의미, 결혼 이후 자아를 빼앗기고 소외당하는 여성들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다룬 수작이다.[4] 전체 맥락은 가족이 되었으면서도 아내의 감정에 둔감하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남편에 대한 비판으로 쓰인 문장인데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들이 자기 우울을 낭만화하며 대개 이 부분만 인용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이 문구가 자의식 과잉 가득한 중2병 문구로 비판된다.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의 명언으로 알려진 발언. 정확히는 안중근이 감옥에서 남긴 유묵 중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 中生荊棘)에서 비롯한 것이다. 안중근이 처음부터 만든 말은 아니고, 명심보감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독서를 권장하는 의미 자체는 맞지만 속 뜻은 조금 다르다. 흔히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책을 가까이 하고 즐겨야 한다' 정도로 받아들이지만 실제로는 책을 읽어서 스스로를 다스리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은 것처럼 말이 거칠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2.3. 과학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모든 진실은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비웃음을 당한다. 둘째, 거친 반대에 부딪힌다. 셋째,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를 인용 -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대한 과학자의 새로운 발견이 비웃음을 당할 수는 있지만 비웃음을 당한다고 그것이 위대한 과학자의 새로운 발견인 것은 아니다(관련 문서).
- 한국의 호모포비아 단체들이 CDC 보고서를 비롯해 에이즈(HIV)와 남성간 항문 성교에 대해 다룬 다양한 논문과 보고서의 허리 부분만 발췌하여 '남성과 남성 간의 항문성교는 에이즈 감염률을 높이니, 동성애를 금지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지만 CDC 보고서 및 다른 논문의 결론은 '동성애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다채로운 방안을 강구해야 하며, 동성애를 탄압하거나 반동성애 법을 제정하는 것은 오히려 에이즈 감염률을 높인다'고 하고 있다. 동성애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된 과정에 동성애 세력의 무력 협박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동성애/논쟁 항목 참조.
-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물은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는 내용이 자주 인용된다. 이 구절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많은 사람들에게(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책 내용을 잘못 이해한 과학자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도킨스는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며, 책 내에서 이를 여러 번 강조한다.
2.3.1. 찰스 다윈의 '진화론'
서로 다른 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 다른 양의 빛을 받아들이고, 구면 수차와 색 수차를 보정하는, 모방할 수 없는 경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눈이 자연 선택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고백하건대 전혀 터무니없어 보인다.
찰스 다윈, 1872년
이 예문을 보면 마치 찰스 다윈이 자신이 주장한 자연 선택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생략된 문장까지 합친 원문을 보면 다윈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뒤의 몇 문장을 생략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찰스 다윈, 1872년
서로 다른 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 다른 양의 빛을 받아들이고, 구면 수차와 색 수차를 보정하는, 모방할 수 없는 경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눈이 자연 선택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고백하건대 전혀 터무니없어 보인다.
맨 먼저 태양이 제자리에 있으며,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인간의 상식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철학자가 알듯,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은 과학에 통하지 않는다. 이성은 내게 말한다. 단순하고 불완전한 눈에서 복잡하고 완벽한 눈으로 가는 수많은 계층이 존재하며, 뒤에 있는 것이 앞선 것보다 생존에 유용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확실히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눈이 계속 변화하며 변이가 유전될 수 있다면?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떤 동물에게도 유용하다면, 자연선택으로 복잡하고 완벽한 눈이 진화하는 것의 어려움으로 이론을 전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찰스 다윈, 1872년
즉, 자기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맨 먼저 태양이 제자리에 있으며,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인간의 상식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철학자가 알듯, 민심이 천심이라는 옛말은 과학에 통하지 않는다. 이성은 내게 말한다. 단순하고 불완전한 눈에서 복잡하고 완벽한 눈으로 가는 수많은 계층이 존재하며, 뒤에 있는 것이 앞선 것보다 생존에 유용하다는 것을 보일 수 있다면 어떨까? 확실히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눈이 계속 변화하며 변이가 유전될 수 있다면? 역시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이 변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어떤 동물에게도 유용하다면, 자연선택으로 복잡하고 완벽한 눈이 진화하는 것의 어려움으로 이론을 전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찰스 다윈, 1872년
2.4. 정치
특히 정치인이 특정인의 발언이나 사자성어, 고사성어를 문맥과 상관없이 인용할 때가 많다.- 맹자의 천하무적(天下無敵) - 원래는 왕도를 강조하는 말로써 어진 정치를 하면 자연스레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어진다는 뉘앙스였으나 오늘날에는 의미가 약간 변형되어 세상에서 대등한 자를 찾아볼 수 없는 압도적인 힘, 능력, 또는 그런 사람을 표현할 때 쓰인다.
- 노자의 대기만성은 원래 큰 그릇은 채워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 함무라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 - 흔히 사적제재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함무라비 법전의 잔혹성을 강조하는 말로 인용되곤 하는데 사실은 과잉 보복을 막기 위하여 만든 말이다. 즉, 어떤 죄에 대하여 형벌의 상한선을 규정하고 필요 이상이 아닌 정당한 수준의 형벌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로, 쉽게 말해서 "갚아도 당한 만큼을 넘어서는 정도가 아니라 당한 만큼만 갚아라."를 집약해놓은 문장이다.[5] 이 문장은 형벌을 명문화하였다는 데에서도 법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다. 최소한의 인권 침해를 막고 인권 개선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간 법령이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로 여겨지고 있음이 역설된다.
- 이승만의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모함설 -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가 모함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승만 본인이 입으로 직접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서울은 안전합니다!" 라고 대놓고 발언한 것은 아니라는 자료들을 인용한다. 하지만, 정확히는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같은 말을 직접 하지 않았을 뿐이고 방송 자료를 여러가지로 걸쳐서 확인해보면 이승만 정부가 계속 국민들을 기만하는 방송과 서울 사수를 의미하는 발언으로 돌려서 말한 것도 사실이다. 이들 중 일부만 잘라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문맥을 무시한 인용이라고 봐야 한다.
- 존 F. 케네디
- 취임 연설문 중 "미국민 여러분은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하십시오." - 한국의 보수, 우익 세력들이 이 구절만 딱 집어서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말고(국가주의) 시키면 군말없이 따라야 한다(파시즘)"는 뜻으로 엉뚱하게 곡해해서 받아들이고 자주 들먹이지만, 사실 저 발언은 미국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국민이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를 독려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이 말에 따르면 국민은 국가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애당초 이 사람은 국가주의나 파시즘과는 거리가 아주 먼 리버럴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말이 의도와는 정반대인 국가주의의 표본으로 왜곡되어 인용하고 있다.
- 존 F. 케네디가 인용한 단테의 신곡 문장 - 평소 케네디는 연설에서 단테의 신곡을 인용하며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time of moral crisis preserve their neutrality."(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라는 문장을 즐겨 인용했는데 정치적 중립이나 양비론을 비난할 때 자주 쓰인다. 하지만 신곡에서는 오히려 비슷한 죄목의 죄인들은 지옥 맨 위에 있다.
- 1998년 최장집 교수에 대한 월간조선의 사상검증 논란 - 최장집의 글 중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 '한국전쟁은 북한이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란 문구를 가지고 최장집이 북한의 남침을 찬양했다고 몰아갔다.
- 김현구 임나일본부학자설
- 김대중 직선제 반대발언 모함사건
- 노무현의 제가 뭐 경제 살리겠다고 말이나 했습니까 - 경제 살리겠다고 안 했으니 경제를 안 살려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제를 살린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경제를 잘 살려야 한다는 의미로 발언한 것이지만 반대파들 사이에서는 노무현의 망언 수준으로 여긴다. 참고로 뒤에 이어진 발언은 "말 안 했지만은, 당연히 잘 해야지요. 당연히 잘 해야 되는데... 7퍼센트 못 해서 죄송합니다." 이다.
- 이명박의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 자신에게 쏟아진 의혹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말이지만 듣기에 따라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같은 느낌으로 들리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 알고 인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명박의 행적이 다 거짓말로 드러나고 감방으로 가게되면서 저런 식으로 인용하는 것도 더 이상 틀린 말이 아니게 되었다.
- 오자와 이치로의 '제주도 구입' 발언 - 이건 쓰시마 섬의 부동산 문제에 대한 발언을 하면서 꺼낸 비유가 왜곡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쓰시마섬의 토지를 구입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이를 두고 일본 내에서 '한국이 쓰시마를 자기네 땅으로 만들려고 한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오자와 이치로는 이를 반박하면서 '일본인이 제주도의 땅을 산다고 해서 제주도가 일본 땅이 되는가?' 라고 비유해서 발언한 것이다. 즉 부동산 구입과 영토의 개념은 별개임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 기사들에서는 앞뒤 문맥이 잘리고 마치 그가 제주도를 구입하자고 주장했다는 왜곡이 나왔다.
- 플라톤의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는 일단 목적은 정치 참여 독려가 맞으나 일반 대중이 아니라 사회 엘리트 계층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것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서, "너희들 같은 고급인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하다간 너희보다 덜 고급인 사람들이 정치를 맡게 되니까 정치에 꼭 참여해라." 정도의 뉘앙스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라고 여겨왔으며, 소수의 철학자가 통치하는 철인정치를 주장한 사람이다. 애초에 플라톤이 민주정치를 혐오했다는 사실은 만천하에 알려졌는데 민주정치를 지지한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일 리가 없고, 따라서 현재는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에 깨어있는 국민들이 최대한 현명한 정치인에게 투표하자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철인정치라는 사상 또한 현대식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민주주의가 만든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국민과 지도자가 철인처럼 깨어있으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 프랭클린 애덤스의 "선거 투표는 누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누가 싫어서 하는 투표에 그 승패가 결정된다"는 흔히 최선이 아니라 차악을 뽑자는 의미로 선거철에 자주 인용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진정 원하는 후보를 찍어주지 못하는 선거 시스템상의 한계(사표론)을 비판하는 말이다. 다수당 둘과 소수당 몇몇이 있는 상황에서 소수당 지지자가 모 다수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반대파 다수당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정확하다. 2012년에 있었던 제18대 대통령 선거로 치면, 후보 사임한 심상정, 이정희 후보의 지지자들이 새누리당 소속 후보인 박근혜의 당선을 막고자 비진보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후보인 문재인에게 투표한 것을 생각하면 된다.
- 마오쩌둥의 "인간의 목숨은 깃털보다 가볍다": 마오쩌둥이 한 말의 전체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벤자민 프랭클린의 "일시적 안전을 얻기 위해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들은, 자유도 안전도 가질 자격이 없으며 결국은 둘 다 잃게 될 것이다." - 현대에는 주로 자유의지주의자들이 치안이나 안보를 위한 정부의 자유권 제한을 비판하는 용도로 인용한다. 하지만 벤자민 프랭클린은 의회의 자치권과 입법권이 주지사의 개인적인 보신이나 영국과의 일시적인 갈등 봉합을 위해 침해되면 안되는 의미에서 이 발언을 한것이지 개인의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니다.
- 조제프 드 메스트르의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 - 메스트르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고 프랑스 혁명을 반대한 왕당파였다.
- "성을 쌓는 자, 기필코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유목이 정주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로 인용되곤 하지만, 발언의 원 맥락은 돌궐이 당나라보다 인구가 적으니 정면대결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사덕돈욕곡 문서 참조.
-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이후의 4차 대국민 담화 당시 연합뉴스 측은 '국민 여러분, 지금 야당은 저를 중범죄자로 몰면서, 당장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만일 망국적 국헌 문란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위헌적인 법률, 셀프 면죄부 법률, 경제 폭망 법률들이 국회를 무차별 통과해서 이 나라를 완전히 부술 것입니다.'를 요약하여 '이 나라 완전히 부술 것'이라고 자막을 띄웠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이 나라를 부수는 행동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인사들과 국민들은 이를 문제삼지 않고 있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인간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 인민을 위해 죽는다면, 이는 태산보다도 무거운 죽음이다"
人固有一死,或重于泰山,或轻于鸿毛。为人民利益而死,就比泰山还重
마오쩌둥이 이 말을 한 의도는, 항상 인민을 위해야 한다는 살신성인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나마 이 내용은 마오쩌둥이 만든 표현이 아니라 사마천의 글인 보임안서(報任安書)를 인용한 것이다.
2.5. 철학
- 블레즈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 일단 파스칼은 수학자나 철학자로서 유명하지만 사실은 철학자라기보다는 당대의 저명한 신학자였다. 파스칼은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었고, 팡세에 써진 해당 글의 원문부터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을 축약한 말이다. 애초에 해당 문장이 써진 파스칼의 팡세부터가 철학을 다룬 작품이 전혀 아니고, 인간의 지성을 칭찬하는 글도 아니며, 오히려 시대적 상황에 맞은 매우 종교적인 작품으로, 실제 의도는 종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당대의 철학자들, 즉 합리주의 철학자인 르네 데카르트나 미셸 드 몽테뉴에게 "너네가 생각할 줄 알아봐야 갈대에 불과하니까 하나님을 따르라"는 글이고, 이렇게 당대의 인간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현대에 인용할 때 이 문장의 경우 '생각하는'이 강조되어 있는데, '갈대에 불과하다.'라는 부분이 사실 중심내용이다.
"너는 잘생긴 오징어라"는 말이 잘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 -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 개인의 이기심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식의 자본만능주의를 상징하는 너무 유명해진 관용구이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유명한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6] 등은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인용하지만, 실제의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자이자 당대에 가장 유명했던 윤리철학자였으며, 윤리학을 다룬 도덕감정론 등을 저술하였다. 실제 '보이지 않는 손' 발언도 도덕감정론 같은 아담 스미스의 사상 전체를 따져서 해석하면 어디까지나 "누구든지 정의의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신중과 정의의 범위 안에서 자기이익 추구는 비난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다."라는 발언 아래에 합법적인 행동+정의로운 행동+신중한 행동이라는 윤리학을 기본으로 깔아두고서 해석해야 하는 것으로, 단순히 '자본주의가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발언이 아니다. 다만 이 발언의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상술한)도덕적 요소들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간혹 보이곤 한다. 특히 스탠퍼드 경영학 교수이자 2010년 이후로 가장 유명한 경영학자인 제프리 페퍼 등은 실제 아담 스미스를 비롯해서 고전 경제학은 윤리학과 함께 발전했는데 현대 경제학은 윤리와는 괴리되어 있다며 비판하기도 하였다.[7]
- 토마스 아퀴나스 '철학은 신학의 시녀이다' - '시녀'라는 개념과 중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철학은 신학 따까리나 하는 격이 낮은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녀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시녀는 결코 천한 개념이 아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 표현은 물론 신학이 철학보다 더 중요하긴 하지만, 철학은 그 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에서 이성의 위치를 엄청나게 끌어올린 사람으로, 당연히 철학을 중시하였던 사람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정치학과 군사학의 관계에 빗대어서 설명을 하였는데, 군사학이 중세 시대 매우 중요한 학문이었듯, 철학 역시도 그러하였다.
- 연장자에게 복종하라는 의미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많이 들먹인다. 장유유서는 삼강오륜(三綱五倫) 가운데 오륜의 하나로서, '오륜(五倫)'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倫]에서 지켜야 하는 다섯 가지[五] 원칙을 말한다. 오륜은 유교의 오상(五常)과 서로 호응하는데, 오상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에서 '예'가 장유유서에 대응한다. '예'란 위와 아래의 구별이 있고, (가족 간의 나이, 항렬 같은) 서열에 따른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춘추전국시대에 접어들어 세상이 무질서에 빠지고 혼란해진 것은 여러 제후국들[幼]이 주나라[長]를 존중하지 않고 서열관계를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춘추시대 당시의 공자가 말한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예(禮)'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그 '예'로, 개인의 욕심을 억제하고 '예', 즉 위아래 서열에 따른 '질서'[序]를 회복하자는 뜻이다. 이를 보아 알 수 있듯이, '장유유서'는 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말과 행동에 무조건 정당성이 부여되고 나이 적은 사람이 이에 일방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지위ㆍ서열ㆍ가족 간의 항렬 등의 위아래와 높고 낮음을 구별하고 행동할 때 '차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유유서'에는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이를 존중ㆍ배려하라는 뜻은 있어도 '복종'하라는 뜻은 없다.
- 신은 죽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 일단 프리드리히 니체와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에 매우 비판적이었던 건 사실이나, 문맥 자체는 종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보다는 그 종교에 의지하게 만드는 사회를 비판하는 것에 더 가깝다. 무신론자들도 이 비판에서 예외가 아니다.
- 프리드리히 니체의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흔히 선이나 정의를 내세우며 악과 대적할 때 악에 물들지 말라는 식으로 쓰이지만, 니체가 말하는 괴물이나 심연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니체는 보통 피해자로 여겨지는 "약자"를 절망과 죄책감, 천민의 도덕을 퍼트리고 강자의 미덕을 파괴하는 자들이라 칭하며 노골적으로 멸시하는 사람이었다. 니체의 사상에 대해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 유베날리스-'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원래 '건전한 정신이 건강한 육체 안에 깃들길 기원해야 한다'에서 '기원해야 한다' 부분이 빠진 것이다. 로마 시대의 근육뇌 풍조를 비판한 것이다.
2.6. 군사학
- 군사학 논고의 "평화를 원하는 이들은 전쟁을 준비한다." ("Igitur qui desiderat pacem, praeparet bellum") - 현재는 방어전 혹은 군사적 긴장을 통한 전쟁억제로 이뤄지는 평화를 뜻하지만 당시 로마인들의 개념에서 평화(pacem)란, '적이 물리적으로 없는 상태'를 뜻한다. 즉, 적을 모조리 쳐죽여야 평화가 온다는 뜻이므로, 적극적인 공격전, 정복전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 마오쩌둥 어록의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枪杆子里面出政权)" - 장제스의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공산당원 학살에 대비한 8.7 긴급회의가 출처로, 사실상 문답무용으로 공산당원을 학살하는 장제스에 대비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하자는 발언에 가깝다.
- 오마 브래들리의 "전쟁에서 2등을 위한 자리는 없다." - 원래는 승자와 패자만이 있을 뿐인 전쟁의 참담함을 뜻하는 말인데, 반쯤 농담일 때가 많지만 2등의 비참함을 뜻할 때 잘못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1] 이 말이 나온 앞뒤 문장은 다음과 같다; "(전략)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도박하는 사람은 불확실하게 따기 위해서 확실하게 내기를 한다. 그는 불확실하게 유한한 것을 얻기 위해서 확실하게 유한한 것을 내기에 거는데 이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내기에 거는 이 유한과 득의 불확실의 간격은 무한하지 않다. 그것은 거짓이다. 진실로 득의 확실과 잃음의 확실 사이에는 무한의 간격이 있다. 그러나 득과 실의 운의 비율에 따르면 득의 불확실은 우리가 내기에 거는 것의 확실에 비례한다. 그래서 양쪽의 운이 같다면, 승부는 동등하게 진행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내거는 것의 확실은 득의 불확실과 같은데, 그 간격이 무한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득과 실의 운이 같고, 따야 할 게 무한인 노름에서 유한을 걸어야 할 때 우리의 제안은 무한한 힘을 갖게 한다."[2]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겠지만 2020년대부터 슈퍼히어로 영화 프랜차이즈들의 전반적인 작품 질의 저하와 그에 따른 흥행 부진으로 인해 그의 발언이 실현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3] 링크된 원본글은 thatgamecompany 계열의 게임 개발자 켈리 산티아고(Kellee Santiago)의 TED 강연에 대해 감상 겸 비평한 것이다. 여기서 이버트는 마지막에 "마이클 조던 등이 자기들의 경기를 '예술'이라 칭한 적이 있던가, 게이머들은 그냥 '경기'를 즐기면 되지 않느냐, 예술이라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냐"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연 마지막에 산티아고가 '게임은 예술이다'라는 증거로 개발과 퍼블리싱 및 마케팅 등 경영학적 요소를 들먹이는 모순을 보여줬다며 "I rest my case.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로 글을 마무리하는 냉소는 덤.[4] 남성혐오를 주무기로 삼는 저열한 래디컬 페미니즘이 아니라 초창기의 순수한 페미니즘에 기반한 작품이므로 무분별한 여성 우월주의 문학으로 폄하하지 말 것.[5] 당시에는 툭 건든 정도로 상대방을 죽여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6] 그런데 프리드먼은 엄밀히 말하면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국내에서 흔히 고전학파=자유주의를 같은 의미로 쓰다 보니 이런 오해가 나오는 것인데 프리드먼은 시장방임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엄격한 규칙에 의한 통화정책을 사용해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관점은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다.[7] 배종석 저 인적자원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