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04-30 22:56:14

지동설

파일:external/hannahloughridge.files.wordpress.com/screen-shot-2014-03-31-at-19-51-07.png
코페르니쿠스 혁명(Copernicus revolution)
1. 개요2. 역사3. 진리라는 오해4. 기타

[clearfix]

1. 개요

지동설() 또는 태양중심설(Heliocentrism), 일심설(日心說)이란 태양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주변을 지구, 다른 행성들이 공전한다는 설이다. 이 학설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유력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천동설을 대체하면서 인류의 우주관 정립 및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 역사

파일:taurus vs sagittarius.jpg

과거부터 자연철학적인 관점에서 "지구가 거대한 중심을 돌고 있다"는 생각 자체는 존재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지구중심설을 주장하면서도 이 가능성을 수용할 정도였다. 이론화된 태양중심설은 헬레니즘 시대의 아리스타르코스가 "태양은 달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고, 따라서 실제로는 달이나 지구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달, 태양, 지구가 이루는 삼각형에서 한 각만 알면 거리비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일식 때 달이 태양을 가리기 때문에 크기 비율도 거리 비율과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개기월식이 진행되는 시간으로 지구의 그림자 크기를 계산하고 이 방법으로 지구, 달의 크기 비율을 알아냈으며, 지구, 태양의 크기 비율을 알고 크기가 작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태양중심설을 정립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천문 관측 기술로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증거를 찾기가 어려웠고(일례로 연주 시차), 물체의 움직임에 대한 관념과도 맞지 않아, 300여년 뒤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지구중심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코페르니쿠스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천문학자들이 새로운 관측 증거들을 바탕으로 태양중심설을 들고 나왔고[1], 요하네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아이작 뉴턴의 새로운 운동 법칙을 통해 지구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을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지구중심설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3. 진리라는 오해

엄밀히 말해서 인류의 우주관은 지동설(說)의 보급 이후 그것을 중심으로 발전・개정되어 온 것이지, 르네상스 당대의 지동설이 곧 실제 정답으로 밝혀졌다는 뜻은 아니다. 코페르니쿠스가 맞춘 것은 '태양이 중심에 있고 행성이 공전한다는 것' 하나 뿐으로, 그는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이 완벽한 원의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다는 등의 오류를 범했다.

인류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태양계 바깥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면서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heliocentric)'는 명제 자체가 틀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주는 빅뱅 이후 공간 자체가 급격히 팽창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프리드만 모형(Friedmann model)에 따르면 우주는 균일하며 등방하다. 다만, 편의상 어딘가에 잡아야 하는 우주상의 좌표 중점을 태양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태양계 내부에 한해서는 계(界) 전체의 질량 중심이 태양에 극히 가까우므로, 태양에 중점을 둔다 해도 거의 옳으며 천체 운동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근사화).

또한 목성의 경우에는 태양과 목성의 공통질량중심이 태양 밖에 있다. 따라서 목성은 태양의 중력에 간섭을 받아 균형 잡힌 타원 운동을 하는 것이며, 엄밀히 말해 태양을 공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4. 기타



[1] 다만 이들도 연주시차는 발견하지 못했다.실제로 티코 브라헤도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주시차를 발견하는데 실패했다.[2] 지동설의 근거 중 하나인 연주시차는 맨눈으로 관측이 불가능하다.약 180여년 뒤의 티코 브라헤도 연주시차를 관측하지 못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