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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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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e61e2b> 생애 학창 시절 · 정계 입문 이후 · 야인생활 · 이명박 수사 관련 · 정계 복귀 이후 · 부산광역시장 보궐선거 · 부산광역시장 임기 시절 · 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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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학창 시절3. 정계 입문 이후4. 야인생활5. 이명박 수사 관련 6. 정계 복귀 이후
6.1. 자유한국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6.2.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7. 부산광역시장 보궐선거 출마8. 제38-39대 부산광역시장
8.1. 2021년8.2. 2022년8.3. 민선 8기 지지율
8.3.1. 리얼미터

1. 개요

부산광역시장 박형준의 생애를 다룬 문서.

2. 학창 시절

1960년 1월 19일,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학창 시절을 보냈고,[1] 서울 숭덕초등학교, 동국대사대부중을 거쳐 대일고등학교[2]를 졸업하고 1978년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79년 10.26 사건과 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사회과학 이론에 빠져들기 시작해 좌파이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 군복무는 민주화 학생운동에 참여해 시위를 하다 최루탄에 눈을 다쳐 근시, 부동시병역면제를 받았다.[3] 198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가 모교로 돌아가 1985년 사회학 석사 , 1992년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80년대 후반 「창작과 비평」, 「현실과 과학」 등 진보적 학술지를 통해 일어났던 여러 사회과학 논쟁에 참여해 비교적 일찍 소장 논객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 당시를 가리켜 박형준 본인은 "굳이 노선을 이야기하자면 사상적으로 온건계열의 민중민주파에 가까운 시기"였다고 술회한다.

1991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 무렵 정태인과 함께 진보언론의 종가였던 월간 <>지의 편집위원을 잠깐 지내기도 했다.[4]

3. 정계 입문 이후

정치활동은 민중당에서 시작했다. 창당 당시 강령 기초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1991년 부산 경실련 기획위원장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이재오, 김문수 등 민중당 지도부급 인사들 상당수가 "문민정부의 개혁을 지원하겠다"면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자 그도 정치 노선을 바꾸어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정책자문기획위원으로 합류하였다. 문민정부가 전두환, 노태우를 전격적으로 잡아넣는 등 과거 청산에 적극 나선 것도 이들의 선택에 명분이 되어주었다. 문민정부가 끝난 이후에는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2003년까지 재직하였다.
"YS정권 때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하면서 청와대 프로젝트를 많이 했는데 그때, 아 시민운동의 시각에서 보는 사회와 국정의 시각, 통치의 맥락에서 보는 사회라는 게 상당히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배운 것은 YS개혁이 의도와 결과가 왜 달라지는가를 보면서였습니다. 다원화된 사회, 다원화된 이익갈등을 통제·조종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개혁을 한다 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본 겁니다. 그래서 정말 국가경영능력이 중요한 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민주주의는 다수의 논리이긴 하지만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하죠. 리더는 비전도 있어야 하지만 실제 운영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영이란 복합적이고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그런 분야는 착한 사람이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선의만 가진 사람이어도 안되고, 지사형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스트도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의지는 선량하게 갖되 풀어가는 방식은 상당히 실용주의로 풀어가는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가 필요합니다." 2007년 8월 14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명박 진영에 가담하여 친이계의 브레인으로 활약하면서, 친이계 내에서도 이재오계에 속하게 된다. 당시 이해찬 등 참여정부의 386인사를 강력 비판하며 친이계의 브레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진보진영에서는 변절자로, 조갑제 등 극우보수진영에서는 좌경세력으로 동시에 욕을 많이 먹었다. 자신의 전향 이유에 대해서 '주사파의 교조주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염증을 느꼈다', '사회는 선의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국정을 사회운동 하듯이 하면 망한다' 등의 발언을 하였다. 이는 탈냉전과 소비에트 붕괴 후 운동가들이 흔히 겪었던 일로, 박형준의 경우엔 진보 이념과 이상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 노선을 택했다고 봐야 할 듯.출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명박 캠프에 합류하여 BBK 주가조작 사건 등 이명박에 대한 네거티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역할을 하며 이명박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8081314513120002300-001.jpg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시절(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수영구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을 노렸으나, 친박 무소속을 표방한 유재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한 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을 지내면서 친이계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수영구 출마를 노렸으나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위시한 친박계가 이미 당 공천권을 장악한 상태라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컷오프당했고, 이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유재중에게 다시 한 번 밀려 낙선하였다.[5]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았고, 당적을 갖지 않은 채 야인으로 지냈다. 중간에 2014년 9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대한민국 국회 제28대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4. 야인생활

2017년 1월 썰전 202화에서 야인특집으로 정청래와 함께 출연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한나라당 언론발전특위 간사일 때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타협해서 참여정부의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인 신문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는데, 이로 인해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에게 엄청나게 찍혀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유시민 작가가 JTBC 인터뷰에서 좋은 토론상대였던 사람은 누구였냐는 질문에 유승민과 박형준을 꼽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2017년 6월 2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썰전에서 하차한 전원책 변호사의 후임으로, 새로운 보수 패널로서 출연이 확정되었다.

썰전에 나와 말하길 "보수의 이념은 '자유'로 대표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단기간에 급격한 민주주의를 겪어 현재 대중들의 생각은 '보수=박정희 시대의 이념'과 같은 낡은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라는 이념을 다시 재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발언.

이후 박형준의 생각tv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푸는 형식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5. 이명박 수사 관련

문재인 정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 이명박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드러나고,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어버이연합 게이트가 다시 재조명되어 검찰의 칼끝이 이명박을 조준하는 상황이다.

썰전 237회에서 MC인 김구라가 그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고 유시민 또한 들어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박형준이 청와대 사회특별보좌관으로 있는 동안 저 블랙리스트에 관여되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썰전 231회에서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 파문'이 다루어졌을 때, "제가 MB 시절 비리에 연루되었음이 드러난다면, 제가 단두대로 가겠습니다."라고 하며 확실히 관여되지 않았음을 주장하였다.

이명박의 퇴임 후 안전판을 목표로 청와대에서 총선을 지원하려 한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썰전 시청자 게시판에는 박형준의 하차를 요구하는 게시글이 빗발치고 있다. 출처[6] 박형준 본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MB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도 있으므로 당선에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 것이다.

이후 9월 29일 tbs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총선 지원 의혹에 대해 해명했는데, 의문의 1패를 당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인이 말하길 19대 총선[7]에서 선거 지원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공천 탄압을 받았다고 하는데, 경선 이틀 앞두고 경선 선거인단 여론조사에서 자기가 앞선다는 결과가 나오니까 당시 친박 중심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경선을 무효로 만들어 낙천시켰다고 한다.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도 그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며, 이 당시 여권과 절연 상태라 지원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또 한 가지 이유로는 이 문건이 공직비서관실 감찰팀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들었는데, 공직비서관실은 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곳이며 그 중에서도 감찰팀은 경찰 등으로부터 파견 온 인력이 모여있는 곳인데, 자기네 업무도 아닌 총선 지원 문건을 왜 만들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출처.

검찰에서 국정원 • 군 • 경찰에서 공동으로 이명박 정권 집권 시절에 벌인 사이버 여론조작 댓글 공작의 실체가 드러나며 수사한 결과 2017년 10월 25일 박형준이 이명박에게 매일 업무를 보고하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출처

6. 정계 복귀 이후

6.1. 자유한국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범중도보수를 비롯해 야권의 통합에 나섰다.

2020년 1월 16일 새보수당의 요구 당대당 통합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공개적 반대 의사를 표출한다. 이에 새보수당에서 박형준에게 시민단체가 참여한 혁통위는 자문기구일 뿐이며 당대당 통합 논의에 박형준이 끼어드는 것은 월권이라고 비판한다. “박형준 나가라” …보수 통합 방식 두고 갈등 고조

2020년 1월 20일 자유한국당에서 박형준의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보수당과 당대당 통합협의체 구성을 수용하며 논란을 일소했다.

2020년 1월 21일 반나절 일정으로 제주특별자치도를 방문하였고, 원희룡 지사에게 범중도보수신당 합류 동참을 요청하였고 결국 원 지사는 범중도보수신당 합류를 선언하였다.

1월 2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21대 총선에서 통합 성공하면 과반까지 가능하고 주장하였다. 인터뷰 기사.

2월 6일 중도·보수 야권 통합을 추진 하며 본인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가 6일 통합신당준비위원회(통준위)를 출범하고 공동위원장 중 한명이 되었다.

이후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미래통합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이 되었다. 2020년 3월 9일, 21대 총선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미래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기는가 싶었지만, 거센 비판을 받으며 2시간 만에 공천 신청을 취소하였다. 이후 본인의 공천 신청으로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본인이 직접 사과했다. 박형준, 미래한국당 공천 신청→철회 번복…“혼란 끼쳐 죄송”

6.2.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김종인 영입설이 파다하던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자리에 김종인 전 대표의 고사로 황교안 대표가 앉았고, 추가로 통합을 이끌었던 박형준 교수와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하여 삼두체제에 돌입했다. 박 교수는 공천 신청 후 번복 해프닝을 겪자마자 다시 큰 자리에 앉게 되었다. 김종인 전 대표도 돌아와 4인 공동체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차명진의 세월호 막말 사태 등 미래통합당에 악재가 연이어 터졌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개헌 저지선도 위태롭다는 발언을 하였다. 보수 지지자들은 엄살 작전이라고 생각했으나 미래통합당이 103석을 얻어 개헌저지선에 턱걸이하면서 박형준의 발언은 현실이 되었다. 당연히 이 반응이 나왔을 때 보수 지지자들은 당황했으며, 당장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그정도는 아니라면서 선을 긋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수 인사 중에는 거의 근접하게 총선 판세를 읽었던 셈이다. 선대위원장 김종인이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진 예측으로 괜히 김종인이 선거의 구세주라고 굳게 믿고 과반을 기대하던 선거날 통합당 지지자들의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었다.[8]

7. 부산광역시장 보궐선거 출마

총선에서 완패한 이후로는 잠시 정치계 일선에서 물러나고 다시 보수 논객으로 돌아가 TV조선강적들과 같은 정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2020년 7월 이후로는 오거돈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부산광역시장 출마설도 나오는 등# 다시 정치계 일선에 등장할 수도 있다는 평이 있었다. 그리고 9월, 지역언론인 국제신문 보도에서 “부산은 리더십에 따라 발전 잠재력이 큰 도시다. 통합당이 열린 경선을 한다면 고민해 볼 생각이다”고 말하며 부산시장 출마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선공후사의 자세로 많은 양보를 해 왔다”며 “이제는 개인 욕심을 내겠다”고 선언하며 부산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부산광역시장 여론조사 결과들에 대해서는 2021년 재보궐선거/여론조사 문서 참조.

한편 2020년 10월 29일, 국민의힘에 복당 신청을 하였고, 복당이 허용되면서 8년 만에 복당하게 되었다.

2020년 12월 8일, 드디어 부산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본격적으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12월 15일, 부산 북항 컨벤션센터에서 출마 선언식을 열고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 같은 날 발표된 아시아경제-윈지코리아컨설팅 여론조사에서도 가상 대결에서 민주당 김영춘 국회사무총장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2020년 12월 현재 발표중인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당 후보군 조사와 가상대결 양쪽에서 오차범위 밖 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국민 여론조사를 최대한 반영하기로 경선룰이 확정된만큼 향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또 국민의힘 내에서 박형준 다음으로 지지율이 높은 이언주의 경우에는 민주당 후보와 가상대결을 했을 때 오차범위 내에서 고전하고 있는 반면에[9] 박형준은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한 1대1 가상대결에서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큰 격차의 우위를 나타내는 등 월등한 본선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2월 16일 있었던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 1차 1대1 토론회에서 이언주 후보와 맞붙었는데, 박형준 후보는 이 후보의 정체성을, 이언주 후보는 박 후보의 이명박 정부 당시 불거졌던 각종 의혹을 문제삼으면서 두 후보가 거친 설전을 벌였다. 이때문에 박형준 후보가 마지막에 사과까지 했다. 토론평가단은 박형준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어 19일에 있었던 박성훈 후보와의 토론에서는 정책 검증에 주력하며 토론평가단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우위를 굳혔다.#

이어 박민식 후보와의 토론과 이언주-박민식 단일화 이후 처음 실시된 전체 후보 토론회에서 모두 승리하며 토론회 4전 전승에 성공했고#, 가덕신공항 특별법 통과 이후 처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후보 가운데 민주당을 상대로 유일하게 오차범위 밖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면서 확실한 대세론을 굳혔다.#

3월 4일 부산광역시장 국민의힘 경선 결과 종합 54.40%를 득표하여 28.63%를 득표한 박성훈 후보, 21.54%를 득표한 이언주 예비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승리해[10] 당의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식 후보로 선출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가 김영춘으로 확정된 후 처음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48%의 지지를 얻으며 32.5%의 지지를 얻은 김영춘 후보와 격차가 조금 좁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오차범위 밖에서 10% 이상 크게 앞서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후 LH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폭락한 한편 본인 역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둘 중 어느 것이 더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 되었는데, 3월 21일 부산지역 신문인 국제신문에 의해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오히려 김영춘 후보와의 격차가 20% 이상으로 크게 벌어지면서 전자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파일:박형준 제38대 부산광역시장 당선.jpg
▲ 부산시장 당선이 확정된 박형준

4월 7일, 개표 결과 62.7%를 득표하며 30% 대 득표에 그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국민의힘도 2018년 이후 3년만에 부산광역시장 자리를 탈환했는데, 같은날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역시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승리하면서 제1야당 국민의힘은 2016년부터 5년동안 이어진 전국 단위 선거 4연패의 아픔을 딛고 간만에 승전고를 울렸다.

8. 제38-39대 부산광역시장

8.1. 2021년

2021년 4월 8일, 취임 이후 1호 결재로 소상공인 지원 증액 및 지역화폐인 동백전 발행 규모 증액에 서명했다.#

또한, 관사 입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11]했으며, 현재 거주 중인 엘시티를 처분하고 다른 집을 구한 뒤 출퇴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산광역시장 관사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논의될 전망이다.

4월 9일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재보궐선거에 당선된 오세훈과 박형준을 축하하는 트윗을 올렸는데, 이 때 부산시장 당선자를 여당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박영선이라고 적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해리스 전 대사는 하루 뒤인 4월 10일 다시 정정 트윗을 올리면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한편, 앞으로 박 시장이 출근할 때 시청 직원들의 의전을 거부하고 본인이 차 문을 직접 개폐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시청 직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외부행사로 4월 16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리는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에서 시구를 할 예정이다.#

4월 15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 조치에 대해 일본 정부에 유감을 표명하며 오염수 해양 방류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부산에 주재한 일본 총영사관에 전달했다.#

4월 20일 부산시 고위임명직 인사를 단행하였다. 박성훈 전 경제부시장을 경제특보에, 이성권 전 의원을 정무특보에 임명하고 김윤일 경제부시장 직무대행 겸 일자리경제실장을 1급 관리관으로 승진시켜 정식 경제부시장으로 임명하였다.

2021년 5월 2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생전 보유했던 미술품이 기부되자, 이건희 미술관을 부산에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그리고 취임 이후 합리적인 시정운영 의지를 밝히면서, 기존의 관행과 비효율을 깨는 합리·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보고서는 필요하지 않은 이상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출력하고, 불필요한 보고서와 서류 치장, 장식도 최대한 없애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부산시청의 모든 회의에서 펜과 메모지를 두는 '펜 접시'를 두지 말라고 지시했으며,[12] 사전 통보 없이 조용히 사무실을 돌며 시청 직원들와 일일이 인사하기도 했다. #

5월 7일 발표된 시도지사 지지율 조사에서 51.9%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이재명 경기지사, 김영록 전남지사,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4위를 차지하면서 비교적 무난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참고로 꼴지는 송철호 울산시장.#

5월 20일 자신이 교수로 있었던 동아대를 방문하여 부산의 미래 비전과 산학 협력 강화를 주제로 강연을 했고, 동아대학교 총동문회로부터 명예동문증과 축하패를 받았다. 6월부터 부산 내의 대학교들을 방문하여 청년 및 대학생들과 소통하는 오픈 캠퍼스 미팅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6월 8일 발표된 시도지사 지지율 조사에서는 51%의 지지율로 전체 3위, 시장 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6월 14일 15분 도시 부산 투어의 첫 번째 지역으로 사하구를 방문하여 다대소각장 부지를 호텔과 복합문화 공간으로 개발 하겠다고 밝혔다.

6월 22일 유명희 범정부 유치기획단장과 함께 1박 4일 일정으로 파리에 가서 2030년 월드 엑스포 후보 등록을 했다.#

6월 28일에는 부산시청에서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설명회를 열었다. 또 같은 날 서울의 문화시설 편중현상을 비판하며 삼성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 부산 북항재개발사업과 연계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7월 1일 부산광역시는 성명문을 발표해서 한진중공업 조기정상화를 지지하며 이와 동시에 조선업 인력 고용을 유지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7월 2일 부산시 공무원 과장급 인사 92명의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언론에서는 재선하지 못하더라도[13] 공무원의 직제를 손보고 주요사업을 위해 경험 많은 인사로 실무진을 교체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7월 7일에는 부산광역시 주요사업의 예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기획재정부를 방문했다.

7월 8일에는 매주 시청에서 개최하는 경제대책회의의 일환으로 부산 커피산업 육성 사업설명회를 열었는데 부산에다 커피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역경제에 연계시키는 데에 4년간 18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시민들은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시대에 갑자기 뜬금없이 커피 사업을 거론하면서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7월 12일에는 부산 롯데호텔에서 부산출향과학기술인협의회 정책간담회를 주관했다.

7월 14일 15분 도시 투어 두 번째 지역으로 부산 영도구를 방문하여 해양신산업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7월 18일에는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해서 사직 야구장의 개축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공사 기간에는 바로 옆에 위치한 아시아드주경기장을 야구장으로 임시 개조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는데, 시민들의 반응은 좋아하는 스포츠와 정치 성향에 따라 여러모로 갈리고 있다. 이후 10월 25일 롯데자이언츠와의 협상 끝에 최종적으로 사직야구장을 2028년 까지 개방형으로 재건축 하고 공사 가간 동안 아시아드주경기장을 대체구장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하면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신구장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7월 27일에는 15분 도시 투어 세 번째 지역으로 서구를 방문하여 구덕운동장 일대를 복합 스포츠 시설로 재개발 하는 한편 이 일대에 축구 전용 경기장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8월 18일 부산광역시청 국제관계대사로 최초의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주영국대사 출신의 박은하 전 대사를 임명하였다. 차관급의 주요국가 대사를 역임한만큼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10월 6일 자신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과 관련된 공소시효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4대강 사업 관련 민간인 사찰 의혹과 관련해 후보 시절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 되었다.[14] 이로서 당선 6개월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고, 1심 판결에 따라 2022년 지방선거 출마가 어려워 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15]

같은 날 저녁, 2년 만에 재개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시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개회 선언을 했다.

10월 21일 부산교통공사 사장에 한문희 전 한국철도공사 경영지원본부장을 부산도시공사 사장에 김용학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을 부산경제진흥원장에 진양현 전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을 지명하였다.

8.2. 2022년

2022년 1월 4일, KBS부산, MBC부산, KNN 등 부산지역 지상파 방송3사가 여론조사업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박형준 시장의 시정에 대한 긍정 평가는 51.3%, 부정 평가는 30.5%로 나타났다. 나이별로는 만18~29세, 50대, 60대 이상에서 긍정 평가 비율이, 40대는 부정 평가 비율이 더 높았는데 지난 재보궐선거 당시 득표율과 같은 경향을 보였다.#

1월 21일에는 재판 심리를 맡은 부산지법 형사6부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하여 국가정보원을 대상으로 현장 증거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장 조사에서는 검찰의 증거자료인 국정원 사찰 문건이 원본과 동일한지와 대작의 가능성 등이 없는지를 중점 확인한다.#

3월 11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4번째 공판에 출석하여 박 시장은 법정에서 "이 순간에도 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3월 31일, 취임 1주년을 맞이한 시민들과의 토크콘서트에 참석하여 "70~80%가 다시 태어나도 부산에서 살고싶다고 생각하도록 부산을 살기좋은 도시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는 6월 1일에 열릴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발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월 7일, 국민의힘 부산시장 공천 신청에 단독으로 신청하여 사실상 재선 공천이 확정됐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인이 58.3%의 득표로 압승했고 본인의 시정 평가도 좋은 만큼 무난한 재선이 유력하다. 결국 4월 11일 국민의힘 최고위에서 박 시장의 단수공천을 확정지었다.#

한편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부산시 경제부시장이었던 김윤일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지방선거 직전 임명되어 불가피하게 공석으로 비워둔 뒤 후임 부시장은 지방선거 이후 임용할 것으로 보인다.

5월 12일, 부산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며 본격 선거전에 돌입했다. 상대는 더불어민주당변성완 후보로 정해졌다.

6월 1일 열린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중 부산시장 선거에서 득표율 66.36%를 기록하며 보란 듯이 재선에 성공했는데, 오히려 문재인 정부 심판론 바람을 탔던 1년전 재보궐선거 때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해당 선거에서 역대 부산시장 선거 중 최고득표율(66.36%)을 올렸다. 이전까지 최고득표율은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허남식 전 시장이 올린 65.54%이다.

6월 9일, 김윤일 전 부시장의 차출로 공석이 된 경제부시장에 정무특보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이성권을 내정하였다.

한편 계속 재판 중이었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하여 7월 18일, 검찰에서는 시장직 상실에 해당하는 벌금 500만원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박 시장이 2009년 청와대 홍보기획관으로 재직할 무렵 이뤄진 국정원의 4대강 사찰을 몰랐을 리 없고 관련 내용을 보고 받았음에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허위로 말했다”면서 “허위 사실 공표는 표심을 왜곡하고 공명선거를 저해하는 중대범죄이며 상당한 기간이 지났으나 국가기관에 의한 민간인 사찰행위는 사안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8월 19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사법리스크를 털어내게 되었다.#

8.3. 민선 8기 지지율

8.3.1. 리얼미터

지선 이후 처음 실시된 7월 조사에선 9위로 52.6%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링크
2022년 8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2순위 오른 7위, 0.9%p 오른 53.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링크
9월 여론조사에선 한단계 더 오른 6위, 지지율은 1%p 오른 54.5%를 기록했다.[16]링크
10월 여론조사에선 7위, 0.9%p 하락한 53.6%의 지지율을 기록하였다.링크
11월 여론조사에선 7위, 0.7%p 하락한 52.9%의 지지율을 기록하였다.링크

[1] 학창 시절을 모두 서울에서 보낸 영향인지 부산 사투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2]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된 오세훈과는 대일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다. 한선교 아나운서가 2회, 박형준 시장이 3회, 오세훈 시장이 4회 졸업생이다.[3] 썰전 269회에서 말한 내용.[4] 나중에 오마이뉴스를 창립하는 오연호 기자 등을 지도하였다고 한다.[5] 무소속으로 나온 영향인지 당시 3위로 낙선한 민주통합당 허진호 후보와도 득표율이 겨우 5%밖에 차이나지 않았다.[6] 다만, 유시민이 박형준에게 본인도 그런 소리를 듣고 있다며 위로를 해 주기는 했다.[7] 방송 내용을 들어보면 초반부에 박형준이 19대 총선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무소속으로 출마한 시점은 19대가 맞다. 숫자를 착각한 듯.[8] 이날 김종인만 믿던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의 충격은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였다. 과반이라는데 갑자기 민주당 180석이 뜨고 있다.[9] 이언주가 부산이 고향이기는 하지만 각종 발언으로 논란이 쌓인데다 오랫동안 부산에서 활동을 해 온 박형준이나 김영춘과 달리 지역구가 경기도 광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바닥을 친 이후 고향 부산으로 내려와 21대 총선을 치르고 나서 눌러앉은 것이므로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거기에 이언주 예비후보의 본인 주소지는 여전히 부산이 아닌 경기도 성남시 이다.[10] 세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100%가 넘어가는데, 이는 이언주 후보에게 주어진 여성가산점 때문이다.[11] 아마 오거돈 전 시장과 박원순서울시장이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문제를 일으킨 것 때문에 이러한 사고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저에서 가족끼리만 사는 것과 관사에서 사는 것 중 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후자가 높다. 그리고 관사 자체가 꽤나 호화롭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썩 곱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부산광역시장 관사는 그 부지 전체 면적이 무려 5,500평으로, 지자체장 관사들 중에서도 크기로 유명하다. 물론 실제 거주 건물 자체가 5,500평이라는 뜻은 아니다. 한편 오세훈 서울특별시장도 박 전 시장이 비상 상황을 대비해 집무실에 설치한 침대를 부임 즉시 철거해 오해의 소지를 없앴으며, 호화 공관 대신 자양동 사저에서 출퇴근할 것을 선언했다.[12] 기존에는 회의 전에 의전 담당 공무원이 책상마다 펜 접시와 명패를 놓는 등 의전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13] 현재 박형준 시장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부울경이 최근 다시 보수 강세 지역으로 회귀한 것을 감안하면 내년 지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만,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자신과 관련된 여러가지 의혹들이 관건이다.[14] 나머지 의혹은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15] 국민의힘은 당헌에 따라 현직 지방단체장이 재판을 받게 될 경우 당원권을 정지하는데, 이 경우 내년 공천에서도 불리해 질 수 있다.[16] 홍준표 대구시장과 같은 지지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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