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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22:31:29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
Volodymyr Zelensky Government
{{{#!wiki style="margin: -16px -11px" 2019년 5월 20일 ~ 현직
출범 이전 이후
페트로 포로셴코 정부 미정 }}}
<colbgcolor=#00B140>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 제6대
여당 [1]
파일:20190520_haring_large.jpg
▲ 우크라이나 제6대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취임 선서

1. 개요2. 재임 기간
2.1. 2019년2.2. 2020년2.3. 2021년2.4. 2022년2.5. 2023년
2.5.1. 1월2.5.2. 2월2.5.3. 5월2.5.4. 6월2.5.5. 7월2.5.6. 8월2.5.7. 9월2.5.8. 11월2.5.9. 12월
2.6. 2024년
2.6.1. 2월2.6.2. 3월2.6.3. 5월2.6.4. 7월2.6.5. 8월2.6.6. 9월2.6.7. 10월2.6.8. 11월

1. 개요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되어서 만들어진 정부이다.
우크라이나 제6대 대통령 취임 선서

2. 재임 기간

2.1. 2019년

취임 후 곧바로 조기 총선을 실시해 의회를 장악하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의회 내 반대 세력의 반발이 워낙 커서 조기 총선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자 취임 직후 의회를 해산하고 내각 총사퇴를 요청했다. 그 후 바로 다음날 2019년 7월 21일에 조기 총선 실시를 명하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에 의원들은 위법이라고 반발하며 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게다가 대통령 사임을 촉구하는 청원운동과 이에 반대하는 청원운동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조지아 전 대통령이자 오데사 주지사였던 미헤일 사카슈빌리의 우크라이나 국적을 회복시켰다.#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가지며, 돈바스 전쟁에 대한 문제를 의논했다.# 다음으로 독일을 방문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문제 등을 논의하였다.# 전반적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지향에 맞춘 친서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 체르노빌 사고 현장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종의 원전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연구하고 경고하는 학술 연구 및 관광 지역으로 개발하겠다는 뜻이다.

7월 21일에 열린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인민의 종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지역별로 봐도 기본 40%가 넘는 상황이다.# 이로써 거대여당 덕분에 국정 동력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관련해서 최근 문제가 된 우크라이나 통화 스캔들의 장본인이기도 한다. 한동안 이에 대해 노코멘트로 유지하다가 공식적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는 아무 문제 없다고 해명했다.# 이 기자회견이 14시간 동안 진행되어 세계 최장 시간을 세웠다.#

내각에 임명한 사람들이 연예계 시절의 사람들과 관련 있다보니 논란이 있는 편이다.#

취임 당시에 우크라이나 내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러시아 시민 12명을 사면해 포로 교환을 하려고 하였다. #

2.2. 2020년

2020년 신년사[2]

2020년 1월에 올렉시 혼차루크(Олексій Гончарук) 총리의 뒷담화 파문이 일어난다.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문외한 수준이라고 비공개회의에서 뒷담화를 깠던 내용이 녹음되어 SNS에 공개되어 버렸다. 이 때문에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반려했다.#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 격추 사건이 격추 사고임을 알고도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 확보를 위해 발표를 늦추었는데 유연한 대처를 했다며 지지를 받았다.

2월. 러시아에 병합된 크림 반도에서 자국으로 이주하는 크림 타타르인 등의 주민들을 위한 소도시를 반도에 인접한 헤르손주(州)에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6월 9일 본인이 코로나-19에 걸려 병을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들의 공포를 달래고 싶다는 황당발언을 하였다.# 그런데 웃기게도 정확히 5개월 뒤에 확진판정을 받았고 위독한 상태로 입원까지 갔다가 결국 완치에 성공했다.

7월 26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나누었으며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의 논의 방안에 대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간의 전쟁이 터진 지 약 한달 쯤 된 시점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 간 P-18 레이더 공급 계약(우크라이나가 아제르바이잔한테 수출하는 것)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 조치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양국에 통보됐다고 한다. 이 조치는 전쟁이 시작된 지 약 한 달 정도 된 시점에 나왔다고 한다. 기사.

2.3. 2021년

4월에 국경 지대에 러시아군 배치가 늘어나고 있다며, 서방에 군사적 지원을 촉구했다.# 6월에는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최대한 빨리 받아주길 희망한다는 발언을 했다.#

2021년 7월 1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통화에서 중국-우크라이나의 양국간의 경제•비자 등에 관하여 협력방안을 논의 하였다.#

2021년 8월에는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 스웨덴의 스테판 뢰벤 총리 등 44개국 대표들을 초청해 크림반도 반환을 위해 '크림 플랫폼'이라는 반러 연대를 출범시켰다.#

2021년 10월 폭로된 판도라 페이퍼스에서,다른 국가원수 들과 함께 탈세 의혹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

크림 위기돈바스 전쟁 때 반인권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을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안 2689에 서명하는 데 시간을 끌어 유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해당 법안은 7년간의 진통 끝에 2021년 5월에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 젤렌스키 대통령은 15일 내로 서명을 하거나 거부해야 하는데, 그 6배인 3개월이 지난 8월까지 서명을 하지 않아서 유가족들이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3] 2021년 11월까지 젤렌스키는 해당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명하지 않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투자 등을 받았을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 12월에도 서명하지 않아서 인권단체가 촉구 서한을 올리기도 했다. #

2021년 12월 러시아가 17만 5천 대군을 동원해 2022년 초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자 서방과 미국에 도움을 요청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뉴욕타임즈에서 젤렌스키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다. 군과 정부, 정보부의 요직에 비전문가(코미디언, 배우, 연출가, 극작가들)인 젤렌스키 측근들이 잔뜩 있어서 국가대사를 망치고 있다는 요지다.#[4]

2.4. 2022년

2.4.1. 1월

1월 1일, 신년사에서 돈바스 전쟁을 끝내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밝혔다. #[5]

1월 말 미국,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 일본이 우크라이나 주재 외교관 일부와 그 가족을 철수하자, 젤렌스키는 1월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외국 사절의 철수가 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며 외교관 철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외교관들은 선장과 같으며, 그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마지막으로 떠나야 한다"라며 "우크라이나는 타이타닉호가 아니다"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서방에서 내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우리 경제에 해를 끼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보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것은 감사한다"라면서도 "러시아에 선제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접경 지대에 13만여 명의 러시아군이 집결된 상황에 대해서도 "작년 봄에 비슷한 규모의 병력이 배치됐을 때와 비교해 더 큰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했다. # #

2.4.2. 2월

2월 1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회의(MSC)에서 러시아의 최전방에서 맞서온 우크라이나의 희생, 유럽과 나토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하고 유럽 안보 구조 재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 전문 해석[6]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서방의 대응이 부족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즉각적인 제재를 촉구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인사들이 매일같이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는 것과 관련, 젤린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행위가 외국인 투자와 우크라이나 환율을 불안하게 하고 자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고 비판하였다.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나토) 가입에 대한 러시아의 반대와 관련해서는 나토 가입 의사를 재확인하면서 서방이 주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APTN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파트너들의 지지가 있든 없든 우리는 조국을 지킬 것"이라면서 "(무기·장비 등) 지원에 대해 감사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독촉하거나 구걸해야 하는 기부가 아님을 모두가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우크라이나가 머리를 조아려야 할 게 아니다"라면서 "우크라이나가 (크림 반도 합병 이후) 8년간 방패막이 역할을 해온 유럽과 국제 안보를 위한 여러분의 기여"라고 주장했다.
#
파일:젤렌스키.jpg
2월 22일 대국민 담화에서의 모습

2월 22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 대한 독립을 승인하자 긴급 안보회의를 소집했다. 동시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고,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와도 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월 22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행동은 우크라이나의 온전성과 주권에 대한 침해"라면서 "러시아가 어떻게 결정하든 우크라이나의 국경선은 현재에서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와의 국교 단절을 검토 중이라고도 밝혔고 예비군 징집령을 내렸다.


러시아가 침공을 개시하기 약 6시간 전인 2월 24일 자정, 직접 러시아 국민들을 향해 러시아어로 평화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는 푸틴에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침묵만이 돌아왔다고 밝힌 후 러시아의 침공은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인들은 평화를 원한다", "러시아 국민 여러분들이 평화를 호소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

2.4.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4.3.1. 2월
2월 24일 새벽 6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러시아의 미사일 폭격이 동시다발로 이뤄졌으며, 러시아 지상군은 벨라루스, 돈바스, 크림반도 등 우크라이나의 3면에서 국경을 넘었다.# 집권 이래 젤렌스키 개인을 넘어 21세기 우크라이나 최대의 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졸지에 젤렌스키는 전시 대통령이 되었다.

2월 24일 개전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를 떠나지 않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서방 정상들과 통화한 후 SNS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며 "조금 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미국은 이미 국제적인 지지를 결집하기 시작했습니다."고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오늘 여러분 각자에게 침착할 것을 당부합니다. 가능하면 집에 머물러주시길 부탁합니다."고 주문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군대도 제 역할을 잘하고 있습니다. 국방과 안보의 전 분야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겁 먹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우리는 강합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에 꼭 이길 것입니다."이라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떤 국민이든 조국을 방어하고자 한다면 싸울 수 있도록 무기 소유와 관련한 규제를 없애 무기를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와 국교 단절을 선언했다. 또한 러시아군에 대응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18~60세의 남성 출국이 금지되었다. 60세까지의 징병을 통과시키고, 곧이어 연령제한 없는 징병으로 변경하면서 총력전 상황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 #

개전 후 러시아의 치밀한 사이버 심리전과 프로파간다 전술이 펼쳐지며, 젤렌스키가 도주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고, 외신들이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2월 25일 새벽 0시 30분 젤렌스키는 키이우에서, 이후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국방색 군용 티셔츠를 입고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로 대국민 연설을 했다.[7]그는 "적은 나를 지목해서 제일의 타겟으로 설정했다. 나에 이어 나의 가족들이 두번째 타겟이다. 러시아는 정부 수반을 전복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를 정치적으로 파괴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수도에 남을 것이다. 나의 가족도 또한 우크라이나에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군대와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 말했다. # 하지만 서방 국가들이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우리는 홀로 남겨져서 국가를 방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움을 주고 있는 모든 국가에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도 "오늘 유럽의 지도자 27명에게 우크라이나가 나토(NATO)에 가입할 수 있는지 여부를 직접 물었다. 모두가 두려워 하며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누가 우리와 함께 싸울 수 있느냐. 내게 그런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며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동맹으로 데려갈 준비가 돼 있지 않다."라고 말하며 서방 국가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어느 때보다 동맹의 도움이 절실하며 대러 제재는 훨씬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러시아는 사람들을 죽이고, 평화로운 도시를 군사 표적으로 바꿔놓고 있다"면서 "이는 더러운 짓이며,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

2월 25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해외 대피 지원을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영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같은 내용을 확인해 주었다. 미 당국은 러시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최우선 제거 목표로 삼고 있다고 경고했고, 그가 러시아에 생포된다면 양보를 강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뜻을 전했다. 또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속성을 위해 젤렌스키가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도록 권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내게 필요한 것은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다."라면서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 # #
좋은 저녁입니다, 여러분.
교섭단체 대표(다비드 아라하미야)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미할 총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포돌랴크 고문(대통령 자문기구 소속)도 여기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군이 여기에 있고 시민들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수호자들에게 영광을! 우리의 영웅들에게 영광을!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2월 25일 고위 관료들과 수도 키이우에서 찍은 영상에서

2월 25일 정부, 군사 고위 관료들과 함께 키이우 한복판에 남아 우리 모두 여전히 키이우에 있으며, 우크라이나를 방어할 것이라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오늘 밤이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8]

러시아가 키이우를 공략하기 전, 러시아의 제안으로 러시아와 평화적 회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회담 장소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2월 26일 아침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병사들에게 항복을 명령하고 대피하고 있다는 가짜뉴스[9]를 반박하며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고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자신이 아직도 키이우에 남아 있음을 인증했다.

현재 전쟁이 났으며 패배 가능성이 꽤 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국인 우크라이나에 계속 남아 국민들을 독려한다는 점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아슈라프 가니와 대비되어 전 세계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10] 또 반-러시아 여론이 세계적으로 많다는 점, 젤렌스키 측에서 SNS 등으로 전시와[11] 그 전부터 꾸준히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는 점도 작용한다.

2월 28일, EU 가입신청서에 서명하고, TV 연설에서 “우리는 특별 절차를 통한 즉각적인 유럽연합 가입 승인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의 목표는 모든 유럽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며 특히 중요한 것은 공평한 토대 위에 함께 서는 것”이라며 “이것이 정당할 뿐 아니라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식 요청 이후 체코·폴란드·불가리아 등 동유럽 8개국은 공동 성명을 내어 우크라이나에 즉각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고 가입 논의를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2.4.3.2. 3월

3월 1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긴급히 열린 EU 특별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는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의 땅과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싶다. 저는 그것이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U는 우리와 함께 더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유럽의 동등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절박함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을 증명했고, 최소한 EU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라는 것을 증명해달라. 여러분이 우리를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증명해달라. 여러분이 정말로 유럽인이라는 것을 증명해달라. 그러면 삶은 죽음을 이길 것이며 빛은 어둠을 이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젤렌스키의 호소에 EU 국가의 외교관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3월 1일, 외신을 벙커로 초청하여 CNN, 로이터와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가 의미있는 협상을 하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폭격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소한 사람들에 대한 포격을 중단한 뒤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NATO 회원국에 러시아 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는 예방적 조치이며 동맹을 러시아와의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나토가 우크라이나의 회원 가입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도 "만약, 나토가 러시아가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킬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동 안전 보장 조치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만약 우크라이나가 함락된다면, 모든 (러시아) 군대는 나토 회원국 국경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들은 지금과 똑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매일 지원이 절박하다. 의논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공격에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버티는 게 아니라, 싸우고 있는 거다. 끝까지 싸울 것"이라면서 "이곳은 우리의 집이며, 우리는 우리의 땅과 가정,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켜내는, 세계를 위한 전쟁입니다.”라고 말했다. # #

3월 1일, 비디오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협상 도중인 전날 하르키우 민간인 거주 지역에 집중 포격을 가한 것을 규탄했다.# "하르키우에 대한 공격은 전쟁 범죄입니다. 이것은 러시아 연방의 국가 테러입니다. 러시아는 테러 국가이며 이것은 명백하고 공식적으로 선언되어야 합니다."하고 말했다. “이런 테러 행위는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의 저항을 부수려는 것”, “하르키우와 키이우가 현재 러시아의 가장 중요한 목표물”, “수도를 방어해 내는 것이 오늘 우크라이나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3월 3일, 벙커에서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 담판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협상할 수 있는 사안들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푸틴과 대화하길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푸틴과 대화할 의무가 있을 뿐이고 세계는 푸틴과 얘기해야만 한다.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18, 19살에 불과한 러시아 군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의 딸 또래임을 상기시키며 "군복을 입은 이들의 결정 때문에 이들은 군복을 입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자국 내 반전 여론이 확산할 것을 우려해 전사자 송환에도 나서지 않는다며 "이건 악몽이다. 그렇게 행동을 계획하는 이들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잠시 질문을 놓치자, 최근 하루에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는 “나도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며 두려움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인) 나는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또 “만약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없어진다면 다음에 표적이 되는 것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몰도바, 조지아, 폴란드”라면서 “러시아는 베를린 장벽에 도달할 때까지 세력을 계속 확장시킬 것”이라고 말하고, 우크라이나 위기는 유럽 전체의 위기라고 호소하며 군사적인 지원을 강화하도록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

3월 3일, 영국 더 타임스는 전쟁 발발 후 일주일 동안 최소 3차례나 암살 시도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푸틴이 크게 신임하는 친러 용병 와그너그룹 암살 시도도 피했다.

3월 5일, 미국 상하원 의원 300명과 화상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 상공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요청했고, 그것이 불가하다면, 전투기와 드론 등을 지원해달라고 호소했다. 또한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 등 대러 제재를 강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젤렌스키는 미국 의원들에게 자신이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며 전쟁 종식을 위해 군사 지원과 러시아 제재 등 더 많은 일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미국과 NATO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번 사태가 유럽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우크라이나인이 겪는 고통을 언급하면서 러시아 국민도 제재의 고통을 느낄 필요가 있다고 한 뒤 비자와 마스터카드 결제망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 연방 상하원 의원들과의 화상 통화에서 요청한 사항에 대한 미국의 대처는 즉각적이었다. 비자 카드와 마스터카드는 당일인 3월 5일 러시아에서의 영업 중단을 발표했다. 또 유럽을 방문 중인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우크라이나, 폴란드와 3자 외무회담을 갖고 폴란드 공군이 보유한 소련산 미그-29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 위한 스와프 협의가 시작했다고 보도되었고, 3월 8일 폴란드 외무부는 자국 공군이 보유한 미그-29 28대 전량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3월 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럽과 독자적으로 러시아산 모든 원유, 가스, 에너지 수입 중단을 발표했다.

3월 5일,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와 화상 통화를 갖고,# 우크라이나에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를 지원해준 데에 감사를 표명했다. 젤렌스키는 “우린 우주 프로젝트에 관해서도 얘기 나눴다”며 “하지만 이에 대해선 전쟁을 치른 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머스크를 우크라이나에 공식 초청하겠다고 말했다.


3월 7일, 러시아가 포격으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고 있는 현 상황을 의도적인 살인(Conscious Murder)이라고 규탄했다.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이렇게 죽었습니까?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우리 땅에서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을 응징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에게 총격을 가한, 우리 땅에 폭격을 가한, 미사일을 발사한, 그러한 명령을 하고 지시를 내린 모든 악한들을 찾아낼 것입니다. 당신들을 위한 고요한 땅은 무덤을 제외하면 지구상에 없을 것입니다."


3월 7일, 키이우 집무실에서 연설을 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침략자들에 맞선 우크라이나 남녀 모두가 영웅”이라고 우크라이나 시민에 격려를 보냈다. 그는 “우리는 모두 무기와 군대로, 말과 외교의 힘으로, 우리 각자의 정신력으로 전쟁에 참여 중”이라며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방어하고 있으며 우리의 땅, 우리의 도시, 우리의 우크라이나를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민간인 대피를 위해 '인도주의 통로 개설'을 합의했지만, 이를 어기고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 것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평화에 이를 때까지 계속 협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는 지금 여기 키이우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반코바 거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숨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의 애국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한 이곳 키이우에 남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군에 맞선 96명의 우크라이나군 장성들에 국가표창을 수여했다.#

3월 8일, 영국 하원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젤렌스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것을 언급한 후,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언급하며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그리고 지금 이 질문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분명 우리는 자유롭게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윈스턴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행한 명연설을 인용하여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의 땅을 지켜낼 것입니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안에서[12], 도시와 마을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들판에서 싸울 것입니다. 칼미우스 강과 드네프르 강의 강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문명 국가들인 당신들의 도움을 고대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여 영국 여야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용기 있는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있으며, 영국과 동맹국들이 러시아를 계속 압박하겠다고 말했다.


3월 13일, 직접 군 병원을 찾아 부상 군인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병원을 방문한 모습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수호자’들을 찾아 그들의 용기에 감사한다며 훈장을 수여하고, 쾌유를 기원했다”고 밝혔다. 또한 병사와 의료진에게 직접 훈장을 전달했다. 또 러시아군 제1의 표적임에도 불구하고 시내를 활보하며 군 병원을 직접 찾는 모습을 공개했다. 러시아측은 젤렌스키가 키이우에서 탈출했으며, 그의 영상은 키이우의 진짜 관저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찍은 것이라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3월 15일,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폴란드 부총리,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 야네스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 등 3개국 정상이 EU를 대표하여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하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EU의 지지와 폭넓은 지원책을 제시했다.# # 이들 3개국 정상이 키이우로 이동한 경로는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기차편을 통해 이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3월 15일, 캐나다 의회에서 화상 연설을 하였다. 그 동안 제공해준 지원에 깊은 감사를 표했고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촉구하였다.

2022년 3월 16일 젤렌스키는 미국 하원에서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13] 미국인이 좋아할 만한 말을 엄선하여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자유를 향한 투쟁이라는 역사를 공유하며 우크라이나가 당신을 위해 싸운다는 점을 철저히 피력하고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방공구역이 안된다면 방공장비를 지원해달라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인의 희생을 보여주기 위해 전쟁 전후를 대조시키는 프로파간다 영상을 틀고 마무리는 직접적 감정 호소를 위해 영어로 말했다. 기승전결이 완벽하고 어느 포인트를 노려야 감정을 터트릴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 연설로 미국 정치인만이 아니라 미국 국민들도 타겟으로 삼은 연설이었다. 정치인만 대상이었다면 외교수사 정치수사를 갖다 붙이면서 얼마든지 늘어질 수 있었는데 단어의 평이성, 공감폭, 길이, 영상 사용 등을 보면 집중도가 떨어지는 일반 대중이 대상으로 보이는 것이 분명하고, 딱 SNS에 영상 공유되기 좋은 시간 구성을 차용했다.

영국 의회 연설에서 윈스턴 처칠의 그 유명한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을 인용하여 공감대를 이끌어낸 것처럼, 이번에도 미국인에게 익숙하며 감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역사적 사실과 연설을 인용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 9.11 테러와 같은 일이 우리에게는 지난 3주간 매일 일어났다는 말을 통해 위기의식을 고취시키고 이 두 사건이 하늘로부터의 공격을 통해 일어난 사실을 인용해 방공 체계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마틴 루터 킹의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문구를 인용하면서 I have a need라고 우크라이나의 절박함을 피력하고, 윈스턴 처칠의 Finest Hour 연설에서 Darkest Hour라는 표현을 빌려와[14] 지금이 가장 암울한 순간이지만 극복할 수 있음을 피력하며, 그 다음 러시아의 전쟁 기계[15]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아이젠하워오버로드 작전 연설 또한 인용하며 러시아군을 몰아내겠다는 의지 또한 보였다. 이후 전쟁의 야욕으로부터 유럽국을 지킬 수 있는 공동체의 설립을 주장한 후, 어린 아이들까지 폭격하여 사살하는 러시아군의 만행[16]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튼 뒤 영어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직접 미국이 세계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하여 평화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부탁하며 마무리지었다.

즉, 젤렌스키는 연설을 듣는 목표 계층을 미국 국민과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명확히 설정하고 역사와 성향을 철저히 연구한 뒤 연설 구성을 한 것이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패전 이후 국제적 위상이 실추된 미국을 다시 국제 사회의 지도자로 적극 띄워주며 호소했으며, 그의 의도대로 연설이 끝나자 미국 국회의원들은 전원 기립해 박수를 보냈으며 미국인들의 반응도 감동을 받았다는 반응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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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토폴 시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젤렌스키 대통령
협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러시아군에게 납치되어 고문당했던 멜리토폴 시장이 포로 교환으로 석방되어 우크라이나로 귀환했는데, 고문을 꽤 심하게 당했는데도 끝까지 굴하지 않은 점을 높게 산 젤렌스키가 훈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3월 24일 ~ 28일까지 치러진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81%라는 압도적인 점이다. 이는 결선투표제 채택한 국가에서 보통 여론조사로 잘 나오지 않는 수치로 2위 포로셴코 5.9%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같은 시기 자당 인민의 종도 52.4%가 나왔다는 것에서 이미 일당 우위 국가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2.4.3.3. 4월
러시아군이 부차에서 철수한 뒤, 2022년 4월 4일 부차를 방문했다. 고문당하고 강간당해 잔인하게 훼손된 민간인 시체들이 도시 곳곳에 즐비한 모습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도 격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당 사태를 제노사이드, 집단 학살로 규정했으며 러시아군이 저지른 잔혹행위의 정도를 알게 되면서 러시아와의 협상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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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현장을 직접 둘러보러 왔던 젤렌스키의 굳은 표정이 찍혀 화제가 되었다. 안 그래도 전쟁이 시작된 이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초췌해졌는데, 부차 학살이 알려진 후 단 이틀만에 폭삭 나이를 먹은 모습을 보이면서[17] 문자 그대로 경악과 분노, 원통함이 뒤섞인 참담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차 학살의 현장이 정말 참혹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다.[18]

이로 인해 평정심을 많이 잃었는지, 과거 자국의 NATO 가입을 반대했던 앙겔라 메르켈 前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前 프랑스 대통령을 초청해 이 참상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이들에게 품은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간 서방 세계에 원조를 요청하면서 더 적극적인 원조를 요구하긴 했으나, 서방 세계에 대한 립서비스와 감사함을 늘 표현해왔기에 이러한 발언은 이번 사태가 젤렌스키에게 얼마나 큰 좌절감과 충격으로 다가왔는지를 알려준 셈이다.[19]

4월 5일에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에서 학살를 일으키고 안보를 위협하는 러시아가 안보리의 상임이사로 남아있는 것이 모순이라고 비판하며 UN에 대책을 마련하고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부차 학살의 참혹함을 직접 목격해서인지, 예전과는 달리 상당히 강경한 어조로 발언했다.

4월 6일에는 아일랜드 의회(상원, 하원 합석)에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인해 농사를 짓지 못하고 항구가 봉쇄되어 식량을 수출하지 못해서 발생하고 있는 식량 위기가 곧 세계의 식량 위기임을 강조하고[20], 우크라이나의 난민을 받아준 것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강경한 어조로 아직 완전한 반러 입장을 표하지 않은 아일랜드에 더 확고히 러시아를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줄 것을 강조했다. (#)

4월 9일에는 미국 CBS의 60 Minutes 프로그램과 인터뷰를 가졌다. 위의 사진이 찍혔을 때 느낀 감정은 학살 명령을 내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였고, 이후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한 것도 국민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사소한 국가간 사정 때문에 조치를 취하는 것에 주저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핵전쟁의 위협 때문에 서방 국가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요청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고, 그 대신 추가적인 공세 병기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EU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질문지를 건네받는 모습
4월 10일 우크라이나 EU 가입 절차가 시작되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직접 키이우를 방문해 EU 가입 절차에 쓰이는 '집행위원회 질문지'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건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사회 제도나 경제 구조 등이 EU의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지 수천개에 달하는 '질문지'에 답해야 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를 신속하게 답변을 완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질문지를 건네면서 평소처럼 여러 해가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긴밀히 협력한다면 몇 주 안에 결과를 볼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다른 국가에 경우 EU 가입을 진행하는데 최소 수년이 걸린 것을 생각해 보면 이번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절차는 유례없이 빠르다.

EU 회원국들이 강력히 반러시아 전선을 형성하는 만큼, 그리고 EU 집행위원장이 EU 가입에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한 만큼,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은 무난하게 승인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유럽 정상들이 직접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드러내고 있다. 10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직접 키이우를 방문하여 젤렌스키와 함께 키이우를 둘러보며 키이우 시민들과 대화의 하기도 하고, 기자회견 자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사자의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발언하며 120대의 장갑차와 새로운 대함 미사일 시스템을 포함한 새로운 군사지원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세계은행의 대출보증을 최대 1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등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다.# 체코와 폴란드,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정상들의 방문에 이어 9일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총리가 키이우를 방문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요구한대로 NATO 가입만 하지 않을 뿐, EU가입 신청을 시작으로 미국 및 각 유럽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시작하고 있으며, 이는 아직 러시아의 영향력을 받는 다른 국가들에게도 큰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부차 학살 이후 서방 세계의 우크라이나 지지와 지원이 끊이지 않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의 승리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긍정적으로 점쳐지고 있다.

한국시간 2022년 4월 11일 오후 5시,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이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연설 전문(한국어 보도)[21] 연설 원문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공식 영어 번역 국회방송 중계

우크라이나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전문 인력이 없는지[22] 우크라이나어가 모국어인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가 통역을 맡았으며, 빔프로젝터 화면 두개를 띄운 상태로 약 15분 간 이뤄졌다.

파일:우크라이나대통령_국회화상연설.png

비록 화상연설이라고는 하나 어느 정도 의례를 갖춘 환경에서 연설을 중계했던 세계 각국의 의회, 심지어는 대중 영화제와도 다소 비교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국회의원 참석수도 아주 가관이었는데,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만석이 될 정도로 의원 대다수가 참석할 정도였으나 우리나라는 좌석의 절반을 채 못 채웠으며 그마저도 단 40명 밖에 참석하지 않았고, 심지어 몇몇은 경청하기는 커녕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연설 이후 고려인마을이 지역구에 있는 이용빈 (광주광역시 광산갑) 민주당 의원이 고려인 난민 지원이 필요하다는 연설을 할 때 단체로 나가버리는 등 나라 망신을 제대로 일으켰다.#[23] 자세한 것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국회 연설 홀대 논란 참조

국회 및 한국 국민에 대한 인사 후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실태, 러시아군의 전장 약탈 행태[24]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정복으로 자신들의 독립을 무너트리고, 국가를 분열시키고, 유럽과 아시아로 이런 행태를 넓히고자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정복지에서 일삼는 경제기반 파괴와 민족말살 정책 같은 행위를 거론하며 마리우폴의 상황이 가장 끔찍하다고 하였다.
신사 숙녀 여러분!
한국의 여러분!
이러한 모습은 20세기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여러분은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당신의 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1950년대에 당신의 자유를 짓부수고자 한 자들이 공격한 때를 기억합니다.
그들은 부수고, 죽였습니다. 그들이 성공했다면 여러분의 정체성에 무엇을 남겼겠습니까? 끔찍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견뎌내었고, 세계는 여러분을 도왔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도움을 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스스로 전쟁을 멈출 수 없는 러시아에는 전쟁을 멈출 압력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석유를 비롯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제한시키고 러시아 은행을 국제금융체계에서 고립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한국이 갖고 있는 대체불가능한 무기로 장갑차, 대공 무기, 대전차화기, 대함 무기[25]를 언급했다. 모든 나라는 독립을 원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음을 강조하며 다시 한번 지원을 요청한 뒤 연설 말미에 포위당한 마리우폴의 상황을 취재한 영상을 공개하였다.[26]

한편 이스라엘이 중재자를 자처하며 러시아 제재에 가담하는 걸 거부하자 우크라이나는 이를 비판했는데,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에게 군사 지원을 요청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같은 처지에 놓인 팔레스타인은 나 몰라라 한다고 독설을 퍼부었으며, 남아공도 세계가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중적이라고 비판하고, 아일랜드 의원 리처드 보이드 바렛 역시 공감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다.

한편, 4월 22일에 올해의 '케네디 용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4월 23일에 독립 광장[27] 지하철 역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가디언의 원본 동영상)
2.4.3.4. 5월
5월 15일에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제127여단 227대대 소속 장병들이 하르키우 방면에서 러시아와의 국경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하자, 오랜만에 웃음을 지으며 장병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5월 18일에는 칸 영화제에서 화상 연설을 하였다. 찰리 채플린을 언급하면서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 독재자에 반대하고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영화계의 대세가 옮겨간 것에 비유하여, 현재의 영화계도 현실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소리와 영상을 담아줄 것을 요청했다.

5월 23일. 다보스포럼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에 대한 최대한의 제재를 촉구했다.#
2.4.3.5. 6월

6월 3일에 전쟁 발발 100일째를 맞이하며 2월 25일 밤에 찍었던 영상의 구도를 그대로 따와 각료들과 인증 동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을 낮에 촬영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에게 승산과 희망이 있음을 상징적으로 알리고 있다. 실제로 당시까지만 해도 수도 키이우까지 공격당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을 밀어낸 끝에 현재 전쟁은 돈바스에서 벌어지고 있다.

8일. 워렌 버핏의 아들 하워드 버핏을 만나 러시아와 교전 중인 자국의 재건 방안을 논의했다.#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지도자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27일. G7 정상회의에서 화상으로 참석했다.#
2.4.3.6. 7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를 기리는 상을 받았다.#

13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 개회식 연설에선 "인천과 광주에 있는 쇼핑몰에 대함 미사일이 떨어짐을 상상해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28] 그러면서 한국의 방역 성과를 테러리즘을 방역하는 것에 빗대며 물가상승, 전 세계의 독재자들이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그곳의 일이 결코 남의 일은 아니라고 연설했다.

26일, 부인과 함께 보그 잡지에 화보를 공개했고, 여론은 전 세계의 이목을 조금이라도 더 우크라이나에 두려는 의도로 보거나 전시에 이 무슨 기행이냐며 질색하는 등 양분되었다.
2.4.3.7. 8월
8월 17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2월 러시아 침공에 앞서 서방이 수차례 경고를 해줬는데도 이를 우크라이나 내부에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의견에 대해 “만약 알렸다면 경제 손실이 컸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런 발언을 두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지금껏 대체로 잠잠하던 젤렌스키 비판론이 고개를 들었다고 WP는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당시 인터뷰에서 미 당국자들이 러시아 침공 계획을 알려줬지만 이를 우크라이나 내부와 공유하지 않은 이유로 우크라이나 주민이 공포에 빠져 국외로 이탈한다거나, 경제가 붕괴하는 상황이 우려됐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만약 우리가 소통했다면,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70억달러(약 9조3000억원)를 잃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
2.4.3.8. 9월
우크라이나의 9월 공세는 젤렌스키가 군부에게 전략적인 큰 성과가 필요한 시기이며 공세 작전이 필요하다고 군부에게 건의하고 군부가 이에 동의하여 수립한 작전이었다고 한다.

9월 14일에는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수복된 이지움을 방문하여 일선 장병들의 전공을 치하했다. 연설 도중 폭음이 터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

9월 30일에는 바빈야르 유대인 학살 81주년 추모식에 참석하여 추모를 하고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러시아의 영토 병합선언에 맞서 철저 항전을 다짐하여, 푸틴과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NATO에 신속 가입신청서를 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든게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라며 차후 영토해방계획도 제시했다.#
2.4.3.9. 10월
10월 10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폭격에 "그들, 우리를 완전히 파괴하려 해"라고 했다.
2.4.3.10. 11월
2022 G20 발리 정상회의에 초청국 자격으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역대 우크라이나 대통령들 중 최초로 G20에 참석할 자격을 얻었다. 다만 전시인 만큼 화상 연설만 할 예정이라고 한다.

11월 14일에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헤르손 시를 방문했다. ###

11월 15일 우크라이나와 접한 폴란드 접경지에서 발생한 미사일 폭발 사건이 일어나자 곧바로 러시아 비난 성명을 냈으나, 이후 우크라이나의 S-300 대공미사일이 오발된 가능성이 높아지자 11월 16일 성명에서 자신의 위치를 감안하여 일단 공군의 보고를 믿어야 하지만, 조사 결과 우크라이나의 미사일이 오발된 것으로 밝혀지면 사죄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런 와중 G20회의에서 유럽의 방패로 얻어맞는 자국의 현실을 참가국들이 알아줬으면 했으나 참가국들은 의제로 올리긴 커녕 별 관심이 없는 것에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2.4.3.11. 12월
12월 6일 국군의 날을 맞아 전선 도시인 슬로뱐스크를 방문했다.# 다음 날에는 타임지에서 2022년 올해의 인물로 지명되는 영예를 얻었다.#

18일(한국시간 19일)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자신의 연설을 방송해달라고 요청했으나 FIFA가 거절했다.#(해당 연설)

12월 20일에는 슬로뱐스크에서 한 숟가락을 더 떠서 최전선 도시이자 격전의 현장인 바흐무트를 방문했다.## 그리고 바흐무트에서 일정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미국의 워싱턴 D.C로 향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의회에서 연설했다.# 바흐무트에서 가져온 깃발과 훈장 등을 전달하기도 했다.방미 뒷이야기

2.5. 2023년

2.5.1. 1월

2023년 신년사
2023년 신년사에서 그는 독립한 우크라이나의 투쟁과 단결을 강조하며 이번 년도는 세계가 지난 해 발견한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에게 작년의 보답이 있는 해가 되기를 기원했다.

바흐무트 전선이 전선 길이에 비해 부족한 전력으로 솔레다르가 점령되고 바흐무트 전선이 러시아군 우세로 점차 기우는 가운데 서방측이 바흐무트에서 병력을 후퇴시키고 다른 지역에 공세를 나설것을 권장했으나 12월에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으부터 지켜내겠다고 공언한 젤렌스키이고 푸틴 또한 어떻게든 승리를 하나라도 가져가야한다는 서로간의 자존심 때문에 양측간 피 흘리는 전투로 흘러가고 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흐무트 전선에 전차가 없어 어려우니 전차 공여를 호소했고, 이에 영국에선 챌린저 2, 유럽의 각국으로부터는 레오파르트 2 공여를 약속받았다.

1월 18일 세계경제포럼에서 화상 연설을 진행했다. (14분 40초부터)

뒤이어 F-16을 비롯한 전투기 공여를 호소하나,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단언컨데 전투기 지원은 없을 것이라고 거부했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미라지 전투기를 조건부로 지원할 용의가 있다며 지원 의지를 밝혔다.

1월 말이 되자 과거 자신의 측근들을 포함, 각계에서 비리들이 불거지자 서방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5.2. 2월

2월 9일, 프랑스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에게서 레종 도뇌르 그랑크루아 훈장을 수훈받았다.#

2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키이우를 방문하여 직접 만났다. 여기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5억 달러의 추가 군사원조를 약속했다.#,#

2.5.3. 5월

5월 19일 2023년 G7 히로시마 정상회의가 열리자 작년처럼 원격으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시행할 대공세를 한방 병력으로 확실하게 밀고 싶었는지 직접대면으로 변경#하고는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아랍 회의에서 참가한다.

5월 20일 프랑스 정부기를 타고 중국 영공을 거쳐 당일 오후 히로시마에 도착,[29] 히로시마 원폭 박물관을 방문해 살펴보고는 '히로시마 사진을 보십쇼, 바흐무트가 생각납니다' 라며# 일본 여론을 자극했다.

5월 21일 G7 참가국 정상들과 만남을 가지며 대러제제나 무기 지원들을 호소했다. 그 결과 미국과 유럽에게선 장갑차와 탄약 및 F-16 공여와 훈련 협조들을,# 한국으로부터 지뢰제거 차량과 보호장비를,# 일본으로부터 자위대에서 쓰는 비전투 트럭이나 장갑차 100여대 공여를 약속받았다.

5월 30일 한국 매체인 조선일보 기자와 비밀리에 단독 인터뷰를 했다.# 여기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들의 도움으로 6.25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두 세대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과 자유롭고 민주적인 나라를 이룩했기에 그 경험을 배우고 싶은 나라 중 하나라고 하며 재건 계획을 얘기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한국 정치권의 찬반 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민감한 질문에 잠시 침묵하고는 (정치와 무관한) 일반 국민들은 침략을 받은 입장을 잘 알기에 지지하리라 생각한다며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저와 우크라이나는 한국을 두고 저울질하지 않을 것이고[30] 한국과 함께 발전할 것이니 한국인들 역시 통일된 입장을 가져달라며 대공무기 지원요청을 했다.

2.5.4. 6월

우크라이나의 대선이 10개월 가량 남았지만, 전쟁이 계속됨으로 인해서 대선이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는 헌법상 계엄령 하에선 모든 선거가 금지되기 때문.

2.5.5. 7월

7월 12일 폐막한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나토 가입 초청장’을 받지 못할 뻔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의 가입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반쪽짜리 초청장’에 격분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트윗 메시지 때문이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현지시간)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가 “터무니없다”며 나토를 비난하자,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모여 있던 나토 회원국 정부 인사들은 발끈해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서 ‘초청’이란 단어를 빼는 방안까지 검토했으나 '전쟁 중인 국가 지도자는 국익을 위해 그런 발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이해심[31]과 문안 작업을 새로 하면 시간이 지체될 것'이라는 현실적 고려가 작용해 원안은 유지됐다고 WP는 전했다.

게다가 회의 당시 벤 월리스 영국 국방장관까지 “우리는 '아마존'이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가 영국을 자신들이 원하는 무기가 쌓여 있는 온라인 쇼핑몰 같이 매번 무기 청구서를 내미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30분간 말다툼을 하는 듯한 모습까지 목격됐다. 이렇게 상황이 심상찮음을 직감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일 정상회의장에서 회원국들에 감사를 표했고,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도 13일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영국과 미국 덕분에 전쟁 초기를 견딜 수 있었고 모든 이가 영국만큼 우리를 도왔다면 현재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수습한 것도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이 회담에서 아무 이득이 없던 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나토 평의회 창설, 나토 공식파트너, 나토 가입단계 단축, 방공시스템, 미사일, 전투기 지원, 독일 1조 규모 군사원조, F-16 훈련프로그램, 러시아 제재, 자산동결등의 이득을 얻어갔다.

7월 15일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키이우에 깜짝 방문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몇달 전 방한한 젤렌스카 영부인의 정식 초청에 이어 히로시마에서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한번 더 제의를 받고 폴란드 다음으로 방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민간-군사 물자 지원, 전후복구 지원, 우크라이나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방우 및 정상회담이 하필이면 2023년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로 실종 및 사상자 수십명이 속출할 때 이뤄진거라 이후 냉담해질 한국 여론을 의식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 도중 “지금 한국을 강타한 끔찍한 홍수와 관련해 나와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의 애도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7월 23일 트위터 게시글과 첨부된 영상에서 한국, 아제르바이잔, 스웨덴, 일본, 영연방, 미국, 독일 순으로 거론하며 각각 고맙다고 했는데, 위 NATO에서의 냉담한 교훈을 반영함과 동시에 한국 같은 지원에 미온적인 국가들부터 먼저 거론하여 호감을 끌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동시에 한국이 아제르바이잔보다 못하다는 해석도 낳았다.

2.5.6. 8월

8월 11일, 러시아와의 전면전 중임에도 병역비리가 만연하자 각 지역 병무청장들을 일괄 보직해임 시켰다. 그리고는 각각의 혐의들을 찾아내 기소중이다.

8월 20일부터 젤렌스키 부부는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를 차례대로 순방하고 있다. 스웨덴으로부턴 그리펜과 장갑차 관련 협의를, 네덜란드와 덴마크로부턴 그토록 바라던 F-16 공여를 약속받았고, 이에 젤렌스키는 두 국가의 보유량을 합한 총 42대를 받기로 했다며 운을 띄었으나,# 네덜란드 정부는 공동성명에서 공여 수량을 명시하지 않았고, 훈련용도 필요하다며 선을 그었다.#

2.5.7. 9월

9월 12일 유럽연합 가입조건을 충족시키고 민심을 얻기 위한 부패와의 전쟁 도중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에서 공직자 자산 신고를 한시적으로 비공개하기로 한 법안이 통과되자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9월 19일 유엔 연설에서 "우리 친구들 중 모스크바의 연극을 돕는 자들이 있다"며 에둘러 불쾌감을 드러냈고, 이에 농수산물 수입 및 통과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32] 폴란드 정부는 자국을 말하는 거냐며 반발해 두다 대통령도 후속 연설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가 죽는다는 위기감에 무의식적으로라도) 구하려는 사람까지 끌고 들어간다며 에둘러 불쾌감을 드러냈고, 마테우시 총리 역시 자국 국방 현대화도 시급하니 더 이상의 무기 지원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이 발언을 두고 여러 해석들이 난무하자, 아무리 밥맛이라도 코앞까지 밀리거나 러시아 괴뢰국이 되는 것보단 낫다며 최신식 무기만 금지하는 것으로 정정했다.

9월 22일 미 상원에서 의원들의 환대 속에 거듭된 도움을 호소한 뒤 공화당이 주류인 하원에서도 이와 같은 연설을 하려했으나 거부당한데 이어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서는 것도 거부당했다.[33] 심지어 메카시 하원의장으로부터는 전쟁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질문까지 받았다. 그나마 바이든 대통령은 반격에 필요한 에이브럼스 등이 곧 도착할 거라며 위로했다.#

2.5.8. 11월

11월 16일 AFP통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날 기자간담회에서 (이-팔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전선에 필요한 155mm 포탄 공급이 감소했고, 러시아가 저번 겨울 때처럼 전력 시설을 공격하기 위해 미사일을 비축하는 듯 하지만 저번 겨울 때보단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

11월 21일. 유로마이단 혁명 10주년 성명에서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의 완전한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5.9. 12월

2024년 신년사

12월 31일 신년사에서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군인들이 2년간에 전쟁속에서 더욱 단결되고 더 강해졌다면서 러시아를 향해 더욱 분발해 싸워 나가자고 촉구했다.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공격에 일주일도 못 버틸것이라 했지만 지금은 2024년 새해를 맞고 있다면서 그러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패자가 될 것인가, 승자가 될 것인가? 난민이 될 것인가, 시민으로 남을 것인가?"를 묻고 "우리 모두는 답을 알고 있다"며 항전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일을 하든, 싸우든 규율에 따라야 한다"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군사 지원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의식하는지 군수의 국내 생산을 언급하며 새해에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우리는 더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34]

2.6. 2024년

젤렌스키는 각국의 지원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미국의 지원이 공화당의 반대로 막히고, 대반격까지 실패하고 소모전 속에서 사상자가 늘어나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2.6.1. 2월

2월 8일,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었던 발레리 잘루즈니를 해임하고 북부전선을 담당하던 올렉산드르 시르스키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이에 관해 공식 언급은 없었으나, 그동안 잘루즈니가 전쟁 영웅으로 민군 사이에서 자신을 능가할 정도로 추앙되며 마찰도 잦아지자 이를 견제하려고 2023년 우크라이나 대반격의 실패를 빌미로 해임시켰다는 추측이 있다.

2.6.2. 3월

3월 7일, 잘루즈니를 주영대사로 임명했다. 좌천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본인이 직접 요구한 것이고, 젤렌스키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2.6.3. 5월

5월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에 이어# 미국#까지 자국산 무기로 러시아 본토 타격 허용을 얘기하는 가운데,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도 군사 교관이나 고문단 파견을 얘기하고, 미국 공화당원이자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의 설득으로 트럼프 승인 하에 우크라이나 지원이 재개되었지만 문제는 시기가 너무 늦었다는 점이다. 젤렌스키는 일단 감사함을 표시했지만 이걸로는 역전이 불확실하다.

게다가 젤렌스키는 원래 2024년 5월 20일 임기가 끝나지만 국가 위기에 따른 계엄 하라는 헌법상 예외조항을 이유로 대선을 치르지 않고 있고, 이에 서방 지원국들은 형식상으로라도 선거를 하라며[35] 압박하고 있으며, 5선에 성공해 독재를 이어가는 푸틴 역시 젤렌스키가 추진하는 평화협상 관련해 "젤렌스키의 임기는 이미 아득히 넘었기에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적반하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6.4. 7월

14일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그동안 자국을 지지해 오던 바이든의 연임 자질이 의심받는 가운데 자국우선 고립주의자인 트럼프의 인기가 암살 미수로 급상승하자 전쟁이 최악의 가능성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도록 2차 평화회담을 11월 대선 이전으로 앞당기며 1차 스위스 회담 때 참석을 반대했던 러시아 측에도 참석을 요청했다.#

2.6.5. 8월

8월 6일 지쳐가는 국내외 여론을 환기시키고 앞으로 있을 휴전 협상에서의 카드 확보, 동부 전선의 러시아 공세를 완화시킬 목적으로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주를 향해 실시된 쿠르스크 공세를 예의주시하며, 14일 군 수뇌부와의 자리에서 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할 수 있음을 말했다.#

8월 20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쿠르스크에서 단일 작전으로서는 가장 많은 러시아군 포로를 잡았다면서도 서방(미/영/프)이 '러시아 영토 타격 금지'라는 조건부로 공여한 장거리 무기 제한을 풀어주면 쿠르스크에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며 재차 제한을 풀어줄 것을 촉구했으나, 여전히 예측 밖의 확전 우려 때문에 묵묵부답이었다.#

2.6.6. 9월

9월 1일 젤렌스키 정부의 의도와 달리 러시아는 오히려 동부 전선에서의 공세를 강화해 도네츠크의 코스티안티니우카와 노보젤란네, 하르키우의 신키우카로 밀어닥치며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 병참 중추인 포크로우스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에 각계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를 막아낼 수 있었을 귀중한 숙련병과 군사 자산들을 엉뚱한 곳에 낭비했다는 비난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9월 18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25일 예정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와 유엔 총회에서 꺼내들 승리계획을 준비했음을 밝혔고, 이를 바이든에게도 제출하리라 약속까지 했다.#

9월 22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방미 직후 펜실베니아의 포탄 공장을 방문해 감사와 함께 추가 지원을 부탁했다.#

9월 26일 젤렌스키의 승리계획을 훑어본 미 관료들은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새롭거나 구체적이고 실효성과는 먼 계획들이다' 라며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

2.6.7. 10월

10월 17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라다 연설에서 나토 가입, 장거리 미사일 사거리 해제, 포괄적 비핵 전략 등을 목표로 한 승리계획을 재차 발표하면서 자국 영토를 내준 채 종전할 수 없음을 거듭 밝혔다.# 또, 벨기에 브뤼셀 EU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자국 내 전면 동원령을 꺼리는 러시아가 1만명 가량의 북한군을 끌어들였다고 했다.##

10월 30일 영상에선 미 의회를 통과한 610억 달러 지원 패키지의 10%만 받았고, 무기 공급 역시 저쪽 관료들이 줄 지 안줄 지 이거저거 검토하느라 느려터졌다며 불평했다.#


10월 31일 KBS는 북한군과 관련, 30일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현지 인터뷰를 요약해 보도했다. 아직 북한군과의 교전은 보고되지 않았으나 곧 일어날 것이며, 생포해도 러시아 포로처럼 대하되 한국 송환은 없다고 못박았다. 또 편집된 원문에선 한국 내 강한 군사지원 반대 여론에 대한 질문에는, 한국이 이번 전쟁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것은 우리만의 전쟁이 아니라면서 (유사시) 북한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을 경우 여러분과 함께할 강력한 동맹국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여러분은 북한과 러시아를 상대로 홀로 남을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만, 여러분의 나라가 이런 비극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며 협력 의사를 애둘러 표했다. 또한 11월 6일 공개된 후일담에 따르면 "한국의 여론은 어떤가요, 무기 지원은 절대 안 된다는 건가요?" 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찾으려는 모습도 보여줬다.

2.6.8. 11월

11월 1일 젤렌스키는 폴란드로부터 MiG-29를 충분히 인도받지 못했으며, 또한 폴란드에게 당신네 영토로 날아갈 수 있을 미사일이라도 요격해 주거나 리비우 주 스트리시 근처의 가스 저장소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다른 나토 동맹국들과 협의할 사항이라) 거부당했다며 폴란드를 포함한 나토 회원국들을 공개 비난했다.#

11월 6일 미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이 유력해지자 X계정에서 당선 축하와 함께 상호 이익이 될 협력 의사를 표했다.# 다만 9월 방미 때 첫 행보가 포탄 공장에, 민주당 인사들을 연이어 만난데다# 방미 끝자락인 27일 트럼프 타워에서 트럼프 당시 후보를 만났을 때도 '파괴된 볼모지, (회동에서 얻을것도) 없다' 등 자국 지원에 부정적 기류만 느끼고 왔기에# 형식적 인사치례와 희망을 담은 글에 가깝다.


[1]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법적으로 당적 보유가 금지되어 있어서 취임으로 자동 탈당이 되었기 때문에 대통령 취임후 자동 탈당이 되어서 취임전 대통령 선거때 소속이었던 인민의 종(정당)이 사실상 여당이다.[2] 한국어 번역[3] 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당시 러시아와 크림 반도 등과 관련된 협상을 앞두고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는 법안을 부담스러워 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민스크 협정 6조에서 도네츠크나 루간스크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사면을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하라고 기술하고 있는 점도 우크라이나의 유족들을 우려케했다.[4] 하지만 뉴욕타임즈가 깠던 이 비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침공했을 전문 정치가들과 달리 도망가지 않고 결사항전을 하고 있다. 국민의 일꾼에서처럼 친러 세력이나 올리가르히와 연결된 부패 정치가들을 제외하려고 보니 답이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만약 기존 정치가, 군인들을 그대로 두었으면 러시아의 침공 초기 또는 침공 직전에 친러 쿠데타에 의해 실각되었거나 심한 경우 이들과 동조하는 푸틴의 용병집단 바그너 그룹에 의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의 아민 대통령처럼 암살당했을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뉴욕타임즈키신저처럼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한반도처럼 서부의 우크라이나 민주정부와 동부의 러시아 괴뢰정권로 분할하는 것을 지지하는 쪽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존 정치꾼들을 몰아내고 비전문가로 채운 것이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5] 이때는 사실 루간스크 인민공화국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은 제재 및 인구 유출, 전투로 인한 인명 손실로 인해 고사 직전까지 내몰려 있었다. 특히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은 원래부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 비하면 낙후된 지역이라 자치권만 보장되면 우크라이나 내 자치 공화국으로 복귀할 의지가 있는 상태였다.[6] 다만 번역기를 돌렸으므로 번역 질은 좋지 않다.[7] 이날 이후 그는 현재까지 심지어 외국 순방때도 단 한번도 정장차림을 한 적이 없다. 참고로 22일 마지막으로 입은 정장은 종전날 다시 꺼내어 입을 것이라고.[8] 반면 여러 기성 정치인이나 기업의 CEO들은 일찌감치 우크라이나에서 도주한 상황이다.# 물론 기성 정치인 중에서도 정치적 라이벌인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나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수상(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야누코비치 정권이 무너지고 수립된 임시정부의 총리를 맡았다)같이 우크라이나에 남아 러시아와 싸운 사람도 많기에 모두를 겁쟁이로 일반화하는 건 곤란하다.[9]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러시아발로 추정되고 있다.[10] 특히 제대로 된 정규군이 아닌 반군집단에 불과한 탈레반에게 항복하고 도주한 가니와 달리, 젤렌스키는 세계 2위 군사강국인 러시아에 결연히 맞서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대조된다.[11] SNS로 현재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특히 저 "아직 키이우에 남아 있다"는 우크라이나와 세계 여론에 엄청난 효과를 만들었다는 평.[12] 처칠의 "We shall fight on the beaches" 연설에서 따온 것임을 이 부분으로 강조하고 있다.[13] 가디언의 원어 연설 및 자막 동영상, CNN의 통역사 통역 전문 및 각주, 한국어 번역 동영상(성인인증 필요)[14] 미 하원 통역: "darkest time"[15] 미 하원 통역: "military machine"[16] 미국인들은 아이들은 무조건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 심지어 어지간한 범죄자들도 애들은 안 건드린다. 당연히 이 또한 역지사지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다.[17] 전쟁 이후로도 한동안은 얼굴에 피로함이 가득 묻어나고, 면도를 못 해서 수염이 늘어난 걸 빼면 그럭저럭 실제 나이대에 맞는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차 학살이 알려지고 이틀 만에 언론에 찍힌 모습을 보면 최소 10년은 더 늙은 모습이다.[18] 젤렌스키가 부차 학살 현장에 도착해을 때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민들의 시신들이 처참하게 널부러져 있었다.[19] 혹은 그동안 묵혀오던 경멸감이 마침내 터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전쟁 직전과 초기에 젤렌스키는 여러 유럽 국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러시아와의 충돌을 두려워한 각 나라는 지원에 미지근한 태도를 일관했고, 심지어 주독일 우크라이나 대사는 "며칠 뒤에 (러시아의 괴뢰인) 새로운 우크라이나 정부가 설립되어서 새로운 대사가 올텐데 너랑 얘기해서 뭐하냐"라는 모욕까지 들었다. 서방 국가들의 지원 하나하나가 절실했던 젤렌스키는 이런 모욕을 듣고도 일단은 참고 다른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립서비스를 했지만, 부차 학살이 터지면서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모양.[20] BBC에서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말이 맞다면, 사람이 워낙 많이 죽은 대참사였다 보니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걸 젤렌스키가 꺼렸던 듯. 마침 우크라이나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21] 번역이 급하게 되어 뜻이 통하도록 의역을 위주로 번역되었다.[22] 한국에서 우크라이나어는 특수외국어로, 많은 사람이 배우는 언어가 아니다. 더구나 통역은 양쪽 언어를 단순히 할 줄 아는 수준이 아니라 매우 능통해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23] 지방선거 직전이라는 변명도 못하는 게 프랑스에서는 대선 직전인데도 좌석이 꽉꽉 찼다.[24] 정확히는 이 난장판 속에서도 각종 가전기기들을 탐하고, 노트북, 태블릿을 숨기겠다고 방탄조끼에서 방탄판을 꺼내고 이걸 대신 넣는 짓거리들을 '아시다시피(You know/Ви знаєте)'라고 언급하였다. 인터넷 매체로 이미 보았다고 생각했거나 소설 꺼삐딴 리에서도 묘사되었듯 해방 후 한반도 북부에 진군한 소련군들의 만행을 남한 사람들도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쓴 듯 보인다.[25] 실제로 이 연설이 있기 전 대공무기체계 지원 요청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을 거듭 밝히고 거절했다. 대신 인도적 지원은 이루어지고 있다. ## 젤렌스키 대통령 본인도 무기 공급에 대한 '평범한 규칙(usual rules/звичайні правила)'이 재고되어야 한다며 연설에서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인정했다.[26] 영상에는 아파트에 직사 사격을 가하는 러시아군 전차의 모습이나 공습에 희생당한 것으로 보이는 사망한 아동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겼으며, 영상이 종료된 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마무리 인사를 통역해야 할 쉐겔 교수가 작게 울먹이는 소리가 중계에 그대로 담겼다.[27] 유로마이단 혁명의 중심이 된 곳.[28] 다만 광주 시내에는 대형 쇼핑몰이 없으며, 또한 미사일이 떨어진 폴타바와 비슷한 지위의 전방이나 주요 인프라가 깔린 대도시들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후방인 광주를 집어 말했는지 논란이 있다. 그래도 광주 시내에는 백화점들이 이 지위를 대체하고 있고 일전에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가 서울대 연설을 할 때 광주를 자신들의 유로마이단이 일어났던 광장과도 같은 상징적 장소로 언급했기에 이를 염두에 두고 조언했을 수도 있다.[29] 이 때문에 G7 정상들은 마지막 21일에 하려던 북한 및 대중국 공동성명이 그의 방문으로 묻혀버릴까 우려, 20일에 발표했다.[30] 다만 22년 일본과 관련된 부분에서 우크라이나는 일본의 역사관과 항의를 적극 수용해 한국은 러시아와 같다는 망언을 리트윗하고 3국동맹을 언급한 영상에서도 일본을 뺀 전례들이 있기에 외교적 수사에 가깝다.[31] 덧붙여 그간 러시아의 패악질을 겪어온 나라들에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국력을 계속 소진시키는 상황이 만족스럽기 때문에 저 정도는 용인할 수 있다는 공감대도 있었다.[32] 전쟁으로 활로를 찾지 못한 우크라이나 농산물이 동유럽으로 유입돼 농산물 가격을 폭락시켰고, 이에 따른 농민들의 반발로 지난 5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5개국은 EU 차원에서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을 금지했다.[33] 이는 공화당 기조가 자국 우선주의인데다 민심도 전쟁 1년을 넘어가며 밑빠진 독에 물 붓는 허탈함에 상당히 부정적이게 됐기 때문.[34] 작년 신년사에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거나 밝은 미래 등을 줄곧 강조했지만 이번 해에는 더욱 현실적인 것을 강조했다.[35] 한국 역시 전쟁중인 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를 한 바 있고, 아프가니스탄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이던 2000년대와 2010년대 당시에도 대선을 치른 적이 있고, 스리랑카도 스리랑카 정부군과 타밀 반군 간 내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와 1990년대, 2000년대에도 타밀 반군의 활동 지역을 제외한 정부군 장악한 영토와 도시에서 대선과 총선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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