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wcolor=#ffd700> 大军师司马懿之 军师联盟 (2017) 대군사사마의지군사연맹 The Advisors Alliance | 大军师司马懿之 虎啸龙吟 (2017) 대군사사마의지호소용음 Growling Tiger, Roaring Dragon | |
<rowcolor=#ffd700> 사마의: 미완의 책사 | 사마의 2: 최후의 승자 | |
<colbgcolor=#000><colcolor=#fff> 국내등급 | 15세 이상 시청가 | |
방송 시간 | 월~ 금 / 밤 10~11시[1] | |
방송 기간 | 1부 2017년 6월 22일 ~ 2017년 7월 14일 2부 2017년 12월 21일 ~ 2018년 1월 12일 | |
방송 횟수 | 1부 42부작 2부 44부작 | |
채널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안후이위성TV, 장쑤위성TV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장르 | 중화권 사극 | |
연출 | 장융신 | |
극본 | 창장 | |
출연 | 우슈보, 류타오, 리천, 장쥔닝, 위허웨이 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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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하를 거머쥔 자, 누구인가?[2]
황제를 향한 충심은 칼날이 되고, 권력을 향한 집념은 광기가 되다.[3]
2017년에 삼국지를 배경으로 나온 사극.
2. 예고편
3. 특징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드라마가 아직 나오지 않고 홍보만 하고 있을 때의 원제는 군사연맹(军师联盟)이었다[4]. 이후 대군사사마의지군사연맹(大军师司马懿之军师联盟)으로 바뀌었고 이게 1부의 제목이 되었다. 2부의 제목은 대군사사마의지호소용음(大军师司马懿之虎啸龙吟). 우리말로 번역하면 '호랑이는 포효하며 용은 울부짖는다'는 위엄 쩌는 제목이 된다.[5]검열이 있는 중극 드라마 특성상 분량이 전부 사전제작 되었고, 매일매일 몇편 씩 방영하는 대륙의 기상으로 중국 내에서는 2017년 6월 22일 방영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7월 14일 1부 완결이 났다. 판권을 사 온 중화TV에서는 2017년 9월 4일부터 월화수목금 저녁 11시 마다 방영하여 10월 31일 종영되었다.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제목이 좀 바뀌었는데, 1부의 제목은 사마의 : 미완의 책사라는 묘한 제목이 되었고, 2부는 사마의2 : 최후의 승자라는 제목으로 12월 21일 방영이 예정되었다.[6] 한국에서는 2018년 4월 24일부터 방영해 같은 해 6월 22일에 종영했다. 나무위키의 해당 항목은 1부와 2부의 제목에 모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대군사 사마의를 취했다.
"……그는 한평생 4개의 시대[7]를 겪었고, 그가 시대에 끼친 영향도 시대가 그에게 끼친 영향도 아주 컸습니다. 사마의는 조조 밑에서 출사했고 그가 일흔 살이 넘어가면서 위 왕조는 쇠락하죠. 살아가는 동안 감정이나 이상, 포부에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전통적인 이미지에 도전한다기보다는 이 사람의 일생을 온전하게, 그리고 개연성 있게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애써서 미화하고 싶지도 않았고 깎아내리고 싶지도 않았어요. 혼란한 시대 속에서 실패한 사람이건 성공한 사람이건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고평가 혹은 저평가할 필요는 없죠." 작가의 인터뷰
삐끗하면 죽음이 기다리는 비정한 정치판을 묘사한 1부 포스터.
기존 삼국지물 기준으로 후반부인 사마의의 활동 시기를 그린다. 따라서 군담인 기존 삼국지와는 이질적으로 정치극의 성격이 더 강하다. 1부는 전쟁 및 전투의 비중이 아예 없는 수준. 대신 2부에서 제갈량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8]
이야기의 시작이 사마의의 차남인 사마소의 출생 즈음이다.(한데 내용을 보면 헌제가 조조를 토벌하기 위해 동승과 모의한 일명 "의대조 사건"이 작품의 시작점인데 이는 200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사마소는커녕 사마사도 태어나기 전이며 장춘화는 이때 2차 성징이 오기도 전일 확률이 높은 고작 12세의 나이였다.) 어쨌든 도원결의나 황건적의 난, 반동탁 연합군, 등의 군웅쟁패 시기는 이미 과거의 일이고 여포, 동탁 같은 인물들은 이미 죽은 상태다. 주로 조위 정권의 정치 암투를 그리는 관계로 유비는 잠깐 나오고 관우[9], 장비는 묘사되지 않으며 심지어 적벽대전의 묘사도 없이 내레이션 처리했다. 사실 주인공 사마의와는 크게 관련 없는 사건들이다. 인물의 비중 역시 차이가 크다. 유비, 손권 등의 인물들이 없는 대신, 대단히 생소한 인물들인 조위사우[10]를 그려내는가 하면, 적벽대전 이전부터 조진이 비중있게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계륵의 고사로 유명한 양수와 정의는 사마의의 호적수로 등장한다.[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밀도는 대단히 높은 편인데, 중심 전개에 필요없는 인물과 전투 묘사가 생략된 대신 조위 정권의 권력 다툼, 조비와 조식의 위 세자 다툼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정사 삼국지의 부족한 기록들 중 그나마 분량이 많은 위지에서 조비와 조식의 세자 다툼에 관련된 기록은 빠짐없이 풀어놓았다. 많은 이야기를 쳐내고 중심 스토리에 집중한만큼 이야기의 밀도가 높은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의 기록을 취하면서도 사건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연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테면 217년 조식이 사마문을 넘은 사건을 219년, 조비가 조식에게 술을 먹여 형주 공방전에 나서라는 조조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한 사건과 엮는 식이다.
이는 고증 오류라기보다는 이야기의 구조를 충실하게 하기 위한 작가의 드라마적 각색이라고 볼 수 있다. 기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오리지널 스토리 역시 설득력 있고 흥미로운 편이라 좋은 평가를 받는 듯. 애당초 삼국지라는 매체 자체가 삼국시대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각지의 전설과 민담, 삼국지연의라는 소설과 현대에 재생산된 이미지 등이 결합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해당 만화나 극 중에서의 사건의 진행과 등장인물들의 행보가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전제 하에 꼭 역사적 시간의 흐름대로 순서를 전개하지 않는다고 해서 흠이 되는 것이 아니다. 화봉요원 같은 경우만 해도 완전히 허구지만 그 자체의 개연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리고 그동안의 삼국지에서 잘 다루지 않았던 위나라 쪽 에피소드를 다루다 보니 정사 에피소드가 반영되는 경우가 꽤 있다. 다만 그런 경우에도 퓨전사극식으로 어레인지가 많이 들어가긴 했다.
이런 시간적 순서 변경 이외에, 사마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극의 비중을 위해 그가 간여한 것으로 각색하는 경우도 있다.[14] 구품관인법의 경우 진군이 구상한 것을 사마의와 함께 밤새 고쳤다는 것으로 묘사된다.[15] 그리고 이로 인해 사마의가 조진 등의 황실 종친과 갈등을 빚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조위의 정권이 조조를 비롯한 친족+군벌 집단과 순욱을 비롯한 영천의 호족 세력들간의 결합이라는 측면이 제대로 드러나는 것은 그동안 이 드라마가 유일했다. 삼국 중 최대의 영토를 가지고 가장 많은 인재를 보유함에 따라 자연스레 복잡해진 조위의 여러 신료들의 관계, 즉 조씨 친족과 명문 가문들, 그 가문들 사이에서도 입장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요소들이 드러나는 것 역시 특징.
그렇다고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정치사극도 아닌데, 의외로 트렌디 사극 같은 요소가 중간중간 양념처럼 섞여 있다. 특히 사마의의 집안 일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런 요소가 강하다. 소소하게 꽁트 같은 요소도 존재한다.
전반적으로 선악 이분법적인 인물묘사가 거의 없다.[16] 특히 가령 사마의의 경우 천하의 평정보다 혼란한 정치 하에서 가문의 무사 보존이 더 절실한 일이고, 이어 조비의 편에 선 후에는 권력 투쟁에서의 생존이 절실하게 되는 것이다.[17] 사마의의 정적인 양수 또한 역시 가문의 보전을 위해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2부 예고에 나온 제갈량 또한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한나라의 부활 뿐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남아있는 화목함 등을 살리기 위해서라고 얘기한다. 각각 인물들이 자신의 생존과 대의를 위해 움직일 때 인물들과 서로의 관계가 생생하게 묘사된다. 정치적 암투의 묘사에 있어 노골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암시하는 장면이 많은 탓에, 모든 사건과 관계를 일일이 말로 설명해서 풀어제끼는(...)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사극들에 비해 한번 더 음미하게 만드는 맛이 있다.
한편 엄청난 제작비가 동원된 만큼 영상이 매우 뛰어나다. 84부작 삼국지에 비해 일신된 신삼국보다도 훨씬 나아진 정도이다. 전체적인 화면의 색감과 영화적인 연출 또한 수려하다. 부분사전제작 드라마의 경우 초반의 힘있는 연출이 후반으로 갈수록 흐지부지해지는 경우가 잦은 데 비해, 완전 사전제작을 했기 때문인지 고퀄리티가 끝까지 이어진다.[18][19]
삼국지 관련 미디어믹스로서 본작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1800년 이야기에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그 이후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와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가 나오면서 이후 수없이 나왔던 삼국지 관련 창작물, 영상물의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21세기에 삼국지 소재 드라마나 만화 그리고 번역본에 이르기까지 제갈량 사후부터 사마의 사망까지의 역사를 제대로 다뤄주는 매체로 호평을 받고 있다.[20] 실제로 이것은 한중일 통틀어서도 최훈의 삼국전투기, 1994년 드라마, 진삼국무쌍 시리즈 정도에 불과한 실정[21]이라 더더욱 호평을 받고 있다.
그동안 삼국지는 경우에 따라 유비나 조조가 주인공이 되곤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천하를 놓고 다투는 영웅들의 웅대한 이야기'였다면, 본작에서는 여기에 정치 싸움, 궁중 암투, 여기에 얽히는 여러 세력들의 이해 관계 등을 다루면서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삼국지를 보는 재미를 새롭게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조위 내부의 파벌 항쟁, 구품관인법 등의 정책 관련 부분에 하후현 같은 인물을 조명하거나 등애는 촉을 상대한 군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민정 관료가로서의 모습, 여기에 여성관계까지 섞어 트렌디 사극의 요소도 일부 취하면서 84부작 삼국지, 신삼국 등과는 전혀 다른 시야에서 삼국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4. 다시보기
인터넷상에서 다시 보는 방법은 편당 결제를 지원하는 VOD 사이트가 몇 있지만, TVING의 정액제를 이용하는 편이 가장 싸게 먹힌다. 무엇보다 네이버 등의 다시보기 VOD에서는 720p 화질만을 지원하지만 티빙에서는 1080p 화질까지 지원하기 때문.5. 등장인물
자세한 내용은 대군사 사마의/등장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6. 평가
신선한 재해석과 압도적인 스케일의 연출로 중국 전토에 사마의붐을 일으킨 사극으로 그동안 등장했던 삼국지 관련 영상매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사마의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며, 제작비로 무려 67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사용된 대작이다.[22] 단순히 돈만 많이 들어가서 대작이 아니라, 준비기간은 5년, 각본 탈고만 4년이 걸렸다고 한다.7. 비판
7.1. 낮은 CG 수준
영상의 때깔도 좋고 연출도 훌륭한 편에 비해 묘하게 CG가 전체적으로 구리다. CG가 나오는 부분은 위화감이 확 들 정도.1부에서 장춘화가 위왕의 국새를 전달하기 위해 도주하는 추격씬의 장면에서는 뭔가 좀 깰 정도. 35회 사슴이 활을 맞는 장면도 티나게 조악하다. 심지어 조조 병사 직전의 신년연회에서 도열한 병사와 배경을 CG처리한 것에서도 무엇인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것이 명장면을 조금 바래게 하는 요소.
2부에서는 불타는 상방곡의 CG가 역대급으로 대차게 까였다. 대신 인물의 독백 부분에 넣는 CG는 몽환적으로 잘 만들었다는 반응. 특히 사마의가 왕릉의 삼족을 멸했던 장면에서 나온 배와 바다의 모습은 분위기 있게 잘 만들어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다.
7.2. 어색한 끊는 타이밍
무미랑전기나 신삼국 역시 그랬지만, 한꺼번에 다 찍어 놓은 다음 편집 단계에서야 회차를 나누는 중국 사전제작 드라마 답게 1편씩 드라마를 끊는 타이밍이 뭔가 어색하다. 또 드라마가 시작할 때 편집 문제+지난 장면 설명을 위해 지난 회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데, 너무 길다.문제는 그 타이밍조차 일정하지 않다. 15화에는 거의 6분 가량이 지난 편을 틀었다면, 44화에는 길어야 3, 4분 정도로만 보여줬다. 이 드라마가 은근 스토리 해석도 캐릭터 이해도 어려워서 쭉 보지 않으면 개연성이 팍 떨어질 정도로 오밀조밀한데, 덕분에 시청자들만 고생 진하게 한다.
아무래도 어디에서 끊고 잘라야 하는지 제작진도 좀 애매했던 듯하다. 중국 드라마는 광전총국의 검열이 있기에 드라마 전체를 다 찍고 드라마를 방송하는데, 그로 인해 중드는 늘 끊는 타이밍이 애매하다고 지적받곤 한다.
7.3. 늘어지는 스토리
초반 조조의 포스가 워낙에 강렬하고 기록이 그나마 많은 세자 다툼을 둘러싼 과감한 각색이 대단하지만, 조조가 사망하고 종친과 사대부의 대립이라는 큰 틀 속에 각색 수준도 아닌 창작된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간 중반 이후엔 힘이 빠지는 듯한 인상이라는 지적도 있다.한국사극 최후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정도전이 강렬한 포스의 악역 이인임 퇴장 이후에도 최영-정몽주-이방원 같은 기라성 같은 적대자들이 계속 연이어 등장하면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것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된다.
또한 1부가 42화인데 조조 죽고 거진 20여 화를 시트콤 사마씨 사람들(...)을 찍는 등, 일부러 이야기를 질질 끌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역사상 조조가 220년에 죽고 본작에선 24화때 죽었는데 문소황후가 죽고 1부가 완결된 시점이 221년이다. 1년의 기간 가지고 무려 18화나 낭비한 셈이 되는 것이다.[23][24][25]
다만 이후에 나온 악역이라는 조진이나 조홍은 조조보다 포스가 떨어지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조진, 조홍 같은 종친들은 정의, 양수의 포지션을 이어받았다고 봐야 한다. 조조의 포지션을 물려받는 건 황제가 된 조비이다. 절대 권력자가 된 조비가 조조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사마의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사마의의 운신이 한결 편해지면서 극 중 긴장감이 완화된 면이 있다.
원래 초반에 강렬한 인상을 가진 포스 넘치는 인물이 나오는 사극에서 이런 감상평이 나오는 것은 그 캐릭터가 일종의 진주인공화 되면서 원래 주인공의 포스가 빠지고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도 이전 캐릭터의 그 인상을 주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다. 한국의 사극으로 보면 궁예가 중반부에 퇴장한 후 긴장감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태조 왕건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대군사 사마의나 태조 왕건이나 주인공에게 진짜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사건(제갈량의 북벌 저지 및 고평릉 사변 / 공산 전투 및 고창 전투에서 이어지는 후삼국통일)은 극 후반부에 있지만, 오히려 카리스마있는 빌런이 중간에 퇴장하자 후반부가 초반보다 재미가 덜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최충헌 정권 수립 이후의 무인시대나 미실 이후의 선덕여왕도 바로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26]
신삼국은 유비-조조의 포스넘치는 라이벌 대립구도와 그를 계승한 제갈량-사마의 구도를 쭉 유지하면서 극의 흥미를 계속 유지시켰는데 이 드라마는 그런 인상적인 캐릭터인 조조 퇴장 이후 그런 요인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2부에서는 제갈량과 성장한 조예가 등장해 주인공 사마의의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충심이 약간 부족한 사마의 대신, 선제에 대한 충심으로 무장해 여러 일을 해치우는 제갈량은 라이벌 포지션임에도 불구, 사마의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로 각광받았다. 강적이지만, 스승이고, 친구까지. 각양각색으로 제갈량 대 사마의 구도를 조명했다. 조예는 조예대로 측근인 벽사와 함께 사마의를 괴롭히면서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단지 이 재미진 구도가 10화 중반에서 끝난 게 문제라면 문제.
그래도 조조ㅡ조비ㅡ조예 3대에 걸쳐 고생했는데, 또 정적의 아들인 애송이 조상에게 견제받느라 지치는 사마의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어딘가 아쉬운 모습을 남겼다.
조상 자체가 사마의에게 적대적인 감정은 있지만 독기가 없고 우유부단하며 하안, 정밀 등도 원래 연의 등에서부터 극중까지 큰 중량감이 없는데다 그 조상 일파에 그 사마가가 너무 무기력하게 당하다보니 야망을 숨긴 사마소, 조금은 망설이는 사마사, 조비의 첩자로 들어왔지만 진정한 사마가의 일원이 된 백령균 등 사마가 내부의 극심한 갈등만 바라고 2부 중반을 지루하게 끌었다. 특히 사건의 중심인물들이었던 조조, 제갈량, 조예와 사마의에 비해 사변 직전 조상ㅡ사마가 각 진영의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마소와 하안은 앞전 인물들과 달리 너무나도 2차원적이라 딱히 재밌지도 않았다.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으로 7화 이상 날려먹었다. 장춘화가 죽어 사마의가 와병을 핑계로 칼을 갈며 흑화를 시작하기까지 극의 전개는 답답함 일변도로 흘러갔다.
하지만 시청자가 느꼈던 피로감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인 듯, 극의 클라이막스인 고평릉 사변의 묘사는 단연 최고로 꼽힌다.[27] 직접적인 전투씬이나 화려한 대규모 액션은 없었으나[28] 사마의 역의 우슈보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뽐내며 충분히 괜찮게 담아내었다. 무기력하게 조상에 털리던 사마의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모든 걸 일사천리에 해치우는 모습은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 고평릉 사변은 압축하여 1화 안에 끝내고, 후속 조치인 조상의 처형에는 또 2화 이상을 썼다. 겸가가 조상에 매달려 다음화로 이야기를 끌었을 때는 동정이고 자시고 그냥 둘 다 베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이 꽤 있었다. 제작진이 절대적인 악역은 만들기 싫었는지 중반에 조상의 터무니없는 악행을 잔뜩 넣어 질질 끌어놓고는 겸가와 조린을 데려다 되도 않는 눈물샘 자극을 했다. 여태껏 흠 잡을 곳 없던 개연성도 조상과 겸가 때문에 금이 갔다. 고평릉 사변의 진행이야 전체적으로 흠 잡을 곳은 딱히 없었지만, 사이다 장면이어야 할 처형씬을 윤리적 차원인지 비극적으로 묘사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거치고 드디어 사마가의 갈등을 폭발시켰다. 조상과 왕릉의 삼족을 멸해 다 끝났다고 생각한 사마의를 백령균이 꾸짖고, 사마부는 사마의를 떠나고, 힘들게 기른 사마사와 사마소가 변하고. 너무 강렬한 장면의 연속이라 느꼈는지, 후길의 결혼식 장면을 동원해 텀을 줬지만 별로 재밌는 장면은 아니었다.
제작진이 정성을 쏟은 흔적이 역력하듯, 사마의의 생전 마지막 오금희 및 회상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사마의가 운명을 직감한 듯 흰 옷을 입고 후길의 시신 옆에서 오금희를 수련하는데, 음악마저도 1부와 2부에서 손꼽히는 명곡만 골랐다. 사마의의 주요 활약을 쭉 보여주는 이 장면은 그야말로 간지가 흘러 넘치고, 이 드라마를 쭉 봤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문제는 왜 "이 명장면들을 더 잡지 않았는가"다.
7.4. 과도한 음모론 차용
2부에서 나온 형주파 익주파 운운은 사서에서 관련 기록이 없이, 순전히 이중톈의 해석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문제는 이 이중톈이 삼국지 쪽으로 유명하긴 해도 역사학과 출신이 아닌지라 이 사람의 주장 역시도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이에 대한 비판과 반박 또한 끊기지 않고 있다.그 외에도 작중 정치와 관련된 대부분의 이슈는 음모론성 이벤트를 차용하거나, 지나치게 극적인 각색으로 등장인물간의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는 등, 작위적인 느낌을 많이 준다.
'사마의가 공성계를 간파했으나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해 제갈량이라는 외부의 적을 남겼다'[29], '사마의가 잠재적인 정적을 제거하려고 장합을 사지에 내몰았다' 등은 이 드라마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중국에서 널리 퍼져있던 음모론이다.
7.5. 주역의 묘사에 대해서
사극에서 보기 힘든 영화같은 색감과 귀를 즐겁게하는 OST나 각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 우슈보, 왕루오용, 위허웨이, 장쥔닝 같은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가 뒷받침 되어있어서 역사를 비튼 부분이나 어설픈 CG처리가 거슬리긴해도 만족하면서 보고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사마의를 비롯해 몇몇 주역의 미화, 인물들의 성품이나 역사내용들을 주연급들에게 유리하도록 각색이 많이 되어있다는 의견도 있다.[30] 아는 입장에서 중간 중간 몰입이 끊어질 정도의 각색이 눈에 자주 보인다는 것. 이에 대해선 의견이 둘로 갈린다.7.5.1. 비판
주인공 사마의 및 그 주변인물들, 특히 장춘화와 조비, 사마부를 너무 미화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서성에서 펼쳐진 공성계를 사마의가 속임수인 줄 알고도 안 들어간 것으로 바꿨다. 상방곡에서도 사마의는 안 낚였지만 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것으로 바꿨다. 여자옷도 까짓거 그냥 입고 더 심한 모욕과 조롱으로 되갚아준다. 여자 편력이 심했던 사마의가 여기서는 부인에게 쩔쩔 매는 사랑꾼으로 묘사된다. 사실 사마의는 장춘화에게 폭언[31]을 날린 적이 있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32] 심지어 장춘화는 강호무림의 무술 고수로 나오며, 오나라에 외교관으로 갈 적에 사마의와 동행하며 주태와 칼로 싸워 무승부를 내는 등, 진지하게 몰입할 만한 사극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다가도 여고수가 감초처럼 등장하는 무협영화 느낌을 받게 되어 몰입감이 깨지기도 한다.[33]대다수의 묘사가 이런 식이다. 주인공이니까 보정을 받는 게 문제될 건 없지만, 그게 좌절과 실패를 전혀 겪지 않는 주인공이 되어 있을 때에는 문제가 된다. 지는 싸움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패배하지 않으며, 이미 자신에게 닥쳐올 난관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에 좌절하지도 않는다. 띄워주는 것은 좋은데 밋밋한 캐릭터가 되어버렸다는 지적이다. 주인공이 너무 비현실적인 존재가 되어 있으면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몰입감이 떨어진다.
조비는 정사에서는 고작 4년 동안 제위에 앉아있으면서, 대외적으로는 오가 미쳐날뛰는 유비를 제압한 후 충분히 재정비할 시간까지 주는 뻘짓을 저지른 후에 오를 네 번 쳤다가 네 번 다 패배하거나 소득없이 군을 물렸다. 또한 아래로는 여러 신하를 상대로 인간성을 의심할 만한 짓을 저지르고 위로는 헌제를 밀어내고 한나라 황실의 문을 닫았지만, 본 드라마에서는 그런 허물이 대부분 삭제되거나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각색되었다. 이로 인해 정사에 빠삭한 시청자들은 당연히 미칠 듯한 괴리감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지만, '사마의의 서사를 위한 의도적인 인물 각색'의 관점으로 본다고 해도 조비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 것 치고는, 그리고 그러면서 동시에 사마의를 중용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것 치고는, 최소한 극중에서는 종친의 견제 때문에 사마의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병을 얻어 요절해버려서 그 위상이 실로 어정쩡하다. 이는 권력을 위해 냉혹하게 사람을 판단하고 취하거나 잘라내던 조조의 퇴장을 더 실감하게 해서 본 드라마가 조조 사망 이후 힘이 처지게 보이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찍이 사마의를 중용하고자 했던 조비를 정사 그대로 그려내면 본디 청빈한 서생으로 시작했다는 본 드라마상 사마의의 이미지에 금이 가서 어느 정도 미화는 불가피하다 해도, 사마의가 변해가듯이 조비도 변하게 할 수 있었을텐데 이 드라마에서 변하는 건 조비 본인이기라기보다는 주변 인물들의 관계고 조비는 끝까지 '본인은 성군이고 싶은데 주변이 안받쳐줘서' 불운한 군주로서 죽어갈 뿐이다. 조비의 제위기간이 고작 4년이니 그 짧은 기간 안에 무슨 변화상을 집어넣기는 무리라고 판단했다기에는, 그 4년 중 1년에 1부 42화중 18화가 할애되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늘어난 1년이라는 기간 동안에조차 조비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려는 시도 자체가 애초에 완전히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조 사후 스타트를 끊은 조비부터 이렇게 되어 버리고 조조 이후에 사마의의 위에서 군림하거나 사마의를 위협하는 적들은 그 누구도 조조 이상으로 사마의에게 영향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이것은 후반부 극 전개의 긴장감 상실로 이어진다.
호소용음은 사마의와 그의 가족애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기미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군사연맹에서부터 제작진이 추구한 가정과 가족애, 가정적 공간, 일상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기존 삼국지와 차별화를 두고 있는 요소였고 호소용음에서도 먹는 장면 하나만은 끊임없이 나온다. 또한 사마의에 대한 비판이 작품 내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마의의 가족애(사적인 가정 최우선시)와 공사가 충돌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아들이 일군을 말아먹은 전개에서마저 위군 상하가 눈물 좔좔 흘리며 사마소의 구원을 청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사마의 자신의 내적 갈등은 어떠한가? 하면 별로 갈등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 사마의는 아들이 상방곡에 갇히자 맨정신으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고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장형 이백대를 때리니까. 물론 아들을 곤죽 되도록 패니 마음이야 아프겠지만 죽이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사마의 본인도 알고 위나라 군사들도 알고 시청자들도 알고 있다. 별로 갈등거리가 아닌 것이다. 그냥 사마의만 끙끙 앓고 끝난다.
이 드라마의 사마의와 대척점을 이루는 제갈량은 물론이거니와, 조예, 조진, 장합 등 사마의와 갈등하는 그 누구도 사마의의 '가족애', '소인됨'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아비의 상을 치르지 않은 불효를 들먹여 어그로를 끌었으면 끌었지. 비판의 시선은 없다는 것이다. 제갈량마저 누누이 사마의를 칭찬하는데, 과연 이 드라마가 사마의 말년이라고 해서 사마의를 비판할까? 사마의가 비판적으로 그려진 장면이 있을까라는 시각에는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드라마에서 사마의는 지나치게 수세적이고 모든것을 알고 있고 선량한 사람으로 묘사되지만 반대로 사마의의 적들은 제갈량을 제외하면 이해할수 없을 정도로 사마의에게 비열하고 공격적이다.(양수와 대결하던 시기는 그나마 조비와 조식 간의 후계자 대결이라는 정당성이 부여되지만) 마치 사마의에게 복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사마의의 흑화라는 것도 사마의의 위선보단 선량한 사마의가 당하다 못해 폭발한 것처럼 묘사하는데 이는 연의나 정사에서의 사마의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사마의의 첩인 백부인이 이엄을 선동해 군량미를 안보는 것으로 나오는 장면, 장춘화가 남장을 하고 오나라로 사마의를 따라가 주태와 일기토를 하는 장면 등 어거지를 쓰며 여성 배우들의 분량을 늘려주는 식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사실 사마의가 관직을 피하다가 조조의 협박으로 208년이 되어서야 관직에 올랐는데 출사가 늦은것에 비해 요직을 담당하고 중요한 안건을 조조에게 직접 건의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용받았다. 더구나 태자중서자가 되어 조비와 차세대를 이끌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 실상 최상의 대우를 받은 셈. 조조 성격상 꺼리는 인물은 경계하는 선에서 안끝내고 아예 살려두질 않는데도 이정도 대우를 받았으니 이는 조조가 처음을 제외하고 사마의를 전혀 경계한 바가 없다는걸 드러내는 일이다. 조비, 조예 시기 내내 총애를 받았고 고평릉 이전에도 조상, 하안 등이 감히 건드릴수 없는 위치에까지 있었고 결국 주체적으로 칼을 들어 정적을 박살낸 인물이다.
7.5.2. 반론
호소용음을 보면, 사마의가 제갈량과 재주를 겨룰 수는 있으나 마음가짐에서는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인물임을 피력한다. 그는 조비 사후 그 어떠한 일에도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늘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제갈량의 공성계를 간파하며 제갈량에게 당신처럼 나 자신도 충의지사이며 국궁진췌 사이후이할 수 있다고 말하나 기어이 실천하지 못한다. 읍참마속을 흉내내지만 결국 자기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34] 출사표를 비웃는 것 역시 자신은 그처럼 할 수 없기 때문에 비웃는 것이다. 자신이 부도독일 때는 군권을 손에 넣기 위해 의도적인 태업을 하고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면피하면서 조진의 실패를 유도한다. 도독이 된 후에는 조예의 충신이자 자신의 군권을 위협하며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위나라의 숙장인 장합을 차도살인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깔끔하게 죽인 다음 위선의 눈물을 흘리며 달달하게 촉 방면 군권을 꽉 잡고 개인적인 사리사욕[35]을 채운다. 결국 사마의는 망탁조의의 일원에 불과한 것이며 제갈량의 진심어린 충의에 비할 수 없는 것이다.호소용음에서 빈 성의 제갈량 앞에서 사마의가 맞선 그 순간부터 자신과 가족과 가문을 위해서만 사는 사마의를 극딜하기로 작정했으며 군사연맹에서 그렇게 잘 묘사한 가족애를 일부러 깔아뭉개고 있다. 군사연맹에서는 난세에 휩쓸리는 사마의가 가족애라는 행동원리만으로 움직이는 것을 정당화하며 비추어줬지만, 호소용음에서는 이미 사마의는 난세의 주체며 이제는 그 행동원리만으로는 소인배일 뿐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것, 군사연맹에서도 양수의 말로 보여주듯 딱히 사마의의 삶의 방식만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군사연맹의 삶의 방식들이란 그저 호오의 차이었을 뿐이며, 그렇다면 인내해서 살아남는 것이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호소용음에서는 당위를 묻고, 사마의는 이에 답할 수 없다.
극 후반 사마의의 흑화는 주인공임에도 전혀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지 않고 있다. 사마의가 핏빛옷을 입고 2만여명을 죽이는 것부터 대의나 충심이 아니라 장춘화의 죽음 이후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격노에 차서 벌인 것이었다. 이 지경까지 갔는데 사마의를 무작정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할 수 있을까? 가족만을 지키려다 그 고됨이 극에 달해 스스로를 갉아먹고, 결국 난세를 멈추기 위해 잡은 칼로 난세를 진두지휘하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사마의 안에는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 사마의는 늘 열심히 일하고, 원칙을 지켰으나, 그것이 천하의 난세보다 점점 가족들만 챙기는 위선적인 보신주의로 변질되어 끝에는 숱한 사람들을 죽인다. 군사연맹 초기의 낭고지상 묘사나 호소용음 전체적 묘사를 보건데, 사마의의 가족애는 옳았으되, 사마의가 지니고 있던 욕망과 가족애를 지다는키는 과정에서 만난 자기 위선과 분노가 섞인 시너지로 미쳤다는 묘사다. 또한 1부가 장춘화부터 백령균, 사마사부터 사마륜, 그리고 하후휘를 비롯하여 후길과 소원 등 사마부라는 공간에 하나둘 들어와 가족으로 형성되었다면, 2부에는 사마의 본인의 권력투쟁과 외부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결국 사마부를 구성하는 인물들, (심지어 결과적으로 살아남는 사마소와 동생 사마부와도 갈등을 겪으며 사마의를 떠나는)[36] 대부분이 갈려나가는 구조속에서 사마의가 이를 지키고자 더욱 권력투쟁에 미쳐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가족애'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마가문은 특히 2부에 들어서서 확연하게 가족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데, 사마의뿐만 아니라 한때 곽조를 짝사랑했고 곽조의 최후를 지켜주지 못했던 사마부,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주지 못한 사마사, 형님의 아내를 남몰래 흠모했지만 결국 권력을 위해 자기 손으로 죽인 사마소, 소원을 짝사랑했으나 소원이 죽자 사마의에게 처음으로 대드는 후길, 서자로서 가족을 망쳐서라도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의 자리가 확고해지길 원하는 사마륜 등 1부가 알콩달콩한 가족시트콤이었다면 2부는 권력투쟁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가족을 잃어가며 사마의뿐만 아니라, 사마가문 구성원이 전반적으로 미쳐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한편으론 조조-조비-조예-조방으로 이어지는 조씨 황제들에게 벌벌 떨며 처세를 보여줬던 사마의가 점점 노년이 되어가고,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면서부터 천자 앞에서도조차 일종의 해탈 내지는 초연한 모습이 연출되는데, 이는 조씨와 사마씨간의 권력관계가 전복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치로서 현실 역사에서도 여전히 충신이냐 역신이냐로 논란이 많은 사마의의 모습을 두고 일방적인 프레임으로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한번쯤 시청자 스스로가 생각해볼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고 볼수 있다.
비판 부분에서의 '사마의가 정적들과 비교해 너무 선하도록 연출해 사마의의 학살을 정당화했다'도 사실과 어긋나있다. 물론 사마의를 미화한 장면이 있으나, 후길의 꾸짖음에서 보듯 사마의의 악행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어린아이 죽이고 눈 하나 깜짝 않던 모습까지 있다. 크케 봤을 때, 사마의의 선악은 역사와 다르지 않다.
2부 뿐이 아니라 1부에서조차도 사마의의 모습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다. 한실을 지키려는 충신들의 절개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작 한실의 운명에는 전혀 무관심한 모습들은[37] 사마의의 위선과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연출은 사마의의 뛰어난 처세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관점을 다르게 보면 충분히 기회주의적인 모습으로 보여질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드라마가 사마의를 무조건적으로 미화한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8. 여담
- 작 중에서는 상당히 많은 한시가 나온다. 주역이 되는 조조, 조비, 조식 부터가 위진남북조 문학을 대표하는 명시인들 중 하나였기에 특히 이들은 쉴새없이 시를 읆으며, 직접적으로 속내를 털어놓는 일이 적은 드라마 특성상 인물들의 심리나 현 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장치 중에 하나가 된다. 작중에 나오는 대부분의 시는 조조, 조비, 조식의 시긴 하지만, 그 외 다른 시들 역시 종종 등장하며, 어떤 경우는 드라마 작가가 여러 한시를 조합해서 이어 붙인 시를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 내에 나오는 시를 정리한 블로그 심지어 드라마 내에선 조비가 수차례 고조선의 시로 알려진 공무도하가를 읆으며 심경을 내비치는 장면도 있다. 공무도하가는 고조선의 시로 알려져 있지만 채옹(蔡邕)의 『금조(琴操)』에 그 기록이 남아있는 시이며 채옹은 학문, 그림, 문장, 음악, 서체 등 모든 영역에서 당대 가장 이름 있는 학자였기 때문에,[38] 조비가 공무도하가를 알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 손자병법이나 사서삼경 등 고전에 대한 인용 역시 상당하다. 워낙 빈번하게 등장하는 데다가 유명하지 않은 부분을 인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이쪽 관련 지식이 부족한 독자라면 눈치채기가 상당히 힘들다. 또한 역사적인 사실을 교묘하게 섞는 데다가, 사건 순서를 뒤집는다거나, 삼국지 내 동일 일화를 빌려다 창조해낸 경우도 많기에 삼국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한 경우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극 중 중요 사항들에 대해 주석을 달아 정리한 블로그. 신삼국에서도 그랬지만, 시청자가 어느 정도 삼국지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가정하고 제작을 하였기 때문이다.
- 구삼국 드라마 이후 제갈량 사후의 역사를 다뤄주고 있는 드라마이다. 실제로 신삼국 역시 제갈량 사후는 고평릉 사변 단 하나만 단편으로 보여주고 끝나지만, 대군사 사마의는 조상 일파와 사마의 일파의 권력투쟁, 사마의의 꾀병행각, 고평릉 사변과 사마의 일파의 권력장악 과정을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 물론 한계는 있어서 흥세 전투를 제대로 그려내지 않고 왜곡시키는 모습을 보였지만, 제갈량 사후 역사를 21세기 삼국지 소재 드라마에서 제대로 다뤄주는 것은 사실상 최초라고 볼 수 있다.
- 젊은 시절부터 고평릉까지의 사마의를 연기한 우슈보가 연기한 젊은 사마의가 잘 어울리기 때문에 배우도 젊은 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한국나이로 이 드라마가 방영된 2017년에 50세였다. 작중 위나라 주역 배우들의 나이로 따지면 다음과 같다. 우슈보(사마의)와 왕칭송(순욱)이 1968년생, 위허웨이(조조) 1971년생, 차오레이(곽가) 1977년생, 리천(조비)와 류타오(장춘화)가 1978년생, 장쥔닝(백령균)이 1982년생, 자이톈린(양수)와 탕이싱(문덕황후)이 1987년생이다. 사마의 역의 우슈보가 조조역의 위허웨이보다 나이가 많고,[39] 동년배 라이벌로 나왔던 양수 역의 자이톈린과는 거의 20살 차이로 큰삼촌과 조카뻘 쯤 된다. 신삼국에서 사마의 역을 맡았던 니다홍이 1960년생으로 신삼국이 방영된 2010년 당시 50세였다. 본작에서 조조를 맡은 위허웨이가 신삼국에서는 유비를 맡았음으로 신삼국에서도 사마의 역의 배우가 유비 역의 배우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러니가 일어났다는 것이다.[40]
- 여러모로 한국에서 2008년 방영됐던 사극 대왕세종과 접점이 많다.[41] 두 사극 모두 전쟁보다는 정쟁에 초점을 두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내며 각각의 인물의 개별적인 입장, 행동과 동기에 최대한 주목하고자 했다. 때로는 선문답같은 인물간의 대화, 함의를 읽어내야만 알 수 있는 대사의 치밀함까지 한 회라도 놓치면 흐름을 쫓아가기 어려운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본작에서 양수, 최염의 퇴장 그리고 대왕세종에서 하륜과 이숙번 등의 퇴장씬에 공을 많이 들인 점도 비슷하다. 특히 작중 인물의 의식이 서서히 변화되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부분이 비슷한데 본작의 최염과 대왕세종의 강상인이 그 예이다. 조식의 장인인 최염과 상왕 태종의 칼로 살아온 강상인은 각각 조비와 사마의, 세종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조조를 서신으로 비판한 전력이 있는 약점을 안고 있는데다가 잦은 외압을 시시각각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염은 서신을 위조하는 죄를 자처하며 죽음으로 조비와 사마의의 입지를 밝혔고 강상인 역시 태종과 세종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상왕 태종의 밀부를 세종에게 바치는 대역죄를 스스로 청하며 기꺼이 죽음을 택해 세종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이 외에 주인공 사마의와 세종을 견제하기 위해 감시역으로 활동했던 백령균과 김문 역시 초기에는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상관인 조비와 조말생에게 충실히 보고하는 역할을 했지만 차츰 주인공 사마의와 세종에 감화되어 내적갈등을 겪는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 드라마 내에 쓰인 OST는 하나하나 버릴게 없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그 배치가 작중 인물의 처지와 매우 잘 어울린다는 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양수가 참형을 앞두고 사마의와 독대할 때에 쓰인 OST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꾸준히 회자되는데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평생 누군가의 바둑알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곱씹으며 은인자중하지 못한 회한을 나타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42] 적장자임에도 그간 적대시하기만 하던 조조가 조비의 위풍의 난 진압의 엄정함을 칭찬하며 세자 책봉의 뜻과 함께 처음으로 조비에게 진심을 털어놓고 조비가 업성으로 떠난 후 홀로 남은 조조의 쓸쓸한 뒷모습, 이후 조비가 사마의에게 차기 지존임을 알리며 결연한 의지를 다질 때까지 쓰인 OST 또한 권력의 정상적 교체 및 새 시대의 서막을 알리기에 적절했다는 평이다.[43] 특히나 후출사표 씬에서 제갈량이 젊은 상태에서 '무엇이 옳고 그르옵니까? 폐하 신이 잘못 한 것이옵니까?' 하며 회한에 잠겨 울먹이기까지 하던 젊은 제갈량이 유비의 초상화에 절을 한 직후에 노년의 모습으로 전환되며 그 유명한 국궁진췌 사이후이를 말하는 장면에서 그 비장미와 영상미가 절정에 달해 촉빠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 개그가 상당히 많다. 1부에서는 장춘화에게 시달리는 공처가 사마의의 모습이라던지, 2부에서는 제갈량과 사마의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사마의가 '승상, 서성에서 헤어진 이후 별고 없으셨소?'라고 대놓고 소리지른다던가, 보다 못한 손례가 전령병을 시키라고 하고, 후길에게 의자를 가져오게 해 맨 앞에 떡하니 앉은 다음 '부채(를 달라)'라고 하자, 전령병들이 이를 오해하고 '부채, 부채!'라고 소리지른다. 그러자 사마의가 '부채를 달라고!'라고 하니까 또 다시 공명한테 '대도독이 부채를 달라신다!'라고 하는 코믹을 선사한다. 공명이 '하나뿐이다'라고 전해 맞받아치자, 사마의가 하인 후길을 불렀는데, 전령병들이 이를 오해하고 '대도독이 승상이 조급하다 하셨다'라고 외쳐버린다.(후길의 이름은 한자로 后吉(hòují)인데, 전령병들이 猴急(조급하다)로 잘못 알아들은 셈) 공명이 '중달이 나를 도와 한실을 부흥한다면 이 부채를 선물로 주겠다'고 외치게 하자, 사마의가 혼자 '나도 있거든?'한 거를 또 '대도독도 있으시다!'로 맞받아쳐 버린다.(그리고 이 부채는 나중에 사마의가 공명과 바둑을 두는 꿈에서 서로 바꿔 들고 있다.) 또 사마의가 병권을 조진에게 내놓는 대가로 곽조를 구하고자 같이 술자리를 한 후 진군과 바로 조예를 보러 갔는데, 진군이 '자네 술 마셨나?'라고 하자, 사마의가 그렇다고 했더니 진군이 발을 비벼서 사마의와 거리두기를 시전한다. 그러다가 조진이 사마의 편을 들고 나서자 '잘 마셨어'라고 칭찬하기도 한다.
- 의대조 사건 부터 시작하는 조위의 시대가 주역으로 묘사되면서도 특이하게도 조조군의 책사 중 상당수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삼국지에서 조조 관련 미디어라면 나와야 할 가후가 등장하지 않고, 유엽또한 조조-조비-조예 3대를 섬겼으나 나오지 않는다. 정욱역시도 공기에 가까운 단역이고, 위왕 책봉때 환계,동소,온회등의 모습도 안 보인다.
- 일본은 더빙으로 방영되는 듯하다.
[1] 1부는 11시, 2부는 10시. 단 2부는 본방 기준이고 9시에는 지난 편 재방송을, 11시에는 바로 전 시간에 방송한 편을 틀어줬다.[2] 1부 국내 슬로건[3] 2부 국내 슬로건[4] 방영 이후에도 영문명은 대개 "Advisors Alliance"로 통한다.[5] 연의 원작에서는 복룡(와룡)과 봉추로 제갈량, 방통이 유명했으나, 후세에서는 여기에 유린(어린 기린이라는 뜻으로, 강유의 별명이 기린아였다는데서 기원한다.)과 총호(늙은 호랑이)를 추가하여 4S 라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호소용음이라는 부제는 사마의 vs. 제갈량의 대결 구도를 의미한다.[6] 제목 때문에 생긴 문제라면, '대군사 사마의', '사마의', '군사연맹'과 '호소용음', '미완의 책사'와 '최후의 승자'까지. 제목이 너무 많아졌다. 각 제목끼리의 접점이 적어 같은 드라마인지 종종 헷갈리는 지라, 왜 별도의 제목을 붙인건지 이해가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다. 다만 '귀취등지정절고성(鬼吹燈之精絕古城)'도 중화TV가 방영할 때는 '귀취등 : 무덤의 비밀'로 현지화 시킨 걸로 볼 때, 적당적당히 의역해서 시청자들이 알기 쉽도록 하려는 경향이 자리잡은 듯 하다. 다만 본 제목의 위엄을 살리지 못한 것도 까임 요소. 호불호 징하게 갈리긴 한다.[7] 사마의가 모신 4명의 군주들, 즉 조조, 조비, 조예, 조방을 뜻한다.[8] 다만 제갈량과의 대결에서도 엄연히 정치극에서의 관점으로 전쟁을 그린 느낌이 강하다.[9] 다만 관우는 번성전투 당시 사마의 최고의 계략 중 하나인 손유동맹 갈라놓기 부분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며 사마의의 명성을 드높이는 역할을 한다. 관우/기타 창작물 참조.[10] 사마의를 제외하곤 이들 중 그나마 비중이 높은 인물은 진군이 유일한 편.[11] 하후돈 같은 위나라의 주요 무장들조차도 거의 나오지 않다가, 20화가 넘은 후에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보통의 삼국지에서 '무장 하후돈'이 강조된다고 하면, 이 드라마에서는 '이룰거 다 이루고 위치가 군부의 탑에 이르고 황실 종친의 큰 어른이기도 한 원로'로서 나오는 식.[12] 이때는 마초랑 싸우기는 커녕 마등이 수도로 이주할 때 즈음의 일이다.[13] 애시당초 이 드라마는 딱히 정통사극을 표방한 적이 없다. 감독 왈, "구판 <삼국연의>와 신판 <삼국>이 이미 있는데도 <군사연맹>을 제작하는 것은 아주 부담이 큰 일이었고, 돌파구가 절실했다. 따스하게 그리고, 역사적 색채는 가볍게 하자, 처음 제작팀의 창작 의도는 그것이었다."[14] 물론 실제로도 사마의는 조비의 오른팔이기는 하였으나, 조비의 킹메이커였던 오질이 드라마에서는 일찍 리타이어되는 대신 그 역할을 사마의가 맡았다.[15] 물론 구품관인법은 진군이 구상하고 만들었지만, 구품관인법을 보다 심화해서 시행하는 주대중정(州大中正)을 사마의가 만든 만큼 사마의 역시 이 법에 큰 관련이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16] 다만 1부 후반에 들어 비교적 퀄리티가 하락했다고 평을 받는 사마의 vs 종친들의 대립 구도는 선악 이분법적 성격이 전반부에 비해 강화되었다. 특히 조홍은 인간말종 수준. 이 밖에도 사마의의 세 아들 중 사마소와 사마륜 또한 2부 후반으로 갈 수록 냉혹함이 강조되고 있다. 정점을 찍은 시점이 사마소는 흥세 전투에서 자신을 지켜준 결사대를 입막음시키기 위해 죽였을 때, 사마륜은 형수 하후휘를 돌로 머리를 쳐서 기절시켜 납치한 뒤, 사마소가 하후휘를 죽일 때 방치한 것과 죽은 하후휘의 시체에 사마사의 옥패를 쥐어줘 사마사에게 누명을 씌웠을 때.[17] 다만 처음에는 출사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했지만, 조비를 모시기로 결정한 다음부터는 확실히 천하에 대한 뜻을 일신의 보존보다 앞에 두고 있다.[18] 고퀄리티의 이유 중 하나로 세밀한 조명 세팅이 있다. 조비 역의 이신 인터뷰 참조. 키워드를 '화면'으로 검색하면 쉽게 해당 내용을 볼 수 있다.[19] 인터뷰 영상은 사미독숙(四味毒叔)이라는 토크쇼 내용. 이 쇼에는 위허웨이(조조 역), 자이톈린(양수 역), 왕칭송(순욱 역) 등도 출연했으며, 프로그램 이름답게 4명의 독한 아저씨들의 심도있는 인터뷰/이야기 등이 주 콘텐츠인데, 이 중 탄페이는 2016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장강도《长江图》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의 거물이기도. 탄페이는 위허웨이, 왕칭송 등과 인터뷰를 했다.[20] 물론 흥세 전투과 같이 왜곡되거나 축소된 것도 있지만, 이는 시간과 돈 그리고 배우들의 안전 문제 때문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흥세 전투를 제대로 다루려면 사천성 지방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촬영을 해야 한다. 실제로 사천성의 산악지대는 지금도 도로가 제대로 깔려있지 않고 잔도에 의존하는 곳이 많을 정도로 험준한 지형을 자랑하고 있다.[21] 다만 구삼국도 전체 84부 중 추풍오장원이 77부이니, 총 120부작에 추풍오장원이 103부인 원작 삼국지연의보다 더 후반부에 중점을 두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진삼국무쌍 시리즈 같은 경우 6편 이후부터 촉의 멸망까지가 꽤 괜찮은 비중으로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게임 장르의 특징상 전투 위주이며, 내용이 사마씨를 소재로 용비어천가를 써제낀 수준이라 문제가 많다. 사마씨의 정권 탈취는 정당하고 올바른 일, 원래는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처럼 그려지며, 그 과정에서 제갈량이라든가 강유, 조모 등 사마씨에 맞섰던 인물들은 어떻게 하면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 있을지 궁리한 흔적이 역력하고 사마사, 사마소 형제보다 아래로 볼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사마사의 열렬한 추종자가 된 제갈탄 같은 경우도 있다.[22] 2018년 기준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가 소모된 드라마는 태왕사신기인데, 430억 정도였다. 다만 태왕사신기가 1화 당 1시간 씩 24부작이고 이 드라마는 1부+2부 합쳐서 1화 당 40분 씩 86화라는걸 생각하면 태왕사신기 쪽이 훨씬 돈이 많이 들어갔다.[23] 참고로 조조가 죽은 게 23화, 조비가 선양을 받은 게 28화이다. 두 사건은 실제로도 9개월 정도의 시간차밖에 없는데다가 대부분의 창작물에서는 거의 바로 이어서 (혹은 조비 VS 조창&조식과의 갈등을 중간에 끼고 바로 이어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24] 양수가 번성 전투까지 살아있거나 조조와 마초의 싸움이 적벽대전 이전에 있었다던가 하는 각색들이 있었으므로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사마의가 하는 말들이나 작중 전개를 보면 오히려 1년 보다 기간이 더 길었을 가능성이 높다.[25] 사실 이건 일부러 조조-조비-조예-조방의 치세의 비중을 4등분해 다루려고 했던 영향이 크다. 실제 역사에서 드라마가 커버하는 시간대를 생각해보면 조조 치세 20년, 조비 치세 6년, 조예 치세 13년, 조방 치세 12년으로 합쳐서 51년인데 조예나 조방의 경우 딱 4등분하면 실제 역사랑 분량이 대충 맞지만 조조랑 조비는 기간 차이가 너무 난다. 따라서 조조의 비중을 1부의 4분의 3 정도로 늘리고 조비의 비중을 1부의 4분의 1 정도로 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26] 무인시대의 경우 최충수나 박진재, 희종 등의 상대역이 계속 나오기는 했으나, 이전까지의 경쟁자인 이의민에 비해서는 극적 긴장도를 끌어올릴 만한 요소가 부족했다. 선덕여왕의 경우 미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던 비담이 악역으로 돌아서면서 최소한의 긴장감은 지켜냈다.[27] 다만 실망을 표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손쉽게 거사가 진행될 줄 알았으면, 왜 그동안 질질 끌었냐'는 비판이 대표적.[28] 사실 실제 역사에서 전투 자체가 없었기에 대규모 액션이 있을 여지가 별로 없다.[29] 다만 애초에 공성계가 연의의 창작이며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다 보니(그래서 작중 장합이 거세게 반발한다.) 사마의에게 뒷꿍꿍이가 있어서 라는 해석을 덧붙이는 게 그런 선택에 좀 더 합리성을 부여해주기는 한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조예때까지 크게 견제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토사구팽을 걱정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마의가 조조 때부터 줄곧 거세게 견제 받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토사구팽을 걱정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다.[30] 일례로는 1부 후반의 퀄리티 하락의 원인을 보통은 아녀자들의 규방 싸움을 예로 들지만 실제 역사와는 다른 조비의 미화로 인해, 그리고 사마의가 조조ㅡ조비ㅡ조예ㅡ조방까지 4대를 섬겼다는 것에 착안하여 총 86화의 줄거리를 작위적으로 4분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실제 역사에서는 1년에 불과한 일을 20화 가량 할애했다는 견해도 있다.[31] 대놓고 늙었다고 비하했다. 사마의 본인보다 10세나 어린 조강지처에게 말이다![32] 다만 이것도 말년의 사마의가 적의 의심을 풀기 위한 연기일수도 있다. 둘 사이에서 나온 막내 사마간은 사마의가 50대, 장춘화가 40대에 낳았을 정도로 늦둥이이니 금슬이 아주 나빴는지 의심은 간다. 사실 말년의 저 폭언도 사실이지만 장춘화가 사마의의 꾀병을 목격해버린 하녀를 죽여서 사마의가 중히 여겼다는 기록도 존재하는지라.[33] 주태가 비록 늙긴 했어도 현역 무장이며 장춘화는 무림을 떠나 가정주부가 된지 십년도 넘었다. 실제 역사를 떠나 작중 설정과도 좀 안맞는다. 그냥 중드 특유의 억지 서비스 액션신이라고 생각하자(...).[34] 이러한 쇼는 1부에서 백령균을 첩으로 삼으라는 황명에 장춘화를 설득하기 위해 한 것의 재활용이다. 이때 사마의는 힘이 없어 첩을 들이는 수모를 견뎌내고 충심을 보이기 위해 시순 앞에서 쇼를 했다.[35] 가족과 일신의 안위라는 명분.[36] 사실 이쪽이야말로 미화이다. 사마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조위의 충신으로 형하고 조카들과 반목한 인물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일생동안 사마의와 그 후손들의 오른팔이였으며 사마의도 능가하는 진정 위선자이자 처세술 괴물이다.[37] 사마의가 조조 앞에서 잠결에 '황제는 황제가 아니고, 왕은 왕이 아니다'라는 십상시를 비판하는 민요를 부르며 한나라의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이 민요는 훗날 하후휘가 사마사 앞에서 다시 언급한다.) 정작 조조가 사마의에게 '내가 제위에 올라서보면 어떨까'라고 넌지시 물어봤을때 사마의는 조용히 조조에게 절을 함으로서 긍정했다.[38] 드라마 내에서도 채옹은 이름만 언급 되긴 하지만 (당연한 게 드라마 도입부 기준으로도 수년전에 이미 고인이였던 인물이다), 대학자로 통한다. 작중에서 채옹의 글씨가 뇌물로 돌아다닐 정도.[39] 조조와 사마의는 24세 차이로 거의 부자간의 나이차이였으며 조조의 장남인 조앙이 사마의보다 나이가 많았다.[40] 실제 역사에서는 유비가 사마의보다 18세가 많았다. 100년이나 되는 대서사 삼국지를 시작한 주인공과 최후의 승자의 나이 차이 치고는 그래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닐지도.[41] 여성 작가인 것도 같고 트렌디 사극을 지향해 역사 왜곡으로 비판을 받은 부분 역시 공통적이다.[42] 한 사람은 이 음악의 도입부를 듣자마자 부모님께 진작 잘하지 못한 유년기가 순간 떠올라 감정이 복받쳤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43] 이후 나레이션으로 삼국정세의 변화를 축약한 장면이 곧바로 나와 앞서 나온 OST의 여운을 배가했다. 피로 물들인 언월도 하나 설원에 떡하니 꽂는 것으로 관우의 죽음을 퉁친 건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