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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22:44:05

서리(범죄)


1. 개요2. 왜 하는가?3. 습관이 범죄된다4. 해외의 경우5. 관련 문서



1. 개요

농산물, 축산물을 몰래 훔치는[1] 행위. 즉 절도 행위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상에는 '떼를 지어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예로는 수박 서리가 있다. 다만, 설명은 저렇게 되어 있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절대로 '장난'이 아니다. 보통은 공동체 내부의 철없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소량을 먹을 목적으로 행한 작은 규모의 절도를 서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외지인이거나, 성인이거나, 장물을 판매하기 위해 훔쳤다면 시대를 불문하고 도둑질로 취급됐다.

2. 왜 하는가?

길게 잡아 해방 이후 1950년대 ~ 70년대 후반까지를 서리행위가 판치고 또 사회적으로 용서되던 시기로 잡고 있다. 1960년대에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시작되었지만, 70년대까지는 아직 보릿고개가 사라지지 않아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 남아 있었고 한창 성장기인 아동, 청소년들은 항상 배고플 시기였다. 그래서 서리를 하는 계층은 10대 이하 아동에서 최대 20대 초반 정도였고, 그 이상 연령대가 서리를 하다 발각되면 그 시절 기준으로도 얄짤없이 경찰서행이었다. 그러니까 서리를 하다가 가벼운 꾸중 좀 듣거나 몇 대 정도 매타작 당하고 없었던 일로 용인해줄 수 있는 연령대는 저연령대였다. 가볍게는 콩밭에서 을 훔쳐 구워 먹는 콩서리, 크게는 남의 집 닭장에서 을 훔쳐 먹는 닭서리까지 존재하는 등 서리 행위에도 단계가 존재했는데, 경찰에 통보하지 않고 가벼이 혼 좀 나거나 부모님의 배상으로 끝날 수 있었던 단계는 닭서리까지다. 1980 ~ 90년대엔 이촌향도현상이 진행되면서 도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미 자연소멸단계에 접어들었고 만화나 드라마에서 바닷가에 놀러갔을때 수박깨기 놀이 처럼 여름방학에 시골집에 놀러갔을때 발생하는 이벤트 정도로 다뤄졌다. 2000~10년 이후엔 그마저도 사라져서 현재는 '초등학생 무인 상점 절도' 처럼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됐다.

좀 더 자세히 짚어보면, 아이들이 떼지어 놀러다니면서 장난삼아 과일 따위를 서리하면 이나 과수원 주인은 "에끼놈들!" 하고 호통이나 치다가 "어이구 이놈들!" 하고 서로 하하호호 정이 넘치게 웃어넘기는 낭만적 이미지의 서리는 소설이나 만화 속에나 등장하는 것이고, 한참 서리가 판치던 50년대 ~ 70년대에도 서리가 꼭 아이들의 장난이라는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여지던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애들이 배고파서 서리해 먹었나 보구나!' 하는 정도로 봐주는 셈 치고 넘어가거나, 걸리더라도 따귀 몇 대 정도로 끝나거나 멀리서 아이들의 서리 장면을 목격하고도 그러려니 하고 가볍게 눈감아 주며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콩이나 곡식 이삭 한 두줌을 서리해서 구워먹는 콩서리, 아니면 바닷가 마을에서 상품성이 없어서 식구들 반찬이나 하자고 널어서 말리고 있는 잡어나 씨알 작은 생선을 서리해서 구워먹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수준을 넘어 수박처럼 개당 상품성(환금성)이 높은 덩치가 큰 과일 서리 정도가 되면 만약 서리하다 들키기라도 하면 요즘 같아서는 너는 절도죄 나는 폭행죄 하고 사이좋게 경찰서 출두해야 할 정도로 옴팡 두들겨맞는 경우도 있었고, 안 들키더라도 같은 집에서 두번 세번 하다가는 어차피 동네에서 누구 짓인지 뻔하니 참다 못한 밭이나 과수원 주인이 집에 찾아와서 한바탕 난리치고 돌아가는 일도 흔했다. 즉, 상품성 있는 과일 같은 작물을 서리하는 것은 당시로써도 단순한 장난 수준이 아니라 일종의 도둑질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구성원간의 관계가 긴밀하고 공권력과 같은 외부의 개입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당대의 시골 마을 분위기상 일일이 따지기도 껄끄럽고, 만약 이런 일이 싸움이나 큰일로 번지면 한동네 사는 사람끼리 괜히 얼굴 붉히며 살아야 하니 어지간하면 외부인을 개입시키지 않고 마을 안에서 해결하고 싶어했던 것 뿐이다. 특히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업 기계화가 덜 된 시절이라 일손이 필요한 시기엔 니밭 내밭 할 것 없이 농사일을 돕고 같이 밥먹고 하던 시절이라 사이가 잘못 틀어지면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던 시절임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당시의 경찰 등 공권력은 친절함이 기본인 현대와 달리 중국 경찰과 비슷하게 고압적이고 권위적이었으며, 서리하다 잘못 걸리면 부랑아 비슷하게 취급되어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 같은 강제수용시설로 보내버리는 등 일이 커질 수 있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으로써는 알면서도 더욱 쉬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를 넘어 가축을 훔쳐먹는 서리쯤 되면 절대로 장난으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게 되었다. 당시 기준으로 은 키우는 사람도 낳으면 모아서 팔고, 귀한 손님 오셨을 때나 한 마리 잡아먹을 정도로 상당히 귀한 재산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자. "씨암탉을 잡는다."가 그 집에서 가장 귀한 걸 대접한다는 뜻일 만큼 닭이라는 귀한 것을 우리 식구도 함부로 손 못 대는 걸 동네 애들이 지들 멋대로 잡아먹었는데 이걸 장난이라고 웃고 넘어갈 수 있을 리가... 결국 그 당시 닭서리를 하는 소년이나 청년들은 동네에서도 백안시하는 왈패나 건달패나 일진패였다고 봐야 한다.

결국 자기들끼리 몰려다니면서 행패부리고 말썽을 일으키고 소란을 피우는 골칫거리지만,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자기 동네 사람으로 살면서 여러번 마주치고 일손이 필요할 땐 돕고 도우면서 상부상조 해야 하니 경찰을 불러서 괜히 일을 키우기에는 꺼림칙하고, 많아야 20대 초반의 어린애나 젊은애들 상대로 마을 어른들이 몰려들어 잘못을 따지기도 난처하니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식으로 내버려 둔 것에 가깝다. 말하자면, 닭서리쯤 되면 명백하게 나쁜 짓이지만 소위 동네의 '정'을 생각해서 인실좆시키는 건 너무하다 싶어 걍 넘어가는 선에서 끝내는 게 좋겠다는 행동의 상한선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것도 절대로 공짜는 아니었고, 이렇게 서리하다 걸리면 서리한 집의 부모가 닭을 준다거나 그에 상응하는 농산물을 주는 등 보상을 해주는 것이 그 시대에도 매너이자 미덕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위법 행위를 당했음에도 합의금을 받는 것으로 끝내고 고소까지 가지 않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이보다 더 큰 스케일의 서리를 하면 얄짤 없었으며, 20대가 꺾일 무렵쯤 되면 정신 차리고 싹싹 빌고 마음잡고 갱생해서 살든지, 아니면 진짜 건달패나 조폭에라도 들어가서 동네 사람들이 자길 함부로 못 건드리게 만들어야지, 진짜 건달도 못 되는 주제에 이런 짓을 대놓고 더 하고 다니면 짤 없었다. 당연히 돼지를 훔쳐 먹는 행위는 서리 수준으로 용인될 수 있는 단계도 아니라서 신고나 법의 처벌을 피할 수 없었고, 이럴 경우 동네에서 도둑놈이라고 손가락질을 당했다.

서리 문화의 전성기였던 50년대 ~ 70년대에는 소나 돼지같은 가축의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농경사회에서 소는 곧 농사일의 능률과 직결되는지라 여름에 일 시키느라 소가 탈진하면 사람도 쉽게 못 먹는 경우가 많은 산낙지를 구매해다가 먹인다고 할 정도로 집안의 또다른 한 가족과도 같은 존재이자 살림 밑천으로 귀하게 여겨졌고, 자식의 대학 등록금[2]을 마련하려고 가슴이 찢어지는 심정으로 소를 팔면서 대학을 (상아탑이 아니라) 우골탑이라고 불렀다고 할 정도였다.

당장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에서도 보여지듯이 소도둑이 농경사회에서 가장 큰 도둑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점을 봐도 알 수 있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소나 돼지 도둑질은 21세기 초반의 현대인 기준으로 보면 GTA쯤 되는 죄질이 상당히 무거운 범죄였다. 단순 서리 수준으로 넘어갈 일이 절대로 아니다. 게다가 애초에 몇 사람이 간단하게 잡아서 조리를 위해 손질할 수 있는 닭과는 달리 돼지와 소는 도축해서 가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과 인력이 필요한 동물들이다. 이게 가능할 정도면 그건 거의 전문 가축절도단이지 서리꾼이 절대로 아니다.

수박서리의 경우도 단순히 부모님의 배상만으로 끝날 일이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배상금이 닭서리보다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박 1개를 서리해서 훔쳐먹었다가 적발되었을 경우 부모님이 수박밭 주인에게 수박밭 전체의 그 수많은 양의 수박값을 다 물어내야 했다. 왜냐하면 수박은 하나의 덩굴을 타고 여러 개의 열매가 열리는 작물인데, 수박을 잘못 따면 같은 덩굴에 열려 있는 수박들이 몽땅 다 시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박서리 하다가 걸렸을 경우엔 수박밭 전체의 수박값을 다 물어내야 한다. 즉, 수박 하나 잘못 따면 그 해 수박농사는 완전히 망치는 셈이라 수박밭 주인으로서는 좀 더 강경한 대처를 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박밭의 이미지가 넓게 펼쳐진 밭 한가운데에 정자나 원두막이 있는 것도 바로 이와 관련이 있다. 사람은 물론 야생동물들이라도 지나가다 잘못 밟으면 그대로 수박밭이 작살나기 십상이다. 그래서 그 정자나 원두막에 앉아 하루종일 수박밭을 지키면서 감시를 해야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짚어보면, 수박농사는 한 덩굴에서 여러 개의 열매가 열리면 그 중에서 일부를 솎아내서 나머지 열매를 상품성 있게 키워내는 것이기 때문에, 열매 하나를 잘못 따면 같은 덩굴에 열리는 수박 전부를 덤으로 망쳐버릴 수 있다. 게다가 수박은 하늘을 향해 쭉쭉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지면을 따라 뻗어나가는 덩굴 식물이므로 수박밭에서 돌아다니다가 실수로 밟기도 쉽고, 밟힌 덩굴이 짓이겨져 고사하기도 쉽다. 즉, 열매를 안 따더라도 지나가다 덩굴을 딱 한 번 잘못 밟았을 뿐인데도 같은 덩굴에 열린 수박들이 전부 말라 죽어버릴 수 있는 것. 그러다 보니 남의 밭에서 여름날의 낭만을 찾는 서리꾼들이 스쳐지나간 밭이 한순간에 초토화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수박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절대로 수박을 한 통씩 팔지 않는다. 이는 가축을 키우는 축산업에서도 동물들을 단 한 마리만 키우지 않는 것과 같다. 인터넷 등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주문을 받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이건 공이 많이 들고 번거로운 일이라 도매업자에게 바로 물건을 넘기는 생산자가 훨씬 더 많고, 도매계약은 기본적으로 면적을 기준으로 밭 단위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수박서리꾼이 스쳐가서 밭이 초토화가 되면? 도매업자는 당연히 그 밭 물건을 안 떼간다.

즉, 밭의 수박들이 전부 다 말라죽지는 않았다고 해도 남은 수박도 마땅히 팔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뭐... 이걸로 민사재판을 가면 밭 주인이 원하는대로 밭 하나값을 다 물어내라는 판결이 꼭 나온다는 보장이 없긴 하지만... 수박서리의 배상금은 일부 덜떨어진 서리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가 떼먹은 수박 값'을 기준으로 책정되는 게 아니라, 밭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느냐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따라서 수박 한 통 따먹고 배상금이 수천만원대로 나오는 일도 드물지 않은 것.

서리꾼들의 유행과 사회적 용납은 1980년대 접어들면서 농촌 사회에 이촌향도와 고령화로 저연령층 자체가 사라지고 경제적으로도 식량이 부족한 지역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거의 없어졌고, 현대의 서리는 수확 후 상품성이 떨어져 버려지는 자투리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완화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수확철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밭마다 버려진 자투리를 주워가는 사람들을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엔 어차피 먹지도 못하고 질도 안 좋은 거 버려져도 상관없는 것들을 주워가는 것이므로 처리할 수고를 덜어준다고 크게 터치하지 않는 주인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런 케이스도 엄연히 범죄라는 사실은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수틀려서 싸우게 되면 절도죄로 걸려 들어간다. 불리한 쪽은 명백히 서리꾼이다. 만약 주인이 이러한 행위를 매우 싫어하고 버릴 것들도 엄연히 내 것이니 버려도 내가 버리겠다던가, 자투리를 가져가는 건 좋은데 밭을 너무 과하게 파헤친다던가 더미들을 흐트려놓는다던가,[3] 어떠한 이유든 관계없다. 그것을 내가 하지 않았고 남들이 이미 먼저 훑고 흐트려놓은 곳에 내가 들렸다가 재수없이 오해를 샀더라도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고 얌전히 넘어가는 것이 좋다. 귀여운 장난 수준으로 봐 주던 시절은 70년대 후로 끝났다.

주인의 눈치를 봐 가며 자투리를 주워가는 수준이 아니면 더 이상 장난으로 봐 주지 않는다. 진짜 쓰레기를 가져가서 대신 버려주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지만, 농작물 자투리를 어차피 버릴 것이라 하여 쓰레기로 간주하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나, 엄연히 절도로 본다. 몇몇 채소나 과일밭은 다음 해 농사를 위해 밭을 갈아엎어버리기 전에 남은 작물들을 헐값에 가져가라고 하거나 지인들에게 공짜로 따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차라리 그걸 알아보는 게 좋다.

3. 습관이 범죄된다

서리가 용납되던 시기에 유/청소년 시기를 보낸 세대들 중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남의 텃밭이나 축사에서 뭘 훔치는 행위를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남아 있다. 인터넷상에서 남들이 멀쩡히 키우는 텃밭에 키운 농작물을 중년 아줌마/아저씨가 함부로 훔쳐가고 발각돼도 뭐 이런 걸 가지고 야박하게 그러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한탄하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이런 이들은 결국 절도로 구속되어 뉴스에 등장해서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제주도의 경우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과수원에 멀쩡히 열려 있는 을 대놓고 따가는 사례도 있다. 남의 과수원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짓은 덤.

남이 키우던 개나 가축을 멋대로 절도, 밀도살해 후 잡아먹는 사람들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들 입장에서는 절도의 스릴을 누린 뒤 친구들과 함께 정을 나누며 배를 채우던 따뜻하고 그 때 그리운 시절을 다시 느껴볼 수 있겠지만... 옛날에야 사회적으로 용납됐다고 해도 21세기 시점에서는 그냥 절도죄다. 애초에 옛날에 서리가 어느 정도 용인되던 것도 어디까지나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대적 배경에 더해, 같은 마을, 멀리 가서 이웃 마을이라는 한 공동체 내의 아직 어린 구성원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용인되던 풍조였다. 현재같이 먹을 것이 풍족해진 시대에 타지에서 잠깐 놀러온 생판 남인데다 성인인 사람이 생업을 방해하면서 재산침해를 하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옛 시절을 회상한다는 미명 하에 범죄를 미화하는 매체[4]가 있으나, 엄연히 범죄고, 나이 먹어서도 뻔뻔하게 도둑질을 하다가 밭 주인이 깐 동물 덫에 크게 다치거나 심하면 몇천원어치 식품에 목숨을 바꾸는 한심한 경우도 생기며, 게다가 짐승 잡으려다 엉뚱하게 사람 잡은 밭 주인도 처벌을 받는 2중 민폐가 된다. 실제로 2009년에 관광객들이 농작물 서리를 하려다 밭에 설치된 전기 울타리에 감전사한 사건이 있었다.[5] 결국 이 사건에서 밭 주인은 업무상 과실치사로 입건되고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금고 8개월 선고를 받아 구속되어 감옥살이를 했다. 또한 유족의 소송에 67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금액만 보면 많아 보이지만 울타리 주변에 감전 경고판이나 누전차단기 등을 설치해 안전하게 관리할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명목이었고, 그나마도 책임이 30%만 인정되었다.[6] 통행을 금지하려고 설치된 것이 명확한 울타리를 넘어 타인의 농작물을 채취하기 위해 밭에 들어가려다 사고를 당했으니만큼, 서리를 하려 한 사망자들의 자업자득인 면이 있음을 인정한 것. 기사

이 외에도 서리를 하다가 이런 식으로 재수없게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사례가 종종 언론 기사로 보도되곤 하는데, 이에 대해 사람들은 대다수가 서리꾼들의 자업자득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어느 어촌 마을에서 주민이 말리려고 밖에 널어둔 복어와 복어 알(!)을 관광객이 훔쳐 먹고 사망한 사례가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어촌에서 복어를 건조하는 행위는 말린 복어를 쥐나 길고양이 등의 유해조수를 없애기 위해서 일부러 말려 잘 보이는 곳에 놔두는데 그걸 주워먹고 탈이 났다. 이 경우는 서리라기에는 좀 애매한 감이 있지만.

도시에서만 살아오던 이들은 시골의 분위기를 체감하지 못해 무의식 중에 일어나기도 하는데, 시골에 있는 것들도 깊은 산 속이 아니라면 다 주인이 엄연히 있는 것들이 대다수다. 담장 밖에 있다거나 표시가 없다고 해서 마음대로 따가거나 캐가거나 뽑아가거나 가져가거나 나무를 함부로 벌목하는 건 명백한 절도며, 특히 국립공원에 있는 것들을 무단으로 가져가거나 캐어가거나 뽑아가거나 베어갈 경우 자연공원법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간혹 방송에서 나오는 '산에서 약초나 산나물 캐는 사람들'도 실상은 사전에 산 주인의 허가를 받고 채취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취재한 시사교양 프로그램 같은 데서는 방송 화면에 자막으로 해당 산 소유주(혹은 관할 기관)의 허가를 받았음을 명시한다.[7]

농작물 서리 중에서는 어떤 것부터 절도냐 절도가 아니냐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떨어진 은행 열매, 떨어진 혹은 도토리, 떨어진 과일 정도는 절도라고 보긴 어렵다. 산에서 약초버섯을 캐는 것은 엄연히 주인이 있기 때문에 절도로 볼 수 있지만, 떨어진 열매까지 절도라고 보긴 힘든 면이 있다.[8] 다만 그렇다 해도 열려 있는 열매나 과일 혹은 약초를 함부로 캐는 등 훼손시켜서 얻는 행위는 분명히 절도죄에 해당되므로 절대로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 특히 약초와 버섯의 경우에는 독초독버섯도 존재하므로 괜히 산 주인에게 민폐끼치고 싶지 않다면 더더욱 제멋대로 캐면 안 된다.



농작물 서리 때문에 농민들의 피해가 워낙 심하다 보니 해마다 수확 시기가 되면 농촌 지역 경찰서들도 골머리를 앓는 실정인데, 강원도 평창경찰서 등 일부 농촌 지역 경찰서에서는 아예 경찰서 주차장을 농산물 건조장으로 제공하는 고육책을 내놓기까지 했다. 예시로 든 평창경찰서의 경우 2004년부터 주차장을 제공했으며, 농작물 절도 예방[9]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는 농민들의 작물 관리 일손도 돕고 있다고 한다. 또한 절도 방지 외에도 농민들이 도로변에 농작물을 널어놓고 말리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사고 방지 목적도 있다. 덕분에 해마다 경찰서 주차장이 건조장으로 개방되는 시기에는 경찰서 직원들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도보 내지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고...

2020년에는 특히 긴 장마와 연이은 태풍으로 인해 농작물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으면서 농작물 서리꾼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1통에 10000원이 넘어갈 정도로 가격이 부쩍 오른 배추가 서리꾼들의 주 타깃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

심지어 한 대학에서는 남녀 3인조가 대학이 관리하고 있었던 밭에서 약 80kg의 당근을 서리한 사건도 있었다. 항목 참조. 문제는 이 3인조가 훔쳐갔던 당근이 무려 1억 2000만원을 들여서 질병 저항용 품종용으로 연구 중이었던 특수한 품종이었던지라 대학 측에서는 처음엔 이 3인조가 누군가의 사주로 연구 데이터를 훔치거나 아예 해당 연구 자체를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절도를 한 게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실상은 일반인 남녀 3인조가 고기 먹을 때 반찬 삼아서 같이 먹을 목적으로 대학 밭에 있었던 당근을 80kg나 서리해간 것이라고... 참고로 사건 수사 과정에서 연구비를 약 5,000만원이나 들인 도 400뿌리나 사라진 것도 추가로 밝혀져서 그 쪽도 수사 중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해당 지역 주민들 중 일부가 대학 측의 밭을 아예 공공재로 여기고 있다는 것 같다는 모양. 이 사건은 SBS 궁금한 이야기 Y 2017년 8월 25일자 방영분에서도 다루어졌다. 영상

4. 해외의 경우

어느 나라든 남의 밭에서 농작물을 훔치는 것은 빼도 박도 못한 범죄다. 반면 야생 임산물 채취에 대한 관점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 캐나다는 한국보다 이런 문제에 훨씬 엄격하다. 한 예로 식객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조 여사가 뒷산에서 을 캐다가 사유지 침입으로 산 주인에게 신고당해 경찰에 끌려갈 뻔한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은 이런 법적인 처벌 말고도 해당 임야에 대한 채취 취득권이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총잡이까지 고용해서 감시한다. 특히 총기가 합법인 국가다 보니 사유지 침범 자체에 민감해서 인삼이나 트러플 채취 시즌이 되면 사람이 한둘은 죽어나갈 정도.

반대로 영국, 독일, 러시아 등 유럽권에서는 야생 임산물 채취가 합법인데 이걸 'freedom to roam'이라 부른다. 이에 관해서는 자연향유권 문서를 참조하자. 그래서 유럽 시골에선 여름, 가을이 되면 숲 속을 뒤지며 산딸기나 각종 베리류 열매 같은 먹을 거리들을 주워 모아서 겨울철 두고두고 먹을 수 있도록 을 만드는 문화가 있다. 소금 대신 설탕을 이용한다는 점만 빼면 한국의 김장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유럽의 경우에도 당연히 남의 밭에 들어가서 이짓거리를 하다가는 잡혀간다. 유럽의 경우 봉건제 사회가 길게, 최근까지 이어지다보니 밭과 임야, 산림의 경계가 뚜렷하고 땅 자체도 넓어서 주인없는 땅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의 자연향유권에도 나와있다시피 장원 이외의 산림에 대한 개념과 시민들의 생각 자체가 다르고, 채취시에도 어느 정도 제한을 두므로 잘 알아보고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외국인이 많이 사는 군마현 오오타시에서 베트남인들이 돼지 719마리, 닭 144마리, 배 5670개를 훔쳐 장물로 판매하다가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다. 관련 영상

5. 관련 문서



[1] 소유권을 지닌 사람, 혹은 소유권자의 허락을 맡은 사람이 농산물을 채집하는 것은 서리가 아닌 수확이다.[2] 당시는 대학 진학자가 흔치 않았으므로 자식을 일종의 사회적 특권 계급으로 거듭나게 하여 집안을 크게 일으킬 기회를 위한 투자였다.[3] 단순히 상품성이 없는, 버릴 것들을 가져간다고 뭐라 하는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대부분 이 경우 때문에 분노하는 경우가 많다.[4] 심지어 과거 국어 교과서에서 회상 장면으로 나온 적도 있다.[5] 이 사례는 KBS 의뢰인 K 2011년 11월 11일 자 방영분에서 다루어졌다.[6] 비슷한 과실치사인 교통사고 사망시 합의금+보험 지급액만으로도 자릿수가 다른 금액이 오고 가는 것을 생각하면 감이 잡힐 것이다.[7] 자연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자연인들은 친척의 소유거나 집안의 선산, 본인 소유인 산에서 거주하는 경우거나 남의 산이라도 허가를 받고 대가를 지불한 경우이다. 남의 산에서 멋대로 자연인 노릇 한다? 차라리 멱살잡혀 쫓겨나는 게 다행일 정도로 뒤가 매우 안 좋게 된다.[8] 하지만 울타리 내에 떨어진 열매를 줍겠다고 넘어가면 '사유지 무단 침입'이 될 수 있고, 절도미수와 주거침입으로 몰릴 수도 있다. 또한 떨어진 열매를 줍는 정도는 절도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도 가로수, 또는 하다못해 등산로 주변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열린 공간에 떨어진 열매를 줍는 정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주인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명확한 공간(예를 들어 밭이나 과수원 등)에 들어가서 아무리 떨어진 열매라도 멋대로 집어오면 이는 당연히 절도로 처벌될 수 있다.[9] 만에 하나 절도꾼이 출몰하더라도 현행범으로 잡아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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